장미꽃 알려주어 고맙구나



  일곱 살 큰아이가 지난주에 길에서 벌에 넉 방 쏘인 뒤로는 마당에서 놀 생각을 않는다. 벌한테 쏘이기 앞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마당에서 놀던 아이가 이제는 파리가 웅웅거리는 소리까지 무서워하고 만다. 마침 비가 오니, 비가 오는 날에는 벌도 파리도 날아다니지 못해, 큰아이가 걱정없이 마당에 내려온다. 다만, 내가 마당에 나오니 살그마니 달라붙으며 따라온다. 얼마나 마당에 내려와서 놀고 싶을까. 얼마나 바깥바람 쐬면서 숲노래를 부르고 싶을까.


  나는 아침저녁으로 풀을 뜯기만 하며 미처 살피지 못했는데, 모처럼 마당에 내려온 큰아이가 나를 부르며 말한다. “아버지, 우리 집 장미꽃 피었어요!” 어, 어, 그러네. 우리 집 장미꽃이 피었네. 언제 피었지?


  오늘도 어제도 우리 집 장미꽃 둘레에 돋은 돌나물을 뜯었다. 그제도 그끄제도 우리 집 장미꽃 둘레에서 풀을 뜯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집 장미꽃이 봉오리를 터뜨린 줄 알아채지 못했다. 한 송이는 봉오리를 막 터뜨리려 하고, 한 송이는 벌써 봉오리를 활짝 터뜨렸다.


  속으로 ‘쳇! 쳇!’ 한다. 우리 집 장미꽃을 알아보아도 내가 먼저 알아보고 알려주고 싶었는데, 네 녀석이 먼저 알아보다니. 그래도 네 마음속에 언제나 꽃빛이 있으니 이렇게 모처럼 마당에 내려섰을 적에 장미꽃이 터진 줄 알아차렸겠지. 장미꽃은 네 꽃이다. 장미빛은 네 마음빛이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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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정거장 Happy Station - I Love Madagascar
신미식 지음 / 푸른솔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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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66



즐겁게 찍는 사진은

― 행복정거장

 신미식 사진·글

 푸른솔 펴냄, 2008.11.22.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사진‘을’ 어떻게 찍으면 될까요? 사진을 배우려는 분들은 으레 이렇게 물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을 까닭은 없어요. 왜냐하면, ‘사진’이라는 낱말을 바꾸면 되거든요. 자, 다시 물을게요. 어떻게 살면 될까요? 사랑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떤 일을 하면 될까요? 일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이와 어떻게 살면 될까요?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면 될까요?


  마음이 있다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쉽게 알지 못합니다. 마음이 있다면 ‘사진을 어떻게 찍느냐’는 ‘삶을 어떻게 꾸리느냐’와 똑같은 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사진을 찍는 까닭’과 ‘아이를 사랑하는 까닭’이 서로 같은 줄 느끼지 못합니다.


  사진책 《행복정거장》(푸른솔,2008)을 내놓은 신미식 님은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겐 행복이었다.” 하고 말합니다. 사진책 《행복정거장》은 사진책이면서 사진공책입니다. 신미식 님이 찍은 사진을 담은 책이면서, 사이사이 수첩이나 공책으로 쓸 수 있도록 빈자리가 많습니다.


  사진책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머리말에만 짤막하게 적은 글을 읽어 봅니다. 신미식 님은 “내가 이 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난 이 나라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고 말합니다. 그렇군요. 신미식 님은 마다가스카르가 신미식 님한테 ‘나 너 사랑해’ 하고 읊은 노래를 들었습니다. 마음으로 들은 노래를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서 마음으로 책을 엮습니다.




  신미식 님으로서는 “이제는 어느덧 고향과도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땅과 사람들. 그리움을 두고 떠나온 것은 사람만은 아니었다.” 하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선보이는 사진들은 그동안 숨겨져 있던 나만의 보물이다. 자칫 세상에 등장하지 못할 뻔한 아이들과 아름다운 풍광들을 마음껏 넣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하고 마무리짓습니다.


  누군가한테는 서울 북촌이 좋습니다. 누군가한테는 부산 광복동이 좋습니다. 누군가한테는 라다크가 좋습니다. 누군가한테는 핀란드가 좋습니다. 누군가한테는 마다가스카르가 좋습니다.


  사진책을 덮고 문득 생각에 잠깁니다. 한국을 좋다고 말할 사진가는 있을까요. 한국땅 구석구석을 두 다리로 천천히 밟으면서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할 사진가는 있을까요. 풍광이나 풍경이 아닌 삶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한국을 아름답게 노래할 사진가는 있을까요. 그림쟁이 고흐 님이 감자 먹는 시골사람을 그림으로 담았듯이, 시골에서 흙을 가꾸며 아끼는 사람을 사진으로 담을 분이 있을까요.


  아무렴, 틀림없이 있습니다.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는 오로지 시골 할매와 할배를 사진과 글로 보여줍니다. 시골에서 뿌리를 내리며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할매와 할배가 늘 주인공이 되어 잡지를 가득 채웁니다. 한국에서 이런 잡지는 아직 없습니다. 농협에서 내는 잡지나 신문에서도 농사꾼이 주인공이 되지 않아요. 농림수산부에서 내는 기관지나 사외보에서는 농사꾼이 주인공이 될까요? 된 적이 있을까요?





  즐겁게 찍는 사진은 이웃한테 즐거운 웃음을 베풉니다. 즐겁게 찍는 사진은 사진쟁이 스스로 아름답게 웃는 씨앗을 베풉니다. 더도 덜도 아닙니다. 즐겁게 살 때에 아름답습니다. 즐겁게 찍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즐겁게 찍으면 됩니다. 사진 역사에 이름이 남아야 하지 않습니다. 비평가나 평론가가 눈여겨보아 주어야 하지 않아요. 사진잡지에 실려야 하지 않아요. 사진은 그저 즐겁게 찍을 뿐입니다. 삶은 그저 즐겁게 가꿀 뿐입니다. 우리 삶이 신문에 나거나 방송에 나거나 책으로 나와야 하지 않아요. 우리 삶은 늘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사진으로 찍든 안 찍든 언제나 즐거운 하루입니다. 사진으로 돌아보지 않더라도, 글로 되새기지 않더라도, 그림으로 다시 보지 않더라도, 우리 삶은 날마다 새롭게 아름다운 빛을 뽐냅니다. 사진책 《행복정거장》은 신미식 님이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담습니다. 작고 수수한 이야기가 가만히 흐릅니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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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월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시집을 펼친다. 한 달쯤 책상맡에 두었다가 펼친다. 비가 오는 날 읽기에 알맞을 시집이었을까. 한 쪽 두 쪽을 읽는 동안 마음이 포근해진다. 시인이 싯말로 읊은 노래를 살피면 가슴을 에는 이야기가 꽤 있는데, 가슴을 에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마음이 포근하다. 왜 그럴까? 아픔과 생채기를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아픔과 생채기를 구경하거나 나 몰라라 하지 않고 품에 안으면서 따사로이 보듬으려는 손길이기 때문 아닐까? 아픔을 말한대서 다 아픔을 말하는 시가 된다고 느끼지 않는다. 생채기를 주제로 다룬대서 모두 생채기를 슬기롭거나 제대로 보여준다고 느끼지 않는다. 시가 되려면, 문학이 되려면, 이야기가 되려면, 시를 쓰는 넋이 스스로 숲이 되어야 할 테지. 그러니 시집 이름이 《침엽수 지대》이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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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엽수 지대
김명수 지음 / 창비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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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친구 웅진 우리그림책 1
한태희 지음 / 웅진주니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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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80



같이 놀 때에 즐겁습니다

― 로봇 친구

 한태희 글·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2005.10.20.



  어른들이 죽음수렁으로 내몰아 목숨을 잃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입시지옥에서 살짝 벗어나 배를 타고 나들이를 가던 길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배에 갇힌 채 그대로 바닷속에 잠겼고,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배에서 빠져나와 살아난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고운 숨결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우면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바닷속에 가라앉아 죽은 아이들이 죽지 않았다면, 무엇이 이 아이들을 기다렸을까요. 바닷속에 가라앉지 않고 살아난 아이들 앞에는 무엇이 이 아이들을 기다릴까요.



.. 나에게는 로봇 친구가 있습니다 ..  (2쪽)



  아이들은 며칠쯤 학교를 벗어나 뛰놀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작 며칠을 뛰놀 뿐, 다시 학교에 갇힌 채 입시지옥에 허덕여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태어나기 앞서도 어머니 뱃속에서 영어 노래를 들어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태어나서 뒤집고 볼볼 길 적에 영어 노래를 다시 들어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두 발로 서서 뛰놀 무렵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에 들어가서 또 영어 노래를 부르면서 영어 낱말을 배워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뛰놀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빈터를 모두 주차장이 빼앗습니다. 시골에서는 빈터 하나 없이 모조리 논이나 밭으로 일구는데, 빈터, 그러니까 수풀이 있으면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또는 비닐쓰레기를 태우는 자리로 빈터를 삼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신나게 뛰놀지 못합니다. 그나마 시골 아이는 웬만하면 한층집에서 살지만 도시 아이는 층집에서 살아요. 층을 이룬 아파트에서는 뛰지도 달리지도 구르지도 노래하지도 못합니다. 피아노를 신나게 칠 수 없고 피리를 마음껏 불 수 없어요.


  바다에 빠졌다가 살아난 아이들을 기다리는 한 가지는 입시지옥입니다. 입시지옥을 빠져나오면 취업지옥이 기다립니다. 취업지옥을 빠져나가면 무엇이 있을까요? 아이들 앞에는 온통 지옥입니다. 하늘나라 아닌 지옥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 지옥만 만들어 놓고는 밀어넣습니다. 아이들은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목숨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외롭습니다. 쓸쓸합니다.



.. 목요일, 나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큰고시로 말했습니다. “로봇, 꼭꼭 같이 놀자.” 하지만 로봇은 피자를 엄청나게 많이 만드느라 바빴습니다 ..  (18∼21쪽)



  오늘날 아이들은 주머니에 돌멩이를 넣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주머니에 모래가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콧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이마에 땟국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손톱 밑에 때가 끼지 않습니다. 놀지 못하니까요. 놀 수 없으니까요.


  어릴 적에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푸른 나날 누리는 때에도 놀지 못합니다. 고등학교를 마친들 놀지 못합니다. 대학교까지 마쳤어도 놀 겨를이 없어요. 아이들한테 놀이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얼싸안고 춤추거나 노래할 줄 모릅니다. 배운 적이 없거든요. 아이들은 어른들마냥 담배를 태우고 술을 마십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흉내내를 내느라 바빠 일찌감치 입술을 박고 살갗을 부빕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꽁무니를 좇느라 동무를 주먹으로 괴롭히고 등수와 서열과 계급과 신분과 재산으로 가릅니다.



.. 로봇은 한참을 자고, 자고, 또 잤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늦게서야 일어났습니다. “우리, 같이 놀자.” 로봇은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  (30쪽)



  한태희 님이 빚은 그림책 《로봇 친구》(웅진주니어,2005)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림책 《로봇 친구》에는 ‘로봇 친구’가 나옵니다. 그런데, 로봇은 ‘친구’라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놀지 못합니다. 놀 겨를이 없습니다. 로봇을 친구로 둔 ‘아이’도 놀 겨를이 없습니다. 이 공부를 하고 저 숙제를 하며 그 유치원(또는 학교)에 가야 합니다. 이레 가운데 일요일 늦은낮에야 비로소 같이 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와 로봇은 무엇을 하며 놀까요. 무엇을 하며 놀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한테 어떤 놀이를 물려주나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서로 동무 삼아 즐겁게 놀도록 맑고 밝으며 너른 빈터를 내주는가요. 아이들이 흙과 모래와 돌을 만지도록 해 주는가요. 아이들이 냇가에서 첨벙첨벙 물놀이를 할 수 있는가요. 오늘날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 놀이를 잊거나 잃으면서 아이한테 아무런 놀이를 안 물려주거나 못 이어주지 않나요. 오직 입시지옥으로 내몰고, 그예 취업지옥에 디밀면서 아이들을 들볶거나 괴롭히지 않나요.


  같이 놀 때에 즐겁습니다. 같이 웃고 노래할 때에 즐겁습니다. 레크레이션이 아닌 놀이입니다. 여가나 취미가 아닌 놀이입니다. 여행이나 관광이 아닌 놀이입니다. 온몸으로 놀고 온마음으로 놉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를 하고 기쁘게 손을 잡습니다.


  길거리를 보셔요. 도시에도 시골에도 놀이터란 없습니다. 들어갈 수 없는 잔디밭이 있는 공원이 있을는지 모르고, 어르신 운동기구를 몇 놓은 손바닥만 한 쉼터는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아이들이 신나게 땀흘리며 뛰놀 빈터는 이 나라 어디에도 없습니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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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물러서는 마음



  이야기는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나눕니다. 이야기는 지식이나 정보로는 나누지 않아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식이나 정보로 이야기를 나누려 해요. 이때에는 겉보기로는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정작 이야기라 할 수는 없습니다. ‘지식나눔’이나 ‘정보나눔’이 될 뿐입니다.


  요즈막에 사람들이 세월호 이야기에 그토록 힘을 쏟는데, 막상 ‘예방접종’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예방접종이 무엇인지 얼마나 살피실 수 있을까요. 예방접종에 들어가는 성분이 무엇인지 알면서 어른들이 아이한테 이 주사를 놓을까요. 그저 맞히라고 하니까 맞히지 않을까요. 수은과 포르말린과 알루미늄을 버젓이 집어넣는 예방주사인데, 이런 주사를 반드시 맞혀야 아이가 아프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까요.


  2007년에 나온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스테파니 케이브)라는 책과 2006년에 나온 《예방접종, 부모의 딜레마》(그레그 비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책은 예방접종을 어떤 화학약품으로 만드는가를 낱낱이 밝힙니다. 2014년에 《우리 집 백신 백과》(로버트 W.시어스)라는 책이 한국말로 나옵니다. 이 세 가지 책을 보면, 오늘날 이 나라 어른들이 아이한테 맞히는 예방주사에 수은·포르말린·알루미늄이 들어간다고 밝힙니다. 예방접종 문제를 조금 살핀 분이라면, 이 세 가지 때문이라도 예방접종이 무척 무서운 줄 느낍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어버이는 예방접종 성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학교와 병원에서 맞히라고 하니까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할’ 뿐입니다.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은 어른들 탓입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세월호가 가라앉았아도 아이들을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듯이’ 내몰기만 하고, 우리 어른들 스스로도 ‘삶을 찾고 사랑을 찾으며 사람을 찾는 길’로 좀처럼 접어들지 않습니다. 언론보도에 자꾸 얽매이기만 한다면 참모습도 못 보고 참을 가리는 거짓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모두들 세월호 취재와 보도에 목을 매달까요.


  한발 물러설 적에 비로소 참모습을 봅니다. 한발 물러서지 않으면 참모습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헤엄을 못 치는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곳은 깊은 물속이 아니라 얕은 곳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어른도 아이도 깨닫습니다. 한발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비로소 참모습을 볼 수 있고, 삶과 사랑을 볼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갈 숨결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우리와 똑같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갈 숨결입니다. 어른들 잘못 때문에 그만 푸른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떠난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야 하던 숨결입니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달아야 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언제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갈 숨결입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전쟁이 터져도 씨앗을 심었습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전쟁이 터지는 한복판에서도 풀을 뜯고 밥을 지으며 베틀을 밟고 절구를 찧었습니다.


  세월호라는 배가 가라앉아 수많은 아이들이 죽고 말았지요.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른들은 우리 삶과 삶터를 어떻게 다시 지어야 할까요. 우리 아이들을 대학입시로 똑같이 밀어넣어야 할까요. 세월호에서 빠져나와 살아남은 아이들한테 다시 교과서를 외우도록 하고 대학입시만 살피도록 해야 할까요.


  씨앗을 심는 손길을 돌아보고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한발 물러서서 참모습을 읽고 참삶을 가꾸는 길로 걸어갈 수 있기를 빌어요. 한발 물러서는 까닭은 두발 앞으로 나오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발 물러나는 까닭은 앞으로 한결같이 씩씩하게 걸어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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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4-04-29 05:14   좋아요 0 | URL
글이라는 게 한 허리를 베어쓰면 독해지는 것 같아요...독은 베는 칼에 묻은 것일 텐데요...

파란놀 2014-04-29 06:40   좋아요 0 | URL
허리란 무엇이고
독이란 무엇일까요.

글이든 삶이든 사랑이든 사람이든
누구나 스스로 읽으려 하는 만큼 읽고
마주하려 하는 만큼 마주하며
받아들여 살아내려 하는 만큼 받아들여 살아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