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밝히는 빛



  숲은 나무와 풀이 있어 빛납니다. 숲은 나무와 풀이 나란히 있기에 빛납니다. 나무만 있는 숲은 없습니다. 풀만 있는 숲도 없습니다. 나무는 풀을 부르고, 풀은 나무를 부릅니다. 모름지기 숲이란 나무와 풀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사랑스럽게 빛나는 터전입니다.


  책방은 책과 사람이 있어 빛납니다. 책방은 책과 사람이 함께 있기에 빛납니다. 책만 있는 책방은 없습니다. 사람만 있는 책방도 없습니다. 책은 사람을 부르고, 사람은 책을 부릅니다. 그러니까 책방이란 책과 사람이 살가이 얼싸안으면서 사랑스럽게 빛나는 쉼터입니다.


  책빛이 알록달록합니다. 이 책은 이 책대로 밝고 저 책은 저 책대로 환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곳에서 즐겁게 살아오며 일군 땀방울과 웃음과 눈물이 책마다 그득 깃듭니다. 어느 책은 노랗게 빛납니다. 어느 책은 빨갛게 빛납니다. 어느 책은 푸르고, 어느 책은 파랗습니다. 어느 책은 까맣고, 어느 책은 잿빛입니다. 까만 빛깔이라 어둡지 않습니다. 하얀 빛깔이라 밝지 않습니다. 책에 담은 이야기가 밝을 때에 밝은 책이요, 책에 실은 이야기가 어두울 때에 어두운 책입니다. 그러나, 해가 지면 어둠이요, 해가 뜨면 아침이듯, 책에 어두운 이야기가 감돈다 하더라도 이 어둠이 밝히고 싶은 빛이 있으리라 느껴요. 책에 서린 밝은 이야기가 어루만지고 싶은 어둠이 있으리라 느낍니다.


  나무가 풀을 아끼고, 책이 사람을 아낍니다. 풀이 나무를 살리고, 사람이 책을 살립니다. 서로 아름답게 길동무가 되고 삶벗이 됩니다.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가 싱그럽게 웃습니다. 책 한 권과 사람 하나 맑게 노래합니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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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2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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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30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든 아이가 예쁘다. 노는 아이가 예쁘다. 노래하는 아이가 예쁘다. 뛰고 달리는 아이가 예쁘다. 밥을 먹는 아이가 예쁘다. 이 예쁜 빛은 어디에서 태어났을까. 이 예쁜 빛은 앞으로 언제까지 환하게 빛날까. 우리 아이한테서만 느끼는 예쁜 빛은 아니라고 느낀다. 모든 아이한테서 느낄 예쁜 빛이리라 느낀다. 아이들마다 가슴속에서 숨쉬는 빛이요,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는 동안 차츰차츰 새롭게 터져나올 빛이리라고 본다. 즐거운 빛이 자라고, 고운 빛이 깨어난다. 어느 빛은 웃음꽃이 된다. 어느 꽃은 눈물나무가 된다. 모두 우리 가슴속에서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새 하루를 기다린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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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 숨어 사는 것들
이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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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순정만화 1
나카무라 아스미코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36



같은 길에 선 다른 삶

― 철도순정만화

 나카무라 아스미코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1.12.25.



  다 다른 사람들이 같은 도시에 모여서 같은 버스와 전철을 탑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같은 버스와 전철을 타고 같은 회사나 학교에 갑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거나 같은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받습니다.


  다 같은 일을 하는 다 다른 사람들은 회사를 마치고 무엇을 할까요. 다 같은 수업을 받는 다 다른 사람들은 수업이나 학교를 마치고 무엇을 할까요. 다 다른 사람들은 왜 다 같은 곳에서 살아가려 하고, 다 같은 일자리를 얻으려 겨루며, 다 같은 자가용이나 버스나 전철을 타려 할까요.



- “고양이가 아파서 병원에 다녔던 건 알아? 지난주 내가 감기에 걸려 고열에 쓰러지기까지 했던 건 알아? 당신, 우리 집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잖아. 집에 와도 ‘아아’ ‘으으’ 앓는 소리가 고작이고, ‘나 왔어’ 하고 인사 한마디 안 해. … 우리 요즘 눈 마주치며 얘기한 적 있어? 난 대체 뭣 때문에 당신과 결혼한 거지? 난 가정부가 아니야! 당신 엄마도 아니야! 이런 식으로 당신 편할 대로 부려먹기만 하는 거 더는 지겨워서 못하겠어!” “내가 먹여 살리는데…….” (25쪽)



  예부터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보금자리를 가꾸었습니다. 옛날에 살던 사람들은 똑같은 집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집을 다 다르게 지었고, 다 다른 사람이 살아가기에 알맞도록 다 달리 가꾸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땅을 일구었고, 다 다른 땅에서 다 다른 씨앗을 심었습니다. 집안마다 갈무리한 씨앗이 달랐고, 집집마다 씨뿌리기가 달랐어요.


  옛날에는 똑같은 부엌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다 다른 부엌이었고,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지게를 짊어지고 다 다른 멧골로 들어가서 다 다른 땔감을 그러모았어요. 다 다른 살림집마다 다 다르게 불을 지폈고, 다 다르게 밥을 지어서, 다 다른 밥상에 수저를 얹고 먹었어요.


  공산품이 없던 옛날이니 다 다를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은 어디에나 공산품이니 다 같을밖에 없습니다. 전기밥솥도 같고 냉장고도 같습니다. 텔레비전도 같고 자가용도 같습니다. 옛날에는 고장과 고을뿐 아니라 마을마다 말이 달랐고, 집마다 말이 또 달랐어요. 그러나 이제는 고장과 고을과 마을에서 쓰는 말이 거의 똑같습니다. 집집마다 다른 말씨는 자취를 감춥니다. 영화와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인터넷은 모든 사람들 넋과 얼을 똑같은 틀로 짜맞춥니다.





- “고토 군을 좋아했던 것 같아! 그런데 제풀에 혼자 포기해 버린 거야! 게다가 닛타 군은 좋은 사람이라, 내게 사귀자고 말해 줬을 때 기뻤거든! 하지만 한 달 전쯤 독일 이민이 결정되면서, 그러면서, 나 정말 못된 아이지만, 이제 마지막이고 하니, 내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60쪽)

- “글쎄, 힘든 건 다 힘들지 않나?”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그냥 평범한 거 아닌가?” (89쪽)



  나카무라 아스미코 님이 빚은 만화책 《철도순정만화》(시리얼,2011)를 읽습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다릅니다. 그러나 다 같은 자리, 철도에서 만나고 스칩니다. 그런데, 다 다른 사람들이 복닥이는 이야기라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사람이 어제 본 그 사람이요, 예전에 마주치던 그 사람이 오늘 새로운 사랑을 속삭이는 짝꿍이 됩니다.


  같은 길에 선 다른 삶인데, 다른 길에서 만나는 같은 삶이 됩니다. 같은 길에 서며 걷던 다른 사랑인데, 다른 길에서 만나는 같은 사랑이 됩니다.




- “바꿔 탈 순 없나요? 이쪽 열차는 산으로 가지만, 저쪽 열차는 바다로 가거든요.” (102∼103쪽)

- “아마 저 아이에겐,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일 거예요.” (146쪽)



  바다로 가면 바다에서 즐겁습니다. 멧골로 가면 멧골에서 즐겁습니다. 시골에 가면 시골에서 즐거워요. 도시에 가면? 도시에서는 도시대로 즐겁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즐겁게 살아가는 숨결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넋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합니다. 다 다른 노래를 불러요. 그런데 다 다른 노래를 함께 부르니, 다 다른 목소리와 숨결이 한 동아리가 됩니다. 한마음이 되고 한몸이 되어요.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 같은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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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놀이 2 - 둘이 함께 타기



  그네걸상을 본 큰아이가 그네걸상으로 달려간다. “이야, 그네 타야지! 아버지 밀어 주셔요!” 요즈음 놀이터에서 그네를 보기 어렵다. 그네가 위험할 일은 없을 텐데, 아이들은 그네를 모르며 자란다. 위험하다면 자동차가 가장 위험하지 않겠는가. 농약이 위험하지 않은가. 아무튼, 두 아이는 그네를 스스로 밀면서, 또 내 힘을 받아 그네를 흔들면서 논다. 저녁빛이 드리운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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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queSong 2014-04-30 14:11   좋아요 0 | URL
귀욤귀욤귀욤

파란놀 2014-04-30 18:01   좋아요 0 | URL
네, 아주 귀엽답니다~

UniqueSong 2014-04-30 14:59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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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풀꽃 책읽기



  국민학교 다니던 1980년대에 동무들과 놀며 ‘이름 말하기 내기’를 곧잘 했다. 동네나 나무나 영화나 만화 같은 이름을 하나씩 들기도 하고, 나라나 고장 같은 이름을 하나씩 들기도 한다. 가끔 꽃이름 대기를 겨루기도 했는데, 이렇게 꽃이름을 하나하나 서로 들다 보니,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구나 하고 느꼈고, 이름뿐 아니라 생김새를 제대로 떠올리지도 못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참 창피했다.


  그렇지만,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꽃이름을 모른대서 깔보거나 나무라는 동무나 이웃이나 어른을 못 보았다.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고 그만둘 적에도 꽃이름이나 풀이름을 모른대서 혀를 끌끌 차는 교수나 어른이나 이웃을 못 보았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요즈막에도 꽃이나 풀이나 나무에 붙은 오래된 이름을 모른대서 뒷통수를 긁적이거나 쓸쓸해 하는 이웃이나 어른을 못 본다.


  무척 궁금하다. 우리는 꽃도 풀도 나무도 모르는 채 살아갈 수 있을까. 능금을 먹으면서 능금꽃을 몰라도 될까. 배를 먹으면서 배꽃을 몰라도 될까. 딸기를 먹으면서 딸기꽃을 몰라도 될까. 콩을 먹으면서 콩꽃을 몰라도 될까. 밥을 먹으면서 벼꽃을 몰라도 될까. 밀꽃이나 보리꽃을 아는 이는 몇이나 있을까.


  시골로 마실을 오는 손님 가운데에는 토끼풀꽃을 모르는 분이 가끔 있다. 도시로 마실을 가서 만난 분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골목이나 길 한쪽에 피어난 토끼풀꽃을 보고는 “어머나, 이 구석지고 시끄러운 찻길 한복판에 토끼풀꽃이 피었네.” 하고 놀라면 “어디에 있어요?” 하면서 토끼풀꽃이 어떻게 생긴 줄 모르기 일쑤이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는 짐승을 키운다는 사육장이 있었고, 사육장에는 거위와 칠면조와 닭과 토끼가 있었다. 풀 먹는 짐승한테 주려고 토끼풀을 잔뜩 뜯곤 했다. 어린 나날을 도시에서 보냈어도 토끼풀은 참 자주 마주하고 자주 뜯으면서 풀내음을 맡고 꽃빛을 누렸다. 아주 넓게 무리짓기도 하지만, 조그맣게 무리짓는 토끼풀밭을 볼 때면, 또 토끼풀꽃잔치를 볼 때면, 괜히 웃음이 난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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