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닿는 책내음



  손에 닿는 책내음을 맡는다. 갓 나온 책은 빳빳한 종이결에다가 잉크가 채 마르지 않았네 하는 느낌을 받는다. 꽤 예전에 나온 책은 그동안 내려앉은 먼지에다가 종이결이 찬찬히 삭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헌책은 책먼지가 많다며 내키지 않다 말하는 이들이 많으나, 새책에도 책먼지가 많다. 배본소에서 책을 나르는 일꾼은 입가리개와 실장갑과 앞치마를 갖춘 매무새로 새책을 만지는데, 한두 시간 일하다가 숨을 돌리려 바깥으로 나오면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된다. 배본소는 늘 ‘새책이 내뿜는 뽀얀 책먼지’로 하얗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먼지가 나오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숲에서 나무를 베어 종이를 얻는 사람들은 책을 만들면서 먼지를 함께 내놓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먼지가 있을밖에 없을까.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먼지가 늘 있을밖에 없는가.


  돌이켜보면 흙으로 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은 먼지를 일으키지 않았다. 흙집에는 흙이 있을 뿐이었다. 문명을 세우고 문화를 누리는 사회에서 먼지가 나오고 쓰레기가 불거진다. 온갖 기계와 시설이 들어서는 곳에서 먼지와 쓰레기가 태어난다. 흙에서는 먼지도 쓰레기도 태어나지 않는다. 흙에서는 흙이 태어나 흙이 더 정갈하며 기름지고 고소하게 거듭난다.


  손에 닿는 책내음을 마신다. 부디 이 책에는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꿈이 깃들어, 이 책내음을 마시는 아이도 어른도 서로 아름다이 아끼고 즐겁게 놀며 사랑스레 어우러질 수 있는 빛을 얻기를 바란다.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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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37. 2014.4.18. 손 옆에 손



  일곱 살 책순이 소리내어 책을 읽는다. 일곱 살 아이는 글을 깨치는 즐거움을 누리려고 소리내어 읽는다. 누나가 책 읽는 소리를 들은 네 살 동생은 어느새 누나 옆에 달라붙는다. 저도 읽겠다며 달라붙지만 저는 글을 모른다. 누나 옆에서 시늉을 할 뿐이다. 그리고, 저는 글을 못 읽으니 책종이라도 만지면서 넘기겠다면서 책을 자꾸 거꾸로 넘기려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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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36. 2014.4.8. 팥빵을 쥐는 책



  팥빵을 좋아하는 도라에몽이 나오는 만화책을 쥔 아이가 팥빵을 다른 손에 쥔다. 팥빵을 손에 쥐어야 도라에몽 만화책이 더 재미있겠구나. 밥상맡에서 책을 보는데 밥상에 놓은 풀도 한 줌 함께 쥐면 어떻겠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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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29] 마음자리



  즐거운 날에 새롭게 웃고

  고단한 날에 다시 노래해

  언제나 따사롭게 사랑하지.



  즐거울 적에 쓰는 글은 나중에 지칠 적에 읽으면서 새롭게 웃는 힘이 됩니다. 고단할 적에 쓰는 글은 나중에 까마득할 적에 읽으면서 다시 눈을 뜨도록 합니다. 아플 적에 쓰는 글은 나중에 또 아플 적에 읽으면서 천천히 일어나도록 돕습니다. 마음자리를 따사롭게 보듬는 이야기는 언제나 스스로 남깁니다. 마음자리를 괴롭히거나 들볶는 이야기 또한 언제나 스스로 남깁니다. 하루하루 새 빛을 고운 씨앗으로 심을 수 있습니다.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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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안양시 덕천마을 재개발 모습을 다룬 사진책 《HUMAN》을 본다. 재개발이 한창 이루어지는 모습을 담은 사진책이다. 집이 헐리고 동네가 사라지는 동안에도 마지막까지 조용히 깃들어 지내는 사람들이 있고, 사진책 《HUMAN》은 이런 모습과 저런 모습을 고즈넉하게 보여준다. 빈집을 찍어도 빈집에 깃들어 오래오래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가 깃들기 마련이다. 아주 마땅하다. 그런데, 사진책 《HUMAN》은 살짝 거리가 있지 싶다. 사진을 찍은 분은 덕천마을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을까. 덕천마을에서 나고 자랐는가 아닌가는 대수롭지 않다. 덕천마을을 얼마나 이녁 삶자리나 보금자리로 느끼거나 여기거나 맞아들이면서 사진을 찍었을까. 사진을 찍은 김야원 님은 김야원 님 나름대로 덕천마을과 사귀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느낀다. 흑백으로 담은 사진은 차갑지도 메마르지도 않다. 그러나 따스하거나 포근한 기운까지 스미지는 못한다고 느낀다. 곱게 찍은 사진이로구나 하고 느끼면서도 따스한 기운은 잘 못 느끼겠다. 작은 사람들이 살던 작은 동네에 있던 작은 집이란 무엇일까. 더 작게 마주하고,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쓰다듬을 때에, 더 자그마한 빛이 샘솟는 이야기가 흐르리라 본다. 골목빨래는 흑백사진으로 찍을 수도 있지만, 무지개빛이 눈부신 사진으로 찍을 때에 한결 맑다. 골목꽃 또한 흑백사진으로 찍을 수도 있으나, 무지개빛이 어여쁜 사진으로 찍을 적에 한결 밝다. 처음부터 모든 사진을 흑백 아닌 무지개빛으로 찍었으면, 덕천마을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나눌 만한가를 더 또렷하게 찾지 않았을까? 골목집 문패와 골목집 누름단추와 골목집 대문·창문 문살은 한 장도 못 찍은 모습이 무척 아쉽다.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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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김야원 사진 / 이담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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