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벼리야 무엇을 보니



  5월 1일에는 학교를 쉬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안 쉰다. 그렇구나, 안 쉬는구나. 시골에서는 안 쉬나 하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뭐 괜찮겠지 하고 새롭게 생각한다. 노동절에도 학교를 쉬지 않으니 학교 놀이터에 괜히 들어왔나 하고 여기다가도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리 뛰고 저리 달리니 눌러앉기로 한다. 운동장과 놀이터에 아무도 없다가, 우리 두 아이가 놀이터에서 까르르 떠들며 노니,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달려 나온다. 놀이동무가 나타나서 무척 반가운 듯하다. 우리 두 아이는 미끄럼을 타다가 아이들 무리와 휩쓸리지 않으려고 이쪽으로 가고 저쪽으로 간다. 다른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름벼리야 무엇을 보니. 유치원 아이 가운데 가장 크다 싶은 아이가 사름벼리한테 다가와 이름과 나이를 묻는다. “나랑 같네. 나도 일곱 살이야. 동생은?” “산들보라는 네 살이야.” “그래, 우리 같이 놀자.” 30초 또는 1분 즈음 두 아이가 따로 떨어져서 지켜보다가 너덧 아이들 무리하고 섞인다. 이러고 나서 유치원 종이 울려 모두 돌아가기까지 한 시간 반을 복닥복닥 재미나게 논다. 4347.5.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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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시소 타니 좋아



  풍남초등학교 부속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노니, 여럿이 시소를 탄다. 어린 아이들은 서로서로 아끼면서 함께 탄다. 무엇보다 어린 동생을 아끼는 모습이 새롭다. 먼발치에서 떨어져 물끄러미 지켜본다. 아이들끼리 놀도록 하고 나는 혼자서 책을 펼친다. 까르르 터지는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퍼진다. 집도 마을도 학교도 이렇게 ‘노는 아이 웃음’이 있을 적에 싱그럽구나 싶다. 4347.5.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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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5-03 10:27   좋아요 0 | URL
아유~ 산들보라가 누나들과 참 즐겁게 노네요~
그렇지요. 어린 아이들은 서로서로 아끼면서 잘 놀지요!

파란놀 2014-05-03 10:35   좋아요 0 | URL
꼭 시골아이가
동생을 더 잘 아낀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마을마다 문화와 삶이 많이 다르지 싶고,
이 아이들 어버이가 어떻게 지내느냐도
크게 영향을 끼치지 싶어요.

자전거로 50분 달려갔다가
50분 달려서 돌아오는 거리에 있는
이웃 면소재지 초등학교라
자주 가기는 힘들지만,
그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놀게 하도록
곧잘 마실을 가야지 싶습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882) 존재 3 : 육체만 지닌 존재에 불과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육체와 영혼을 지닌 존재다. 당신이 스스로를 육체만 지닌 존재에 불과하다고 믿는다면, 이 책을 내려놓고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하라 …… 하지만 당신이 육체만 지닌 존재로 산다는 것은 인간이 의미를 부여한 것 이외의 모든 것들, 즉

《로리 팰라트닉,밥 버그/김재홍 옮김-험담》(씨앗을뿌리는사람,2003) 26쪽


 인간은 육체와 영혼을 지닌 존재다

→ 사람은 몸과 마음이 있는 숨결이다

→ 사람은 몸과 마음이 있는 목숨이다

→ 사람은 몸과 마음이 있다

→ 사람은 몸과 넋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체만 지닌 존재에 불과하다고

→ 몸만 있다고

→ 몸뚱이만 있다고

→ 몸뚱이뿐이라고

 육체만 지닌 존재로 산다는 것은

→ 몸만 있는 채 산다는 이야기는

→ 몸만으로 산다고 한다면

→ 몸 하나로만 살겠다면

 …



  ‘존재’라는 낱말을 잇달아 씁니다. 사람을 다른 낱말로 가리키려다가 그만 ‘존재’라는 낱말만 쓰고 말았구나 싶습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숨결’이나 ‘목숨’이라는 낱말을 넣으면 됩니다. 또는 ‘존재’라는 낱말을 덜고 단출하게 쓰면 돼요. 4338.1.1.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잘 알다시피 사람은 몸과 마음이 있다. 이녁이 스스로를 몸뚱이뿐이라고 믿는다면, 이 책을 내려놓고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라 … 그렇지만 이녁이 몸만으로 산다고 한다면 사람이 뜻을 매기지 않은 모든 것들, 곧


‘주지(周知)하다시피’는 ‘다 알다시피’나 ‘모두 알다시피’로 손봅니다.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다듬고, ‘육체(肉體)’는 ‘몸’이나 ‘몸뚱이’로 다듬으며, ‘영혼(靈魂)’은 ‘넋’이나 ‘마음’으로 다듬습니다. ‘불과(不過)하다고’는 ‘지나지 않는다고’나 ‘-일 뿐이라고’로 손보고, ‘하지만’은 ‘그렇지만’으로 손봅니다. “산다는 것은”은 “산다고 한다면”이나 “산다는 이야기는”으로 손질하고, “의미(意味)를 부여(附與)한 이외(以外)의 모든 것들”은 “뜻을 매기지 않은 모든 것들”이나 “뜻을 붙이지 않은 모두”로 손질하며, ‘즉(卽)’은 ‘곧’으로 손질해 줍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871) 존재 2 : 인류의 생명은 존재하고


삼라만상의 생물과 무생물의 상호 연쇄 속에서 인류의 생명은 존재하고, 따라서 거기에 우리가 속해 있다는 자각은 언뜻 보기에는 우리가 이제까지 죽기로 찾아온 자유라는 가치관과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야마오 산세이/이반 옮김-여기에 사는 즐거움》(도솔,2002) 266쪽


 인류의 생명은 존재하고

→ 우리 목숨도 있고

→ 사람도 살아가고

 …


  사람끼리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밥은 곡식일 수 있고 다른 짐승 살코기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옷을 지어서 입고 연장을 만들어서 쓰며 집을 세워서 살아갑니다. 이리하여, 사람들 삶은 “온누리 모든 생물과 무생물하고 함께 있어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이와 같은 뜻을 살리면서 ‘존재’를 풀어내면, “온누리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서로 얽히는 곳에서 사람이 함께 목숨을 이어가고”로 다시 쓸 수 있습니다. 뜻과 느낌을 찬찬히 살리면서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나 “사람이 살아갈 수 있고”로 적어 보아도 됩니다. 4337.12.17.쇠./4341.5.27.불.고쳐씀.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온누리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서로 얽히는 곳에서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따라서 거기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깨달음은 언뜻 보기에도 우리가 이제까지 죽기로 찾아온 자유라는 생각과는 어긋나는 듯 보일지 모르지만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생물(生物)과 무생물(無生物)의 상호(相互) 연쇄(連鎖) 속에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생각해 봅니다. ‘삼라만상’이란 “우주에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 보기글처럼 적으면 겹치기가 되겠군요. “삼라만상이 서로 이어지는 곳에”나 “온누리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서로 얽히는 곳에”쯤으로 다듬어 줍니다. “인류(人類)의 생명(生命)”은 “우리 목숨”이나 “사람들 목숨”으로 손질합니다. “속(屬)해 있다”는 “깃들었다”나 “함께 있다”로 손보고, ‘자각(自覺)’은 ‘깨달음’으로 손봅니다. “상반(相反)되는 것처럼”은 “어긋나는 듯”이나 “거꾸로인 듯”으로 고쳐 봅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927) 존재 4 : 아들의 존재 이유, 아이의 존재

바로 그 점을 확인해 본다면 거기에서 아들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내 자신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점에서 아이의 존재는 내게 확실히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기류 유미코/송태욱 옮김-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샨티,2005) 16쪽

 아들의 존재 이유를
→ 아들이 있는 까닭을
→ 아들이 살아가는 까닭을
→ 아들이 왜 있는가를
→ 아들이 세상에 나온 까닭을
→ 아들이 왜 태어났는지를
 …


  일본책을 꽤 많이 옮기는 한국입니다. 읽힐 만한 책이 많으니 많이 옮긴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일본책을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 가운데 ‘한국말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일본말뿐 아니라 한국말을 슬기롭고 아름다우면서 알차게 배운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번역은 ‘한국말로 옮기려고 하는 책이 나온 나라에서 쓰는 말’만 잘한다고 해서 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라밖 말과 문화를 골고루 헤아리는 한편, 나라밖 사회와 사람도 찬찬히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나라밖 사람들이 즐겁게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나라안(한국) 사람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로 다듬어 낼 수 있을 만큼 ‘한국말과 문화’를 깊이 익히면서 알아야 합니다.

 아이의 존재는
→ 아이는
→ 아이가 있어서
 …

  오늘날 우리 삶터를 보면, 아주 어린 아이들한테까지 미국말을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아주 어린 아이들한테 한국말이 어떤 말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 말이고 누구와 나누는 말인가를 제대로 가르치는 얼거리나 틀거리는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미국에서 영어를 쓰는 원어민 강사’를 큰돈 들여서 모실 줄은 알지만, ‘아이들이 날마다 쓰는 한국말을 올바르고 알맞고 살갑게’ 쓰도록 가르칠 ‘한국말 교사’는 모실 줄 모릅니다.

  한글을 뗀다고 한국말을 할 줄 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책을 읽을 줄 안다고 한국말을 제대로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참고서와 교과서를 보고 배울 수 있다고 해서 한국말을 잘 하는 아이가 되지 않아요. 영어를 아무리 잘 한들, 이렇게 ‘잘 하는 영어를 한국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옮기지 못한다’면 거의 쓸모가 없어요.

  문학을 하든 예술을 하든 번역을 하든 학문을 하든 정치를 하든 경제를 하든 과학을 하든 뭐를 하든,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한국말을 ‘잘’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살아가려는 사람은 미국말을 잘해야 합니다. 일본에서 살아갈 꿈을 키운다면 일본말을 잘 하려고 땀흘리겠지요.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국말을 잘 할 수 있기를 빕니다. 외국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사람들이 한국말을 날마다 새롭게 익힐 수 있기를 빕니다. 4338.4.30.흙.처음 씀/4341.7.28.달.고쳐씀.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바로 그 대목을 알아본다면 거기에서 아들이 왜 태어났는지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나한테 눈길을 거의 안 두다시피 했다는 대목에서 아이는 내게 틀림없이 큰 갈림길이 되었다

“그 점(點)을 확인(確認)해 본다면”은 “그 대목을 알아본다면”으로 다듬고,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다듬습니다. “내 자신에 대(對)해”는 “나한테”나 “나라는 사람을”이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로 손보고, “관심(關心)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점(點)에서”는 “눈길을 거의 안 두다시피 했다는 대목에서”나 “거의 돌아보지 않다시피 했다는 대목에서”로 손보며, ‘확실(確實)히’는 ‘뚜렷이’나 ‘틀림없이’로 손봅니다. “하나의 전환점(轉換點)이 되었다”는 “큰 갈림길이 되었다”나 “어떤 징검다리가 되었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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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804) 존재 1 : 전쟁 장사라는 것도 존재


전쟁은 이타적인 이유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쟁은 대개 주도권 다툼이나 비즈니스 때문에 일어납니다. 물론, 전쟁 장사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아룬다티 로이/박혜영 옮김-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2004) 81쪽


  한자말 ‘존재(存在)’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섯 가지로 풀이합니다. “(1) 현실에 실제로 있음 (2)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 만한 두드러진 품위나 처지 (3) (철학)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외계(外界)에 객관적으로 실재함 (4) (철학) 형이상학적 의미로, 현상 변화의 기반이 되는 근원적인 실재 (5)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객관적인 물질의 세계. 실재보다 추상적이고 넓은 개념이다” 보기글은 다섯 가지 나옵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악명 높은 존재

 독보적인 존재

 무시하지 못할 존재가 되었다


  ‘존재’와 비슷하게 쓰는 다른 한자말 가운데 ‘실존(實存)’이 있는데, 이 낱말은 “(1) 실제로 존재함 (2) (철학) 사물의 본질이 아닌, 그 사물이 존재하는 그 자체. 스콜라 철학에서는 가능적 존재인 본질에 대하여 현실적 존재를 뜻한다 (3) (철학) 실존 철학에서, 개별자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각적으로 물으면서 존재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상태”를 뜻한다고 해요.


  다른 한자말 ‘실재(實在)’는 “(1) 실제로 존재함 (2)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 세계 (3) (철학) 관념론에서, 사물의 본질적 존재”를 뜻한다고 해요.


  ‘존재’를 다루는 한국말사전은 ‘실재’를 빌어 풀이합니다. 그런데 ‘실재’는 “실제로 존재함”을 뜻한다고 적어요. 그러면, 두 낱말은 어떻게 생각하거나 알아야 할까요. ‘실존’이라는 낱말은 또 어떻게 살피거나 헤아려야 할까요. “실제로 있음”을 가리키는 ‘존재’이니, “실제로 존재함”이란 “실제로 실제로 있음”인 셈인지요.


 전쟁 장사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 전쟁 장사라는 것도 있습니다

→ 전쟁 장사도 있습니다

→ 전쟁 장사꾼도 있습니다

→ 전쟁을 장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전쟁을 장사하기도 합니다

 …



  있으니 ‘있다’고 말합니다. 없으니 ‘없다’고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이고 없는 그대로입니다. 느끼는 그대로이고 보는 그대로입니다. 우리 말뿐 아니라 온누리 어느 나라 말도 모두, 있는 그대로 말하고 듣는 그대로 적습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다

→ 신이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다

→ 신이 있다고 받아들이지 않다

→ 신은 있지 않다고 생각하다

→ 신은 없다고 생각하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 사람은 사회에서 살아간다

→ 사람은 사회를 이루며 산다

 …


  외국말로 된 책을 한국말을 옮기는 자리에서 생각해 봅니다. 한국말 ‘있다’를 어떤 낱말로 옮겨야 할까요. 한자말 ‘존재’는 어떤 낱말로 옮겨야 할까요. 두 가지 낱말은 다른 낱말로 옮겨야 할까요, 같은 낱말로 옮겨야 할까요. “하느님이 있다”와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다른 낱말로 옮겨야 하나요.


 악명 높은 존재

→ 악명 높은 사람

→ 끔찍하다는 사람

→ 끔찍한 이름이 높은 사람

 독보적인 존재

→ 남보다 앞선 사람

→ 도드라지게 뛰어난 사람

→ 매우 뛰어난 사람

 …


  ‘존재’라는 낱말을 쓴 자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이라고 말할 자리에 흔히 끼어듭니다. 아니, 사람이니까 ‘사람’이라고 말하면 되는데, 구태여 ‘존재’라고 가리키는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왜 사람을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하나요. 우리는 왜 사람을 ‘존재’라고 가리켜야 하나요. 사람을 ‘사람’이라고 가리키면 어딘가 안 어울린다고 느끼나요. 어딘가 어설프거나 뭔가 안 들어맞는가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 ‘사람’이라는 낱말을 못 쓰지 않나 궁금합니다. 우리 삶터를 ‘있는’ 그대로 껴안지 못하니 말과 글도 ‘있는’ 그대로 못 쓰지 않나 궁금합니다. 스스로 얼과 넋을 알뜰히 가꾸는 마음씨가 옅으니, 말과 글을 알맞춤하게 쓰는 매무새조차 잃지 않나 궁금합니다.


 무시하지 못할 존재

→ 얕잡을 수 없는 사람

→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

 …


  철학을 하건 사상을 하건 언론을 하건 문학을 하건 교육을 하건 예술을 하건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삶을 가꾸면서 일을 하고 놀이를 즐깁니다. ‘존재’라는 한자말을 쓴다고, 또 ‘실존’이라는 한자말을 쓴다고, 여기에다가 ‘실재’라는 한자말을 쓴다고 철학이 더 깊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한자말 때문에 사상이 더 넓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한자말을 써야 문학이 더 맛깔스럽지 않아요.


  학문을 살리고 마을을 살리며 넋과 사랑과 꿈을 살리는 자리를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4337.7.7.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전쟁은 남을 사랑할 때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쟁은 으레 주도권 다툼이나 돈벌이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전쟁 장사라는 짓도 있습니다


“이타적(利他的)인 이유(理由)로”는 “남을 사랑해서”나 “남을 사랑할 때”로 다듬습니다. ‘대개(大槪)’는 ‘거의’나 ‘으레’로 손질하고, ‘비즈니스(business)’는 ‘장사’나 ‘돈벌이’로 손질합니다. ‘물론(勿論)’은 ‘다들 알겠지만’이나 ‘그리고’로 고쳐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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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지지율 40%’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40% 언저리로 곤두박질’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곤두박질인가? 궁금하다. 어떻게 ‘아직도 40%나 되는 지지율’을 받을 수 있을까. 이 모양으로 하는 데에도 ‘아직까지 잘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40%나 있다’는 대목이 놀랍기도 하다. 한국은 민주공화국이니 억지로 ‘100%’를 만들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녀린 죽음 앞에서도 ‘지지와 만세’를 보내는 ‘40%’는 누구인가. 한국은 두 나라인가 한 나라인가. 4347.5.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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