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일상을 깨우는 바로 그 순간의 기록들
조던 매터 지음, 이선혜.김은주 옮김 / 시공아트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72



삶은 언제나 재미난 춤사위

―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조던 매터 사진

 이선혜, 김은주 옮김

 시공아트 펴냄, 2013.4.15.



  우리 삶은 언제나 춤입니다. 우리 삶은 누구나 춤입니다. 언제나 춤사위처럼 움직이는 삶이고, 누구나 춤사위처럼 홀가분하게 노래하는 삶입니다. 직업이 춤꾼이어야 춤을 추지 않습니다. 대단한 스승한테서 배워야 춤을 잘 추지 않습니다. 인간문화재가 되어야 춤을 출 만하지 않습니다. 예부터 고이 물려받으면서 이은 춤사위란 여느 마을 여느 집 여느 사람이 누리던 춤입니다.


  즐겁기에 어깨춤을 춥니다. 즐거우니 발짓으로 춤을 춥니다. 빙그레 짓는 웃음이 바로 웃음춤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몸이 가볍게 움직입니다. 노래춤이에요.


  글을 쓰는 사람은 춤을 추듯이 글을 써요. 글춤이라 할까요. 이와 같이, 그림춤과 사진춤이 있습니다. 이야기춤이 있으며, 빨래춤과 밥춤과 청소춤이 있을 테지요.


  조던 매터 님은 ‘전문 춤꾼’을 한 사람씩 만나면서 ‘여느 삶’에서 아름다운 춤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다만, 춤옷을 입지 않습니다. 삶옷, 그러니까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고 입는 옷차림으로 여느 자리에서 즐겁게 추는 춤사위를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줘요.


  조던 매터 님은 처음에는 ‘뉴욕에서만’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아마 뉴욕에서만 찍은 사진들은 무척 놀랍거나 재미있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뉴욕에서만 찍은 사진으로는 ‘우리 삶’을 보여주기에 넉넉하지 못해요. 뉴욕에도 사람이 많고, 이야기가 많으며, 사랑과 노래가 흐릅니다. 뉴욕에서 찍은 사진으로만 사진책을 엮지 못하란 법은 없어요. 뉴욕에도 온갖 사람이 골고루 살아가니, 뉴욕에서 만난 온갖 사람을 보여줄 만합니다. 뉴욕에서도 텃밭을 찾을 수 있을 테고, 뉴욕에서도 큰 집과 작은 집을 찾을 수 있을 테며, 뉴욕에서도 아기 낳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찾을 수 있어요.






  한국말로는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시공아트,2013)으로 나온 사진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조던 매터 님이 뉴욕을 벗어나 드넓은 숲과 들과 바다와 물줄기를 마주하면서 담은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뉴욕에서 바라본 삶은 뉴욕이 우주가 됩니다. 뉴욕을 벗어나서 바라본 삶은 지구별을 우주로 삼습니다. 그리고, 우주 가운데에 있는 지구별을 보여주고, 지구별에서 저마다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나는 아이와 노는 동안, 내 아들의 눈에 투영된 세상을 보여주는 사진 작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8쪽).”와 같은 마음이면 됩니다. 사진책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에는 춤꾼들이 춤을 추는 멋진 빛이 흐르는데, 굳이 춤꾼을 찍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찰칵 하고 한 장 담아 보셔요. 아이들 몸짓은 언제나 춤짓입니다. 아이들 목소리는 언제나 노래입니다. 아이들 얼굴은 언제나 웃음입니다. 아이들 말은 언제나 이야기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어떠한가요. 우리 어른도 몸짓이 언제나 춤짓으로 이어지는가요. 우리 어른도 목소리가 언제나 노래로 흐르는가요. 우리 어른도 얼굴은 언제나 웃음이면서, 말이 언제나 이야기처럼 곱게 퍼지는가요.


  춤꾼을 찍은 사진이기에 춤사위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춤꾼도 사람입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사랑을 속삭여요. 아이를 낳고 아이와 어울리며 나들이를 다닙니다. 춤꾼이 보여주는 새삼스럽고 남다른 춤사위가 있다면, 춤꾼이 아닌 우리들은 우리 삶에서 어떤 춤사위로 스스로 즐겁게 웃거나 노래할까요.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촬영 당시에 이러한 상황에서 점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223쪽).” 하고 조던 매터 님은 말합니다만, 춤꾼은 어려운 몸짓을 스스로 해내면서 즐겁습니다. 어버이는 아기 똥기저귀를 치우고 아기를 살살 달래며 자장노래 불러서 재우면서 즐겁습니다. 젖떼기밥을 끓여서 먹이면서 즐거운 어버이입니다. 아이가 아프면 밤잠을 잊으면서 아이를 돌보지요. 춤꾼이 대단한 춤사위를 선보이려고 여러 시간 수없이 뛰고 다시 뛰듯이, 여느 보금자리에서 여느 어버이는 하루이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밤을 새면서 아이를 돌봅니다. 아이뿐 아니라 늙은 어버이도 돌보지요.






  밥을 짓는 손길이 곧 춤사위입니다. 천을 물로 적셔서 이마에 얹는 손길이 곧 춤사위입니다. 빨래를 해서 너는 손길이 곧 춤사위입니다. 아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살포시 안는 손길이 곧 춤사위입니다.


  “나는 묘비 위에 축 늘어져 있는 클로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동안 창조적인 작업 과정이 주는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사진은 나를 보호해 주는 담요와도 같다. 그날 밤, 나는 호텔 방으로 돌아와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홀로 이 작품을 바라보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체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238쪽).”와 같은 마음이기에 사진 한 장 즐겁게 빚습니다. 조던 매터 님은 “셔터를 계속 누르는 연속 촬영에 의존하기보다는 각각의 점프마다 단 한 컷의 사진만 촬영한다. 내게는 원하는 작품을 운 좋게 얻는 것보다 결정적인 순간을 예측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진다(251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노래하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밥을 먹으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으로 삶을 사랑하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더 멋진 모습을 찍어야 하지 않아요. 즐겁게 나눌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더 빼어난 모습을 안 놓치도록 찍어야 하지 않아요. 서로 빙그레 웃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울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맛있게 먹으면서 웃음꽃 피어나는 밥을 차리면 돼요. 요리대회에 1등으로 뽑힐 밥을 차리지 않습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글을 써서 띄우는 편지예요. 신춘문예라든지 문학상을 거머쥐도록 쓰는 글이나 편지가 아닙니다.


  그나저나, 조던 매터 님이 빚은 사진책은 미국에서 《Dancers Among Us: A Celebration of Joy in the Everyday》(2012)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한국말로 나온 이름처럼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춤을’입니다. ‘날마다 즐거운 잔치’를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삶은 언제나 잔치’라고 노래하는 사진이에요. 날마다 잔치를 누리는 즐거움으로 춤추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입니다.


  “무용수들은 때로는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252쪽).” 하고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한계에 도전하는 멋을 말하려고? 아니지요. 춤꾼 가운데 위험을 무릅쓰면서 춤을 춘 사람은 없다고 느껴요. 벼랑에서 춤을 추더라도 위험을 무릅쓴 춤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춤꾼은 벼랑에 섰어도 벼랑이라고 느끼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그저 춤이고, 그저 삶이며, 그저 노래요, 그저 사랑이라고 느꼈으리라 생각해요.


  즐거움도 춤이 되고 슬픔도 춤이 됩니다. 기쁨도 아픔도 모두 춤이 됩니다. 잔치굿을 하고 씻김굿을 해요. 모두 굿이에요. 잔치마당이요 굿마당입니다. 언제나 어울림마당입니다.


  웃을 적에도 벗이 되는 사진이면서, 울 적에도 동무가 되는 사진입니다. 가슴 벅찬 기쁨이 솟을 적에도 벗이 되는 사진이요, 가슴 시린 아픔으로 괴로울 적에도 동무가 되는 사진이에요.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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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5-1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즐겁게 읽었었는데 이렇게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느낌글로
다시 보니~ 더욱 좋네요~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리뷰,이십니다~*^^*

파란놀 2014-05-15 07:47   좋아요 0 | URL
아아, 고맙습니다.
아름답게 읽어 주시니
아름다운 넋을 마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더 일찍 피어난 붓꽃



  지난해에는 오월 십구일에 우리 집 붓꽃이 피었다. 그러께에는 오월 이십육일에 우리 집 붓꽃이 피었다. 올해에는 오월 십이일에 우리 집 붓꽃이 핀다. 마을에 볕이 훨씬 잘 드는 곳에서는 오월 첫 주부터 붓꽃이 활짝 피었다. 아마 사월 끝자락에 피어난 붓꽃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 세 해를 돌아보니 붓꽃이 피어난 때가 이레씩 빠르다. 이런 빠르기라면 이듬해에는 오월 오일에 붓꽃이 피어나려나.


  해가 갈수록 더위가 길다. 해가 갈수록 시골이 줄고 도시가 늘어난다. 해가 갈수록 고속도로는 늘고, 발전소도 늘며, 골프장과 공장과 관광단지가 늘어난다. 숲이 늘어나는 일이 없다. 송전탑이 줄어드는 일이 없다. 고속도로를 줄이는 일도 없고, 자동차를 줄이려는 움직임조차 없다. 기름집을 줄이지 않는다. 가게를 줄이지 않는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큰 건물을 치운 뒤 숲으로 꾸미려는 움직임도 없다. 오월꽃이 오월이 아니라 사월에 핀다면, 그야말로 날씨가 뒤틀린다는 뜻인데, 꽃을 마냥 즐겁게 바라볼 수만 없다.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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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에 떨어진 후박꽃



  엊그제 비가 드세게 몰아치면서 후박꽃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졌다. 마당은 온통 후박꽃투성이가 된다. 수천 송이가 떨어졌을까. 아마 수천 송이가 됨직하다. 어쩌면 만 송이가 넘을는지 모른다. 그윽한 냄새를 나누어 주던 후박꽃이 이렇게 많이 떨어지니 서운하지만, 후박나무로서도 꽃을 어느 만큼 떨구어야 열매를 알맞게 맺으리라 본다. 감나무도 감꽃을 엄청나게 떨구지 않는가. 바야흐로 이레쯤 지나면 감꽃이 여물 듯한데, 감꽃 피는 밑에서 감꽃을 하나하나 주워서 먹을 생각을 하니 침이 고인다.


  마을 샘터를 치울 적에 쓴 플라스틱 그릇을 평상에 두었다. 비가 지나고 난 뒤 빗물이 고였고 후박꽃이 이 그릇에 퐁퐁 떨어졌다. 그릇에 고인 물을 비우려다가 한동안 들여다본다. 후박나무에서 떨어져 빗물에 잠긴 꽃송이가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따라 가볍게 물결이 일면서 하늘하늘 움직인다.


  옛날에는 어느 집에서나 이런 모습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보며 살았겠지. 흙마당 한쪽에 빗물이 고이면서 꽃송이가 그런 둠벙이나 웅덩이에 떨어졌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내 어릴 적에도 사월이나 오월에 비가 드세게 몰아친 이튿날이 되면, 곳곳에 생긴 웅덩이에 꽃잎이 수북하게 떨어져서 새삼스럽게 고운 빛을 보여주던 일이 떠오른다.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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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줄과 제비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제비가 빨랫줄에 내려앉아서 노래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돌아본다. 우리 식구가 안 보거나 못 보았을 적에 빨랫줄에 앉았을는지 모른다. 아마 그렇겠지. 부엌으로 가다가 마루에서 바깥을 내다본다. 가까이에서 제비 노래가 들려 내다보니 빨랫줄에 앉았다. 한참 그대로 서서 제비 몸짓을 들여다본다. 제비는 시골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살아가지만, 막상 사람이 가까이 다가서면 휙 날아간다. 새끼 제비는 막 날갯짓을 익힐 무렵에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휙 날아가지는 않는다. 날갯짓이 아직 서투니 그렇기도 할 텐데, 어미 제비와는 달리 사람을 물끄러미 구경하곤 한다.


  제비가 하늘을 가르며 날 적에는 날개를 활짝 펼친다. 빨랫줄에 앉아서 깃을 여미는 모습을 바라보니 몸집이 참 작다. 작은 몸짓이지만 날개를 펼치면 제법 커 보이고, 빠르면서도 홀가분하게 하늘을 가로지르는구나. 제비는 읍내나 면소재지에도 집을 짓고, 예전에는 도시에서도 살았지만, 이제는 느긋하게 지낼 만한 시골마을이 무척 드물다. 우리 집처럼 풀도 돋고 나무도 자라서 벌레가 꼬이고 나비가 깨어나는 데가 아니라면 살기가 만만하지 않을 테지. 4347.5.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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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5.12. 큰아이―긴머리 되고 싶어



  큰아이는 긴머리가 되기를 바란다. 왜 긴머리를 바랄까. 만화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여자는 으레 긴머리를 나풀나풀 날리기 때문일까. 긴머리가 되고 싶은 큰아이는 언제나 제 모습을 길디긴 머리카락으로 그린다. 머리카락이 땅바닥에 닿도록 길게 그린다. 생각해 보면, 우리 겨레뿐 아니라 지구별 거의 모든 겨레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다. 사내와 가시내를 머리카락으로 가르지 않았다. 누구나 긴머리였고, 긴머리를 땋거나 엮으며 살았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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