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문화재단> 사외보 5-6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어느덧 7월이 되는군요.

마을마다 아름다운 이름과 말이 살아나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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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28. 마을에서 살아나는 이름

― 모래내, 한가람, 아랫복골, 동백마을



  서울에 ‘모래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래내는 서울에만 있지 않습니다. 전북 전주에도 있고, 충북 음성에도 있으며, 인천과 강원 원주에도 있습니다. 아마 전국 곳곳에 크고작은 ‘모래내’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전국 어디에나 냇물이 흐르고, 전국 어디에나 냇가에 모래밭이 있었을 테니까요.


  경남 하동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조문환 님은 섬진강을 두루 걸어서 마실한 이야기를 엮어 《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북성재,2013)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 197쪽을 읽다가 “섬진강의 이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모래가람, 다사강, 사천, 두치강 등으로도 불렀다.”와 같은 대목을 봅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섬진강’은 ‘모래가람’뿐 아니라 ‘모래내’라는 오래된 이름이 있다고 해요. 왜 모래가람이고 모래내냐 하면, 물줄기 흐르는 옆으로 모래가 몹시 곱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람’은 한자말 ‘강(江)’을 가리키는 옛말입니다. ‘가람’보다 작은 물줄기는 ‘내’입니다. ‘내’보다 작은 물줄기는 ‘시내’예요. 섬진강 물줄기는 넓게 흐르는 데가 있을 테고 좁게 흐르는 데가 있겠지요. 넓게 흐르는 물줄기 둘레에서 살던 이들은 ‘모래가람’이라 가리켰을 테며, 그리 넓지 않다 싶은 물줄기 둘레에서 살던 이들은 ‘모래내’라 가리켰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을살이가 달라 이름이 다릅니다. 마을마다 살림살이가 다르기에 이름을 달리 붙입니다. 같은 꽃과 풀이라 하더라도 고장과 고을마다 다른 삶자락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붙여요.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물줄기 이름은 ‘한가람’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같은 커다란 도시가 아닌, 서울에서도 논밭 일구는 사람이 많던 지난날에는 서울 한복판을 흐르던 물줄기를 가리켜 ‘한가람’이라 했을 테고, 이 물줄기가 그리 넓지 않게 흐르는 데에서는 ‘한내’라 했겠구나 싶어요. 행정에서는 ‘한강’이라고만 쓰지만 ‘한가람’이라는 이름은 학교나 아파트나 회사에서 두루 씁니다. ‘한내’라는 이름도 여러 곳에서 두루 써요.


  인천에서는 ‘인천’ 말고 ‘어진내’라는 이름을 두루 써요. 춘천에서는 ‘춘천’ 말고 ‘봄내’라는 이름을 두루 씁니다. 행정에서 쓰는 이름이 있더라도, 사람들 마음속에는 오랜 나날 수수하게 붙이며 주고받던 넋이 숨쉬어요. 행정에서 붙이는 ‘율목동’ 같은 이름이 있지만, 이 마을에서 오래 살던 분들은 ‘밤나무골’이나 ‘밤골’이나 ‘밤실’이나 ‘밤말’이나 ‘밤마을’ 같은 이름을 잊지 않아요. 시골에는 ‘밤재’와 ‘밤티재’와 ‘밤티마을’도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날 서울은 아주 큽니다. 사람도 바글바글 매우 많습니다. 옛날을 돌아보아도 서울은 무척 큰 고을이었지 싶어요. 왜냐하면 옛날에 시골은 더 작았을 테니까요. 옛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걸어서 서울로 찾아갔어요. 작은 시골에서 다른 작은 시골로 천천히 걸어서 찾아갔고, 이렇게 시골과 시골을 거쳐 서울로 갔습니다. 옛날에는 서울에서도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나룻배를 타고 건넜습니다. 물줄기 위쪽은 ‘강웃마을’이었고, 강 아래쪽은 ‘강아랫마을’이었습니다. 그러면, 옛날 분들은 ‘가람웃마을’이나 ‘가람아랫마을’이라고 말했을까요? 1500년대나 500년대 무렵 옛사람은 어떤 이름을 썼을까 궁금합니다.


  이제는 ‘강북’과 ‘강남’이라고만 쓰고, 행정에서 붙이는 이름도 이런 한자말뿐입니다. 앞으로 우리들은 이대로 쓰기만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앞으로는 새로운 우리 이름을 빚을 수 있고, 오랫동안 쓰던 살갑거나 수수한 이름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을이름과 땅이름과 길이름을 생각할 때에 아름다울까요.


  이상국 님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창작과비평사,1998)를 읽는데, 〈방앗간카페에 가서〉라는 시에서 “아랫복골 개울말 루핑집 지붕 위에서 검은 연기가 가락지를 만들며”라는 대목을 봅니다. ‘아랫복골’과 ‘개울말’이라는 이름을 찬찬히 곱씹습니다. 아래쪽에 있대서 ‘아랫복골’이었을 테고, 가까이에 개울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개울말’이었으리라 봅니다. ‘웃복골’이나 ‘가운뎃복골’도 있었을까요. 어쩌면 있겠지요.


  시골에서 살며 해를 보고 바람을 마시며 비를 맞고 달과 별을 누리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인터넷이 널리 뻗어 시골에서도 서울과 부산 이야기를 곧바로 읽을 수 있어요. 거꾸로, 고흥처럼 깊은 시골이나 신안처럼 먼 섬에서 태어나는 이야기를 서울과 부산에서 막바로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살며 종이신문이나 인터넷을 뒤지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서 어떤 일이 터지는지 아랑곳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거꾸로, 커다란 도시에서 사는 이들이 외진 시골이나 먼 섬에서 어떤 이야기가 자라는가를 살피는 일이 드뭅니다. 먼먼 옛날에는 한국이나 조선이나 고려나 고구려나 옛조선 같은 울타리가 아닌 마을살이요 마을노래요 마을빛이었겠구나 싶어요. 흑산도면 흑산도가 나라이면서 마을이요 고장입니다. 강진이면 강진이 나라이면서 마을이요 고장이에요.


  봄이기에 봄맞이 들일을 합니다. 봄이기에 봄맞이 나물을 뜯고 쑥을 캡니다. 봄나물을 먹으면서 봄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봄들을 달리면서 봄놀이를 합니다. 삼월 끝자락과 사월 첫머리에 눈부신 하얀 꽃송이 터뜨리는 들딸기가 있습니다. 매화꽃이 지면서 앵두꽃이 피고, 앵두꽃이 지면서 딸기꽃이 피어요. 딸기꽃이 지면? 찔레꽃이 피면서 딸기알이 빨갛게 익습니다. 사월 끝물부터 바야흐로 딸기철이 되어 들과 숲을 누비면서 손과 입술이 빨갛게 되도록 배를 채워요.


  우리 식구 살아가는 시골은 ‘동백마을’입니다. 왜 동백마을일까 살짝 궁금하지만, 집집마다 동백나무가 으레 있어 새봄에 동백꽃이 환하게 피어나니 동백마을이라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다만, 동백나무는 우리 마을에만 있지 않아요. 이웃 여러 마을에도 많고 다른 고장에도 많아요. 동백섬이 있고 동백골이 있습니다.


  어여쁜 이웃 여러 마을을 떠올립니다. 배골, 능금골, 복사골, 진달래골, 박골 …… 냇물 노래와 꽃내음과 숲빛을 담는 마을은 얼마나 고운 이름이 될까 그려 봅니다. 4347.4.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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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7] 바뀐 날씨



  날씨가 바뀝니다. 해마다 꽃이 일찍 피고, 해마다 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늦게 끝납니다. 해마다 봄가을이 줄어들면서 여름겨울이 늘어납니다. 해마다 소나기가 사라지는 한편, 막비가 나타나요. 여름과 가을을 흔들던 거센 비바람이 한국에 찾아오는 일이 드물면서, 때 아닌 비바람이 찾아들곤 합니다. 예부터 네 철이 뚜렷하던 날씨였으나, 시나브로 철을 잃거나 잊는 날씨로 바뀝니다. ‘바뀐 날씨’예요. 그런데, 어른들은 바뀐 날씨를 안 느끼거나 못 느낍니다. 어른들은 바뀐 날씨를 바로잡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바뀐 날씨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마당이나 골목이나 들에서 놀지 못하면서 학교나 학원에 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면서 학문과 정치로 ‘기후변화(氣候變化)’를 말하거나 따져요. 몸으로 ‘바뀐 날씨’를 느끼지 못하면서 머리로 ‘바뀐 날씨’를 어떻게 맞아들일까요. ‘제철 날씨’가 사라지는 흐름을 읽지 못하면서 학문과 정치로만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면 우리 삶터를 어떻게 바로세울 수 있을까요. 4347.6.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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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비 소리


  새벽에 빗방울이 듣는다. 마당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을 살핀다. 섬돌 둘레에 어지럽게 널린 신을 추스른다. 신을 가지런히 놓아도 아이들은 으레 벗고 신고 하면서 흐트려 놓는다. 신에 빗물이 튀지 않도록 안쪽으로 들인다. 이불널개를 처마 밑으로 옮긴다. 빨랫대는 마당에 그대로 둔다. 비가 어느 만큼 올까. 요즈막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 없다. 구름이 몹시 짙다. 구름은 짙으나 비는 없다. 이런 날씨는 아주 안 좋다. 비가 오든지 구름이 걷히든지 해야 한다. 비가 올 때에는 시원하게 내린 뒤, 햇볕이 쨍쨍 내리쬘 때에는 따사롭게 내리쬐어야 들과 숲이 푸르게 빛난다. 어중간하게 흐린 날씨가 자꾸 이어지면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다. 볕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사람도 볕이 모자라면 힘을 잃고, 살림살이도 볕을 덜 누리면 곰팡이가 핀다. 어떤 목숨이든 해와 비와 바람과 흙과 풀과 나무를 골고루 누려야 제대로 산다. 부디 오늘은 비가 시원하게 내린 뒤, 구름이 걷혀 해가 나기를 빈다. 그러나 새벽비는 새벽 네 시에 살짝 찾아오다가 그치고, 다섯 시 반부터 빗줄기는 더 듣지 않는다. 4347.6.11.나무.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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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枚のハガキ (リンダブックス) (文庫)
신도 가네토 / 泰文堂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한 장의 엽서

一枚のハガキ, 2010



  ‘엽서 한 장’밖에 쓸 수 없던 태평양전쟁 때에, 시골에서 조용히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야 했을까. 전쟁은 틀림없이 일본이 저질렀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정치권력자와 경제권력자와 지식권력자는 죽지 않는다. 죽는 사람은 시골사람과 가난한 도시내기이다. 시골사람과 가난한 도시내기, 여기에 식민지 백성이 총알받이로 끌려간다. 전쟁은 왜 일으켜야 했을까. 일본은 왜 아시아와 미국으로 쳐들어가야 했을까. 그리고,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는 지구별에서 식민지를 늘리려 했을까. 전쟁무기를 마련할 돈으로 나라살림을 가꾸면 아무 걱정이 없지 않을까.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 없이, 스스로 흙을 일구어 살아가면 다툼이나 싸움이란 없이, 언제나 평화와 사랑이 넘치지 않을까.


  ‘엽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만난다. 끔찍한 전쟁에서 끔찍한 일을 겪고 살아남은 두 사람이 만난다. 두 사람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는지 모르는 채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채 살다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집을 불태운다. 집이 불타고 난 자리에 ‘밀알 한 톨’을 심기로 한다. 집터에 있던 돌과 나무를 걷어낸다. 마당과 집터를 쟁기로 천천히 갈아엎는다. 맨발로 흙을 밟고, 맨손으로 흙을 보듬는다. 씨앗을 심는다. 겨우내 밀싹이 올라온다. 밀싹을 조곤조곤 밟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밀이 싱그러이 자란다. 여름을 앞두고 누렇게 익어 물결친다. 집터와 마당에 심은 밀알이기에 밀밭은 그리 넓지 않다. 그러나, 옛집을 헐어 들이 된다. 두 사람은 헛간에서 지낸다. 헛간은 두 사람이 살기에 넉넉하다. 아니, 사람은 누구나 조그마한 집이면 넉넉하다. 조그마한 집에서 살며 넓은 들과 숲을 누리면 된다. 물은 냇가에서 길면 된다. 적게 먹고 적게 쓰면서, 삶을 푸르게 빛내면 된다.


  신도 가네토라는 아흔아홉 살 영화감독이 2010년에 이 영화를 찍었단다. 신도 가네토라는 분은 백 살이 되던 2011년에 숨을 거두었단다. 일본사람이면서 ‘일본이 싫’고 ‘전쟁이 싫으’나,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려는 넋을 영화에 알뜰히 담았구나 싶다. 한국사람은 나는 무엇을 사랑할 때에 아름다울까. 한국사람은 나는 어떻게 살아갈 때에 착할까. 4347.6.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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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물결 맞이하기


  한동안 바닷물에 안 들어갔으나, 어느새 바닷물에 몸을 맞춘 산들보라는 혼자서 척척 바다로 들어선다. 꼭 무릎까지만 들어서는데, 네 살이 되었다고 웬만한 물결에는 휘청거리지 않는다. 그래도 물결이 제법 치면 휘청거리면서 걷는다. 샘터나 골짜기와는 사뭇 다르면서 커다란 바다이다. 이 바다가 뭍을 품고 모든 목숨을 품으며 지구별도 품는단다. 4347.6.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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