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터놀이 14 - 빨래터에서는 빨래놀이



  빨래터에 왔으니 빨래놀이를 빼놓을 수 없겠지? 봄까지는 알몸으로 놀지 못했지만, 이제 여름으로 접어들었기에 빨래터에서 너희들은 알몸으로 뛰놀 수 있어. 그리고, 너희가 벗은 땀에 절은 옷은 너희가 손수 빨거나 헹굴 수 있고. 4347.6.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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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놀이 13 - 씩씩하게 청소하기



  나날이 아귀힘이 붙고 키가 자라는 아이들이다. 빨래터에 오면 빨래터 치우기보다는 물놀이에 더 마음을 쏟지만, 처음에는 물을 퍼내거나 솔질을 하면서 애쓴다. 아이들이기에 아이답게 살짝 일하다가 슬그머니 놀이로 바꾸지만, 처음에 애쓰면서 빨래터를 치우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면서 얼마나 씩씩한지 모른다. 4347.6.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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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75. 오디 먹고 싶은 아이 (2014.6.13.)


  오디를 훑으며 산들보라를 부른다. 산들보라는 아버지가 풀숲에 가려 안 보이니 다른 데로 가다가, 아버지가 부르니 풀숲을 씩씩하게 헤치면서 다가온다. “어떻게 가?” “응, 잘 오면 돼.” 산들보라는 아버지 말대로 잘 온다. 풀이나 넝쿨은 밟거나 헤치면 되지. 아무 걱정이 없단다. 내 손바닥에 놓은 오디를 산들보라가 손에 쥔 통에 넣는다. “뭐야?” “오디.” “오디? 먹는 거야?” “응, 맛있어.” “저기도 오디?” “응.” “저기는 안 따?” “까맣게 익은 아이만 따고, 아직 빨간 아이는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더 맛있어.”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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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보는 한국말사전이든 어린이가 보는 한국말사전이든

이 세 낱말을 알아보기 좋도록 풀이한 책은 

아직 한국에 없습니다.


거의 비슷하게 쓰거나 똑같이 쓰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세 낱말은 여러모로 닮기는 했어도

똑같지 않고, 다른 느낌과 빛이 있어요.


..


벌써·이미·어느새

→ “내 키가 벌써 이만큼 자랐어요”는, 생각보다 빠르게 키가 자랐다는 뜻입니다. “내 키가 이미 이만큼 자랐어요”는, 키가 이만큼 자란 지 한참 되었다는 뜻입니다. “내 키가 어느새 이만큼 자랐어요”는, 스스로 느끼거나 알지 못하는 동안 키가 자랐다는 뜻입니다. 더 살피면, ‘이미’와 ‘미리’는 비슷하다 싶은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낱말에서 ‘이미’는 지난 어느 때에 다 끝난 일을 가리키고, ‘미리’는 지난 어느 때에 다 끝냈어야 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한편, “이미 먹은 밥”은, 다 먹어서 이 자리에 없는 밥을 가리켜요. “미리 먹은 밥”은, 나중에 바쁘다거나 없어지리라 여겨 일찌감치 먹은 밥을 가리킵니다.

 

벌써

1. 생각보다 빠르거나 일찍

 - 보글보글 소리가 나니, 밥이 벌써 다 되는가 보다

 - 저녁쯤에 올 줄 알았더니 벌써 왔구나

 - 벌써 오슬오슬 찬바람 부는 겨울인 듯하다

2. 한참 앞서

 - 할아버지는 새벽에 벌써 밭을 다 매셨다

 - 설거지는 벌써 다 해 놓았지

 - 내가 탈 버스는 벌써 떠났구나

3. 아주 많은 나날이 지나갔다고 느낄 적에 쓰는 말

 - 우리가 벌써 열 살이로구나

 - 우리 집 마당에 아왜나무를 심은 지 벌써 쉰 해가 지났대요

이미

: 어떤 때보다 앞서 (지난 어느 때나 다 끝난 때를 가리키며 쓰는 말)

 - 부리나케 달려왔지만 이미 늦어 문이 닫혔다

 - 이미 먹은 밥을 어떻게 내놓겠니

어느새

: 알거나 느끼지 못하는 동안

 - 동생은 어느새 훌쩍 자라 나보다 키가 크다

 - 아침에 눈발이 날린다 싶더니 어느새 수북하게 쌓였다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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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비행(1disc) - 할인행사
캐롤 발라드 감독, 안나 파킨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 1996



  집은 잠을 자는 곳이 아니다. 집에서는 잠을 자기도 하지만, 잠을 잘 수 있기에 집이 아니다. 사랑이 감돌고 이야기가 흐르며 꿈을 짓는 곳이 집이다. 삶을 꽃피우는 곳을 두고 집이라 한다.


  집은 부동산이 될 수 없다. 집은 섣불리 사고팔지 않는다. 집은 우리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도록 짓는 곳이요,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낳을 아이들도 살도록 가꾸는 곳이다.


  어버이는 아이를 보살피고, 아이는 어버이를 아끼면서,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을 때에 집이 된다. 그런데, 오늘날 문명사회에서는 집에서 노래를 부르기 어렵다. 노래가 흐르는 집이라 하더라도 거리낌없이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탈 수 있는 집이 몇 군데가 될까. 노래를 할 수 없고 악기를 탈 수 없는 동네에 다닥다닥 붙어서 저마다 ‘층간소음’에 시달리지는 않는가. 사랑이 어우러지는 살림은 좀처럼 못 가꾸지 않는가.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때에 즐거울까. 어버이는 무엇을 가르칠 때에 기쁠까. 아이와 어버이는 서로 어떤 일과 놀이를 함께 해야 할까. 영화 〈아름다운 비행〉에 나오는 거위들이 아이를 따른다. 어미를 잃은 거위들이 아이를 어미로 여기면서 졸졸 따른다. 새끼 거위는 아이한테 ‘삶을 보여주’고 ‘삶을 가르쳐’ 달라면서, 그리고 ‘사랑을 베풀’고 ‘꿈을 밝혀’ 주기를 바라면서 졸졸 따른다.


  우리는 저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웃음이 나올까. 우리는 저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노래가 터질까. 아름다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빈다. 아름다운 동네와 마을로 일굴 수 있기를 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속삭이면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빈다. 4347.6.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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