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 하루도 진실하게 살자
최진실 지음 / 책이있는마을 / 1998년 7월
평점 :
절판


소개하려는 영화는 디브이디가 없습니다. 아쉽지만, 최진실 님 수필책에 이 글을 걸칩니다...


..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1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1년에 ‘최진실’이라는 이름은 아주 대단했다. 얼마나 크게 사랑받는 배우였는지 모른다. 나도 이무렵에 배우 최진실 님을 무척 좋아해서, 내 교과서와 참고서를 비닐로 싼 뒤 겉에 최진실 님 사진을 넣곤 했다. 책받침도 최진실 님 사진을 앞뒤로 코팅해서 쓰기도 했다. 그래서 1991년에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라는 영화가 나왔다고 했을 적에 아주 마땅히 극장에 가서 보았다. 이제는 사라진 ‘인천 시민회관’에서 보았는데, 여느 때에 ‘최진실 팬’이라고 하던 동무들은 함께 극장에 가지 않았다. 영화이름으로도 그리 끌리지 않는다 하고, 굳이 극장까지 가느냐고, 몇 해 지나면 텔레비전에서 다 보여줄 텐데 뭐 하러 돈을 들이느냐고도 했다.


  극장에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보던 1991년 어느 날, 영화가 무엇인지 비로소 느꼈다. 그래, 영화란 이러하기에 영화로구나. 이야기를 담고, 삶을 밝히며, 꿈과 사랑을 보여줄 때에 영화로구나.


  극장에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내리기 앞서 다시 한 번 찾아가서 이 영화를 다시 본다. 처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적에 극장에 온 손님은 모두 열다섯 사람이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러 갔을 적에도 인천 시민회관에 든 손님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만 있었다.


  나중에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보여준 적이 더러 있으나,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는 동무나 이웃은 좀처럼 만나지 못한다. 이 영화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동무나 이웃이 아직 없다. 이 영화에 나온 이야기는 소설로 나오기도 하고, 이 영화에 나온 ‘스웨덴 입양 어린이(신유숙)’는 어른이 된 뒤 방송에 나오기도 했는데, 이분도 최진실 님도 이제는 저승사람이다.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나중에 디브이디가 나올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삶을 바꾸거나 고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어제도 오늘도 한국은 지구별에서 ‘외국 입양을 많이 시키는 나라’로 다섯손가락 사이에 꼽힌다. 고갱이는 ‘외국 입양’이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얼마나 참답게 사랑받으면서 살아가는가.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 어버이(어른)들은 얼마나 착하게 사랑하면서 꿈을 꾸는가.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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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치과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다녀온다. 두 아이는 첫 치료를 받는다. 썩은 곳을 긁어내고 쇠붙이를 덮는다. 작은아이는 이를 고치는 동안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고, 이내 코를 살짝 골면서 잔다. 네 살 아이는 저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기에 가만히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을까. 이를 거의 다 고칠 무렵 다시 눈을 뜬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아직 치료가 안 끝나니 아이 가슴이 빠르게 뛴다. 왼손을 아이 가슴에 대고 오른손으로 아이 이마를 쓸어넘긴다. 곁님이 말한 대로 ‘파란 거미줄’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네 이는 튼튼해. 네 몸은 튼튼해.’와 같은 말을 아이 마음에 심는다. 일곱 살 큰아이는 곁님이 곁에서 지켜보고 돌보면서 첫 치료를 마친다. 둘 모두 씩씩하게 첫 치료를 받는다. 이날 치료값은 47만 원. 앞으로 세 차례 더 치료를 받아야 하니 돈이 더 들 테지.


  힘이 많이 빠진 아이들을 달래며 치과에서 나온다. 나도 꽤 어릴 적에 치과에서 이를 고쳤다. 썩은 데를 갉아내고 쇠붙이를 이에 심었다. 그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되새겨 본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에 헤아리지 않던 한 가지를 새롭게 헤아려 본다. 우리 어머니는 나와 형 이를 고치느라 치료값을 톡톡히 치르면서 살림을 어떻게 꾸리셨을까. 꽤 목돈을 들여야 했을 텐데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코가 무척 안 좋아서 치과뿐 아니라 이비인후과도 거의 날마다 다니곤 했다. 우리 어머니는 이녁 작은아이(나)를 날마다 병원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치료값을 어떻게 대면서 살림을 꾸리셨을까.


  어린 나는 ‘돈 걱정’이나 ‘돈 생각’을 한 일이 없다고 느낀다. 어제 치과에서 첫 치료를 받은 두 아이도 ‘돈 걱정’이나 ‘돈 생각’을 할 일이 없으리라 느낀다.


  오직 한 가지에만 마음을 쏟기로 한다. ‘이 튼튼 몸 튼튼’ 한 마디를 아이들한테 들려준다. 나도 스스로 이 말을 곱씹는다. 길을 거닐며, 저녁에 자면서,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며, 하루 내내 뛰논 아이들 옷가지를 빨며, 지난 하루 이야기를 글로 갈무리하면서, 이 말을 자꾸자꾸 되새긴다.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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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골집 물



  바깥마실을 나오면 언제나 한 가지를 느낀다. ‘우리 시골집 물’이 참 맛있구나 하고. 우리 시골집에서는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일 텐데, 정갈한 이웃 시골에 마실을 간다면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있는데, 정갈한 이웃 시골이 아닌 도시로 바깥마실을 가면 ‘흐르는 물’은 도무지 마실 수 없다.


  도시에서 여러 날 지내면 ‘흐르는 물’이 없으니 아찔하다. 그러나, 도시에서 어느 누구도 ‘흐르는 물’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모두들 수도물을 마시거나 정수기 물을 마시거나 페트병에 담긴 물을 마신다. 우리 몸을 크게 이루는 것은 ‘물’이지만 정작 사람들 스스로 물을 느끼거나 깨닫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몸을 크게 이루는 물은 ‘바람(공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또한 느끼거나 깨닫는 도시사람이 몹시 드물다. 어쩌면 아예 없다시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사람들이 거의 다 시골 아닌 도시에 살기 때문이다. 물과 바람이 우리 몸에 아주 큰 줄 안다면 섣불리 도시에서 살 생각은 안 하리라 느낀다.


  정갈한 물과 바람을 누리지 않는 삶이라면, 정갈한 햇볕을 누리지 않는 삶이요, 정갈한 풀과 나무와 숲을 누리지 않는 삶이다. 도시에도 나무가 군데군데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뿐이다. 도시에는 풀이 풀답게 자랄 수 없고, 풀이 풀답게 못 자라도록 무섭게 짓밟는다.


  어떤 물과 바람과 볕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가 하고 낱낱이 헤아려 본다. 나는 스스로 내 몸을 어떻게 건사하면서 이곳에서 삶을 지으려 하는지 돌아본다. 이웃들과 어떤 눈빛으로 어울리려 하는지 생각한다. 나도 ‘흐르는 물’을 마시면서 삶을 즐기고 싶으며, 내 이웃도 ‘흐르는 물’을 마시면서 삶을 빛낼 수 있기를 빈다.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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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책빛숲》을 교정한다. 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교정지를 주욱 살폈고, 오늘은 한 줄씩 찬찬히 읽는다. 아침 11시 30분에 일산 대화역 치과에서 두 아이 이를 고친다. 그때까지 어느 만큼 살필 수 있을까. 치과에 들러 아이들 이를 다시 고친 뒤 장모님 장인어른 댁에 돌아오면 다시 교정을 봐야지. 이럴 때에는 태블릿피시 같은 것이 있으면, 돌아다니면서도 교정을 볼 수 있겠구나. 아무튼, 아이들과 다닐 때에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셈틀 앞에 앉을 적에는 이 일에 마음을 쏟자.


이번 주에 교정과 보도자료를 마치기로 했으니, 다음주에 인쇄를 할는지 모른다. 그러면 다음주 주말이나 그 다음주에 책이 나올까?


와. 드디어,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와 아벨서점 이야기를 《책빛숲》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일 수 있구나. 헌책방에, 내 오랜 단골인 헌책방에, 인천에, 인천 배다리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그리고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숨결한테, 이 작은 책 《책빛숲》이 아름다운 빛으로 스며들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책으로 짠 하고 태어나면 기쁘게 주머니를 털고 지갑을 열어 장만해 주시면 고맙겠다. 책을 널리 알려주시기도 하고, 별점도 만점으로 팍팍 붙여 주시기까지 하면 참으로 고맙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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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단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유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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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58



시와 우산

― 오늘 아침 단어

 유희경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1.6.6.



  일산마실을 하면서 송전탑을 봅니다. 곁님 어버이가 지내는 경기도 일산에 있는 조그마한 집 코앞에는 아주 커다란 송전탑이 있습니다. 이 송전탑은 일산 바깥쪽에 있는 논 한복판에 버티고 섭니다. 얼마나 높고 큰지 고개를 위로 한참 쳐들어야 꼭대기를 볼 만합니다. 요즈막에 한전에서 경남 밀양에 박으려 하는 송전탑도 이만큼 클까 하고 헤아려 보곤 합니다.


  전기를 쓸 사람이 많으니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박습니다. 큰도시에 커다란 아파트를 잔뜩 지을 뿐 아니라 온갖 건물이 많으니 발전소도 송전탑도 많아야 합니다. 게다가, 큰도시는 땅값이 비쌀 뿐 아니라 사람들한테 안 좋다고 하니까 시골이나 숲에 발전소를 지으려 하겠지요.


  우리 사회에서 전기를 안 쓴다면 모르되, 전기를 꼭 써야 한다면, 집집마다 전기를 스스로 만들어서 쓸 수 있는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우리들 누구나 밥을 안 먹는다면 모르되, 누구나 밥을 꼭 먹어야 한다면, 우리 스스로 손수 밥을 지어서(그러니까 씨앗을 뿌리고 보살피며 거두어서) 먹는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 비밀은 비밀이어야 한다고 / 나는 돌멩이처럼 말했다 / 내 말이 굴러가는 소리, / 물이 흔들리는 소리 ..  (深情)



  평화를 바라지 않으니 전쟁을 일으킵니다. 어깨동무를 바라지 않으니 전쟁무기를 만듭니다. 사랑을 키우거나 꿈을 보듬고 싶지 않으니 싸웁니다.


  전쟁으로 이루는 평화는 없습니다. 전쟁무기를 내세우는 어깨동무는 없습니다. 싸우면서 자라는 사랑이나 꿈은 없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이루려면 삶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우리가 전쟁무기를 없애면서 서로 돕고 아끼는 어깨동무를 이루자면 삶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우리가 날마다 즐겁게 사랑하거나 꿈꾸자면 삶을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요.



.. 노래는 끝나고 그들이 떠난 뒤 / 술집은 단단히 문을 잠글 테지만 / 끝은 끝내 알 수 없는 것 ..  (어쩔 수 없는 일)



  아침 낮 저녁으로 늘 생각합니다. 내 마음을 살찌울 이야기를 언제나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심고 내 몸에 담을 낱말을 늘 되새깁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고 돌아봅니다.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이라는 낱말을 마음에 심습니다. 글 한 줄을 쓰건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건, 언제나 사랑이 되도록 하자고 여깁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나들이를 다닐 적에도 사랑을 떠올립니다. 아이들과 하얀 종이를 펼쳐 그림을 그릴 때에도 사랑을 슥슥 그립니다.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 적에도 사랑을 헤아립니다. 옷가지를 개고, 아이들 머리카락을 쓸어넘길 적에도 사랑을 품습니다.


  읽을 책을 책방에서 고르면서 사랑을 생각하고, 기쁘게 장만한 책을 손에 쥐어 펼칠 적에도 사랑을 생각합니다.



.. 우산에 대해서라면 오래오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검은빛이고 나는 펼쳐진 시간을 사랑한다 ..  (우산의 과정)



  유희경 님이 내놓은 시집 《오늘 아침 단어》(문학과지성사,2011)를 전철에서 읽습니다. 고흥을 떠난 시외버스가 서울에 닿고, 서울에서 내린 뒤 아이들과 함께 해바라기를 하며 숨을 고르고 나서 전철로 갈아타서 일산으로 가는 길에 시집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해바라기를 하는 동안 신나게 뛰놉니다. 전철을 탄 뒤에도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싶습니다. 아마 아이들 눈높이로 보자면, 전철에서 멀뚱멀뚱 서서 아무것도 안 하는 어른이 재미없지 싶습니다. 전철에서든 버스에서든 사람들이 가만히 앉거나 서면 따분하지 싶습니다. 노래해야지요. 뛰놀아야지요. 춤을 춰야지요.


  개구진 아이들을 타이르다가 문득문득 생각이 스칩니다. 그래, 전철에서 다 같이 뛰놀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시외버스이든 시내버스이든, 버스 일꾼과 손님이 저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춤을 출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빛나면서 놀라울까요.


  어른이라는 이들은 왜 양복을 빼입고 회사에 가서 돈을 버는 ‘일’만 할까요.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일을 할 수 있을 텐데요. 신분과 계급과 재산을 가르지 말고 서로 즐겁게 얼크러지면서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를 누리면 그야말로 기쁠 텐데요.



.. 이곳은 쓸쓸합니다 나를 알아보는 이가 없기 때문이죠 사실 혼자 있고 싶었어요 발바닥을 밟고 걸어가는 것처럼 문득 돌아보아도 여전히 나는 있는 것처럼 이곳에도 들판은 없어요 ..  (보내지 못한 개봉 엽서)



  유희경 님은 ‘우산 이야기라면 오래오래 할’ 수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산의 과정〉이라는 시를 씁니다. 유희경 님은 유희경 님 나름대로 이녁 삶을 빛낼 만한 낱말을 골라서 시집 《오늘 아침 단어》를 선보입니다.


  스스로 빛나기에 삶이 빛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노래하기에 삶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하기에 삶이 사랑스러울 수 있습니다.


  거꾸로, 스스로 골을 내기에 언제나 골부림입니다. 스스로 주먹다짐이기에 이곳저곳에서 싸움과 다툼이 판칩니다. 스스로 쇠밥그릇을 붙잡는다면 이 사회에는 전쟁이 자꾸 불거질 테지요.


  아침에 품은 낱말을 저녁에 거둡니다. 아침에 뿌린 ‘말 씨앗’을 저녁에 갈무리합니다. 아침에 건넨 사랑을 저녁에 받습니다. 아침에 노래한 빛이 저녁에 곱게 퍼집니다. 4347.6.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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