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찾아서 읽는 두 가지 길



  책을 찾아서 읽는 길은 두 갈래이다. 하나는 나한테 빛이 될 책을 스스로 살피면서 찾아내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남들이 나더러 읽으라 하는 책을 책방에 주문하는 길이다.


  나한테 빛이 될 책은 무엇일까? 알 수도 있지만 알 수도 없다. 책방에 가서 책시렁을 돌아볼 때까지 알 수 없기 마련이다. 책방에 가서 책시렁을 돌아보면서 비로소 책이 하나둘 눈에 뜨인다. 이런 책은 이렇게 나를 살찌우겠네, 저런 책은 저렇게 나를 북돋우겠네, 하고 느끼면서 책을 하나둘 고른다.


  남들이 나더러 읽으라 하는 책은 무엇일까? 누군가 짜거나 엮은 ‘추천도서 목록’이라든지 ‘필독서 목록’이라든지 ‘베스트셀러 목록’이라든지 ‘스테디셀러 목록’이다. 이러한 책은 책방으로 마실을 가서 살 수도 있으나, 이제는 굳이 책방마실을 하지 않아도 이러한 책은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척척 주문해서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책을 찾아서 읽는 길은 두 갈래이다. 내 삶을 밝힐 책을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천천히 읽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남들이 말하는 책을 바지런히 훑으면서 줄거리를 익히고 ‘주제를 알아내려’고 하는 길이다.


  내 삶을 밝히는 책을 스스로 찾아서 읽으면, 아주 마땅히 내 삶을 스스로 가꿀 수 있다. 남들이 말하는 책을 바지런히 살피면, 아주 마땅히 자격증도 따고 시험점수도 잘 받을 수 있다. 어느 쪽으로든 누구나 저마다 이녁 삶에 맞추어 가는 길이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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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2] 손톱꽃·손톱빛


  손톱을 곱게 물들입니다. 봉숭아를 빻아서 물들입니다. 바알갛게 물든 손톱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아하, ‘손톱물’을 들였구나. 물든 손톱은 곱게 빛납니다. 그래요, ‘손톱빛’이 새롭습니다. 요즈음은 손톱을 이쁘장하게 가꾸거나 꾸미는 사람이 많습니다. 손톱을 곱게 빛나도록 가꾸는 일을 하는 분도 많습니다. 이분들이 찬찬히 손을 놀려 이웃 손톱에 새로운 빛을 입히는 모습을 지켜보면, 마치 손톱에서 꽃이 피어나는 듯합니다. 그렇군요. 손톱을 가꾸는 이들은 손톱에서 꽃이 피어나도록 하네요. ‘손톱꽃’입니다. 손톱에서 빛이 나고, 손톱에서 꽃이 핍니다. 손톱에 고운 물이 흐르고, 손톱마다 맑은 이야기가 감돕니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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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친구가 샘내는 책 1
우슐라 두보사르스키 지음, 앤드류 조이너 그림, 노경실 옮김 / 푸른날개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9



‘퐁’과 ‘풍덩’ 사이에서

― 풍덩

 우슐라 두보사르스키 글

 앤드류 조이너 그림

 푸른날개 펴냄, 2009.9.1.



  오스트레일리아라는 곳에서 사는 두 사람이 빚은 그림책 《풍덩》(푸른날개,2009)을 읽습니다. 우슐라 두보사르스키 님 글과 앤드류 조이너 님 그림이 어우러집니다. 숲속에 있는 못에 능금이 한 알 퐁 떨어지면서 생긴 일을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숲짐승한테 낯선 소리를 듣고는 어쩌면 크게 잘못되거나 저희를 괴롭힐 누군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걱정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숲속 짐승이 아니더라도 이처럼 놀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도 그렇지요. 쿵 하고 떨어지거나 쨍그랑 하고 깨질 적에도 사람들은 놀라요. 또는, 사람들 귀에 익숙하지 않은 어떤 소리가 크게 나면 두려움에 떨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소리가 나든 큰 소리가 나든 궁금하게 여기면서 살그마니 살필 수 있어요. 두려움이나 무서움이 아닌 궁금함이라면 근심이나 걱정이 없어요. 이때에는 즐거움이나 새로움이라는 느낌으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 파란 하늘, 호숫가에는 잘 자란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가지 끝에 매달린 동그랗고 빨간 사과. 바람이 살랑살랑. 빨간 사과가 흔들흔들흔들 ..  (4쪽)



  그림책 《풍덩》을 보면 온갖 짐승이 귀엽게 나옵니다. 여우는 꽃을 꺾습니다. 토끼는 못가에서 케익을 먹습니다. 토끼가 케익을 먹는다니? 말이 되나? 네, 말이 안 됩니다. 토끼가 어떻게 케익을 먹나요. 게다가 숲에 무슨 케익이 있겠어요? 그런데, 곰은 더 웃깁니다. 곰은 해바라기를 하면서 얼음커피인지 얼음콜라인지 마셔요. 게다가 빨대까지 꽂은 유리잔인지 플라스틱잔을 손에 들지요.


  능금이 못에 떨어진 소리에 놀란 짐승을 보아도 재미있거나 웃깁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이니 캥거루가 나올 만하지만, 캥거루하고 코뿔소와 코끼리가 나란히 나와요. 무늬범과 범과 원숭이와 박쥐가 나란히 나옵니다. 여기에 말코손바닥사슴이 함께 나옵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보면서 ‘어우러지지 않는 숲짐승’ 모습을 놓고 따질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박쥐가 밤이 아닌 낮에 나오더라도 놀라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원숭이가 사람처럼 등을 꼿꼿이 펴고 두 발로 걸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리라 봅니다.



.. 여우가 달아나는 토끼들을 불렀습니다. “얘들아, 왜 그렇게 달려가니?” 토끼들은 멈추지 않고 소리쳤습니다. “여우야, 너도 빨리 달려!” “호수에서 무시무시한 풍덩 소리가 났어!” ..  (8쪽)



  못에 능금이 떨어지며 내는 소리와 얽힌 옛이야기는 아마 겨레나 나라마다 다 있지 싶어요. 그림책 《풍덩》은 오스트레일리아답게, 또 요즈음에 맞게, 새롭게 꾸민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그림결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게 엮었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나는 토끼들이 ‘당근이나 능금을 속살만 얼추 베어서 먹은 뒤 버린’ 모습이 못마땅합니다. 참말 토끼가 이렇게 먹을까요? 토끼가 왜 당근을 ‘위쪽 잎사귀가 하나도 없는’ 채 먹을까요? 수퍼마켓에서 파는 모습 같은 당근을 먹는 토끼일까요?


  토끼는 풀짐승입니다. 토끼는 풀을 먹습니다. 토끼는 풀을 남기면서 먹지 않습니다. 다 먹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토끼는 ‘케익은 빈틈없이 다 먹’지만, 당근과 능금은 속살만 베어 먹고 버립니다.



- 호숫가에서 즐겁게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23쪽)

→ 못가에서 즐겁게 점심을 먹습니다


- 나도 달아나는 게 좋겠어 (9쪽)

→ 나도 달아나야겠어


- 덩달아 달아나기 시작했지요 (11쪽)

→ 덩달아 달아납니다


- 동물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풍덩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13쪽)

→ 동물들은 한숨도 쉬지 않고 풍덩이 무서워 달아났습니다



  물에 빠지며 나는 소리는 여럿입니다. ‘퐁’과 ‘풍’이 있으며 ‘풍덩’과 ‘퐁당’이 있습니다. 능금 한 알은 어떨까요. 능금 한 알은 무거울까요, 가벼울까요. 토끼들이 능금알을 한손에 쥐고 가볍게 먹는다면, 능금알은 ‘안 무겁다’고 여길 만하겠지요. 그러면, 능금알이 물에 빠진다고 할 적에 나는 소리는 ‘크지 않’겠지요.


  다만, 그림책에서는 생각날개를 펼쳐 ‘능금이 못에 떨어지며 나는 소리가 아주 클 뿐 아니라 무시무시하다’고 여기도록 보여줄 수 있습니다. ‘풍덩’쯤 되어야 숲짐승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내뺄 만할 테니까요. 그러나, 능금알은 ‘퐁’ 소리가 나도록 물에 떨어질 뿐입니다.


  이 그림책은 어린이문학을 하는 분이 옮겼으나, 아이들 눈높이에 걸맞지 않은 낱말과 말투가 곳곳에 있습니다.



- 동물들은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13쪽)

→ 동물들은 그저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 곰은 화가 나서 (17쪽)

→ 곰은 부아가 나서


- 하지만 지금 당장 곰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는 (21쪽)

→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서 곰한테 잡아먹히기보다는


- 녀석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23쪽)

→ 녀석은 참말 어디 있느냐


-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인 것을 알게 됐거든요 (27쪽)

→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인 줄 알았거든요



  우리 어른들은 한자말로 자꾸 ‘호수(湖水)’를 말하지만, 한국말은 ‘못’입니다. 곰은 ‘화(火)’가 아닌 ‘부아’나 ‘골’이 납니다. “먹고 있었습니다”나 “달아나기 시작했지요” 같은 말투는 부디 어린이문학부터 걸러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올바로 익히도록 돕는 그림책 노릇을 하도록 마음을 기울여 주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그대로 배웁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본 아이들은 능금이나 배나 돌을 물에 떨어뜨려 볼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떨어뜨릴 적에 ‘퐁’이나 ‘풍’ 소리가 나더라도, 막상 이런 소리를 이 소리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림책에서 본 대로 ‘풍덩’이라고만 말할 수 있어요. 때로는 ‘퐁당’일 텐데, 소리를 엉뚱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풍덩’은 사람쯤 되는 커다란 짐승이 물에 뛰어들 적에 나는 소리입니다.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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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헤아려 본다


  도깨비를 다루는 어린이책이 아주 많다. 그러나 도깨비를 제대로 살피거나 알아보거나 생각한 끝에 선보이는 어린이책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그나마 제대로 도깨비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도깨비불’을 그린다든지 ‘수수빗자루’를 그리는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도깨비는 몸이 없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몸이 없지만 어느 몸이든 입을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도깨비는 돌에도 깃들 수 있고 꽃이나 나무에도 깃들 수 있다. 사람이 무서워하는 ‘지구별에 없는 어떤 괴물’로 나타날 수 있다. 도깨비 스스로 아무런 몸이 없기 때문에 어떤 몸이든 될 수 있다.

  도깨비는 밥을 먹지 않는다. 도깨비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서 언제까지나 살아간다. 아니, 도깨비한테 ‘살아간다’는 말은 걸맞지 않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도깨비이기 때문에, 도깨비한테는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과 달리 뚜렷한 몸이 없는 도깨비인 만큼, 도깨비를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 다르게 말할밖에 없다.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차원 세계’에서는 도깨비를 쳐다볼 수 없다. 도깨비는 사람과는 다른 ‘차원 세계’에서 산다. 그런데, 도깨비가 사람과 이야기(소통)를 하고 싶을 때에는 사람 몸을 빌어서 나타나든지, 이것저것 도깨비와 가까이 있는 어느 것에든 깃들어서 나타난다. 그래서, 도깨비를 보았다는 사람은 ‘도깨비가 몸을 빌어서 깃들어서 보여주는 모습’이 마치 ‘진짜 도깨비’라도 되는 듯이 이야기하고 만다.

  도깨비는 생명체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다. 도깨비는 빛이나 넋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깨비는 밥을 먹을 일이 없고, 똥오줌을 눌 일이 없으며, 땀을 흘리지도 않는다. 웃음도 눈물도 따로 없다. 그렇지만 ‘모든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 도깨비한테는 아픔이나 슬픔이나 잠이 없다. 삶과 죽음이 따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도깨비인데, 도깨비한테 ‘뿔을 씌우’고 ‘짐승가죽옷을 입히’며 ‘우락부락한 얼굴’에다가 ‘털북숭이’로 그린다면, 이를 어찌 도깨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요물이나 요괴쯤으로 말할 수는 있으리라.

  어쩌면, 먼먼 옛날부터 한겨레가 말한 ‘도깨비’는 ‘외계인’일 수 있다(외계인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보기에 알 수 없는 ‘님’이 도깨비였다고 해야 옳겠지만. 그러니까 먼먼 옛날 사람한테는 외계인도 도깨비 가운데 하나로 여겼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만화책 《설희》가 다룬 광해군 이야기에 ‘유에프오 기록’이 있다고 나오는데, 지식인이나 권력자 가운데 한겨레에서 책에 글로 남긴 가장 오래된 기록일는지 아닐는지 모르나, 한겨레 골골샅샅에서 모든 시골사람은 ‘사람과 다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으레 보았으리라 느낀다. 알 수 없기에 ‘도깨비’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할까.

  어린이책에는 언제나 그림을 많이 넣는데,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부디 ‘도깨비’를 비롯해 이것저것 제대로 살피고 헤아릴 뿐 아니라 알아보고 생각할 수 있기를 빈다. 이쁘장하게 그리거나 우락부락 그린대서 ‘그림’이 되지 않는 줄 깨닫기를 빈다. 나도 앞으로 한국말사전에 ‘도깨비’ 낱말풀이를 넣어야 할 텐데, 아직 뚜렷하게 갈피를 잡지는 않았다. 더 살피고 알아보아야겠지.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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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발바닥 주무르기



  하루 내내 실컷 뛰논 아이들 발바닥을 주무른다. 처음에는 머리를 주무른다. 머리를 살살 앞뒤 골고루 주무르고는 얼굴로 내려오고 어깨와 가슴과 옆구리를 거쳐 엉덩이와 허벅지와 무릎과 종아리를 지나 발목과 발바닥을 주무른다. 이렇게 주무르고는 팔뚝과 팔꿈치와 팔등과 손가락까지 찬찬히 주무른다. 아이들 몸을 주무르고 보면, 아이들은 굳이 안 주물러도 잠자리에 눕는 때에 ‘하루 동안 쌓인 고단함’이 모두 풀리는구나 하고 느낀다. 이렇게 느끼면서 구태여 아이들 몸을 주무르는 까닭은 한결 씩씩하고 튼튼히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저희 몸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자랄 텐데, 아이들 곁에 어버이가 언제나 있고, 앞으로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숱한 동무와 이웃이 곁에 있는 줄 살뜰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얼핏 잠들려는 아이는 발바닥을 주무르면 피식 웃는다. 간지럽구나. 까무룩 잠든 아이는 발바닥뿐 아니라 발가락을 주무르더라도 새근새근 숨을 고른다. 우리 어머니가 내 몸을 주물러 주던 먼먼 어린 날을 가만히 돌아본다.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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