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4.6.18. 큰아이―흙바닥 그림



  버스를 기다리는 그림순이는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 수 있다고 깨닫는다. 그러면 무엇으로 그릴까? 손가락? 나뭇가지? 돌? 그림순이는 나뭇가지를 하나 집는다. 아버지더러 반으로 끊어 달란다. 반으로 끊어서 건네니 한쪽은 동생한테 주고 한쪽을 한손에 쥐어 흙바닥에 그림을 그린다. 무엇을 그리는가 하고 들여다본다. 흙바닥에 그림순이는 긴머리 아이를 그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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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어딘가에 선다. 나는 오늘도 어느 곳엔가 선다. 내가 서는 곳은 시골마을 우리 집일 수 있고, 이웃마을일 수 있으며, 읍내일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들길에 설 수 있고, 아이들 손을 잡고 숲길에 설 수 있다. 부엌칼을 들고 도마 앞에 설 수 있고, 붓을 들고 책상맡에 설 수 있다. 호미를 쥐고 밭자락에 설 수 있고, 맨손으로 나무 곁에 설 수 있다. 아름다운 곁님과 함께 바닷가에 설 수 있고, 빙그레 노래하면서 동무들과 너른 마당에 설 수 있다. 어디에 서려는가. 어디에 서면 즐거운가. 이야기책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는 방송피디 일을 하는 최승호 님이 ‘스스로 어느 자리에 서면서 어떤 말을 할 때에 스스로 아름다운 빛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삶을 보여준다. 어느 자리에 서서 촬영기를 돌리겠는가? 어느 자리에 서서 누구를 만나겠는가? 어느 자리에서 서서 어떤 밥을 먹겠는가? 어느 자리에 서서 아이들한테 어떤 사랑을 물려주려는가? 길은 늘 누구한테나 하나이다. 아름다운 길과 안 아름다운 길이다. 사랑스러운 길과 안 사랑스러운 길이다.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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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의 한국 언론 이야기
최승호.지승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6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3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06월 2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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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이와 철



  나는 어릴 적부터 ‘나이 많은 사람이 두렵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어렵다’고 느낀 적도 없습니다. 그저 그럴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늘 ‘나이·돈·이름·힘’이 많거나 높거나 큰 사람이 앞에 있으면 고개를 숙이라고 했어요.


  국민학교 낮은학년 때였지 싶은데, 조선 무렵 역사를 이야기하던 교사는 예전에 임금 같은 사람이 지나갈 적에 모두 고개를 숙이거나 엎드려야 한다고 했어요. 이때에 고개를 안 숙이거나 안 엎드리면 목아지를 치거나 죽이기까지 했다고 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 우리 사회는 신분과 계급이 없이 평등하다’고 했는데, 내 마음으로는 예나 이제나 똑같이 안 평등하다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권력으로 누가 누구를 죽이거나 괴롭혔다면, 오늘날에는 나이나 돈이나 이름이나 힘 따위로 누가 누구를 죽이거나 괴롭히거든요.


  어릴 적인데, 언젠가 ‘철’이라는 낱말을 동네 어느 할아버지가 알려주었어요. 철이 들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고 했어요. 철이 들 때까지는 모두가 아이라고 했어요.


  이 말을 듣고 할아버지한테 여쭈었지요. 내 나이가 마흔이 되어도 철이라는 것이 들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냐고.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했어요. 다시 여쭈었어요. 내가 할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어도 철이 들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냐고. 할아버지는 또 그렇다고 했어요.


  우리는 현대 물질문명 사회가 되면서 제대로 가르치거나 배우지 못합니다. 아니, 제대로 가르치던 틀이 사라졌고, 제대로 배우던 삶이 사라졌어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어린이’라는 낱말이 새로 태어났고, ‘청소년(또는 푸름이)’이라는 낱말도 새로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새 낱말은 학교에서 씁니다. 그래서, 학교와 사회에서는 ‘아이·학생·어른(성인)’으로 사람을 가릅니다. 무척 오랫동안 ‘학생 표’와 ‘어른 표’로 나누던 사회였어요. 요즘에는 ‘청소년 표’라는 이름이 생겼지만, 시골에서는 아직도 ‘초등학생 표’와 ‘중학생 표’와 ‘고등학생 표’를 가르곤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나이로 보거나 이름이나 돈이나 힘 따위로 보는 틀에 익숙하거나 길듭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사회는 한 가지 재미있어요. 때때로 ‘나이’를 넘어서거나 ‘힘’이나 ‘이름’이나 ‘돈’을 넘어서곤 해요. ‘족보에 따라 몇 대 손’인가를 따질 때에 그래요. 나이는 어려도 항렬이 높으면 ‘어르신’으로 모시면서 높임말을 쓰지요.


  어릴 적부터 이 두 가지 사회 얼거리를 보면서 늘 궁금했어요.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사람을 껍데기(겉)로 갈라요. 이러면서 우리 사회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을 알맹이(속)로 갈라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목숨이고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가 스스로 사람을 갈라야 한다면, 나이라든지 항렬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갈라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철’이라는 것으로 갈라야, 아니, ‘철’로 사람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철은 우리 넋을 가리키는 낱말이면서 날씨를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가리키는 철인 한편, 우리 마음바탕이 어떠한가를 살피는 철입니다. 마음바탕을 살피는 철일 때에는, 마음에 어떤 빛이 있는가를 헤아립니다. 겉(몸)을 살피는 철일 때에는, 우리 몸이 발을 디디며 살아가는 터전인 지구별을 헤아립니다.


  철을 아는 사람은 날씨를 알고, 날씨를 안다고 할 적에는 지구별 흐름을 알고 온누리(우주)를 압니다. 철이 든 사람은 마음을 다스릴 줄 압니다. 마음을 다스릴 줄 알 때에는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지을(창조) 수 있습니다. 날마다 스스로 하루를 새롭게 짓는 사람은 ‘하루가 이어진 하루’를 늘 한결같이 누리고, 하루와 하루와 하루(어제와 오늘과 모레,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언제나 하나인 채 살아요.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꿈을 한 가지 품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예요. 곧, 나는 철이 들어야겠지요. 철을 바라볼 줄 알아야겠고, 철을 느끼면서, 철을 몸과 마음으로 고루 받아들여서 삶을 지어야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나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꽤 되었어요. 나이를 생각하지 않은지. 나이를 생각하지 않으니, 생일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생일도, 우리 집 아이들 생일도, 내 어버이 생일도, 내 동무들 생일도 생각하지 않아요. 너무 마땅히, 내 둘레 사람들 나이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읽을 적에도, ‘책을 쓴 사람(작가)’이 나이가 몇 살인가를 따지지 않아요. 노래를 들을 적에도 노래를 짓거나 부른 사람이 몇 살인가를 따질 일이 없습니다.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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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
이상엽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77



사진을 밝히는 재미

―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

 이상엽 글·사진

 이른아침 펴냄, 2008.11.29.



  찍어야 할 삶을 사진으로 찍는 일을 하는 이상엽 님이 선보였던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이른아침,2008)을 읽습니다. 이상엽 님은 ‘네이버 오늘의 포토’ 심사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상엽 님은 이때에 “하나같이 아름답고 재기발랄한 사진들입니다. 하지만 그 온전한 형식보다 뭔가 부족한 내용에 마음이 걸렸습니다(7쪽).” 하고 느꼈다고 해요.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온전한 형식”이지만 “부족한 내용”이 있다고 느꼈을까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빈틈없이 틀을 맞추거나 만들 때에는 어떤 사진이 될까요. 아니, 빈틈없이 틀을 맞추거나 만들 때에는 ‘사진’이라는 이름조차 쓸 수 없지는 않을까요.


  속에 담은 이야기가 없다면 어떤 사진이 될까요. 아니, 속에 담은 이야기가 없으면 ‘사진’이라는 이름조차 못 쓰지 않나 싶어요. 사진이 아닌 그림도 이와 같거든요. 붓놀림이 대단하다기에 그림이라 하지 않습니다. 이름난 화가가 그렸대서 그림이라 하지 않아요. 속에 담은 이야기가 있을 때에 그림입니다. 속에 담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 노래입니다. 속에 담은 이야기가 춤출 때에 글입니다.


  이상엽 님은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에서 “남의 사진을 인정해야 내 사진도 인정받는다(15쪽).” 하고 말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읽을’ 수 있어야, 내 사진을 나 스스로 ‘읽을’ 뿐 아니라, 이웃과 나눌 수 있다고 느낍니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읽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나 스스로 내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느껴요.


  사진은 남한테서 ‘인정을 받으려’고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나 스스로 ‘읽’고, 내 이웃하고 함께 ‘읽’고 싶어서 찍습니다. 읽히려는 뜻에서 찍는 사진입니다. 나누려는 뜻에서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그러면,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속에 이야기를 담으면서 제대로 읽히도록 하자면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이상엽 님은 “틈날 때마다 그 장면을 연상하고, 어떻게 찍을지 고민한다(17쪽).” 하고 말합니다. 스스로 찍고 싶은 모습을 늘 마음속으로 그립니다. 스스로 찍고 싶은 모습을 언제나 마음속으로 그리기에, 눈앞에서 ‘내가 마음으로 그린 모습’을 마주했을 때에 홀가분하면서 즐겁게 사진기를 손에 쥐어 찰칵 하고 단추를 누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말을 하’지 못합니다. ‘글을 쓰’지도 못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 그림을 그릴 때에 비로소 ‘사랑을 하’거나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마음속에 삶을 그려야 스스로 삶을 짓습니다. 마음속에 그리는 삶이 없으면 스스로 삶을 짓지 못해요.


  사진과 삶은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사진과 삶은 동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안하다’, ‘아름답다’ 등의 느낌은 사진이 단순했을 때 가장 빠르게 파악된다(27쪽).”와 같은 말처럼, 삶에서 우리가 느긋하거나 넉넉하거나 즐겁거나 아름답게 느낄 때를 헤아리면 사진을 잘 알 수 있어요. 우리 삶은 언제 사랑스러운가요? 우리 삶은 언제 넉넉한가요? 우리 삶은 언제 사랑스러운가요? 삶을 가만히 살필 때에 사진을 환하게 알아챕니다. 이론을 배워야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알아야 찍는 사진입니다. 지식을 익혀야 잘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할 때에 사랑스럽게 찍는 사진입니다.


  삶을 빛내는 길을 걷는 사람은 언제나 사진을 빛냅니다. 이리하여, “나는 사진이 자연 환경의 파괴를 막는 도구가 되길 원한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31쪽).”처럼 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삶을 밝히는 새로운 빛을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줍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사진기를 손에 쥐면, 아무런 새 빛을 빚지 못해요.


  독재정권을 휘두르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총칼을 앞세워 전쟁을 일삼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주먹질과 거친 말을 일삼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온갖 따돌림과 푸대접 따위로 사회를 비트는 사람이 사진기를 쥔다고 생각해 보셔요. 이들은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이들은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요? 이들이 찍은 것은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베이징을 짧게 보고 가는 외국인들에게는 자금성과 천안문만 보이겠지만 진정 베이징의 역사와 문화적 풍취를 느끼고 싶다면 후통을 들러 볼 일이다(77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스치는 사람은 스칠 뿐입니다. 머무는 사람은 머물 뿐입니다. 바라보려는 사람은 바라봅니다. 느끼려는 사람은 느낍니다.


  천안문은 무엇일까요? 천안문은 천안문일 뿐입니다. 천안문은 중국 역사가 아니라, 그저 천안문입니다. 그러면 중국 역사는 무엇일까요? 중국 역사는 중국에서 이루어진 삶입니다. 중국에서 이루어진 삶을 보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나야 할까요?


  스스로 생각을 기울일 때에 실마리를 쉽게 찾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할 때에 실마리를 바로 찾습니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은 무엇일까요? 경복궁은 무엇일까요? 조선왕조실록은 무엇일까요? 이런 것들이 한국 역사일까요?


  아닙니다. 아니지요. 남대문은 남대문이고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이런 것은 역사도 아니고 문화도 아닙니다. 그저 이런 것들일 뿐입니다. 한국 역사란 한국에서 이루어진 삶입니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삶이란 무엇일까요? 정치권력자 이름은 삶이 아닙니다. 정치권력자가 전쟁무기를 만들어 벌인 땅뺏기는 삶이 아니요 역사도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일구면서 가꾼 하루가 삶이요, 이러한 삶이 역사입니다. 역사는 책에 없습니다. 역사는 늘 우리 몸과 마음에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 한다면 내 삶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내 삶을 읽으면서 이웃과 동무가 누리는 삶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상엽 님은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에서 여러 사진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짤막하게 몇 마디 주고받은 이야기를 곁들여 ‘사진빛’을 보여줍니다. “강재훈의 사진 인생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가 사진을 찍는 것은 마음속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함이지 꼭 직장에 다니기 위해서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사진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인이고 그것을 잊어 본 적도 없다(213쪽).”와 같은 이야기는 강재훈이라는 분이 빚는 사진빛을 보여주는 말이면서, 이상엽이라는 분이 스스로 빚는 사진빛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마음으로 그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이상엽 님입니다. 그리고, 돈을 벌며 살아야 한다고 느끼는 이상엽 님입니다. 이야기와 돈, 이 두 가지를 늘 돌아보면서 하루를 일구는 이상엽 님입니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은 “지친 몸과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한산한 해변이나 호젓한 숲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드는 건 어떨까? 멋지지 않는가(310쪽)?”와 같은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네, 이 말이 맞습니다. 멋집니다. 바닷가나 숲속에서 읽는 책은 무척 멋집니다. 참말 이렇게 해 보셔요. 바다에 가서 책을 읽어 보셔요. 어마어마하게 잘 읽힙니다. 숲으로 가서 책을 읽어 보셔요. 엄청나게 잘 읽힙니다.


  책에 마음을 쏟아 잘 읽는 분은 서울 한복판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잘 읽습니다. 종로나 압구정동 시끌벅적한 길거리에서도 책을 얼마든지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 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바닷가나 숲에서는 저절로 마음이 모입니다. 바닷가나 숲에서는 우리 둘레에 있는 바람과 나무와 풀과 흙과 물이 우리 몸을 가볍게 건드리면서 싱그럽게 어루만집니다. 이동안 우리들은 티없는 넋이 될 수 있고, 티없는 넋이 되면서 책에 깃든 이야기를 알뜰히 받아먹을 수 있어요.


  바다나 숲이나 멧골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은 까닭을 알 만해요. 아름다운 바다나 숲이나 멧골에서는 나 스스로 그야말로 ‘나다움’, 곧 ‘사람다움’, 그러니까 ‘빛다움’을 깨닫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든, 사진을 찍으면서 즐겁습니다. 사진을 찍는 재미를 맛봅니다.


  사진을 잘 찍고 싶은가요? 그러면 숲으로 가셔요. 숲에 가서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가만히 받아들인 뒤 사진으로 찍어 보셔요. 그리고, 숲을 떠나 ‘내 보금자리’로 돌아가서는, 내 보금자리 둘레에서 내 마음을 설레게 하거나 두근거리게 하는 아름다운 것을 살펴보셔요. 아름다운 것을 느낄 때에 이야기가 자라고, 이야기가 자랄 때에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몽실몽실 피어납니다.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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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눈과 못 보는 눈


  바깥마실을 하느라 여러 날 집을 비울 적에는 온 집안을 치우려고 한다. 남은 밥이나 국이 있는지 살피기도 한다. 밥상에 아무것도 없도록 한다. 그런데, 집일을 도맡다 보니 나는 내가 건드린 것만 볼 뿐, 한식구가 건드린 것은 미처 못 보기 일쑤이다. 어젯밤에 쌀을 씻어서 불릴 때까지 못 알아채다가, 아침에 다시마를 불리려고 국냄비를 열다가, 아차, 곁님이 끓인 누룽지가 곰팡이꽃으로 가득한 모습을 본다.

  어째 못 봤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내가 누룽지국을 끓이지 않았고 먹지 않았으니 이 냄비를 보려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내가 누룽지국을 끓이지 않았으니, 가스불판에 올려놓은 냄비가 다 비었으리라 여기기만 했지, 그래도 다시금 뚜껑을 열어서 살피려 하지 않았구나 싶다.

  나흘 동안 바깥잠을 자고 돌아온 첫 아침이다. 큰아이는 여덟 시 반 즈음 일어난다. 작은아이는 아홉 시가 넘도록 잔다. 오늘 하루는 천천히 가자. 4347.6.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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