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21) 목木 1 : 목백일홍


우리 동네 어귀에 / 목백일홍 한 그루

《정세기-해님이 누고 간 똥》(창비,2006) 56쪽


 목백일홍 한 그루

→ 배롱나무 한 그루

→ 간지럼나무 한 그루



  ‘백일홍’이라는 꽃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 백일홍”이라면서 ‘목백일홍(木百日紅) ’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에서 ‘목백일홍’을 찾아보면 “‘배롱나무’나 ‘배롱나무꽃’을 백일초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은 ‘배롱나무’요, 한국말이 아닌 나무이름은 ‘木百日紅’인 셈입니다.


  시골에서는 ‘배롱나무’를 가리켜 ‘간지럼나무’라고도 합니다. 사람이 손으로 살살 건드리면 나뭇가지가 움직이거든요. 시골에서 이 나무를 두고 ‘목백일홍’이라고 가리키면 못 알아듣습니다. 이런 이름은 우리 나무이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꽃집에서는 어떤 이름을 쓸까요. 나무를 사고파는 사람은 어떤 이름을 쓸까요. 공공기관은 어떤 이름을 쓰고, 학자는 어떤 이름을 쓸까요.


  우리 어른은 아이들한테 어떤 나무이름을 알려주어야 할까 생각해 봅니다. 어린이문학과 어른문학은 나무이름을 어떻게 적을 때에 아름다울까 헤아려 봅니다. 4347.6.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봄은 왜 오지않는가
이기형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58



시와 봄

― 봄은 왜 오지 않는가

 이기형 글

 삶이 보이는 창 펴냄, 2003.10.24.



  저녁에 빨래를 걷는데, 우리 집 마당으로 갑자기 참새떼가 파라락 들어옵니다. 쉰 마리쯤 될 듯한 참새떼는 후박나무에 내려앉다가 헛간 지붕에 앉다가 전깃줄에 앉다가 하면서 놉니다. 너희들,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괜찮구나. 게다가 우리 집은 우리 마을에서 농약 한 방울 안 치는 곳이야. 너희들이 숨을 돌릴 만한 곳이고, 후박알을 따먹든 애벌레를 잡아먹든 재미난 곳이기도 하지.


  깊은 밤에 소쩍새와 휘파람새를 비롯해 온갖 새들이 노래합니다. 새벽이 되니 부지런한 멧새가 깨어나 우리 마을과 집 둘레에서 맑은 노래를 들려줍니다. 곧 처마 밑 제비집에서도 제비들이 깨어나서 돌아다닐 테지요.



.. 80년 전 내 어린 날을 회상한다 / 오늘은 옛날의 시냇가 돌 도마 대신 / 세탁기 버튼만 누르면 / 십여 벌 옷가지도 후딱 빨아버린다 / 트랙터로 수천 평의 땅도 단숨에 갈아 제낀다 ..  (돈때 묻은 오늘을 침 뱉는다)



  새끼 제비는 처마 밑 둥지에서 한참 기다립니다. 몸뚱이가 어른 제비만큼 자랐어도 새끼 재비는 좀처럼 날아오르려 하지 않습니다. 다른 새도 이와 같을까요? 아마, 어느 새이든 비슷하리라 느낍니다. 아무래도 둥지는 처마 밑이든 우듬지이든 나뭇가지이든 높은 곳에 있어요. 뜸부기처럼 논에 둥지를 짓는 새가 있고, 꿩처럼 수풀에 둥지를 마련하는 새가 있지만, 웬만한 새는 높다란 곳에 둥지를 마련해요. 높다란 곳에 둥지가 있으니 아직 날개에 힘이 제대로 붙지 않았을 때에 섣불리 날갯짓을 하다가는 둥지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제대로 날개를 펼쳐 훨훨 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싶어요.


  처마 밑 제비집을 날마다 바라보고 새끼 제비 움직임을 살핍니다. 새끼 제비는 처음 날갯짓을 익혀 둥지를 떠나 빨랫줄이나 전깃줄이나 이곳저곳에 내려앉습니다. 이렇게 한 번 내려앉고서 다시 날갯짓을 해 본 뒤, 십 분쯤 지나면, 집을 떠나요. 홀가분하게 하늘을 가르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하늘을 나는 즐거움을 누리는 제비는 새벽같이 둥지를 떠나서 해가 기울 무렵에 돌아옵니다. 여름이 저물어 찬바람이 불 무렵까지 이렇게 날아다니면서 힘을 기르고 몸을 더 키웁니다. 제비와 함께 찾아오는 봄이 지나고, 새끼 제비가 깨어난 여름이 흘러서, 가을이 코앞에 이르면, 제비는 무리를 지어 태평양을 건넙니다. 머나먼 바닷물을 쉬잖고 날아갑니다.



.. 동강 어라연엘 가 봐도 분통은 풀리질 않아 / 돌아온 들에 봄은 왜 오지 않는가 / 꿈별을 바라 밤마다 통곡한다 ..  (봄은 왜 오지 않는가)



  예부터 봄은 제비와 함께 느낍니다. 옛날부터 봄은 개구리 노래잔치와 함께 느낍니다. 예전부터 봄은 들꽃과 함께 느낍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들은 스스로 제비와 개구리와 들꽃을 잊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들은 제비와 개구리와 들꽃이 깃들 터를 모조리 없애거나 뒤집어엎습니다.


  이제 시골에서도 제비와 개구리와 들꽃을 누리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제비와 개구리와 들꽃을 누리기 어렵지만, 시골에서도 시멘트와 농약이 물결치니, 이들 봄동무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달력에 적힌 숫자로는 틀림없이 봄이라지만, 사회는 봄이 아닙니다. 방송 광고에서는 봄을 외치고, 가게마다 봄 물건을 사고팔지만, 나라는 봄이 아닙니다.


  국가보안법이나 4대강사업이나 한미자유무역협정이나 주한미군이나 밀양송전탑이나 세월호사고 때문에 봄이 봄이 아니지는 않습니다. 이런 짓 때문에도 봄을 봄답게 누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봄에 봄바람을 누리지 못해요. 봄에 봄비를 누리지 못합니다. 봄에 봄볕을 쬐지 못하고, 봄에 봄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여름에는 어떤가요. 여름에 여름바람을 누리는가요,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을 누리는가요. 여름에 여름비를 누리는가요, 수돗물이나 정수기나 페트병을 누리는가요. 여름에 몇 사람이나 여름볕을 쬐는가요. 여름에 몇 사람이나 여름노래를 부르는가요.



.. 신새벽 시를 쓰는데 / 느닷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 검은 제복 셋이 신분증을 내민다 / “경찰입니다.” / 가잔다 / “전화면 되지, 이런 식으루…….” / 나는 나무랐다 / 다리 아픈 아내는 같이 간다고 우긴다 / 옥인동 서울경찰청 보안과로 끌려가니 / 여든 셋의 나를 문초한다 / 도대체 통일하자는 게 뭔 죈가 / 국가보안법이 망가뜨려놓은 막된 세상 ..  (신은 죽었는가)



  1917년에 태어나 2013년에 숨을 거둔 이기형 님은 지난 2003년에 《봄은 왜 오지 않는가》(삶이 보이는 창)라는 이름을 붙여 시집을 선보였습니다. 참말 봄은 왜 오지 않을까요. 참말 우리들은 왜 봄을 헤아리지 않을까요. 참말 사람들은 왜 ‘철’을 잊은 채 철부지로 살아가는가요.



.. 철창 속 0.75평 암흑방 가시방석 32년에도 어쩌면 저리 고운 홍안에 빛나는 눈을 지녔을까 일흔 다섯 나이를 뺨치는 단단한 구슬 몸매 해방 전 일본 동경에서 신문 배달을 하며 사회주의에 경도 독립과 통일의 가시밭길을 헤쳐왔다 ..  (통찰의 더듬이)



  봄이 오지 않는 나라에서 봄노래를 부르지 않으니 봄제비를 맞이하지 않습니다. 봄제비를 맞이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봄꽃과 봄풀을 어깨동무하지 않으니 봄글을 쓰거나 읽지 않습니다.


  봄이 한껏 꽃피우다가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여름입니다. 여름은 한껏 무르익을 테며, 소나기와 뭉게구름과 무지개와 잠자리와 나비와 풀벌레를 잔뜩 이끌면서 찾아오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 여름이 머물 자리는 어디인가요. 이 나라에 여름이 깃들어 춤출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요.


  봄에 봄을 부르는 시를 읽고 싶습니다. 여름에 여름을 꿈꾸는 시를 읽고 싶습니다. 가을에 가을을 사랑하는 시를 읽고 싶습니다. 겨울에 겨울을 그리는 시를 읽고 싶습니다. 4347.6.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걀꽃 물결


  지난해보다 달걀꽃 물결이 이르다. 달걀꽃이 핀 때도 지난해나 그러께보다 훨씬 이르다. 바람이 가볍게 불어도 찰랑이는 달걀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바람이 한 점조차 불지 않아야 꽃물결이 안 일렁이는 달걀꽃잔치를 가만히 바라본다.

  옛날 사람들은 달걀꽃 피는 이 풀을 어떻게 먹었을까. 예전에는 기름이 드물었으니 튀기거나 부쳐서 먹지는 못했을 테고, 절구로 갈아서 풀물을 내어 먹었을까. 풀죽을 쑤어 먹었을까. 달걀과 같은 꽃이 피는 달걀꽃은 줄기와 잎과 뿌리뿐 아니라 꽃송이까지 싱그러운 맛이 흐른다.

  큰아이가 묻는다. “이 꽃은 꽃도 먹어요?” 그럼, 다 먹지. 우리는 민들레잎뿐 아니라 민들레꽃도 먹잖니. 꽃마리나 꽃다지도 꽃송이까지 다 먹고, 봄까지꽃이랑 코딱지나물꽃이랑 별꽃이랑 모두 먹어.

  큼큼 냄새를 맡는다. 한껏 무르익는 여름빛이 스며드는 달걀꽃은 우리 몸에 어떤 기운으로 녹아들는지 헤아려 본다. 4347.6.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일본 만화책



  일본 만화책 《ピアノの森》(講談社)을 한 권 장만한다. 한글판으로 다 읽었지만, 굳이 일본판을 한 권 장만한다. 한글판과 달리 무척 곱고 정갈하며 예쁘기 때문이다. 척 보아도 멋스러우면서 맛깔스러운 기운이 흐른다.


  같은 만화책이라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왜 이만 하게 펴내지 못할까. 한국에서는 만화책을 왜 이처럼 고우면서 멋스럽게 꾸미지 못하는가. 값도 알맞고 무게도 가벼우면서 보기에 좋도록 엮는 만화책 하나는 아이들한테 얼마나 즐거운 빛으로 스며들 만할까.


  겉만 잘 꾸민대서 훌륭한 책이 되지는 않는다. 훌륭한 알맹이를 알뜰히 가다듬어 선보일 때에 훌륭한 책이다. 일본 만화책 《ピアノの森》을 한참 쓰다듬으면서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여느 책이 이만 하게 나올 수 있기를 빈다. 괜히 무거운 종이를 쓰지 말고, 괜히 나무를 많이 베지 말고, 괜히 돈을 많이 들이지 말고, 속빛을 가꾸면서 북돋우는 아름다운 책을 엮어서 선보일 수 있기를 빈다. 4347.6.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ㄱ 책길 걷기
6. 온누리에는 어떤 책이 나올까


  온누리에 온갖 책이 새로 태어납니다. 한국에서도 날마다 여러 가지 책이 태어납니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날마다 나오는 모든 새책을 살피기는 어렵습니다. 지구별 모든 나라에서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사람은 없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로 가르쳐요. 한 학기나 한 해를 두고 교과서 하나로 한 과목을 가르칩니다. 예전에는 참말 교과서가 아닌 책을 학교에서 다루지 않았어요. 오직 교과서 하나만 다루었어요. 오늘날은 예전과 사뭇 달라, 교과서 아닌 책을 제법 다룹니다.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 책’을 따로 장만해서 학교도서관에 두기도 하고 학급문고로 갖추기도 합니다.

  교과서는 ‘간추린 책’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책에 쓴 이야기를 간추려서 엮는 교과서입니다. 책 몇 권으로 흐르는 이야기를 교과서에서는 고작 한 줄로 간추리기도 합니다. 수천 권이나 수만 권에 이르는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를 교과서에서는 한 줄로조차 안 다루기도 합니다.

  교과서를 읽으면서 배우는 사람은 ‘교과서를 본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책을 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책을 보려면 참말 책을 살펴야 합니다. ‘간추린 교과서’가 아닌, ‘그대로 밝히거나 풀어놓은 이야기’를 읽어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책이 수없이 태어나는데, 교과서 하나에만 기댄다면 우리가 무엇을 배울 만한지 생각해 봐요.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는데, 간추린 지식을 담은 교과서에만 머문다면 우리 마음밭이 얼마나 자랄 수 있을는지 헤아려 봐요.

  어느 책은 오래도록 사랑받습니다. 어느 책은 그다지 사랑받지 못합니다. 오래도록 사랑받기에 더 아름다운 책이라고 여길 수 없습니다. 그다지 사랑받지 못했더라도 덜 아름답거나 안 아름다운 책이라 여길 수 없습니다. 권정생 님이 쓴 《몽실 언니》(창작과비평사,1984)는 우리가 어떤 책으로 바라볼 만할까 궁금합니다. 무척 널리 읽히는 책이니 오래도록 사랑받는 책이라고 여길 만할까요. 푸름이와 어린이라면 《몽실 언니》를 한 차례쯤 읽었다고 여길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책을 스무 살이던 1994년에 처음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적이나 중·고등학생이던 때에 이 책을 말하거나 알려주거나 건넨 어른은 없습니다. 스무 살이던 어느 날 책방마실을 하다가 스스로 알아보았어요. 스무 살 나이라면 어린이책은 안 읽을 만하다고 여기는 흐름이 한국 사회에 있지만, 그때 저는 이 책이 문득 끌렸어요. 스무 살이라면 대학생이 되는 나이인데, 다른 동무(대학생)들은 대학교재나 토익책을 옆구리에 꼈지만, 또는 인문사회과학책을 손에 쥐지만, 저는 어린이책 《몽실 언니》를 장만해서 읽었습니다. 제 어린 날과 푸른 날에 만나지 못한 어린이문학이 몹시 궁금했어요.

  “이 산골마을 이름은 댓골이라 했다. 뒷산 골짜기로 보리둑나무가 무성하여 달밤엔 은빛 잎사귀가 아름다웠다(18∼19쪽).” 같은 글월에 밑줄을 긋고는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이런 글월을 가만히 되읽으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투박하거나 수수한 글줄이라 할 테지만, 이렇게 투박하면서 수수한 글줄이 외려 제 가슴을 톡 건드렸어요.

  책을 덮고 한참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사는 곳은 어디인가? 내가 사는 곳은 어떤 이름인가? 내가 사는 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내가 사는 곳에는 어떤 나무가 자라는가? 내가 사는 곳에서 나는 어떤 아름다움을 만나는가?’ 하는 생각이 잇달아 머릿속을 스칩니다.

  “맑은 개울물에 기저귀랑 저고리랑 담그어 놓고 방망이로 토닥토닥 두들겨 빤다. 몽실이와 순덕은 딴 아이들보다 빨래도 잘한다(33쪽).” 같은 글월에 연필로 밑줄을 천천히 긋습니다. 다시금 한참 들여다봅니다. 괜히 눈물이 한 방울 똑 떨어집니다. 아무것도 아닌 글월이라 할 테지만, 그냥 그런 삶을 적은 글줄이라 할 텐데, 이 글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젖었습니다.

  또 책을 덮었지요. 또 한참 생각에 잠겼지요. 예전에는 참말 모두들 맑은 개울물에서 빨래를 했겠다고 떠올렸어요. 제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그무렵, 또 백 해나 이백 해나 삼백 해쯤 앞서, 또 천 해나 이천 해나 삼천 해쯤 앞서, 모두들 맑은 개울물에 옷가지를 펼쳐서 척척 비비고 헹구었겠구나 싶었어요.

  맑은 개울물에 옷을 빨면, 옷은 맑은 개울물 빛깔과 무늬를 얻습니다. 맑은 개울물에 빨래한 옷을 마당에 척 널어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도록 하면, 옷은 따순 볕과 싱그러운 바람이 베푸는 기운을 받습니다.

  온누리에는 그야말로 많은 책이 꾸준하게 태어납니다. 수없이 많은 책은 저마다 어떤 삶을 그린 책일까요. 수없이 많은 책은 저마다 어떤 꿈과 사랑을 노래하는 책일까요. 《몽실 언니》를 쓴 권정생 님은 몽실이 입을 빌어 “배운다는 것은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의 젖은 키를 크게 하고 몸을 살찌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머리가 깨고 생각이 자라게 한다(68쪽).”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엄마젖, 또는 어머니젖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머니한테서 태어납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가 베푸는 젖을 먹고 자랍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이녁 어머니한테서 태어나 으앙 울면서 갓난쟁이 나날을 보냈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시골 이야기를 책에 담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도시 이야기를 책에 싣습니다. 중국에서는 중국 이야기를 책에 쓸 테고, 일본에서는 일본 이야기를 책에 적어요. 한국에서는 한국 이야기를 책에 적바림할 테고, 역사학자는 역사 이야기를 책으로 펼칠 테며, 과학자는 과학 이야기를 책으로 선보일 테지요. 시골에서 자라는 사람은 어떤 책을 찾아서 읽을 만할까요.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어떤 책을 찾아서 읽을 만한가요. 온누리에는 그야말로 수없이 많은 책이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데, 거의 모든 책은 도시를 겨냥합니다. 시골을 바라보며 태어나는 책은 드뭅니다. 시골을 이야기하거나 시골살이를 밝히는 책은 아주 드물어요.

  두 다리로 걸어서 책방에 가 봅니다. 커다란 책방이든 자그마한 책방이든, 책방마다 가장 많이 쌓인 책은 ‘책이 아닌 교재’입니다. 학교에서 다루는 수험서가 책방마다 가장 많이 있습니다. 문제집과 참고서가 책방에서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치는 지식을 더 잘 익혀서 시험문제를 더 잘 풀고는 점수를 더 잘 받도록 꾀한다는 교재가 책방마다 가장 많아요.

  《몽실 언니》에서는 “몽실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도 그 애처럼 꽃을 꺾어 팔아서라도 떳떳하게 살까 봐.’ 여태 몽실이 살아온 건 모두 부끄러운 일뿐인 것 같았다. 얻어 먹고 살아온 것만 같았다. 몽실은 찬거리를 사들고 부랴부랴 꽃 파는 애한테 갔다. 그러나 거기 꽃 파는 애는 없었다(188쪽).”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몽실이는 학교 문턱을 밟지 못합니다. 몽실이는 어릴 적부터 배를 곯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씁니다. 어린 동생을 바라지합니다. 늙고 아픈 아버지를 수발합니다. 몽실이한테는 책이 없고, 교과서도 없습니다. 시험공부도 대학교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 삶이 있습니다. 살아가려는 몸짓이 있습니다. 살면서 누리고 싶은 사랑이 있습니다. 살면서 누리고픈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빛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책방마다 교재가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하니까, 우리들은 문제집과 참고서를 늘 옆구리에 끼면서 지낼 때에 아름답다고 할 만한지 궁금하곤 해요.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를 다루니, 열두 해에 걸쳐 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과서만 잘 익히면 될는지 궁금하곤 해요.

  온누리에는 왜 새로운 책이 날마다 꾸준히 태어날까요. 이웃나라에서도 한국에서도 왜 꾸준하게 새로운 책을 펴낼까요. 교과서가 있어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가르치지만, 왜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교과서 아닌 책’을 읽으라고 이야기하는 어른이 많을까요.

  《몽실 언니》는 어린 몽실이가 마흔 살을 살며시 넘은 어느 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끝을 맺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셔요. 열다섯 살인 내가 앞으로 마흔 살 언저리에 이르면,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요. 스무 살인 내가 앞으로 마흔 살 즈음이 되면, 어디에서 어떤 눈빛으로 이웃과 마주할까요.

  “난남은 안네를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몽실이도, 죽은 금년이 아줌마도, 한국의 모든 여자들은 안네 같다고 생각했다(261쪽).”와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되새깁니다. 온누리에서 새로 태어나는 책은 한결같이 한 가지를 밝히려는 뜻이리라 느낍니다. 바로 ‘사랑’을 밝히려고 하지 싶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길을 밝히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길을 밝히며, 나와 네가 우리로 어깨동무하면서 새롭게 빚을 사랑을 밝히려는 책이지 싶습니다. 4347.6.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책과 함께 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