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노래 22. 언제라도 노래하지



우리 집 사름벼리

언제라도 노래하지.

즐겁게 뛰놀고 맑게 웃으면서

착하고 예쁜 아이

하늘 보고 구름 보며 송알송알

취나물 먹고 마삭줄꽃 보며 방긋

오월에 내리는 비에

논마다 개구리소리 가득하고

새근새근 자는 동생 곁에서

다 함께 곱게 꿈꾼다.



2014.5.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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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다섯 차례 누고


  네 살 작은아이가 아침부터 똥을 다섯 차례 눈다. 처음 눈 똥과 셋째 눈 똥은 꽤 많다. 둘째와 넷째로 눈 똥은 적었고, 다섯째로 눈 똥은 묽다. 손님이 여럿 찾아와서 여러 날 그야말로 신나게 잠까지 좇으면서 놀더니, 천천히 몸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손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에는 천천히 놀고, 천천히 먹다가, 천천히 하품을 하고는 혼자 잠자리로 걸어가서 이불을 스스로 덮고 눕는다. 자면서 왼쪽에 장난감 자동차를 놓는다.

  그러고 보면, 나도 작은아이만 하던 때부터 열 살 언저리까지, 또는 그 뒤로도 잠자리에 장난감을 놓았지 싶다. 꿈에서도 이 장난감하고 함께 놀고 싶다고 생각했지 싶다.

  일곱 살 큰아이는 똥을 한 차례 푸지게 눈다. 더 누지는 않는다. 큰아이도 작은아이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논다. 가볍게 먹고, 가볍게 말하며, 가볍게 노래한다. 큰아이도 곧 작은아이 곁에 눕겠지. 아버지는 곧 작은아이 곁에 누울 생각이다. 큰아이도 더 버티지 말고 느긋하게 잠자리에 들어 여러 날 마음껏 움직인 몸을 넉넉하게 쉬어 주기를 빈다. 4347.7.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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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모두 떠난 뒤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고흥집에 마실을 온 손님들이 모두 떠난다. 손님이니, 며칠 머물다 떠날밖에 없다. 떠날 날을 생각하며 찾아온 이웃이니 떠날 수밖에 없는데, 손님이 머물다가 떠나고 나면 한참 온갖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오늘은 손님이 떠나고 난 뒤에 생각을 펼칠 겨를이 없다. 치워야 할 것이 많고, 쓸고 닦을 일도 많다. 비가 그치지 않아 빨래를 조금만 하지만, 해야 할 빨래도 많다. 부엌에 놓은 냉장고 옆을 그동안 안 치우고 그대로 두었는데, 오늘 드디어 곁님 눈에 걸렸다. 해묵은 먼지를 닦고 쓴다. 비가 그치고 날이 맑으면 마저 더 치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둘이 서로 잘 논다. 며칠 동안 함께 놀이동무가 된 아주머니와 이모와 언니 오빠 들이 하나도 없지만, 둘은 씩씩하게 뛰어논다. 졸음이 잔뜩 쌓였을 듯한데, 이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고단함과 아쉬움을 풀려고 놀지 싶다. 나도 어릴 적에 이와 같았다. 손님이 떠나고 난 뒤 어머니는 언제나 청소와 치우기를 하느라 바쁘셨고, 형과 나는 어머니 곁에서 청소와 뒷일을 거들었다. 어머니는 어느 만큼 치우고 난 뒤 허리를 펴면서 밥을 끓여서 우리를 먹였고, 어머니가 밥을 끓이는 동안 형과 나는 신나게 놀다가, 밥을 먹고 나면 그야말로 졸음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이때에 어머니도 자리에 누워 쉬신다.

  곁님이 먼저 자리에 눕는다. 나도 자리에 누울까 하다가, 땀으로 젖은 옷부터 갈아입고 씻어야겠다고 느낀다. 그러고 보니, 내 웃옷과 바지는 어제 빨래터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적신 옷을 말린 채 그대로 입고 안 갈아입은 차림이다. 몸을 씻으면서 빨래를 한다. 내 웃옷은 살짝 넉넉하니 반바지만 빤다. 쌓인 옷가지 가운데 아이들 양말과 속옷과 손닦개 두 벌과 곁님 바지를 빨래한다. 물을 짠 옷가지를 집안 곳곳에 넌다. 비는 그치지 않는다. 바람이 가끔 드세게 불다가 조용히 가라앉는다. 놀러온 아이들한테 먹이려고 흰쌀을 씻어서 불렸는데, 아이들은 감자랑 고구마랑 달걀이랑 다른 것을 먹었다. 불린 흰쌀은 우리 아이들이 먹어야겠구나.

  여러 손님들이 오셔서, 또 이번 손님은 여러모로 생각이 깊은 분들이라서, 이번에는 손님한테 풀물을 짜서 한 잔씩 드리고 싶었는데,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풀을 뜯을 겨를을 내지 못했다.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나들이를 오시리라 믿는다. 그때에 느긋하게 풀을 뜯어서 물을 짜자고 생각한다. 언니 오빠하고 개구지게 뛰논 아이들이 한 뼘씩 자란 듯하다. 나와 곁님도 한 뼘씩 자랐을까? 자랐겠지. 4347.7.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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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47] 아이한테 주는 이름


  우리 집 두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름벼리’와 ‘산들보라’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두 이름은 아이 어머니가 지었다 할 만하고, 어버이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밝히려고 생각한 끝에 나온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나이가 어리기에,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이름을 씁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스스로 제 이름을 찾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한테서 받은 이름을 오래오래 써도 즐겁고, 아이가 스스로 삶을 찾으면서 빚은 이름을 새롭게 써도 기쁩니다. 이름은 스스로 어떤 삶으로 나아가려 하는가를 들려주는 노래이거든요. 큰아이 ‘사름벼리’는 ‘사름 + 벼리’라는 얼거리입니다. ‘사름’은 시골 들에서 볍씨를 키워 싹을 틔운 뒤 논에 심고 나서 이레쯤 지나 뿌리를 튼튼히 내리면서 잎사귀에서 맑고 밝게 흐르는 빛을 가리킵니다. ‘벼리’는 시골 바다에서 고기를 낚으면서 살림을 가꾸려 할 적에 쓰는 그물을 이루는 코 가운데 하나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사름벼리’는 들살림과 바다살림이 어우러진 이름이요, 아름답게 살아갈 시골빛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어요. ‘산들보라’는 ‘산들 + 보라’예요. ‘산들’은 산들바람을 가리키지만, ‘메(산)’와 ‘들’을 가리킨다고도 할 만해요. 산들바람이란 지구별에서 모든 목숨한테 가장 싱그러우면서 시원하고 포근한 바람입니다. ‘보라’는 마음속을 보라는 뜻, 곧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보라’는 눈보라나 꽃보라 같은 데에서 쓰는 ‘보라’를 가리킨다고도 할 만해요. 다시 말하자면 ‘산들보라’는 사람이 오롯이 서는 길을 밝히는 삶빛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남 고흥 시골자락에서 살아가는 우리 네 식구가 아이한테 선물한 두 가지 이름은 참말 우리들 삶노래입니다. 4347.7.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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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죽 찢어진 왼팔



  내 오른손은 사마귀로 뒤덮였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내 왼팔은 손목 언저리부터 어깨에 이르기까지 죽 찢어진 적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몇 학년 무렵인지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국민학교 이학년이나 삼학년 무렵이었지 싶습니다. 그때 동무들은 서로 ‘담력 내기’를 곧잘 했습니다. 그무렵 살던 동네는 5층짜리 아파트가 열다섯 동이 모인 공동주택단지였는데, 모래밭 놀이터가 두 군데 있었고, 공동주택인 아파트에 공동난방을 하면서 나오는 연기를 내뿜는 커다란 굴뚝이 둘 있었어요. 아파트 지킴이 할배가 알아채면 무섭게 다그치며 나무라지만, 우리들은 5층 아파트보다 더 높이 솟은 굴뚝에 붙은 사다리를 타고 몰래 올라가면서 놀곤 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에 전기를 넣으려면 변압기인지 전압기가 있어야 했으니, 이 시설이 놀이터 구석에 있었고, 쇠가시그물로 높게 울타리를 쳤어요. 그런데, 이 쇠가시그물 맨 위쪽은 5센티미터쯤 판이 놓였습니다. 쇠울타리를 버티는 판이었겠지요. 이 판 둘레로 날카롭고 뾰족한 쇠가시그물이 잔뜩 있었는데, 동무들 사이에서 쇠울타리를 잡고 올라가서, 위쪽 5센미터밖에 안 되는 좁다란 판을 걷는 ‘담력 내기’를 하곤 했어요. 거의 모두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놀이터 모래밭으로 펄쩍 뛰어내렸는데, 나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갈 수 있어!” 하고 외쳤어요.


  어디에서 이런 마음이 솟았을까요. 동무들은 “그럼 해 봐!” 하고 소리쳤고, “얼마든지 하지!” 하면서 척척 쇠울타리를 잡고 올라가서, 좁은 판을 천천히 한 걸음씩 떼면서 걸었습니다. 아주 많이 걸었어요. 동무들은 모두 입을 헤 벌리며 놀랐습니다. 그런데, 아주 많이 걷다가 거의 끝에 다다를 무렵 그만 미끄러졌어요. 미끄러지면서 몸이 흔들렸고, 몸이 흔들리면서 모래밭으로 쿵 떨어졌는데, 쿵 떨어지면서 날카롭고 뾰족한 쇠가시그물에 왼팔이 깊고 길게 찢겼습니다.


  떨어지면서 거의 넋을 잃었지 싶어요. 그래도 죽지는 않았다고 느꼈어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어떠한 모습도 보지 못했어요. 그저 내 둘레로 동무들과 아이들이 몰려들어서 울고 소리치는 모습만 멍하니 보았어요. 그 다음에는 우리 형이 어머니한테서 크게 꾸지람을 듣는 소리와 모습을 멍하니 보았고, 그 다음에는 병원에 드러누운 모습을 보았어요.


  나는 이때 일이 아주 커다랗게 아로새겨졌기에 국민학교 높은학년에서도 중·고등학생 때에도, 나중에도 어머니와 형한테 이 얘기를 하곤 하는데, 아무도 이때 일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나더러 거짓말을 지어서 한다고 말합니다.


  문득 돌아보면, 이무렵부터 나는 ‘내 몸을 떠나서 나를 바라보기’를 할 수 있었는지 몰라요. 내 몸에서 아픈 데를 느끼지 못하면서 나를 보았으니, 내 몸을 떠나서 나를 보았겠지요.


  그동안 잊던 한 가지가 얼마 앞서 생각났는데, 어머니는 나더러 내 왼팔을 쳐다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내 왼팔이 너무 길고 깊게 찢어져서 도무지 꿰맬 수 없다 했어요. 나이가 어려 마취를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어머니가 나한테 했던 말은 “거기 쳐다보지 마. 다 괜찮아. 다 나아.”였지 싶어요. 나는 이 말을 듣고는 깊이 잠들었고, 병원에서 나와 학교를 다시 다닐 적에도 왼팔을 쳐다보지 않으며 지냈습니다. 자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살았어요.


  이렇게 한참 지내다가 왼팔이 찢어졌다는 생각까지 잊던 어느 때, 내 왼팔을 문득 보았는데, 감쪽같이 생채기가 사라졌습니다. 딱히 왼팔에 무엇을 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어머니가 날마다 소독만 해 주었겠지요. 오십 센티미터 남짓 찢어졌을 텐데, 이 생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생채기는 왜 나한테 왔다가 사라졌을까요.


  내 왼팔이 찢어졌다가 아문 지 서른 해쯤 됩니다. 이제 나는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버지입니다.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어딘가를 다칠 적에, 피가 나거나 찢어지거나 할 적에, 아이들한테 늘 말합니다. “괜찮아. 다 괜찮아. 다 나아. 그러니 그냥 놀아.” 4347.7.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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