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나들이



  인천에 있는 경인방송으로 나들이를 한다. 경인방송에서 들려주는 어느 라디오 방송에 나가기로 한다. 전남 고흥에서 인천은 아주 멀다. 마침 아이들과 일산으로 치과 진료를 받으러 가는 길이니 인천에 살짝 들른다. 방송국 녹음을 한달음에 마친다. 들려줄 말을 들려준다는 생각이었으니 녹음이 엇나가거나 늘어지거나 길어질 일이 없다. 술술 물이 흐르듯이 이어진다.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나오니, 아이들은 방송국 피디 언니하고 논다. 아버지가 앉던 자리에 저희들은 서서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른다. 너희는 방송국 첫 나들이를 이렇게 즐기는구나. 그러고 보니, 방송국에서는 너희가 아무리 쿵쿵 뛰어도 소리가 안 퍼지기도 하는구나. 도시에 가득한 아파트도 방송국처럼 단단하거나 야무지게 지으면 위층과 아래층 사이에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고단한 일이 없을 텐데. 아파트를 짓는다 하더라도 백 해나 이백 해쯤 거뜬할 만큼 지으면 예쁠 텐데. 마침 방송국에는, 노래하는 박완규 님이 현장방송 중계를 한다. 아이들은 박완규가 누구인지 모른다. 아이들은 다른 배우가 연기자도 모른다. 누구나 똑같은 어른이다. 아이들한테는 누구나 똑같은 아저씨이거나 아주머니이다. 방송국에서 잘 놀다가 돌아간다. 4347.7.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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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가방 따뜻한책 3
김형준 지음, 김경진 그림 / 어린이아현(Kizdom)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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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8



나는 너를 사랑하지

― 찢어진 가방

 김형준 글

 김경진 그림

 어린이아현 펴냄, 2012.8.10.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책을 좋아하면 책을 읽습니다. 이 책과 저 책을 읽기도 하고, 어느 책 한 가지만 애틋하게 여겨 수없이 되읽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책이 헐거나 다쳐도 똑같이 읽습니다. 어른들도 그래요. 어른들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는 책을 알뜰히 읽습니다. 종이가 낡거나 삭아도 거리끼지 않습니다. 빳빳한 책이건 묵은 책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책을 읽을 적에는 알맹이를 읽습니다. 껍데기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 어머니한테서 물려받거나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책을 즐겁게 ‘알맹이’를 읽습니다.


  아이들이 뛰놀다가 넘어집니다. 무릎이 까지거나 손바닥이 벗겨집니다. 때로는 이마를 찧기도 하고 군데군데 생채기가 납니다. 아이들은 다쳐도 똑같이 아이들입니다. 얼굴이 말끔해도 아이요, 얼굴이 생채기투성이라든지, 개구지게 바깥에서 뛰노느라 온통 새까맣게 탔어도 똑같이 아이입니다.


  내 이웃과 동무는 언제나 내 이웃과 동무입니다. 이녁이 가난하건 가멸차건 늘 같습니다. 돈이 있대서 더 나은 이웃이 아니요, 돈이 없대서 덜 좋은 이웃이 아닙니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반가운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 쭈구리, 짱구, 삐주기, 등딱지, 통크니. 주인이 가진 가방들의 이름이에요. 주인은 가방에 이름 짓기를 좋아했어요 ..  (2쪽)





  양말을 기웁니다. 옷가지를 기웁니다. 가방을 기웁니다. 즐겁게 입는 옷을 즐겁게 기웁니다. 무릎에 난 구멍을 때웁니다. 덜렁거리는 끈을 기우지요.


  오래 쓴 손닦개는 많이 헙니다. 많이 헌 손닦개는 이제 걸레로 씁니다. 손과 낯과 몸을 닦던 손닦개는 방바닥을 훔치는 걸레로 살아갑니다. 손닦개일 적에도 늘 내 손에 닿고 걸레일 적에도 언제나 내 손으로 만집니다.


  이가 빠져도 접시는 접시입니다. 이가 나가도 물잔은 물잔입니다. 이가 빠진 접시를 언제 어떤 마음으로 장만했는지 가만히 헤아립니다. 아이들이 밥상에서 떨어뜨려 모서리가 깨진 종기에 된장을 담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너희들은 우리 식구와 얼마나 오랜 나날 함께 지냈느냐.


  함께 살아오면서 이야기가 스밉니다. 함께 지낸 나날에 따라 이야기가 깃듭니다. 살림살이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름살마다 이야기가 있어요. 손금에도 이야기가 서려요. 스스로 꿈으로 품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나누던 이야기가 흐릅니다.



.. 주인 언니의 ‘버리라’는 말에 예쁘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하지만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괜찮아, 꿰매 쓰면 되지 뭐.” ..  (11쪽)




  김형준 님이 글을 쓰고 김경진 님이 그림을 그린 《찢어진 가방》(어린이아현,2012)을 읽습니다. 어느 가방이든 처음부터 찢어진 가방은 없습니다. 어느 가방이든, 찢어지거나 안 찢어지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알뜰히 아끼면서 들고 다니면 사랑스러운 가방입니다. 사람들이 함부로 다루거나 굴리면 슬픈 가방입니다. 생김새가 멀끔해야 사랑스러운 가방이 아닙니다. 값나거나 비싸야 사랑스러운 가방이 아닙니다. 값이 나간다면 값이 나가는 가방일 뿐이고, 비싸다면 비싼 가방일 뿐이에요.



.. “여기가 쓰레기통인 줄 아나?” “들켰다간 바로 버려질걸.” “주인이 찾으려고나 하겠어? 아무도 새 주인이 되려고 하지 않을 거야.” 예쁘니는 못된 말만 해대는 핑크들을 보면서 자기가 무시하던 친구들이 생각났어요. “아, 다시 볼 수 있을까?” ..  (24쪽)



  우리 집 일곱 살 아이가 스티커 한 장을 놓고 동생하고 다툽니다. 우리 집에 놀러온 이웃 언니가 큰아이한테 준 스티커라며 큰아이는 몹시 아낍니다. 네 살 작은아이는 누나가 혼자 갖고 노는 스티커를 저도 만지면서 같이 놀고 싶습니다. 작은아이한테는 ‘그냥 스티커’이고, 큰아이한테는 ‘같이 논 예쁜 언니가 선물한 스티커’입니다.


  그런데, 작은아이는 알까요. 작은아이가 입은 웬만한 옷은 누나한테서 물려받았습니다. 작은아이가 꿰는 신 가운데에도 누나한테서 물려받은 신이 제법 있습니다. 큰아이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웃 언니나 오빠한테서 물려받은 옷과 신이 꽤 많습니다. 두고두고 여러 아이들이 사랑스레 누린 기운이 깃든 옷을 찬찬히 물려받고 물려줍니다. 오래오래 여러 어버이들이 사랑스레 돌본 넋이 담긴 옷을 하나둘 물려받고 물려줍니다.


  새 것을 선물할 적에는 새 것이기에 반갑습니다. 쓰던 것, 이른바 헌 것을 선물할 적에는 손길을 탄 것이기에 즐겁습니다. 새 것을 선물하면, 이제부터 하나씩 새로 엮을 이야기가 있습니다. 쓰던 것을 선물하면,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일군 이야기에 내가 새롭게 이야기를 보탭니다.




.. 경찰관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어요. “가방이 찢어졌는데도 찾으러 오셨네요.” 주인이 대답했지요. “그럼요! 제 가방이니까요.” ..  (31쪽)



  지구별이 흐릅니다. 해마다 풀이 돋고 꽃이 피며 씨앗이 맺습니다. 나무가 해마다 자랍니다. 지구별은 해마다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데, 새로운 봄에 피어나는 꽃과 풀은 모두 ‘헌 땅’에서 ‘헌 흙’을 거름으로 삼아서 자랍니다. 사람들이 남새를 일구면서 밭에 내는 거름은 모두 ‘헌 숨결’이라 할 만합니다. 헌 숨결을 받은 씨앗들이 새롭게 자라지요.


  가만히 헤아리자면, 새 것과 헌 것은 따로 없습니다. 새 것은 언제나 헌 것이 되고, 헌 것은 늘 새 것으로 거듭납니다. 내 손길을 받으면 새롭습니다. 내 눈길을 받으면 새삼스럽습니다. 내 마음길을 받으면 사랑스럽고, 내 꿈길을 받으면 아름답습니다.


  밥그릇도 젓가락도 헌 것이 아닙니다. 늘 쓰는 애틋한 것입니다. 집도 옷도 헌 것이 아닙니다. 오래오래 살면서 살가운 보금자리가 되고 살뜰한 살림살이가 됩니다. 빗자루도 바구니도 밥상도 선풍기도 모두 우리 곁에서 오순도순 지내는 벗님이고 동무입니다. 4347.7.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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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본 은행알



  시외버스를 타고 일산 시내에서 서울 시내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은행나무를 본다. 은행나무가 참 잘 자랐구나. 밤에도 등불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기 힘들 텐데 씩씩하게 잘 크는구나. 가지를 뻗고 잎을 돋우며 열매를 맺네. 간판을 가릴 만큼 푸르게 우거지네.


  그래, 간판쯤 얼마든지 가리렴. 그래, 건물도 높다란 아파트도 모조리 가리렴. 네 푸른 그늘을 나누어 주렴. 사람들이 에어컨에 기대지 말고 네 곁에서 잎바람을 마시고 풀바람을 머금도록 해 주렴. 삶을 밝히는 싱그러운 빛을 네 곁에서 누리도록 해 주렴.


  사람들이 알아보건 안 알아보건 은행나무는 자란다. 사람들이 쳐다보건 안 쳐다보건 은행알은 굵게 맺는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가득한 도시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나무들이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니, 이 도시에서 온 목숨을 살리는 바람이 분다. 4347.7.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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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50] 꽃이 되는 이야기



  듣는 사람이 있어

  함께 피어나는

  이야기.



  꽃은 외곬로 피어나지 않습니다. 햇볕과 바람과 비와 흙이 골고루 어우러지기에 꽃이 피어납니다. 꽃이 피어나서 씨앗을 맺는 동안 꽃은 잎으로 바람을 한결 싱그럽게 보듬고 햇볕과 비를 머금은 줄기이며 잎이며 씨앗이며 흙한테 내주면서 흙이 새롭게 깨어나도록 돕습니다. 이야기는 외곬로 흐르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함께 흐릅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아끼는 마음일 때에 이야기가 됩니다. 말하는 사람은 이녁 말로 이웃한테 사랑을 베풀고, 듣는 사람은 이녁 매무새로 이웃한테서 사랑을 받습니다. 4347.7.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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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빛



한 땀으로 노래를 부르고

두 땀으로 춤을 추고

석 땀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넉 땀으로 사랑을 퍼뜨리고

닷 땀으로 꿈을 이루는

구슬땀 손뜨개.


여섯 땀으로 씨앗을 심고

일곱 땀으로 무지개를 엮고

여덟 땀으로 풀밥을 먹고

아홉 땀으로 삶을 짓고

열 땀으로 아이와 노는

밝은 손빛.



4347.7.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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