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혼자 내려가겠어



  살짝 가파른 길을 아버지 손을 잡고 내려온 산들보라가 골짜기를 코앞에 두고는 아버지 손을 놓는다. 꽤 커다란 바윗돌을 혼자 손을 딛고 내려가겠다고 한다. 누나 뒤를 따라 골짜기로 가겠단다. 그래, 좋아. 숲속에서는 네 온몸으로 이것도 만지고 저것도 짚으면서 다녀야지. 네 아버지는 늘 네 곁에 있으니 네 마음대로 어디이든 돌아다니면서 모든 숨결을 받아먹어라.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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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가 바라보는 골짜기



  큰비가 오래 내리면 골짝물이 붓는다. 골짝물이 크게 불어나면 그야말로 물이 넘친다. 일곱 살 사름벼리가 묻는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많이 흘러? 비가 안 오면 물이 적게 흘러?” 골짜기를 찾아가는 동안 가늘게 듣던 골짝물 소리인데, 골짜기 앞에 서니 귀가 멍하도록 물소리가 터진다. 그리 커다랗지 않은 골짜기이지만, 이 작은 골짜기에서도 물소리는 우렁차고 싱그럽다. 아이한테는 아직 골짝물 소리가 살짝 두려울 수 있을까.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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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산호초
미리엄 모스 지음, 강이경 옮김, 에드리언 캐너웨이 그림, 박종영 감수 / 서돌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7



여기는 어디인가요

― 여기는 산호초

 미리엄 모스 글

 에드리언 캐너웨이 그림

 강이경 옮김

 서돌 옮김, 2008.7.5.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언제나 나무를 이야기합니다. 구름을 바라보는 사람은 늘 구름을 이야기합니다. 풀벌레를 바라보는 사람은 노상 풀벌레를 이야기합니다. 자동차를 바라보는 사람은 언제나 자동차를 이야기하고, 아파트를 바라보는 사람은 늘 아파트를 이야기하며, 신문을 바라보는 사람은 노상 신문에 나오는 사건·사고를 이야기합니다.


  숲을 바라보며 살기에 숲빛을 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살기에 하늘빛을 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살기에 바다빛을 품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바라보는 대로 마음에 빛 한 줄기를 품습니다. 더 좋거나 더 나쁜 빛은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가꾸는 빛이요, 스스로 일구는 빛입니다.



.. 오랜 세월 서서히 만들어진 눈부신 산호와 수없이 많은 작은 생명으로 가득한 곳 ..  (4쪽)





  이 도시가 저 도시보다 좋지 않습니다. 이 시골이 저 시골보다 낫지 않습니다. 작은 도시이건 커다란 시골이건 스스로 살아가는 터전일 뿐입니다. 어느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건 스스로 돌보면서 보듬는 삶자리입니다.


  바람이 붑니다. 숨을 쉬는 모든 목숨을 살리는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모든 목숨은 숨을 거둡니다. 바람이 불기에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에서 푸른 바람이 불어 매캐한 도시를 보듬습니다. 매캐한 도시를 떠돌던 바람이 푸르게 우거진 숲으로 날아가면, 매캐한 기운을 푸르게 우거진 숲이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다독입니다.


  예전에는 어디에서나 한여름에는 풀벌레 노래잔치였습니다. 그야말로 풀벌레 나라였다고 해도 될 만했습니다. 이러면서 개구리도 노래잔치를 벌였어요. 한여름 밤은 귀를 살짝 기울이면 밤새 아리따운 노래가 가득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도시에서는 풀벌레도 개구리도 멧새도 노래할 수 없습니다.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가 깃들 흙땅이 거의 모두 사라집니다. 시골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뿌려대는 농약 때문에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가 죽습니다.



.. 부드럽게 흔들리는 바다, 맑은 산호 밭을 노니는, 물고기들이 잔치를 벌이는 곳 (7쪽)




  미리엄 모스 님이 글을 쓰고, 에드리언 캐너웨이 님이 그림을 그린 《여기는 산호초》(서돌,2008)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나는 이 그림책을 헌책방에서 장만합니다. 새책은 벌써 판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고운 빛이 흐르는 예쁜 그림책이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하고는 걸맞지 않아 쉬 판이 끊어졌지 싶습니다. 고운 빛이 흐르는 예쁜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들은 고운 빛하고 등지며 예쁜 삶터를 가꾸는 길하고는 엇나가기에 이 책을 알아보는 손길이 얼마 없지 싶습니다.


  참으로 마땅하지요. 산호초는 어디에 있을까요? 아무 데나 있지 않겠지요. 지저분한 바다에 산호초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쓰레기를 날마다 엄청나게 쏟아붓는 도시가 곳곳에 있으면 산호초가 자랄 턱이 없습니다.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바닷가마다 때려짓는데 산호초가 숨쉴 턱이 없습니다. 해군기지와 둑 공사와 4대강사업 따위가 춤을 추니 산호초가 살아남을 턱이 없습니다.


  만화영화 〈폰효〉에도 잘 나옵니다만, 사람들 스스로 온통 쓰레기더미인 터전에서 살아가니, 뭍에도 바다에도 쓰레기만 넘실거립니다. 쓰레기차가 하루라도 쓰레기를 안 치우면 어떻게 될까요? 청소부가 하루라도 쓰레기를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소각장에서 하루라도 쓰레기를 태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들은 눈부신 문명이나 문화를 누리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쓰레기와 나란히 있으면서 날마다 어떤 쓰레기를 얼마나 버리는지 모르는 채 쳇바퀴를 돕니다.



.. 바다가 산처럼 높이 솟아올라, 사납게 부서지며, 산호초를 산산조각 내는 곳 ..  (21쪽)




  여기는 어디인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어디인가요. 도시는 도시대로 쓰레기 나라입니다. 시골은 시골대로 쓰레기 누리입니다. 시골에서는 마을 할매와 할배가 농약병과 비료푸대를 아무 데나 버립니다. 못 쓰는 가전제품을 논도랑에도 버리고, 뒷산이나 앞산 기슭에 짐차에 싣고 와서 퍼붓곤 합니다. 시골 아이들이건 도시 아이들이건 과자 빈 껍데기나 음료수 빈 깡통을 아무 데나 버립니다.


  땅에서 스스로 거둔 먹을거리를 손수 갈무리해서 먹을 적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가게에서 돈을 치러 무언가 장만하면 곧바로 쓰레기가 나옵니다. 돈으로 무언가를 사고팔 적에 어김없이 쓰레기가 나옵니다. 스스로 삶을 짓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쓰레기 굴레에 갇힙니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우리 보금자리인가요. 우리 마을인가요. 우리 나라인가요. 우리 지구별인가요. 우리 누리인가요. 우리 우주인가요. 아니면, 남이 사는 터인가요, 내가 사는 터인가요.


  인천 앞바다에 조기가 다시 찾아올 날은 언제쯤이 될까 궁금합니다. 서울 시내 골골샅샅 제비가 다시 찾아갈 날은 언제쯤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이 나라 어디에서나 무지개와 미리내를 마음껏 올려다보다가 개똥벌레 불꽃춤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이 되려나 궁금합니다.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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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과 개미 한 마리



  윤 일병이 군대에서 두들겨맞아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어제 처음 들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을 뿐 아니라, 어떤 사건이나 사고 이야기도 인터넷으로 안 보니까 몰랐는데, 내 누리집에 누군가 글을 남겨 주었기에 비로소 알았다. 내 여러 누리집 가운데 하나에 윤 일병 이야기를 남긴 분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잘 밝힌 글’도 아니고 ‘뭔가 광고하는 스팸글’이었는데, 스팸글이었어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얼마 앞서 ‘완전무장지대(비무장지대)’에서 총을 쏜 일이 있었잖아? 다른 일이 또 있었나?


  고흥 시골에서 인터넷으로 윤 일병 이야기를 살펴본다. 하나하나 살펴볼수록 쓸쓸하고 씁쓸하며 슬프다. 아니, 윤 일병이 얻어맞은 이야기는 1995∼97년에 내가 군대에 있을 적에 흔히 있던 주먹다짐보다는 조금 옅지만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잖아?


  윤 일병이 받은 가혹행위 가운데에는 ‘주디를 벌리고 물을 처넣는 짓’도 있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하기도 하지. 그런데 내가 있던 완전무장지대에서 흔히 하던 가혹행위 아닌 ‘후임병 사랑하기(?)’로 뭐가 있었느냐 하면, ‘건빵 한 봉지 먹이기’가 있었다. 건빵 한 봉지를 ‘배고픈’ 후임병한테 먹인다. 이등병 아이들이 곧잘 ‘배고파서 건빵 한 봉지를 다 먹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는 날이 어김없이 있다. 이때에 병장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건빵을 챙긴다. 주전자를 함께 챙긴다. 그리고, 이등병한테 웃음 띤 얼굴로 말을 건다. “많이 배고팠지? 이 건빵 너 혼자 다 먹어도 돼.” 그런데, 건빵 한 알을 먹으면 물을 한 잔씩 마셔야 한다. 이렇게 하면서 건빵을 한 봉지 다 먹어야 한다. 일어나도 안 되고 화장실에 가도 안 된다. 바지에 쉬를 싸도 안 되고, 물을 마시다가 흘려도 안 되지. 병장이란 놈이 이등병한테 하는 ‘신고식’이었는데, 나는 용케 이것을 끝까지 버티기는 했으나, 내 후임병이 병장이란 놈들한테 이런 신고식을 받는 모습을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쳐다보기만 하는데, 이런 짓이 벌어지는 코앞에서 지켜보는데, 내 배가 물로 가득 차서 터지는 줄 알았다.


  윤 일병이라는 사람은 치약 한 통을 다 먹어야 하기도 했단다. 치약 하니까 생각난다. 나는 군대에서 똥과 오줌도 먹어야 했다. 완전무장지대에는 화장실 아닌 뒷간이 모두 푸세식인데, 음, 더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한 가지를 말한다면, 좀 ‘깨끗한’ 이야기인데, 내 입대동기 하나는 이등병 적에 치약뚜껑에 머리박기를 하며 얼차려를 받다가, 이렇게 치약뚜껑에 머리박기를 10분 넘게 하면서 이 녀석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궁둥이를 씰룩거렸는데, 병장이란 녀석이 내 동기를 보더니 “이 x자식 뭐 하는 거야!” 하면서 군홧발로 걷어찼다. 그래서, 내 동기는 이등병 때에 치약뚜껑에 머리박기를 하다가 그만 군홧발에 걷어차이면서 침상에 자빠졌고, 치약뚜껑을 이마에 댄 채 자빠졌기에 이마가 죽 찢어져서 흉터로 남았다.


  윤 일병을 두들겨팬 이들은 윤 일병이 숨을 안 쉰다고 할 때에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한다. 그래, 나도 이런 모습을 보았다. 병장이나 상병 아이들은 되게 재미있어 한다. 지들이 두들겨팬 아이들이 넋을 잃고 자빠지면 ‘입맞춤’을 한다. 그네들한테는 재미있는 놀이이다.


  심폐소생술을 했겠지. 참말 했겠지. 그렇다. 죽을 줄 몰랐겠지. 언제나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패면서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을 테니까.


  군대 이야기란 참 재미없다. 스스로 전쟁무기가 되면서 바보로 돌아가는 군대에서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겠는가. 이번에는 윤 일병이 죽으면서 ‘얼마나 끔찍하게 아팠는가’ 하는 대목이 아주 살짝 밝혀졌는데, ‘군대를 없애자!’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한 줄기라도 나올까? 사단장이나 국방부장관 따위를 해임시켜 보았자 달라질 일은 없다(그나마 이런 말도 안 나온다). 군대를 없애야 할 뿐이다. 그래도, 군대가 있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군대에 이등병으로 들어가서 윤 일병처럼 얻어맞고 치약도 먹고 똥도 먹고 날마다 성추행과 강간도 받으면서 이태 남짓 지내 보기를 바란다.


  아, 한 마디 빼먹었다. 내가 글이름에 ‘윤 일병과 개미 한 마리’라고 적었다. 내가 군대에 있을 적에, 나(내가 이등병이었을 때)를 비롯해 이등병이나 새내기(신병)를 괴롭히는 하사관이나 중대장이나 고참이나 이런저런 놈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었다. “너희 한 마리 죽이는 거는 개미 한 마리 죽이는 거하고 똑같아.” 4347.8.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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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하나 같은 글



  빗소리를 듣는다. 아니, 내 마음이 빗소리를 듣고 싶다고 할 적에만 빗소리를 듣는다. 다른 때에는 빗소리를 못 듣는다. 아니, 안 듣는다. 이를테면, 일곱 살 큰아이하고 글놀이나 그림놀이를 할 적에 글과 그림에 온마음을 쏟으니 비가 오든 말든 다른 소리를 못 듣는다. 내가 읽고픈 책을 읽을 적에도 온마음을 기울여서 읽으니 바람이 불건 날이 춥건 아무것도 못 느낀다.


  글을 쓸 때를 돌아본다. 나는 글을 쓸 때에 오직 한 가지만 느끼고 생각한다. 내가 쓰는 글에 깃들 넋 하나만 느끼고 생각한다. 다른 것은 끼어들 틈이 없다.


  《여기는 산호초》라는 그림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쓰려고 하다가, 이 책이 판이 끊어진 줄 알아차리고, 또 이 책을 낸 출판사에서 어떤 다른 책을 냈는가 살피다가 《1평의 기적》이라는 책이 나온 적 있다기에 어떤 책인가 하고 살피다가 ‘양갱장수 할매’ 이야기를 본다.


  일본에서 아버지 뒤를 이어 양갱을 만드는 할매는 하루에 꼭 150개만 만든다고 한다. 자동기계라든지 일꾼을 더 쓰지 않고, 손수 팥을 고르고 삶고 다지고 끓이면서 젓고 주무르니까 더 만들 수 없단다. 이렇게 하면서도 해마다 양갱을 팔아서 얻는 돈이 3억 엔이라지.


  그런데 양갱 할매는 이녁 아버지한테서 양갱 빚기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이녁 아버지는 아주 꼼꼼하면서 찬찬히 이녁 딸한테 양갱 빚기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나는 어떤 글을 써서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저희 아버지한테서 어떤 글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삶을 가꾸면서 우리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저희 아버지한테서 어떤 사랑이 서린 글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내가 쓰는 글 하나는 양갱 할매가 빚는 양갱 하나와 얼마나 같거나 다른가 하고 생각해 본다. 4347.8.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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