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통 털기


 부평역 계단. 동냥하느랴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아저씨를 본다. 종이잔 하나 내어놓고 있다. 저러면 천 원짜리 넣기도 어렵겠네. 앞가방 열고 쇠돈 담은 필름통 꺼낸다. 뚜껑을 열고 그대로 쏟아붓는다. 촤르르르.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본다. 뭔가 돈이 쏟아지는 소리가 나니까. 그러나 어느 누구도 조그마한 종이잔을 내밀고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있는 동냥꾼 아저씨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종이잔에 10원 한 닢이나마 보태는 사람이 드물다. 나도 필름통에 가득 담겨 있던 쇠돈을 모두 쏟아부은 다음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간다. 모쪼록 따순 밥 한 그릇이라도 자시길. 술은 조금만. 오른손이 왼손보다 갑절은 큰 동냥꾼 아저씨야. 무겁던 앞가방이 가벼워졌다. (4341.9.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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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으며 다니기


 자전거로 달려도 울퉁불퉁.
 두 다리로 걸어도 울퉁불퉁.
 버스 타고 움직여도 울퉁불퉁.
 울퉁불퉁이 싫어
 구석진 한 자리에 서서 책을 읽을라치면
 툭툭 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 나라 길은
 책 읽으며 다니지 말라 하는 길. (4341.9.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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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 한 개비


(1) 휙. 톡. 팔매줄을 그리며 날아가다가는 길바닥에 데굴데굴. 멋지게 빼어입은 키 큰 젊은 사내가 담배꽁초 하나 버스타는곳 길바닥에 집어던진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버스 오는 쪽을 바라본다. 젊은 사내가 집어던진 담배꽁초 옆에는, 다른 젊은 사내가, 또는 늙은 사내가, 또는 어린 사내가 빼어물다가 멋진 몸짓으로 태우다가 집어던진 수많은 담배꽁초가 수두룩. 이 담배꽁초는 새벽나절, 하나도 안 멋진 옷차림을 한 후줄그레한 사내가 비질하며 거들어들인다.

(2) 버스기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담배 한 개비 빼어문다. 후. 후. 바삐 물고 바삐 삼키고 바삐 내뱉는다. 코가 냅다. 담배연기가 내 쪽으로 몰려온다. 바삐 한 개비 물려는 버스기사는, 버스에 탄 채 담배를 태울 수 없어서 이렇게 길에 나와서 태우는 게지. 버스 탄 사람들한테 담배연기가 가면 안 되니까. 그러면 길에서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버스기사가 내뿜는 담배연기를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하나. 다른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던 애먼 아저씨 한 사람은, 읽던 책을 덮고 손부채를 하며 콜록콜록 재채기. (4341.9.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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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Green 리빙그린 - 먹을거리와 에너지 위기 시대에 살아남는 친환경 생활 지침
그레그 혼 지음, 조원범.조향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알려고도 안 하니 세상이 안 바뀝니다
 [잠깐 읽기 13] 그레그 혼, 《Living Green》



- 책이름 : Living Green
- 글쓴이 : 그레그 혼
- 옮긴이 : 조원범, 조향
- 펴낸곳 : 사이언스북스 (2008.8.11.)
- 책값 : 11000원


 (1) 지구 환경을 무너뜨리는 사람은 누구


.. 매일 50∼100종의 야생 동식물이 인간들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 세계 인구의 5퍼센트에 불과한 미국인이 세계 자원의 25퍼센트를 소비한다. 소비된 자원의 대부분은 결국 쓰레기 매립장에 폐기물로 버려지거나 태워진 후 대기 중으로 날아가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장기간에 걸쳐 황폐하게 한다 … 현대적인 생활 방식에 따라 사는 평균적인 미국인 한 사람은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스를 한 해 평균 24톤 이상 배출하고 있다 ..  (29쪽)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쉰에서 백 가지에 이르는 들풀과 들짐승이 죽어 사라지는 까닭은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미국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사람처럼 살려는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Living Green》에 나오듯 날마다 백 가지에 이르는 들풀과 들짐승이 죽어서 사라지는데(예전에는 훨씬 많이 사라졌으나 요즈음은 ‘사라질 만한 생물종이 벌써 많이 사라졌’기에 이만한 숫자로 줄어들었습니다), 세계 인구가 100이라 한다면 미국사람은 5퍼센트 숫자로 25퍼센트라는 숫자나 되는 자원을 쓰고 있으니,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여덟 곱절이 넘는 자원’을 쓰는 셈이며, 한국이나 일본이나 유럽 같은 ‘과소비’ 나라를 빼고서 헤아린다면, 이른바 ‘제3세계’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하루에 한 가지 들풀이나 들짐승조차 죽이지 않으나, 미국사람은 날마다 쉰 가지쯤 죽이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사람들 자원 소비량을 따져 보아야 할 텐데, 우리들 한국사람도 날마다 열 가지쯤 되는 들풀과 들짐승을 죽이고 있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간들 때문에 야생 동식물이 사라진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미국사람들 때문에, 또 미국사람과 같은 살림살이를 꾸리는 한국사람들 때문에 야생 동식물이 사라진다’고 말해야 올바르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런 숫자나 부피를 살갗으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도시 소비자’는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날마다 자가용을 몰면서 일터를 오가거나 볼일을 보는 동안 꽃 하나가 죽고 나무 하나가 시들며 들짐승 한 마리가 보금자리를 빼앗깁니다. 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그예 저승으로 가고 맙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조금 적게 죽인다고 하지만, ‘죽이는 꼴’은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해도,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일터에서 일하고, 정 어쩔 수 없으면 일터와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겨야 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있는 논밭을 일구며 살듯, 도시에서도 우리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오갈 거리에 있는 일터가 아니라, 집 가까운 곳 일터를 얻거나, 일터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애먼 기름을 먹는 교통 흐름을 줄이고, 사람(바로 우리)들 때문에 애꿎게 죽어 나가는 풀과 짐승 보금자리를 지킵니다(말은 참 쉽다고 하지만, 더 많은 벌이가 아닌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벌이가 좀 적더라도 생각과 매무새를 고친다면, 더 나아진 삶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도 한결 넉넉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제 스스로 이렇게 살아가면서, 사람다운 길이 무엇인가 하고 깨닫고 있습니다).


.. 재품에 들어가는 재료를 따져 볼 때 즉석 식품은 값이 턱없이 비싸다. 또한 동일한 재료를 사용해 건강에 좋은 다양한 음식을 직접 만드는 데 그리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  (67쪽)


 저는 손빨래를 하고, 손수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면서 찬거리를 마련하고, 손수 다듬어서, 손수 밥을 하고 손수 밥상을 차리고 손수 설거지를 합니다. 그제 저잣거리에서 버섯 한 근을 오천 원어치 산 다음 미역국을 끓이는 데에 반을 넣고, 감자와 빨간무와 양파를 썰어서 함께 무치는 데에 반을 넣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이틀치 네 끼니를 먹을 수 있더군요. 두 식구가. 모두 여덟 끼니치가 나온 셈이니 한 끼마다 버섯을 배불리 먹어도 한 사람 앞에 600원 조금 더 치른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버섯밥집에 가서 버섯찌개를 시켜서 먹었다면, 두 사람 한 끼니에 만 원을 훌쩍 넘었을 터이며, 찌개에 버섯보다 버섯 아닌 푸성귀가 훨씬 많이 들어 있었을 겝니다. 더욱이 갖가지 화학조미료를 잔뜩 뿌렸을 터이니 우리 몸에 좋을 턱이 없습니다.

 버섯을 다루는 밥집까지 찾아가는 데에 드는 시간, 밥이 나오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 밥을 먹으며 치르는 돈,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모두 헤아려 보면, 제 두 발로 저잣거리를 찾아가서 버섯을 산 뒤 집에 와서 손질해서 미역국을 끓이고 무침을 마련하는 데 들어간 품이나 시간이 훨씬 적습니다(‘탄소배출량’까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밥집에 가서 밥을 시켜서 먹기 때문에 밥집에서 따로 전기를 돌리고 간판불을 켜고 물을 쓰고 직원을 쓰며 가게를 꾸미고 하는 것들도 따로 돈이 들어간 일이라서, 돈 몇 푼 치르고 밥을 사먹은 셈이라고만 쉬 넘길 수 없습니다). 몸에는 더욱 좋고 맛은 훨씬 나으며 돈은 아주 조금만 써도 넉넉합니다.


.. 일회용 기저귀는 쓰레기 매립지에 묻히는 여러 쓰레기들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양을 차지한다. 미국에서만 매년 180억 개의 일회용 기저귀가 사용된다. 그리고 500만 톤의 배설물이 처리되지 않은 채로 기저귀와 함께 쓰레기 매립지로 향한다 ..  (84쪽)


 이웃 할머니가 당신 손주 키울 때 쓰던 기저귀를 물려주셨고, 옆지기 어머님이 당신 막내아들(내 처제)을 키울 때 쓰던 기저귀를 물려주셨습니다. 천으로 된 이 기저귀들은 날마다 마흔 장쯤 빨아야 아기 똥오줌에 댈 수 있습니다. 우리는 1회용 기저귀를 써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1회용 기저귀를 쓴다고 치면, 며칠에 한 번쯤, 큰 상자를 하나씩 들여야지 싶습니다. 1회용 기저귀가 오줌을 여러 번 받아들여서 덜 갈아 주어도 된다고 하지만, 오줌을 누었을 때 바로바로 닦이고 기저귀를 갈 때와 여러 번 누도록 그대로 둘 때하고, 아이가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를밖에 없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1회용 기저귀를 쓰게 되면, 이 1회용 기저귀는 곧바로 쓰레기가 되어 땅에 묻혀 버리니, 아이가 살아갈 터전을 더럽히는 셈입니다.

 날마다 1/4씩 빨래를 하는 데에 쓰면서 한 달쯤 보내다 보니까, 엊그제부터 어깨죽지가 결리고 등 힘살이 모두 굳어집니다. 오늘은 기저귀를 빨 때 몹시 힘겹습니다. 그래도 아기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고 옥상마당에 널어 놓고 말린 다음 거두어들이는 동안, 이 일이 고되거나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얼른 빨래를 마치고 아기와 옆지기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옆지기 팔다리를 주무르고 아기가 잘 자거나 노는지 지켜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밥때가 되면 얼른 미역국을 끓이거나 덥히고 찬거리 하나 마련합니다. 아기는 우리가 평화로이 밥을 먹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에, 밥을 차려도 삼십 분쯤은 밥숟갈을 못 뜨는데, 말을 못하는 아기한테 우리 삶을 맞춰야지, 우리한테 아기를 맞출 수 없으니,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들 어머니가 우리를 어떻게 키우셨을지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는 아버지는 돈벌러 일 나가고 어머니 혼자서 집에서 살림 다하고 밥 다하고 빨래 다하면서 아기까지 돌보았을 텐데, 몸풀이나마 제대로 하면서 그 일을 다 치러 내셨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우리 몸이 수월해지거나 가벼워지는 쪽을 찾는 일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구태여 기계와 전자제품을 쓰기보다는, 자연 그대로 아이가 느껴 주기를 바라고, 어머니와 아버지 손을 오래오래 많이 타면서 아이가 자라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우리 삶터에 하나라도 더 많은 쓰레기가 나오도록 하는 삶이 아닌 가운데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몸으로 느낍니다.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은 책이나 지식으로 가르칠 수 없고, 아이 어버이인 우리 두 사람이 어떤 마음과 매무새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아이 스스로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떠드는 ‘자연스러운 삶’을 꾸리면서 도시에서도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끼고 치러 내면서 자연스러울 삶을 찾아나가야, 이런 어버이들 부대낌이 아이한테 하나하나 스며든다고 느껴요.

 어버이 된 사람이 먼저 열리고 너른 가슴으로 살아야 아이도 열리고 너른 가슴으로 살아갈 테니까요. 어버이 된 사람이 먼저 착하고 곱게 살도록 힘써야 아이도 착하고 곱게 살아가는 매무새를 기를 테니까요. 어버이 된 사람이 우리 삶터를 1회용품과 갖가지 전기제품으로 무너뜨리지 않아야 아이도 자기 몸과 자기가 디딘 땅을 더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2) 알려고 해도 바꾸기 어려운 세상인데


 ‘푸르게 푸르게’ 살아가려는 마음을 품게 된 어느 미국사람이 쓴 《Living Green》을 읽습니다. 글쓴이는 아주 똑똑하고 돈도 많이 벌고 이름값도 드높은 분입니다. 그러나 똑똑함은 지식이 많음일 뿐이었고, 돈이 많음은 어마어마한 자원을 써서 주머니만 불리는 일이었으며, 이름값이 드높음은 말짱 헛것이나 뜬구름이었다고 깨닫습니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몸이 아프고 저리고 쑤신 다음에야 비로소 깨닫고, 자기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돌아보면서, ‘돈벌이와 이름값 올리기와 도시에서 물질문명 누리기’를 저버리지 않는 가운데 ‘푸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봅니다.


.. 나는 양상추가 펼쳐져 있는 거대한 들판에 서서 밝게 빛나는 녹색 잎사귀로 꾸며진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생각했다. 이 광대한 녹색 들판에 감탄하다가 나는 농장 인부들이 긴 소매 옷을 입고 두꺼운 장갑과 고무장화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 중 일부는 얼굴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다 … 농장 주인 말에 의하면 상추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최대 50가지 종류의 살충제와 살균제 그리고 제초제를 평균 12번 정도 밭에 뿌린다고 했다. 고무장화와 장갑은 바로 여러분과 내가 매일 먹는 화학 물질로부터 농부를 보호하기 위한 장비였던 것이다! … 내가 화학제품을 사용한 상추를 사기 때문에 농약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고 토양이 오염되는 것이다 ..  (44쪽)


 며칠 앞서 ‘국민과의 대화’를 했던 대통령 이명박 씨가 ‘탄소배출량’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랐는데, 탄소배출 문제를 꺼내기는 했지만,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자기는 무엇을 할 생각인지는 하나도 들려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탄소배출을 엄청나게 늘릴 ‘뉴타운 개발’을 시골 구석구석까지 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농촌도 뉴타운으로 한 곳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게 하고 공장도 짓고 쇼핑센터도 세우고 뭣도 해야 발전이 된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하는 동안 쏟아져나올 탄소는 어찌하게 될까요. 논밭과 산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어서 나오는 탄소배출량만큼 ‘나무를 심으면 된다’고 말씀하시던데, 나무가 조용히 잘 자라던 땅에 있던 나무를 베어낸 뒤, 어디에다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요? 이미 심겨진 자리에 또 심을까요? 나무와 나무 사이는 몇 미터 떨어뜨려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나무 백만 그루를 심을 땅이 우리 나라에 있을까요? 아니, 우리 나라에 나무 심을 땅이 남아 있기나 한지요. 그리고 나무만 심는다고 환경사랑이 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람사조약에 가입을 해 놓았을 뿐 아니라 세계람사대회를 치르기로 한 한국이면서, ‘새만금 메우기를 대법원에서 인정’해 버린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정부 정책에서도 환경생각이 없었고, 법조계 분들도 환경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법조계만 탓할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언론계는 어떠하며, 교육계는 어떠할까요. 재계는 어떠하고 과학계는 어떠할까요. 건설업 하는 분들은 어떠하며, 여느 시민이라고 하는 우리들은 어떠한지요. 우리들 스스로 얼마나 환경생각을 하면서 자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을까요.


.. 이것이 왜 문제인가? 왜냐하면 지구 온난화는 단지 이론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  (181쪽)


 이야기책 《Living Green》을 덮으면서, 예전에 읽은 《즐거운 불편》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오늘저녁이면 다 읽게 될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이라는 책이 자꾸만 겹쳐집니다.

 그러나 《모래 군의 열두 달》(알도 레오폴드)이나 《씨앗의 희망》(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이나 《회색곰 왑의 삶》(어니스트 톰슨 시튼)이나 《수달 타카의 일생》(헨리 윌리엄슨)이나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이나 《슬픈 미나마타》(이시무레 미치코)나 《복합오염》(아리요시 사와코) 같은 줄거리나 마음결을 바라면서 《Living Green》을 읽지 않았습니다. 또, 바랄 수 없으며 바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Living Green》을 쓰신 분은 ‘미국사람으로서 자기 소비 문화를 버릴 생각이 없는 가운데, 될 수 있는 만큼 환경파괴를 줄이는 길을 찾기’로 걸어간 보기 드문 분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환경파괴를 일삼고 있는 자기 삶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모두인 형편을 돌아본다면, 이만큼 알아보고 생각하고 자기 삶도 조금은 고치는 삶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그렇기는 한데, 《Living Green》에는 ‘즐거운 불편’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조금 더 돈을 치르면 얼마든지 더 환경사랑이 된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린 헬스, 그린 홈, 그린 퓨처”로 나뉘어진 《Living Green》에서 말하는 ‘푸름(그린/녹색)’은 ‘좀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문화로 바꾸어야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도 한겨울에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삶을 자기 아이들(글쓴이한테는 손자)한테 물려줄 수 있다’는 생각을 보여주기만 합니다.

 나라안에도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박경화) 같은 훌륭한 책이 있습니다만, 이 책도 ‘자기 실천’에서는 그다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정혜진)라는 책은 《Living Green》과 견주어 ‘자동차를 하이브리드로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삶이란 없기에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기도 하고, 글쓴이 나름대로 환경 이야기를 쓰는 기자로서 입으로만 떠들지 않겠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삶터는 ‘녹색 소비’만으로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구 온난화는 단지 이론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라면, ‘녹색 소비’만으로는 세상을 올바르게 돌려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풀빛을 닮지 않으면, 스스로 풀빛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 도시사람이나 시골사람을 넘어서면서 ‘풀사람’이 되지 않으면, 지구 삶터 지키기나 가꾸기는 이룰 수 없습니다. 환경사랑은 쓰레기 줍기부터 실천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쓰레기 안 버리기가 먼저요, 쓰레기 안 만들기가 먼저요, 삶터를 푸르게 가꾸기가 먼저입니다. 삶터를 푸르게 가꾸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번 더 많은 돈으로 나무를 심겠다’는 ‘탄소상쇄’는, 우리 삶터 밑뿌리는 곪은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서 잎과 꽃만 예쁘게 키우려는 마음결하고 매한가지입니다.

 그나마, 알려고 애쓰니 이만한 책 《Living Green》을 쓰고, 이만한 책이라도 읽고서 다문 한 가지라도 ‘녹색소비’를 해 준다면 우리 삶터는 아주 티끌만한 크기로라도 달라질 테지만, 날마다 수십 수백 가지 목숨붙이가 죽어 사라지는 마당에, 터럭만큼 나아지게 하는 삶으로는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지구는 너무 더러운 땅덩이가 되고 맙니다. (4341.9.1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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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전의우 옮김 / 양철북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75 ― 나 또한 ‘아버지 길’을 걸어가면서
 :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 책이름 :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 글쓴이 :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 옮긴이 : 전의우 옮김
- 펴낸곳 : 양철북 (2007.12.26.)
- 책값 : 9000원



 (1) 아버지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당신 손주를 보고 싶어도 저 때문에 못 보러 간다며, 저보고 음성으로 와서 아버지한테 무릎 꿇고 빌라고 이야기합니다. 옆지기는 우리가 아기를 데리고 움직이기 힘들어도 인천에서 음성까지 택시를 타고라도 한가위 명절에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화해를 하자고 이야기합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생채기가 나도 자꾸 복닥이면서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고, 아픔이 없이 사랑이 없다고, 접붙이기 하려면 생채기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가 우리 두 사람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우리가 아버지한테 ‘잘못했습니다’ 하고 빈다는 일이 터무니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한테서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받은 옆지기는 오히려,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라면서 자기는 괜찮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버지라는 분이 도시에서 오랜 교사살이를 마치고 시골집을 하나 얻어서 조용히 깃들인다고 할 때에, 이제 아버지도 큰도시에서 ‘잘나가고 이름높은 동네(성남시 분당) 교장선생’이라는 껍데기를 훌훌 떨쳐내고,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낮추고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눈길을 기르시려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아니, 아직 멀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삶터만 도시에서 시골로 옮겼을 뿐, 아버지가 얻은 시골집이 조촐하면서 이웃 자연과 어우러지는 작은 집이 아니라 우람하면서 이웃 자연하고 흐드러지지 못하는 비싼 전원주택임을 헤아려 본다면, 아버지는 몸은 시골에 있지만 조금도 시골에 안 있는 사람이지 싶습니다.


.. 당장 눈앞에 닥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다른 이들이 당한 아픔은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우리 처지다. 이렇게 점점 우리는 무관심이라는 덫에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 물론 우리는 정부만을 탓할 수 없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책임이 있다. 남보다 혜택을 누리는 중산층 생활을 유지하느라 아이들이 가장 고통받는 빈민가가 생기는 것에 부분적으로 가담한 것이 사실이다. 또 전 세계의 미래를 위협하는 정책 앞에 침묵을 지키고, 다른 인종과 계층의 아이들이 억압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굶어죽거나 노예로 팔릴 때 못 본 체한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4, 17쪽)


 가만히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저는 아버지한테 잘못을 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님이 쓴 어린이책 《저만 알던 거인》에 나오듯이, 아버지가 ‘아버지 사는 동네 이웃집 아이들이 아버지네 집 앞 뜨락에 놀러와 있는 모습’이 싫다면서 높은 울타리를 친다고 할 때에, ‘아버지,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왜 하십니까? 있는 울타리도 허물며 이웃하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세상인데, 없는 울타리를 돈까지 들여서 세워서 이 시골에서 어떻게 살겠다는 소리입니까?’ 하고 가로막았어야 합니다. 너른 앞뜨락에 푸성귀를 심어서 이웃집하고도 나누고 아버지 동생과 누님들하고도 나누고 제자들한테도 나누어 주는 삶이 아니라, 앞뜨락을 죄 파헤치고 고쳐서 나무를 심고 징검돌을 놓고 ‘그럴싸한 정원으로 꾸밀’ 때 손사래치면서 ‘아버지가 한삶을 바쳐 교직에 몸담으며 얻은 앎이 고작 이런 모습으로만 드러납니까? 이렇게 하려고 시골에 집을 얻고 시골집에서 시를 쓰겠다고 하셨습니까?’ 하고 말씀드렸어야 합니다.

 아버지 당신이 형과 저를 앞에 앉혀 놓고 ‘나(아버지)는 너희 작은아버지(아버지 동생)들을 학교 보내고 가르치느라 가정교사로 들어가서 죽도록 고생했다’고 수도 없이 되풀이해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아버지 동생들은 나라안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에 덥석덥석 붙어 들어갔지만 아버지 당신은 사범고를 나와서 열 몇 살 어린 나이에 국민학교 교사가 되어 돈을 벌어서 집안살림을 꾸려야 했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거듭거듭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하셔도 돼요’ 하고 막았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동생들 보기에 ‘대학교 못 다닌 설움’을 안고서 늦깎이 나이로 방송통신대 졸업장을 따고 인천교대 대학원에 들어서 ‘교장 신분’으로서 수석 졸업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손뼉이 아닌 회초리를 들어서, ‘아무리 아버지라고 하지만, 아버지가 가야 할 길은 허울좋은 졸업장이 아니라 아이들하고 일 분 일 초라도 더 가까이 지내는 시간을 늘리면서 아이들 마음을 읽어 주는 일’이라고 일러 주었어야 합니다.


.. 돈이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어른들이 이윤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아이들을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재산이나 투자 대상으로까지 보는 부모도 있다 … 응석받이 아이들 뒤에는 언제나 응석받이 부모가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하며, 욕구가 생기는 대로 충족하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환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별다를 수 있겠는가? … 많은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정신없이 바쁜 생활은, 사실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질적 여유를 지키려는 고집 때문이다 … 그런 막대한 수입과 명성이 가족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가족과 함께 그것을 누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변명을 해 보았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잘 먹히지 않았다 ..  (24, 26, 27, 35쪽)


 제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아버지는 저와 형한테 ‘할머니(아버지한테는 어머니)가 아버지 당신한테 얼마나 몹쓸 짓을 많이 시켰던가’ 하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래서 철없는 저는 할머니가 참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할머니 손을 잡고 떠나보내시면서 속으로 ‘할머니는 왜 아버지를 못살게 굴었나요?’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당신 어머니인 우리 할머니가 몹쓸 짓을 하셨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계신 분이잖아요. 아버지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시는가요? 사랑을 가르치시나요? 믿음을 가르치시나요? 관용을 가르치시나요? 용서를 가르치시는가요? 무엇을 가르치시는가요?’ 하고 되물었어야 합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받은 생채기가 컸고,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생채기와 아픔을 남을 깎아내리거나 괴롭히는 데에 쓰지 않도록 아버지 팔을 붙잡고 말렸어야 합니다.

 추운 겨울날, 빚을 받아 오라던 할머니 심부름을 받고, 얇은 옷에 맨손으로 빚 받을 집에 갔더니 돈이 없어서 쌀을 봉지에 담아서 주는데, 그 쌀을 들고 오다가 얼음길에 미끄러져서 그만 쏟았기에, 남은 쌀만 들고 오니까, 할머니는 아버지를 때리고 나무라며 쏟은 쌀을 모두 주워 오라고 하셨다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언손이 불어터지면서 쌀을 주워 왔다고 하셨다지요.

 참 모질게 군 할머니이지만, 이렇게 모질게 굴던 할머니였기에 아버지는 아픔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길이나 빛을 새롭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픔을 그저 아픔으로만 삭이면서 미움으로 키우기보다는, 더 큰 사랑과 너른 믿음으로 다스릴 수 있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말은 쉽다고요? 네, 말이야 쉽겠지요. 그러나 저도 겪어 보면서 느낍니다. 겪은 바로 다음부터 몸으로 옮기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자꾸자꾸 돌이키고 곱씹으면서, ‘내가 그런 아픔을 겪었으니 다른 이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 아픔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군대에서 뼈저리게 느꼈고, 사회에서 가슴저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내가 그런 아픔을 겪었기에 다른 이들은 부디 그런 아픔을 겪지 않으면서 세상을 아름답고 슬기롭게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차츰 커지더군요. 그렇다고 아무런 아픔이 없이 자라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아픔은 있어야 합니다. 씨앗이 몸이 부서지는 아픔을 느끼며 뿌리를 내려야 하고, 줄기가 잎이 돋는 아픔을 느껴야 하며, 꽃은 떨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는 잡아먹히는 아픔을 느끼며 다시 씨앗을 땅에 돌려놓습니다. 아픔은 얼핏 보면 괴로움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더 크게 자라나는 밑거름이요, 지나쳐야 할 징검다리입니다.

 이참에 옆지기하고 스물네 시간 함께 배앓이를 하면서 새 목숨을 세상에 받아내고 보니 새삼스레 더 잘 알겠더군요. 날마다 하루 1/3을 기저귀 빨고 널고 다리고 채우고 하는 데에 쓰면서, 우리 아버지는 나나 형 기저귀를 빨았을까 궁금하더이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 두 형제 기저귀를 빨아서 우리를 키우셨을까 궁금하더이다.


.. 지금 거의 모든 아이들은 오로지 열매 맺는 능력, 즉 ‘성취하고’ ‘성공하는’ 측면으로만 평가하는 사회의 편협한 시각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중압감이 어린 시절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 놓고 있다 …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은 자장가를 부르면서 아기를 재웠다. 아기는 엄마 목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 갈수록 우리 시대는 어린 시절에서 ‘아이’를 제외해 버리고, 이 시절을 어른 세상을 준비하는 재미없는 훈련장으로 바꿔 놓고 있다 … 아이들을 학교에 접어넣는 것으로는 결코 가르칠 수 없는 삶의 기술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38, 39, 48, 50쪽)


 국민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는 설문조사가 참 많았습니다. 무슨 조사가 그리 많아야 했는가는, 뒷날 대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갖가지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새마을운동이니 뭐니 하면서 교육감이 학교 교사들을 달달 볶으며 온갖 공문이요 통계를 내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때 수도 없이 했던 설문조사 가운데 하나는, 집안식구들하고 얼마나 이야기를 나누느냐였습니다.

 어머니하고는 곧잘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었으나, 어머니 일손을 거들며 마주앉아 있으면서도 정작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은 거의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제 학교 일을 거의 안 물어 보셨고, 어머니도 당신 살아온 발자취를 거의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머니 어릴 적과 젊을 적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까맣게 모릅니다. 들려 달라고 해도 들려주지 않으셨고, 어머니 스스로 술술술 들려주신 적도 없습니다.

 아버지하고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야기가 없었다고 해야 옳습니다. 제가 떠올리는 가장 옛날 나이는 일곱 살 적인데, 그 일곱 살 적부터 이날 이때까지 아버지가 저한테 ‘말 걸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떠올립니다. ‘종규야, 너는 요즘 무엇을 생각하면서 사느냐?’ ‘종규야, 너는 요새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느냐?’ ‘종규야, 네 동무들은 누가 있느냐?’ ‘종규야, 너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느냐?’ 하는 물음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뭐, ‘이야기 나눔’을 한 적이 아예 없으니까, 이런 물음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런 집안 분위기를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아버지한테 ‘아버지는 학교에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아버지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아버지는 오늘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하고 여쭌 적이 없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말 걸기’와 ‘이야기 나눔’을 배우지 못했으니, 저 스스로 다른 이한테 말을 거는 일이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제 속마음을 이야기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아니,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했고, 할 까닭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만, 말 걸기는 못하지만 늘 말은 많이 하고 싶었는데, 말을 할 줄 모르고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다 보니까, 물끄러미 동무들을 바라보고 둘레를 살펴보는 눈은 기를 수 있었습니다. 제 국민학교 적 동무들은 그때 일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하는데, 저는 동무들 얼굴에 점이 몇 개 있었고 어디에 있었고, 무슨 옷을 입고 학교에 왔고, 우리가 서로 어떤 놀이를 했고, 옷차림이 어떠했고, 누가 코에 콧물이 질질 흐르도록 다녔고, 머리 모양은 어떠했고, 무슨 신발을 신었고, 어느 동네 어떤 집에 살았고, 동무가 살던 동네는 느낌이 어떠했고, 우리 동네와 이웃 동네 길은 어떠했는지 …… 들을 줄줄 꿰고 있습니다. 지금도 국민학교 적 학교 둘레 모습을 그림처럼 떠올릴 수 있고,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해도 거의 한 가지 빠짐없이 다 그려낼 수 있습니다. 학교 앞 〈승희문구〉와 〈신광문구〉 짜임새며,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었는지까지, 그리고 그때 그 문구사에서 어떤 장난감을 팔았는지까지 떠올려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한테 말을 걸지 않고 이야기도 나누지 않아서, 설문조사를 할 때마다 ‘우리 집은 한 해 동안 아버지하고 30분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라는 항목에서 손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말을 걸거나 나눌 줄은 몰랐어도 남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잘 새겨 놓을 줄 알았고, 말은 안 하는 만큼 둘레 사물과 흐름과 짜임새를 꼼꼼히 보는 눈을 제 나름대로 기를 수 있었습니다.


.. 슬프게도 자신이 세워 놓은 원칙에 너무나 눈이 가려져 더 중요한 마음의 소리를 따르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다 … 훈계란 무엇인가? 이것은 통제가 아니라 이끄는 것이다 … 훈계에는 아이의 기질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이 늘 뒤따라야 한다 … 청소년 문제에 대한 이러한 엄한 처방들이 실패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위험에 놓인 청소년들과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나 이들의 운명을 한 순간에 결정지어 버리는 법률은 해가 갈수록 억압적이 되어 가고 있다 … 어제아 아무리 형편없었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  (58, 60, 68쪽)


 참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왜 그토록 혼자서 살고 싶어하시는가요. 아버지는 왜 그토록 당신 아이들이 혼자 살도록 가르쳤습니까. 아니,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도록 이끌었습니까.

 제 한몸이 아무리 잘났다 한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데, 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보여주지 않았고, 우리들이 이웃과 어깨동무하도록 이끌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는 앞으로도 혼자서만 ‘어깨 우쭐거리’면서, 아버지 그 널따란 시골 전원주택에 ‘학교에서 교사-교감-교장으로 있는 동안 받은 상패를 줄줄이 늘어놓고서는, 찾아오는 이도 드물어 상패를 보아주는 이도 거의 없을 텐데, 날마다 걸레질을 해 놓고 반질반질 닦아 놓고만’ 있으시렵니까.

 그러고 보니, 이런 아버지 ‘자랑하기’가 내키지 않아서, 제가 집을 뛰쳐나와서 혼자서 살아가는 동안 ‘신문과 방송에 날 만한 큰 상’을 몇 번 받기는 했지만, 그 상패는 후배한테 줘 버리거나 어디 처박아 놓거나 남 주거나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상을 받은 줄 다 잊었습니다. 아버지는 저한테는 거울 같은 사람이 되어서, ‘이런 길로 걸어가면 네가 다친다. 너는 고인 물이 되고 싶지 않거들랑 아버지를 잘 보고 아버지처럼 하지 말라’ 하는 가르침을 베풀어 주실 셈이십니까. 거울이 아닌 손을 맞잡는 한 식구로서, 거울이 아니라 서로 어깨를 겯고 함께 땀 흘리면서 집 앞 텃밭을 일굴 수 있는 길동무로서, 이제라도 당신 몸뚱이를 짓누르도록 들고 있는 짐덩어리를 내려놓으실 뜻은 없으십니까. 아버지도 이제는 어엿한 할아버지가 되었는데요. 우리 딸 사름벼리네 친할아버지인데요.





 (2) 아이를 생각한다


.. 진짜 문제는 부모들이 ‘내 행동은 따라 하지 말고 내가 하는 말대로만 해라’ 하고 할 때 일어난다 … 부모들이 자신들의 기대가 부당하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할 때, 대부분의 자녀들은 금세 부모를 용서하며 최악의 가정불화도 아주 빠르게 해결된다는 것 … 현실주의자들이 아니라 꿈을 꾸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한다. 이 말이 시시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희망의 눈을 통해, 정말이지 현실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다 ..  (75, 76, 91쪽)


 옆지기 부모님 댁에서 보름 남짓 머물렀습니다. 한가위를 앞두고 마냥 옆지기 부모님 댁에만 머물 수 없어서, 음성에 있는 제 부모님 댁에 갈 생각을 하고, 또 오래도록 비워 둔 인천 우리 집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 저 혼자 인천으로 와서 집을 쓸고 닦고 치우고 털고 합니다. 아침에 다시 쓸고 닦고 이불 털고 햇볕에 말리고 합니다. 조금 뒤 목초액 한 번 뿌리고 다시 닦고 치우고 해야지요. 스무 날 가까이 닦지 못한 방바닥은 미끌미끌한데다 먼지가 뽀얗게 앉았습니다.

 방을 훔치고 나무벽을 닦고 부엌 개수대를 갈무리하고 아침밥을 먹습니다. 오늘 옆지기와 아기는 드디어 세이레를 마치고 인천 집으로 돌아와서 새 삶을 꾸려 나가게 됩니다.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누는 오줌과 똥도 넘쳐납니다. 지금은 기저귀 한 장만 대고 있는데, 곧 두 장을 대어야지 싶습니다. 빨래감은 늘 터이나,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일감이요, 넉넉히 치를 만한 일거리입니다.

 누워 있기 싫다며 칭얼거리는 아기를 팔에 안고 살살 어르고 있으면 똘망똘망한 바둑알 눈으로 저를 가만히 쳐다봅니다. 이 아이는 아직 사람말을 하지 못하기에 입으로 말을 하기보다는 마음속으로 말을 겁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지 않습니다. 날씨를 말하고 집을 말하고 세상을 말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된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이며 아기한테 건네는 말이며 아이 머리에 고스란히 새겨진다는 마음으로, 말을 삼가고 아끼고 가리고 있습니다. 아직 아기일 때 둘레에서 듣는 말이 아기가 앞으로 익히면서 쓸 말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우리 말투와 말씨와 삶 모두 추스르고 있습니다.


.. 왜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장애물과 문제는 빨리 발견하면서 기쁨은 쉽게 놓쳐 버리는 것일까? 왜 우리는 고통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데는 열을 내면서 자녀 양육에 반드시 뒤따르는 어려움을 받아들이기는 꺼리는 것일까? …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우리 세대가 어떻게 자녀들에게 그 가치를 전해 줄 수 있겠는가? ..  (94, 95쪽)


 여러 번 훔친 방바닥이 깨끗합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옵니다. 시끄러운 차소리도 함께 들어오지만, 도시에서 살면서 노래가락처럼 받아들여야 할 소리입니다. 그래도 저 차소리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다면. 저 차소리가 자전거 소리로 바뀌고, 뚜벅뚜벅 걷는 소리로 바뀔 수 있다면.

 주문만 해 놓고 아이 낳느라 바빠서 찾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전거 바퀴도 자전거집에 가서 찾아와야 합니다. 아기가 자라서 스스로 몸을 가누고 걸을 수 있을 즈음 태우고 다닐 짐수레에 새로 붙일 바퀴를 주문해 놓았거든요. 제가 타는 자전거에도 아기를 앉힐 자리를 붙이려 합니다. 머잖아 아이가 제법 크게 되면, 자전거를 함께 타고 골목마실을 하면서 동네를 살피고 동네 이웃을 만나려고 합니다. 동네 이웃들도 애 아버지와 아이를 보면서 방긋방긋 웃음을 주고받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우리가 아이를 판단하는 것은, 그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묫하기 때문이다 … 마이클의 이야기는 여전히 모든 부모에게 중요한 교훈을 일깨워 준다. 바로 자식들은 부모 자신이 아니며, 자식들의 재능을 비교하거나 자식을 통해 부모의 꿈을 대신 이루려는 시도는 결국 아이를 망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  (114, 120쪽)


 마땅한 이야기이지만,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옆지기는 미역국과 누런쌀콩팥밥만 먹습니다. 사이사이 과일을 먹습니다. 아무 밥이마 함부로 먹을 수 없습니다. 조금 더 생각하면,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옆지기는 아무 물이나 마시면 안 되며 아무 공기나 마시면 안 됩니다. 모두 아기한테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마실 수 있는 물과 공기는 어떠한가요. 아기나 아기 어머니가 지내는 삶터는 얼마나 조용한가요. 이웃사람은 서로를 얼마나 헤아려 주고 있나요. 우리는 돈 앞에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괴롭히거나 들볶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에 매여서 우리 스스로를 옥죄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돈에 미쳐서 우리 터전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리거나 흔들고 있지 않습니까.

 빨리 가 보아야 고작 1분인데, 아침에 1분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면 그만이거늘, 1분을 더 빨리 자동차로 달리겠다고 수천 억원을 들여서 새 찻길을 뚫어야 하는가요. 찻길 새로 닦는 수천 억원은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고 깨끗하게 지키는 데에 쓸 돈이 아닌가요.


.. 헤세가 생명을 죽이는 힘으로 지적하는 존중하지 않는 마음은 오늘날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가장 큰 위험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언어를 비롯해서 문화 구석구석까지 퍼져 있다 … 우리들 가운데 스스로 현자나 성자라고 자신할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식이 아니라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교육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것이다 ..  (133, 136쪽)


 동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를 했더니 1회용 물수건을 잔뜩 줍니다. 물수건을 왜 주는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1회용 기저귀를 쓰는 집에서는 기저귀를 갈면서 아기 엉덩이를 물수건으로 닦는다고 하더군요. 기저귀를 한 번 쓰고 버리는 쓰레기를 쓰면서, 아기 엉덩이도 한 번 쓰고 버리는 쓰레기로 닦는 셈입니다.

 아기한테 채우거나 아기를 닦을 때 쓰는 물건으로는, 언뜻 보면 손쉬운 듯하고 깨끗해 보이기도 한 ‘한 번 쓰는 물건’들인데, 이 물건들은 정작 아기한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물건을 만드느라 어마어마한 자원이 버려졌는데, 이 물건이 쓰레기가 되면서 우리 삶터는 어마어마한 쓰레기터가 되어야 합니다.

 천기저귀를 빨면 물이 많이 들고 시간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손빨래를 해 보면서 느끼는데, 물은 그리 많이 안 듭니다. 대야를 여러 개 놓고 ‘헹구기만 하는 기저귀’와 ‘똥을 빨아야 하는 기저귀’를 따로 놓고 빤 다음 목초액 뿌려서 담가 놓고 다시 헹구면 아주 적은 물로도 넉넉히 빨래를 할 수 있습니다. 다 쓴 물은 걸레를 빨 때 쓰면 되고, 걸레를 빤 물도 씻는방 바닥을 닦는 데에 쓰면 됩니다. 여느 우리 살림과 견주어 물을 더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쓰고 버리는 기저귀나 물수건을 만들 때에는, 또 이 물건을 비닐껍데기에 씌울 때에는, 또 이 물건을 짐차에 싣고 가게까지 실어나를 때에는, 또 우리들이 자가용을 타고 이 물건을 가게로 사러 갈 때에는, 그리고 가게에서 이 물건을 팔려고 전기불을 켜 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에는, 얼마나 많은 자원이 쓰이고 있는 셈입니까. 값싸게 사는 듯 보이는 1회용 기저귀와 물수건이지만, 알고 보면 엄청난 돈을 치르고 있는 셈이며, 우리 삶터를 아주 끔찍하게 더럽히고 있는 셈입니다.





 (3) 후다닥 읽어서는 안 되는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난 2007년 12월 26일에 나온 책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를 8월 28일에 덮었습니다. 꼭 여덟 달을 꾹꾹 채워서 읽었습니다. 크게 나누어 아홉 갈래로 엮인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입니다. ‘무관심, 돈, 지나친 기대, 잘못된 훈계, 위선, 회피, 문제아를 위해, 존중의 발견, 아이를 떠나보내라’, 이렇게 아홉 갈래 이야기를 하나하나 보기를 들면서 ‘아이는 왜 기다려 주지 않는가’를 들려줍니다.


.. 아이를 구속하는 것은 아이를 짓밟아 뭉개는 짓이다 ..  (150쪽)


 참말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우리 아기도 그런데,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울어댑니다. 똥오줌을 누면 얼른 기저귀 갈아 달라고 칭얼댑니다. 이때, 배고픈 아기한테 젖을 물리지 않거나 똥오줌 눈 기저귀를 갈아 주지 않으면, 아기는 몸에 탈이 납니다. 마음도 다칩니다. 그때그때 놓치지 말고, 아기가 기다리지 않도록 하면서 어른이 움직여야 합니다.


.. 우리 부모들도 모두 한때 십대였으며,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후회할 일을 경험했다. 그런데 우리가 자녀들에게는 더 높은 기준을 고집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자식을 소유하려는 애정과 자식에게서 무언가를 되돌려받으려는 보상심리로 청소년 자녀에게 집착하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 어른이 먼저 아이를 존중하면 아이도 어른을 존경할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 지금처럼 개인의 중요성에 대하 많은 말을 하면서도 획일된 문화가 사회를 전에 없이 평준화해 버리고, 모든 사람을 다 비슷하게 만들어 버린 시대에 …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을 바꿔야 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  (156∼161쪽)


 우리 아버지는 당신 아이들하고 거의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살았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우리 아버지는 당신이 몸담은 학교에서 이웃 교사하고 얼마나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가르친 아이들하고는 무슨 이야기를 얼마나 나누었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 어머니하고는 어떤 이야기를 얼마나 나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대로 형은 형대로, 두 사람은 ‘어버이인 아버지’를 기다리지 않으면서 살아가지 않느냐 싶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걸어 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우리가 스스로 이야기를 걸도록 가르쳐 주지도 않았기에,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이야기를 하는 버릇은 몸에 배지 않았습니다(그렇지만 형은 저하고 많이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야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아버지가 너무 일찍 되었는지 모르고, 아버지가 일찍 되었다 하더라도 아버지로 살아가는 길을 그다지 깊이 살피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아직까지도 아버지는 당신이 아버지인 줄 못 느끼고 있을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아버지 스스로 당신이 아버지라는 생각을 못할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란 어떤 사람이며, 아이한테 아버지가 왜 있어야 하는가를 거의 못 느낄지 모릅니다.

 그지없이 딱할 뿐더러 안타깝고 슬프고 가슴 저미는 일입니다. 자칫 저 또한 우리 아버지마냥 우리 딸아이한테 어슷비슷한 길을 걸어갈 걱정이 있습니다. 고맙다면, 옆지기가 늘 곁에 있어 주면서, 제가 아버지와 어슷비슷한 길을 갈라치면 따끔하게 일깨워 줍니다. 낱낱이 깨우쳐 줍니다. 그때그때 다그쳐 줍니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어떤 옆지기로 살아가실는지. 그예 가만히 계시는 분일는지, 그때그때 꼬치꼬치 말씀을 해 주는 분일는지. 이 땅에서 어머니로 살아가신 분들과 어머니로 살아가는 분들과 어머니로 살아갈 분들은 자기 스스로 ‘어머니 길’을 가고 있음을 또렷이 깨닫고 있을는지. (4341.9.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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