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소년들 - 수단 내전의 참상을 온몸으로 전하는 세 소년의 충격 실화
벤슨 뎅 외 지음, 주디 A. 번스타인 엮음, 조유진 옮김 / 현암사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72 ― 총칼 든 전쟁과 돈다발 든 전쟁
 : 수단 난민 세 소년이 쓴 《잃어버린 소년들》



- 책이름 : 잃어버린 소년들
- 글 : 벤슨 뎅, 알폰시온 뎅, 벤자민 아작
- 엮은이 : 주디 A. 번스타인
- 옮긴이 : 조유진
- 펴낸곳 : 현암사 (2008.6.20.)
- 책값 : 13500원


 (1) 평화란 어떤 삶일까


 우리 집 아기를 보러 서울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느즈막하게 찾아온 손님은 저녁을 미처 못 먹었다고 합니다. 집에서 고구마와 감자를 찐 다음, 먹기 좋게 송송 썰어서 도시락에 담아서 내어 드립니다. 한손에는 도시락통을 들고 한손으로는 냠냠 집어먹으면서 율목동 골목길을 걷습니다. 이따 집에 와서 마실 술 몇 병과 안주거리를 가게에서 산 다음, 가까운 닭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닭집 안이 무척 시끄러워서 우리는 밖에서 먹기로 합니다. 조금 선선하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골목길이라서 우리 둘은 호젓하게 앉아서 튀김닭을 밥 삼아 맥주를 마십니다.

 집에서 가까운 골목길 닭집이기에, 두 시간쯤 옆지기가 저한테 말미를 내어주어서, 고맙게도 아기 돌보는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느긋하게 쉽니다. 아기를 혼자서 돌보기에는 옆지기 혼자서 힘들 텐데, 제 몸을 생각해서 이럴 때 손님하고 쉬기도 하고 술도 한잔 걸치라고 해 줍니다.

 이리하여 손님과 저는 닭집 둘레 오래된 골목가게 간판을 구경하면서 간판 이야기도 하고, 서울 골목길과 전국 골목길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울산은 아마 시내버스로 다니기가 전국에서 가장 나쁜 곳이라며, 모두들 자가용을 끌게 되니 자연히 시내버스가 줄게 되어, 낯선 이들이 울산을 찾아가면 택시 아니고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는 아직 울산을 못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울산만한 도시라면, 자가용보다는 자전거를 몰면 훨씬 즐거울 테고, 찻삯도 아낄 테며, 몸도 한결 나아질 텐데. 가까우면 걷고, 조금 멀면 자전거를 타고, 좀더 멀면 버스를 타고 움직이면 될 텐데. 우리들은 지구자원이 메마르는 일에는 거의 걱정을 않으면서 살고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술잔을 걸치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지난날 서울에 보금자리를 얻어 살아가던 때 동무나 선후배를 만나 술집에 가던 때를 떠올립니다. 술집을 찾아가는 길은 늘 시끄러웠고 불빛이 번쩍거렸으며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웬만한 술집은 노래소리로 시끄럽거나 텔레비전 소리로 귀가 따가웠습니다. 술집에 모인 사람들은 이런 시끄러운 소리보다 높은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우리도 목소리를 안 높일 수 없었습니다. 술집에서 두어 시간 술을 걸치고 나오면, 술기운보다는 귀가 홀가분해지고 머리도 가벼웠습니다. 젊을 때는 시끌벅적한 데를 곧잘 즐겨찾았는데, 나이가 한 살 두 살 들면서 호젓하고 조용한 술집이 아니면 있기 어려워집니다. 같은 술이고 같은 사람이지만, 시끄러운 데에서는 마주한 사람한테 오롯이 마음을 기울이기 힘들어 애써 마신 술도 그리 맛나지 않게 됩니다. 조용하고 호젓한 데에서는 마주한 사람 얼굴을 더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고, 이야기도 훨씬 너르고 그윽하게 나눌 수 있어 술맛도 한결 맛나곤 합니다.


.. 하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평화를 위한 기도를 드려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점차 희망을 잃어 갔다. 난민촌에서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었다 … 난민촌의 삶을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그곳 생활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난민으로 산다는 것은 야수에게 먹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배급날이 되어 새벽에 나가서 하루 종일 줄을 서는 일이었다. 3일을 굶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서는 그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루 종일 끓어오르는 뙤약볕 아래에서 경찰에게서 곤봉으로 얻어맞으며 줄을 섰다 ..  (알레포, 403, 407∼408쪽)


 옆지기가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전화를 합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나 싶어 시계를 보고는 부랴부랴 자리를 털고 율목동 골목 닭집에서 일어납니다.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동 골목길 안쪽을 살짝 돌아봅니다. 오래된 문패, 오래된 대문, 오래된 방범창살, 오래된 골목집 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 들을 어둠 밝히는 거리등불에 기대어 살짝살짝 느끼면서 걷습니다.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길이라 밤에는 더 한갓지며 고즈넉하다는 느낌입니다. 이 고요함, 이 한갓짐, 이 고즈넉함, 이 아늑함, 모르긴 몰라도 이러한 느낌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 주는 평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 한켠에 조그맣게 마을을 이루어서 쉰 해고 백 해고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평화를 맞이할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스무 해조차 한 집에서 버틸 수 없이 서너 해에 한 번씩, 아니 전월세 계약이 끝나는 한 해나 두 해마다 새로운 살림집을 알아보고 또 짐을 꾸리며 옮겨서 다시 짐을 풀고 해야 하는 삶이란 싸움터와 마찬가지로 고달프고 힘겹고 마음아픈 삶이 아니랴 싶습니다. 재개발에 따르는 이익이 아니라 재개발에 따라 자꾸만 집터에서 내쫓기며 더 구석과 더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는 삶이란 전쟁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피터는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나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형 모습이 조금도 못 자란 어린아이 같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눈을 감았다. 피터를 뒤로 하고 요셉 형과 내가 팔라타카를 떠난 뒤부터 지금까지 지내 온 고통스런 순간들에 대해 어떻게 이제 와서 설명할 수 있을까? 조금 정신이 들기 시작하자, 팔라타카에서 피터를 버리고 떠날 때와 같은 고통과 자책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나팅가에 남은 요셉 형, 벤슨 형, 벤자민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요셉 형은 수없이 많이 내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비록 걷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안전한 곳에 도달했는데, 요셉 형은 이미 전선에 배치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리를 심하게 다친 채 더러운 감옥에 갇힌 벤자민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모두 벤슨 형 덕분이었다. 다른 소년들과 함께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아픈 나를 두고 차마 떠나지 못한 벤슨 형은 이제 나 때문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난 아팠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였다 ..  (알레포, 349∼350쪽)


 집으로 돌아와 옆지기까지 마주앉아서 술잔을 부딪힙니다. 옆지기도 모처럼 가볍게 술 한잔을 하면서 마음을 쉽니다. 아기는 우리 두 사람과 손님을 너그러이 헤아려 주는지, 잠에서 깨지 않고 시간마다 오줌만 눌 뿐,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새벽 네 시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슬그머니 잠이 들고,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엊저녁에 불려 놓은 콩과 쌀을 냄비에 담고 밥을 끓입니다. 손님은 열 시가 되어서야 일어났고, 말끔히 씻은 다음 둘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골목 마실을 합니다. 서울에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지만, 약속은 뒤로 미룬 채 자전거를 타다가 그냥 끌다가 하면서, 골목집 텃밭을 구경하면서 사진으로 담고, 텃밭에 우뚝 서 있는 허수아비를 보며 인사를 하다가 사진으로 남기고, 바람에 나부끼며 햇볕에 보송보송 마르는 빨래를 흐뭇하게 올려다보다가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찍습니다.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올라가야 하는 언덕받이 골목길 끝까지 올라가면서 곳곳에 알뜰히 가꾸어 놓은 꽃그릇에 웃음꽃을 돌려줍니다. 가다가 서고 또 가다가 서고 하면서 길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사진찍기에 빠집니다. 아름다이 여미어 놓은 골목길은, 이곳에 깃들어 사는 사진쟁이한테도, 또 이곳을 처음 밟는 낯선 손님한테도 즐거운 사진 놀이터가 됩니다.

 숭의3동 109번지와 송림동이 갈리는 세 갈래 골목길에서 나이든 할아버지가 우리를 불러세우면서 몇 가지 다짐 말씀을 해 줍니다. 당신도 젊을 적에는 자전거 참 많이 탔다고, 타다가 넘어져서 다치고 이가 나가고 여기가 나가고 깨어나니 병원이고 했는데, 이런 비탈길 같은 데에서는 조심조심 타라고, 사람보다 차가 더 빠르니까, 차보다 더 빨리 가려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몸이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몇 번씩 힘주어 말씀하시다가는, 즐겁게 자전거를 타라며 한손을 내밀며 뜨겁게 붙잡아 줍니다. 이발소집에서 사는 할아버지를 앞으로 또 뵐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전쟁 앞에 우리는 바람에 흩어지는 나방과 같이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 혼자 떠돌아다니는 나 같은 아이는 발길로 걷어차고 나뭇가지로 때려도 되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  (벤슨, 235, 275쪽)


 (2) 전쟁은 어떤 삶일까


 옆지기 옛동무가 집으로 찾아와서 아기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집 가까이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은 다음, 저는 집에서 아기를 돌보기로 하고, 세 사람은 바깥마실을 나갑니다. 아기는 잠들 듯 말 듯하다가는 잠들지 않고 칭얼댑니다. 안으면 칭얼거림을 멎고 자리에 눕히면 칭얼거립니다. 히유, 아빠도 좀 다리 뻗고 누워 보자, 응, 하고 아기한테 말을 걸지만, 아기는 아빠 말을 알아듣지 못할 테지요. 외려 아기는, 여봐 아빠, 아기는 아빠 품에 안기고 싶어한단 말이에요, 잘 좀 안아 보시라구요, 하고 말을 걸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허리는 아프고 눈은 감기는데, 아기를 품에 안고 둘리 노래를 부르고 이런저런 노래를 잇달아 부르면서 아기를 달래고 놀아 주고 어릅니다. 한참을 이렇게 있어도 도무지 잠들 낌새가 없어서, 아기가 꿉꿉해서 이러나 싶어, 물을 끓여 씻기기로 합니다. 뜨거운 물이 튈까 아기를 자리에 내려놓습니다. 아기는 싫다며 앙앙 웁니다. 주전자를 한 번 붓고 나서 아무래도 한 팔로 안으면서 해야겠다 싶어, 한 팔로 안고 주전자에 물을 받고 끓이고 하니 아기는 조용합니다. 원, 녀석두, 이렇게 아빠를 힘들게 하고 싶니, 하고 말을 하지만 눈만 말똥말똥.

 발부터 살며시 넣으면서 천천히 씻깁니다. 머리를 감길 때까지 보채던 아이가 몸에 조금씩 물을 끼얹어 주니 조금씩 조용해집니다. 그래 그래 착하지 우리 아기, 하면서 구석구석 꼼꼼하게 물을 끼얹고 문질러 줍니다. 아기를 거의 다 씻을 무렵 옆지기가 돌아옵니다.


.. 그 무렵, 나팅가에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소년들은 모두 모여 지휘관의 연설을 들었다. 그건 우리가 새로운 종류의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너희는 이제 군사 교육을 받을 거다. 학교에 갈 때나 일을 할 때나 언제나 총을 가지고 다니게 될 거다.” 소년들 대부분은 기뻐서 노래를 부르며 좋아했지만, 내가 듣기에 그것은 슬픈 소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내 생각을 나타내지도 않았다. 우리 소년들을 나팅가에 데리고 와서 잡아 둔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반군 병사로 만들기 위해 잡혀 온 것이었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전선으로 보내져 죽든 말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게 되겠지? 나팅가의 병사들은 말했다. “하루에 천 명이 죽으면 백 명이 태어나는데, 누가 너희 또래 아이들이 죽든 말든 싱경이나 쓴다던?” ..  (벤슨, 336쪽)


 아기를 안으며 지낸 지 어느덧 두 달. 말이 두 달이지, 이 두 달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거의 종잡지 못하겠습니다. 하루 같은 두 달인지 이태 같은 두 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기를 안고 어르는데 무슨 광고 전화가 오면 몹시 짜증스럽지만, 건너편에서 광고 전화 해대는 사람은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아주 큰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기차가 있어 아기가 깜짝 놀랄까 걱정이지만, 기차를 모는 분들은 당신들이 오가는 이 기차길 옆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 삶은 거의 헤아리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기차 승무원들은 기차길 옆 동네 사람들 삶터를 두 다리로 거닐면서 기차소리가 사람들 삶터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몸으로 좀 느껴 보아야지 싶어요.

 이런 마음씀은 때때로 아기를 안고 어디를 다녀와야 할 때에도 느낍니다. 아기 포대기를 안고 살금살금 걷고 있는 저나 옆지기를 툭툭 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아기 포대기인 줄 모르기 때문에 저러느냐 싶기도 하고, 아기 포대기이거나 말거나 자기 갈 길이 더 중요하니까 저르느냐 싶기도 합니다. 아기가 찬바람이라도 맞을까 걱정되어 살살 포대기를 안으나 그 옆에서 대놓고 뻑뻑 담배 태우며 걷는 아저씨들이 꼭 있습니다. 당신한테 아이가 없어서 못 느끼는지, 당신도 이 아이와 똑같은 어린 날이 있었는데 그때를 떠올리지 못해서 그러시는지.

 아기와 옆지기만 두고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갈 때면 전철을 타는데, 전철간에서 아기를 업고 타는 아주머니나 아기를 안고 타는 아주머니를 으레 봅니다만, 이이들한테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분들을 만나기 퍽 어렵습니다. 없지는 않지만, 날이 갈수록 애 어머니한테 마음을 기울여 주는 눈길이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 나는 리니 형과 티크 형이 하는 얘기를 귀기울여 들었지만 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일 나는 다시 가족을 다시 만나겠지만, 전쟁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이상 파제리에서의 평화로운 시간도 다 되어 가는 듯했다. 같은 나라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하늘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내 나라 수단은 어떤 곳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늘에서는 정부군이 폭탄을 떨어뜨리고, 땅에서는 반군이 무기를 굴리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소리를 지르는 곳. 반군 병사가 피투성이가 되고, 총알구멍이 뚫린 군복을 입고 정부군 병사의 시체를 치우는 곳. 아, 과연 내 나라 수단은 어떤 곳이기에! ..  (벤슨, 290∼291쪽)


 왜 이렇게 우리들 삶이 팍팍할까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바쁘기에, 얼마나 고되기에, 얼마나 전쟁통 같은 삶이기에, 얼마나 내 이웃을 적처럼 여기며 밟고 올라서서 우뚝 서는 ‘나홀로 1등’과 ‘나홀로 부자되기’를 이루어야 하기에 이렇게 착한 마음을 잃는지 모르겠습니다.

 착한 마음을 잃고 돈버는 마음만 키워도 되나요. 우리 아이들한테, 우리 뒷사람들한테, 착한 마음이 아닌 돈버는 마음만 물려주어도 되나요.

 어려운 이웃한테 베푼다는 ‘불우이웃돕기’는 성금모금함 부피나 크기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우리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돈이 적으면 적은 대로 나누고, 돈이 없으면 돈이 아닌 품으로 나누면 됩니다. 품을 들여서 일손을 거들고, 마음을 쏟아서 따뜻하게 감싸 줍니다. 돈 몇 닢을 나눈다고 해도 사랑과 믿음을 담는 돈닢이어야지, 주기 싫으나 눈치 보여서 억지로 내어놓는 돈닢은, 이 돈닢을 받는 사람한테도 고마움을 느끼게 하기 어렵습니다.


.. 나는 멀리서, 정부군이 사로잡은 마을 주민들의 손과 발을 묶고 목에 긴 밧줄을 걸어 엮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정부군은 줄줄이 엮인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도록 눈을 가리고는 끌고 갔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강물에다가 버려. 총알도 사실 낭비야.” 그날 밤, 나는 야자나무가 무성한 우리의 사랑스러운 마을 주올이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  (알레포, 177쪽)


 이루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서울과 부산을 더 빠르게 잇는 고속철도를 놓는 데에 돈을 쓰기보다, 우리 이웃이 서로서로 고르게 권리를 누리고 집없이 살아가는 설움과 고달픔을 맛보지 않도록 하는 데에 쓰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물길을 뚫는다며 공사를 벌이기보다, 또 이런 공사를 하느니 마느니 알아보느라 적잖은 돈을 쓰기보다, 이 돈으로 남녘과 북녘 모두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밥나눔을 하는 데에 쓰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새 고속도로를 뚫어서 어느 한 곳과 다른 한 곳을 빠르게 잇는 길을 닦는 데에 수십 조라는 돈을 쓰기보다, 이 돈으로 이 나라 모든 어린이들이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까지 거저로 배우고 넉넉히 자기 배움을 사회로 되돌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 보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스무 해만 되면 재건축을 해야 한다며, 비싼 돈 들여 지은 아파트 때려부수지 말고, 적어도 이백 해는 너끈히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지어서, ‘재건축에 들어가는 돈’을 어려운 살림살이 꾸리는 가난한 이웃나라 돕는 데에 쓴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 “벤슨, 넌 아직 옳고 그른 걸 판단할 줄 모르는 나이야. 그래서 엄마는 너를 두고 걱정이 많구나. 네가 엄마에게 얼마나 큰 힘과 의지가 되는지 너는 아마 모를 거다. 그러니 아들아, 엄마가 살아 있는 한, 엄마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너도 꼭 살아남아야 해. 앞으로는 조심에 조심을 더해서, 전보다 총소리가 가깝거나 크게 들리면 집에서 도망쳐야 해. 죽어라 뛰어서 덤불 속에 숨어. 절대 잡히거나 노예로 붙들려 가면 안 돼. 다쳐서도 안 된다.” 내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동물의 울부짖음 같았다. “총을 든 병사 흉내도 내지 마라. 딩카 족의 아이답게 너는 소나 다른 동물들의 인형을 만들면서 놀아야 해. 딩카 족은 총을 가지지 않아. 총은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서 본 가장 사악한 물건이다. 그러니까 반군 병사 흉내를 내며 총놀이를 하는 건 불운을 가지고 올 뿐이다.” ..  (벤슨, 90쪽)


 이룰 수 있다면 그지없이 반갑고 고맙습니다만, 이루지 못하게 되더라도 꿈이나마 꾸고 싶습니다. 꿈을 꾸면서 앞으로 언젠가는 이와 같은 일이 우리 눈앞에서 즐겁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3) 수난 내전과 끔찍한 죽음, 《잃어버린 소년들》


 종교를 놓고 다툼이 생겨서 서로를 끔찍하게 죽이고, 끔찍하게 죽은 뒤 앙갚음을 하려고 똑같은 죽임을 되풀이하게 되는 수단 내전 이야기가 담긴 책 《잃어버린 소년들》을 읽습니다. 《잃어버린 소년들》에 나오는 ‘잃어버린 소년들’은 처음부터 어떤 종교를 믿고 살던 아이들이 하나도 아니며, 이 아이들 아버지와 어머니도 처음부터 어떤 종교에 몸이나 마음을 맡기지 않으면서 살았습니다. 수단사람 어느 누구도 종교뿐 아니라 전쟁무기 만드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나라를 쳐들어간다든지, 이웃에 뿌리내린 겨레를 짓밟는다든지 하는 일 또한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같은 나라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갈린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기만 하지 않고 죽여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부모도 잃고 고향도 잃고 삶터조차 잃으며 일자리조차 꿈을 꾸지 못하는 데다가 아무런 교육 혜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아이들한테 연필이 주어지는 일은 드물고, 나이가 차면 자연스레 소총 한 자루 쥐어주어 죽음터, 또는 죽임터로 내몹니다. 열서너 살에 죽음터 또는 죽임터로 내몰린 아이들은 소총 한 자루를 믿고 손쉽게 남 목숨을 고꾸라뜨릴 뿐더러, 가볍게 강간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약탈과 도둑질을 일삼습니다.


.. 벤자민이 밑에 깔려 죽어 갈 때 다른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그 병사만은 선한 마음으로 우리를 도와주었다. 이제 더는 세상은 우리 같은 어린아이를 돌보는 곳이 아니었다. 엉덩이에 총을 들이민 어린 병사처럼, 나도 총을 가지고 낄낄거리는 얼굴에 들이대고 싶었다 ..  (벤슨, 310쪽)


 책을 덮고 한숨을 내쉽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하나라도 더 무너뜨리며 밟고 올라설 적’으로 삼아서, 자기 밥그릇 채우기에 바쁩니다. 비록 총칼을 들지 않았으나, 어쩌면 총칼보다 훨씬 무서운 돈다발을 들고서 누가 이기나, 누가 지나, 누가 죽나, 누가 죽이나를 노려보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러느라 너무도 바쁜 나머지, 총칼을 들고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는 수단 같은 나라를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무엇 하나라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펼치지 못합니다. 돕지는 못할망정 우리 삶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우리 자신을 다독이거나 다스리면서 평화로움을 찾도록 애쓰지 못합니다.


.. 하지만 열 살 정도 된 소년들 가운데 많은 아이가, 어른들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고 싶어 한다. 수많은 사람이 살해되는 것을 보고, 그 아이들 마음속에는 복수심만 자라난 것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자비나 용서를 몰랐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돌처럼 굳어 버린 것 같았다 ..  (알레포, 203∼204쪽)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무엇이 아름답다고 마음에 아로새기면서 살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무엇이 좋다고 가슴에 돋을새김하면서 일하고 있는지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서 발자국을 남기면 좋다고 몸뚱이에 남기고 있는지 곱씹어 봅니다.

 수단은 총칼을 든 전쟁 때문에 ‘잃어버린 아이들’이 쏟아지는데, 우리는 돈다발을 든 전쟁 때문에 이 나라 아이들을 ‘잃어버린 아이들’로 내동댕이치고 있는 모습을 날마다 수없이 보고 또 보고야 맙니다. (4341.10.14.불.ㅎㄲㅅㄱ)

 

***

엉성한 번역이 퍽 많고, 잘못된 번역도 틀림없이 있는 듯하지만, 그런 잘잘못은 건너뛰기로 한다. 다만, 104쪽과 133쪽과 136쪽에는 "빨간 팬티"로 나오지만, 151쪽과 338쪽에는 "빨간 반바지"로 나온다. 책 겉그림에도 빨간 반바지를 입은 소년이 나온다. 그 겉그림을 보아도 알겠지만, "빨간 팬티"가 아닌 "빨간 반바지"이다. 이 잘못된 대목은 2쇄에서는 고쳐지기 바란다.

이밖에 너무 눈에 도드라지는 잘못된 곳은 '묵다'를 '묶다'로 자꾸 잘못 적은 대목. 아무래도 번역자나 편집자가 놓쳤다기보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보여진다. 한 번만 틀렸으면 모르되, 서너 차례 되풀이된다. 또, '처지다-뒤처지다'처럼 적어야 올바르지만, 한 번은 '처지다'로 잘 썼으나, 그 뒤로 여러 차례 '뒤쳐지다'로 잘못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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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로 아이 키우는 일이란 너무 쉽고 미안하다
 [애 아빠는 어떻게 사나 2] 쉰닷새와 쉰엿새째 육아일기



 (쉰엿새) 물장난

- 날짜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산다. 오늘 새벽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발 느긋하게 뻗고 쉬는 때란 잠깐도 없다. 조금 곁을 낼 수 있을 때라면, 밀려 있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집안일을 한다. 쌓여 있는 기저귀가 있으면 기저귀 빨래를 한다. 기저귀 빨래를 하는 사이, 아기가 깨기라도 하면 저와 함께 놀아 달라면서 운다. 처음에는 한두 마디 짤막하게 끊어지는 낮은 소리로. 차츰차츰 길며 높아지는 목소리로.

 쉰 날을 맞이하기 앞서까지만 해도 옆지기 몸이 몹시 안 좋았다. 어쩔 수 없이 배앓이를 견디지 못하고 병원에 가서 모진 의사 손을 거쳐서 아기가 태어나느라 아기와 옆지기 모두 몸과 마음이 다치기도 했지만, 옆지기가 제 몸을 되찾는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이를 지켜본 장모님이나 이웃 할머니나 ‘백일이 괜히 백일이 아니라, 아기와 엄마가 몸을 되찾는 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진작부터 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처음 겪어 보는 우리들로서는 이런 대목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아니 헤아릴 수 없었다. 첫 세이레 동안 아기를 지키고 옆지기 어긋난 뼈가 제자리를 찾는 데까지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는 대목쯤은 알았으나, 그토록 몸풀이가 오래 끌게 될 줄은 알 수 없었다. 어떠한 책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고, 어느 자료에서도 이렇게 백일에 걸쳐서 아기와 애 엄마 몸풀이를 돕고 이끌어야 한다는 소리는 없었다.

 왜 육아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을까. 왜 초중고등학교 성교육 때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을까. 가르쳐 주는 교사들부터 겪어 보지 못해서 못 들려주었을까.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된다고 생각하며 대충 넘겼을까. 푸름이들 눈길과 생각은 ‘사랑놀이’에 맞춰질 뿐, 아기를 몸에 안고 열 달이라는 삶을 배로 품어낸 다음 세상으로 받아들여서 천천히 세상과 한몸이 되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몰랐을까.

 생각해 보면, 지난날에는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따로 책을 살피지 않아도 집안이 큰식구였기 때문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거들어 주고 이끌어 주고 도움을 베풀었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었고, 아이를 낳는 동안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기 몸과 어머니 몸을 시나브로 다시 배우게 된다. 무엇을 해 먹이고, 어떻게 해 먹이며, 집은 어떻게 꾸미고, 집식구들은 어떻게 매무새를 다스려야 하는가를, 집안 어르신이 차근차근 가르치고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시골도 도시도 큰식구로 살아가기 어려운 한편, 자식뿐 아니라 부모 스스로도 딴살림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따로따로 산다. 모두들 제 삶을 저희끼리 홀로 이끌려고 한다. 아기를 낳는 한동안, 아기를 낳고서 얼마쯤 일손을 거들는지 모르나, 일손 거들기를 넘어서 아이 삶과 애 어머니 삶을 깊이 들여다보도록 마음을 틔워 주기까지는 못한다. 그러니 책을 찾아볼밖에 없고, 인터넷이라도 뒤져야 하는데, 이와 같은 이야기를 찾기란 너무도 고달픈 일.

 나라에서는, 아기를 집에서 낳으면 돈 얼마를 준다고 하고, 셋째를 낳을 때부터 몇 십만 원을 준다고 하지만, 이런 돈보다도 ‘제대로 된 아이 키우기 정보와 지식’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틀거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나 싶다. 아이를 막 낳을 때를 비롯해서 아이를 낳고 집에서 고이고이 기르는 동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가 자라는 달수와 날수에 맞추어 아이 몸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면 좋을지를 찬찬히 보여주고 알려주는 ‘진짜 산모수첩’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 아기 몸씻이를 하다. 옆지기가 조금 힘들어 해서 혼자 씻기다. 내가 아기 한쪽 손을 놓쳐서 떨어뜨리지 않았으나, 아기가 한손으로 물을 튀긴다. 처음에는 그저 아기 한쪽 손이 떨어진 줄 알았으나, 아기 스스로 살짝 웃음기 띤 얼굴로 한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철푸덕철푸덕 한다. 세 번 하고 그만둔다. 목을 가누려면 한참 멀었을 테지만, 지난주 무렵부터는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한다. 몸씻이를 할 때에도 지난주까지만 해도 목 뒤틀리지 않게 붙잡느라 힘겨웠는데, 쉰 날 무렵부터는 걱정이 한결 덜다. 그래도 다치지 않게 잘 붙잡고 지켜보아야지.

 이제는 목이 조금씩 보이는 듯해서 접힌 목 안쪽에 때 많이 끼고 벌겋게 붓는 일도 줄어든다. 처음 씻길 때에는 목살 접힌 안쪽까지 씻을 생각을 못했다. 접힌 다리살과 팔살도 마찬가지. 장모님이 아기 씻기는 모습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몸씻이를 하면 무척 좋아한다는 느낌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에 두 번이나 세 번도 씻겨 주면서 지가 좋아하는 물놀이를 시켜 주고 싶지만, 엄마나 아빠나 너무 고단해서 한 번도 겨우 씻긴다.

 날마다 안 씻겨도 된다고 하는 말이 들려오지만, 아기 목이 벌겋게 되기도 하는 한편, 아빠를 닮아서인지 더위를 퍽 타는 듯하다. 더욱이 예방주사 부작용 황달이생겼기 때문에 냉온욕을 꼬박꼬박 해 주어야 하는 터. 씻길 때 보면, 거의 누워만 있던 아기임에도 배냇저고리가 살짝 꼬질꼬질하다는 느낌. 아마 아기가 흘린 땀 때문일 테지. 다른 집 아기 키우는 모습과 견주면 우리 아기는 거의 풀어놓고 키우는 셈이지만, 그래도 더위를 타는 듯. 그렇다고 저녁 온도가 19도쯤까지 내려가는데 마냥 풀어놓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나나 우리 옆지기도 어릴 적에 우리들 어머니 손으로 몸씻이를 하지 않았겠는가. 옆지기 어머님은 막내아이가 하도 더워 해서 하루에 아홉 번을 씻기기도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하루에 한두 번 겨우 씻기는 일도 아기한테는 모자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쉰이레) 젖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울기만 하면

- 밤 앙탈이 갈수록 커진다. 쉰 날을 접어들면서 몸이 많이 나아진 옆지기가 부엌일을 거들며 나를 쉬게 하고 밥을 하거나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동안, 또 내가 너무 지쳐 있으니 내가 쓰러져 잠든 동안 빨래를 하는 사이, 아기가 앙탈 부리듯 운다. 처음 세이레까지, 우리 아이는 거의 울지도 않았을 뿐더러, 쉬를 보고도 또 뭐가 있어도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 지금도 쉬를 하건 똥을 누건 가만히 있는다. 오히려 한창 찡얼거리다가 뚝 끊은 다음 뭔가 멋쩍다는 얼굴로 ‘끄응’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똥을 누었다는 뜻.

 밤에 앙탈을 부리니 서둘러 잠자리에 들고 새벽녘에 깨어나 기저귀 갈고 젖을 먹여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몹시 괴롭다. 나만 먼저 자기도 그렇고, 옆지기는 더더구나 잘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어머니들한테 아직 듣지 못했는데, 우리 아기였을 때에도 이렇게 어머니들을 괴롭혔을까. 궁금하다. 듣고 싶다.

 깊어가는 밤, 힘들어서 자리에 누운 옆지기가 “젖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울기만 하면 어쩌니, 사름아.” 하면서 아기를 달랜다. 왜 그럴까. 우리 두 사람은 아기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안고 어르고 달래고 젖을 물리고 효소물을 먹이고 하면서 가까스로 재우며 한숨을 돌린다. 그러나 이렇게 재우고 나면 이 녀석은 슬그머니 또 눈을 뜬다. 꼭 우리를 갖고 노는 듯하다. 자기를 재우고 밀린 일을 하고, 느긋하게 두 사람이 밥상을 마주하고 싶어도 안 된다. 녀석은 꼭 자기가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단다. 옆에 눕히면 울지 않고 가만히 있지만, 모기장 안에 뉘여 놓으면 울어댄다.


- 8월 14일 밤, 첫 배앓이가 있고, 그 이튿날 8월 15일부터 도서관 문을 닫고 있었다. 열 수 없었지. 그리고 10월 11일, 거의 두 달 만에 도서관 문을 다시 열다. 도서관 나들문에 “아기 돌보기와 옆지기 몸풀이 때문에 9월 끝무렵까지 쉬어야겠습니다” 하고 적어 놓기는 했으나, 막상 닥치고 치러 보니까 9월 끝무렵은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시월도 거의 가운데무렵이 다 되어서야 잠깐 문을 열게 되었다. 그러나 문만 열고 청소만 신나게 했지, 자리를 지킬 수 없다.

 손님이 들어와서 책을 보고 있으면, 그 손님한테 마음속으로 ‘도서관 지켜 주셔요’ 하고는 사진기며 노트북이며 그대로 도서관에 있는 채로 살림집으로 후다닥 뛰어올라간다. 아기 달래고 기저귀 빨고 널고 걷어서 개고. 한숨을 돌리며 아기를 안고 내려와서 옆지기를 좀 쉬게 하면서 도서관에 내려와 있자니(이동안 옆지기는 쉬지 않고, 아기 목에 발라 줄 녹즙을 만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녀석은 ‘뿌지직’. 헉. 똥이냐?

 이마에 맺힌 땀이 채 식지 않았으나 부랴부랴 살림집으로 달려 올라간다. 방수천을 깔고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기저귀를 벗겨서 뒷똥 나올 때까지 2분쯤 기다린다. 오줌을 눈다. 똥 누고 나서 오줌 누면 더 똥을 안 누겠다는 뜻. 물 온도를 알맞게 맞춘다. 흔히들 비싼 온도계(삼만 얼마짜리) 사서 재곤 하는데, 나는 그냥 손을 담그면서 내 몸으로 느낀다. 이만한 온도가 아이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를 느낀다. 온도계로 온도를 꼼꼼히 맞추어도 좋을 테지만, 아빠나 엄마 스스로 팔꿈치를 대어 본다든지 얼굴을 대어 본다든지 하면서 온도를 느껴도 되고, 처음부터 자기 손으로 아기 씻기기에 알맞는 온도를 손으로 알아채도록 훈련을 하면 더 좋으리라 본다. 몇 번 훈련하면 어렵지 않게 물 온도 맞출 수 있다.

 엉덩이와 발에 묻은 노란 똥은 손에 물을 묻혀서 닦는다. 밑은 손수건을 물에 담가서 닦는다. 엉덩이와 잠지를 물에 폭신 담그고 슬슬 닦기도 한다. 똥을 왕창 누어 주었기에 비누도 발라 준다. 다 씻고 기저귀 천으로 닦아 준다.

 빨래하고 씻기고 뭐 하고 한참 만에 도서관에 내려온다. 손님은 말없이 책을 읽어 준다. 고맙다.





- 오늘 저녁은 옆지기가 몸에서 밥을 잘 받는다고 해서 여러 가지를 차린다. 어제 가톨릭우리농매장에 가서 장만한 오얏과 푸성귀 몇 가지를 씻어서 날것으로 올리고, 말린묵과 버섯과 마른오징어와 양파와 감자 하나 썰어 넣고 밀싹국수를 끓인다. 나는 감자를 갈고 옆지기는 감자지짐이를 한다. 오붓하게 먹으려고 하는 때, 아기님은 어김없이 울어 주신다. 옆지기는 밥 먹으랴 아기 젖 물리랴 바쁘다. 이럴 때면, 남자로 아이 키우는 일이란 너무 쉽고 미안하다는 느낌뿐.

 배앓이도 안 하지, 몸도 안 무겁지, 입덧도 없지, 온몸이 부서지라 아기를 낳지도 않지, 아기 낳고 후들거림도 없지, 아기 낳고 나서 한 달 남짓 피내림도 없지, 물건 하나 들 수 없을 만큼 온몸에 힘빠질 일도 없지, 젖몸살도 없지, 젖 물 때 아플 일도 없지, 젖이 불어서 아프지도 않는 데다가, 젖을 짤 일도 없고, 아기가 마냥 젖을 물고 있어서 지쳐 늘어질 까닭도 없다.

 아기 아빠 된 사람으로서, 이 모든 고마움을 느끼고, 이 모든 고마움을 자기 옆지기를 돌보고 아기를 좀더 돌보는 데에 바쳐야 하지 않느냐 싶다. 그동안 집안일을 많이 했던 아기 아빠라면, 좀 힘들지 모르나 지난날보다 조금 더 힘을 쏟아 주고, 여태껏 집안일에는 담을 쌓고 있던 아기 아빠라면, 이제부터라도 집안일에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야지 싶다.

 으레, 회사 나가서 돈벌어야 하니 고단하고 힘들어서 집안일을 어찌하느냐고, 아기를 어찌 어르느냐고 하지만, 아기 어머니들이 산전휴가와 산후휴가를 내듯, 아기 아버지들도 마땅히 산전산후 휴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기업 일꾼이나 공무원이 아닌 바에야 산전산후 휴가는 꿈도 꿀 수 없다고 하는데, 산전산후 휴가를 꿈도 꿀 수 없이 만드는 일터라 하면, 마땅히 노동조합을 꾸려서 아기 아버지와 아기 어머니가 누려야 할 권리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노동조합에 가입을 하고 힘을 보태지 않는가. 그리하여 사회운동이 있다. 그래서 정치운동을 하고 교육운동을 하고 문화운동을 하면서 우리 삶터와 사회를 바꾸자고 한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백일도 되지 않은 아기를 집에 놓고서 회사에 나가서 돈을 벌도록 하는 나라라면 이 나라에 무슨 복지가 있고 교육이 있다고 하겠는가. 백일이 안 된 아기를 돌보기보다 분유값이든 기저귀값이든 벌어야 한다며 어머니도 돈 벌러 가고 아버지도 돈 벌러 나가게만 하는 나라요 회사라면, 노동자 복지와 권리는 무슨 꿈나라 이야기며, 세계 일류 국가라든지 국민소득 이만 달러라고 하는 이야기는 웬 귀신 봉창 두들기는 소리인가. 아기가 아기답게 어머니 사랑과 아버지 사랑을 골고루 듬뿍 받으면서 자랄 수 없다면, 이 나라 앞날이 어찌 되겠는가.

 그러나 나는 이 나라 앞날까지는 걱정하고 싶지 않다. 아니, 이 나라 앞날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아기 기저귀를 빨고 널고 개고 갈고 하는 데에만도 하루해가 짧다. 밥하고 반찬 해서 옆지기를 먹이고 나도 먹는 데에만 해도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내 코가 석 자라서, 나라 걱정은 나라일 맡은 정치꾼 님들께서 하시라고 믿고, 나는 내가 선 이 자리에서, 이 동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기는 옛 도심지 골목집에서, 우리 식구 깜냥껏 이 보금자리를 지키고 싶다.





- 옆지기가 말한다. 우리 집은 다른 건 다 나빠도, 옥상 넓게 쓰면서 빨래를 햇볕에 보송보송 말릴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다른 어느 집에 가더라도 이렇게 해바라기 잘할 수 있는 집은 없다고. 참말 나도 빨래를 마치고 왼 팔뚝에 걸친 다음 하나하나 옥상 빨래줄에 걸 때 얼마나 개운하고 시원한지. 집 건너편으로 쉴새없이 지나다니는 전철을 보면서 손을 흔들어 주고도 싶다. 막힌 울타리 때문에 전철에서는 우리 집에서 손 흔드는 모습은 못 볼 테지만.

 옆지기가 또 말한다. “당신, 앞으로 또 무슨 책 쓸 거 있어요?” “아이 키우는 이야기도 쓰고.” “그건 나중에 가서 해도 되고.” “왜?” “아니, 그림책이나 요새 나오는 책들을 보면 다 자료 가지고서 다시 만드는 책이라서 너무 재미가 없어. 그냥 장난 같아.”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책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은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새 들어서 이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찬찬히 다루어 주는 책이 없다고 느껴서이다. 나라안 사람들이 쓴 책도, 나라밖 사람이 쓴 책을 옮겨 놓은 책도 너무 없다. 아기를 낳기 앞서 얼마나 어떻게 몸과 마음을 갖추어 놓고, 아기를 낳을 때 어떻게 하며, 아기를 낳고 나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아이 엄마와 아기 아빠 눈높이와 눈길에 따라서 엮어 내려간 책을 찾아보기란 참 힘들다. 생생한 목소리가 없다. 눈물콧물 나는 힘겨움과 고단함을 그려낸 발자국이 없다. 무엇보다도, 아이 키우기를 거의 애 엄마 몫으로만 돌리는 사회 흐름을 거스를 만한 책, 아이 키우는 아빠가 되어 가는 삶을 담는 책이 없다. 육아책은 넘치지만 육아책이라 알뜰히 이름붙여 줄 육아책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까.

 지난 쉰 날까지는 생각만 했지, 수첩에 이런저런 생각과 이야기를 적을 조각 틈마저 없었다. 옆지기가 조금씩 몸이 나아지고 아기 칭얼거림에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를 비로소 몸으로 느낀 이즈음, 조금 숨을 돌리면서 책상 앞에 앉아서 몇 글자 끄적이게 된다. 돌이켜보면 쉰 날까지는 거의 똑같은 하루하루였다. 거의 똑같이 정신없고 바빠맞은 하루하루였다. 날마다 조금씩 바뀌기는 하는데, 이 쉰 날을 고비로 제법 크게 달라지는 모습이 있다고 느낀다. 오늘부터 하루하루 이야기를 적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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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67 : 한글날에 읽는 책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몇 가지 글을 써 두었습니다. 한글날을 맞이해서 한두 꼭지 또 썼고, 한글날을 마친 뒤에도 한두 가지 글을 쓰려고 합니다. 한글날이니 우리가 늘 쓰고 있는 글이며 말을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풀어 보는데, 한글날 아닌 때에는 우리 글과 말을 다루는 이야기가 거의 먹히지, 들리지, 건네지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한글이나 우리 말이 아닌 ‘논술’ 이야기는 잘 먹힙니다. 잘 들린다고 합니다. 잘 건네집니다.

 제가 좋아하고 또 저를 좋아하는 어느 만화쟁이 아저씨가 제가 쓴 글을 그림으로 옮겨서 ‘어린이들이 우리 말을 잘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만화책’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여러 해 앞서부터 밝혔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해 동안 어떤 글을 묶으면 좋을까를 살피면서 글뭉치를 모아 보았습니다. 만화쟁이 아저씨는 몸소 출판사까지 알아보셨다고 하는데, 당신이 알아보는 출판사마다, ‘왜 그 사람하고 일을 하려고 합니까?’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저를 아는 학습지 출판사로서는 제가 하는 일이 ‘글쓰기’이지 ‘논술’이 아니며, ‘삶을 담는 말을 스스로 즐겁게 하면서 아름다워지기’를 말하지 ‘시험성적 높이며 일류대학교에 붙도록 하는 논술 이야기’ 또는 ‘맞춤법과 띄어쓰기 잘 맞추도록 공부 시키기’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올 한글날을 앞두고 세상에 쏟아지는 책을 보노라면, 올해도 지난해하고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말을 다룬다고 하면 ‘깨끗한 토박이말’만 다뤄야 하는 줄, ‘잘못 쓰는 말을 바로잡기’만 해야 하는 줄, ‘틀린 맞춤법 추스르기’를 해야 하는 줄 아는 책만 보입니다. 글쓰기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으나,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수험생들한테 팔아먹는 ‘논술 장사’에서 홀가분한 책은 열 손가락 꼽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에 꼭 돈이 되어야만 값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돈이 되어야 한다면 왜 꼭 논술 장사로만 돈을 얻으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가운데 참 살 길을 찾아나서는 말과 글 이야기로도 넉넉히 돈벌이를 할 구멍을 살필 수 없는 노릇인지 궁금합니다. 일류대학교에 붙도록 도와주는 논술책이 아니라, 삼류대학교에 들어가건 아예 대학교는 꿈도 못 꾼다고 하건 사람이 사람다운 됨됨이를 추스르고 다독이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글쓰기책을 엮어내어 온 세상 두루두루 사랑을 펼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이야기책으로 엮을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찬물로 머리 감고 낯 씻고 손발을 씻고 자리에 앉아서 고요히 생각에 잠긴 뒤 하루를 열었습니다. 비록 오늘날 한국사람들은 한 해 가운데 고작 하루뿐인 한글날에조차 우리가 물과 밥처럼 쓰고 있는 말을 엉터리로 내팽개치고 있지만, 이 말과 글에 우리 얼과 넋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은 더 나아질 수 있고, 한결 넉넉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이 믿음을 펼쳐 보이고자. (4341.10.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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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여는 말 689] 지못미

 진보신당 심상정 님이 책을 하나 냈습니다. 책이름 《당당한 아름다움》만큼이나 활짝 웃는 얼굴이 무척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심상정 님 얼굴이 곱거나 예쁘다고 느껴질 얼굴인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만,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일하는 사람이든, 스스로 자기 길을 옳다고 여기며 꿋꿋하게 걸어가면 그이 스스로 제 깜냥껏 아름다움을 찾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는 무지개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어떤 이는 시궁창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며, 어떤 이는 싱그러운 들판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한편, 어떤 이는 자동차 배기가스로 가득한 도심지에서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없이 저마다 뜻과 값이 있을 테지요. 그러나저러나 심상정 님은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습니다. 퍽 아쉽다고 여길 수 있고, 그래도 홀로 꿋꿋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하고 말하며, 누군가는 ‘아직 덜 무르익었으니 더 무르익어야 해’ 하고 말합니다. 틀림없이 가시밭길은 고단하고 거칠며 팍팍합니다. 외롭고 슬프고 가슴 아픕니다. 그러나 가시밭길이 있기에 탁 트인 길이 시원합니다. 가시밭길이 있기에 더욱 단단해지고 좀더 야무지게 됩니다. 가시밭길을 거치면서 우리 스스로 꿋꿋해지고, 가시밭길을 헤치면서 우리 나름대로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심상정 님을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가 아닌 ‘앞으로 더 무르익도록 애쓰고 첫마음을 더 다부지고 튼튼하게 가꾸소서’ 하고 말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1.10.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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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꿀 수 있어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5
프리드리히 카를 베히터 글.그림,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바꿀 수 있는 삶을 어영부영 대충 살지 않나요?
 [그림책이 좋다 52] 프리드리히 카를 베히터, 《우리가 바꿀 수 있어》


- 책이름 : 우리가 바꿀 수 있어
- 글ㆍ그림 : 프리드리히 카를 베히터
- 옮긴이 : 김경연
- 펴낸곳 : 보림 (2008.9.16.)
- 책값 : 9800원






 (1) 아이를 생각하며 내 삶부터 바꾸기


 제가 ‘세탁기도 냉장고도 전자레인지도 없이 잘산다’고 하니, ‘그러면 왜 컴퓨터는 쓰냐?’고 되묻는 이가 있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안 쓰는 물건이 있다면 그러한 물건을 왜 안 쓰는지를, 또 그러한 물건을 안 쓰면서도 왜 잘산다고 하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나서 되물어야 할 텐데, 그리 묻지 않고 막바로 되묻기만 한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저는 세탁기를 안 쓰고 손빨래를 합니다. 냉장고를 안 쓰고 그때그때 저잣거리에서 장만하여 먹습니다. 냄비로 덥히지 전자레인지를 돌리지 않을 뿐더러, 덥혀야 할 먹을거리를 구태여 마련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자동차를 몰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탑니다.

 굳이 커다란 기계를 씻는방에 들여서 씻는방을 좁게 쓸 까닭도 없지만, 빨래를 전기와 많은 물을 들여서 할 까닭 또한 없다고 느낍니다. 손빨래는 좋은 운동이자 자기 옷을 더욱 사랑해 주는 일이 됩니다. 알맞게 입고 알맞게 빨면서 옷과 몸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먹는 일에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니 저절로 냉장고를 안 쓰게 됩니다. 냉장고를 두어 보았자 넣어 놓을 먹을거리도 없습니다. 따로 김치를 담그지 않고 날푸성귀를 먹으니 김치를 둘 일이 없습니다. 미역을 먹어도 그때그때 먹을 만큼만 불리고 다른 반찬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찌개 하나나 날푸성귀로 올려놓는 밥상이면 배가 부릅니다. 처음 밥을 할 때부터 누런쌀에 보리쌀을 섞고 대여섯 가지 잡곡과 콩팥 옥수수 들을 넣으니 밥만 먹어도 조그마한 그릇으로도 배가 부릅니다. 젖병을 데울 때만큼은 전자레인지가 쓸모있지 않느냐고도 하지만, 주전자로 물을 끓여서 담가 놓으면 오래지 않아 젖병이 따뜻해집니다. 다만, 전자레인지와 견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요. 그러나 아기를 잘 얼르고 있으면서 물리면 되니 괜찮습니다. 더욱이 젖병으로 엄마젖을 물릴 때에는 아기 뱃속을 씻어 주고자 숯가루를 먹일 때뿐이니(처음에는 엄마 젖꼭지가 헐어서 젖병을 썼지만) 전자레인지를 들여놓아 부엌을 좁게 할 일이 없음을 더더욱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틀림없이 되묻겠지요. 자전거도 똑같이 공장에서 만드는데 왜 똑같이 공장에서 만든 물건인 자동차는 안 타면서 자전거는 타느냐고.

 이때에도 답답한 생각이 들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좀더 속깊이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얼거리가 없는 한편, 우리 스스로도 좀더 속깊이 생각하려는 매무새가 줄어들었다고 느낍니다. 기름을 먹는 자동차와 두 다리로 굴리는 자전거는 같을 수 없으며, 자동차 한 대 값이면 자전거는 수백 대를 장만합니다. 또,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에 드는 쇠붙이와 플라스틱과 온갖 자원과 자전거 한 대 만드는 데에 드는 자원은 견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자동차를 굴리려면 길을 깔아야 하지요. 자전거 다닐 길도 깔아야 하지만, 사람이 걸어다닐 만하면 자전거도 크게 걱정없이 다닙니다. 좁은 골목길도 자전거는 넉넉히 다니지만 자동차는 못 지나갑니다. 더군다나 몰지 않을 때 자동차는 아주 넓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자전거는 아주 적은 자리만 차지할 뿐 아니라, 접는자전거는 접어서 신발장 옆에 두어도 되고 헛간에도 쏙 들어가며 문간에 놓아도 넉넉합니다.


 “아이참, 이 연못에는 왜 아이들이 없어요?”
 “글쎄다, 하랄트. 하지만 엄마 아빠가 있잖니?”
 “난 친구랑 놀고 싶어요.” ..  (2쪽)



 저나 옆지기는 어릴 적에 예방주사를 많이 맞았습니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맞았고, 우리 어머니도 꼭 맞혀야 한다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알아보니, 예방주사에 들어가는 성분에는 수은과 포름알데히드가 있는 한편, 예방주사가 ‘병을 다 막아 주는’ 주사가 아니라, 몇 퍼센트라는 확률로 막을 ‘가능성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세상에 공개된 ‘예방주사를 맞아서 병을 미리 막을 수 있는 확률과 예방주사를 안 맞고도 병에 안 걸리는 확률’ 자료란 없습니다. 재료를 내놓는 과학자도 없고, 자료를 만들려는 과학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예방주사를 맞아서 부작용에 걸린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를 다룬 자료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먹을거리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무턱대고 맞히는 예방주사가 얼마나 알맞는지, 얼마나 아기 몸에 영향을 끼치는지 꼼꼼하게 밝혀 놓은 자료를 미리 읽고 나서, ‘예방주사를 맞힐는지 안 맞힐는지’를 우리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맞아서 후회될 일 없잖아요?’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맞힐 주사가 아닙니다.

 우리 아기도 병원에서 우리 모르게 맞힌 비형간염 백신주사 때문에 황달에 걸려서 쉰 날을 넘긴 지금까지도 애를 먹이고 있는데, 화학물질 항생제로 맞히는 주사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을, 병원에서는 또다른 화학물질 항생제로만 처방할 뿐입니다. 더군다나 아이 엄마한테 젖을 끊기고 분유를 먹이라 하지만, 요즈음 분유에 섞인 성분 때문에 크게 말썽이 되듯, 분유는 요즈음만 말썽이 아니라 그동안 말썽거리 성분이 많이 있었지만 이제야 겨우 터졌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멜라민을 비롯한 온갖 문제 있는 화학성분이 섞인 분유를 먹으며 자란 아이들은 몸에 어떤 문제가 깃들고 있는 셈일까요.

 풀 먹는 짐승인 소한테 동물성 사료를 먹여 살을 찌우니 고기소들이 몸에서 부작용이 생기며 ‘미친소’가 되었고, 이렇게 미친소가 된 가여운 짐승을 잡아서 고기를 해 먹으니 사람들 몸에도 끔찍하고도 나쁜 병이 생겨나게 됩니다. 과학자들 말씀마따나 ‘미친소 고기를 먹어도 꼭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고 할 테지만, ‘병에 걸릴 확률이 높을 뿐 아니라, 확률이 낮아도 죽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떠들썩해집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엄마젖을 먹이고 병에 걸린 아기가 여태까지 있던가요. 엄마젖과 아기가 어떤 사이인가를 돌아본다면, 엄마젖을 끊으라고 하는 양의학 병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일본 미나마타 바닷가에서 ‘유기수은 중독’ 때문에 벌어진 무시무시한 대물림 돌림병인 ‘미나마타병’처럼, ‘수은’은 아기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몹시 나쁘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그런 수은 성분이 든 예방주사를 어떻게 아기한테 함부로 맞힐 수 있겠습니까. ‘부작용이 없을 가능성이 99퍼센트’라고 해도 그 1퍼센트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99.99퍼센트라 해도 1만 아이 가운데 한 아기가 걸리니, 그 한 아이 삶은 어찌 되겠습니까. 우리 나라가 오천만에 가까운 숫자인데, 나날이 새로 태어나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헤아리면 99퍼센트라도 걱정이고 99.9퍼센트라도 걱정입니다.





 “이 농장에는 왜 아이들이 없어요?”
 “글쎄다, 잉게. 하지만 엄마 아빠가 있잖니.”
 “흐응.”
 “흐응이라니?”
 “친구가 있으면 틀림없이 더 재미있을 거예요.” ..  (7쪽)


 그러나 이모저모 따져 보아도, 전자제품만 말썽거리가 아닙니다. 자동차만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화학성분 예방주사만 멀리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는 모든 이가 골고루 텃밭농사를 지을 만한 넉넉한 땅이 모자랍니다. 빈틈만 있으면 아파트를 짓느니 빌라를 짓느니 주차장을 만드느니 하는 판이니까요. 그나마 옥상이 있는 집에 세들어 살면 옥상 농사라도 짓는다지만 몇 사람이나 이렇게 하겠습니까.

 유기농을 하는 분들한테서 곡식을 사다 먹어도 동네 재래시장하고 발을 끊어야 하니, 사람 사는 마을에서 한식구로 어울리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문제에서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노릇이에요. 그냥 대충대충 살자고 할 수 없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을 아무나 대충 뽑아 놓고 어영부영 아무 정책이나 내놓든 ‘내 한몸 먹고살기에 빠듯하게 지내도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와 옆지기야 앞으로 서른 해나 마흔 해쯤 더 살면 더는 이 땅에 미련을 둘 일이 없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앞으로 쉰 해도 예순 해도 일흔 해도 살아야 할 이 땅 어린이들은 어찌하나요. 그리고 이 어린이들이 앞으로 자라서 낳아 기를 아이들은 또 어찌하지요?


 “이 숲에는 왜 아이들이 없어요?”
 “글쎄다. 하지만 필립, 넌 멋지게 살고 있잖니?” ..  (13쪽)


 틀림없이 힘들지만 바꾸어야 합니다. 누가 보아도 고달프지만 고쳐야 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달걀로 바위 치기 같지만, 한 걸음 두 걸음 걸어나가야 합니다. 얼핏 보면 우리 세 식구만 아둥바둥하는 듯해도, 예방접종 문제로 함께 머리를 싸매면서 슬기로운 길을 찾는 모임이 있으며(http://www.selfcare.or.kr), 유기농 곡식으로 우리 밥상을 깨끗이 지키며 시골 살림도 지키자고 마음 기울이는 모임도 많습니다. 찾아보면 나오고,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 더 단단해지며, 몇 안 되는 숫자라 해도 자기가 뿌리내린 동네부터 하나하나 바꾸려고 힘을 내면 눈에 도드라지게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우리부터 달라질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 식구가 달라지면 우리 아이가 뒷날 즐거울 수 있고, 우리 아이가 뒷날 즐겁게 된다면 우리 식구들을 둘러싼 이웃한테도 좋게 영향을 끼칠 테고, 머나먼 뒷날 우리 손주와 사위와 동무한테도 좋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 뒷날 아이 스스로 바꿀 수 있게끔


 “그런 건 따분해요. 전 한 번도 안 해 본 걸 하고 싶어요.”
 “거꾸로 날아 보거나 나비랑 놀아 보렴.”
 “그런 거 말고요. 돼지처럼 똥 속을 헤집고 다니거나, 물고기처럼 연못에서 헤엄을 치거나 …….”
 “우리가 보기에 넌 어리석고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제가 보기에 엄마 아빤 …….”
 “입 다물어라.” ..  (16쪽)


 그림책 《우리가 바꿀 수 있어》를 펼칩니다. 독일에서 1973년에 처음 나온 작품이라고 하는데, 서른다섯 해가 훌쩍 지난 오늘날 읽어도 가슴이 찡합니다. 참 훌륭하구나 하고 새삼 느끼며 두 번 펼치고 세 번 펼치다가 옆지기를 불러서 함께 펼쳐 넘깁니다.

 생각해 보니, 권정생 할아버지가 남긴 동화 〈강아지똥〉은 1969년에 쓴 작품인데 오늘날에도 나라안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책이자 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안에서 첫손 꼽는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이 쓴 대표가 되는 작품은 하나같이 일제강점기 때, 해방 뒤, 박정희 독재정권 때 나왔습니다. 서른 해는 우습고 쉰 해 일흔 해 넘긴 작품들이 처음과 같이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습니다.

 어디에 그런 힘이 있을까, 어떻게 이런 작품이 될까, 여러모로 곱씹습니다. 어떤 생각과 마음을 글에 담았기에, 어떤 얼과 넋을 그림에 실었기에, 그토록 오래오래 수많은 아이들한테, 또 여러 나라 아이들한테, 또 세대와 세대를 넘어서까지 사랑을 받을까 생각해 봅니다.


 엄마 아빠 물고기가 놀라워합니다. “우리 하랄트가 요즘 성격이 아주 느긋해졌어요. 혹시 그 우스꽝스런 친구들 때문일까요?” ..  (30쪽)


 성경에도 적혀 있듯이 ‘어린이한테 읽힐 글이요 어린이한테 보여줄 그림이라서 어린이마음을 품고 어린이 눈길로 적어 내려가고 그려 내려갔기’ 때문일까요.

 어린이책이라 한다면, 어린이 눈높이가 되는 사람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니, 어린이부터 늙은이까지 두루두루 맛나게 곰삭여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욱 힘을 쏟았기 때문일까요.

 처음부터 이웃나라 아이들한테까지 보여준다기보다, 처음부터 온나라 아이들한테까지 골고루 보여준다기보다, 먼저 내 아이한테 보여주면서 즐기자는 마음이었기 때문일까요. 내로라하는 어느 작품을 보아도 ‘우리 아이 아무개한테 바친다’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아마, 다른 아이보다도 내 아이가 먼저 재미있게 보고 신나게 받아들이며 기쁘게 몸으로 삭여낼 수 있을 때라야 다른 아이한테도 보여주면서 함께 웃고 울 수 있음을 깨닫는지 모를 일이에요.

 그렇잖습니까. 농사꾼 마음이 ‘우리 식구가 먹을 곡식’으로 생각하면 농약 한 방울 안 칩니다. 모두 손으로 일구고 거둡니다. 농사꾼 마음이 ‘더 많이 내다 팔아서 더 많이 돈벌어야지’가 될 때, 농약 잔뜩 치고 비료 듬뿍 쳐서 살이 오동통 오르는 곡식, 빛깔 반지르르하게 보이는 열매가 되도록 합니다.


 엄마 아빠 돼지가 놀라워합니다. “요즘 잉게가 아주 상냥해졌어요. 그 희한한 친구들 때문일까요?” ..  (31쪽)


 늘 느끼는데, 마음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꾸기 어렵다라는 생각이 아닌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더디 걸려 이백 해나 삼백 해가 걸리게 되더라도 바꾸어 나가도록 나부터 한 삽을 뜨려는 생각이어야지 싶습니다.

 서울과 수원에서 맨 먼저 ‘발바리(두 발과 두 바퀴면 넉넉하다 http://bike.jinbo.net)’ 모임을 이끌어 낸 자전거꾼들은, ‘하루아침에 우리네 길 문화를 자전거로 넉넉하고 즐겁게 출퇴근을 하고 학교를 오가고 저잣거리 마실을 하게 이끌어 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차근차근, 더디 가고 느리게 가더라도 한 사람씩 자전거 맛을 느껴 가면서 밑에서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그다지 읽히지 않는 글이라 해도 부지런히 써서 꾸준하게 잡지도 내고 책으로도 역는 글쟁이들 마음은, 자기가 끄적인 글 한 줄이 누군가한테는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살이 되어서, 우리 삶터를 좀더 아름답게 보살피는 밑거름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배를 곯으면서 글을 쓰고, 곁방에서 눈치를 보면서도 죽는 날까지 고단한 삶을 놓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 새가 놀라워합니다. “우리 필립이 훨씬 명랑해졌어요. 어쩌면 그 괴상한 친구들 때문일까요?” ..  (32쪽)


 그림책 《우리가 바꿀 수 있어》를 다시금 펼쳐 봅니다. 그림책에 펼쳐지는 삶터는 어린이들(새끼 물고기, 새끼 돼지, 새끼 멧새)이며 어른들이며 몸 튼튼히 오붓하게 지내기에는 걸맞지 않습니다. 새끼 물고기가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내는 연못 바닥에는 버려진 자전거며 수레바퀴며 갖가지 쓰레기가 가라앉아 있습니다. 돼지우리 둘레에는 늘 똥냄새입니다. 멧새 지내는 나무숲은 나무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그래서 이들, 새끼 물고기와 새끼 돼지와 새끼 멧새한테는 동무가 없습니다. 동무가 태어나 자라기 몹시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서 새끼 물고기와 새끼 돼지와 새끼 멧새를 기르는 어미 물고기와 어미 돼지와 어미 멧새는 당신들한테 하나 있는 아이를 끔찍이 돌보고 아끼고 키웁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바라고 있어요. 아이들 어버이는 참으로 좋은 분들이지만, ‘우리들은 동무를 사귀어 함께 놀고 싶다’고.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일지 모르나 아이들은 꿈을 꿉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목숨임에도 어깨동무를 하게 됩니다. 물고기는 돼지한테 걷기를 배우고, 돼지는 멧새한테 날기를 배우며, 멧새는 물고기한테 헤엄치기를 배웁니다. 여느 어른들, 아니 보수수의나 수구주의에 갇힌 어른들 눈에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집어던질지 모르는 그림책 《우리가 바꿀 수 있어》일 수 있지만, 아이들한테는 ‘참 그렇구나!’ 하면서, 동무란 마음이 맞으며 언제나 서로를 믿고 함께하는 사이임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손길을 내밉니다. 마음을 열어 꼬옥 안아 줍니다.

 그냥 그대로 살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저 그대로 억눌린 채 살고자 하지 않았기에. 그저 그냥그냥 외롭고 쓸쓸한 그대로 자기 삶을 허거프게 보낼 생각이 아니었기에.

 자기 마음을 먼저 바꾸고, 자기 매무새를 먼저 바꾸며, 자기 삶을 먼저 바꿉니다. 이러면서 바뀐 자기 마음에 동무 마음을 담고, 바뀐 자기 매무새에 동무 매무새를 배워 다스리며, 바뀐 자기 삶에 동무 삶을 두루 헤아리는 너그러움을 깃들여 놓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하나조차 힘들면 열 번에 한 가지씩. 열 번에 한 가지도 힘들면 백 번이나 천 번에 한 가지씩 느긋느긋, 차근차근. (4341.10.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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