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1 - 대답 없는 너
토베 케이코 지음, 주정은 옮김 / 자음과모음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아이는 우리한테 맑은 빛입니다
 [살가운 만화 55] 토베 케이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 책이름 :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1∼12)
- 글ㆍ그림 : 토베 케이코
- 펴낸곳 : 자음과모음 (2003∼2008)
- 책값 : 한 권에 8000원씩



 (1) 어른과 어버이


 볕이 들다가 말다가 하던 일요일 낮 아이와 함께 골목마실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다닌 골목마실 가운데 동네 아이를 가장 많이 마주한 하루였습니다. 아이는 이웃동네 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그냥 그곳에 눌러붙으며 오래오래 놀고 싶은 눈치입니다. 그러나 아빠는 이 골목 저 골목 두루 누비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빠로서는 퍽 ‘오래’ 한 곳에 멈추어 동네 아이랑 섞인다 할지라도 아이한테는 그리 ‘오래’가 되지 못합니다. 적어도 한 시간쯤은 놀아야 논다고 할 만할 테니까요.

 여러 동네를 여러 시간에 걸쳐 두루 다닌 사람이 보기로는 이 골목 저 골목마다 아이들이 없지 않습니다.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골목마다 제법 많은 아이들이 서로 복닥이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저희들 집이 깃든 골목 언저리에서만 맴돌 뿐, 조금 더 나아가 이웃동네 아이들하고 어울리지 못합니다.

 동네 모습에 따라 아이들 놀이가 다릅니다. 동네에서 어버이가 아이를 보살피는 매무새에 따라 아이들 눈빛과 기운이 다릅니다. 아랫도리를 벗고 맨발로 골목에 서서 텃밭 가장자리에 골라진 돌을 헌옷 모으는 통에 던져 넣는 아이는 집에서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 골이 났기 때문일까요. 이윽고 애 엄마가 동네 텃밭 위쪽 계단 타고 꽤 올라가는 기스락집 난간에서 아이를 찾더니 소리소리 지르며 나무랍니다. “너 맴매해야겠어!”

 행정구역으로는 아랫도리 벗고 골 부리는 아이가 사는 집하고 같은 동네인 금곡동 다른 쪽에서는 다 다른 집에 사는 세 아이가 이 집으로 저 집으로 기웃기웃하면서 동네 개하고 놀고 길에서 뛰고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며 놉니다. 한 아이가 사는 골목집 앞에서 빨래 널린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있자니, 이 집 애 엄마가 어느새 다가와서 “여기에서 뭘 찍을 게 있어요? 빨래요? 저거 그냥 던져 널은 건데.” 하며 웃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다시 올려다보니 빨래가 꽤 구겨져 있습니다. 아이 보랴 뭐 하랴 바쁘다 보니까 제대로 털지 못하고 부랴부랴 널기만 하셨군요.


..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면 알 수 있어요.” “네? 선택하는 사람의 기분이라뇨?” “전에 제가 저지른 실수인데요. 그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시키기 위해 더 싫어하는 것을 섞어 놓고, 둘 중의 하나를 고르게 한 적이 있어요. 본인에게는 뭘 골라도 괴롭기는 마찬가지. 선택을 하는 즐거움 따윈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잘못을 곧 깨닫고 더 이상 강요하진 않았지만 두고두고 후회가 되네요. 선택을 통해 본인의 의지를 끌어내 볼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그 선택이란 것이 결국 제 의지만을 강요하는 수단이 돼 버린 거였어요.” ..  (6권 151쪽)


 일요일을 맞이했기 때문인지, 골목 한켠에서 끌신 차림으로 슬슬 거닐며 아이랑 놀아 주는 애 아빠를 드문드문 만납니다. 집안에서 아이맡에 앉거나 누워 아이하고 놀고 있는 애 아빠를 하나둘 마주합니다. 일요일이기에 아이하고 놀아 주는 애 아빠일는지, 여느 날에도 아이랑 신나게 놀아 주는 애 아빠일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여느 날에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애 아빠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누리가 제아무리 남녀평등이 어느 만큼 이루어지고 있다 할지라도, 혼인을 한 두 사람이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할 때에는 거의 어김없이 엄마 쪽이 바깥일을 멈추거나 그만둔 다음 아이를 보기 마련이니까요. 어쩌면 두 분 모두 바깥일을 하며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맡기거나 어린이집에 맡길는지 모릅니다.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바깥일을 그만둔다든지, 또는 두 쪽 모두 바깥일을 접는다든지 하는 사람이란 도시에서 찾을 길이 없습니다. 아니면,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복닥이는 새 삶을 꾸려야 한다고 느끼며 언제나 아이 곁에서 지낼 수 있는 새로운 바깥일을 찾거나 꿈꾸는 사람을 볼 길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당신들 스스로 당신들이 당신 아이처럼 어릴 무렵에 당신 어버이가 당신들을 집에 달랑 남겨 놓고 하루 내내 바깥일을 한다며 나가 있으면 얼마나 싫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심심했는가를 금세 잊고는, 당신들 또한 당신들 어버이가 했던 잘못과 슬픔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당신들 어버이와 똑같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슬픔을 되풀이하는지를 느끼지 못합니다.


.. ‘안달하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 보자.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을 가르쳐 준 건 히카루, 바로 너란다.’ ..  (5권 74쪽)


 아이를 키우는 삶이란 참으로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하루하루란 더없이 고단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나날이란 몹시 힘겨우며 벅찹니다. 온 하루를 아이하고 붙어 지내는 가운데 밥하고 빨래하고 집 치우고 하노라면 하루가 아주 짧을 뿐 아니라 오늘이고 어제이고 글피이고를 가늠하지 못합니다. 어느새 새벽이고 아침이며 낮이다가는 저녁과 밤입니다. 아이랑 부대끼면서 애 엄마나 애 아빠가 즐기고 싶은 책이라든지 영화라든지 무어라든지 느긋하게 즐길 수 없습니다. 기운이 다 빠져 책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텔레비전을 켠다든지 자리에 드러눕는다든지 합니다. 아이가 골을 부릴 때에 차분하게 마주하면서 따스한 말씨를 건네고 토닥토닥 보듬으면서 골을 풀어 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이를 먹고 혼인을 하여 아이를 낳았다뿐이지, 혼인을 했거나 사랑놀이를 즐기거나 아이를 낳았다고 ‘어른’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버이’란 이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른답게 굴어야 어른이요 어버이다이 살아야 어버이입니다. 밥그릇 숫자로 어른이 될 수 없고, 덩치가 크고 돈을 번다고 어버이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직하면서 튼튼하고 슬기로운 넋을 건사하는 가운데 맑고 밝은 얼을 나눌 줄 알 때라야 비로소 어른입니다. 사랑스러우면서 넉넉하고 고운 마음을 지키는 가운데 싱그럽고 다부진 몸을 다스릴 줄 알 때라야 바야흐로 어버이입니다. 제 슬기와 깜냥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이 어른이고, 제 피와 살을 스스럼없이 깎아 나누는 사람이 어버이입니다. 전두환 같은 분들은 나이를 아무리 많이 잡수어도 어른이라 할 수 없고, 아이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손찌검을 할 뿐 아니라 신나게 놀아 주는 너른 품이 없는 분들은 아이를 아무리 여럿 낳았어도 어버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이 세상에는 히카루한테 보여주기 싫은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쓸데없는 것들은 잊고 살고 그러면 좋을 텐데. 지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와 사라지는 저 모래처럼.’ ..  (7권 142∼143쪽)


 아이 앞에서 좋은 모습 거룩한 마음밭 사랑스러운 몸짓 훌륭한 삶 올바른 말을 보이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따로 아이 앞에서 좋은 모습으로 그치지 말고 어른 스스로 좋은 모습을 아끼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이 앞이기 때문에 거룩한 마음밭이 아니라, 아이가 없던 지난날부터 스스로 거룩한 마음밭이 되도록 일구어야 합니다. 아이 앞이라 사랑스러운 몸짓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 언제나 스스로 사랑스러운 몸짓을 북돋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이 앞일 때에만 훌륭한 삶인 척하는 사람이 아니요, 언제 어디에서나 훌륭한 삶을 믿고 꿈꾸며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이 앞에서만 올바른 말을 가리거나 쓰는 겉치레가 아닌, 어른 앞에서이든 어른인 동무들 앞에서든 늘 올바른 말을 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무엇 한 가지 가르치기 앞서 어른 스스로 먼저 배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몸에 나쁠 먹을거리를 차리지 않겠다면 어른부터 제 몸에 나쁠 먹을거리를 손사래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물 맑고 바람 맑고 햇볕 고운 터전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어른부터 물과 바람과 햇볕을 어지럽히는 물건을 쓰지 않을 뿐더러 우리 삶터를 맑고 곱게 돌보는 데에 이바지할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이 책(자폐증에 대해서)은 내가 좀 빌려 가마.” “아, 그건.” “청소하다 보니 나오더구나. 근데 내용이 어려워서 읽어 봐도 잘 모를 거 같구나.” “저도 그랬어요. 그래도 천천히 읽어 보세요, 어머니. 그리고 다시 한 번 있는 그대로 우리 히카루를 봐 주세요.” ..  (1권 103쪽)


 아이는 저를 키우는 어른이나 어버이를 바라보며 자랍니다. 아이는 저를 키우는 어른이나 어버이가 얼마나 스스로 담금질을 하며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눈여겨보며 자랍니다. 못난 어른이거나 몹쓸 어버이한테서 뜻밖에 착하며 참된 아이가 자랄 때가 있습니다만, 우리는 참된 어른으로서 참된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하고, 착한 어른으로서 착한 아이를 돌볼 줄 아는 어버이로 살 노릇입니다.

 내 모습과 내 삶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배우는 아이인데, 아이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내 눈길과 내 손길을 낱낱이 살펴보며 받아들이는 아이인데, 아이와 함께 어떻게 지내야 하겠습니다. 내 말투와 내 목소리를 고이 새겨듣는 아이인데, 아이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벗을 사귀어야 하겠습니까.
 







 (2) 만화책 《히카루와 함께》


 한국판으로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라는 이름이 붙으며 옮겨진 만화책 《히카루와 함께(빛과 함께)》를 그린 토베 케이코 님은 2010년 1월 28일에 쉰셋이라는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연속극으로 만들기까지 했다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입니다. 가만 보면, 일본에서는 훌륭한 만화 하나가 태어난 다음, 이 만화를 바탕으로 연속극이나 영화를 찍는 일이 꽤 흔합니다. 만화를 연속극으로 새로 태어나게 한다기보다, 훌륭한 만화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연속극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한다고 해야 옳구나 싶습니다.

 이와 달리 우리 나라에서는 만화가 연속극이나 영화라는 새옷을 입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예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는 어린이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문학을 연속극이나 영화라는 새옷을 입힌 적이 몇 차례나 있었을까요. 흥행을 노리는 상업영화 아닌 아름다움을 나누려는 문화와 예술로 다시 태어나도록 일구는 손길과 몸짓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관객 몇 십만을 끌어들일 꿈을 안는 ‘어른만 보는 영화’를 넘어 관객이 얼마 들어오느냐 아니냐에 앞서 ‘사랑과 믿음과 아름다움을 두루 펼치면서 기쁘게 맞이할 영화’를 꿈꾸는 예술인 영화인 작가 문화인이란 분은 몇이나 있을까요.


.. “모두 평등하게 대하고 히카루만 특별대우를 하라고? 그럴 수야 있나요. 학생들 개성이 그렇게 다른데. 특별대우를 할 거면 모두 특별대우를 해야죠.” … “집 근처에 괜찮은 유치원은 없니?” “전에 히카루에게 집단 생활을 시켜 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까운 유치원을 전부 다 둘러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들 이것저것 핑계를 대면서 받아주지 않았고, 받아주는 유치원도 자폐 아동을 그다지 잘 돌봐 주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 뒤로 별로 변한 것도 없어 보이고.” “그야 히카루를 기준으로 했을 때 그런 것 아니냐? 카논에게는 그런 곳이 좋을 수도 있어.” “과연 그럴까요? 아이들 여럿이서 섞여 노는 중에 그런 식으로 한 아이를 팽개채 두는 곳은 카논에게 있어서도 바람직한 곳은 아닌 것 같은데요. 자기들과는 다른 타입의 인간을 그런 식으로 몰아내는 집단. 저는 너무 무서워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 카논을 맡기고 싶진 않아요.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설령 선생님이 우리 카논을 예뻐 하신다 해도 저는 싫어요. 복지 센터, 보육원에 초등학교, 그렇게 정신없이 쫓아다니다 깨달았어요. 히카루를 소중하게 대해 주시는 보육사 선생님이나 학교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소중하게 대해 주신다는 사실을요. 저는 히카루나 카논 모두 어떻게 하면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 속에서 안심하고 키우고 싶어요, 어머니.” ..  (5권 117, 212∼214쪽)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는 자폐를 안고 태어난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 만화 열두 권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거듭 읽다 보면, 주인공은 ‘빛(일본말로 ‘히카루’)돌이’인 아이라기보다 자폐 아이를 낳아 키우며 새로운 삶을 배우며 또다른 길을 찾는 한편 비로소 어른다움이 무르익고 아름다움을 사랑할 줄 아는 어버이가 되는 어머니가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장애인을 장애인 아닌 걸림돌로 여기는 사람은 비장애인입니다. 장애인이 누릴 장애인 권리를 짓밟는 사람은 바로 비장애인입니다. 장애인을 장애인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껴안지 않는 사람은 다름아닌 비장애인입니다.

 장애인 스스로 장애인 삶을 더 제대로 살피고 더 올바로 깨달아야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비장애인들 스스로 비장애인이란 어떤 사람이요, 비장애인과 언제 어디에서나 이웃하고 있는 장애인이란 어떤 사람이며 삶인지를 깨닫고 느끼고 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비장애인인 사람이 말썽을 일으키거나 바보스럽게 살고 있으니까 자꾸자꾸 ‘장애인 인권 차별’이 생겨납니다. 권력을 움켜쥔 이들이 말썽을 일으키거나 바보스럽게 살고 있으니까 끝없이 갖가지 사건과 사고가 터집니다. 더 배운 사람과 더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만드는 입시지옥과 교육 문제입니다. 더 잘나고 더 이름나고 더 돈있는 사람들이 우리 삶터를 더 엉터리로 만들거나 더 뒤죽박죽으로 흩뜨립니다.


.. “학대는 가족도 하는 걸요. 저도 히카루 어렸을 때 학대 직전까지 간 적 있었어요. 몸을 가누지 못해 자식한테 학대를 받는 노인도 있을 거 아니에요. 단순히 시설이니까, 가족이니까 하는 것만으로는 그 속사정을 모르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고, 다른 사람의 도움은 받을 수도 없고, 정신적으로는 한계가 왔는데 계속해서 어려움이 닥친다면, 그런데 보는 사람은 없고, 아니 설사 누가 본다 해도 체벌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라면. 저도 히카루를 때릴 때는 항상 아무도 없을 때였어요. 밖에서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억누르며 숨기죠. 안 보는 데서 약한 생명을 괴롭히며 비명을 지른 셈이에요. 그 상태 그대로 갔다면 어땠을지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요 …… 혼자 악전고투하는 엄마라도 안 때릴 사람은 안 때려요. 한심하게도 난 그렇게 강한 엄마가 못 됐던 거예요. 그래서 더욱 따뜻한 시선이나 도움이 고맙게 느껴졌고, 덕분에 이렇게 좋아졌잖아요.” ..  (8권 180∼182쪽)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는 비장애인인 사람들한테 읽힐 길잡이책이라 할 만한 이야기책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분들한테는 성경책이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 한다면, 한 사람을 한 사람 그대로 사랑하고자 하는 분들한테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라는 만화책이 더없이 아름다울 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만화책 열두 권에는 사람이 사람다움을 지키는 길과 사람이 사람다움을 지키지 못하는 길을 ‘좋으니 나쁘니 하는 금긋기’로 따지지 않으면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아이가 태어난 일이 기쁨이요 즐거움이지, ‘장애 없는’ 아이가 태어났거나 ‘장애 있는’ 아이가 태어났대서 기쁨이거나 즐거움이 아닙니다. 장애 없는 아이가 태어나서 고마울 수 없습니다. 장애 있는 아이가 태어나서 슬플 수 없습니다. 장애 있는 아이가 태어났기에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장애 있는 아이라든지 장애 없는 아이라든지가 아니라 ‘우리한테 빛과 같은 목숨’이 곱다시 찾아왔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어린 넋입니다.

 대학교마다 사회복지학과가 있고 육아교육과가 있으며 또 무슨무슨 교육을 베푼다든지 보건과 복지 따위를 다루는 학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학과마다 숱한 교재와 교과서가 있으며, 복지사 자격증을 딴다든지 교사 자격증을 딴다든지 하는 사람은 수십만에 이릅니다. 그러면 이들 자격증을 딴 사람들은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보거나 아이를 아이 그대로 맞아들이는 아름다운 넋일는지요? 이 사람들한테 지식을 베푸는 교재와 교과서는 가장 아름다운 책일는지요? 사람이 사람이 될 밑바탕 슬기와 삶을 담고 있는 책일는지요?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는 ‘대학교에서 사회복지나 장애 인권 다루는 학과’에 다니는 학생들한테 교재와 다를 바 없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책을 보면 ‘참 많이 가르쳐 주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하나에서 가르치는 이야기는 이 책이 대단하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책을 그려낸 분이 당신 둘레 삶을 찬찬히 곱씹고 곰삭이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릴 수 있었고, 이렇게 그려냈기에 소담스러운 삶자락을 나눌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소담스러운 삶자락은 우리 스스로 우리 둘레 삶을 찬찬히 헤아리며 살아갈 수 있다면 누구나 언제라도 익힐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둘레에 흔하고 너른 삶자락인데, 우리들은 이러한 흔하고 너른 삶자락을 여느 때에 살피지 않기에 가장 깊고 큰 아름다움을 이렇게 만화책 하나에서 새삼스럽게 느끼거나 배웁니다.


.. “너 자꾸 말 안 들을래?” (따귀를 짜악) “아아, 내가 무슨 짓을.” “아예 애를 더 울리고 있군. 당신 자식이잖아. 좀 조용히 시켜.” “그러는 당신이 좀 달래 봐요.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애한테 뭘 어떻게 하라고요. 당신 자식이기도 하잖아요. 엄마라고 해서 전부 나한테 떠넘기지 말아요! 히카루가 자폐증이 된 건 히카루 탓도, 제 탓도 아니라고요. 그저, 어쩌다 우연히 겹쳐서 그렇게 된 것뿐인데. 당신은 히카루가 부끄럽죠? 그러니까 숨기지 못해 안달이지요. 아버님 기일 때도 당신한테 망신을 줬다며 화만 냈어! 그게 무슨 가족이에요. 가족이라면 서로 도와야 하지 않나요? 당신이 아버지라면 우리를 감싸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나도 지긋지긋해. 그동안 나라고 편했을 것 같아? 여긴 내 집이야. 불만 있으면 당신이 나가.” “뭐라고요?” “나가라고. 매일 밤 파김치가 돼서 들어오는 사람이 누군데! 나도 편하게 쉬고 싶다고!” “하아, 그러시군요. 히카루, 옷 입자. 밖은 추워. 당신과는 이제 끝이야. 어디 영원히, 혼자 조용히 살아 봐요!” ..  (1권 72∼75쪽)


 일본은 만화가 넘실거리는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에 옮겨지는 만화 가짓수만 보아도 ‘일본에는 만화쟁이들만 있나?’ 싶을 만큼 만화가 넘실거립니다. 그러나 일본은 만화가 넘실거린다기보다 ‘만화라고 하는 예술 갈래 하나’로 보여주고 나눌 수 있는 멋과 맛을 잘 안다고 해야 알맞다고 봅니다. 그냥저냥 그리는 만화가 아닙니다. 만화 하나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를 다룬다고 할 때에는 이 이야기 하나를 아주 깊이 파헤치고 널리 보듬으면서 다룹니다. 이 이야기 하나에 얽힌 수많은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헤치고, 이 이야기 하나가 우리 삶하고 어떻게 얼마나 이어져 있는가를 밝힙니다.

 훌륭한 만화는 지식을 늘어놓는 작품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만화는 눈물이나 웃음을 억지로 쥐어짜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알며 제대로 살아야 하는데, 제대로 알지 않을 뿐더러 제대로 살지 않으니 몇 가지 아주 큰 대목에서만 지식조각을 조곤조곤 풀어놓습니다. 사람들이 웃음과 눈물을 뚱딴지 같은 딴 나라에서만 찾고 있으니, 수수한 웃음과 투박한 눈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샘솟는가를 알려줍니다.


.. “히카루는 이미 취학 상담 요양학교로 가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는 이 학교의 무궁화교실에 다니게 하고 싶어요. 요양학교에도 가 봤습니다. 우리 애한테 그 학교가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힘들게 우리 히카루를 이해해 준 보육원 친구들과 헤어지게 돼요. 교장 선생님, 아마 저는 히카루보다 먼저 죽게 될 겁니다. 남편 역시 그렇겠죠. 저희가 죽더라도 우리 아들이 이 동네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장애를 갖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우리도 맡고 싶습니다. 하지만 입학서류는 제대로 받겠습니다. 그 취학 상담하는 직원에게 계속 저희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세요. 하실 수 있겠지요, 어머니?” ..  (1권 245, 246쪽)


 함께 살아갈 터전이니 함께 살아갑니다. 함께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사람이니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장애인이니 비장애인이니 하는 금긋기란 비장애인이 놓은 금입니다. 장애인 스스로 장애인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고 비장애인이란 이름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모두 비장애인들이 저희 마음대로 지껄이는 이름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에 나오는 자폐 아이는 ‘장애인’이나 ‘장애 어린이’가 아닙니다. 일본 이름으로는 ‘히카루’이고, 우리 이름으로 옮겨적으면 ‘빛돌이’나 ‘빛누리’나 ‘빛나라’입니다.

 이리하여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는 자폐 어린이를 막대접할 뿐 아니라 장애인 인권과 교육을 내팽개치는 일본 사회를 넌지시 꼬집는다든지 이런 사회에서 기운차게 살아가는 한 식구 수수한 삶을 보여주는 만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올바른 삶을 제대로 몰랐던 바보스러운 어른들이 빛과 같이 아름다운 목숨 하나를 처음 만나면서 바야흐로 고운 삶과 사랑스러운 넋을 아끼고 즐길 줄 알아 가는 수수한 만화라 할 수 있습니다.


 (3) 몇 가지 말마디 더 들여다보기


 만화책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는 꽤 긴 작품입니다. 모두 열두 권에 이르기도 하지만 권마다 250쪽 안팎이 되니까, 쪽수로 치면 자그마치 3000쪽이 웃도는 긴 만화인 셈입니다. 이 만화는 1권부터 12권까지 내처 읽어내며 차근차근 자라고 눈을 뜨는 사람들 매무새를 엿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다 읽은 다음에는 사이사이 한 권씩 따로 끄집어내어 읽으며 그때그때 다 다르게 펼쳐지는 삶에 어떠한 아름다움과 아픔이 아로새겨져 있는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첫 쪽부터 마지막 쪽에 이르기까지 군더더기란 없는 가운데, 곰곰이 되씹을 만한 이야기가 넘칩니다. 이 가운데 몇 가지 말마디를 더 옮겨적어 봅니다. 아주 마땅하고 아주 쉬우며 아주 수수한 이야기야말로 우리한테 가장 맛나고 가장 맑으며 가장 빛나는 이야기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3.5.31.달.ㅎㄲㅅㄱ)


- ‘엄마는 너희들이 그렇게 웃는 것만 봐도 너무 행복해.’ (6권 235쪽)

- “저, 가끔 애를 때리기도 했어요. 그래 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도 않고, 매일 저렇게 우는 소리를 듣고 살자니, 나까지 미칠 것만 같아서. 애가 얼마나 아팠을까요. 어른 손으로 저렇게 작은 애를. 애한테 너무 미안해요.” “때리는 네 마음도 아팠잖니. 때려 놓고도 많이 후회했을 거 아냐.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푹 쉬렴.” “엄마.” ‘바보같이. 내 이럴 줄 알았지. 혼자서 얼마나 속을 태웠을까.’ (1권 77∼78쪽)

- ‘저 아이 혼자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색깔의 모자를 씌워 놓고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혼자 방치해 두고 있다. 저 아이가 우리 히카루로 보여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곳에는 절대 맡길 수 없어! 분명 다른 어딘가에 자폐 아동을 잘 맡아 줄 만한 유치원이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다닐 수 있는 그런 유치원은 없었다. 이렇게 우리처럼 좌절을 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동 천 명당 한두 명이라는 자폐 아동. 그런데 그 아이들을 받아 주는 곳은 왜 이리 적은 건지. 센터만 해도 자리가 나길 반 년이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수십 명 있다고 한다. 대체 왜?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해? 취학하기 전 중요한 1년. 우리 히카루한테도 단체 생활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어.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다 자기가 갈 곳을 찾아 떠났는데 아기들만 놀고 있는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1권 144∼145쪽)

- “그런데 모르는 사람한테 그렇게 행동을 하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그걸 전혀 모르는 거예요. 그런 장애를 가진 아이입니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소란 피워서 죄송해요.” …… “난 처음 봤어. 자폐증 걸린 애. 그런 생난리도 없더라. 천만다행이야. 우리 애가 정상인 게.” “정말 가엾더라.” “그렇지만도 않지 뭐. 누가 알아? 저러니까 남보다 쉽게 입학할 수 있었는지.” ‘저렇게 말을 막 하다니.’ “아, 히카루 엄마. 정말 힘들겠어요. 힘내세요. 우린 아까 일 전혀 신경 안 쓰거든요.” ‘알아. 하나같이 다들 나쁜 뜻은 없는 거. 그저 저 사람들한테는 남의 일일 뿐, 동정을 하면 사람을 우습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야.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만났잖아. 속을 홀딱 뒤집어 놓는 말을 하는 사람이나 착한 척하며 사람 우습게 보는 사람들!’ (1권 160∼161쪽)

- “저(히카루)는 이담에 커서 밝고 씩씩하게 일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1권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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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스페인으로 마실을 간다는 형이 인천에 찾아왔다. 이제 모레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단다. 꽤 오래 마실을 한다는 형인데 잠깐 있으라 하더니 은행에 들러 맞돈 백만 원을 뽑아서 나한테 건넨다. 다음달에 집을 옮긴다는 나한테 돈이 있느냐고 묻더니 이렇게 곧바로 보태어 준다. 집과 도서관 달삯은 벌써 몇 달 앞서부터 돈 대기에 빠듯해서 죽을 노릇이었다. 나 같은 사람한테는 돈을 빌려주는 데도 없으나 돈을 빌려서 쓸 마음이 없기도 하다. 그래도 어찌저찌 고마운 손길을 받으며 버티는 살림살이였기에 살림집을 빼면 보증금 삼백만 원으로 짐차 부르고 시골집 보일러 기름을 넣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코앞에 닥친 이달치 달삯이 걱정되었는데, 용케 형한테서 도움을 받아 크게 한숨을 돌린다. 밤나절, 졸려 하는 아이 이를 닦고 손발을 씻긴 다음 등에 업고 노래를 불러 준다. 업힌 아이 손에서 힘이 다 풀리고 고개가 내 등에 푹 박힐 무렵 천천히 바닥에 아이를 뉘인다. 이십 분을 아이 곁에서 가만히 기다린 다음 기저귀를 채운다. 비로소 느긋하게 셈틀을 켠다. 그렇지만 셈틀을 켰어도 글을 쓸 기운은 없다. 하루 내내 홀로 아이를 돌보느라, 더욱이 어제그제오늘까지 이불 세 채를 내리 빨래하느라 해롱해롱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인터넷으로는 책을 사지 않던 내가 두 군데 오래도록 다니고 있던 헌책방 누리집으로 들어간 다음 책을 십만 원어치나 고른다. 두 군데 헌책방은 처음부터 누리집을 꾸리던 데가 아닌데, 이제는 제법 크게 누리집을 꾸리고 있으며, 나는 이러거나 저러거나 매장을 찾아가서 책을 살 뿐, 오늘처럼 누리집에서 목록을 들여다보며 책을 고르는 일은 없었다. 형은 틀림없이 집 옮기는 데에 보태고 아이한테 맛난 밥 사 주라는 뜻으로 돈 백만 원을 주었는데 이 가운데 십만 원을 책값으로 덜컥 쓰고 만다. 책값을 다 치러 놓고 괜히 아이한테 미안하고 형한테 쑥스럽다. 돈이 한 푼이라도 생기면 무엇보다 책을 사들이는 데에 쓰는 버릇은 참 어찌할 길이 없다. 굶어도 책이고 불러도 책인 내 삶은 늘 이렇게 돌아간다. 어쩌면 형은 내가 이렇게 책값으로 돈을 쓸 줄 알았을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책값으로 십만 원뿐 아니라 다시금 십만 원을 더 쓸는지 모르는데, 여기에서 즐겁게 멈추어야겠지. 아, 나한테는 파노라마 후지6×17은 그예 꿈으로 그치지 않으랴 싶다. 나 스스로 부끄럽고 옆지기와 아이한테 미안하며 형하고 아버지 어머니한테 들 얼굴이 없다. 노상 하듯 두 손 네 손가락으로 사진틀을 만들어 마음껏 찍을 수 있는 사진만 찍어야겠다. (4343.5.29.흙.ㅎㄲㅅㄱ)
 

.. 형한테 미안하고 고맙기에 글 하나를 끄적이는데, 글을 끄적이는 내내 괜히 슬프면서 홀가분하다. 아무래도 후지617을 손에 쥘 날을 맞이할 수 없으리라 느끼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생각으로나마 이 사진기를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끄적거리면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가장 싼 파노라마사진기인 후지617이지만, 김영갑 님이 돌아가시면서 얼결에 이 값싼 보급형 파노라마가 지나치게 뻥튀기 값이 붙으며 비싸구려가 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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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24 : 아이가 아플 때 읽는 책

 아이가 아플 때에 애 엄마는 아이 곁을 지킵니다. 다른 어느 일보다 아이 목숨이 크고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픈데 다른 무슨 일을 하며, 다른 어떤 곳에 눈을 두겠습니까. 그런데 이때에 여느 애 아빠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애 아빠도 온마음을 아픈 아이한테 쏟을 수 있을는지요.

 하루이틀 새로워지는 우리 터전에서, 아이가 아플 때에 아이 곁을 지키지 않거나 지키지 못하는 애 엄마가 늘어납니다. 그러면 아픈 아이 곁을 내처 지키며 돌보는 애 아빠는 조금씩 늘고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아가씨들이나 젊은 애 엄마는 밥하기나 빨래하기나 청소하기 같은 밑살림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하는데, 요즈음 젊은 사내들이나 애 아빠는 집살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아이가 아파서 끙끙 앓고 있는데, 옆에서 재미나다는 책을 읽는다든지 신난다는 연속극을 본다든지 하는 어버이가 있다면, 이이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알쏭달쏭합니다. 무엇을 사랑하고 어떤 기쁨을 찾고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나 스스로 낳아 기르는 아이를 돌볼 줄 모르는 어버이라 한다면 나를 낳아 기른 어버이를 돌볼 줄 모를밖에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낳아 기르는 아이 똥오줌을 스스럼없이 치우고 이 손으로 거리낌없이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이이는 어버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어른이란 이름 또한 알맞지 않습니다.

 엊그제부터 우리 집 아이가 아픕니다. 그러께에 그러께를 더한 날부터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옆지기는 퍽 예전부터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애 아빠 된 저는 바깥일 때문에 아픈 애를 놓고 움직입니다. 집에서 애 엄마가 몇 시간쯤 더 애써 주기를 바라면서 혼자 바깥일을 봅니다.

 집살림이며 돈벌이 때문에 아픈 옆지기한테 살가이 마음 쏟지 못하며 살고 있는 하루하루를 돌아봅니다. 제가 읽은 훌륭하다거나 거룩하다거나 좋다거나 곱다거나 하는 책은 무슨 쓸모가 있을는지 되새깁니다. 성경을 읽어도 성경 말씀이 좋다고만 할 뿐 성경 말씀처럼 살아내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옳고 바르며 고운 삶을 살피며, 옳고 바르며 고운 길을 걷는 정치꾼한테 한 표를 선사하는 사람이란 뜻밖에 퍽 드뭅니다.

 애 아빠로서 아픈 아이 곁을 내내 지키지 못한다면 아이 앞에서 들 얼굴이 없습니다. 옆지기로서 아픈 애 엄마 둘레를 언제나 지키지 못한다면 애 엄마 앞에서 들 낯짝이 없습니다. 다른 남자가 어떠하다느니, 다른 집은 어떻다느니 하는 말은 부질없는 핑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엉성궂거나 어설프기 짝이 없는 책에 빠져 있든, 좋은 책을 좀처럼 알아보지 못하고 있든, 나는 나부터 내 삶을 옳고 바르고 곱고 착하고 참되어 추스르고 있지 못하는 슬픔을 눈여겨보면서 아파해야 합니다. 누구보다 나한테는 얼마나 많은 책이 있어야 하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할까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부터 내 삶을 참된 맑음과 착한 믿음과 고운 사랑으로 빚고 있지 못하다면,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쥔 이들은 온갖 모습으로 신나게 《제1권력 :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에 나오는 끔찍한 짓을 저지를 발판을 얻습니다. (4343.5.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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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 블로그에 갔다가, 

그분이 서울을 떠나 진주로 가며 

진주에 떨어져 지내던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비로소 함께 산다는 소식을 읽는데, 

그 글에 이런 사진이 붙어 있다. 

 



 

그리 잘 팔리지는 않는 듯한데, 

참으로 용하게 사랑받고 있다. 

이 책을 소개한 언론매체가 있었는지 모른다. 

언론 소개를 안 타고도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다니 

놀라운 한편, 

2011년에 <사진책과 함께 살기> 2권을 낼 수 있겠다는 꿈을 

다시금 소록소록 키워 본다. 



 

돈 버는 일은 거의 못하는 주제에 

책만 신나게 써내고 있는데, 

2쇄나 3쇄도 찍어 

비로소 글삯(인세)을 만져 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나도 6월 중순에 인천을 떠나 산골마을로  

살림집과 도서관을 옮기려 하는데, 

집 옮길 돈이 없어 

살림집 보증금이 빠지면 이 돈으로 차 부르고 사다리차 쓰고 해서 

움직여야 한다. 



어찌 되었든, 

아이 앞에서 꿋꿋하며 씩씩한 아빠로 

잘 살아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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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윤정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은 꽤 사랑받아 오고 있다. 나도 이 책을 읽었고 잘 간직하고는 있으나, 이 책을 읽던 지난날이나 이 책을 책꽂이에 모셔 놓고 있는 오늘날이나 그다지 대단하거나 훌륭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숲이나 나무나 도시나 시골 살림살이를 제대로 모르며 지내고 있는 요즈음 사람들한테는 책이름이 퍽 충격스럽다든지 남다를 뿐더러, 이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가 새롭거나 놀랍다고 느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 숲살림을 다루고는 있어도 우리 숲살림 밑바탕을 밝히거나 보듬고 있지는 못하다.

 한젬마라는 분이 쓴 《그림 읽어 주는 여자》와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은 이제 헌책방에서 사랑받지 못한다. 2006년까지는 새책으로만이 아니라 헌책으로도 몹시 사랑받던 책인데, 2006년부터는 헌책방에서 이보다 더 막대접인 책이 드물다. 스스로 옳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거짓말을 일삼았던 발자취가 드러났으니, 헌책방으로 다리품을 팔며 책을 찾아 읽는 분들한테 겉발린 빈 껍데기 이야기가 사랑스럽거나 살갑게 스며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은 《침묵의 봄》이라든지 《슬픈 미나마타》라든지 《수달 타카의 일생》이라든지 《모래 군의 열두 달》이라든지 《녹색세계사》라든지 하는 책하고는 견줄 수 없지만, 그럭저럭 읽을 만하거나 괜찮다 할 만한 환경책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2010년 5월 17일에 차윤정 씨가 보여준 모습을 보니 이 책이 앞으로는 더는 살아남을 까닭이 없겠구나 싶다. 빈 껍데기 지식조각으로는 사람들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허울좋은 이름을 찾아 높은자리에 올라서려는 사람들이 읊는 책으로는 우리 삶터를 아름다이 일굴 수 없기 때문이다.

 ‘4대강본부 환경부본부장’이라는 이름이란 얼마나 놀라운 공무원 직책인가. ‘전문계약직 1급’이라는 자리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리인가. 4대강 사업 일자리가 32만 개나 나온다고 하는데, 하나같이 이런저런 일자리란 셈이 아닐까 궁금하다. 아마 31만 개는 삽질하는 일자리일 테고 1만 개는 차윤정 씨처럼 홍보하는 일자리일 테지.

 차윤정 씨는 스스로 ‘굳은 심지’에 따라 4대강 사업을 널리 알리는 일자리를 함께 누리겠다고 밝히는데, 바로 이 ‘굳은 심지’로 높이높이 올라설 차윤정 씨 일자리란 얼마나 오래가는 맑고 밝으며 고울 내음일는지 머잖아 스스로 느끼는 날을 맞이하리라 본다. 착하지 않고 참되지 않으며 곱지 않은 사람은 생태와 자연과 사람을 입에 담을 자격이 어림 반 푼어치조차 없다. (4343.5.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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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5-29 10:3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기사 보고, 근래 들어 최고로 웃기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요. 좋다 좋다 이야기만 듣고 벼르고 있었던 '신갈나무..'는 영원히 보관함에서 아웃.

파란놀 2010-05-29 17:55   좋아요 0 | URL
저는 이 기사를 볼 때에 '그럴 만한 사람이 그렇게 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될 텐데?' 하고 다시금 생각했기에 이런 어줍잖은 글이나마 끄적이면서, 우리 스스로 옳고 착한 길을 잃지 않기를 다짐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샘 2010-05-29 14:35   좋아요 0 | URL
곡학아세...라고... 대학에서 공부 깨나 한 사람들이 돈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들어가는데 1억/마리당...이라잖아요. 근데, 1급 공무원 어쩌고 제의가 들어오면, 까짓거 돈벌러 가는 거죠. 변절자 더러운 거야, 친일파 놈들이나 김문수나 그게 그건거죠. 신갈나무들이 4대강물 쪽쪽 빨아먹고 잘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윤정이야 뭐 차,버리면 그만이구요.

파란놀 2010-05-29 17:5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분은 교수 신분인 한편, 여러 방송에도 나가고 이런저런 강연도 많이 해서 벌이가 꽤 많을 텐데, 이만한 벌이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더 큰 '욕심'을 어찌하지 못하셨는가 봐요. 참 불쌍하고 딱하고 안쓰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