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를 전화기처럼 귀에 대고 노는 돼지. 

- 2010.11.13.

 

 덤 : <짝꿍 바꿔 주세요>를 아주 좋아하는 돼지. 벌써 몇 번을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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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추 꿰는 마음


 스물여덟 달을 사흘 넘긴 아이가 아침부터 속옷을 들추더니 단추를 하나하나 끌른다. 속에 입은 옷은 단추로 꿰도록 되어 있는데, 일부러 스스로 단추를 끌른다. 날이 따뜻하지 않은데 이렇게 단추를 끌르면 안 되니 “녀석아, 단추를 자꾸 끌르면 어떡해. 단추를 채워야지.” 하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신나게 단추를 끌르다가 “채워? 단추 채워?” 하더니 단추를 다시 채우려 한다. 끙끙 용을 쓰다가 드디어 맨 밑 단추 하나를 채운다. 어, 어라? 단추를 채웠네? 이 녀석, 드디어 단추를 채울 줄 알았구나.

 아이한테 나머지 단추도 채워 보라 하고는 아빠는 다른 일을 한다. 조금 뒤에 보니 아이가 나머지 단추까지 모두 채웠다. 이런, 더 대단한 일이잖아. 단추를 채우기까지 스물여덟 달이 걸린 셈이니? 아니, 첫 단추 하나를 꿰자마자 막바로 다른 단추까지 꿰어 냈구나. 아이야, 참 대단한 일을 했구나.

 아이는 용을 쓰며 채운 단추를 다시 끌른다. 뭐니? 또 왜 끌르니? 가만히 지켜본다. 옳거니. 아이는 제가 처음으로 단추 꿰기를 해낸 줄 모른다. 다만, 저 스스로 단추를 꿰었다가 끌렀다가 되풀이하는 놀이를 하는가 보다. 아빠나 엄마가 노상 해 주던 단추 꿰기랑 끌르기를 저 스스로 해 보고 싶은가 보다. 요사이는 날마다 새로운 말을 아빠한테서나 엄마한테서나 배워 곧잘 따라하는데, 손놀림이 퍽 좋아졌기에 이처럼 단추를 꿸 수 있겠지.

 스물여덟 달. 아빠로서는 참 기나긴 나날이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오며 갖은 뒤치닥거리를 도맡으며 보낸 스물여덟 달은 얼마나 긴가. 그러나 앞으로 살아낼 나날은 훨씬 길겠지. 앞으로는 스물여덟 달뿐 아니라 스물여덟 해, 또는 쉰여섯 해를 아이랑 함께 살아갈는지 모른다. 이동안 아이와 함께 살아내며 새롭게 깨닫거나 새삼스레 마주할 기쁜 눈물과 웃음은 얼마나 많을까. 아마, 날마다 새로운 눈물과 웃음이겠지. 언제나 새삼스러운 기쁨과 슬픔일 테지. 아이야, 오늘 코 자면 이듬날은 금왕읍 장날이니까, 날이 너무 춥지 않으면 함께 자전거 타고 마실을 다녀오자. (4343.11.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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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와 책읽기


 애 아빠 혼자 서울로 볼일을 보러 가던 어느 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시골버스 타는 데까지 헐레벌떡 달려간다. 때 맞추어 겨우 시골버스를 잡아탔고, 면에 있는 시외버스 타는 데에 닿아 서울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겨울을 앞두었으나 따사롭게 햇살이 내리쬔다. 논둑길을 달리느라 흠뻑 젖은 등판은 아직 마르지 않는다. 버스에 탄다. 햇살이 잘 비치는 자리에 앉는다. 여느 날 시골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거의 다 빈자리. 시골에는 사람이 참 적다.

 햇살을 마음껏 느끼며 버스에서 책을 읽는다. 여름에는 이 창문을 열며 햇살을 더 듬뿍 받아들이고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름날 시외버스에서는 에어컨 바람만 쐬어야 한다. 시골버스에서도 들판이나 멧등성이를 타는 바람이 아닌 에어컨 바람을 쐬어야 하기 일쑤이고.

 한참 신나게 책을 읽는다. 아이랑 복닥이지 않으며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호젓한가. 이 얼마나 한갓진가. 새삼스레 홀가분하다고 느끼면서, 집에서 아이랑 홀로 복닥일 애 엄마가 걱정스럽다. 어린이들이란 얼마나 기운이 넘치는가. 엄마랑 아빠 둘이 애 하나 보듬기에 벅차다. 아이한테 동생이나 언니가 많다면 그럭저럭 수월하려나. 서로서로 함께 놀 테니까. 빨랫감은 잔뜩 나올 테고, 밥거리 장만하자면 죽어날 테지만, 다른 때에는 좀 느긋하려나.

 시외버스가 서울하고 가까워질수록 속이 메스껍다. 이제는 시외버스를 타고 삼십 분쯤 지나면 메스껍고 더부룩하며 고단하다. 머리가 핑핑 돈다. 책을 덮고 한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숨을 고른다. 딱히 나아지지 않는다.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책을 가방에 넣는다. 머리끈을 풀고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댄다. 눈을 감고 잠을 부른다. 흔들흔들 시외버스는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하고 누가 더 빨리 달리나 내기를 한다. 잠은 들지 못하고, 속은 더 메스꺼우며, 머리는 더욱 핑핑 돈다. 처음 버스를 타는 십 분이나 이십 분 동안 겨우 책을 읽을 수 있는가. (4343.11.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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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감는 마음


 아침에 빨래를 할 때에 머리를 감는다. 겨울이니 따순 물이 나오도록 튼 다음, 찬물이 나오는 동안 머리를 감는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다가 아침을 맞이했으면 이대로 잠이 들지 않기를 바라며 찬물로 머리를 감고, 아침에 조금 눈을 붙인 다음 일어나서 빨래를 할 때에는 얼른 잠이 깨라며 찬물로 머리를 감는다.

 아이 머리를 감길 때에 지난달 즈음부터 아이를 세운 채 감길 수 있다. 아이가 머리를 푹 숙이도록 하며 머리를 감기면 애 아빠로서는 몹시 수월하다. 그러나 아이는 이런 머리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애 아빠가 쪼그려앉은 다음 허벅지에 아이를 살며시 눕힌 다음 아이 고개를 왼손으로 잘 받치면서 감겨야 좋아한다. 아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따땃한 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느낌을 맛보지 않나 싶다. 눈을 지그시 감은 아이 머리에 물을 끼얹고 비누를 살짝 발라 비비면서 이마에 쪽 뽀뽀를 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일은 거의 떠오르지 않으나,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허벅지에 눕힌 채 머리를 감겼던 일은 떠오른다. 지난날 내 어머니는 내 머리를 감겼고, 이제 나는 내 아이 머리를 감긴다. (4343.11.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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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사진엽서를 통해 본 시선의 권력과 조선의 이미지
권혁희 지음 / 민음사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틀에 박힌 채 문화읽기
 [책읽기 삶읽기 26] 권혁희,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사진엽서를 통해 본 시선의 권력과 조선의 이미지’라는 이름이 붙은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라는 책을 읽는다. 겉에 적힌 이 글월 한 줄은 284쪽에 이르는 내내 되풀이된다. 사진엽서를 처음 만든 유럽사람들은 언제나 제국주의 눈길에 따라 엽서에 사진을 넣었고, 이 엽서는 제국주의 나라에서 끝없이 교재로 쓰이면서 식민지로 짓눌린 나라들이 얼마나 덜 떨어지거나 엉성했는가를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 서구인들은 카메라로 식민지의 지형과 원주민들의 인종, 풍속 등을 기록해 갔으며 그것을 통치 자료로 활용했다 ..  (35∼36쪽)


 생각해 보면, 19세기 끝무렵과 20세기 첫무렵 사진엽서에 나타나는 모습만 ‘식민지 지형’과 ‘원주민 풍속’을 적바림하지 않는다. 20세기 끝무렵과 21세기 첫무렵 사진이나 사진책이나 사진잡지에도 온통 ‘우리네 삶터 모습’과 ‘우리 겨레 문화’를 적바림한다. 지난날에는 제국주의 눈길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상업주의나 자본주의 눈길이라 할 테지. 남들이 우리 겨레를 사진으로 담든 우리가 내 손으로 이 겨레를 담든, 누구나 ‘문화’를 사진으로 옮기기 마련이다.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를 쓴 권혁희 님은 책을 마무리하면서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식민지 시기에 생산되었던 이미지들과 그 이후의 시각 문화가 가진 연관성을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274쪽).”고 밝힌다. 글쓴이는 사진이란 무엇이고 사진으로 담아서 나누는 매체(엽서이든 책이든 잡지이든 무엇이든)란 무엇이며, 사진과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옳게 살피지 못했다. 아니, 처음부터 사진이란 무엇인지 살피지 않았을 뿐더러, 사진을 담은 매체가 어떠한 빛깔이요 어떤 이야기를 담는지 돌아보지 않았다. 이 같은 눈길이라면 《ELLE》나 《VOGUE》 같은 잡지를 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쏟아내려나. 이런 잡지에 나오는 여자 모델은 어떤 사람인가. 이런 잡지에 나오는 사람들 삶은 오늘날 이 땅에서 어떤 계층 어느 자리 문화를 보여준다고 할 만한가.

 식민지 조선 여성이 ‘일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두고 ‘전근대적’이라느니 ‘열학한 사회적 지위’라느니 이야기하는데, 오늘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살림살이를 담은 사진이나 오늘날 돈이 넘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살림살이를 담은 사진을 바라볼 때에는 무슨 이야기가 터져나오려나 궁금하다 못해 아찔하다.


.. 이렇게 여성이 옷감을 짜거나 곡식을 찧는 모습은 식민지 여성의 전근대적이고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표상으로서 여러 매체에서 재현되었던 것들이다  ..  (42쪽)


 지난날,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에 옷감을 짜거나 곡식을 찧는 모습은 조금도 ‘전근대적’일 수 없다. 더구나 ‘열악한 사회적 지위’일 수조차 없다. 누구나 옷감을 짜고 곡식을 찧는다. 누구나 농사를 짓는다. 누구나 길쌈을 하고 물레를 잣고 실을 뽑으며 바느질을 한다. 누구나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장작을 팬다. 누구나 아이를 업고 아이한테 젖을 물린다. 누구나 물동이를 이고 누구나 지게를 멘다. 아이한테는 아이 몸에 맞는 지게를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준다. 어른은 어른한테 맞는 지게를 어른이 손수 만들어 쓴다. 지난날 이 나라 사람들을 돌아본다면, 몇몇 권력자하고 돈과 힘 있는 사람 빼고는 ‘가난하면서 수수하게 어깨 맞닿으며’ 살아가던 여느 사람이라 할 만하다. 이들 여느 사람들 삶이 어떠한가를 구경꾼 눈길이 아니라 살림꾼 눈길로 읽어야 한다. 2000년대 학자 눈길이 아닌 2000년대 여느 살림꾼 눈길로 살피고, 내 어머니와 아버지, 또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아 기르던 어머니와 아버지 들이 1900년대에 어떤 살림 어떤 삶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는가를 톺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하루하루 꾸리는 삶을 옳게 바라보지 못할 때에는 1900년대이든 1800년대이든 2000년대이든, 이런 때 저런 때 사람들 살림살이라든지 삶이라든지 문화라든지 잘못 읽을밖에 없다. 잘못 읽기만 한다면 그나마 낫지만, 뒤틀린 이야기를 뽑아내어 퍼뜨리기까지 한다. 《여성조선》이나 《여성동아》를 여느 아줌마들이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여느 아줌마들 삶이 《여성조선》이나 《여성동아》에 차근차근 실린다고 할 만하겠는가. 2100년이나 2200년을 살아가는 뒷날 학자들이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를 내놓은 학자하고 똑같은 눈길로 바라본다면, 먼 뒷날 사람들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2010년 이 하루를 《여성조선》이나 《여성동아》 같은 ‘여성잡지’를 들먹이면서 얼마나 비틀리거나 비비 꼬인 채 바라보는 셈이 될까 두렵다.

 사진을 읽든 그림을 읽든 ‘이 사람이 찍은 이 사진은 이런 생각에 젖어 이런 이야기를 쏟아내려고만 할 뿐이야’ 하는 눈길로 읽으면 너무 부질없다. 못난 마음으로 찍은 사진이라면, 사진쟁이가 얼마나 못난 마음인가를 한 줄로 밝히면 넉넉하다. 첫 한 줄은 이런 슬픈 모습을 밝히고, 다음 줄부터는 ‘못난 마음으로 얄궂게 찍은 사진’인데, 이 사진 하나를 돌아보며 오늘날 우리들로서는 새롭거나 새삼스럽거나 남달리 살필 만한 우리 발자취를 엿보는 ‘내 이야기’를 일굴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읽기는 틀에 박힌 생각으로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읽기는 판에 박힌 넋으로 해서는 뒤틀리고 만다. 사진읽기나 그림읽기나 책읽기일 때에도 매한가지이다. 한국사람이 “아름다운 한국”이나 “한겨레 전통”을 사진으로 이야기한다 할 때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 한국사람 스스로 보여주는 모습이 ‘식민지 다스리던 일본 제국주의자’ 눈길에 사로잡힌 채 벗어나지 못하기에 “아름다운 한국”을 그지없이 틀에 박히게 보여주는가. 사진을 찍는 사람뿐 아니라 사진을 읽는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를 내놓은 글쓴이부터 틀에 박힌 사람이 아닌가 궁금하다.


.. 최근까지도 생산되고 있는 ‘한국의 미’나 ‘한국의 전통’ 등의 이미지 가운데 상당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식민지 시기에 생산된 ‘조선 풍속’ 유의 이미지와 상당히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관광지 기념품점에서 팔리고 있는 사진엽서들을 살펴보면, 일제 시기 조선의 풍속으로 소개되었던 사진엽서 속에서와 같이 여성들은 대개 어린아이를 업고 있거나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 혹은 개천에서 빨래를 하거나 다듬이질이나 물레질 등 가사노동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출연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향토적 정서의 이미지로 복제되고 있다 ..  (264쪽)


 일하는 사람이 있고, 노는 사람이 있다. 고단하게 일하는 사람이 있고, 나긋나긋 노는 사람이 있다. 이쁘장하게 차려입고 길을 걷는 아가씨가 있을 테며, 주름살 깊이 패인 채 길바닥에서 장사를 하는 할머니가 있겠지. 부산시립박물관과 서울시 문화재과 학예연구사로 일한 글쓴이는 《HUMAN》(최민식 사진) 같은 사진책을 어떻게 이야기하려나. 《Unfinished Portrait》(오형근 사진) 같은 사진책은 또 어떻게 말하려나.

 학자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다. 학문이란 좁은 우물에 풍덩 뛰어들어 좁은 자료를 좁은 눈길로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학문이란 너른 바다를 너른 품으로 받아안으며 너른 눈길로 톺아보는 일이다. 너른 사람들 너른 삶을 너른 가슴으로 어루만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학문이 꽃을 피운다. 여느 사람들로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몹시 드물며 소담스러운 사진엽서를 수없이 만지작거린 학자 한 사람이 내놓은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는 누가 어떤 마음으로 읽어 어떻게 살아가도록 돕는 이야기책이라 할 만한지 글쓴이한테 되묻고 싶다. 여느 한국사람은 틀림없이 식민지 때에 피해자였으면서, 식민지 때를 꿋꿋하고 야무지게 살아낸 살림꾼이다. (4343.11.19.쇠.ㅎㄲㅅㄱ)


―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권혁희 글,민음사 펴냄,2005.5.25./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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