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House - 붉은 틀
노순택 사진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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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잊은 사람들 삶을 다큐사진으로
 [찾아 읽는 사진책 36] 노순택, 《RED HOUSE》(청어람미디어,2007)



 다큐사진을 찍는 노순택 님은 《RED HOUSE》(청어람미디어,2007)라는 사진책 머리말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도, (그것이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건,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건) 밀도 있는 작업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타인의 작업들을 바라보면서, 또 내 작업을 검토하면서 알게 되었다(10쪽).”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북녘 이야기와 삶을 사진으로 담든, 남녘 사람들과 사랑을 사진으로 싣든, 깊이 있게 사진말을 나누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어느 사진감을 고르든 똑같습니다. 어느 일을 하든 매한가지입니다. 쉬운 일이란 없고, 쉬운 사진이란 없으며, 쉬운 파헤치기나 사귀기란 없습니다.

 사진책 《RED HOUSE》 머리말에는 “사진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겉’뿐이다(9쪽)”라는 이야기도 한 줄 적힙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진은 겉을 찍고 겉만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본다면, 사진은 속을 찍고 속만 나눌 수 있어요. 겉과 속을 함께 찍을 수 있으며, 겉과 속을 하나도 못 찍을 수 있어요. 스스로 겉을 찍으려 하면 겉을 찍습니다. 스스로 속을 찍으려 할 때에는 속을 찍어요. 사람을 사귈 때에도 겉치레로 사귄다면 겉훍기로 그칩니다. 사람을 마주하며 속사랑을 나누려 한다면 속사랑을 이루어요.

 사진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모습만 찍지 않습니다. 글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는 모습까지 담지 않습니다. 그림은, 춤은, 노래는, 영화는, 연극은 어떠하다고 할까 돌아볼 노릇입니다. 어떠한 길을 걷든,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무엇을 담아내고 무엇을 보여주며 무엇을 나누는가는 사뭇 달라집니다.

  사진책 《RED HOUSE》를 들여다봅니다. 세 갈래로 나누어 사진을 싣고 보여줍니다. ‘펼쳐들다’와 ‘스며들다’와 ‘말려들다’로 나눈 《RED HOUSE》입니다. 펼쳐들다에서는 “질서의 이면”을 말한다 하고, 스며들다에서는 “배타와 흡인”을 말한다 하며, 말려들다에서는 “전복된 자기모순”을 말한다 합니다.

 사진을 넘기면서 세 갈래 이야기 펼쳐들다와 스며들다와 말려들다가 이러할 수 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세 갈래 이야기란 따로 떨어뜨린 셋이 아니라 한몸이고, 세 갈래 이야기는 북녘사람 삶이나 남녘사람 삶이 세 갈래라는 뜻이 될 수 있지만, 북녘과 남녘을 바라보는 사진쟁이 삶이 세 갈래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노순택 님은 ‘종이쪽 놀이(카드섹션)’를 하는 북녘사람들을 바라보며 ‘질서 뒤에 가려진 모습을 펼쳐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종이쪽 놀이를 펼치는 10만 어린이와 어른들 움직임을 질서라 일컬을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종이쪽 놀이란 질서라 일컬을 수 없을 텐데요. 질서가 아닌 권위이고 권력이며 군국주의라고 느낍니다. 질서일 수 없는 슬픔과 바보짓과 아픔이라고 느낍니다. 질서하고는 동떨어진 눈물이며 생채기인데다가 용두질이구나 싶습니다. 깊이를 따지면, 종이쪽 놀이를 하는 사람은 북녘사람만이 아닙니다. 남녘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다른 모습으로 똑같이 벌이는 일입니다. 북녘이나 남녘이나 틀에 박힌 초·중·고등학교 교육입니다. 북녘 군대나 남녘 군대나 틀에 박힙니다. 서로서로 평화를 지키려는 군대가 아니라 평화를 밟고 서로를 더 잘 죽이려는 ‘사람 죽이는 재주’를 길들이는 군대예요. 이는 사진책 《RED HOUSE》 셋째 갈래인 말려들다를 넘기면 숱하게 나오는 ‘군인옷 입은 어르신’ 얼굴을 보면 쉬 어림할 수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그렸다는 김일성 얼굴보다 이 ‘김일성 그림을 들거나 불사르는 군인옷 입은 남녘 남자 어르신들 얼굴’이 훨씬 무시무시하구나 싶어요.

 그나저나, 노순택 님은 왜 “붉은 틀”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책 《RED HOUSE》를 내놓았는지 아리송합니다. 북녘 사회가 붉은 틀을 보여주기에 《RED HOUSE》를 찍었다 할 테지만, 정치권력자가 보여주는 붉은 틀이 북녘사람들 삶자락은 아니거든요. 붉은 틀에 가둔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붉게 물들지는 않거든요. 아니, 붉은 틀에 오래오래 가둔 끝에 시나브로 붉게 물들었다지만, 어느 사람이든 붉은 피가 흐르지만 붉은 사람 아닌 흙빛 사람이에요.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흙빛 사람입니다. 입시지옥에 얽매인 채 시험점수만 외워야 하는 남녘 어린이와 푸름이는 참으로 슬프며 불쌍한데, 북녘 어린이와 푸름이는 또 북녘 어린이와 푸름이대로 참으로 슬프며 불쌍해요. 서로서로 ‘더 낫지’ 않고 ‘더 나쁘지’ 않아요. 둘 모두 아름다움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채 숨을 잇습니다.

 정치권력을 쥔 사람이든 정치권력을 쥔 사람한테 눌리는 사람이든 갓난쟁이로 태어나서 늙은이로 죽습니다. 제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백 살을 튼튼히 살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돈과 힘과 이름을 거머쥐었더라도 갓난쟁이일 때에는 똥오줌을 못 가립니다. 붉은 틀이란 아직 철모르는 사람들 바보스러운 짓이에요. 철모르는 사람들 바보스러운 짓을 사진으로든 그림으로든 글로든 담아서 나눈다 할 때에는, 조금도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만 얻고야 맙니다. 다큐사진이란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를 구태여 파헤치거나 들여다보는 일이어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다큐사진은 사랑사진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담는 사진이 곧 다큐사진입니다. 그래서 사진책 《RED HOUSE》를 넘기는 내내 노순택 님이 북녘사람과 남녘사람을 바라보며 어떠한 사랑을 무슨 빛깔로 어떤 손길로 담아서 나누려 하는가를 곰곰이 되씹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요”를 까망하양 사진으로 보여주는데, “우리는 행복해요”를 무지개 빛깔로 보여주었다면 어떠한 느낌과 이야기가 되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아침나절에, 새벽나절에, 낮나절에, 저녁나절에,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으며 뭇 꽃과 풀이 어여삐 어우러진 학교 문가와 둘레를 살펴본다면, 또 창문턱을 가만히 ‘깊게’ 들여다본다면 어떤 이야기가 샘솟을까 가누어 봅니다.

 사진기를 든 북쪽 경비원 몸짓 말고, 사진기를 든 북쪽 경비원 손가락과 손등과 손바닥을 사진으로 담아 본다면, 구두코와 발가락을 사진으로 담아 본다면, 옷깃과 지갑을 사진으로 담아 본다면, ‘붉은 틀’에 꽁꽁 싸매 두었다지만, 이곳저곳에 조용히 스며들어 선보이는 ‘사람내음’과 ‘사랑내음’을 곱게 어루만지듯 감싼다면, 무시무시한 주먹을 휘두르면서 서울 광화문 큰거리에서 목소리 높이는 어르신들 흰머리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사진책 《RED HOUSE》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새삼스레 깃들는지 궁금합니다.

 더 사랑해 주셔요. 더 깊이 사랑해 주셔요. 더 따스한 손길로 더 깊이 사랑해 주셔요. 더 오래오래 내 고운 이웃으로 여겨 더 따스한 손길로 더 깊이 사랑해 주셔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다큐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삶으로 내 하루하루를 흐뭇하게 웃고 떠들며 즐기지 않을 때에는 다큐사진하고 멀어집니다. 누군가를 붉은 틀이라고 이름붙일 때에는, 이 이름을 붙이는 사람부터 붉은 틀입니다. (4344.6.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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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심기 어린이


 첫째 아이는 곧 석 돌을 맞이한다. 석 돌을 맞이하는 아이와 함께 살아오면서 이 아이가 얼마나 몸과 마음으로 잘 느끼거나 아는가를 날마다 새롭게 깨닫는다. 아이가 모르는 일이란 없다. 어버이가 못 알아채거나 둘레 어른이 안 알아챌 뿐이다.

 아이가 물가를 거닌다. 그렇지만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둘레 어른이나 언니 오빠 가운데 물에서 저를 아끼면서 즐거이 놀아 줄 만한 사람이 없는 줄 알기 때문이다. 장난걸기는 장난을 거는 쪽에서는 재미날는지 모르지만, 장난을 받는 쪽에서는 못마땅하거나 싫을 수밖에 없다.

 멧골학교 어린이와 어른이 손으로 모심기를 하던 어제, 아이는 논둑에서 얼쩡거리기만 한다. 아이한테는 무논 또한 똑같은 물가이다. 아이한테 무논은 퍽 깊은 물이요, 진흙이 폭폭 빠지니 아이로서는 자칫 숨을 거둘까 두렵다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손으로 모를 알맞게 뜯어 진흙을 폭폭 밟으면서 물속에 손을 포옥 담그면서 살짝 쏙쏙 꽂는 모심기를 네 살 나이에 겪으면 퍽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한테는 모심기가 되든 그냥 물놀이가 되든 헤엄치기가 되든, 아이가 물에서 걱정없이 놀거나 어울릴 수 있다고 깊이 느끼기 앞서는 논에 들어올 수 없겠지.

 볍씨에서 쑥쑥 올라온 모를 조금씩 뜯어 무논에 심으며 생각한다. 손모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하는 일이다. 쉴 수 없는 일이고, 서둘러 끝낼 일이다. 이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둘레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기운을 북돋는 누군가 있어야 하리라. 노래를 듣고 춤사위를 느끼면서 등판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잊고, 모를 꽂을 때마다 쿡쿡 쑤시는 허리를 잊어야 하리라.

 이제 거의 모든 논에서 논을 갈아엎거나 논삶이를 하거나 가을걷이를 하거나 볏짚을 털거나 하는 온갖 일은 기계가 맡는다. 모심기 또한 기계가 알뜰히 재빨리 해낸다. 손을 쓰는 일은 어리석다. 손을 써서 할 바에는 모든 일을 손을 써서 해야 할 테지. 자가용을 몰면서 무논에 손모를 심을 수는 없다. 아니, 자가용을 몰면서도 얼마든지 무논에 손모를 심을 수는 있다. 그러나 손모를 심는들 자가용을 모는 삶을 멈추지 않는다면, 무엇을 느끼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걷고 뛰고 달리고 서고 눕고 박차는 두 다리로 꼿꼿하게 살아가면서 흙과 물과 벼와 해와 숨을 손으로 받아들인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 볼을 쓰다듬는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 머리카락을 빗은 다음 두 갈래로 묶는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를 품에 안는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를 눕히고 이불을 여미어 밤잠을 재운다. (4344.6.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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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빨래


 밤새 틈틈이 깨어나 갓난쟁이 기저귀를 갑니다. 아버지가 스스로 일어나 기저귀를 갈기도 하지만, 옆지기가 아버지를 부르기에 벌떡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기도 합니다. 밤새 쌓이는 똥오줌기저귀가 몇 장쯤 되는가를 헤아려 밤 빨래나 새벽 빨래를 합니다. 밤이나 새벽에는 넉 장까지 그대로 담그고, 다섯 장째부터 빨래를 합니다. 시골집은 밤이 되면 퍽 쌀쌀해서 새벽에 보일러를 돌립니다. 새벽나절에는 따순 물로 새벽 빨래를 합니다.

 아기가 빨래거리를 잔뜩 내놓으면 깊은 밤 한 시이든 두 시이든 빨래를 한 차례 더 합니다. 밤 열두 시에 겨우 등허리를 토닥이며 자리에 드러눕기 앞서 모든 빨래를 마무리짓습니다. 그러나 열두 시 땡 하고 지나고 나서도 으레 새 빨래거리는 나오고, 새벽 빨래를 하건 안 하건 밤새 잠자리에 들기는 어렵습니다.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사람은 밤잠도 새벽잠도 이룰 수 없습니다. 밤잠도 새벽잠도 이루기 힘든 터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종이기저귀를 채우는구나 싶습니다. 가뜩이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에서는 집안대로 온갖 일에 시달릴 테고, 집밖에서는 집밖대로 돈벌이를 하느라 힘들 테니까요.

 새벽 세 시나 네 시 무렵에 새벽 빨래를 합니다. 시나브로 이른여름에 접어든 유월 첫머리 새벽은 퍽 밝습니다. 새벽 세 시 반쯤부터 희부윰합니다. 네 시를 넘기면 하이얗고, 네 시 반부터는 꽤 환하며, 다섯 시면 동이 다 틉니다. 더운 여름날 밭에서 김매기 좋은 때는 네 시 반부터 여섯 시 사이입니다. 나는 이무렵, 네 시 안팎에 새벽 빨래를 하면서 하루를 엽니다. 첫째 아이가 밤오줌기저귀를 뗄락 말락 하는 무렵에 둘째 갓난쟁이 똥오줌기저귀를 빨아야 하다 보니, 내 팔뚝은 남아날 겨를이 없고 숨돌릴 틈이 없습니다. 하루 내내 팔뚝이 저린 채 보냅니다. 둘째 아이가 석 돌이 될 네 살을 맞이할 무렵까지 새벽 빨래입니다. (4344.6.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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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드니까 책읽기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어른들이 책을 장만해서 아이들 손에 쥐도록 하니까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어른들이 책을 장만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책을 읽지 못합니다. 책을 만드는 어른이 있기에 어린이는 책을 찾아서 읽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은 어른이 만듭니다. 어른들이 읽을 책도 어른이 만듭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책만들기라는 일 때문에 바쁘거나 힘듭니다. 그렇지만 내가 만드는 책에만 마음을 쏟느라 다른 책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만드는 책은 내가 만드는 책대로 꼼꼼히 살피거나 찬찬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책은 다른 사람이 만든 책대로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기쁘게 아로새겨야 합니다. 다른 좋은 책을 찾아서 읽기 때문에 나는 내 나름대로 내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지난날대로 교사 노릇 하기 참 벅찼다고 합니다. 갖가지 공문서를 써야 하고, 아이들한테 돈을 거두어야 할 뿐더러, 남자 교사는 밤새워 학교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러면서 일삯은 몹시 적었습니다.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교사 구실 하기 꽤 힘겹다고 합니다. 지난날만큼 공문서를 써야 하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한테 돈을 거두지 않는데다가, 이제 학교를 밤새워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면서 일삯은 꽤 많습니다. 그렇지만, 교사로서 교사답게 일하는 터전이 안 된 지난날하고 견주어 이모저모 나아졌대서 교사 구실이 수월할 수 없습니다. 교사 구실이 수월하지 않은 까닭은 교사가 교사다움을 돌볼 수 있게끔 언제나 새로 배우거나 새로 가다듬으며 새로 태어나도록 이끄는 얼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사뿐 아니라 여느 어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 서서 무언가를 몸소 보여줍니다. 입으로 떠들며 가르치지 않더라도 모든 어른은 모든 어린이 앞에서 몸소 삶을 보여줍니다.

 어른이 어린이한테 보여주는 삶은 아름다울 수 있으나, 구지레할 수 있습니다. 시커먼 돈을 뿌리거나 집어삼키는 어른만 구지레하지 않습니다. 말과 삶이 다르거나 말이 거칠거나 막된 어른 또한 구지레합니다.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운 길하고 동떨어진 어른이라면 모두 구지레해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책을 읽으라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어른들 스스로 책을 읽는 일이 몹시 드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읽히는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조차 제대로 읽기는 읽고 나서 읽으라고 책을 내밀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일곱 살이 되고 열 살이 되며 열다섯 살이 되다가는 스무 살이 될 무렵, 이러한 나이에 걸맞게 차근차근 읽으며 받아들일 만한 책을 ‘어른으로서 먼저 살뜰히 읽’는가요. 아이들이 즐거이 읽을 만한 책을 하나하나 살피거나 가려서 알뜰히 갖추었는가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나 모두 힘듭니다. 바쁘고 힘들며 벅찹니다. 그래, 더없이 바쁘기 때문에 책을 읽습니다. 더없이 바쁜 터라 내 삶을 사랑하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그지없이 힘들기 때문에 책을 읽습니다. 그지없이 힘든 터라 내 삶을 아끼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배우면서 거듭나는 어른이 되어야 비로소 아이들 앞에서 사랑스럽거나 믿음직한 어른이라 할 만합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배우지 않을 뿐더러 거듭나지 않는 어른이라 한다면, 아이들 앞에서 어른이나 교사라는 이름표를 스스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4344.6.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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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한테 못할 짓 2


 자가용을 몰고 텃밭으로 찾아가서 푸성귀를 뜯거나 김매기를 하는 일이란 아이한테 못할 짓이다. 자가용을 몰고 시원한 골짜기로 찾아가서 푸른 숲과 맑은 물을 누리거나 즐기는 일이란 아이한테 못할 짓이다. 자가용을 몰았으면 고기 구워 먹는 집으로 가야지. 자가용을 몰려면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 가야지. 자가용을 굴리니까 높직한 아파트에 살림집을 마련해서 이런저런 학원에 아이를 넣어야지. (4344.6.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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