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ifornia on the Breadlines (Hardcover) - Dorothea Lange, Paul Taylor, and the Making of a New Deal Narrative
Jan Goggans / Univ of California Pr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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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서 읽은 책은 이 <캘리포니아 어쩌고>가 아니지만, 이 사진책에 캘리포니아 모습이 적잖이 나온다. 아무튼, 도로디어 랭 사진책을 '간추린 판'이 아닌 '사진책'으로 사서 읽는다면, 사람들이 흔히 고정관념처럼 아는 사진하고는 다른 이야기를 느끼리라 믿는다. 



 사진 한 장에 담기는 사람들 삶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8] Dorothea Lange, 《Photographing the Seocnd Gold Rush》(Heyday books,1995)


 1895년에 태어나 1965년에 숨을 거둔 도로디어 랭(Dorothea Lange) 님 사진을 바탕으로 새롭게 꾸민 사진책 《Photographing the Seocnd Gold Rush》(Heyday books,1995)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조그마한 사진책에는 “Dorothea Lange and the Bay Area at War, 1941∼1945”라는 자그마한 이름 하나 덧붙습니다. 그러니까 1941년부터 1945년 사이에 찍은 사진이요, ‘두 번째 금광찾기’가 된다는 사진이라는 셈입니다.

 1941년부터 1945년 사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했는가 돌이킵니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였던 이무렵 숱한 지식인과 지성인은 친일부역을 합니다. 나로서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살지 못했으니 이때가 얼마나 어떻게 괴로우며 벅찼는가를 알 수 없습니다만, 옳으며 바른 길을 착하고 맑게 걷기란 몹시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옳으며 바른 길을 착하고 맑게 걷는 모든 길이 꽉 막히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멧골 깊이 들어가 조용히 흙을 일구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외딴섬 조그마한 집에서 아주 고요히 바다와 벗삼으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흙을 일구어야 먹고살 수 있던 지난날 한겨레인데, 뻔히 일본총독부한테 쌀과 곡식과 푸성귀를 빼앗길 줄 알면서도 흙을 일구어야 하는 삶에서 어떻게 견디거나 버틸 수 있었을까요. 시골사람은 창씨개명을 할밖에 없으며, 도시사람은 친일부역을 할밖에 없던 슬프며 아픈 나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핑계감으로 삼는 말이 아니라, 참 배고프고 외로우며 아픈 나날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1950년부터 남녘과 북녘은 총부리를 맞대며 서로 죽이고 죽는 끔찍한 짓을 저지릅니다. 왜 한겨레끼리 이토록 죽임질에 목을 매야 했는가 돌아보면 그예 슬프며 아플 뿐입니다. 그런데, 이무렵 1950년부터 몇몇 나라는 군수공장을 펑펑 돌리면서 어마어마하게 돈벌이를 합니다. 이른바 ‘무기 만들고 팔아 금광찾기’를 하는 꼴입니다.

 그러니까, 모르는 노릇이지만, 미국땅에서 1941년부터 1945년은 ‘무기 만들고 팔아 금광찾기’를 하던 나날이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일으켜 준 전쟁 때문에 쉴새없이 ‘무기팔이’를 할 수 있었고, 미국에서는 일본이 일으켜 준 전쟁이 있기에 더욱더 힘을 내어 ‘무기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은 누군가한테는 그야말로 죽이고 죽는 끔찍한 짓입니다. 전쟁은 누군가한테는 집도 식구도 돈도 꿈도 몽땅 날아가는 터무니없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또다른 누군가한테는 어마어마한 돈벌이입니다. 전쟁은 누군가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크나큰 훈장이나 이름값입니다.

 1941년부터 1945년 사이, 한국땅에서 마주할 수 있던 사람들 모습에서는 어떤 빛을 읽을 수 있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릴 만하고, 어떤 웃음꽃이 피어날 만하며, 어떤 꿈이 이루어질 만한지 궁금합니다.

 1942년에도 혼인한 사람이 있겠지요. 1944년에도 태어난 아이가 있겠지요. 1943년에도 글을 배운 아이가 있겠지요. 1945년에도 예순잔치가 있겠지요.

 도로디어 랭 님 사진책 《Photographing the Seocnd Gold Rush》를 넘기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사진 밑에 붙인 ‘사진 찍은 해’가 없다면, 이 사진을 1941년 사진으로 여길는지, 1951년 사진으로 여길는지, 1961년이나 1971년이나 1981년 사진으로 여길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참말 언제 찍은 사진이라 할 만할까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미국사람한테 1945년은 어떤 해였을까요. 가난하다가 갑작스레 살림이 편 미국사람한테 1944년은 어떤 해였을까요. 이무렵 일자리라면 아무래도 군수공장이 가장 많았으리라 보는데, 군수공장에서 일거리를 얻어 돈벌이를 하며 집식구를 먹여살리던 어버이들한테 1943년은 어떤 해였을까요.

 사진에 담기는 사람들 삶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같은 해 다른 자리 사람들 사진은 저마다 어떤 이야기를 품을 수 있을까요. 같은 자리 다른 삶 사람들 사진은 저마다 어떤 빛과 그림자를 껴안을 수 있을까요.

 가난해도 밥을 먹습니다. 가멸차도 잠을 잡니다. 못생겨도 사랑을 합니다. 잘생겨도 헤어집니다. 집이 없어도 살림을 꾸립니다. 집이 있어도 텃밭을 못 일구곤 합니다. 돈이 없어도 웃음꽃을 활짝 피웁니다. 돈이 있어도 눈물나무만 자랍니다.

 누군가는 가난하거나 힘겹다 싶은 살림을 꾸리는 사람을 찍은 사진은 어둡거나 퀴퀴하거나 슬프거나 아파야 한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면, 가멸차거나 수월하다 싶은 살림을 누리는 사람을 찍은 사진은 어떠해야 할까요. 사진은 돈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까요. 글은 돈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나요. 노래는 돈에 따라 내음이 바뀌는가요.

 더 큰 선물보따리를 받아야 웃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밥그릇을 두서넛쯤 받아야 함박웃음으로 밥을 먹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밥 한 그릇이면 넉넉합니다. 하루 두어 끼니면 배부릅니다. 누구나 조그마한 밥그릇으로 조그마한 사랑을 조그마한 꿈에 담아 누립니다.

 도로디어 랭 님이 농업안정국이라는 데에 몸담으며 사진을 찍었든, 홀가분하게 당신 사진감을 찾아 사진을 찍었든, 두 갈래 사진은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사진에 담기는 사람들 삶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를 사진쟁이 스스로 읽을 줄 알면 됩니다. 사진에 담기는 사람들 삶이 사진기를 손에 쥔 사진쟁이한테 무엇을 보여주며 깨우치는가를 알아채면 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길을 닦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사랑길을 닦을 테고, 누군가는 돈길을 닦을 테며, 누군가는 꿈길을 닦을 테지만, 누군가는 이름길을 닦겠지요. (4344.11.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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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바의 미소 미래그림책 3
칼 노락 글, 루이 조스 그림, 곽노경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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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웃음씨 뿌려 웃음열매 짓는 삶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8] 루이 조스·칼 느락, 《키아바의 미소》(미래M&B,2001)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좋다고 여깁니다.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좋다고 느낍니다. 갠 날은 갠 대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궂은 날은 궂은 날대로 좋다고 받아들입니다. 꼭 어떠한 날을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 다른 날을 맞아들이고 싶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삶을 일구고 싶습니다.

 어릴 적부터 놀이가 되든 날씨가 되든 골고루 누릴 때에 즐겁다고 여겨 버릇했기에, 사진을 찍을 때에도 사진이 더 잘 나오는 날씨가 있다고는 헤아리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을 누리는 하루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사랑스럽다 싶은 사진을 찍는다고 봅니다. 나 스스로 아끼는 삶이고 사랑이며 사람이라면, 어느 갈래 어느 글을 쓰더라도 내 꿈이 곱게 깃드는 글꽃으로 피어나요.

 배부른 느낌이 좋습니다. 배고픈 느낌이 고단합니다. 배부른 느낌과 배고픈 느낌을 함께 누리기에 내 삶이 이루어지겠지 하고 여깁니다. 주머니에 살림돈이 넉넉하지 못해 이것저것 마음대로 장만할 수 없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이것저것 쉽게 장만하며 살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살아가며 꼭 누리거나 쓸 것만 알맞게 알뜰히 장만하고 싶어요.

 돌이키면, 이렇게 살아가는 결 그대로 이루어지는구나 싶어요. 내가 수월하고 홀가분한 나날만 꿈꾼다면 수월하고 홀가분한 길을 걸을는지 몰라요. 나는 내 몸으로 온갖 일을 부대끼며 천천히 깨닫거나 배운다고 꿈꾸니까, 숱한 가시밭길이랑 수렁을 건너야 하는지 몰라요.


.. 키아바는 우쭐해졌어요. 그런데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방금 잡은 물고기가 키아바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는 거예요 ..  (5쪽)


 맑은 길을 헤아립니다. 내가 혼자 걷는 맑은 길이란 어떤 모습이고, 우리 집 살붙이랑 함께 걷는 맑은 길이란 어떤 이야기일까 헤아립니다.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일 때에 얼마나 맑으면서 씩씩하게 할 수 있는지 곱씹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함께 누릴 만한 맑은 일은 어떻게 다스릴 때에 아름다울까 되뇝니다.

 날마다 먹는 밥을 날마다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길을 생각합니다. 날마다 비슷하게 차리는 밥을 날마다 새삼스레 느끼며 즐길 만한 길을 생각합니다. 날마다 꾸준하게 빨래하는 옷가지를 날마다 반가이 다루는 길을 생각합니다.

 날마다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할 때마다 돌아봅니다. 방바닥이나 책상에 앉은 먼지를 쓸고 닦으며 이 먼지를 그대로 두었다면 모두들 고스란히 마셔야 했겠지 하고 돌아봅니다. 그러면, 이 먼지는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요. 어떻게 이 먼지들이 집안에 켜켜이 쌓이는가요.


.. 키아바의 아빠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겁을 주어 곰을 쫓으려고 하셨어요. 아빠가 무섭게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곰도 점점 더 사납게 으르렁거렸습니다 ..  (10∼11쪽)


 집 안팎을 가득 채우던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쓰레기 묻는 곳으로 실어다 날랐습니다. 예전에 살던 이가 남긴 쓰레기가 이만큼인데, 나는 내 예전 살던 집에 쓰레기를 어느 만큼 남겼는가 되돌아봅니다. 새 보금자리에 있던 쓰레기를 어느 곳에 갖다 버렸으니 이 쓰레기는 사라졌을까요. 그저 자리를 옮기고 모양만 바뀔 뿐, 쓰레기는 한결같지 않을까요.

 한삶을 누리면서 쓰레기를 내놓거나 쓰레기를 만들거나 쓰레기를 이룬다면, 얼마나 즐겁거나 기쁘거나 흐뭇할까요. 내가 누리는 한삶에서 사랑을 짓고 꿈을 지으며 믿음을 짓는 일이랑 쓰레기를 짓는 일이랑, 어느 쪽이 보람차면서 해맑을는지요. 내가 누릴 한삶은 또렷합니다. 쓰레기를 짓는 삶이 아니라 사랑을 짓는 삶이어야 합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삶이 아니라, 사랑을 보듬으며 돌보는 삶이어야 합니다. 좋은 마음을 쓰고 좋은 꿈을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 웃으며 얼싸안는 나날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함께 웃으며 노래하는 나날일 때에 어여쁩니다. 웃음씨, 웃음꽃, 웃음나무를 일굴 내 한 목숨입니다.


.. 키아바는 뛰어서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폭풍이 웃고 있는 동안은 바람을 불게 하는 걸 잊어버릴 거야.’ 이렇게 생각하자 키아바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  (22쪽)


 루이 조스 님 그림과 칼 느락 님 글로 이루어진 그림책 《키아바의 미소》(미래M&B,2001)를 읽습니다. 어린이책인데 자꾸자꾸 “미소를 짓고 있는 거예요”와 같은 말투가 튀어나옵니다. “웃고 있는 동안”이라고도 옮김말을 적지만, 자꾸자꾸 ‘微笑’라는 일본말을 씁니다. 낱말로 살필 때에 ‘미소’부터 마땅하지 않고, “짓고 있는 거예요” 꼴 또한 마땅하지 않습니다. “웃음을 지어요”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웃고 있는 동안”은 ‘웃다’를 쓰니 한결 낫지만, “웃는 동안”으로 바로잡아야 올발라요.

 어른책부터 옳고 바른 말로 빚어야 아름답습니다만, 어린이책은 더욱더 옳고 바른 말로 일구어야지요. 좋은 넋으로 좋은 말을 심어 좋은 꿈이 자라도록 도와야지요. 착한 얼로 착한 글을 가꾸며 착한 삶을 누리도록 이끌어야지요.

 그림책 《키아바의 미소》는 “웃는 키아바”요 “키아바 웃음”이며 “키아바가 지은 웃음”입니다. 키아바 마음속에는 웃음씨만 있었습니다. 물고기를 낚다가 이 웃음씨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웃음씨를 한 번 깨달은 뒤로는 웃음씨를 곱게 돌봅니다. 시나브로 웃음씨를 ‘짓’습니다. 웃음을 ‘지어’ 키아바 살붙이부터 동무랑 이웃 모두한테 웃음열매를 나누어 줍니다.

 비아냥거리는 말이든 화살 같은 말이든, 사람들은 참으로 쉽게 슬픈 말씨를 뿌립니다. 슬픈 말씨는 슬픈 말열매를 맺습니다. 포근한 말이든 너그러운 말이든, 사람들은 언제나 기쁜 말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기쁜 말씨는 기쁜 말열매를 맺어요.

 성나거나 골부리는 얼굴로 살아갈 때에는 슬픈 몸짓을 뿌리고 슬픈 몸부림을 낳습니다. 웃거나 따사로이 감싸는 품으로 살아갈 적에는 기쁜 이야기를 뿌리고 기쁜 꿈빛을 낳습니다.

 키아바는 남다르거나 대단한 아이가 아닙니다. 여느 아이입니다. 수수한 아이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키아바와 같달 수 있고, 내 옆지기와 나 또한 키아바와 같달 수 있어요. 착하며 고운 마음으로 참다이 길을 걸어간다면, 누구나 키아바와 같이 여느 사랑과 수수한 웃음으로 좋은 삶을 누립니다. (4344.11.18.쇠.ㅎㄲㅅㄱ)


― 키아바의 미소 (루이 조스 그림,칼 느락 글,곽노경 옮김,미래M&B 펴냄,2001.2.20./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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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66
마사 알렉산더 지음, 서남희 옮김 / 보림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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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쁘며 빛나는 말을 아이한테 들려주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7] 마사 알렉산더,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보림,2007)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머니 가운데 힘이 들지 않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집일을 퍽 적게 한다 하지만, 으레 어머니들이 온갖 집일을 도맡거나 많이 맡기 마련이면서, 바깥일까지 한다면, 사랑스러운 아이를 따사로이 보듬는 넋이라 하더라도 힘이 들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하나일 때보다 둘이 벅차고, 둘일 때보다 셋이 버겁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하나일 때에 누리는 기쁨이랑 둘일 때에 누리는 기쁨하고 셋일 때에 누리는 기쁨은 사뭇 달라요.

 힘이 들기 때문에 더 기쁨을 누릴는지, 힘이 덜 들 때에 더 기쁘다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이가 하나이든 둘이든 셋이든, 또는 아이가 없이 살아간다 하든, 나와 한솥밥을 먹는 살붙이를 따사로이 바라보며 보듬는 넋이요 손길이라 한다면 늘 기쁜 나날이라고 느낍니다. 따사로이 바라보지 못하거나 따뜻하게 보듬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힘들게 안 한다든지 살림돈이 넉넉하다든지 하더라도 그닥 기쁠 수 없는 나날이라고 느껴요.


.. “엄마, 내가 쓰던 의자를 왜 새로 칠해?” “아기가 태어나면 주려고 그러지.” ..  (5쪽)


 갓난쟁이 둘째가 웁니다. 품에 안아 토닥토닥 타이릅니다. 노래를 불러 주다가는 젖을 물립니다. 어린 동생과 사랑을 나누며 자라는 첫째가 웁니다. 요모조모 말썽을 부리지만, 가만히 헤아리면 어리광일는지 모릅니다. 더 바라보며 따스히 어루만지기를 바라는 몸부림일는지 모릅니다.

 젖을 물리는 어머니이기에 아버지보다 한결 보드랍거나 따사로울 수 있을까요. 열 달에 걸쳐 몸속에서 아끼며 뼈와 피와 살을 나누었기에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르게 살가우면서 너그러울 수 있는가요.

 집일을 하거나 살림을 돌본대서 아이들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삶이 되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집일을 도맡거나 살림을 아기자기 일군대서 아이들을 더 챙기거나 보살피는 삶이 되지는 않는구나 싶어요.

 사랑하는 넋이 아니라면 아이한테 뼈와 피와 살을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젖을 물리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손길이 아니라면 아이와 노래를 부르며 포근한 넋이 되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꿈결이 아니라면 아이 손을 맞잡거나 아이를 등에 업으며 마실을 다니지 못합니다.


.. “내가 내 맘대로 엄마 침대나 흔들의자를 남한테 주면 좋겠어?” “올리버야, 미안해. 아기 때 쓰던 물건이라서 이젠 안 쓰는 줄 알았지.” ..  (10∼11쪽)


 어머니가 힘들 때에 아이들도 힘듭니다. 어머니가 즐거울 때에 아이들도 즐겁습니다. 어머니가 포근한 품으로 두 팔을 벌릴 때에 아이들은 춤을 춥니다. 어머니가 맑고 밝은 목소리로 노래할 때에 아이들은 병아리처럼 입을 벌리며 신나게 노래합니다.

 마사 알렉산더 님 그림책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보림,2007)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곧 동생을 볼 아이는 어머니한테 ‘왜 나한테 안 물어 보고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어머니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아이한테 미안하다 이야기합니다.

 어머니라서 아이보다 더 잘 알지 못해요. 어머니도 이제 막 어머니이지 예전부터 어머니이지 않아요. 어머니도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도 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가 있어요. 아이는 앞으로 어머니나 아버지가 될 테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된 다음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겠지요.

 빛나는 사랑이 어머니 손길을 타며 아이한테 이어집니다. 빛나는 믿음이 아이 손길에서 자라나면서 아이가 어버이가 된 다음 새 아이한테 이어집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이란 서로서로 북돋우면서 타이르는 길입니다. 함께 어우러지는 길이란 서로서로 쓰다듬고 토닥이면서 아끼는 길입니다. 어머니는 첫째 아이랑 둘째 아이를 모두 아끼고 싶습니다. 첫째 아이는 어머니와 동생을 나란히 좋아하고 싶습니다. 서로서로 다른 자리에 서면서 서로서로 깊고 너르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 “엄마는 네가 나가지 않으면 좋겠어. 네가 없으면 엄마는 너무너무 슬프고 외로울 거야.” “정말? 정말로 날 보고 싶어 할 거야?” “그럼 그럼, 게다가 네가 없으면 엄마는 너무너무 불쌍해질 거야.” ..  (24∼25쪽)


 아이가 외치거나 들려주는 말을 곰곰이 듣는 어머니이기에, 아이는 어머니가 읊거나 속삭이는 말을 차분히 듣습니다. 아이가 토라지거나 활짝 웃거나 주눅들거나 졸음에 겨울 때에 넉넉히 안고 달래는 어머니이기에, 아이는 어머니가 즐겁거나 슬픈 빛을 금세 알아차립니다.

 좋아하는 사이인 터라, 마음으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좋아하는 사이인 까닭에, 마음을 빛내는 말마디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을 먹는 아이는 사랑을 새롭게 키웁니다. 사랑을 받은 아이는 사랑을 고스란히 베풉니다. 사랑을 먹는 아이로 살면서 어머니 자리에 서기에, 내 아이하고 사랑잔치를 엽니다. 사랑을 받은 아이로 지내며 어머니 노릇을 하니까, 내 아이하고 사랑씨앗 하나 예쁘게 건사합니다.

 말 안 들으며 골을 부리는 아이를 바라보며 “너 말야, 자꾸 말 안 들으면 내쫓을 테야.” 하고 꾸짖기에, 아이는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어머니를(아버지를) 내쫓을 테야.” 하는 말을 돌려줍니다.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에 나오는 어머니는 아이 앞에서 이제부터 예쁘며 빛나는 말을 예쁘며 빛나는 사랑을 담아서 들려주겠지요. (4344.11.17.나무.ㅎㄲㅅㄱ)


― 엄마를 내다 버릴 테야 (마사 알렉산더 글·그림,서남희 옮김,보림 펴냄,2007.1.10./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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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41) 충동적 3 : 충동적인 말

.. 충동적인 말이라 앞일은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코우키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마키 우사미/서수진 옮김-사랑 소리 (1)》(대원씨아이,2009) 26쪽

 ‘앞일’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입니다. 말 그대로 앞날 일어날 일이기에 앞일이에요. 뒤에 일어나는 일은 ‘뒷일’입니다. ‘미래(未來)의 일’이나 ‘장래(將來)의 일’처럼 적지 않아도 돼요.

 ‘전(全)혀’는 ‘하나도’나 ‘조금도’나 ‘참말’이나 ‘아무’로 다듬습니다. “생각하고 있을까”는 “생각할까”나 “생각하며 지낼까”나 “생각하려나”로 손질합니다.

 충동적인 말이라
→ 불쑥 꺼낸 말이라
→ 불쑥 튀어나온 말이라
→ 갑작스러운 말이라
→ 갑작스레 한 말이라
→ 갑자기 꺼낸 말이라
 …

 나도 모르게 꺼내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고이 품다가 문득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도록 생각하다가 슬그머니 들려주는 말이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갑작스럽다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서로 뜬금없다 여길는지 모릅니다. 참 뜻밖이라 할 만합니다. 생각하지 못하던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마디가 오가면서 다 함께 마음을 엽니다. 갑자기 터져나온 말마디로 사랑을 맺습니다. 좀처럼 터뜨리지 못하던 말마디가 활짝 열리면서 새로운 넋과 꿈이 피어납니다.

 나도 모르게 한 말이라
 얼떨결에 나온 말이라


 얼결에 나오는 말이 있고, 오래도록 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얼떨결에 새어나오는 말이 있으며, 그동안 하고프던 말이 있습니다.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늘 느꼈으니까요. 새롭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언제나 오갔거든요.

 누구 부추긴대서 사랑이 자라지 않습니다. 옆에서 쑤석거린대서 사랑이 샘솟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라는 사랑이고, 스스로 샘솟는 사랑입니다. 스스로 돌보는 따스한 말이요, 스스로 일구는 너그러운 글입니다. (4344.11.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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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코의 술 애장판 3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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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을 일구는 삶, 사랑을 짓는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77] 오제 아키라, 《나츠코의 술 (3)》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시골집으로 옮긴 뒤 너구리를 두 마리째 봅니다. 처음 본 너구리는 늦은 밤 짐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길에서 넙데데한 궁둥이를 실룩실룩 흔들며 부리나케 내빼는 너구리입니다. 사람 발길 없는 시골길에 모처럼 드물게 자동차 한 대 불을 밝히며 지나가니 깜짝 놀라며 내빼는데, 바로 옆 논으로 내빼지 못하고 찻길을 따라 한동안 달리더군요.

 다음으로 본 너구리는 해질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번에도 짐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큰길, 모로 누워 죽은 너구리입니다. 이 너구리는 차에 받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입니다. 맞은편 찻길에 모로 누웠고, 아직 떡주검까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해가 지고 길이 캄캄하면 큰길을 드문드문 오가는 자동차마다 이 너구리 주검을 알아채지 못하고는 자꾸자꾸 밟고 또 밟아 떡주검으로 만들겠지요.

 어느 시골이나 시멘트길이랑 아스팔트길이 잘 깔립니다. 시골집이래서 마당이 흙마당 그대로인 곳은 드뭅니다. 흙을 구운 기왓장이 고스란히 남은 집은 드뭅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 시멘트 아닌 흙을 구운 기왓장이 남은 집을 적잖이 보았으나, 낡고 오래되어 무너질까 걱정스럽대서 싸그리 밀어 없애는 모습까지 보기 일쑤였습니다.

 시멘트를 깐 논밭에서는 벼도 푸성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합니다. 어느 흙일꾼도 논밭에 시멘트를 깔지 않습니다. 잡풀이 자라지 말라며 밭에 시멘트를 까는 사람은 없습니다. 잡풀이 나더라도 흙땅에 풀약을 칠 뿐, 시멘트를 깔 수 없습니다. 사람이 먹는 모든 밥은 흙이 있는 데에서 얻습니다. 풀과 나무는 흙이 있는 데에서 자랍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는 흙에 알을 낳습니다.

 흙이 있고 물과 바람이랑 햇볕이 있어야 합니다. 흙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는 물과 바람과 햇볕을 먹으며 튼튼해집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도 물에서 숨을 얻고 물속으로 비치는 햇살을 먹으며 씩씩해집니다.


- “뿌리 조금 끊기는 건 걱정 말아요. 모는 그 정도로는 끄떡없으니까.” (20쪽)
- “어쩌다 보니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논이 있어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은 아니야. 그래도, 가을이 되어 추수철이 오면 뭐랄까, 그게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러니까 마음이 들뜨는 게, 하루 종일 쳐다만 봐도 좋은 그런.” (34쪽)
- “쌀뿐만 아니라 모든 작물은 인간 생명의 양식이잖아요! 농업은 그 양식을 생산하는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잖아요!” (58쪽)


 풀은 마음껏 돋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풀을 성가셔 하면서 시멘트랑 아스팔트를 흙땅에 덮지만, 풀은 시멘트와 아스팔트 깔린 데에서도 틈바구니를 찾아 고개를 내밉니다. 나 보란 듯이, 아니 나를 보라며 고개를 내밉니다. 온통 쇳가루와 고무바퀴와 플라스틱이 넘치는 도시에서, 이 도시사람들 숨통이 막힐까 걱정스러이 여기는 들풀이 힘차게 고개를 내밉니다. 곳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들풀이 없다면, 도시사람은 벌써 숨막혀 죽거나 바보가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분들은 돈을 벌어야 하니까 풀약을 칩니다. 논이고 밭이고, 잔뜩 돋는 풀을 어찌하지 못하니까 풀약을 칩니다. 곡식과 푸성귀가 크게 자라야 하고 알이 굵어야 하니까, 다른 풀한테 흙기운을 내줄 수 없습니다. 내다 파는 푸성귀와 곡식이 더 매끈하게 빠지고 큼직해야 하니까 풀을 뽑고 풀을 베며 풀을 죽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벌 만한 일자리를 찾습니다. 곧, 더 값싸고 더 큼직하며 더 예뻐 보이는 푸성귀에 손이 갑니다. 더 알차고 더 참다우며 더 깨끗한 푸성귀에 손이 안 갑니다. 이리하여, 도시사람한테 곡식이랑 푸성귀를 내다 팔며 돈을 벌 시골 흙일꾼은 풀약을 칩니다. 도시사람 바라는 대로 더 값싸고 더 큼직하며 더 예뻐 보이는 곡식과 푸성귀를 ‘억지로 만들어야’ 하기에, 그만 흙을 괴롭히고 흙을 들볶으며 흙을 죽이는 길을 걸을밖에 없습니다.


- “알아요.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나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그럼!” “아니요, 진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역시 안 되겠다 싶어요.” “어, 어째서?” “나, 농사짓는 집엔 시집가고 싶지 않아요.” (45쪽)
- “겨우 기계에 적응했다 했더니, 이번엔 쌀이 남아돌아 논을 줄이라는 거예요. 벼농사로 표창장까지 받은 사람에게 이번엔 농사를 짓지 말라는 거죠.” “시키는 대로 논 면적을 줄이면 또 보조금을 내주지. 농기계를 잔뜩 떠넘기던 녀석들이 말이야.” “결국 아버지는 대체 작물 농사에 실패했고 또다시 빚을 졌어요.” (50쪽)


 흙에 풀약을 치면 풀은 이내 죽습니다. 비바람과 햇살이 풀약을 씻어내면 풀은 다시금 기운을 차려 새싹을 틔웁니다. 흙일꾼은 다시 풀약을 칩니다. 새로 돋은 풀은 그만 다시 죽습니다. 이러다가 비바람과 햇살이 풀약을 또 씻으면 풀은 또 자랍니다.

 풀약을 먹은 풀이 죽듯, 풀약을 사람들 먹는 밥에 치면 사람이 죽습니다. 농약을 마신 흙일꾼은 곧장 숨이 끊어집니다. 목이 타는 괴로움에 시달리며 죽습니다.

 농약이 스멀스멀 밴 곡식이나 푸성귀를 먹는 여느 사람은 금세 목숨을 잃지 않습니다. 몸속에 농약 기운이 천천히 쌓이면서 천천히 몸이 무너집니다. 내 몸 하나 천천히 무너지는 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내 몸에 쌓인 농약과 중금속 들은 내가 낳을 아이들 몸에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오늘날 아이들 누구나 아토피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 누구나 아토피에 걸릴 수밖에 없으니, 병원 장사는 언제까지나 돈벌이가 잘 됩니다. 화학공장은 ‘살리는 약’과 ‘죽이는 약’을 함께 만듭니다. 그런데, ‘살리는 약’이 얼마나 살리는지는 알쏭달쏭합니다.


- “하지만 코시히카리나 사사니시키도 유기농 재배를 하는 건 아니야. 그래도 매년 훌륭한 쌀을 수확하고 있다고. 농약이며 화학비료도 너무 많이 쓰지만 않으면 별 문제 없을 것 같은데. 그래, 사실 유기농은 무리야.” “나츠코, 우린 쌀뿐만 아니라 보리며 누에콩 같은 것도 농약을 써 가며 짓고 있다. 하지만 우리 작물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얘긴 들어 본 적이 없어. 우리 쌀이 위험하다면 지금쯤 일본 인구는 반으로 줄었을 거야.” “누가 아니래. 하하하.” “반으로 줄면 농약을 안 쓸 건가.” “응?” “죽는 사람이 나와야, 그때야 비로소 이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깨달을 텐가 말이야. 죽는 사람이 나오는 건 20∼30년 후일지도 몰라.” (123∼124쪽)
- “(농약이) 뿌려졌어. 타츠니시키에도.” “얼마 안 되는 양이야! 괜찮아! 독약도 아닌데 뭘 그래?” “독약이야.” “(공중 액체분사 농약을 맞은 나비가 죽은 모습을 보고는) 믿을 수 없어.” “그, 그게 뭐 어때서! 벼를 지키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농약이.” (170∼171쪽)



 풀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얼마 안 되는 풀약을 먹고는 꼬르륵 숨을 거둡니다. 아니, 얼마 안 되는 풀약을 먹고는 금세 까맣거나 누렇게 타서 말라죽습니다.

 풀약 만드는 화학공장에서는 벼나 다른 곡식이나 푸성귀는 타서 말라죽지 않도록 애씁니다. 이른바 ‘곡식과 푸성귀를 지키는 풀약’이라 할 만합니다.

 오늘날 한국땅 어른들은 당신 아이들을 입시학원과 입시학교에 몰아넣습니다. 오늘날 한국땅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과 학교는 ‘삶을 배우는 터전’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하는 마당’이 아닙니다. ‘삶을 일구는 곳’이 아니에요.

 참 용한 일입니다만, 삶과 사랑과 사람이 없는 입시학원과 입시학교에 내몰리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이 바보가 된다든지 미친다든지 죽는다든지 하는 일이 드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머리가 돌고 마는 아이들이 드문드문 나타나지만, 거의 모든 웬만한 아이들은 용하게 살아남습니다. 입시학원과 입시학교라는 입시지옥에서 아슬아슬 숨통이 끊어지지 않아요.

 군대에 끌려가는 사내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얻어맞거나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 젊은 넋이 있습니다. 그러나 훨씬 많은 사내는 군대에서 잘 살아남습니다.

 다만, 궁금합니다. 입시지옥에서 살아남았대서 이 아이들 넋이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지 궁금합니다. 사람 죽이는 훈련을 받으면서 총질과 칼질과 주먹질과 욕질을 배우는 군대에서 살아남았다는데, 이 젊은 사내들 얼이나 매무새가 참답거나 착하거나 아름다운지 궁금합니다.


-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진키치. 응, 난 그 사람 말에 화를 낼 수가 없구나. 우리 중에선 네가 제일 젊어. 앞으로 어떻게 벼농사를 지을지 어떻게 땅을 지킬지, 네가 제일 열심히 생각해야 해.” (131쪽)
- “아버지, 타츠니시키에도 일부지만 농약이 뿌려졌어요. 이곳에선, 이 땅에선 벼도 땅도 사람도 더럽혀지는 게 당연한 일이 되고 있어요.” (182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3권을 읽습니다. 2권에 이어 3권 또한 ‘술 이야기’는 한 방울(?)조차 다루지 않습니다. 일본술 빚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이라면서, 2권과 3권은 온통 ‘흙을 일구는 사람들과 삶터와 사랑 이야기’만 보여줍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정작 흙을 만지는 일을 해 보지 않은 가냘픈 아가씨가 스물서넛 나이에 처음으로 흙을 만지고 처음으로 쟁기를 쥐며 처음으로 낫을 듭니다. 이동안 자전거를 타며 학교를 다녔다든지 들놀이를 다녔다든지 운동 삼아 탔다든지 했을 수 있지만, 이때에야 비로소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쟁기며 삽 같은 연장을 싣고 거름더미를 잔뜩 싣고는 시골길을 달려 논에 뿌립니다. 흙을 일구는 나날이니 땀이 비오듯 흐르고, 땀이 비오듯 흐르니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지 않습니다. 어느 따뜻한 바닷가로 찾아가서 헤엄옷 얄팍하게 입어 살결을 태우지 않아도, 수건으로 목을 두르고 챙 넓은 모자를 썼어도, 얼굴이며 몸은 새까맣게 탑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은 참말 ‘술 만화’일까요. 술 만화라 할 만한가요. 술 만화가 맞나요.


- ‘오빠, 이삭이에요. 타츠니시키 이삭이에요.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아요. 볍씨가 발아해 모가 되고, 모가 이윽고 벼로 자라 이삭을 맺고.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보고 또 봐도 신기해요.’ (207쪽)


 요즈음 한국땅에서 태어나는 술은 ‘술’이라기보다 ‘화학조합물’입니다. 소주는 술이 아니라 알콜덩어리입니다. 화학방정식에 맞추어 알코올을 ‘걸러낸 물(정제수)’에 섞은 다음 화학첨가물을 넣습니다. 맥주 또한 보리술이라기보다 농약 잔뜩 친 보리를 화학처리를 해서 알콜 도수를 맞출 뿐입니다. 한국땅 어디에서 보리를 거두어 한국 맥주가 태어나겠습니까.

 그러니까, 만화책 《나츠코의 술》은 흙을 일구는 가냘픈 아가씨 삶을 들려줄밖에 없습니다. 술이 술이 되자면, 술밑을 이루는 곡식부터 곡식다울 수 있어야 하거든요. 술쌀부터 쌀다울 때라야 술이 술답습니다. 쌀알 하나 쌀알다이 돌보며 거둘 수 있어야 술방울 하나 술방울다이 즐길 수 있어요.

 좋은 땀방울로 빚은 쌀로 좋은 술을 담급니다. 좋은 사랑으로 낳은 아이를 좋은 믿음으로 보살핍니다. 좋은 꿈으로 쓴 글을 좋은 책으로 엮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마을을 이룹니다. 좋은 이야기가 좋은 웃음을 피어나게 이끕니다. 좋은 밥을 나누면서 좋은 몸을 가꿉니다. 좋은 삶은 좋은 보금자리에서 살찌웁니다. (4344.11.17.나무.ㅎㄲㅅㄱ)


― 나츠코의 술 3 (오제 아키라 글·그림,박시우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8.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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