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마음

 


 시를 맨 처음 쓰던 때는 고등학교 1학년. 한창 입시지옥에 시달리던 나날이었기에 고달픈 몸을 쉬고 아픈 마음을 달랠 좋은 삶동무 시였다.

 

 다음으로 시를 쓰던 때는 신문배달로 먹고살던 스물, 스물하나, 스물넷, 스물다섯. 하루하루 끼니 잇기로도 벅차던 살림이었기에 배고픈 몸을 달래고 시린 마음을 적실 좋은 길동무 시였다.

 

 이러고 나서 오래도록 시를 잊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으로 종잡지 못하던 삶이었기에.

 

 아이를 하나 낳고, 아이를 둘 낳으며, 비로소 다시 시를 쓴다. 두 아이 뒤치닥거리일는지 두 아이와 살림하기일는지 두 아이 사랑하기일는지 잘 모른다. 두 아이랑 노닥거리기 때문에 시를 쓸 수 있는지 모른다. 두 아이 늘 바라보며 맑은 눈빛에 내가 폭 젖어드는 터라 시를 쓸 수 있는지 모른다.

 

 이제 시골마을 조그마한 보름자리에서 온통 홀가분한 꿈을 꾸며 흙을 밟고 나뭇줄기 쓰다듬으며 풀잎을 어루만질 수 있기에, 또다시 시를 쓴다. 꿈동무 시로구나 싶다. 어쩌면 사랑동무 시일 수 있겠지.

 

 하늘이 좋아 시를 쓴다. 도랑물 소리가 즐거워 시를 쓴다. 새봄 풀벌레 소리를 기다리며 시를 쓴다. 바람에 나부끼는 기저귀 퍼덕 소리와 후박나무 꽃잎 색색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를 쓴다. 아이들 사근사근 잠자는 숨소리를 느끼며 새벽녘 시를 쓴다. (4345.3.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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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3-03 19:43   좋아요 0 | URL
두 아이랑 노닥거리기를 사랑하실 줄 아시기 때문에 시를 쓰실 수 있는 거라고 생각되어요. ㅋ
새봄 풀벌레 소리를 사랑하실 줄 아시기 때문에 시를 쓰실 수 있는 거라고 생각되어요. ㅋ

파란놀 2012-03-04 04:0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 새벽까지 깨어 옆에서 떠들면...
참 고달프답니다... ㅠ.ㅜ
 

초승달

 


별빛까지 잠든
그믐밤
비로소
물러서며
초승달
예쁘게 뜬다.

 

첫째 아이
손톱 끝에도
초승달
둘 뜬다.
오늘도 미처
못 깎이고 재운다.

 


4345.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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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딸기 쥐기

 


 둘째 아이한테 딸기 한 알 쥐어 준다. 딸기를 으스러지도록 쥔다. 물이 뚝뚝 흐른다. 방바닥 깔개가 온통 빨갛게 물든다. 그래 그래 이 깔개를 아버지가 잘 빨아 줄게. 넌 네 딸기를 네 마음껏 신나게 갖고 놀렴. 네 옷도 다 빨고 네 몸도 얼굴도 다 씻길게. (4345.3.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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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3-03 19:45   좋아요 0 | URL
그런 아빠가 있어서 행복한 아이입니다. ^^

파란놀 2012-03-04 11:10   좋아요 0 | URL
잘 놀아 주기도 해야지요... 이궁...
 

 

 귤 물고 잠든 어린이

 


 신나게 놀던 아이가 드디어 바닥에 드러눕더니 귤을 입에 한 가득 물고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건드리든 볼을 콕콕 누르든 깨지 않는다. 귤을 뱉지도 않는다. 깊디깊이 잠들었다. 아침이 오도록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쪼록, 그동안 쌓인 고단한 잠을 말끔히 털어내 주렴. 낮잠도 자며 신나게 놀아 주렴. (4345.3.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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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으로 쓰는 글

 


 모든 글은 먼저 마음으로 씁니다. 내 마음속으로 가만히 온갖 이야기를 가다듬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을 때에는 아무런 글 한 줄 쓰지 못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저귀를 빨고 밥을 하며 아이들을 씻기고 함께 놀았다, 하는 늘 되풀이하는 모습조차 내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을 때에는 한 줄로도 적바림하지 못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날 때에 즐거이 밥을 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기에 기쁘게 빨래를 합니다. 마음에서 샘솟기 때문에 즐거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그림을 그립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얼싸안으며 함께 놉니다.

 

 마음이 없이 글을 쓸 수조차 없지만, 마음이 없이 하루하루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마음으로 사랑을 빛냅니다. 마음으로 이야기꽃 피웁니다. 마음으로 씨앗 한 알 심고, 마음으로 열매 한 알 거둡니다. 나는 언제나 내 마음부터 가장 착하고 더없이 참다우며 따사로이 아름다울 수 있는 보금자리를 누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글 한 줄 일구는 좋은 하루를 살아냅니다. (4345.3.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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