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나무를 베어 불을 때고
집을 짓고
연장을 만들고
그릇을 깎고
지게를 만들고
수저를 깎고
냇물 건널 다리를 놓는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빚고
문에 바르고
한 장 두 장 묶어
조그맣게 책을 엮는다.

 

나이테마다
숲이 살아온 빛살 깃들고
숲과 살아온 사람 손길
살며시 스민다.

 


4345.3.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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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창고 책읽기

 


  웬만해서는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왼쪽 첫째손가락이 쩍쩍 갈라져 빨래를 할 때마다 너무 따끔거리는데다가 다 마친 빨래를 죽죽 짤 때마다 몹시 쓰라리니 반창고를 붙인다. 아니, 빨래할 때에는 그럭저럭 견디는데, 둘째가 똥을 누었을 때에 기저귀를 갈며 밑을 씻기면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가야 하니, 이때에는 배기지 못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둘째 밑을 씻길 수 없는 노릇이다. 면에 나갈 일이 있으면 약국에 들러 반창고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면내 우체국에 몇 차례 드나들면서 약국 들르는 일은 깜빡깜빡 잊는다. 자전거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언가 잊은 듯한데 무얼 잊었지 하고 내내 생각하지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다가 집에서 둘째 기저귀를 갈며 밑을 씻기고 똥기저귀를 뜨신 물에 폭 담그며 똥기를 뺄 때마다, 그래 다음에 우체국에 갈 적에는 꼭 반창고를 장만하자고, 하고 다짐한다.


  잠자리에서 첫째손가락 쩍쩍 갈라진 마디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나야 오늘날 이렇게 면내 약국에 들러 반창고라도 사서 붙일 수 있다지만, 먼먼 옛날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는, 또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를 어머니는, 이렇게 죽죽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만날 어머니들은 춥고 시린 겨울날 아기들 똥기저귀를 어떻게 갈고 아기들 밑은 어떻게 씻겼을까. 한겨울에는 모두들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며 아이들을 돌보셨을까. 먼먼 옛날 집안 어르신이나 아버지 가운데 아기들 밑을 씻긴 분은 얼마나 있을까. (4345.3.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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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자루 콩콩 어린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 보겠다며 콩콩 뛰는 사름벼리. 아이야, 넌 빗자루 없이도 하늘을 날 수 있잖아. 굳이 빗자루에 기대지 않아도 돼. 마음을 활짝 열고 가슴을 따사로이 사랑으로 채우고 하늘을 올려다보렴. 그러면 이 드넓고 파란 시원한 하늘이 온통 네 품에 안기면서 네 몸은 가벼운 솜털구름이 되어 온누리를 해맑게 빛내는 꿈날개처럼 펄럭일 테니까. (4345.3.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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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후박나무 그늘 밑

 


 섬돌에 산들보라를 내려놓는다. 햇볕을 즐거이 쐬던 아이는 스스로 척척 발을 디디며 마당으로 내려선다. 여기까지는 잘 내려선다. 볼볼볼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니며 무언가 만지작거리다가는 입에 넣는다. 이러고서 어느새 후박나무 그늘 밑으로 간다. 후박나무 둥치를 툭툭 치다가는 풀섶으로 올라선다. 그래, 여기까지 잘 올라가는데, 왜 내려오지는 못하니. 풀섶 사이에 뾰족뾰족한 나뭇가지라도 있었니. 봄햇살에 빨래는 보송보송 마르고, 아이 또한 한창 햇살을 누리며 마음껏 기는 놀이를 즐긴다. (4345.3.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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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 강제 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
우토로를지키는모임 지음, 배지원 옮김, 권철 사진 / 민중의소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슬픈 넋을 사진으로 담을 때
 [찾아 읽는 사진책 85] 우토로를지키는모임·권철, 《우토로》(민중의소리,2005)


 

  《우토로, 강제 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민중의소리,2005)이라는 책 하나 2005년 여름에 조용히 태어나 조용히 알음알음으로 읽히다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우토로 마을 사람들은 요즈음 어떻게 살아갈까요. 예나 이제나 억지로 쫓겨나야 할 판일까요. 이제는 느긋하게 살림을 꾸리며 마을을 곱게 돌보는 나날을 누릴까요.


  우토로라 하는 마을이 어떤 곳인지 나는 잘 모릅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으니 방송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렀다 하더라도 본 적이 없고, 따로 인터넷으로 찾아서 살펴본 적도 없습니다. 오직 책 몇 가지로 우토로 마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나도 나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오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교토부 직원도 잽싸게 철수하고 우리들만 여기에 남겨졌습니다. 여기저기에 호박 심고, 감자 심고 그랬습니다(22쪽/김임생 할아버지 증언).” 하는 말마디를 찬찬히 곱씹습니다. 할아버지는 당신 지난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높임말을 씁니다. 그렇구나, 높임말을 쓰는구나.

 


  처음 우토로 마을이 뿌리를 내리던 무렵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여기저기에 호박이랑 감자를 심었으면, 이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한국땅에서 흙일꾼 아들로 태어났겠지요. 한국에서 억지스레 일본으로 끌려가 막일을 해야 하는 판인데에도 호박씨랑 씨감자를 건사할 만큼, 할아버지를 비롯해 이곳 사람들은 흙을 아끼고 삶을 사랑하며 하루하루 고마이 누릴 줄 알았겠지요.


  호박꽃이 피고 감자꽃이 피는 모습은 얼마나 예쁠까 헤아려 봅니다. 이 두 가지 푸성귀만 심었을 턱이 없을 테니, 온갖 푸성귀와 곡식이 골고루 알맞게 자랐겠지요. 따순 봄햇살과 함께 숱한 들꽃과 풀꽃이 어우러졌겠지요. 그닥 넓지 않은 땅뙈기라 하더라도 작은 손으로 작은 밭을 일구며 곱고 좋으며 착한 마을이 되도록 땀을 흘렸겠지요.


  “낮은 임금에 강인한 노동력을 가졌다고 평가된 조선인 노동자 1300여 명이 중노동을 위해 각지에서 모집되었습니다(44쪽).” 하는 말마디를 되뇝니다. ‘대한민국’ 이름에 앞서 ‘조선’이던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던 일본 제국주의는 여느 흙일꾼을 막일꾼으로 부려먹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앞서 ‘조선’이던 때에도 궁궐 권력자와 지역 권력자는 여느 흙일꾼을 이곳저곳에 울력을 시킨다며 부려먹었어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여느 흙일꾼을 비정규직으로 부려먹다못해, 나라밖 착한 사람들마저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데리고 와서 부려먹습니다. 낮은 일삯과 대접과 눈길을 받으며 모두들 시름시름 앓습니다.

 

 


  “우토로 문제의 역사적 원인을 만든 것은 일본 정부이자 닛산차체입니다. 이 주역들을 빼고 원고와 피고만의 소송에서 우토로 문제가 근본적으로 풀릴 리가 없습니다(83쪽).” 하는 말마디를 헤아립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아파 울먹여야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이 나라에도 저 나라에도 힘·돈·이름 있는 사람들은 힘·돈·이름 없는 사람하고 살가이 나누는 길을 좀처럼 안 걷습니다. 서로서로 오붓하게 지내면 좋을 텐데요. 서로서로 살림을 나누고 사랑을 주고받으면 기쁠 텐데요. 넓디넓은 땅뙈기를 홀로 차지해서 무슨 재미가 있나요. 어마어마한 돈더미를 홀로 끌어안고서 무슨 즐거움이 있나요. 무시무시한 힘을 휘두른대서 어떤 보람이 있나요.


  나라와 나라가 ‘자유무역’을 하자고 협정을 한다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무역협정이라 한다면 ‘자유’에 앞서 ‘평화’와 ‘평등’을 적바림해야 올바르리라 느껴요. 평화요 평등이며 통일을 아름다이 누리면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즐거운 삶이 아닌가 생각해요. 평화도 없고 평등도 아니요 통일도 없는데 자유만 내세운다 한다면, 이러한 자유는 얼마나 자유다운 일이 되나요. 자유라는 이름표만 붙일 뿐, 정작 힘센 이들이 힘여린 이를 내리누르는 돈벌이가 아니랴 싶어요.


  “왜 지금에 와서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까? 우토로에 일본사람이 반 정도만 살았었더라도 이런 짓은 못할 것입니다. 고국에서 쫓겨나와 걸레처럼 일을 시켜 왔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방치되어 왔는데, 이제는 지금 살고 있는 토지를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92쪽/문광자 할머니 증언).” 하는 말마디를 들으며 슬픈 마음을 누르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좋은 이웃으로 삼는다면, 걸레짝처럼 일을 시키며 부려먹다가 헌신짝처럼 내버리지 않습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이 일하다가는, 다 함께 웃고 떠들며 잔치를 벌이거나 쉬겠지요.


  참말, 《우토로》라 하는 자그마한 책에는 슬픈 이야기와 아픈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건설공사 관계로 알게 된 일본인도 어떻게 토지를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걱정을 해 줍니다. 마음은 대단히 고맙지만, 우토로 운동은 토지를 싸게 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103쪽).” 하는 말처럼, 우토로 이야기를 엉뚱하게 받아들이거나 잘못 살피는 눈길마저 있습니다. 땅을 싸게 사겠다는 우토로 마을 사람들이 아니지요. 고향나라를 빼앗긴 채 버려져야 했던 숱하고 기나긴 나날이 있고, 작고 여린 이웃들이 서로 어깨동무하며 살아온 작은 땅뙈기가 있으며, 버려진 땅뙈기에서 힘겨이 애쓰며 일군 고운 꽃누리를 함부로 쇠삽날로 깎거나 찍으려 하니까 온몸으로 외치는 목소리가 있어요.

 

 


  《우토로》에 실린 사진들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아프고 힘들며 외로운 사람들 얼굴과 몸뚱이가 찬찬히 드러납니다. 까망하양 빛깔로 담은 사진이 슬프며 힘겹고 서러운 이야기를 북돋웁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우토로 마을 사람들 이야기라 한다면, 아픈 이야기요 힘든 이야기에다가 외로운 이야기일 테니까, 까망하양 빛깔이 걸맞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호박씨랑 씨감자를 건사하며 심어 기르던 이야기가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호박꽃이랑 감자꽃이 흐드러질 봄날 어여쁜 꽃누리 마을, 우토로 마을, 새봄 예쁜 골목마을 모습이 눈앞에 어른어른합니다.


  작은 땅뙈기 작은 집들 작은 사람 모습은 참으로 작을 테지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안 아픈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나긴 나날을 울기만 하면서 살지는 않았으리라 느껴요. 눈물과 함께 웃음이 있고, 서러움과 함께 두레랑 품앗이가 있었으리라 느껴요. 눈물만 있었다면, 서러움만 가득했다면, 아픔과 생채기만 울부짖었다면, 우투로 마을 목소리가 곳곳에 울려퍼질 일은 없었으리라 느껴요.

 


  《우토로》 겉에는 꽃송이 하나 핀 모습이 담깁니다. 참 좋구나 하고 생각하며 사진을 읽는데, 꽃송이 하나 핀 모습은 겉그림 사진으로 그칩니다. 틀림없이 할머니 주름살과 할아버지 꾸덕살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하는데, 그렇더라도 작은 마을 작은 텃밭 한 평을, 작은 마을 작은 집 작은 빨래 한 장을, 작은 마을 작은 아이들 작은 놀이 한 가락을, 살포시 담아서 가만히 선보일 수 없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가난한 어버이’나 ‘가멸찬 어버이’를 만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사랑스러운 어버이’를 만납니다. 아이들은 ‘가난한 동무’나 ‘가멸찬 동무’를 사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동무’를 사귀어 ‘사랑스러운 놀이’를 즐겨요. 우토로 이야기에서 이와 같이 사랑스러운 사람들 사랑스러운 이야기 사랑스러운 사진을 마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어여쁘며 좋았을까 하고 꿈꿉니다. 왜냐하면, 우토로 마을 사람들은 꽃송이처럼 보드라우며 예쁜 넋이요 삶이며 사랑일 테니까요. (4345.3.17.흙.ㅎㄲㅅㄱ)


― 우토로, 강제 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 (우토로를지키는모임 엮음,권철 사진,민중의소리 펴냄,2005.7.23./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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