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케익 책읽기

 


  빵집이라는 곳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다. 빨래집이 생긴 지도, 찻집이 생긴 지도, 술집이나 밥집이 생긴 지도, 옷집이나 기름집이 생긴 지도 얼마 안 되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이들 가게집이 언제 처음 생겼는가를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다. 고작 백 해조차 안 된 가게집인데 너무 마땅한듯 여기고,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만다.


  나는 아주 어린 나날부터 가게집 물건을 알쏭달쏭하게 여겼다. 왜 가게에서 이런 물건을 팔아야 할까 궁금했다. 왜 집에서 이런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쓰지 못하는가 궁금했다. 나도 모르는 내 어떤 ‘하늘부터 타고난 유전자’에 이런 모습을 생각하도록 하는 넋이 있었다 할 수 있고, 내 어머니가 언제나 거의 모두 집에서 스스로 만들어 써 버릇하셨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이처럼 생각하도록 내 넋을 북돋았다 할 만하다.


  고등학생 때를 되새긴다. 그무렵은 국어사전을 날마다 끼고 한국말을 새삼스레 스스로 제대로 익힐 때인데, ‘가게’라는 낱말이 토박이말이 아닌 줄 깨닫고는 매우 놀랐다. 말밑으로 보면 ‘가게’는 토박이말이 아니다. 다만, 오래도록 널리 썼으니 살그마니 녹아든 한국말이요, 그냥 토박이말로 삼아도 된다. 이를테면 ‘고구마’랑 ‘김치’하고 똑같은 셈이다. ‘고구마’는 일본말이고, ‘김치’는 한자말이다. 그러나, ‘고구마’를 일컫던 일본말 꼴은 모두 사라졌고, ‘김치’ 또한 한자말 꼴이 모조리 사라졌다. 오랜 나날을 거치며 햇볕에 삭아 바스라져 모래가 되듯, 똥오줌이 찬찬히 삭아 거름이 되듯, 주검이 흙 속에서 삭아 또다른 흙으로 녹아들듯, 가게도 고구마도 김치도 그저 그런 토박이말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말을 곰곰이 새기면서 옳게 익히려 한다면 ‘가게’라는 낱말이 왜 토박이말이 아닌가를 짚을 수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한겨레가 먼 옛날부터 살아오던 이 땅에는 ‘가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고구마를 먹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뿐 아니라, 먼먼 한겨레는 김치를 안 먹었다. 고구려나 백제나 신라 적 사람들은 김치를 안 먹었다 할 만하다. 또는 옛조선 무렵 한겨레는 김치를 안 먹었다 할 테지.


  역사연속극이나 역사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흔히 ‘주막’이라 해서 술집이자 잠집을 그리곤 하지만, 우리 옛사람 살림마을에 ‘술집이나 잠집’ 구실을 하는 집이란 없었다. 이런 문명은 개화기라 일컫는 일제강점기에 비로소 생겼다. ‘주막’은 한국말 아닌 중국말이다. 게다가 ‘술집’이나 ‘잠집’ 같은 낱말이 쓰인 햇수는 아주 짧다.


  나그네가 밥 한 그릇이나 국수 한 사발이나 막걸리 한 동이 얻어 마신다 하는 집이 아예 없을 턱은 없다. 다만, 나그네가 먼길을 가다가 길모퉁이 어디 살림집에 들어 말씀을 여쭈며 얻어서 먹거나 마실 뿐, 따로 ‘가게’라는 데에서 돈을 치러 사서 먹거나 마시지 못한다.


  곧, 먼 옛날부터 이 나라 이 겨레는 ‘가게’ 문화란 없다. 모든 밥·옷·집을 스스로 마련하고 스스로 지으며 스스로 살림했다. 먼길을 떠나야 하는 일도 없을 뿐더러, 먼길을 떠나야 한다면, 스스로 신·옷·밥을 몽땅 챙겨 봇짐을 꾸려야 하고, 나귀나 노새나 머슴 등에 봇짐을 실어야 한다.

 

 ......

 

  집에서 아이 어머니가 케익이나 빵을 굽는다. 가루 무게를 달아 맞추고, 물을 알맞게 넣어 반죽을 하며,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 부풀린다. 스텐불판을 미리 달구고는, 가장 여린 불로 맞추어 반죽을 담는다. 이렇게 한참 두고 나면 슬슬 익는 냄새가 나고, 다 익었다 하는 냄새가 날 때에 불을 끄고 뒤집개로 바닥을 슥슥 긁어 척 하고 꺼내면 동그랗게 예쁘장한 케익이나 빵이 태어난다.


  집에서 구운 케익이나 빵을 먹던 아이 어머니가 문득 말한다. 밖에서 케익이나 빵을 사서 먹으면 꼭 배앓이를 하는데, 집에서 구워서 먹으면 배앓이를 하지 않는다고. 오래도록 이 말을 곰곰이 되씹는다. 이달에 한 번 바깥에서 케익을 사다 먹어 보았는데, 참말 이날 저녁부터 이듬날 한낮까지 배가 참 힘들었다. 빵집 케익은 너무 달고 너무 혀가 아프며 너무 느글거린다. 빵집 케익은 온통 설탕덩어리에 기름덩이리라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제서야 깨닫는다. 내가 왜 어릴 적부터 빵집 케익을 싫어했는가를 알아차린다. 나는 어린 나날 빵집 케익을 먹으면 언제나 배앓이를 하면서 몽땅 게웠다. 내 생일에, 그러니까 1980년대 어린이였던 내 생일에, 아버지가 모처럼 ‘비싼’ 케익을 사다 주는데, 어릴 적 나는 이 ‘비싼’ 케익을 한두 조각 먹다가 그만 속이 울컥 하면서 게웠다. 생크림도 생크림이지만, 빵집 케익은 내 몸에 아주 안 맞았다.


  나중에 찬찬히 알지만,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할 때에 값싼 ‘화학조합 설탕’이나 ‘화학조합 소금’이나 ‘화학조합 기름’을 안 쓰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사람이 흙에 풀씨를 심어 거둔 푸성귀로 얻는 설탕이라든지, 바닷물에서 얻은 소금이라든지, 옥수수이든 포도씨이든 깨이든 풀붙이를 짜서 얻는 기름으로 옳게 빚거나 굽는 케익이나 빵은 얼마나 될까. 제대로 흙을 일구고, 제대로 먹을거리를 다루어, 제대로 가게를 꾸리면서, 제대로 값을 받는다면 서로서로 좋을 텐데, 오늘날 도시문명은 온통 더 값싸게 더 많이 사고팔도록 내몰기만 한다. 사람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을 열지 않을 뿐 아니라,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즐겁다.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슬프다. 혼자서 몽땅 해내야 할 까닭이 없다. 스스로 할 수 있으면 된다. 혼자서 이것저것 다 치러야 하지 않는다. 스스로 맞추고, 스스로 생각하며,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에 아름답다.


  스스로 글을 쓰고, 스스로 책을 빚는다. 스스로 글을 읽고, 스스로 책을 삶으로 녹인다. (4345.4.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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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4-19 07:12   좋아요 0 | URL
빵집에서 빵이나 케잌을 사는 데는 돈만 주면 바로 내 손에 들어오지만 집에서 저렇게 빵을 한번 만들려면 발효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꽤 시간이 걸리고, 수고를 해야하지요. 음식의 성분도 성분이지만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수고와 시간이 들어가있으니 먹는 사람 몸에 해를 입힐 리가 없을거예요.

파란놀 2012-04-19 07:31   좋아요 0 | URL
빵집 일꾼도 무척 애쓰고 힘쓰실 텐데, 또 빵집 아이들이 빵집 어버이가 마련해 주는 빵을 먹기도 할 텐데, 모두들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하는 탓이라고 느껴요.

삶이 다 같은걸요...
모든 대목에서,
모든 일이..
 


 스스로 손발 씻는 어린이

 


  첫째 아이가 스스로 물꼭지를 돌려 손발을 씻을 수 있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스스로 냇물을 찾아 스스로 손발을 씻을 수 있으면 더 좋다. 우리 보금자리에 마당이 있고, 마당 한켠에 바깥물꼭지 있으니, 네 마음대로 실컷 뛰놀다가 바깥에서 손발을 즐겁게 씻으며 놀아 보렴. (4345.4.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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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보라 풀밭 좋니

 


  마당 쑥풀이 제법 키 높이 자란다. 둘째 아이 엎드린 높이와 비슷하다. 아이 키높이에 풀섶이 지니 좋다. 비록 시멘트 바닥을 기더라도 아이가 맡는 숨은 쑥풀이며 온갖 봄풀이 내뿜는 푸른 결이 될 테지. (4345.4.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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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을 읽는 책

 


  나는 어릴 적에 봄꽃이라 하면 ‘개나리’와 ‘진달래’라고 배웠습니다. 아니, 내 어릴 적 인천에서 봄에 보는 꽃은 으레 개나리와 진달래로 여겼습니다. 이야기책에서는 봄을 맞이해 ‘할미꽃’이 핀다고 말했습니다. 정작 봄에 할미꽃을 본 해는 서른여덟 해를 살며 몇 차례 되지 않으나, 스무 줄 끄트머리와 서른 줄 첫머리에 할미꽃 봄을 맞이한 적 있습니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제금난 이듬해부터는 서울사람들이 말하는 봄꽃을 느끼는데, 서울사람은 으레 ‘벚꽃’으로 봄을 헤아립니다. 그렇지만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에서 벚나무를 도시 한복판에 심어 봄꽃놀이 즐기던 햇수가 얼마나 되는가요. 참말 이 나라에서 벚꽃을 구경하고 벚꽃잎 흩날리는 밑에서 사진을 찍어야 기쁜 봄맞이라 할 만할까요.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자란 벚나무도 제법 우람합니다. 섬진강 둘레에서 벚꽃잔치를 열기도 하고, 나라 곳곳에서 벚꽃이 예쁜 데가 어디라는 둥 말이 많은데, 봄꽃잔치를 굳이 억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왜냐하면, 봄꽃은 한 가지 꽃나무를 길가에 잔뜩 심어서 즐기는 봉우리가 아니니까요.


  봄꽃은 온 목숨이 고운 햇살을 받아 사랑스럽게 피우는 봉우리입니다. 갖은 꽃이 차례차례 피어나며 갖은 빛깔을 뽐냅니다. 더 짙거나 더 돋보이는 봄꽃은 없습니다. 저마다 아리땁게 입은 꽃잎으로 저마다 향긋한 내음을 베풉니다. 자그마한 들꽃들이 먼저 고개를 내밉니다. 이윽고 산수유와 매화가 봉우리를 터뜨리고, 잇달아 복숭아와 살구와 능금이 봉우리를 터뜨리며, 조팝나무랑 모과나무가 봉우리를 터뜨려요.


  높고 낮은 멧등성이 숲속에 멧벚나무 드문드문 어여쁩니다. 곁에서 아까시나무도 어여쁜 빛을 드러냅니다. 멧벚이나 아까시처럼 하얗거나 발그레한 빛깔은 아니지만, ‘푸른 꽃’을 피우는 나무들 새잎 또한 어여쁩니다. 느티나무 푸른 꽃이 어여쁩니다. 단풍나무 새 잎으로 푸른 물결이 어여쁩니다. 다 다른 나무들 다 다른 잎사귀와 봉우리가 온 들판과 멧자락을 울긋불긋 알록달록 무늬짓습니다.


  날마다 천천히 새 봉우리를 터뜨리는 우리 집 뒤꼍 모과나무를 바라봅니다. 아이들을 안고 꽃 앞에 코를 대어 냄새를 맡도록 합니다. 손가락으로 꽃잎을 한 장씩 쓰다듬으며, 아이 예쁘구나, 하고 소리내어 이야기합니다. 모과꽃에 뒤이어 감꽃이 찾아올 테지요. 이제 막 돋는 새 감잎을 하나씩 따서 옆지기와 아이하고 잘근잘근 씹어서 먹습니다. 감꽃이 피면 감꽃도 몇 송이 따서 먹을 생각입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어여쁜 풀꽃과 나무꽃처럼, 아이들은 언제나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어여쁜 목숨이라고 느낍니다. 한참 바라보다가는 잎사귀를 뜯고, 나무 둘레 풀을 뜯습니다. 아이들을 한참 바라보다가는 내 어린 날 내가 했던 놀이를 하나하나 떠올려 우리 아이들하고 놀자고 생각합니다.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 《초원의 집》을 읽다가 살며시 덮습니다. 드넓은 들판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담아 멋스러운데, 막상 봄꽃 흐드러지는 이야기라든지, 봄풀 짙푸르다는 이야기는 얼마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은 바람소리를 이녁 글에 담아요. 햇살 소리와 냇물 소리를, 봄흙 소리를, 들짐승 소리를, 들새 소리를, 이녁 어머님과 아버님이 땀흘려 살림을 일구고 집을 지으며 밭을 돌보는 소리를 찬찬히 글로 빚어요. (4345.4.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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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데즈카 오사무 님 작품이 얼마나 번역될 수 있을까. <불새> 17권을 모두 이야기하고 나서 다른 작품을 이야기하려 생각했는데, 자칫 <칠색 잉꼬> 장만하기를 잊을 뻔했다. 다섯째 권이 나온 소식을 듣고는 첫째 권부터 차근차근 사서 책꽂이에 두어야겠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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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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