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보라 예쁘게 앉아

 


  산들보라가 몸을 살짝 옆으로 틀어 앉곤 한다. 이렇게 앉아서 바라볼 때에 좋은가 보다. 어린 녀석 앉음새가 참 재미나다. 등허리 꼿꼿이 세울 만큼 힘이 붙으면 앉음새가 또 달라지겠지. 날마다 새삼스럽게 크는 모습을 바라본다. 첫째 아이도, 옆지기도, 나도, 내 어버이도, 모두 이렇게 천천히 새삼스러이 크면서 이 땅에서 좋은 숨을 이어간다. (4345.4.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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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2-04-29 11:24   좋아요 0 | URL
뒤태가 섹시한걸요 ㅎ

파란놀 2012-04-30 02:29   좋아요 0 | URL
네... 저런 모습을 집에서 아무도 안 보여주는데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눕듯 앉는지 참... @.@
 


 지도 책읽기

 


  길을 그린 길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길을 둘러싼 마을과 숲과 들과 내를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길그림을 들여다본대서 길을 둘러싼 마을과 숲과 들과 내가 얼마나 푸르거나 빛나거나 아름다운가까지 환하게 깨우치지는 못합니다. 몸으로 느낄 때하고 마음으로 느낄 때는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면, 몸으로 느끼기 앞서 얼마나 아름답거나 좋거나 즐거운가를 한껏 받아들입니다.


  길을 그린 길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흐뭇하지 못하다면, 막상 내 몸으로 부대끼며 바라보더라도 그닥 흐뭇하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낍니다. 먼저 마음으로 즐겁게 사귀거나 만나지 못했기에, 몸으로 부대낄 때에도 썩 내키지 않거나 그리 반갑지 못해요.


  왜 그러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아하, 나는 길그림으로 척 볼 때에 몹시 서늘하거나 메마르거나 차갑다 싶은 도시라 할 때에는, 마음부터 내키지 않아요. 온통 딱딱하게 수평 수직으로 금을 긋거나 갈라 아파트를 세운 동네 길그림을 보면 무시무시하거나 무섭기까지 해요. 구불구불 온갖 골목집 흐드러진 동네 길그림을 보면 아기자기 앙증맞으며 재미나요. 한들산들 여러 시골집 하나둘 깃든 마을 길그림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며 꼭 찾아가서 한갓지게 지내며 천천히 들길이나 고샅을 거닐고 싶어요.


  몸으로 찾아가기 앞서 마음으로 찾아갑니다.


  아, 불현듯 한 가지 옛일 떠오릅니다. 당신 아이들한테 따숩게 말 걸기를 거의 못하던 내 아버지가 들려준 말이었는지, 아니면 가난한 학교 가난한 아이들한테 꿈만큼은 크게 부풀려 꾸라고 하던 가난한 교사가 들려준 말이었는지, 내 열 살 안팎이던 어린 날, 누군가 ‘지도 여행’을 들려주었습니다.  지도를 펼치고는 마음속으로 이 나라 이 마을에 내가 있다고 그리면서 내가 이 나라 이 마을을 걷는다고 꿈을 꾸라 했어요.


  나는 우리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걸어다녔습니다. 다만, 마음속으로. 나는 지구별 숱한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돌아다녔습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나는 우리 네 식구 보금자리를 찾을 때에도 길그림을 쫙 펼치고는 이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걸어다니고,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숲을 생각하고, 마을을 이루는 시골집을 헤아리며, 마을과 하나되는 들판과 멧자락을 그렸습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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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라기 신 앞에서 노는 어린이

 


  아이들 신을 빨래한다. 햇살 좋은 날 고무통에 모두 담갔다가 비누를 바르고 복복 비빈 다음 헹군다. 햇살 드는 자리에 가지런히 놓는다. 아이는 신을 바라보고 앉아 조잘조잘 노래하면서 논다. 모처럼 모든 신을 깨끗하게 빨았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보송보송 다 마른 이듬날부터 아이는 이 신 저 신 또 갈아신고 흙밭이며 모래밭이며 개구지게 뛰논다. 하루만에 모든 신이 다시 지저분해진다. 좀 한 가지만 꿰고 놀면 안 되겠니? 하루에 한 켤레만 신으면 안 되겠니? (4345.4.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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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기계 한 달

 


  빨래기계를 쓴 지 한 달이 지난다. 빨래기계 안 쓰던 때에는 하루에 세 차례씩 빨래를 했지만, 이제 하루에 한 차례만 한다. 빨래기계로 하루에 세 차례 하자니 물이랑 전기가 아깝기도 하지만, 한꺼번에 몰아서 하기로 한다. 한꺼번에 몰아서 빨래를 하자면, 비오는 날에는 꽤 애먹는다. 그러나 이제 둘째가 제법 자랐으니 기저귀 빨래가 몇 장 줄어 이럭저럭 비오는 하루를 보낼 수 있기도 하다.


  기계를 빌지만 빨래는 언제나 내 몫이다. 기계를 쓰면 일손을 덜어 다른 데에 더 마음을 기울일 만하지 않겠느냐고 흔히들 말한다. 참말 이와 같은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기계를 쓰기에 내 일손이 더 줄어드는지 안 줄어드는지 외려 느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다만, 기계를 빌어 빨래를 하니, 내 손발가락 트는 일이 많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집일을 하며 물을 적게 만지지 않는다. 힘들거나 고되거나 졸립거나 벅찬 날에는 몇 시간 내리 물을 만지며 집일을 하자니 손끝부터 발끝까지 지릿지릿 저린다. 손가락에 물이 마를 새 없으니, 젖은 손으로 책을 쥘 수도 없다.


  그러면 내 손은 왜 물이 마를 새 없을까. 참 마땅하지만, 사람이 빨래만 하며 살겠는가.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한다. 한 아이는 똥을 누고 한 아이는 무어가 엎지른다. 한 아이를 밥먹이고 한 아이하고 논다. 둘째가 기저귀에 똥을 누든 첫째가 오줌그릇에 똥을 누든 물을 만진다. 개구지게 먹어 옷이며 입이 지저분해진 아이들 입을 씻긴다. 설거지를 한다. 죽을 끓인다. 죽 그릇을 설거지한다. 개수대와 밥상을 닦는다. 밭일을 마치고 손을 씻는다. 이래저래 물을 만진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땀을 훔치려 낯을 씻는다.


  빨래기계 한 달을 지내며 생각한다. 기계가 있대서 더 느긋하거나 홀가분하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은 좀 가볍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온갖 일거리로 짓누를 때에는 내가 아무리 빨래를 좋아하거나 즐긴다 하더라도 고단한 굴레가 될밖에 없다고 느낀다. 아이 죽 먹이기도 즐기고,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기도 즐기며, 아이하고 노래부르거나 그림그리는 나날을 즐겨야지. 아이하고 걷는 들길을 즐기고, 옆지기가 나무라는 말을 즐기며, 뻑적지근한 등허리와 팔다리를 즐겨야지. (4345.4.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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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4-29 07:32   좋아요 0 | URL
기계 결국 들이셨군요.^^
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기계 들인다고 결코 일감이 수월해진 것은 아닌게 맞습니다.
전기세 아끼느라 몰아서 빨래를 돌리다보면 빨랫줄에 빨래 너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개키는 시간도 길어지고,입어야 할 옷들의 가지수가 옷장에 확 늘어나 입을땐 좋은데,차츰 빨랫통에 빨랫감이 차오름과 동시에 옷장속에 입어야할 옷감들이 줄어들어 급할땐 정말 낭패되기 일쑤이지요.ㅋㅋ
전 속옷이랑 수건은 꼭 삶아서 널거든요.그래서 샤워 많은 계절엔 혼자서 수건이 매번 모자라 허둥지둥거려요.때론 심적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기계 종료되어야 빨래를 널 수 있기때문에 기다리는 시간도 꽤나 애매하여 외출할일이 있을땐 은근 신경을 써야하구요.ㅠ
또한 기계를 돌려도 며칠에 한 번씩은 손빨래를 해야 할 빨랫감도 분명 있어요.그래서 주부들은 손에 물이 마를날이 없는 것같아요.아~ 대한민국 남자들이 된장님같은 마음 같았으면 주부들의 손은 좀 덜 거칠어질 수 있을 것같은데 말입니다.^^
전 손이 선천적으로 예쁜손이 아니거든요.헌데 결혼 12년차가 되니 못난 손에다 거칠기까지 하여 참~ 남들앞에 내놓기가 좀 민망합니다.

암튼,기계를 써도 불편한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래도 기계를 환영하는 것은 기계돌아가는 그시간에 조금이라도 몸이 편하다는 것! 몸이 편하니 그시간에 더 생산적인일(?)을 할 수 있다는 것!...그맛 아니겠습니까!ㅎㅎ
널려 있는 빨래를 보니 좀 여유있어 보여 좋으네요.^^
저 많은 빨래를 손으로 다 하셨다면 어쩔뻔 했어요?
요즘엔 햇볕이 좋아 빨래가 금방 말라서 정말 행복하시겠어요?ㅋㅋ
게으른 저도 빨래가 잘 말라 행복하답니다.^^

파란놀 2012-04-29 09:25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제껏 겨울이고 장마철이고 저 빨래들을 늘 손으로 했는걸요~

그나저나 오늘 비가 올까 말까 꾸물거리네요.
얼른 뒷밭 골라 감자를 심어야 하는디... 이궁~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295) -중中 36 : 부재중 2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고정희-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1987) 116쪽

 

  국어사전을 살피면 ‘부재중(不在中)’이 한 낱말로 실립니다. “자기 집이나 직장 따위에 있지 아니한 동안”을 뜻한다 합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부재중’을 하나씩 뜯어서 적은 풀이말입니다. “있지 아니한 동안”이란 ‘不(아니한) 在(있지) 中(동안)’이에요

.
  한국말은 “있지 + 아니한 + 동안”처럼 적습니다. 중국말은 “아니한(不) + 있지(在) + 동안(中)”처럼 적습니다. 그러니까, ‘부재중’이라는 낱말은 한국사람이 한국 삶터에 걸맞게 적바림하며 쓰는 낱말 아닌, 중국사람이 중국 삶터에 걸맞게 적바림하며 쓰는 낱말이에요. 이 중국말을 한국사람이 받아들여 깊이 헤아리지 않으며 쓰는 셈이에요.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자말 ‘부재중’ 뜻풀이에 ‘동안’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으레 ‘가운데 중’으로 새기는 한자 ‘中’인데, ‘동안’으로 풀이합니다.

 

 그러는 中에 / 가는 中에 (x)
 그러는 동안에 / 가는 동안에 (o)

 

  “그러는 중에”라든지 “일하는 중에”라든지 “먹는 중에”처럼 말하는 분이 퍽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마디는 한국 말투가 아니에요. 중국 말투입니다. 한국 말투대로 적자면 “그러는 동안에”와 “일하는 동안에”와 “먹는 동안에”예요. 또는 “그러는 때에”나 “일하는 때에”나 “먹는 때에”입니다.


  누구라도 생각을 살며시 기울이면 알 만하리라 싶지만, 누구라도 생각을 살며시 기울이지 않으면 알 만할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곧, 오늘날 사람들은 늘 쓰는 말을 찬찬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말마디가 어떠한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내 동무와 이웃 말마디가 어떠한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내 말마디를 돌아보지 않기에, 내 말마디를 한결 아름다이 북돋우거나 가꾸지 못합니다. 내 동무와 이웃 말마디를 살피지 않는 터라, 내 동무와 이웃이 한껏 어여삐 살찌우거나 보듬도록 돕거나 이끌지 못합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 그 어느 곳에서도 없었다
→ 그 어느 곳에서도 있지 않았다
→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 그 어느 곳에서도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 그 어느 곳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다
→ 그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

 

  서로 어여삐 잘 쓰는 말은 기쁘게 어깨동무하면 됩니다. 서로 얄궂게 잘못 쓰던 말은 즐거이 갈고닦으면 됩니다. 하나씩 다스립니다. 하나하나 바로잡습니다. 한 마디이든 두 마디이든 슬기롭게 빚습니다. 한 마디부터 천천히 알뜰살뜰 꾸립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써 보기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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