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씻고 노는 아이들

 


  돌을 앞둔 둘째를 먼저 씻기고 나서 첫째 아이를 씻기곤 했는데, 둘째를 씻길 무렵 첫째 아이가 자꾸 저도 씻겠다 하기에 동생하고 얌전히 놀라며 둘을 씻는 통에 들어가도록 한다. 둘째가 설락 말락 하는 즈음이라 제법 허리 곧게 펴고 앉기에, 둘이 나란히 앉아 물을 철푸덕거려도 넘어지지 않는다. 둘째가 스스로 서서 걸을 무렵이라면 바로 옆 더 깊고 큰 통으로 옮겨 둘이 함께 물놀이 즐기면서 씻으라 할 수 있겠다고 느낀다. 둘이 물놀이를 하면서 어영부영 씻으니 내 손이 갈 일이 크게 줄어든다. 다만, 이제 둘째는 물놀이를 하며 안 나오려 하고, 첫째는 둘째를 데리고 나오면 저도 그만 씻겠다며 스스로 나오겠다 말한다. 웬일이람, 하고 생각하다가 두 아이가 저마다 다르게 스스로 잘 자라는구나 하고 느낀다. (4345.5.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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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2-05-23 13:1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세탁기...

파란놀 2012-05-24 08:02   좋아요 0 | URL
아, 이제 잘 쓴답니다.
그래도 손빨래는 예전처럼
늘 하지요~ ^^
 
숲 속 세탁소
모이치 구미코 지음, 나카무라 에쓰코 그림, 육은숙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맑은 숲을 마주하셔요
 [어린이책 읽는 삶 20] 모이치 구미코, 《숲 속 세탁소》(크레용하우스,2005)

 


- 책이름 : 숲 속 세탁소
- 글 : 모이치 구미코
- 그림 : 나카무라 에쓰코
- 옮긴이 : 육은숙
- 펴낸곳 : 크레용하우스 (2005.7.20.)
- 책값 : 7500원

 


  감나무마다 새잎이 푸르게 돋습니다. 감나무에 새잎이 처음 돋았을 때에는 몇 닢 살며시 톡 따서 입에 넣고 냠냠 씹었습니다. 감나무마다 새로 맞이한 봄에 즐겁고 씩씩하게 틔운 잎사귀마다 서린 향긋한 기운을 보들보들한 감잎으로 느꼈습니다. 이제 감나무 새잎은 꼴을 제대로 갖추며 차츰 커집니다. 머잖아 조그마한 별처럼 감꽃을 피울 테고, 감꽃이 바람 따라 하나둘 질 무렵 조그마한 감알이 푸른 빛깔로 맺히겠지요. 푸른 빛깔로 맺히는 조그마한 감알은 차츰 굵어지고, 차츰 굵어지다가 또 바람에 하나둘 떨어지다가는 알맞다 싶은 숫자를 남기고 찬찬히 발갛게 익겠지요.


  모든 몽우리가 꽃으로 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꽃이 열매로 맺히지 않습니다. 어느 몽우리는 바람에 그만 떨어집니다. 어느 몽우리는 사람이나 멧새 손길을 타며 그만 떨어집니다. 어느 몽우리는 짓궂은 사람이 가지를 꺾는다든지, 또는 땔감 찾는 사람이 가지를 자르며 그만 몽우리로 끝나기도 해요.


  마루에 앉아 바깥을 바라봅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들길을 거닐며 두리번두리번 살펴봅니다. 들새이든 멧새이든 아주 가볍에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몸집 커다란 해오라기나 왜가리도 아주 가벼이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참 가느다랗다 싶은 나뭇가지이건만, 새들은 나뭇가지에 사뿐히 앉습니다. 새들이 앉을라치면 나뭇가지는 살짝 흔들리다가 이내 흔들림이 멎습니다. 여러 마리가 나란히 앉아도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일을 볼 수 없습니다.

 


.. 시커먼 먹구름이 사라지고, 하얀 양떼구름이 하늘 높이 피어 올랐어요. 오소리 아저씨는 오랜만에 세탁소 문을 닫고, 단풍딸기를 따러 가기로 했어요 ..  (6쪽)


  오늘날 여느 사람들이 들새나 멧새가 퍼덕퍼덕 살아서 날갯짓할 때에 손에 살그마니 쥘 일은 드물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여느 도시에서는 들새나 멧새를 마주하기 힘드니까요. 내가 마음을 열고 두 팔을 활짝 하늘로 뻗치며 가만히 선다면, 새들 몇 마리가 내 손이나 어깨나 머리에 살짝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오르리라 느끼는데, 누구라도 새를 손바닥에 앉히고 보면, 새 한 마리 무게가 아주 가벼운 줄 깨달으리라 봅니다. 제법 큰 새라 할 만하다 싶은 직박구리라든지 까치라든지 까마귀라든지 무게가 많이 나가리라 여길는지 모르나, 막상 이 새들을 안아 보셔요. 하나도 무겁지 않습니다. 얼마나 작고 얼마나 가벼우며 얼마나 보드라운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나뭇가지 하나도 참으로 작고 참으로 가벼우며 참으로 보드랍습니다. 작은 나뭇가지가 모여 조금 굵직한 나뭇가지가 되고, 조금 굵직한 나뭇가지가 모여 제법 굵은 나뭇가지가 되며, 제법 굵은 나뭇가지가 모여 우람한 줄기가 됩니다. 우람한 줄기가 튼튼히 뿌리내려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로 섭니다.


  이 지구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사람들도 더없이 작은 사람이요, 더없이 작은 사람이 깃든 지구별 또한 더없이 작은 별 하나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정말 고맙다. 하지만 우리 세탁소 빨래가 아니구나.” 오소리 아저씨는 하얀 것 가까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어요. “정말 우리 세탁소에서 쓰는 쥐엄나무 열매를 우린 물처럼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구나. 그런데 이거 아주 좋은 털실로 만들었는데.” 그것은 오소리 아저씨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하얀 털실로 만든 것이었어요.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며 보들보들하고 가벼웠지요 ..  (9쪽)


  숲을 마주합니다. 풀로 이룬 풀숲을 마주합니다. 풀숲에는 사람보다 조그마한 목숨이 수없이 얼크러집니다. 사람들이 풀숲에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디디면, 아주 조그마한 목숨은 그예 밟혀 죽고 깔려 죽습니다. 사람들이 풀숲을 따사로이 보듬거나 건사하면, 아주 조그마한 풀숲은 곱게 살아숨쉬다가는 고운 노래소리 들려줍니다. 바람에 일렁이는 풀잎이 서걱거리는 노래소리, 풀숲에 보금자리 마련한 벌레들 노래소리, 꽃잎이 피고 지며 내는 잔잔한 노래소리 들이 골고루 얼크러집니다.


  숲을 바라봅니다. 나무로 이룬 나무숲을 바라봅니다. 나무숲에는 사람보다 커다란 목숨이 수없이 어우러집니다. 사람들이 나무숲에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디디면, 나무마다 애써 떨군 작은 씨앗이 틔운 여린 새싹이 몽땅 짓밟혀 죽고 짓이겨져 죽습니다. 사람들이 나무숲을 너그러이 보살피거나 돌보면, 아주 커다란 나무숲은 해맑게 살아숨쉬다가는 해맑은 빛깔을 베풉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나뭇잎 빛깔, 나무에 둥지 마련한 새들이 날갯짓하며 펼치는 빛깔, 햇살이 드리우며 알록달록 이루는 푸른 그림자 빛깔 들이 아리땁게 어우러집니다.


  숲이 있어 사람이 있습니다. 숲이 있어 벌레가 있습니다. 숲이 있어 짐승이 있습니다. 숲이 있어 지구별이 숨을 쉬고, 숲이 있어 모든 목숨이 먹이를 얻습니다.

 


.. “이게 내 것이 되면 아주 멋지게 쓸 텐데.” “아니, 곰 할아버지도요? 멋지게 쓰다니, 어떻게요?” 곰 할아버지는 멋쩍은 듯이 대답했어요. “찻주전자 덮개로 말일세.” “찻주전자 덮개요!” “그래. 아주 오래 전부터 찻주전자 덮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  (20쪽)


  숲바람이 마을을 감쌉니다. 흙땅에 나즈막하게 앉은 작은 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숲바람을 포근히 맞아들입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새들이 작은 마을을 휘휘 돌며 나들이합니다. 숲에서 씨앗을 맺는 나무들이 작은 마을마다 푸른 빛 이야기를 휘휘 흩뿌리며 노래합니다.


  숲바람이 고속도로를 탑니다. 숲바람이 기찻길을 탑니다. 숲바람이 공장 굴뚝을 맴돕니다. 숲바람이 수많은 아파트 사이사이 돌고 돕니다.


  숲바람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따사로우며 포근하고 시원하면서 향긋하고 싶습니다. 숲바람은 누구한테나 넉넉하며 너그럽고 느긋하면서 한갓지고 싶습니다. 숲바람은 사람들 가슴마다 푸른 빛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불며 천천히 천천히 서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 아이가 재빨리 물었어요. “그런데요?” “우리한테 주면 좋겠는데…….” 오소리 아저씨는 아이에게 날다람쥐와 토끼와 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자 아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어요. “가방에, 호른 주머니에, 찻주전자 덮개로 쓴다고요? 좋아요. 모두 다 소중히 쓸 것 같으니 드릴게요.” ..  (29쪽)


  모이치 구미코 님 글에 나카무라 에쓰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어린이책 《숲 속 세탁소》(크레용하우스,2005)를 읽습니다. 잔잔히 물결치는 고즈넉한 줄거리가 빛나는 《숲 속 세탁소》는 숲에서 빨래하며 살아가는 ‘오소리 아저씨’ 삶을 한 자락 보여줍니다. ‘세탁소’라는 이름을 붙여 사람들이 이룬 도시에서 으레 보는 가게를 떠올릴까 싶기도 하지만, 숲에 깃든 오소리 아저씨네 집은 기계를 쓰지 않습니다. 오소리 아저씨는 ‘손으로 빨래’합니다. 이야기 흐름으로 보자면, “숲 속 빨래집”쯤으로 적을 때에 한결 잘 어울립니다. 쥐엄나무 열매 우린 물에 빨래를 담그고는 두 손으로 복복 비벼서 빨래를 해요. 숲에서 얻은 비누와 물로 빨래를 하고, 빨래를 마친 물은 숲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숲은 언제나 고요하고 숲은 늘 정갈하며 숲은 노상 빛납니다.

 


.. “굉장히 좋은 털실로 만든 장갑으로 별을 닦는구나!” “이거, 하늘의 양털로 만든 거예요.” “하늘의 양털?” 오소리 아저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아이는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어요. “저는 요즘 바람의 아이가 하는 일을 배우고 있어요.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서 별을 닦았어요.” “바람의 아이가 하는 일?” “네. 풍차의 날개를 돌리기도 하고, 양치기 할아버지의 등을 밀어 주기도 해요 …… 모든 별을 다 닦는 건 아니에요. 큰 도시 위에서 더러워진 별만 닦아요.” ..  (32∼37쪽)


  나는 내 옷가지와 옆지기 옷가지와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먼지나 때가 묻은 옷가지를 빨래한다 할 텐데, 내가 하는 빨래는 내 살붙이들 삶을 얼마나 싱그러우며 아름다이 어루만지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깨끗하게 빨래할 무언가는 옷가지 하나만이 아닙니다. 나는 내 마음과 살붙이들 마음도 빨래합니다. 가장 좋은 꿈과 사랑을 실어 가장 좋은 넋과 얼이 되도록 마음빨래를 합니다. 마음을 갈고닦습니다. 마음을 쓰다듬습니다. 마음을 추스릅니다. 마음을 다스립니다.


  내 마음이 늘 정갈하다면, 나로서는 굳이 내 마음을 갈고닦지 않아도 될는지 모릅니다. 《숲 속 세탁소》에 나오는 ‘바람 아이’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도시에서 더러워진 별 닦기’라 하듯, 시골에서 ‘더러워지지 않은 별’이라면 굳이 때를 닦지 않을 테니까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정갈히 건사해서 내 마음이 언제나 정갈하다면, 나는 굳이 내 마음을 갈고닦지 않아도 즐거워요. 이때에는 언제나 내 삶을 예쁘게 누리며 기쁘게 빛내고 살갑게 나눌 수 있으면 넉넉해요.


  새벽 두 시 반, 멧새들 노래소리를 듣습니다. 문득 우리 집 처마 제비집에서 나는 노래소리도 듣습니다. 새벽 두 시 반에 제비들이 왜 지저귀지? 어느덧 새끼가 알에서 깨어났나?


  두 아이는 달콤하게 색색 잡니다. 고단하게 뛰놀던 첫째 아이는 이리저리 뒹굴며 자고, 씩씩하게 기던 둘째 아이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잡니다. 이 아이들 몸과 마음을, 또 나와 옆지기 몸과 마음을, 저마다 맑으며 밝게 아낄 수 있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우리 집 마당 한켠 산초나무마다 푸른 빛깔 작은 몽우리가 몽실몽실합니다. 산초나무 꽃송이를 기다리며 새벽을 누립니다. (4345.5.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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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맣게 이야기 엮어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어린이책이 참 좋다고 느낍니다. 나카무라 에쓰코 님 그림이 담긴 책은 이 책까지 세 가지로군요. <장미마을 초승달 빵집>, <숲 속 세탁소>, 여기에 <엄마가 된다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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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다는 건 뭘까?
우치다 린타로 지음, 김지연 옮김, 나카무라 에쓰코 그림 / 책과콩나무 / 2010년 9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2012년 05월 1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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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한테 들려줄 말
[말사랑·글꽃·삶빛 7] 동화는 어떻게 쓰는가

 


  대학교에 문예창작학과가 있습니다. 대학교 바깥에 글쓰기 강좌라든지 문예창작 강의가 무척 많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키우는 분들이 대학교를 다니거나 여러 강좌나 강의를 찾아서 듣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면 스스로 마음껏 쓰면 될 노릇이지만, 글을 쓸 때에 어떤 틀이나 솜씨가 있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대학교에 들어가려 한다든지 강좌나 강의를 들으려 한다고 느낍니다.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며 글쓰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강좌나 강의를 들으며 글쓰기를 북돋울 수 있습니다. 어디를 얼마 동안 다니든 누구나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을 틔우고, 새삼스레 느끼는 마음을 다스릴 만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라 할 텐데, 어디를 얼마 동안 못 다니거나 안 다니더라도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을 틔울 뿐 아니라, 새삼스레 느끼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글쓰기란 삶쓰기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일이란 삶을 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를 배운다 할 때에는 삶쓰기를 배우는 셈입니다. 곧, 남한테서 무언가 따로 배우거나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를 살피거나 다스릴 수 있다고 여기는 분이라면, 대학교를 들어가거나 강좌랑 강의를 찾아 들어야 합니다. 굳이 남한테서 무언가 따로 배우거나 이야기를 듣기보다, 스스로 제 삶을 찬찬히 곱씹거나 톺아보면서 제 삶을 깨닫거나 느끼려 하는 분이라면, 하루하루 깊이 헤아리면 넉넉합니다.


  글을 쓰는 일이란 삶을 쓰는 일이기에, 내 삶이 있어야 내 글을 씁니다. 그리고, 내 삶을 나 스스로 느낄 줄 알아야 내 글을 써서 내놓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삶을 꾸립니다. 누구나 날마다 새롭게 삶을 일굽니다. 내 하루를 곰곰이 되새긴다면, 내가 누리는 하루 이야기로 긴 소설 하나 쓸 수 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이루어지는 일 하나로 얼마든지 긴 소설 하나 쓸 만합니다. 내 하루살이를 긴 소설로 쓸 수 있을 때에, 이 기나긴 소설 줄거리 가운데 하나를 간추려 짤막한 싯말 하나로 선보일 수 있습니다. 거꾸로, 내 하루살이를 짤막한 싯말 한 줄로 간추려 선보일 줄 아는 이라면, 이 이야기에 살을 붙여 기나긴 소설 하나로 다시 엮을 수 있어요.


  ‘문예창작’이라는 말마디를 생각합니다. ‘문예’란 ‘글 예술’을 일컫습니다. ‘창작’이란 ‘새로 짓기’를 가리킵니다. 곧, ‘글을 예술이 되도록 새로 짓기’가 문예창작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면, 예술이란 무엇이라 할까요. 우리 삶에서 어떤 모습이 예술이라 할 만할까요. 어느 이야기는 예술이 되고, 어느 이야기는 예술이 안 될까요.


  아이들을 토닥토닥 재우며 부르는 자장노래 어버이 목소리와 낯빛과 손길은 얼마나 예술답다 할 만할까 생각합니다. 식구들 밥상을 차리는 집일꾼 몸짓과 매무새와 넋은 얼마나 예술답다 할 만할까 생각합니다. 빨래를 손으로 하는 몸짓은, 빨래기계 단추를 눌러 옷을 건사하는 매무새는, 해바라기 하도록 빨래줄에 빨래를 너는 몸가짐은, 다 마른 빨래를 찬찬히 개어 옷시렁에 놓는 모습은 얼마나 예술답다 할 만할까 생각합니다. 아이 손을 잡고 들길을 거닐며 꽃송이 바라보며 꽃내음 맡는 일은 얼마나 예술답다 할 만할까 생각합니다.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치는 일은 얼마나 예술답다 할 만할까 생각합니다. 마당 한켠 물꼭지를 틀어 물놀이 즐기는 아이를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예술답다 할 만할까 생각합니다.


  글을 쓰려 하는 분들은 어떤 삶을 어떤 꿈으로 어떤 사랑을 실어 어떤 줄거리로 엮고 싶을까 궁금합니다. 글을 쓰려 하는 분들 가운데 아이들과 함께 읽는 동화를 쓰려 하는 분들은 어떤 삶을 어떤 꿈으로 어떤 사랑을 실어 어떤 줄거리로 엮으며,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이야기를 빚으려 할까 궁금합니다.


  어떤 글을 쓰든 글에는 글쓴이 삶을 싣습니다. 어떤 글을 쓰든 글마다 글쓴이 꿈을 담습니다. 어떤 글을 쓰든 글줄에 글쓴이 사랑을 아로새깁니다. 어떤 글을 쓰든 글쓴이가 누리는 즐거움과 웃음과 햇살과 바람을 살포시 깃들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동화를 쓰는 삶을 헤아립니다. 아이들과 함께 어떤 말로 삶을 북돋우면 즐거울까요. 아이들과 함께 읽는 동화를 쓰는 어른은 ‘동화를 쓰는 오늘에 이르도록’ 내 삶을 담는 내 말을 얼마나 곱고 착하고 참답고 맑고 올바르고 곧고 정갈하고 깔끔하고 산뜻하고 싱그럽고 빛나도록 다스렸을까요.


  아이들과 함께 읽는 동화에 “-ㄹ 것 같아요”나 “할아버지의 아치형 나무뿌리”나 “시작된 여정”이나 “뱀을 향해 말했어요”나 “왕과의 만남”이나 “해골만 남은 몰골에도 치장하고”나 “구하기 위해”나 “-려는 거예요”나 “친구가 필요하잖아”나 “도대체”나 “감히”나 “여왕의 방”이나 “몇 명의 왕”이나 “자기”나 “자신”이나 “미소 짓는다”나 “정답다”나 “날고 있다”나 “공손히” 같은 말마디를 적바림하는 일은 얼마나 ‘동화 글을 쓰는 일’이 될까 하고 돌아볼 노릇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동화를 어떤 낱말 어떤 말투 어떤 말씨로 엮는지 하나하나 짚을 노릇입니다.


  어른으로서 널리 쓰는 낱말이라 하더라도 아이들한테까지 함부로 쓸 수 없습니다. 수많은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서 ‘bye bye(바이 바이)’나 ‘安寧(안녕)’ 같은 말을 생각없이 쓴다 하더라도 ‘잘 가’나 ‘잘 있어’나 ‘다음에 봐’처럼 동화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아이들한테 이처럼 말할 수 있어야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서 ‘생일party(파티)’ 같은 말을 생각없이 읊더라도 ‘생일잔치’나 ‘귀 빠진 날 잔치’처럼 동화 글을 쓸 수 있어야 어여쁘다고 느껴요. 수많은 어른들이 ‘操心(조심)해’ 같은 말을 생각없이 말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동화 글을 쓰려는 이라면 ‘잘 살펴’나 ‘찬찬히 살펴봐’나 ‘마음을 써 봐’나 ‘마음을 기울여 봐’처럼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 아리땁다고 생각해요.


  잘 살피고 옳게 생각할 수 있어야 즐겁게 동화 글을 씁니다. ‘微笑(미소)’나 ‘始作(시작)’ 같은 한자말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都大體(도대체)’나 ‘감(敢)히’나 ‘필요(必要)’ 같은 한자말을 어른들이 거리끼지 않고 쓰는데, 참말 아이들 앞에서 이런 말마디를 거침없이 쓰며 보여주어도 즐거이 누릴 삶이 될까 궁금합니다.


  동화 글을 쓰려는 어른이라면 말부터 깊이 살피고 옳게 짚으며 착하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여느 어른들 사이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말마디라 하지만, 또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널리 나타나는 말마디라 하지만, 이런저런 말마디를 동화 글에 버젓이 넣어도 될 만한가 하고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참말 어른들은 “微笑 속에 비친 그대”처럼 노래를 부릅니다. 어른들은 “只今부터 始作이야” 같은 말을 흔히 씁니다. 어른들은 “네가 必要해” 같은 말을 쉽게 씁니다. 여느 자리에 익숙하게 어른들끼리 이런 일본 한자말과 저런 중국 한자말을 쓸 뿐 아니라, 이런 영어와 저런 프랑스말과 그런 외국말을 너무 생각없이 씁니다. 어른들이 일한다는 막일판에는 일본말이 많이 쓰인다지요. 책을 만드는 사람들 또한 책마을에서 일본말을 아주 많이 쓴다지요. 이른바 전문직이라 하는 자리에서는 몽땅 일본말투성이라지요. 우리 아이들이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익히며 쓰도록 이끌자는 생각을 거의 안 한다 할 텐데, 말에 앞서 삶부터 아이들이 아이답게 삶을 꾸리도록 돕지 못하기 일쑤예요.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부터 영어를 가르칩니다. 학원을 끝없이 보냅니다. 입시지옥 굴레에 몰아세웁니다. 아이들 삶을 사랑하지 않으니 입시지옥을 만듭니다. 아이들 꿈을 아끼지 않으니 입시지옥에 허덕이다가 대학교에 들어가도록 내몰기만 해요. 아이들 스스로 하루하루 예쁘게 누리며 즐기도록 손을 내밀지 않아요. 아이들 스스로 온 하루를 어여쁜 꿈과 사랑으로 빚도록 어깨동무하지 않아요.


  오늘날 한국땅에서 동화를 쓰는 일이란 어떤 뜻이 될는지 아리송하곤 합니다. 말만 예쁘장하게 가다듬으면 동화가 될까요. 무언가 배울 만한 대목을 집어넣어 “고개숙여 배우는 작품”이나 “지식을 쌓는 작품”이나 “재미있는 작품”이나 “가슴 뭉클한 작품”을 쓰는 일은 어떠한 보람이나 뜻이 있을까요.


  동화 글에 “印象的(인상적)인 表情(표정)”이나 “或是(혹시)”나 “구멍을 通(통)해”나 “巨大(거대)한”이나 “氣色(기색)” 같은 낱말을 넣는 일은 알맞을까 헤아려 봅니다. 그런데, 이런 낱말을 슬기롭게 가다듬어 알맞고 바르게 동화 글을 추스른다 할지라도, 사랑스레 나눌 이야기를 꿈꾸도록 돕는 줄거리로 빚지 못한다면, 어떤 값이나 구실을 할까 잘 모르겠어요. 동화 글이란, 글줄부터 하나하나 잘 삭히고 엮으며 빚어야 합니다. 동화 글이란, 줄거리와 이야기 모두 환히 빛나도록 잘 건사하고 갈고닦으며 세워야 합니다. 두 갈래를 오롯이 추스르면서 동화를 쓰는 어른 삶부터 해맑게 사랑하고 꿈으로 빛내야 합니다. 봄날 제비 노랫소리를 맑게 들으며 좋은 넋 누리고, 가을날 파란하늘 바람소리를 곱게 들으며 좋은 얼 품을 때에 동화 글이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4345.5.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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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호종이문 그림

 


  나무문에 창호종이를 곱게 발랐더니 어느새 아이가 무언가 꼬물꼬물 그림을 그렸다. 문에 그림을 그리지 말아 주렴, 그림종이가 따로 있잖니, 하고 얘기하지만 귓등으로조차 안 듣는다. 그래, 얼마나 그림을 그리려는지 한 번 지켜보자, 하고는 곁에 서서 쳐다본다. 먼저 아이 키높이에서 그림을 그리고, 이윽고 문고리를 잡으며 높은 데까지 손을 뻗어 그림을 그린다. 문짝이 그냥 문짝이 아니요, 문짝에 종이를 바르니, 너로서는 온통 그림판이 되는 셈이니.


  생각해 본다. 벽에 종이를 바르니 벽종이인데, 그림을 그린다는 그림종이도 종이요, 벽종이도 종이인 셈이다. 아이한테는 그림종이 묶은 빈책만 그림 그릴 데가 아니라, 종이를 바른 벽도 문도 그림판이 될 만하다.


  사람은 종이로 묶은 종이책을 읽는다. 사람은 좋은 이웃을 사귀며 사람책을 읽는다. 사람은 너른 들판과 멧자락을 어깨동무하며 풀책과 자연책과 꽃책을 읽는다.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책과 별책과 달책을 읽는다. 사람은 따스한 날씨를 누리며 햇님책을 읽는다.
 

살아가며 모두 책이다. 사랑하며 모두 책이다. 살아가며 모두 그림판이다. 사랑하며 모두 그림판이다. 아이들 웃음은 어버이한테 사랑이요, 어버이 노래는 아이한테 사랑이다. 좋은 하루가 날마다 새롭게 열린다. (4345.5.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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