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꽃들아 - 최병관 선생님이 들려주는 DMZ 이야기
최병관 글.사진 / 보림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비무장지대에서 꽃을 바라본다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14 : 최병관, 《울지 마, 꽃들아》(보림,2009)

 


  봄이 한창 해맑은 오월에, 전라남도 고흥에서 햇마늘이 나왔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바지런히 마늘을 캐고 엮어 실어 나릅니다. 마을에는 온통 할머니와 할아버지뿐이라, 늙은 어르신끼리 서로 품앗이를 하거나 혼자 밭뙈기에 주저앉아서 천천히 캐고 천천히 엮습니다. 경운기나 짐차에 실을 때에도 당신들 몸에 맞추어 천천히 싣습니다.


  샛장수가 시골마을로 찾아와 마늘을 사들이지 않습니다. 농협 일꾼이 시골마을을 돌며 마늘을 사들이지 않습니다. 샛장수이든 농협 일꾼이든 늘 ‘늙은 흙일꾼’이 ‘모든 일을 빠짐없이 끝마치고 갖다 주기’까지 해야, 가지고 온 마늘을 살피며 등급을 매깁니다.


  샛장수와 농협 일꾼은 가만히 앉아서 ‘흙일꾼이 흙에서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를 내다 팔아 얻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시에 있는 일터에서 돈을 벌어 곡식이나 열매를 사다 먹습니다. 이웃집 마늘밭 일을 조금 거들며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시골 어르신들이 도시 젊은이들한테 곧바로 마늘을 내다 팔 수 있으면 샛장수나 농협 일꾼한테보다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겠지요. 도시 젊은이들이 시골 어르신들한테서 곧바로 마늘을 장만할 수 있으면 가게나 마트에서 장만할 때보다 한결 싸게 장만할 수 있겠지요.


  마늘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뽑힙니다. 마늘이 마늘꽃을 피우면 마늘은 아마 ‘상품’으로 값어치가 없으리라 봅니다. 양파도 파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양파는 양파꽃을 피우고 파는 파꽃을 피우지만, 내다 파는 상품이 되자면, 마늘도 양파도 파도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배추도 무도 당근도 온통 꽃을 피울 수 없어요.

 

 


  450일 동안 비무장지대를 세 차례 가로질렀다고 하는 최병관 님이 찍은 사진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엮은 사진책 《울지 마, 꽃들아》(보림,2009)를 읽습니다. 남녘에서든 북녘에서든 비무장지대라 하는 무쇠가시울타리는 ‘아픈’ 전쟁, ‘슬픈’ 전쟁, ‘괴로운’ 전쟁, ‘나쁜’ 전쟁을 잘 보여줍니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고 서로한테 총부리를 들이대며 언제 무슨 일이 터지면 곧바로 총알이며 미사일이며 폭탄이며 들이부으려고 하는 ‘비무장 아닌 비무장’지대 무쇠가시울타리는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어른들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남녘과 북녘은 서로 ‘비무장지대’라는 이름으로 군인이나 무기를 안 두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 ‘비무장지대’에는 남녘이든 북녘이든 온갖 무기를 갖춘 군인이 잔뜩 있습니다. 인구통계로 잡히지 않을 뿐이나, 남녘도 북녘도 수십만에 이르는 젊은 사내가 군인옷을 입고 총을 든 채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노려봅니다.


  여느 사람들은 비무장지대가 어떠한 곳인지 잘 모릅니다. 최병관 님은 자그마치 450일씩이나 비무장지대 안팎을 넘나들며 한겨레 아픈 생채기를 들여다보았다고 하나, 이렇게 기나긴 나날 촘촘히 넘나든다 하더라도 볼 수 없으며 담을 수 없는데다가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 매우 많아요. 이를테면, 남녘이든 북녘이든 비무장지대에 어떠한 무기를 얼마나 갖추어 서로를 노리는가 하는 대목을 사진으로 찍지 못합니다. 글로 쓰지 못합니다. 이야기로 풀어내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 나라 아이들은 이 사진책 《울지 마, 꽃들아》를 넘기면서 전쟁보다 평화를 생각할 만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사랑하고 가꾸며 지킬 만한 평화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볼 만합니다.


  구태여 ‘비무장지대에 가득한 전쟁무기’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지요. 굳이 ‘비무장지대 지뢰밭에서 지뢰를 밟고 다리가 잘린 사람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지요. 지뢰를 밟고 다리가 잘린 노루를 찾아내어 사진을 찍어 보여주어야 하지는 않아요. 군인들이 내다 버리는 짬밥을 주워먹는 독수리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줄 까닭은 없어요.


  전쟁이란 무엇일까요.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죽을까요. 전쟁은 왜 일으킬까요. 왜 서로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까요. 왜 서로서로 치고박으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이 꽃피우지 못한 채 죽도록 내몰까요. 전쟁을 북돋우거나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전쟁에서 이긴다 하는 일이란 무엇이고, 전쟁에서 진다 할 때에는 어떻게 될까요.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남북녘 수십만 젊은이는 왜 비무장지대에서 한창 푸른 삶을 군화발과 총칼로 지새워야 할까요.

 


  최병관 님 사진책 《울지 마, 꽃들아》는 무쇠가시울타리 밑에서도 곱게 꽃을 피우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들꽃이나 멧꽃은 무쇠가시울타리가 있든 지뢰가 있든 불발탄이 있든 무명용사 무덤이 있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디에나 뿌리를 내리고 어디에나 꽃씨를 퍼뜨립니다. 어디에서나 줄기를 올리고 어디에서나 열매를 맺어요.


  사람 손길이 안 닿는 데에서 숲은 조용히 살아납니다. 사람 발길이 안 닿는 곳에서 숲은 천천히 살아납니다. 사진책 《울지 마, 꽃들아》를 넘기면, 겹겹이 이어지는 높다란 멧줄기가 아름답다 싶은 사진이 가득합니다. 눈이 소복히 내려앉은 숲이고, 꽃과 풀이 흐드러진 숲이에요. 참말 이곳에서는 ‘꽃들이 울며 지새우지’는 않으리라 느껴요. 누군가 운다면, 아마 남녘땅 앳된 스무 살 군인이 울겠지요. 누군가 운다면, 아마 북녘땅 늙수그레한 마흔 살 쉰 살 군인이 울 테지요. 남녘 정부나 정치꾼은 ‘북으로 보낸 쌀’을 북녘 주민 아닌 북녘 군인이 먹는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런데, 북녘에서도 남녘에서도 ‘군대로 끌려가서 군인이 된 사람’이란 여느 사람, 곧 ‘주민’이에요. 지난날 남녘에서는 집에서 굶지 않으려고 하사관(직업군인)으로 들어간 사람이 꽤 많았어요. 오늘날 북녘에서는 집에서 굶지 않으려고 직업군인이 되려는 사람이 꽤 많으리라 느껴요. 군인이 되어 배를 곪지 않을 수 있다면, 또 직업군인으로서 달삯을 이럭저럭 받아 이녁 어버이나 살붙이한테 보낼 수 있다면, 북녘에서는 너나없이 젊고 푸른 넋들이 군인이 되려고 하리라 느껴요.


  그나저나, 남녘도 북녘도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굶지 않습니다. 남녘도 북녘도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도 따로 배움삯을 들이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입시지옥은 사라지고 끔찍한 경쟁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남녘도 북녘도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끝없이 경제개발에 목을 매달지 않아도 돼요. 서로서로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남녘에서는 4대강사업이든 무슨무슨 토목사업이든 벌일 까닭이 없습니다.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 뿐 아니라, 한결같이 건사하려 하니까 곳곳에 새롭게 군부대를 만들려 해요.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기 때문에 전기가 모자라 발전소를 또 짓고 새로 지어요.

 

 


  참말 사람들이 웁니다. 꽃은, 풀은, 나무는, 새는, 노루는, 기러기는, 냇물은, 하늘은, 구름은, 무지개는, 빗방울은 울지 않습니다. 참으로 사람들이 웁니다. 남녘땅 사람들이 울고 북녘땅 사람들이 웁니다.


  전쟁은 북녘사람이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전쟁통에 사람을 죽인 짓은 북녘사람도 남녘사람도 똑같이 저질렀습니다. 전쟁은 ‘북녘’이 아니라 ‘정치꾼’이 일으켰고, 정치꾼 뒤에서 입김을 불어넣는 또다른 ‘검은 돈꾼’이 일으킵니다. 지구별에 평화 아닌 전쟁이 자꾸 터지는 까닭은, 사랑 어린 삶보다 돈을 홀로 거머쥐려는 ‘검은 돈꾼’이 있기 때문이에요.


  최병관 님이 아이들한테 보여주려고 엮은 사진책 《울지 마, 꽃들아》는 그지없이 예쁩니다. 군인들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사진은 그지없이 예쁩니다. 군인들 모습이 나타나는 사진은 참 밉상스럽습니다. 편지 한 장 손에 쥐고 잠든 앳된 군인 모습 또한 그리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슬픈 얼굴입니다. 총칼을 들고 누군가를 적으로 삼아 ‘널 죽이겠어!’ 하는 생각에 길들어야 한다면 너무 슬퍼요.

 

 


  그렇지만, 꽃은 무쇠가시울타리도 총칼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저 피어요. 그저 고운 내음 퍼뜨려요. 그저 고운 잎사귀 선보여요. 그저 알찬 열매 베풀어요.


  꽃들은 기다립니다. 꽃들은 쉰 해가 되든 백 해가 되든 기다립니다. 꽃들은 꽃들을 꾸밈없이 바라보며 사랑할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꽃들은 울지 않습니다. 꽃들은 빙그레 웃으면서 기다립니다. 꽃들은 사람들 누구나 어여쁜 꽃웃음을 지으면서 아리땁게 꽃사랑을 나눌 날을 기다립니다. 이 땅 아이들이 비무장지대 지뢰밭 아닌 너른 숲 고운 꽃밭과 풀밭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 아이들이 전쟁놀이나 총놀이나 칼놀이가 아니라 텃밭을 돌보고 흙땅에서 맨발로 뒹굴며 신나게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5.5.31.나무.ㅎㄲㅅㄱ)

 


― 울지 마, 꽃들아 (최병관 글·사진,보림 펴냄,2009.5.1./12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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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룻바닥에 누워서 놀아라 (도서관일기 2012.5.3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 바닥을 닦는다. 전기도 물도 쓸 수 없지만, 첫째 아이를 낳고 출생신고를 할 적에 동사무소에서 선물이라며 주던 물휴지로 도서관 바닥을 닦는다. 우리 집은 아이들한테 물휴지를 안 쓴다. 여느 집에서는 갓난쟁이가 똥을 누면 종이기저귀를 갈며 물휴지를 쓸는지 모르나, 우리 집은 천기저귀를 쓰고 물로 씻기니까 물휴지를 쓸 일이 없다. 다섯 해 가까이 한쪽 구석에 처박은 물휴지인데, 새삼스레 이제 와서 쏠쏠히 쓸모가 있다.


  둘째 아이가 좀처럼 걸으려 하지 않으니까, 도서관 바닥을 닦는다. 나는 무릎걸음으로 천천히 이곳저곳 닦는다. 아이가 기어서 다닐 만한 데를 샅샅이 닦는다. 기다가 손을 뻗을 만한 데까지 헤아리며 닦는다. 아이가 기지 않고 걸었으면 도서관 바닥을 샅샅이 닦을 생각을 했을까. 이때에도 맨발로 돌아다니거나 바닥에 드러누울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으로 닦았겠지. 그러니까, 나로서는 두 아이가 하루라도 더 일찍 더 즐거이 뛰놀 터전으로 보듬고 싶으니 바닥을 꼼꼼히 닦는다.


  바닥 닦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첫째 아이가 묻는다. “바닥은 왜 닦아요?” “동생이 기어다니니까.” “동생이 기어다니니까, 동생 손 지저분해지지 말라고 닦아요?” “네.” 동생이 기어다녀도 손바닥이 지저분해지지 않을 즈음 되니, 첫째 아이가 다시 묻는다. “왜 신을 신고 다녀요?” “아직 아주 깨끗하지는 않으니까.” 첫째 아이가 슬쩍 신을 벗는다. 맨발로 뛰어다닌다. 이윽고, 두 녀석은 도서관 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드러눕는다. 마치 집에서 놀듯 논다.


  그래, 모레에도 글피에도 또 닦고 다시 닦을 테니 너희들 마음껏 신나게 뒹굴며 놀아라. 여기는 너희들 책터이기 앞서 놀이터란다. 여기는 우리들 삶터이고 살림터란다.


  둘째 아이가 바지에 똥을 한가득 누었기에, 가슴으로 안아 이웃 보건지소 수돗가로 가서 밑을 씻기고 바지를 빨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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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짚과 나무로
집을 지어
아이와 어버이
사랑으로 살고,

 

제비는
나무 처마 한쪽
손바닥 너비
빈 자리에

 

작은 보금자리
맑은 빛소리로 엮어
따순 봄볕으로
목숨 살찌운다.

 

들새 울고
개구리 울고
바람 울고
후박꽃 울고

 

사람은
논에서 벼를
밭에서 푸성귀를
들과 메에서 풀과 열매를

 

소담스레 얻고
즐겁게 나누고
예쁘게 빚고
고맙게 뿌리고.

 


4345.5.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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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96] 꽃읽기

 

  꽃에 둘러싸여 살아가기에 꽃을 읽습니다. 풀에 둘러싸여 살아가자면 풀을 읽습니다. 멧자락 차곡차곡 이어진 멧골에서 살아가면 멧등성이를 읽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면 도시를 읽고, 시골에서 살아가면 시골을 읽어요. 누군가는 신문을 읽겠지요. 누군가는 책을 읽겠지요. 누군가는 지식을 읽고, 누군가는 정보를 읽어요. 누군가는 마음 고운 사람을 읽고픈 꿈을 키울 테고, 누군가는 생각 깊은 슬기를 읽고픈 꿈을 키울 테지요. 사람들이 서로서로 사람을 읽습니다. 내 삶을 일구고, 옆지기랑 살림을 보듬으며 삶을 읽습니다. 글을 읽고 노래를 읽으며 사진을 읽습니다. 그림을 읽고 만화를 읽으며 영화를 읽습니다. 뜨개질을 읽고 빨래를 읽습니다. 걸레질을 읽고 설거지를 읽습니다. 흙을 읽고 나무를 읽습니다. 재벌총수를 읽고 공무원을 읽습니다. 누군가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읽겠지요. 누군가는 가랑잎을 읽거나 감잎을 읽겠지요. 저마다 가장 좋아해서 스스로 누리는 삶자락을 읽는다고 느낍니다. 이런 신문을 읽든 저런 신문을 읽든, 이런 책을 읽든 저런 책을 읽든, 어떠한 읽기이든 곧 이녁 삶이에요. 그래서 나는 내 삶을 사랑으로 북돋울 가장 좋은 벗님이 무엇일까 하고 헤아린 끝에 꽃읽기를 하자고 다짐합니다. 나무읽기를 하고, 풀읽기를 하는 한편, 해맑은 아이들을 읽고 옆지기를 읽자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4345.5.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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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95] 은지은지

 

  생각을 스스로 가둔 사람은 말 또한 스스로 가둡니다. 말을 스스로 가두는 사람은 사랑 또한 스스로 가둡니다. 사랑을 스스로 가두는 사람은 삶을 스스로 가두어요. 삶을 스스로 가두기에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를 아름다이 어깨동무하지 않고, 자꾸 어떤 굴레를 씌워 가두려 합니다. 내가 알맞으며 바르고 아름다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쓰자면, 나부터 즐겁게 생각을 열어야 합니다. 생각을 열면서 사랑을 열어야 합니다. 사랑을 열며 삶을 열어야 하고, 삶을 여는 동안 내 좋은 둘레 사람들 꿈길을 나란히 열어야 해요. 국어사전을 통째로 외운대서 말을 슬기롭게 빚지 못해요. 대학교나 대학원을 다닌대서 한국말을 알차게 빛내지 못해요. 똑똑하다는 사람이 말을 똑똑하게 쓰지는 못해요. 사랑스레 마음을 열면서 생각을 돌보는 사람일 때에 비로소 말을 슬기롭게 가다듬으면서 어여삐 일구는구나 싶어요. 그래, 나는 어릴 적부터 좋은 삶과 꿈과 넋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나머지 너무 많은 이야기를 지식으로 받아들였어요. 개구리하고 함께 지내며 노랫소리 듣지 못했고, 제비랑 한 지붕에서 살아가며 노랫소리 듣지 못했어요. 언제나 교과서에 적힌 울음소리 틀에 따라 참새는 ‘짹짹’ 병아리는 ‘삐약삐약’이라고 여겼어요. 아이들 낳고 삶터를 시골로 옮기며 개구리랑 제비랑 참새랑 냇물이랑 함께 살아가며 비로소 소리를 듣고 노래를 느끼며 사랑을 깨닫습니다. 우리 집 첫째 아이가 어느 멧새 노랫소리를 듣다가, “저 새는 은지은지 하고 우네.” 하고 읊는 얘기를 들으며 빙긋 웃습니다. (4345.5.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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