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01] 풀개구리

 

  마을 곳곳에 널따랗게 펼쳐진 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올챙이 뽀르르 헤엄치는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곁에 선 아이는 좀처럼 올챙이 헤엄짓을 찾아내지 못하지만, 헤엄을 치다 살짝 멈춘 올챙이가 보일 적에 손가락으로 논물을 살짝 튕기면 올챙이는 화들짝 놀라 다시 헤엄을 칩니다. 이때에는 아이도, 아 저기 있다, 하고 알아봅니다. 논물에서 태어나 자라는 올챙이는 논개구리가 됩니다. 때로는 멧개구리도 되고, 때로는 풀개구리도 됩니다. 때로는 도룡뇽이 돼요. 모두들 논 한쪽에 알을 낳아 저희 새끼를 낳습니다. 300평 500평 1000평 3000평 논은 그리 안 크다 여길 수 있지만, 올챙이한테는 드넓은 바다와 같아, 올챙이로 살아가는 동안 논배미 구석구석 못 다닐 수 있어요. 논 한쪽에는 논거미가 거미줄을 칩니다. 소금쟁이가 함께 살고 물벼룩이 있으며 미꾸라지도 논흙 사이에서 살아가겠지요. 모두 함께 살아가는 목숨이면서 저마다 빛나는 한삶입니다. 문득문득 조그마한 풀개구리 한 마리 우리 집으로 폴짝폴짝 뛰어오곤 합니다. 대문을 열면 바로 논이거든요. 풀개구리는 대문을 열 줄 모르나, 대문 밑으로 난 틈은 풀개구리한테 퍽 널따랗습니다. 요기로 볼볼 기어 들어온 뒤 풀개구리한테 드넓다 싶은 마당에서 다시금 폴짝폴짝 뛰며 놉니다. 어른 손톱만 하다 싶도록 작은 개구리는 온통 풀빛입니다. 나는 이 작은 개구리를 바라보며 “너는 어쩜 이리 싱그러운 풀빛일 수 있니?” 하고 외칩니다. 새로 돋은 풀빛입니다. 여름비로 몸을 씻은 맑은 풀빛입니다. 여름햇살 듬뿍 누리는 싱싱한 풀빛입니다. 나와 아이는 풀개구리하고 동무하며 지냅니다.
 4345.6.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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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사계 - 흙빛에 담은 한국의 봄여름 가을 겨울 그 길을 따라
이대일 글.사진 / 정신세계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아름답게 찍을 수 있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103] 이대일, 《춤추는 四界》(정신세계사,2005)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면서 살아가는 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구라도 스스로 살아가지 않는 곳에서는 사진을 못 찍고, 누구라도 스스로 좋아하며 살아갈 만한 곳이 아니라면 즐겁게 사진을 못 찍습니다.


  고향이 서울이기에 꼭 서울에서 사진을 찍지는 않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지만, 스스로 마음으로 바라는 삶터가 있을 때에는, 서울에서는 사진을 안 찍으나 마음으로 바라는 어느 삶터로 나들이나 마실을 할 때에 비로소 사진을 찍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진을 바라보는 아무개는 ‘여행사진’이라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데, 막상 이러한 사진을 찍은 누군가한테는 ‘여행사진’이 아니에요. ‘그냥 사진’이요, ‘그저 스스로 좋아하는 곳에서 지내며 저절로 찍은 사진’입니다. 곰곰이 생각한다면, 스스로 사진기를 손에 들 만한 곳이야말로 스스로 마음을 활짝 열며 살아가고 싶은 곳이요, 스스로 사진기를 손에 들 만하지 못한 곳이야말로 스스로 마음이 닫히면서 고단한 곳이에요.

 

 


  한국땅 적잖은 사람들이 ‘스스로 나고 자란 동네’에서 사진을 못 찍거나 안 찍는 까닭을 찾자면 그리 어렵지 않아요. ‘스스로 나고 자란 동네’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거든요. 둘레가 아름다운 숲과 바다라 하더라도, 숲과 바다를 스스로 좋아하지 않으면 사진으로 담지 않아요. 숲과 바다를 뒤로 하고서 사진 찍는 일도 없어요. 둘레가 높직높직한 빌딩뿐이라 하더라도, 이 같은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빌딩들을 뒤로 하고서 사진을 찍어요.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일본 도쿄에서든 프랑스 파리에서든, 스스로 마음에 드는 데에서 찍는 사진입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으레 ‘아이 얼굴’만 담고, ‘아이가 지내는 집안 살림살이’가 드러나도록 사진을 담지 못할 적을 헤아려 봅니다.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인데, 내 보금자리를 나 스스로 좋아할 적에는 아주 스스럼없이 ‘아이 얼굴’뿐 아니라 ‘아이 온몸’이랑 ‘아이가 지내는 집안 곳곳’이 잘 드러나도록 사진을 찍기 마련입니다. 아이하고 집 앞에서 사진을 찍어요. 아이하고 마당에서 사진을 찍어요. 집을 좀 멀리서 바라보는 들판에서 사진을 찍어요.


  사진이란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습을 찍으며 이루어집니다. 글이란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삶을 연필로 적바림하며 태어납니다. 그림이란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야기를 붓으로 놀리며 빛납니다.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스스로 좋아하고, 스스로 좋아하면서 시나브로 살아내기에, 바야흐로 사진으로든 글로든 그림으로든 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대일 님 사진책 《춤추는 四界》(정신세계사,2005)를 읽습니다. 이대일 님은 한국땅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춤추는 네 철”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보여주려 합니다. “이제 세상으로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여린 싹들의 노래와 춤 앞에서 나는 조금 전 나비의 춤을 떠올렸다(26쪽).” 하고 읊으며 사진을 찍습니다. “눈이 알록달록해지는 듯한 단풍잎들은 하오의 햇살 아래 물비늘처럼 반짝였다(92쪽).” 하고 노래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대문을 나서니 곧바로 아스팔트에다가 양식 이층집들이 사방에서 어수선했다. 어리벙벙해졌다. 시간이 잠시 역류를 했음이 분명했다(124쪽).” 하고 외치며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 가며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저 가벼운 구름은 무슨 의미일까(166쪽)?” 하고 꿈꾸며 사진기를 어깨에 겁니다.


  어쩌면 너무 마땅한 셈인지 모르나, 이대일 님은 ‘아스팔트와 서양식 빌라’로 이루어진 당신 살림집 둘레에서는 사진을 안 찍습니다. 이대일 님이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살붙이들과 뒤섞이는 보금자리에서는 사진을 안 찍습니다. 아니, 사진을 더러 찍을는지 모르나 바깥으로는 안 보여줄는지 모릅니다. 이대일 님 삶터에서는 으레 ‘어리벙벙해졌다’ 하고 느끼니,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없습니다. 사진기를 쥔 손이 흔들릴 테고, 사진기에 박은 눈이 빙글빙글 도는데,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대일 님만 이와 같지 않아요. 한국에서 ‘아름다운 숲과 들과 바다와 내와 메’를 사진으로 담는 분들 거의 모두 이와 같아요. 막상 사진쟁이 스스로 도시 한복판에서 아스팔트와 자동차와 아파트와 빌딩 사이에 갇히듯 살아가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도시 한복판에서 멀리멀리 벗어납니다. 먼먼 그림자로도 도시 끄트머리조차 안 보일 만한 데에서 사진을 찍으려 해요. 사진책 《춤추는 四界》를 살피면 어느 사진 귀퉁이에도 ‘도시 자취’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온통 시골 삶자락입니다. 온통 시골 숲이요 시골 들판입니다.

 

 


  춤추는 봄이요 여름이며 가을이고 겨울이에요. 시골에서는 언제나 봄부터 겨울까지 춤추는 나날이에요. 시골에서 조그맣게 보금자리 이루어 살아가면, 애써 멀리 마실을 다니지 않아도 날마다 새롭고 새삼스러우며 싱그럽다 싶은 모습을 신나게 사진으로든 글로든 그림으로든 빚을 수 있어요. 날마다 같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사진으로 찍어도 날마다 다른 이야기를 얻을 수 있어요.


  꼭 지리산이어야 하지 않아요. 반드시 백두산이어야 하지 않아요. 으레 울릉섬이나 제주섬까지 가야 하지 않아요. 구례가 더 좋거나 경주가 더 좋거나 영월이 더 좋거나 보령이 더 좋거나 하지 않아요. 어느 시골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데에서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길 살림을 일구면 돼요. 사진은 스스로 살아가는 결에 따라 찍기 마련이니,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사진기 단추에 손가락 살포시 얹으면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낄 사진을 일구어요. 스스로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사진기 단추에 손가락 살짝 얹으면서 스스로 사랑스럽네 하고 느낄 사진을 낳아요.


  이리하여 사진책 《춤추는 四界》는 이대일 님이 꿈꾸는 시골 이야기가 담깁니다. 스스로 살아내지 않거나 살아내지 못하면서 그예 꿈꾸듯 마음속에 담은 이야기를 담습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숲, 멀찍이 떨어진 채 지켜보는 냇물, 멀디먼 데에서 스쳐 지나가며 들여다본 들판 이야기를 《춤추는 四界》로 갈무리합니다. (4345.6.27.물.ㅎㄲㅅㄱ)

 


― 춤추는 四界 (이대일 글·사진,정신세계사 펴냄,2005.12.1./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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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알 깨지다

 


  이른아침에 아이 오줌그릇을 비우려 하다가, 자그마한 새알 하나 오줌그릇에 떨어져 깨진 모습을 본다. 메추리알보다 훨씬 작은 새알은 노른자가 동그랗다. 낳은 지 아직 얼마 안 된 알이로구나 싶다. 제비집을 올려다본다. 왜 이 알 하나 떨어졌을까. 틀림없이 제비알일 텐데, 설마 뻐꾸기라도 여기에 들어와서 제비알을 밀어냈을까. 어미 제비가 똥을 누다가 그만 알을 낳는 바람에 이렇게 떨어뜨려 깨지고 말았을까.


  깨진 알을 꽃밭으로 옮긴다. 흙에 닿은 노른자는 차츰 허물어진다. 노른자가 천천히 허물어지는 동안 어느새 개미가 달라붙는다. 제비알은 새끼 제비로 자라나지 못하면서 이렇게 개미한테 밥이 되는구나.


  아침에 잠을 깬 식구들을 불러 제비알을 함께 바라본다. 옆지기와 아이가 손을 뻗어 제비알 크기를 헤아린다. 빈 껍데기만 아이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모든 제비들은 이렇게 조그마한 알에서 태어났겠지. 알도 작고 제비도 작다. 알도 가볍고 제비도 가볍다. (4345.6.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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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27 07:55   좋아요 0 | URL
어머나 어쩌다 너무 안타깝네요

파란놀 2012-06-28 06:53   좋아요 0 | URL
그래도 다시 새 목숨이 태어날 테지요.

자연으로 돌아가는 목숨도 있고
자연에서 새로 태어나는 목숨도 있어요..

BRINY 2012-06-27 13:0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요즘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제비.

파란놀 2012-06-28 06:52   좋아요 0 | URL
도시사람들이
제비 볼 수 있는 곳으로
보금자리 옮기면 좋겠어요..
 

 


둘째 아이를 걸린다.
둘째 아이 손을 잡고
천천히 들길을 걸린다.

 

둘째 아이는
첫째 아이보다
키도 작고
손도 작고
머리도 작고
발도 작고
몸도 작다.

 

둘째 아이는
밥그릇도 작고
수저도 작고
옷도 작고
이불도 작고
입이며 눈이며
모두모두 작다.

 

작은 발로
작은 시골마을
작은 논둑길을
한 발짝 두 발짝
천천히 디딘다.

 

작은 발로
작은 몸 가누어
작은 목숨 곱게
작은 사랑으로
움직인다.

 

첫째 아이는
둘째 아이 앞에서
신나게 웃으면서
뛰고 달리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기운을 북돋운다.

 


4345.5.3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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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가서 발을 담갔다

 


  집에서 면소재지까지 네 식구 군내버스를 타고 2200원. 면소재지에서 택시를 타고 발포 바닷가로 5000원. 세 시간 동안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발포 바닷가 귀퉁이에는 ‘다도해 국립공원’이라는 푯말이 선다. 국립공원 바닷가이지만, 이곳에 와서 고기를 굽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도로 가져가지 않는다. 이곳에 그냥 버리고 간다. 이 모습을 바라본 도시 손님은 ‘바닷가도 작으면서 왜 이리 더럽느냐’ 하고 말한다. 시골 바닷가가 더러워진 모습이 아니라, 도시사람이 쓰레기를 버려 더럽혀 놓은 손길을 못 느끼는 일이 안쓰럽다.


  이곳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논다. 내 발은 태평양 끝자락에 선다. 아이도 옆지기도 모두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태평양 끝자락에서 논다. 태평양은 지구를 덮은 바닷물 가운데 하나. 우리들은 바다를 느끼면서 지구를 느끼고, 지구를 느끼면서 내 목숨이 싱그럽게 살아서 펄떡인다고 느낀다.


  바다에 가서 발을 담그고는 다시 택시를 불러 집까지 돌아온다. 8000원. 고작 15000원에 이르는 적은 돈으로 바다와 태평양과 지구와 나를 느끼며 하루를 누렸다. 작은 시집 하나 가방에 넣어 바다로 왔는데, 작은 시집을 꺼낼 일은 없었다. (4345.6.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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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26 09:32   좋아요 0 | URL
와 너무 시원해 보여요 아이들이 좋아했겠어요 요즘은 정말 여름 날씨라서~
바다가 그리운 나날이죠

파란놀 2012-06-26 13:50   좋아요 0 | URL
예전에 갈 적에는 '조금 바가지 택시삯'을 치렀는데,
어제는 '착한 택시삯'을 치를 수 있어서,
앞으로 이 택시 기사님한테만 전화해서
면부터 즐겁게 나들이 하려고 해요.

아이들이 더 크면, 아마 다섯 해쯤 뒤가 되리라 보는데,
그때에는 온 식구가 자전거를 끌고 갈는지 모르고요 ^^;;;

개인주의 2012-06-26 12:35   좋아요 0 | URL
가만 있기만 해도 좋을텐데
저런 곳에서 꼭 고기를 먹어야 하는건지 모르겠어요.

파란놀 2012-06-26 13:49   좋아요 0 | URL
고흥은... 바닷가 둘레에 '식당'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아예 없지는 않은데, 다들 자가용 몰고 오니까, 자가용 몰고 조금 가서 구워 먹어도 되련만, 굳이 그릴이나 석쇠나 숯까지 챙겨서 바닷가에서 구워 먹고는 그 쓰레기와 찌꺼기를 고스란히 두고, 또 봉지까지 그대로 가는 이들이 꼭 있어요.

마을 젊은이도 어르신도, 한창 바쁜 일철이라, 바닷가에서 이렇게 더럽히고 가더라도 누가 지켜보거나 말리지도 못한답니다. 국립공원에서는 '취사 금지'인 줄조차 생각하지 않으니 어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