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가는 길목 (도서관일기 2012.8.2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여름에는 서재도서관을 널리 알리며 책손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책 갈무리는 끝냈어도 서재도서관을 널리 알리지는 못한다. 큰아이가 한참 크던 세 살 적에 인천을 떠나 충북 음성 멧골로 갈 적에도 이와 비슷했는데, 아이들하고 집에서 함께 부대끼는 겨를을 보내느라 막상 도서관에 머물며 책손을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언제나 내 마음은 ‘책보다 아이’ 쪽으로 기운다. 이제 둘째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는 두 살이니, 작은아이하고 복닥이고 큰아이하고도 어울리면서 ‘도서관보다 집’에 오래 머문다.


  곰곰이 돌아보면, 아이들 크는 나날이란 짧으리라.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크리라. 그동안 집에서는 집살림 잘 꾸리고, 책을 둔 도서관에서는 책이 안 다치고 곱게 깃들도록 하면 되리라.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도서관보다, 책 하나 알뜰히 아낄 고운 책손을 바라는 만큼, 책바다에서 책사랑을 익히고픈 이라면 언제라도 즐거이 마실을 올 테며, 이때에는 아이들과 함께 책손을 맞이하며 함께 놀 수 있겠지.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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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676) 코드(code) 1

 

  언제부터인가 유행말처럼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는 말이 퍼집니다. 대통령이 장관이나 여러 기관장을 뽑을 때에 “코드 인사”를 한다고도 말합니다. 참말 ‘코드’가 무엇이기에 여러 곳에 이 영어가 쓰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설마 싶어 국어사전부터 뒤적이는데, 뜻밖에 국어사전에 영어 ‘코드(code)’가 “(1) 어떤 사회나 계급, 직업 따위에서의 규약이나 관례 (2) 상사(商社)가 국제 전보에서 정하여 두고 쓰는 약호나 기호 (3) 정보를 나타내기 위한 기호 체계. 데이터 코드, 기능 코드, 오류를 검사하기 위한 검사 코드 따위가 있다”처럼 세 가지 말풀이를 달고 실립니다. 영어사전에서 다시 ‘code’를 찾아보면 “(1) 암호, 부호 (2) = dialling code (3) 프로그램 데이터 코드 (4) (사회적) 관례 (5) (조직·국가의) 법규”라고 풀이합니다.


  이래저래 따지지만, “코드가 맞는 사람”이나 “코드 인사”라고 하는 ‘코드’하고 걸맞는 말뜻은 찾기 어렵습니다. 이래저래 따지자면, “기호(嗜好)가 맞는 사람”이 “코드가 맞는 사람”일 텐데, 영어 ‘code’는 ‘記號’이지 ‘嗜好’는 아니에요.

 

 대통령과 생각이 안 맞다
 대통령과 말이 안 맞다
 대통령과 느낌이 안 맞다
 대통령과 마음이 안 맞다

 

  “뜻이 맞다”거나 “죽이 맞다”고 할 때에 비로소 ‘코드’하고 어울리는 말마디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어를 쓰자면 올바로 쓸 일이에요. 굳이 영어 아니어도 될 말마디이니, 알맞고 바르게 한국말을 살피면 좋겠어요. (4336.7.1.불./4345.9.25.불.ㅎㄲㅅㄱ)

 

..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7) 코드(code) 2

 

허균과 허난설헌, 우리 시대에도 계속 호출해야 하는 코드인가요
《신영복-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 51쪽

 

 “우리 시대(時代)에도”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오늘날에도”나 “요즈음에도”로 손볼 수 있어요. ‘계속(繼續)’은 ‘꾸준히’나 ‘한결같이’로 손질하고, ‘호출(呼出)해야’는 ‘불러야’나 ‘모셔야’나 ‘생각해야’나 ‘끌어들여야’로 손질해 줍니다.

 

 계속 호출해야 하는 코드인가요
→ 꾸준히 불러야 하는 사람들인가요
→ 한결같이 생각해야 하는 이야기인가요
→ 다시 되뇌어야 하는 꼭지점인가요
 …

 

  사람을 가리키니 ‘사람’이라 하면 됩니다.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를 살핀다면 ‘이야기’라 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을 둘러싼 무언가를 밝히거나 따진다면 ‘대목’이나 ‘꼭지점’ 같은 낱말을 들면 됩니다. 말투를 바꾸어, “오늘날에도 생각해야 하는가요”라든지 “요즈음에도 이야기할 값어치가 있는가요”처럼 말할 수 있겠지요. (4345.9.25.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허균과 허난설헌, 오늘날에도 꾸준히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인가요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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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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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태어나는 새 숨결
 [책읽기 삶읽기 116] 신영복, 《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멀고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각성과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변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144쪽).”고 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는 신영복 님 책 《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를 읽습니다. 신영복 님은 당신 글씨가 걸린 ‘변방’을 찾아 먼길 나들이를 했다는데, ‘변방(邊方)’은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 지역”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 (괴산) 거리의 가로등에도 고추와 임꺽정이 올라서 있다. 정작 소설 《임꺽정》의 문학적 위상이 어떤 것인지는 관심이 없다. 고추를 먹으면 임꺽정처럼 힘이 넘친다는 마케팅의 소재로 남아 있을 뿐이다 ..  (11쪽)


  신영복 님은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뒤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들어갔고, 감옥에서 스무 해를 살다가 나온 다음에는, 내처 서울 쪽에서 살아가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곧, 신영복 님한테 ‘한복판(중심)’은 서울이 되고, 고향 밀양은 ‘변두리’가 되었겠지요.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 서울로 갔고, 서울에서 한동안 대학교를 다니거나 출판사에서 일했지만, 이내 대학교는 그만두고 책일 또한 모두 접고서 고향 인천으로 돌아갔다가, 고향에서도 멀어진 시골로 삶터를 옮깁니다. 곧, 나한테 한복판은 시골이 되고, 서울이나 인천은 변두리가 됩니다.


.. 우리가 찾아간 서정분교는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놀라운 것은 학교 전체에서 풍겨 오는 풋풋한 흙냄새였다. 서울의 학교 운동장에는 없는 냄새였다 … (오대산 상원사) 종소리는 나를 깨뜨리고 멀리 오대산 전체를 품에 안았다 ..  (40, 100쪽)


  서울이나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내 삶터’는 변두리입니다. 부산에서든 대전에서든, 또는 춘천이나 순천이나 광주나 여수에서조차 ‘내 삶터 시골’은 변두리예요. 더욱이,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칠 때에, 고흥읍에서 보아도 우리 식구 깃든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은 한참 깊숙하게 들어간 ‘외딴 곳(변두리)’이에요. 이제 우리 마을 앞으로도 군내버스가 다니지만, 그리 멀지 않던 예전까지 우리 마을 앞에는 찻길이 없어 어떠한 자동차도 못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시골에서 네 식구 오순도순 툭탁툭탁 살아가며 생각합니다. 우리들한테 시골자락은 ‘한복판’입니다. 우리들한테 서울이나 도시는 ‘외딴 곳(변두리)’입니다. 우리 식구는 한복판인 시골자락에서 웃고 떠들며 노래하며 살아가면 즐겁습니다. 굳이 외딴 데까지 찾아갈 일이 없어요. 햇살을 누리고 바람을 마시며 냇물을 즐기는 한복판 보금자리가 좋습니다. 풀을 뜯고 나무를 어루만지며 멧새와 풀벌레 노랫소리를 온몸으로 맞아들이는 시골자락 한복판 보금자리가 예쁘다고 느낍니다.


  시골에서 태어나는 새 숨결을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자라나는 새 목소리를 헤아립니다. 시골에서 무럭무럭 크는 새 사랑을 그립니다. 시골에서 시나브로 일구는 새 손길과 눈길을 돌아봅니다.


  깊은 가을날 좋은 볕과 바람과 소리와 빛깔과 내음을 마시고 먹습니다. 마을마다 천천히 익는 감알을 바라보며 배부릅니다. 날마다 더 짙고 환하게 무르익는 나락을 바라보며 흐뭇합니다. 내가 안 심고 내가 안 베는 나락이지만,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나락논이 참 곱다고 느낍니다.


  누구인지 몰라도, 누군가 이 노오란 나락을 빻아 밥을 지어 먹겠지요. 누구인지 몰라도, 누군가 이 노오란 나락에 깃든 해님과 달님과 물님과 별님과 바람님과 흙님을 몸으로 받아들이겠지요. 시골에서 지내든 도시에서 지내든, 모든 고운 넋 깃든 나락 한 알을 먹으며 스스로 우주가 되고 스스로 빛이 되겠지요.


..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른 오죽헌은 그 규모부터 대궐같이 성역화되어 있었다. 주차장에 세워진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 (홍명희) 문학비는 주차장이 되어 있는 텅 빈 제월대 광장 가장자리에서 혼자 가을볕을 안고 있었다 ..  (56, 79쪽)


  이야기책 《변방을 찾아서》는 ‘변방’ 또는 ‘변두리’를 찾아간다고 글을 쓰지만, 시골사람 눈높이에서 바라보자면, 그예 ‘시골’ 나들이를 하는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래요, 시골 나들이예요. “시골을 찾아서” 도시를 떠나요. 아주 살짝 시골에 머물다 도시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흙내음’을 맡고 ‘햇볕’을 쬐며 ‘바람’을 마시다가는 ‘냇물’에 손을 적시고 ‘나무그늘’을 누리려고 시골로 와요. 시골에 참말 살짝 머물다가 이내 도시로 간다 하지만, 시골에서 슬기를 깨우치고 생각을 빛내요.


.. 내가 그동안의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자료 수집과 집필 구상 등 준비를 많이 할수록 틀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  (12쪽)


  뜻있는 이들이 참다운 한복판에 삶터를 꾸리면 기쁜 일이 되리라 생각해요. 겉치레나 겉꾸밈 같은 한복판이 아니라, 참답고 착하며 아름다운 한복판을 가슴 깊이 느끼면서 뜻있는 이들 좋은 보금자리가 좋은 마을이 되고 좋은 지구별 쉼터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기쁘리라 생각해요.


  도시가 복닥거리고 어수선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모두 도시에서 스스로 복닥거리면서 어수선하게 살아가잖아요. 도시에서 사람들이 아웅다웅 치고박고 다툰다 하면서, 막상 이처럼 말하는 사람들 모두 도시에서 스스로 아웅다웅 치고박고 다투면서 살아가고 말아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빌어요. 서로 믿고 아끼며 지내기를 빌어요. 서로 돕고 어깨동무하며 살아가기를 빌어요. 서로 좋아하고 서로 웃으며 지내기를 빌어요.


  시골에서 만나요. 나는 이쪽 시골에서 살아갈 테니, 당신은 저쪽 시골에서 살아가셔요. 서로서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실을 다녀요. 나는 오늘 걸어서 당신한테 찾아갈 테니, 당신은 모레에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오셔요. 나는 또 글피에 당신한테 자전거수레에 아이들 태우고 마실을 갈 테니, 당신은 또 이레 뒤에 식구들과 들길을 천천히 노래를 부르며 걸어서 찾아오셔요. 환하게 밝는 아침햇살 맞으며 길을 나서요. 어둑어둑 땅거미 느끼며 밥 한 그릇 나누어요. (4345.9.25.불.ㅎㄲㅅㄱ)


―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글,돌베개 펴냄,2012.5.21./9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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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9-25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의 책인가요? 이 책 좋았는데...

내가 그동안의 경험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자료 수집과 집필 구상 등 준비를 많이 할수록 틀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 (12쪽)
...그런거군요.

"시골에서 네 식구 오순도순 툭탁툭탁 살아가며 생각합니다 "- 행복한 가족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

파란놀 2012-09-25 18: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밑줄을 그은 대목 몇 군데를 빼고는
'글쓴이가 있는 이곳(중심)'과 '글쓴이가 없는 저곳(변방)'이
어떻게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좋은 삶을 빚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러나지 않더라고요.

시골(변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시(중심)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는데,
시골(변방)에 올 때면 다들 시골(변방)이 좋거나 훌륭하다 말하지만,
정작 도시(중심)를 떠나 시골(변방)로 삶터나 일터를
옮기는 일은 없어요.

언제나 '여행 이야기'로만 남는다고 할까요.

여행 뒷이야기를 넘어
스스로 어떤 삶을 새롭게 빚는다 하는 느낌과 마음을
글에 드러내지 못한다면...
가볍게 읽고 덮은 다음에 그저 그렇구나... 하고 생각해요...
 


 헌책 도서관

 


  우리 식구들이 시골마을에서 꾸리는 도서관으로 찾아온 사람이든 안 찾아온 사람이든, 우리 도서관을 말하면서 자꾸 ‘헌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이곤 한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이름이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 스스로 책을 모르고 책에 눈길을 두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쓸밖에 없구나 싶다.


  아주 마땅한 노릇으로, 먼저 국어사전부터 뒤적일 일이다. ‘헌책’이란 무엇인가. 종이가 낡거나 닳은 책이 ‘헌책’이 될 테고, 이 다음으로 누군가 읽은 책이 ‘헌책’이 된다. 곧, 아직 아무도 펼치지 않은 빳빳한 물건일 때에는 ‘새책’이요, 이 빳빳한 종이꾸러미를 누군가 손으로 집어 펼치면 ‘헌책’이 된다. 그러니까, 모든 책은 헌책이 된다. 또한, 모든 책은 새책이 된다. 종이꾸러미로 볼 때에, 사람들한테 읽히는 책이기에 헌책이요, 아직 모든 사람한테 알려지지 않은 책이니까 새책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두고두고 되읽히는 책이기에 헌책이며, 언제까지나 새로운 넋과 숨결을 불어넣기에 새책이다.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을 헤아려 본다. 지구별 모든 도서관에 깃든 책은 어떤 ‘책’일까. 도서관에서 ‘새책’을 사들여 갖춘다 할 때에, 도서관은 ‘새책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이 책시렁에서 꺼내어 읽고, 또는 집으로 가져가서 읽는 책들이 있는 도서관은 어떤 책이 있는 곳인가. 가만히 따지면, 도서관이야말로 ‘헌책’이 그득그득 있는 ‘헌책방’인 모양새이다.


  나는 내 책들(우리 식구 책들), 이른바 ‘내 서재’ 책으로 도서관을 열었다. 내 살림돈에서 달삯으로 낼 돈을 덜어 개인도서관을 꾸린다. 그러니까 우리 식구 도서관은 ‘서재도서관’이다. 서재도서관으로서 가장 눈여겨보며 살피는 갈래는 사진책이니 ‘사진책 도서관’이다. 지자체나 정부에서 꾸리는 도서관은 개인이 아닌 공공기관이 꾸리니까 ‘공공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겠지.


  다시금 헤아리면, 이 나라 모든 헌책방들은 ‘책을 파는 가게’이면서 ‘책을 살피는 도서관’과 같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나는 예나 이제나 이 나라 헌책방을 바라보며, ‘헌책방은 가게이면서 도서관’, 곧 ‘헌책방 = 헌책 도서관’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이 헌책방에도 새책방에도 즐겁게 나들이를 하면 좋겠다. 사람들이 도서관에서도 집에서도 책을 기쁘게 읽으면 좋겠다. 좋은 마음이 되어 좋은 책을 마주하고, 좋은 이야기를 아로새기며 좋은 삶으로 거듭난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4345.9.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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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단댕기·비단구두

 


  아이들한테 자장노래로 〈오빠 생각〉을 부를 때에, 나 스스로 미처 생각하지 못하면, 어릴 적 국민학교에서 길든 노랫말대로 부르고 만다. 나도 모르게 잘못된 노랫말이 튀어나오면 얼른 노래를 끊고, 숨을 고른 다음 다시 부른다. 사람한테 한 번 잘못 아로새겨진 말버릇은 고치기 힘들구나 싶은데, 나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는 틀을 놓지 않기에 내 잘못된 말버릇이 모두 씻기지 못하는지 모른다.


  요즈음에는 〈오빠 생각〉을 부르며 노랫말을 내 나름대로 바꾸어 본다.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을 “우리 오빠 말 타고 시골 가시면”으로 바꾼다. 그리고, 이 다음 노랫말은 “감알 잔뜩 사들고 오신다더니”로 바꾼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인데, 자꾸 서울 가느니 서울에서 무얼 사오느니 하는 노랫말을 듣거나 부르는 일은, 이 노랫말대로 나와 아이들을 길들이는 노릇이 되겠구나 하고 느낀다. 그래서 시골사람답게 이 시골(여기)에서 저 시골(저곳, 옆마을)로 나들이를 가서 감알을 사온다고 하는 흐름으로 바꾸어 본다.


  1990년에 ‘한겨레신문사’에서 《겨레의 노래》 두 권을 내놓는다. 이 노래책에서 처음으로 ‘그동안 잘못 알려진 노래’를 바로잡는다. 그러나, 이 노래책에서 노랫말을 바로잡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익히 길들던 대로 노래를 부르곤 한다. 이를테면, 최순애 님 〈오빠 생각〉을 부르며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하는 노랫말을 바로잡지 못한다. 비단구두란 없는데, 비단으로 구두를 만들 수 없고, 비단으로 만든 구두는 신지도 못하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노래로 끝없이 부르고 또 부른다. 최순애 님도 이 대목을 무척 안타깝게 여기셨지만, 사람들이 이 노랫말로 길들여져서 고치기 힘든데 어찌 하겠느냐 하고 말씀한 적 있다. 이 안타까움을 1990년에 비로소 바로잡으려 했는데, 너무 작은 움직임이었을까.


  그러나, 누구라도 생각해 보면 ‘비단구두’가 얼마나 어이없고 뜬금없는지 깨달으리라. 나도 국민학생 때에 ‘비단구두’는 뭔가 얄궂다고 느꼈다.


  신영복 님 책 《변방을 찾아서》를 읽다가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며 서울 가신 오빠는(72쪽)”이라는 글월을 본다. 신영복 님도 ‘비단구두’로만 알고, 이렇게 글을 쓴다. 그러나 이 노래 이 대목은 ‘비단댕기’이다. 최순애 님은 처음부터 ‘비단댕기’로 시를 썼는데, 이 시를 노래로 지어 내놓을 무렵, 일제강점기 군홧발이 ‘댕기’를 ‘구두’로 고쳤다. 왜 그랬을까? 뻔한 일이겠지. 아이부터 어른까지 널리 부르는 노래에 한겨레 넋과 얼을 북돋우는 대목이나 말마디가 깃들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려 했겠지.


  아이들한테 〈오빠 생각〉을 부를 때에, 곧잘 노랫말 한 마디를 살짝 바꾸기도 한다. 시골에 가서 감알을 사오는 이야기로 바꾸기도 하지만, 참말 시골사람답게 “우리 오빠 걸어서 읍내 가시면, 비단댕기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하고 불러 본다. (4345.9.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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