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한 줄, 춤추며 읽는 책

 


  백 권을 읽든 만 권을 읽든, 책읽기는 삶읽기로구나 하고 늘 깨닫습니다. 삶을 읽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많다 싶은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읽기’ 아닌 ‘훑기’를 한 셈이요, 삶을 읽을 수 있으면, 한 권이나 열 권을 읽었다 하더라도 사랑과 꿈을 가슴에 품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한 해에 백 권 읽기라든지 열 해에 천 권 읽기 같은 뜻을 세우는 일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아요. 다만, 몇 권을 읽자 하는 뜻은 좀 부질없어요. 나이 몇 살을 먹자는 뜻이 부질없고, 어떤 지위나 계급으로 오르자는 뜻이 부질없으며, 얼마쯤 되는 돈을 모으자는 뜻이 부질없어요. 삶을 누리려는 뜻을 품어야지요. 삶을 사랑하고, 삶을 아끼며, 삶을 나누려는 뜻으로 하루를 빛내야지요.


  비오는 소리를 들으며 비를 느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안개 드리우는 소리를 들으며 안개를 느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무지개 나타나는 소리를 들으며 무지개를 느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해 뜨는 소리를 들으며 햇살을 느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뚱맞다고 느낄 분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럴 테지요. 오늘날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달 뜨는 소리’나 ‘구름 흐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가로막는 자동차 소리와 기계 움직이는 소리와 손전화 떠드는 소리가 너무 커요. 송전탑에서 웅웅거리는 소리와 기차나 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대단히 큽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움직여 바람결 느낄 겨를이 없다 할 만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 아니고서야 풀벌레 노랫소리 듣는 사람이 없어요. 시골에서 텔레비전 없이 아이들과 복닥이는 사람 아니고서야 개구리 노랫소리 즐기는 사람이 없어요.


  시골에서 살아간다면 숲을 걸어요.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공원 풀밭을 걸어요. 내 눈과 마음을 살포시 쉬어요. 푸른 숨결 싱그러운 풀빛을 느끼며 살아요. 몸과 마음이 푸르게 거듭나도록 온힘을 기울여요. 사랑을 속삭이고 꿈을 노래해요. 사람으로 태어난 즐거움을 생각해요.


  《거인을 바라보다》(양철북,2011)라는 책 54쪽을 보면, “사람이 고래의 규모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수백 킬로미터 거리를 마치 우리가 한 블록 거리를 걷듯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이 동물에게 세계는 과연 무엇으로 느껴질까?”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오늘날 사람들로서는 고래 움직임을 헤아릴 길이 막혔겠지요. 그러나, 내가 사람이라면, 내가 산 목숨이라면, 내가 푸른 숨결이라면, 고래 움직임이든 참수리 움직임이든 나비 움직임이든 거미 움직임이든, 또렷하게 느끼면서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회사일과 입시공부에 쳇바퀴처럼 휘둘리면서 참마음을 잃고 참사랑을 잊기에, 소리도 느낌도 잃거나 잊지 싶어요.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이라는 책 225쪽을 보면, “배운다고 하면 무슨 대단한 공부라도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게 아니라 감동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요, 마음이 뭉클하게 움직이는 일이 배움이라 하겠지요. 즐거움을 느낄 때에 무언가 배워요. 기쁨을 느낄 때에 무언가 깨달아요. 슬프거나 괴로울 때에도 무언가 배웁니다. 고단하거나 아플 적에도 참말 무언가 알아채요.


  삶은 언제나 배움입니다. 삶은 날마다 새롭기에 날마다 새롭게 배웁니다. 하루하루 새삼스레 찾아오니, 하루하루 새삼스레 배웁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우고, 어른은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우리는 풀잎 하나를 마주하면서 새 숨결을 배우고, 바람 한 닢 살결로 느끼며 새 넋을 배웁니다. 별빛을 바라보면서도 배우고, 도시를 가득 메운 전깃불빛을 바라보면서도 배워요.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삼인,2008)이라는 책 60쪽을 보니, “일반 서민들은 아끼고 또 아끼고, 나아가 인생 자체를 소모하다시피 하며 아파트에 매달리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하는 이야기가 쏙 튀어나옵니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그러네, 하고 무릎을 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삶을 찾지 못하고 삶을 덧없이 흘리고 말아요. 삶을 어떻게 누려야 하는가 생각하지 못해요. 삶을 아름답게 즐기는 길을 걷지 못해요.


  대학교에 갈 까닭이 없어요. 자격증을 따야 할 까닭이 없어요. 학문을 하거나 책을 읽을 까닭조차 없어요. 왜냐하면, 삶을 누려야 하거든요. 아니, 삶을 누리려고 태어난 목숨이거든요. 사랑을 하려고 태어난 우리들입니다. 꿈을 키우며 환하게 빛내려고 얻은 목숨이에요.


  《도화동 사십계단》(청사,1990)이라는 시집에 실린 〈불타는 눈〉이라는 작품을 읽습니다. “신문팔이 새끼야아! / 신문팔이 새끼야! / 심술궂은 아이가 따라오며 놀렸다 / 때려주고 싶었지만 / 누가 들을까봐 도망치다가 / 목구멍이 뜨거워졌었다 / 신문팔이에겐 막 대해도 된다고 / 어디서 배웠을까 / 아이보다 세상이 더 무서웠던 / 그날부터 / 삼키는 눈물은 주먹처럼 굵어졌지만 / 눈이 눈물없이 불탔었다.” 삶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막말을 일삼고 맙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웃을 아끼지 못합니다. 꿈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도시에서 톱니바퀴 같은 노예가 되어 멍한 눈으로 바쁘게 구릅니다. 아이들 어깨가 너무 무겁습니다. 아이들 눈망울에 빛이 감돌지 못합니다.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이 없습니다. 아이들 목소리에 고운 노래가 감돌지 않습니다. 좋은 삶을 춤추도록 이끌 책 하나 어디에 있을까요.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00) 분하다憤/忿 1 : 분해 한다

 

우리는 불행과 절망에 대해 분노하고 속임수, 사기를 당한 것같이 분해 한다
《김원숙-그림 선물》(아트북스,2011) 284쪽

 

  “불행(不幸)과 절망(絶望)에 대(對)해”는 어떤 마음을 가리킬는지 헤아려 봅니다. ‘불행’은 흔히 ‘행복(幸福)’과 맞서는 낱말로 여깁니다. ‘행복’은 ‘즐거움’을 한자로 옮긴 낱말입니다. 즐거움과 맞설 만한 마음이라면 ‘괴로움’쯤 되겠지요. 즐거움과 비슷한 마음은 기쁨입니다. 기쁨을 헤아리면 ‘슬픔’을 떠올릴 수 있어요. ‘절망’은 ‘희망(希望)’이 끊어진 모습을 가리킵니다. 곧, 희망이 없는 모습이요, 꿈이 없는 모습이 되겠지요. 벼랑에 내몰린다든지 마음이 무너졌다고 할 만합니다. 말뜻을 돌아보면, 이 대목은 “괴로움과 아픔을”이라든지 “슬픔과 아픔을”이라든지 “괴롭고 꿈이 사라졌을 때”로 손볼 수 있습니다.


  ‘사기(詐欺)’는 “나쁜 꾀로 남을 속임”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보기글은 “속임수, 사기를 당(當)한 것같이”로 나오는데, 겹말입니다. “속임수에 넘어간 듯이”로 손질합니다. ‘분노(憤怒)’는 “몹시 성을 냄”을 뜻하는 한자말이에요. 그러니까 ‘분노하고’는 “몹시 성을 내고”나 “몹시 싫어하고”로 다듬습니다.


  외마디 한자말 ‘분(憤/忿)하다’는 “(1) 억울한 일을 당하여 화나고 원통하다 (2) 될 듯한 일이 되지 않아 섭섭하고 아깝다”를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성나다’요 ‘섭섭하다’나 ‘아깝다’를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말로 ‘성나다’라 하면 될 텐데, 이런 외마디 한자말을 쓰는 셈이고, ‘섭섭하다’나 ‘아깝다’나 ‘서운하다’ 같은 말을 써야 할 자리에 이런 외마디 한자말이 끼어드는 꼴입니다.

 

 속임수, 사기를 당한 것같이 분해 한다
→ 속임수에 넘어간 듯이 골을 낸다
→ 속임수에 넘어갔다며 성을 낸다
→ 속임수에 넘어갈 때처럼 울컥 한다

 

  어릴 적부터 ‘성’과 ‘골’이라는 말을 썼고, 이와 아울러 ‘분(憤/忿)’과 ‘화(火)’라는 말을 썼습니다. 어린 우리들도 이런 말을 썼고, 어른들도 이런 말을 썼어요. 어린 우리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이런 말 저런 말을 배웁니다. 어른들도 아마 당신이 어릴 적 당신 둘레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었겠지요. 그런데, 어른들은 ‘성·골’하고 ‘분·화’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 가늠하지 못했어요. 어른들부터 어느 쪽이 한국말이고 어느 쪽이 한자말인지 몰랐구나 싶어요. 어른들부터 당신 어릴 적에 이런 말 저런 말 들으면서 옳고 바르게 말쓰임새를 가다듬지 않았구나 싶어요. 알맞게 쓰는 말을 살피지 않은 어른들이지요. 슬기롭게 나눌 말을 생각하지 못한 어른들이에요.


  어떻게 보면 함부로 어른들 탓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어릴 적 어른들은 일제강점기에 한국말을 빼앗긴 채 일본말을 써야 했어요. 일제강점기에 한국말을 빼앗긴 옛 어른들은 당신 아이들한테 한국말 아닌 일본말을 가르쳤고, ‘한국말 아닌 일본말을 배운’ 지난날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서 새로 태어난 아이들한테 ‘한국말다운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에 찌들거나 짓밟힌 한국말’을 가르쳤어요. 망가진 한국말을 살리지 않고 가르쳤지요. 무너진 한국말을 되살리지 않고 가르쳤지요.


  오늘날에 이르러도 슬픔은 가시지 않습니다. 아직도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되찾지 못해요. 앞으로도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되살리자면 아득해 보입니다. 이제 한국 사회는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사랑하고 아끼는 흐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한국 사회는 영어능력과 한자능력 키워 자격증이나 급수증 따는 데에 휘둘려요. 아이들이 한국말 아름답게 배우도록 이끄는 어른이 드물어요. 어른부터 스스로 한국말 아름답게 새로 익혀 즐겁게 살아가려는 생각을 품지 못해요.


  갑갑한 노릇이거나 가슴을 칠 만한 노릇일 텐데, 성을 내는 사람도 없고 골을 내는 사람도 없습니다. 슬프다 여기는 사람도 없고, 안타깝다 여기는 사람도 없습니다. 4346.2.4.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는 괴롭거나 꿈이 무너질 때에 몹시 성을 내고, 속임수에 넘어간 듯이 골을 낸다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그림 읽기
2013.1.25. 큰아이―무엇을 그리니

 


  동생이 새근새근 잠든다. 큰아이는 동생이 끼어들거나 달라붙을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리려 한다. 무엇을 그리려나. 네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겠지. 개구리를 그리니. 예쁜 누군가를 그리니. 얼음과자를 그리니. 그냥 삐죽삐죽 금을 그으며 노니.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 그림 읽기
2013.2.2. 두 아이―나란히 그림놀이

 


  그림종이 펼친 누나 곁에서 똑같이 그림놀이 하겠다는 산들보라는 누나 눈치를 보면서 손을 대도 될는지 안 될는지 엿본다. 아버지가 그린 그림 옆에 죽죽 금을 긋다가 누나가 너 왜 여기에 그렸느냐고 한 소리 하니 끽 소리 못하고 손가락으로 혀를 긁으며 조용히 있는다.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개구리네 한솥밥 민들레 그림책 8
백석 지음, 강우근 그림 / 길벗어린이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46

 


맛난 아침과 맑은 웃음
― 개구리네 한솥밥
 백석 글,강우근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2006.11.1./9000원

 


  아침을 차립니다. 아이들 깨어나서 신나게 놀 무렵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 아침을 차립니다. 아침마다 새로 짓는 밥이기에 쌀은 어젯밤에 미리 불립니다. 국으로 끓일 여러 가지를 미리 챙깁니다. 아이들이 배고파 무언가 먹을거리를 찾기 앞서 밥물을 안칩니다. 오늘은 푸성귀 하나를 데치고, 숙주나물과 표고버섯을 버무려 데치기로 합니다. 어제 이렇게 한 번 차리는데, 두 아이 다 잘 먹더군요.


  밥이 끓을 무렵 감자와 양파와 무를 썹니다. 국 끓일 냄비에 불을 올리고, 썰어 둔 감자와 양파와 무를 넣습니다. 버섯도 조금 썰어 국냄비에 넣습니다. 다른 냄비에는 물만 넣고 끓이다가 소금을 풀어 간을 맞춥니다. 그러고는 미리 헹군 푸성귀를 폴폴 끓는 냄비에 넣어 데칩니다. 이러면서 두부 반 모와 곤약 한 덩이를 헹군 뒤, 숙주나물과 표고버섯 데치는 냄비에 함께 넣습니다.


  국냄비 밑물은 어제 푸성귀를 데친 다음, 숙주나물과 표고버섯을 데친 물입니다. 오늘 푸성귀를 데친 다음, 숙주나물과 표고버섯 데친 물은, 또 이듬날 국을 끓일 때에 쓰면 되지요. 다시마를 몇 시간 즈음 불린 물로 국을 끓일 때에도 맛난데, 푸성귀를 데친 물로 국을 끓여도 맛납니다.


  밥은 먼저 다 됩니다. 데친 나물을 그릇에 담습니다. 두 아이를 부릅니다. 밥상에 수저 놓으라 이릅니다. 다 된 밥은 조금 식어 바로 먹어도 될 만큼 따스합니다. 국을 뜨고 두부를 꺼내 알맞게 썹니다. 이동안 세발나물을 헹구어 그릇에 담습니다. 두 가지 나물은 데치고, 한 가지 나물은 날푸성귀입니다. 여기에, 양배추랑 깻잎을 썰어 날푸성귀 하나를 더 마련합니다.


  밥상이 거의 풀밭이네 싶은데, 풀밭인 밥상이 내 몸에 잘 맞는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 밥상을 아이들이 얼마나 잘 먹을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내가 혼자 살 적에는 이런 밥상을 차린 일이 없다고 떠올립니다. 처음 혼인해서 살 적에도 이만 한 밥상을 꾸린 적이 없다고 떠올립니다. 날마다 조금씩 배우고, 나날이 내 몸을 가다듬으면서 오늘과 같은 밥상을 차리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바라는 밥상이 이와 같은 모습이기에, 차츰차츰 내 밥상을 이렇게 꾸리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풀밭 밥상을 차리면 풀을 듬뿍 먹습니다. 풀밭 밥상을 먹으면 풀내음 나는 똥을 눕니다. 들풀이 내 몸으로 스며듭니다. 풀빛이 내 마음으로 젖어들어요. 내가 먹을 밥을 내 손으로 일굴 때에 내 몸이 가장 좋아한다는 말을 되새깁니다. 어떤 대단한 먹을거리를 차려야 하지 않겠지요. 내 몸이 기뻐하고 내 마음이 홀가분한 먹을거리를 마련하면 아름다운 하루를 누리겠지요.

 

 


.. 불을 받아 준 개똥벌레, 짐을 져다 준 하늘소, 길을 치워 준 쇠똥구리, 방아 찧어 준 방아깨비, 밥을 지어 준 소시랑게, 모두모두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었네 ..  (38쪽)


  백석 님 글에 강우근 님이 그림을 붙인 그림책 《개구리네 한솥밥》(길벗어린이,2006)을 읽습니다. 백석 님은 어떤 넋으로 〈개구리네 한솥밥〉과 같은 글을 썼을까요. 강우근 님은 어떤 얼로 그림을 그려 새로운 이야기책 《개구리네 한솥밥》을 꾸렸을까요.


  개구리 곁에 개똥벌레가 있습니다. 개똥벌레 곁에 하늘소가 있습니다. 하늘소 곁에 쇠똥구리가 있고, 쇠똥구리 곁에 방아깨비가 있어요. 방아깨비는 소시랑게와 이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서로가 서로를 좋아합니다. 한솥밥이란 함께 먹는 밥이요, 함께 즐기는 삶입니다. 평화로운 밥이면서, 아름다운 삶입니다.


  나한테 즐거운 일은 이웃한테도 즐거운 일입니다. 내가 기쁘게 누리는 놀이는 동무하고도 기쁘게 누리는 놀이입니다. 나한테 슬픈 일은 이웃한테도 슬픈 일이 될 테지요. 맛나게 밥을 먹으면서 맑게 웃고, 밥을 못 먹으며 배를 곯는다면 힘겹게 울 테지요.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요. 경제개발이란 무엇이고, 우주개발은 또 무엇일까요. 새 고속도로는 우리 삶에 어떤 이바지를 하고, 공장 하나 더 짓거나 새 손전화기 하나 거듭 만드는 일은 우리 삶을 얼마나 빛낼 만한가요.


  들판에 풀이 자라고, 숲에서 나무가 자랍니다. 풀 한 포기는 아이가 먹어도 맛나고 할머니가 먹어도 맛납니다. 나무열매는 내가 먹어도 맛있고 남이 먹어도 맛있습니다. 햇살은 골고루 내리쬡니다. 바람은 산뜻하게 붑니다. 따사로운 하루가 찾아들고, 즐거운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434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3-02-04 15:05   좋아요 0 | URL
백석 시인이 쓴 책이군요.

밥상이 거의 풀밭이 되려면 손이 많이 간 밥상이에요. 풀로 반찬을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들어요. 정성과 영양이 듬뿍 담긴 밥상으로 최고죠.
채식이 몸에 좋다고 하니 이런 밥상을 많이 차릴려고 노력한답니다. 소화도 잘 돼서 좋아요. ^^

파란놀 2013-02-04 21:43   좋아요 0 | URL
에고... 그런데, 풀밥상에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요.... ㅠ.ㅜ
고기 반찬이나 뭐 이것저것 조리하는 반찬은
참말 외려 손이 덜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