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 시골사람

 


  서울에 있는 어느 사진잡지에서 ‘사진대담’을 한다며 나더러 서울로 와서 이야기를 나누어 달라고 전화를 건다. 그러마 하고 얘기하면서, 다만 나는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살기에, 적어도 버스삯은 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잠은 아는 분들 댁에서 자더라도 찻삯은 칠만 원 돈이 되니 잡지사에서 댈 수 있겠느냐고 여쭌다. 다른 돈은 몰라도 찻삯은 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뒤, 나하고 함께 사진 이야기를 나눌 분을 찾다가 잘 안 되어 이달에는 취소하고 다음에 새로 자리를 잡아 마련한다고 전화를 건다. 내가 함께 사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는 분들이 전북 진안에 계신 분하고 부산에 계신 분인데, “다들 지방 분들이라 섭외가 …….” 하면서 너그러이 헤아려 달라 이야기한다.


  문화도 예술도 서울이 한복판이라 할 테지. 문화쟁이도 예술쟁이도 거의 다 서울에서 살아가며 일한다 할 테지. 그러니까, 사진잡지이든 그림잡지이든 문학잡지이든, 으레 서울에서 모임을 꾸릴 테고, 서울에서 책을 낼 테며, 서울에서 이야기잔치를 열 테지.


  서울사람끼리 하는구나 생각하다가, 서울까지 오가느라 내 몸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되니 고맙다고 생각하다가, 시골사람 목소리는 ‘서울에서도 시골에서도 듣기 어렵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시골에서 숲을 바라보고 숲내음 맡으며 숲소리 즐기며 조용히 살자 하고 생각한다.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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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식구들 먹을거리 장만하려고 읍내에 나가는 길에 장바구니 여럿 챙긴다. 등에 메는 가방에는 가장 무거운 것을 넣고, 가방이 꽉 찬 뒤에는 장바구니를 하나씩 꺼내어 담는다. 그런데 큰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거닐며, 또 다리 아프다는 큰아이를 품에 안고 길을 걷자니, 장바구니 여럿 들고 지고 하자니 퍽 힘들다. 가만히 보면, 저잣거리로 나들이 다니는 살림꾼은 장바구니 여럿 챙긴다 하더라도 너무 힘들겠구나 싶다. 차라리 가방을 하나 더 챙길 때가 나으리라 본다.


  군내버스에 탄다. 장바구니 여럿이니 발밑에 두면서 이 녀석들 건사하느라 애먹는다. 참말 장바구니로 물건 챙겨서 다니기란 수월하지 않다. 할머니들은 가게에서 내주는 비닐봉지를 여럿 손에 쥐고, 보자기로 짐을 묶어 들기도 하는데, 손아귀가 참 아프시겠지. 서른 해 쉰 해 예순 해, 오직 손아귀힘으로 짐을 들어 나르는 나날이었으리라. 하루하루 알이 배기고 굳은살 박혀 딱딱해지는 손바닥은 나무를 닮는다. 군내버스에 탄 할머니 한 분, 오늘 마침 읍내 장날이라 사람 북적북적대니, “오늘은 옴시롱 감시롱 차가 되다.” 하고 한 마디.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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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냄새 책읽기

 


  설날을 앞두고 우리 식구 먹을거리를 장만하려고 읍내에 나가는 길, 군내버스를 기다린다. 작은아이는 집에서 어머니와 있고 큰아이는 아버지하고 저잣거리 마실을 나간다. 아버지 손을 잡고 신나게 뛰는 큰아이는 버스 타는 곳 둘레에서 이리 달리고 저리 기웃거리면서 논다. 길바닥에 구르는 돌을 주워 도랑에 휙 던지기도 하고, 마늘밭 풀잎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이윽고 군내버스가 들어온다. 버스가 가까이 다가오며 설 즈음, 갑자기 큰아이는 코를 손으로 감싸쥐면서 “으, 버스냄새! 버스냄새 싫어.” 하고 말한다.


  문득 나도 느낀다. 아니, 큰아이가 코를 손으로 감싸쥘 즈음 나도 버스에서 기름 타는 냄새를 느꼈다. 그런데, 큰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냥 지나쳤을 냄새였구나 싶다.


  큰아이는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기차를 타든, 전철을 타든, 배를 타든, 언제나 코를 감싸쥔다. 냄새가 난다며 “아우, 냄새!” 하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이것을 타든 저것을 타든 냄새를 느낀다. 오늘날 문명사회 탈거리는 모두 기름을 태워서 움직이고, 기름을 태워서 움직이는 만큼 차 안팎에 기름 타는 냄새가 난다. 전철이라면 기름 타는 냄새는 안 난다 할 텐데, 다른 끔찍한 냄새가 아주 많다. 전기 무시무시하게 먹는 냄새, 쇳바퀴 긁으며 나는 냄새, 쇳덩이와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차몸뚱이에서 피어나는 냄새 …….


  택시를 타든 자가용을 얻어 타든, 또 짐차를 타든, 참 냄새 때문에 고단하다. 겨울이라 하더라도 창문을 열며 바람을 갈고 싶다. 바깥바람을 쇠면서 어질어질한 머리를 쉬고 싶다. 군내버스가 정갈한 시골길을 달리더라도 버스 안팎에는 기름 타는 냄새가 흐르니 머리가 아프다. 이른봄이나 늦가을에는 에어컨을 안 켜기에 이때에는 창문을 열며 바람을 쐬니 시원하지만, 한여름에는 군내버스도 으레 에어컨을 켜니까, 기름 타는 냄새에 에어컨 바람 냄새가 섞여 아주 골이 띵하다.


  도시사람은 참말 어떻게 견디나. 나도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퍽 오랫동안 도시에서 살았는데, 나는 참말 도시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 식구가 정갈한 두멧시골에서 살고, 군내버스조차 거의 안 타고 사는 일이란, 서로서로 얼마나 숨결을 지키는 일인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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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놀이 3

 


  겨울날 방바닥에 깔개를 놓는데, 아이들은 날마다 무언가를 쏟고 엎으며 어지른다. 하루에 두세 번씩 깔개를 털다가, 볕 좋은 날 깔개를 빨아 마당에 넌다. 작은아이는 이불놀이를 하고, 큰아이는 빨래대 동그란 막대에 올라탄다. 어라, 네가 아무리 몸무게가 가볍다 하더라도 쇠막대가 휘는걸. 거기는 놀이터 쇠막대가 아니걸랑. 다른 데를 올라타며 놀아 주라.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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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카
우미노 치카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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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15

 


좋아하는 꿈대로 살아가기
― 스피카
 우미노 치카 글·그림,서현아 옮김
 시리얼 펴냄,2012.8.25./7000원

 


  추운 겨울날 포근한 겨울비가 내립니다. 여섯 살 큰아이는 겨울비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왜 눈이 안 오고 비가 와?” 왜 눈이 안 오고 비가 올까요. 네 식구 살아가는 두멧시골 고흥은 따스한 곳이기 때문일 테지요. 다른 데에는 눈이 펑펑 내리더라도 이곳은 비가 살살 흩뿌리거든요.


  빗물이 온 들과 숲을 적십니다. 마당 한켠 후박나무와 동백나무도 빗물에 젖습니다. 포근한 겨울비라지만, 아직 들풀한테는 차가운 빗물일 수 있어요. 엊그제 해가 따사로이 비추며 막 봉오리 벌린 들꽃은 ‘아이 추워!’ 하면서 서둘러 봉오리를 닫고 오들오들 떨는지 몰라요. 냉이꽃도 봄까지꽃도 광대나물꽃도 모두 벌벌 떨며 얼른 봄 오기를 빌는지 모릅니다.


- 아빠랑 나는 자동차로 바닷가를 달려 언젠가 셋이서 왔던 먼 동물원에 찾아왔다. 오늘은 생일이다. 아빠 생일은 아니다. 내 생일도 아니다. 엄마 생일이다. (3쪽)


  눈이 드문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퍽 서운합니다. 눈밭에서 손과 볼이 꽁꽁 얼더라도 눈놀이 하는 즐거움이 몹시 큰 줄 알거든요. 눈을 뭉치고 싶고, 눈을 먹고 싶고, 눈을 맞고 싶습니다. 눈밭에서 구르고 싶고, 눈송이를 만지고 싶습니다.


  그래, 이곳에는 눈이 드물어요. 그렇지만, 바람이 있어요. 구름이 있어요. 맑은 햇살이 있어요. 일찍 깨어나는 들꽃이 있어요. 한갓지게 먹이를 찾는 들새와 멧새가 있어요.


  아이한테 바람내음 맡아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람은 어떤 내음을 실어 우리한테 찾아오는가 묻습니다. 들에서는 어떤 내음을 맡을 수 있고, 풀잎을 쓰다듬을 때에 어떤 느낌인지 헤아려 보라 이야기합니다.


  올겨울에는 12월 첫머리에 제법 추웠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동백나무는 12월에는 꽃봉오리가 열리지 않았어요. 나중에 살피니 잘 안 보이는 깊숙한 데에서 두세 송이 피었다가 찬바람에 꽁꽁 얼었는데, 엊그제 살피니 새로 한 송이 막 피어났더군요.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면 동백꽃 보자고 해야지요. ‘아이야, 우리 시골에 눈은 얼마 없지만, 이렇게 꽃이 있단다. 아직 찬바람 부는데 이처럼 곱게 피어나는 꽃이 있어. 너도 알지? 우리 살아가는 이 마을 이름은 동백마을이잖아.’


- “아, 진짜 어딜 가나 똑같네. 우리 집도 그래. ‘성적 떨어지면 발레 그만둬!’ 하고.” (20쪽)
- “그런데 너, 몇 번이나 하는 말이지만, 발레는 이제 그만하지 그러니? 대학입시가 더 중요하잖아. 물론 좋아하는 건 엄마도 이해하지만, 발레로 먹고사는 사람은 수천 명 중 하나도 안 되는 거 알아?” (23쪽)


  아직 마을 어르신들이 풀약을 안 치셨을 때, 봄풀을 한껏 누리려고 생각합니다. 이 풀을 뜯고 저 풀을 캐면서 손과 몸과 마음을 살찌우려고 생각합니다. 날이 더 풀리면 톱을 들고 대밭에 가서 잘 자란 대나무 몇 그루 자를 생각입니다. 대나무로 짐시렁을 만들어 보려고요. 그럼, 아직 이럭저럭 추운 이 겨울에는 무엇을 할까요. 음, 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까. 옷 두툼하게 입고 마실을 다닐까. 자전거수레를 끌고 겨울자전거를 탈까. 밥 맛있게 지어 먹고 서재도서관 나들이를 할까.


  아침 햇살 살며시 스며듭니다. 빗방울은 거의 그칩니다. 먹이 찾는 멧새 몇 마리 마당을 가로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마을 사이로 흐르는 조용한 바람을 느낍니다. 구름이 짙게 끼었지만 날은 퍽 밝습니다. 구름이 끼면 빛이 줄지만, 구름이 끼기에 그늘이 생기고, 그늘이 생기며 풀과 나무는 얼마쯤 쉽니다. 구름이 걷히며 따스한 볕이 드리우고, 따스한 볕은 새삼스레 풀과 나무를 살찌웁니다.


  사람도 볕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볕을 살갗으로 쬐며 숨결을 북돋웁니다. 볕을 듬뿍 머금은 풀과 곡식과 열매를 먹으며 목숨을 잇습니다. 볕이 없거나 빛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사람답게 숨결을 건사할 수 없어요. 그리고, 볕이 드리울 흙이 있어야겠지요. 볕이 흙으로 드리우며 풀과 나무가 볕을 먹어야 합니다. 또한, 볕이 드리우는 따스한 기운 머금는 바람이 흐르며 사람과 풀과 나무가 푸르게 숨을 쉬어요.


- “뭔가를 좋아한다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 웃음거리가 될 만큼?” (28쪽)
- “그래도, 울어도 그만둘 수 없을 만큼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건, 분명 굉장한 일일 거야.” (31쪽)


  우미노 치카 님 만화책 《스피카》(시리얼,2012)를 읽습니다. 좋아하는 꿈대로 살아가고픈 사람들 이야기를 읽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좋아하는 꿈을 누리면서 살아가고프지, 어떤 눈치나 눈길에 휘둘리면서 살아가고프지 않습니다.


  꿈은 숫자로 따지지 않습니다. 꿈은 성적이나 시험이나 등수로 매기지 않습니다. 꿈은 사랑으로 헤아립니다. 꿈은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내가 일구는 삶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길을 걷습니다. 내가 누리는 하루이기에, 내가 꿈꾸는 길을 걷습니다. 그렇지요. 내 삶을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리며 일굴 까닭 없어요. 내 삶을 다른 사람 눈치에 휩쓸리며 걸어갈 까닭 없어요.


  하늘을 좋아해 주셔요. 해를 아껴 주셔요. 빗물과 눈송이를 사랑해 주셔요. 흙을 보살펴 주셔요. 풀과 나무를 안아 주셔요. 풀벌레와 들짐승과 멧새를 두루 지켜 주셔요.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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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2-0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꿈대로 살아가기 - 를 지지합니다. 어떤 강요가 필요없어요. 어떤 강요가 해악일 때가 많아요. 제 딸들한테 꿈에 관한 한, 자유를 줬어요.

저는 하늘을, 해를, 빗물을, 눈송이를, 풀과 나무를 사랑하는 1인이에요. ^^

파란놀 2013-02-04 21:19   좋아요 0 | URL
모든 아이도,
또 모든 어른도,
좋아하는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