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46] 골안

 


  어느 시골에나 ‘골안마을’ 또는 ‘골안말’이 있습니다. ‘큰골’과 ‘작은골’이 있습니다. 이와 아울러 ‘골밖’이 있어요. 지도에 이러한 이름이 적히기도 하지만, 지도에조차 이름은 안 나오면서, 시골사람 입과 입으로 이야기하고 대물림하는 조그마한 마을 이름 있습니다. 골짜기 안쪽이라 골안이라면, 골짜기 바깥쪽이라 골밖이겠지요. 큰 골짜기라서 큰골일 테고, 작은 골짜기라서 작은골일 테지요. 큰 냇물 흐르는 ‘한내’ 있습니다. 꽃이 많대서 ‘꽃골’ 있습니다. 아마 이 나라 어느 곳에나 ‘꽃골’이라는 이름 붙는 마을 제법 많으리라 느껴요. ‘한티’나 ‘밤티’ 같은 이름 또한 곳곳에 많으리라 느껴요. 이런 마을 이름 듣고, 저런 마을 이름 만나면, 곰곰이 먼먼 옛날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런 마을에 처음 깃든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떠올리고, 저런 마을에 저 이름 붙인 이들은 어떤 삶이었을까 떠올립니다. 이제 한국은 어느 곳이나 삽차와 밀차 들이닥쳐 개발을 하느라 골안이나 골밖이 거의 사라집니다. 골안마을 사라지면 골안집도 사라집니다. 골안집 사라지면 골안마을에 있던 조그마한 골안가게도 사라집니다. 골안마을 사라지면서 골안사람 사라지고, 골안나무도 골안꽃도 골안숲도 모두 사라집니다. 수수한 이름 사라진 자리에 댐이 생기고 고속도로 생기며 공장 생깁니다. 기찻길 생기고 멧자락에 구멍이 생기며 골프장이나 발전소 생깁니다. 4346.5.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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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는 ‘부산 책’을

 


  대구에 갈 일이 있으면 대구에 있는 헌책방을 꼭 찾아간다. 책내음 맡고 싶기도 하지만, 대구에서는 ‘대구 책’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청주에 갈 일이 있으면 청주에 있는 헌책방을 꼭 찾아가고, 대전에 갈 일이 있으면 대전에 있는 헌책방을 꼭 찾아간다.


  새책방이나 도서관을 찾아가도 ‘대구 책’이나 ‘청주 책’이나 ‘대전 책’ 만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새책방에는 그 고장 책이 퍽 드물다. 인천에 있는 새책방이라서 ‘인천 책’ 알뜰히 갖추거나 보여주지 않는다. 제주에 있는 새책방이라서 ‘제주 책’을 살뜰히 건사하거나 알려주지 않는다. 그 고장 헌책방에 찾아가서야 비로소 그 고장 책을 만나고, 헌책방에서는 반갑고 놀라운 책을 알맞게 값을 치르며 ‘내 책’으로 장만할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지난날 전국에 인문사회과학책방 많이 있을 무렵에는, 전국 인문사회과학책방마다 ‘그 고장 책’이 꽤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고장에서 씩씩하게 한길 걷는 사람들 조그마한 이야기꾸러미 조그맣게 내놓아 조그맣게 팔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인문사회과학책방 거의 모조리 사라지면서, ‘그 고장 책’은 놓일 자리가 없다. 다만,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나는 북카페에서 ‘그 고장 책’을 다뤄 줄 수 있다면 좋으리라. 차 한 잔 마시는 자리 곁에 ‘그 고장 책’을 놓는 책시렁 한 칸 마련한다면 좋으리라. 이런 북카페 있다면, 나는 아이들과 함께 그 북카페를 찾아가서 ‘그 고장 책’을 흠뻑 느끼고 싶다.

 

 춘천에 마실을 갈 적에 춘천 시인과 사진작가와 화가가 내놓은 시집·사진책·그림책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순천이나 광주에 갈 적에 순천이나 광주 작가들 자그마한 책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부산에서는 ‘부산 책’ 만나고 싶으며, 인천에서는 ‘인천 책’ 만나고 싶다. 고장에서 책방이나 찻집 꾸리는 분들이 이녁 고장에서 삶빛 길어올리는 몫 어여삐 할 수 있기를 바란다. 4346.5.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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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쓸 수 있는 책

 


  책은 누구나 쓴다.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그러나, 모든 책이 누구한테나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책이 새책방에 오래오래 남지 못하며, 모든 책이 헌책방 책시렁에 놓이지 않는다. 모든 책이 백 해나 이백 해를 견디지 않는다.


  어떠한 책이든 쉰 해가 지나면 ‘옛책(고서)’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여러모로 섬길 만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옛책 이름이 붙는대서 모든 옛책이 책으로서 값어치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나이 오래 먹은 책일 뿐, 딱히 다른 값이 깃들지 못한다.


  나무는 백 살 지나고 오백 살 지나며 천 살 지나면, 나이 한 살마다 더 깊고 너른 넋과 숨결 깃든다. 그러나, 책은 어떠한 책이든 나이값에 따라 더 섬기거나 모실 만하지 않다. 그저 어느 한때 쓸쓸한 자취를 보여줄 뿐이다.


  처음부터 아름답게 빚은 글로 아름답게 엮은 책일 때에 오래오래 아름다이 사랑받는다. 비록 모든 사람이 알아보거나 즐겁게 읽는 책이 못 된다 할지라도, 아름답게 빚은 글은 다문 한 사람이거나 열 사람이거나 백 사람이 되더라도, 두고두고 아름답게 읽어 주어, 사람들 마음에 아름다운 사랑 감돌도록 이끈다.


  책은 누구나 쓴다. 글은 누구나 아름답게 쓸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고서야 글을 아름답게 쓰지 못한다. 아름다운 삶에서 아름다운 사랑 길어올릴 때에 아름다운 글을 써서 아름다운 책을 빚는다. 아름다운 꿈을 꾸며 아름다운 마음 북돋울 때에 아름답게 물려주면서 물려받을 책을 빚는다.


  백 살 묵은 책이라 하는 이름 하나만 얻는 책이라면, 이러한 책이 된 나무는 얼마나 서글플까. 오백 살 묵은 책이라 하는 이름 빼고는 달리 아무 값이 없는 책이라면, 이러한 책이 된 나무는 얼마나 서운할까.


  글을 쓴 이가 아름답게 살아가지 못한 나머지, 어떤 사람들은 책을 불태우기도 한다. 글을 쓴 이가 못된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어떤 사람들은 책을 내다 버리기도 한다. 책을 펴낸 곳에서 얄궂은 짓을 저지른 탓에, 어떤 사람들은 책을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글을 쓰거나 책을 낼 적에는 종이 한 장이 나무인 줄 헤아려야지 싶다. 글을 읽거나 책을 장만할 때에는 책 한 권이 나무에서 온 줄 느껴야지 싶다.


  곧,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 한다면, 누구나 나무를 아낄 수 있다는 뜻이요, 누구나 숲을 사랑할 수 있다는 소리이며, 누구나 우리 삶을 새롭게 빛내는 길을 찾는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4346.5.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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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6 0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저도,
글을 읽거나 책을 장만하거나 읽을 때
책 한 권이 나무에서 온 줄을,
한 번 더 느끼며 읽어야겠습니다.

파란놀 2013-05-26 06:37   좋아요 0 | URL
책도, 책상도, 걸상도, 여느 종이와 수첩도, 연필도...
우리 둘레에는 나무로 이루어진 것 참 많아요.
언제나 나무를 가만히 헤아려 보면서
숲이 있기에 삶이 있구나 하고 느껴요...
 

풀꽃놀이 1

 


  두 아이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한참 안 들어오고 조용하더니, 둘이 히히 웃으면서 돌아온다. 뭘 하고 왔는가 하고 들여다보니, 큰아이가 제 팔뚝에 토끼풀을 빙 둘러 팔찌를 만들고, 제 동생 팔뚝에도 토끼풀을 빙 둘러 팔찌를 만들어 주었다. “토끼풀 팔찌야.” 참 곱구나. 토끼풀 쑥쑥 자라 너희 팔목 두 번 감을 만큼 되네. 그런데, 한손에 돗나물꽃 들고 자전거 탈 수 있겠니?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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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5.25.
 : 바다내음 마시기

 


- 오월 이십오일 한낮,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고, 대문을 연 다음, 마을길에 내다 놓으니,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까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큰아이는 동생더러 “아직 안 돼. 기다려. 아버지가 밖에다 내놓은 다음 타.” 하고 말한다. 햇볕 따사롭게 내리쬐는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일하기에는 후끈후끈 더울 테고, 자전거 타기에는 꼭 알맞춤하게 좋다.

 

- 시골마을에서는 모두 봄일로 바쁘다. 들판마다 할매와 할배가 푸성귀를 뜯거나 마늘을 뽑거나 씨앗을 뿌리거나 풀을 벤다. 다른 시골에서도 고흥처럼 할매와 할배가 들일을 하며 봄날 보내겠지. 어느 시골에서나 젊은이는 없겠지.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는 노래를 부른다. 수레에 앉은 작은아이는 수레를 한손으로 붙잡고 바깥을 내다본다. 얼마 앞서까지 수레에 등을 기대고 앉던 작은아이인데, 이제 수레를 한손으로 잡고는 바깥을 두리번두리번 바라보기를 즐긴다.

 

- 면소재지에 들러 아이들 과자 두 점 장만한다. 빵도 한 봉지 장만한다. 오늘은 발포 바닷가로 가 볼 생각이다. 면소재지 벗어나 당곤마을 옆을 지난다. 오르막 하나를 지난 뒤 천천히 새 오르막을 지나며 화덕마을 앞을 지난다. 오늘은 맞바람 맞으며 이 길 지나가는데 제법 잘 나간다. 이제 고흥에서 세 해째 자전거를 달리면서, 고흥 길자락에 다리가 익숙해지며 새 힘살 붙었을까. 아이들은 나날이 몸무게 늘어나는데다가, 큰아이 타는 샛자전거를 붙이기까지 했는데, 지난해에 이 길 달릴 때보다 한결 가볍게 오르막을 넘는다.

 

- 발포 포구와 바닷가로 가는 길 나뉘는 세거리에 이른다.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가 오늘 어디로 가는지 알아챈다. “아, 바다로 가는구나. 아이, 좋아라.” 바다내음이 난다. 짠 기운 머금은 바람이 분다. 자전거를 늦추어 천천히 발포 바닷가로 들어선다. 수돗가에 먼저 간다. 물이 나오는지 살핀다. 나온다. 좋다. 작은아이는 잠들었다. 자전거를 후박나무와 소나무 그늘 드리운 곳에 세운다. 작은아이 안전끈을 끌른 뒤 담요를 덮는다. 큰아이하고 바닷가 걸상에 앉아서 바다바라기를 한다. 오직 우리 세 사람 있는 바다는 호젓하면서 시원하고 고즈넉하다. 과자를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바다 기운을 마신다. 공책을 꺼낸다. 바다가 우리한테 나누어 주는 이야기를 몇 마디 적는다.


 물결은 자동차를 멈추게 하고
 바람은 손전화를 끄게 하며
 햇살은 사진기를 내려놓게 한다.


- 자동차 끌고 바닷가로 오는 사람들 있다. 우리끼리 즐기는 바다일 줄 알았는데, 아니네. 자동차 한 대 섰다 가고, 두 대 섰다 간다. 석 대와 넉 대째 섰다 간다. 모두 살짝 돌아보고는 간다. 이곳에 자전거 타고 찾아올 사람은 없을까.

 

- 작은아이가 잠에서 깬다. 작은아이도 함께 과자를 먹는다. 큰아이가 “나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 “가고 싶으면 스스로 가면 돼. 신 벗고 가.” 큰아이가 신을 벗는다. 천천히 바다로 들어간다. 모래밭에서 뒹굴며 모래를 만진다. 모래로 탑을 쌓고 구멍을 판다. 이윽고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 모래밭놀이 하고프다는 얼굴이다. 그래, 너도 신 벗고 들어가면 되지.

 

- 한 시간 즈음 논 다음 아이들 손발 씻긴다.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자동차를 몰고 큰식구 바닷가에 놀러온다. 그리고, 자전거 짐받이에 아이 태운 아주머니 한 분 들어온다. 뒤따라 혼자 자전거 달리는 아이 하나 들어온다. 아, 이곳에 자동차 몰고 찾아오는 사람만 있지 않구나. 자전거로 바닷가 찾아오는 분이 있네. 아름답다. 우리 식구도 아름답고, 저 아주머니 식구도 아름답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바람이 안 분다. 발포 바닷가 올 적에는 맞바람이더니, 돌아가는 길에는 바람이 없구나. 바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나쁘지 않다. 다만, 쳇 쳇 하는 소리를 실쭉샐쭉 뱉는다. 이제 오롯이 태평양바람 뭍으로 올라가는 여름이 코앞이로구나.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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