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앉은 먼지 닦는 어린이

 


  여러 날만에 자전거를 타는 사름벼리가 말한다. “자전거 더러워.” “그러면 벼리가 걸레로 자전거를 닦아 줘.” 걸레를 집어 자전거에 내려앉은 먼지를 슥슥 훔친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렇게 하면 먼지를 닦지 못해.” 하고 말하면서 손잡이랑 안장이랑 뼈대랑 짐받이랑 먼지를 어떻게 닦는지 보여준다. “알았어. 내가 할게.” 네 자전거에 네 사랑 듬뿍 실어 아껴 주기를 빈다.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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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섬돌에 앉아

 


  산들보라 섬돌에 앉아 들딸기 먹는다. 마당으로 스며드는 들소리 풀소리 바람소리 개구리소리 고즈넉하게 들으면서 들딸기 먹는다. 소쿠리 가득하던 들딸기는 차츰 줄어든다. 손가락과 입술은 빨간 물이 든다.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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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6-13 06:02   좋아요 0 | URL
앙 너무 이쁘네요

파란놀 2013-06-13 11:41   좋아요 0 | URL
이쁘고 착합니다~
 

책아이 9. 2013.5.28.

 


  낮에 들딸기를 잔뜩 따서 저녁에 내놓고 함께 먹는다. 작은아이는 딸기 허둥지둥 퍼넣느라 바쁘고, 큰아이는 그림책이랑 만화책 보며 틈틈이 한 알씩 집어먹는다. 가만히 지켜보니, 큰아이가 그림책 볼 적에는 딸기 한 알 집어먹고 바지에 슥슥 문질러 빨간물 들인다. 어쩜, 네가 빨래 안 한다는 뜻이지? 만화책 볼 때에는 딸기 한 알 집어먹다가 톡 떨어지는 물이 책종이에 떨어져도 알아채지 못한다. 얘 얘, 너 딸기 먹으며 만화책 보는 티 남기지 마라. 도라에몽 만화책은 아버지가 몹시 아끼는 책이라구. 네가 아버지 책더미에 얹은 리카 인형도 네가 무얼 하는지 뻔히 지켜본단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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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꽃, 푸른 잎사귀, 흰나비

 


  식물학자는 풀포기 하나를 놓고 아주 자잘하게 이름을 나누어 가리킨다. 나는 식물학자가 아니라서 풀포기 하나하나 자잘하게 이름을 나누어 가리키지 않는다. 꽃마리와 좀꽃마리를 보고도 그냥 꽃마리라 하고, 봄까지꽃과 큰봄까지꽃을 보아도 그냥 봄까지꽃이라 한다. 털제비꽃도 낚시제비꽃도 남산제비꽃도 모두 제비꽃이라고만 한다. 풀들로서 생각하자면 서운할 수 있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꼭 서운한 일도 아니다. 중국사람 일본사람 한국사람 똑똑히 나누어 말해도 되지만, 그냥 ‘사람’이라 해도 된다. 게다가 한국사람도, 전라도사람 경상도사람 서울사람 부산사람 나눌 테고, 전라도사람도 고흥사람 여수사람 광주사람 나눌 텐데, 고흥사람도 도화사람 포두사람 나로사람 나눌 테지만, 또 면소재지에서 마을로 쪼개어 어디어디 사람으로 가를 수 있다.


  어디까지 갈라서 말하느냐는 마음에 달린다. 제비꽃을 바라보며 털제비꽃이라고까지 가를 수 있고, 큰털제비꽃이라고 또 가를 수 있다. 누군가는 제비꽃이라고도 말하지 않고 들꽃이라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그냥 ‘꽃’이라고만 말할 수 있다. 아마, 어느 누군가는 꽃이라고도 않고 ‘목숨’이나 ‘숨결’이라고도 하겠지.


  아직 이름을 잘 모르는 어느 풀포기 어느 하얀 꽃송이에 내려앉은 흰나비를 바라본다. 흰나비는 배추흰나비인가? 배추흰나비가 맞는 듯하지만 그냥 ‘흰나비’라 하자. 더 단출하게 ‘나비’라 해도 좋다. 흰꽃에 흰나비가 앉는다. 흰꽃 물결치는 곳에 흰나비 앉는다. 흰꽃물결 사이에서 흰나비는 거의 안 드러난다. 이러다 문득, 흰꽃이 꽃대를 올리고 잎사귀를 퍼뜨리자면 ‘푸른 빛깔’ 있어야 하고, 푸른 빛깔이란 줄기와 잎사귀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둘레에 푸른 물결 가득한 흰꽃송이에 흰나비 내려앉기를 기다린다.


  곱구나. 흰꽃도 흰나비도 푸른 잎사귀도.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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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원 책읽기

 


  옆지기가 올들어 두 차례째 미국 나들이를 한다. 옆지기는 마음과 몸이 많이 아픈 사람이라, 스스로 마음과 몸을 되찾는 공부를 오래도록 했다. 이번 미국 나들이도 옆지기 마음과 몸을 되찾는 길을 도와줄 길잡이와 만나는 ‘배움 나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식구는 아직 시골마을에 ‘집숲’으로 일굴 땅을 사지 못했고, 책을 놓은 도서관(폐교 자리)을 사지 못했다. 다만, 믿는다. 앞으로 언제쯤 될는 지 잘 모르지만, 머잖아 집숲도 숲도서관도 즐겁게 장만해서 오래오래 곱게 지키는 ‘숲으로 이루어진 보금자리와 도서관’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무튼, 옆지기는 바로 이듬날 아침에 먼길을 떠난다. 옆지기가 미국에서 공부를 할 배움삯이랑 비행기표값이랑 이래저래 들 돈을 형한테서 얼마쯤 얻고, 카드빚으로 긁으며, 다음달쯤 들어올 글삯과 근로장려금으로 보태려 한다. 이러고 보니, 옆지기가 미국 나들이를 하는 동안, 시골집에 남는 세 식구 쓸 살림돈이 없다. 지갑을 열면 꼭 칠만칠천 원쯤 있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뭐, 잘 지내겠지. 즐겁게 잘 놀고 일하면서 보낼 만하리라. 옆지기는 늦도록 짐을 꾸리고 부엌이며 방이며 불을 껐다 켰다 어수선하게 무언가를 찾고 뒤진다. 이렇게 찾고 뒤지다가, 아마 내가 여러 해 앞서 작은아버지한테서 받은 설날 세뱃돈 그대로 둔 빳빳한 새돈일 텐데, 책상서랍에서 봉투에 든 만 원짜리 도톰한 흰봉투를 보여준다. 나더러 이 돈뭉치 ‘빳빳한 1만 원 종이돈’이라서 안 쓰고 모았느냐고 묻는다. 그래, 맞다. 안 쓰고 숨긴 돈 맞다. 안 쓰고 앞으로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묵히면, 우리 아이들 앞으로 ‘와, 예전에는 이런 종이돈 있었어요?’ 하고 재미나 할까 싶어 일부러 잊어버리듯 숨긴 돈이다. 옆지기가 이 빳빳한 돈 10만 원(돈뭉치라고 했지만, 꼭 10만 원)을 보여줄 때에 0.1초쯤 생각한다. 어떻게 할까. 0.1초 지난 뒤 말한다. “살림돈 보태야겠네요.” 옆지기 미국 나들이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에 “열 곱으로 불려서 오셔요.” 하고 말했는데, 배움삯이랑 비행기표값이랑 이래저래 해서 열 곱 벌이를 불러들여 줄 수 있을까? 불러들여 주겠지. 시골마을 밤개구리 신나게 울어대니, 열 곱 아닌 백 곱이나 천 곱도 불러들여 주리라 믿는다.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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