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알 1
와타나베 페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54

 


두 가지 삶
― 두 개의 알 1
 와타나베 페코 글·그림,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3.4.25./7000원

 


  여름비 내립니다. 후끈후끈 달아오른 땅에 이틀에 걸쳐 비가 내립니다. 낮에도 저녁에도 제법 시원합니다. 여름날 여름바람이 대청마루를 거쳐 집안 구석구석 스며듭니다. 비가 잦은 날에는 마루문을 닫지만, 요 달포 사이 비가 거의 없었기에 마루문 활짝 연 그대로 빗소리를 듣습니다. 여름비는 소리와 냄새와 물방울로 집안으로 천천히 젖어듭니다.


  비가 그치면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지난 달포 사이에 농약바람 맞고 거의 다 죽었을 텐데, 비가 오니 이렇게 어디에선가 고개를 내밀며 노래를 부를까요. 아침에 우리 집 마당 곳곳에서 풀개구리와 참개구리 여러 마리를 보았습니다. 섬돌 곁에 둔 걸상에도 개구리가 있고, 자전거 손잡이에도 개구리가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먹을 풀을 뜯다가 풀섶에서 개구리를 만납니다.


  요 며칠 사이, 우리 마을에서 면소재지 가는 길목에 펼쳐진 너른 들판에서 제비 백 마리 남짓 봅니다. 벼가 천천히 익는 늦여름인 만큼, 이제 제비들은 다 함께 모여 따스한 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한꺼번에 무리를 지어 한국으로 찾아왔고, 다 함께 무리를 이루어 따스한 나라로 찾아가겠지요.


- “방금 내 얼굴 보고, ‘늙었네.’라고 생각했지?” (6쪽)
- ‘연애, 섹스, 결혼, 임신. 여자로 태어나서 그것들을 누리지 않는 건 이상해. 아니, 제정신이야?’라고 부추기는 방송이 여기저기 넘치니까. (102쪽)

 


  오늘 아침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몰고 우체국을 다녀오다가 동호덕마을부터 자전거를 멈췄습니다. 문득 어떤 생각이 나서 아이들 모두 걸렸습니다. 이 아이들이 자전거를 얻어타는 즐거움을 얼마나 헤아리는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작은아이는 세 살 나이라면, 집과 면소재지 사이 이 킬로미터 길을 씩씩하게 걸을 만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른한테 이 킬로미터 걷기란 아무 일 아니겠지요. 여섯 살 어린이한테도 이 킬로미터 걷기란 대수로운 일 아닙니다. 그러면 세 살 어린이는?


  큰아이를 돌아보면, 세 살 적에도 무척 길다 싶은 길을 잘 걸었습니다. 큰아이 스스로 다리가 아파도 좀처럼 안아 달라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큰아이는 스스로 잘 걷고 싶었으며, 스스로 잘 뛰고 달리며 날고 싶었어요. 누구한테 기대는 하루가 아닌 스스로 빚는 하루를 재미나게 놀고 싶었어요.


  작은아이는 아직 많이 어리다 할 테지만, 작은아이 스스로 놀이를 찾고 일거리를 찾으며 심부름을 하려는 생각을 좀처럼 못 합니다. 큰아이인 누나가 여러모로 잘 챙겨 주기 때문입니다. 작은아이한테 누나가 없었으면, 작은아이는 스스로 ‘큰아이(첫째)’로 살아가며 이것저것 스스로 씩씩하게 일구었으리라 느껴요.


- “대형 신문사를 나와서 도시락 가게라니, 그런 일은 없지 않나요?” “없지 않아.” “없지 않다고요?” “실제로 이렇게 하고 있는걸.” (14쪽)
-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내가 뭘 하는지 똑똑히 느낄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어. 도시락 가게는 음식을 만들어서 팔고, 손님께 대접한다는 점이 굉장히 심플하고 구체적이잖아? 그게 즐거워. 급료는 싸지만 기분은 최고야.” (94쪽)

 


  두 아이와 시골길 천천히 걷습니다. 걷다가 자주 쉽니다. 나는 늦여름 들판을 사진으로 찍는다고 핑계를 대지만, 작은아이가 지치지 않기를 바라며 쉽니다. 그러면서 작은아이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지요. 저기 보렴, 달개비밭이네. 저기 잘 봐, 저기는 벼가 벌써 고개를 숙이고 이쪽은 아직 고개가 빳빳하지. 저기 전깃줄에 제비가 나란히 앉았네, 몇 마리나 되나 세어 볼까. 들판을 마음껏 나는 제비를 보렴, 저 조그마한 몸으로 수천 킬로미터 바다를 가로질러 날아간단다.


  자전거가 있어도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끕니다. 다른 한손은 작은아이 손을 잡습니다. 늘 수레에 앉아서 함께 다니던 작은아이는, 이제 제(작은아이)가 다리 쓸 일 없이 앉아 있기만 해도 되지는 않는 줄 조금은 느낄까요. 누나는 샛자전거에 언제나 서서 오가는 줄 조금은 생각할까요.


  작은아이 걸음에 맞추어 걷자니 큰아이는 조금 답답합니다. 혼자 저 앞까지 달려갔다가 이리로 달려옵니다.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군내버스가 마주 옵니다. 큰아이는 군내버스를 보고는 달리기 내기를 합니다. 혼자서 놀이를 빚고, 혼자서 하루를 즐깁니다. 혼자서 생각을 빚고, 혼자서 사랑을 펼칩니다.


  그래, 너희 아버지도 너희한테 날마다 스스로 놀이와 일과 삶과 꿈과 생각과 사랑을 알뜰히 지어서 나눌 줄 아는 사람이어야 아름답겠지. 작은아이 다리힘을 길러 주려고 모처럼 이 킬로미터 길을 걷다가, 아버지다운 삶길을 새삼스럽게 돌아봅니다.


- “고향에서 그 친구랑 식을 올릴 셈인가?” “아뇨.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낳을 생각입니다.” “어째서? 무슨 사정이라도 있나?” “그게 아니라, 지금 제가 바라는 일은, 오직 이 아이를 낳는 것뿐입니다.” (111쪽)
- “아버지가 되고 싶어? 법적으로? 심정적으로? 넌 애인이 있잖아. 어쩔 셈이야?” “그건.” “저기,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지 말아 줄래? 솔직히 짜증나거든. 난 지금 화내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아. 나는 진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네 머리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다시 찾아와.” (118∼119쪽)

 


  와타나베 페코 님 만화책 《두 개의 알》(학산문화사,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일본에서는 어느새 다섯 권으로 마무리된 만화인데, 한국에서는 첫째 권 나오고 넉 달이 지나서야 둘째 권이 나옵니다. 일본책을 살피면 마무리가 어찌 될는지 일찌감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줄거리를 살피려고 만화책을 읽지 않아요. 권마다 어떤 삶과 꿈과 넋이 깃드는가 하는 이야기를 누리려고 만화책을 읽어요.


  어떤 마무리가 되느냐도 살필 만한 대목일 테지만, 마지막으로 나아가는 흐름에서 ‘만화 주인공이 스스로 어떤 삶길을 골라서 씩씩하게 걸어가느냐’ 하는 대목을 더 깊이 살핍니다. 바로 이런 대목을 느끼면서 내 삶을 돌아보려고 만화책을 읽습니다.


- “괴로웠겠다. 편해졌니?” “아츠코.” “코헤이는 정직하고 성실하고 거짓말을 못하니까 양심에 찔려서 괴로웠을 거야. 내게 얘기하면 더 이상 감추지 않아도 되는걸. 앞으로는 ‘우리’ 문제가 돼서 분담할 사람이 늘어나니까, 코헤이는 편해졌지?” (150∼151쪽)


  삶은 두 가지입니다. 생각하는 삶과 생각하지 않는 삶 두 가지입니다. 삶은 두 갈래입니다. 사랑이 있는 삶과 사랑이 없는 삶 두 갈래입니다. 어느 쪽으로 나아가려는지 스스로 길을 찾아요. 어느 쪽으로 나아가든 스스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쪽으로 가기에 더 재미난 삶이 되지 않습니다. 저쪽으로 가니까 재미없는 삶이 되지 않습니다. 이쪽으로 갈 때에는 이러한 삶을 이렇게 예쁘게 일굽니다. 저쪽으로 나아갈 적에는 저러한 삶을 저렇게 아름답게 보살핍니다. 만화책 《두 개의 알》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세 사람은 둘째 권에서 저마다 어떤 삶길로 나아갈까 궁금합니다. 4346.8.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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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8-23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책들을 좋아하시는군요.^^

파란놀 2013-08-23 20:41   좋아요 0 | URL
그저, 아름다운 책들을 좋아해요.
와타나베 페코 님 만화책은 살짝 '아슬아슬'한 사이에 있는 듯해요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00) 아래의 1 : 언덕 아래의 공터

 

그리고 기자를 데리고 언덕 아래의 공터로 향했습니다
《쿠루사(글),모니카 도페르트(그림)/최성희 옮김-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동쪽나라,2003) 41쪽

 

  ‘공터(空-)’는 ‘빈터’로 고칩니다. ‘향(向)했습니다’는 ‘갔습니다’로 고쳐 주고요.

 

 언덕 아래의 공터로
→ 언덕 아래 빈터로
→ 언덕 아래에 있는 빈터로
 …

 

 언덕 위에 있으면 “언덕 위 빈터”입니다. “언덕 위에 있는 빈터”이기도 하고요. 언덕 위에 있는 집이면 “언덕 위 집”이나 “언덕집”입니다. 움막이 다리 밑에 있다면 “다리 밑 움막”이고, 책방이 굴다리 둘레에 있으면 “굴다리 책방”입니다. 4341.1.8.불/4346.8.23.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리고 기자를 데리고 언덕 아래 빈터로 갔습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90) 아래의 2 : 아래의 내용

 

이시모토 야스오 씨와 의논해서 편집한 것이 아래의 내용이었다
《오쓰카 노부카즈/송태욱 옮김-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2007) 27쪽


  ‘의논(議論)해서’는 ‘이야기해서’로 다듬습니다. ‘의논’은 “의견을 주고받음”을 뜻해요. ‘의견(意見)’은 ‘생각’을 가리키는 한자말이에요. 곧 ‘의논해서’란 ‘생각을 주고받아서’를 나타내고, 이 글월은 “이야기해서”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편집(編輯)한 것이”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엮은 글이”나 “엮은 줄거리가”로 손볼 수 있습니다. ‘내용(內容)’은 ‘줄거리’로 손봅니다.

 

 아래의 내용이었다
→ 다음 줄거리였다
→ 다음과 같다
→ 이와 같다
 …

 

  신문이나 책이나 잡지 같은 데에서 으레 “아래의 내용”처럼 쓰곤 하는데, 이 말투는 일본 말투입니다. 또한, 올바르지 않은 말투입니다. 이 보기글은 일본책을 옮기면서 “아래의 (무엇)” 같은 말투가 일본 말투인 줄 잘 보여주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아래의 내용”이라 하고는 쪽이 다음 쪽으로 넘어가 ‘맨 위’에 나와도 ‘아래’가 될까요? 아니지요. 그래서, 정 무슨 말이라도 적고 싶다면 ‘다음’을 넣어 “다음 내용”이나 “다음 줄거리”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글을 쓸 때가 아닌 말을 할 때를 생각해 보셔요. 말을 할 때에 “아래 줄거리”라고 말하면 어떠한가요? 참으로 아리송하거나 엉뚱한 소리가 됩니다. 그런데, 애써 ‘다음’이라는 낱말을 잘 살펴서 쓰더라도 “다음의 내용”이나 “다음의 줄거리”처럼 적으면 도로 뒤틀려요. 토씨 ‘-의’를 잘 덜어서 써야 알맞습니다.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에 두루 알맞게 쓰자면 “이와 같다”고 하면 됩니다. 4346.8.23.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시모토 야스오 씨와 얘기해서 엮은 줄거리가 이와 같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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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8.20.
 : 구름과 바람과 벼꽃

 


- 마을 빨래터를 청소하면서 물놀이를 한다. 아이들이 한참 물놀이 하는 모습 지켜보다가 자전거를 빨래터 옆으로 끌고 오기로 한다. 땡볕 내리쬐는 날씨에 아이들이 집까지 갔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오자면, 애써 물놀이를 하며 식힌 몸에 다시 땀이 흐르리라 생각한다.

 

- 볼그스름한 꽃이 가득 핀 배롱나무 밑에서 자전거에 태운다. 나무그늘 구비길을 달린다. 나무그늘 구비길이 끝나면 곧바로 들판이다. 들판에는 그늘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탁 트인 들판에서는 들바람이 분다.

 

- 들바람 냄새를 맡는다. 냄새가 다르다. 지난 이레 동안 바깥마실 다니느라 자전거를 못 탔는데, 이레만에 마을 들판을 자전거로 달리니 사뭇 다른 냄새가 흐른다. 자전거를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일찍 심은 벼는 벼꽃이 맺혔다. 벼꽃이 맺히면서 볏잎은 푸른 기운이 조금씩 빠져나가 살짝 노르스름한 빛이 돌려고 한다. 저 자그마한 벼꽃이 어우러져서 들빛이 달라지는구나. 얘들아, 냄새를 맡으렴. 이제부터 날마다 들내음이 달라진단다. 벼꽃이 핀 오늘 이곳 냄새는 이 다음날 다시 지날 적에 다른 냄새가 되고, 또 다음날 다시 지날 때에 다른 냄새가 된단다.

 

- 들내음 맡으며 하늘을 본다. 하늘빛도 남다르구나 싶다. 구름과 하늘이 빚는 맑은 기운을 들이마신다. 바람이 불며 들이 눕는다. 바람 따라 살랑이는 모습은 푸른 물결빛이다. 이 푸른 물결은 곧 누런 물결이 될 테고, 누런 물결 흐드러질 무렵에는 온 들과 마을에 고소한 내음이 퍼지겠지.

 

- 작은아이는 들에 나올 적부터 잠이 든다. 면소재지 우체국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깨어나지 않는다. 잘 자렴. 눈으로는 안 보더라도 네 몸과 살갗은 들내음과 들빛을 모두 받아들이겠지.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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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22] 감 떨어지는 소리
― ‘집나무’ 바라는 마음

 


  아침 낮 저녁마다 지붕을 쿵 하고 때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뒤꼍 감나무에서 풋감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풋감은 떨어져서 뒤꼍에서 천천히 썩습니다. 다 익고 나서 우리한테 맛난 밥을 주면 얼마나 고마우랴 생각하는데, 아마 다른 이웃집처럼 줄기가 위로 뻗지 않도록 끊고 잘라서 난쟁이로 만들면, 이렇게 감알 떨어지는 일은 드물 수 있겠지요. 사람이 먹자고 심은 감나무인 만큼, 먹는 데에 모두들 더 눈길을 두어요.


  나도 우리 집 뒤꼍 감나무를 바라보면서 한 해에 한 알이라도 우리한테 남길 수 있겠니 하고 물어 보곤 합니다. 집임자가 드러누워 감나무 가지치기를 못 했다 하고, 집임자가 저승나라로 간 지 오래되어 감나무는 그저 죽죽 뻗기만 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죽죽 잘 뻗은 감나무가 예쁩니다. 워낙 모든 나무는 이렇게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씩씩하게 자라니까요.


  우리 집 뽕나무도 모과나무도 모두 하늘바라기를 하며 자라기를 바랍니다. 우리 집 매화나무와 무화과나무도 이웃들이 우리 몰래 가지치기를 해 주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나무들이 가장 나무답게 천천히 자라는 결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나는 이 나무들이 스스로 씩씩하게 가지를 뻗으며 우람하게 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나무열매도 대수롭지만, 나무그늘도 대수롭습니다. 나무열매가 높은 데에 맺히면 사다리를 받치고 따면 돼요. 못 딸 만한 자리는 새밥으로 두면 돼요. 아이들이 커서 나무타기를 하며 열매를 딸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나는 아이들이 나무타기를 하며 열매를 딸 만한 우람한 나무를 바랍니다. 손을 뻗으면 닿는 데에 열매 주렁주렁 달리게 하는 난쟁이 나무 아닌, 햇볕과 바람과 빗물 실컷 누리면서 튼튼하게 자라는 나무를 바랍니다.


  지붕에 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몇 알이 가을까지 남을까 궁금합니다. 뒤꼍 감나무가 기운을 되찾아 굵고 튼튼한 ‘집나무’ 되어 우리 식구한테 소담스러운 감알 베풀 이듬해(또는 그 다음해, 또는 그 다음 다음해)를 기다립니다. 4346.8.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고흥집에 갓 들어와서 살던 무렵. 집 뒤꼍 감나무는 해롱해롱 많이 아프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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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꽃 책읽기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마다 다 다른 흰꽃이 핀다. 늦여름에는 고들빼기 흰꽃이 마당을 채운다. 고들빼기 흰꽃 곁에는 부추풀 흰꽃이 마당을 보듬는다. 고들빼기와 부추는 나란히 꽃을 피운다. 다만, 고들빼기가 꽃을 피우도록 그대로 두는 시골 할매와 할배는 드물다. 부추풀은 씨앗을 맺고 씨앗주머니가 톡 하고 터져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그대로 두시지만, 고들빼기는 풀 베는 연장을 윙 돌려서 모조리 모가지를 꺾는다.


  뿌리를 캐서 먹어도 맛난 고들빼기이지만, 잎사귀를 뜯어서 먹어도 맛난 고들빼기이다. 뿌리와 어린줄기만 먹어서는 고들빼기 온맛을 알 수 없다. 봄 여름 가을까지 고들빼기 잎사귀를 바지런히 뜯어서 맛난 밥으로 삼을 때에 비로소 고들빼기 깊은 맛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부추도 이와 같다. 꽃대가 올라 하얀 꽃 앙증맞게 터질 때까지 봄부터 신나게 뜯어서 먹는다. 꽃대가 오르면 부추잎은 조금만 뜯는다. 부추꽃이 피면 퍽 오랫동안 즐거이 흰빛 누린다.


  우리 집 고들빼기는 올해에 씨앗을 얼마나 퍼뜨리려나. 다른 이웃집은 그리 안 좋아하니 우리 뒤꼍으로도 씨앗을 퍼뜨리기를 빈다. 씨주머니 맺으면 잘 받아서 우리 집 둘레 곳곳에 뿌리려 한다. 고들빼기 씨앗을 먼 이웃한테도 보내 볼까. 내가 굳이 이웃들한테 고들빼기 씨앗을 보내지 않아도, 고들빼기는 온 나라 골골샅샅 알뜰살뜰 번져 살가운 잎사귀와 맑은 꽃망울 나누어 주겠지. 뜯고 또 뜯어도 씩씩하게 새 잎사귀 내면서 팔월 끝무렵까지 온 고들빼기야, 밤에는 자고 새벽에 깨어나는 고들빼기 흰꽃아, 너희 꽃망울 보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온 줄 느끼겠구나. 4346.8.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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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23 08:26   좋아요 0 | URL
아...고들빼기꽃이 이렇게 생겼네요?
고들빼기김치만 먹어봤지...함께살기님 덕분에
고들빼기꽃도 보고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3-08-23 15:41   좋아요 0 | URL
고들빼기잎을... 가을 언저리까지 뜯어먹는 사람은
좀 드물리라 생각해요 ^^;;

시골 살며 저희 식구처럼 팔월 끝무렵까지
고들빼기잎을 날마다 뜯어서 먹는 이웃은
아직 못 보았어요 ^^;;;;

녹즙 드시는 분이라면 으레 뜯어서 먹을 테지만요~

그리고, 이렇게 꽃을 보아야
다음해에도 우리 식구한테 멋진 풀을 베풀어 줍니다~ ^^

잘잘라 2013-08-23 09:50   좋아요 0 | URL
와아.. 정말 잎사귀가 얼마 없네요!^^
그래도, 아니 그래서 더 치열하게 꽃을 피워낸 느낌입니다.

파란놀 2013-08-23 15:39   좋아요 0 | URL
꽃대가 올라오면서 꽃이 필 무렵,
잎이 거의 스러지더라구요.

그리고 꽃이 지며 씨주머니 생기면
줄기도 조금씩 힘이 빠지면서
씨주머니가 비실비실 열리거나 톡 터지면
줄기는 누렇게 빛이 바래서 흙으로 돌아가요.

이제부터 모든 기운이 꽃한테 가니
잎사귀가 거의 안 보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