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63] 나이

 


  어려서 어버이한테서 밥을 얻어먹고,
  나이들어 아이를 낳고는
  아이와 어버이한테 밥을 차려준다.

 


  스물에는 스물다운 사랑입니다. 서른에는 서른다운 사랑입니다. 마흔에는 마흔다운 사랑입니다. 쉰 예순 일흔 여든에는 또 그 나이에 걸맞게 아름다운 새로운 사랑이 빛납니다. 나이값이란 삶값입니다. 나이에 맞는 삶이란 스스로 누리는 하루하루를 언제나 즐겁게 맞아들인 이야기입니다. 세 살일 때에는 세 살이어서 즐겁고, 열세 살일 때에는 열세 살이어서 즐겁습니다. 스물세 살과 서른세 살은 또 이러한 나이라서 즐겁습니다. 마흔세 살과 쉰세 살은 또 이와 같은 나이라서 즐거워요. 내 어버이는 나를 낳고 나는 내 아이를 낳습니다. 내 아이는 이녁 아이를 낳을 테고, 차근차근 사랑이 이어집니다. 4346.10.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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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15분 책읽기

 


  어제 여수 문화방송국에서 서재도서관 취재를 나왔다. 이분들이 나한테 맨 처음으로 물은 말은 “지금 시간이 열한 시 십오 분인데, 이렇게 아이들하고 함께 놀아도 됩니까?”였다. 열한 시 십오 분이 어떠하기에? 이분들이 이렇게 물은 뜻은 ‘왜 아버지가 집밖에서 돈을 벌러 다니지 않고, 집안에서 아이들하고 어울리느냐?’이리라. 흔히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하고 말하지만, 게다가 성평등이니 여남·남녀평등이니 하고 읊지만, 이처럼 생각은 딱딱하게 굳은 채 안 달라진다. 어머니가 열한 시 십오 분에 아이하고 있으면 ‘마땅하고 자연스러’우며, 아버지가 열한 시 십오 분에 집에서 아이들하고 놀면서 아침을 차리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놀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집안 쓸고닦으며 일하면, ‘못마땅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노릇이 될까.


  이 나라에서는 언제까지 아버지들 누구나 집밖을 맴돌며 ‘아이들 자라나는 싱그러운 모습’하고는 동떨어진 채 돈만 벌어야 할까. 이 나라에서는 언제까지 어머니들 누구나 집안에 갇힌 채 ‘밥어미·애보개·심부름꾼’ 노릇이어야 할까.


  방송피디는 어떤 삶을 읽고 어떤 책을 읽는가. 신문기자는 어떤 삶을 보고 어떤 책을 보는가. 인문학자와 교사는 어떤 삶을 느끼며 어떤 책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가. 나는 오늘도 아침 열한 시 십오 분 언저리에 아침밥 아이들한테 먹이고 옷 갈아입히고 밑 씻기고 놀면서 하루를 누린다. 4346.10.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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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기계한테 맡기다

 


  올해는 여름과 가을에 비가 거의 안 내리는 전남 고흥이다. 이러다 보니, 빨래하기에는 더없이 좋으며 즐겁다. 아이들 옷가지 빨래가 날마다 쏟아지는 살림으로서는, 이런 날씨도 어느 모로는 고맙기까지 하다. 가문 날씨로 논물이 바짝바짝 타는데, 이불도 옷가지도 보송보송하게 마른다. 그런데 며칠 비가 오고 날이 궂던 날, 작은아이가 그만 자다가 이불과 평상에 쉬를 잔뜩 누었다. 이불을 빨아야 하고 평상을 말려야 하는데 여러 날 이도 저도 하지 못한다. 잠자리에 작은아이 쉬 냄새가 그득한 채 여러 날 지낸 끝에 오늘 드디어 이불을 빨래한다. 날이 궂고 비가 이어졌기에 손빨래도 많이 하지 않았다. 날마다 열 점에서 열두 점 즈음 손빨래를 하며 집안에서 천천히 말렸다. 이러면서 쌓인 옷가지가 퍽 많아, 오늘 모처럼 아침에 빨래기계를 한 번 돌린다. 언제나 손빨래를 하는 사람한테는 빨래기계에 전기를 먹여 돌리는 일이 큰 일거리, 또는 놀잇거리가 된다.


  빨래기계 돌아가는 동안 아침을 차린다. 한참 아침거리 마련하는 사이 빨래가 다 된다. 불을 작게 줄이고는 옷가지와 이불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아이들이 빨랫줄을 가지고 논다. 그래, 그 빨랫줄은 너희 가지렴. 아버지는 다른 데에 널지.


  여러 날만에 찾아드는 가을볕 고맙게 바라본다. 오늘 하루 이 이불과 빨래 잘 말려 주렴. 비오느라 가을걷이 미처 못 하는 논에도 나락에 맺힌 물기 바짝바짝 말려 주렴. 4346.10.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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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골목에는 참깨꽃

 


  도시인 인천에서 골목마실을 할 적에는 골목집과 골목길 잇닿는 시멘트 마감이 햇볕에 바래고 빗물에 삭아서 틈이 나곤 한 데에 뿌리를 내린 골목꽃을 흔히 만났습니다. 봉숭아도 자라고 맨드라미도 자라요. 언젠가 패튜니아가 인천 골목집과 골목길 사이 틈바구니 아주 조그마한 데에서 돋아나 꽃송이 활짝 벌린 모습을 보기도 했어요.


  시골인 고흥에서 살아가며 고샅꽃을 봅니다. 시골은 골목 아닌 고샅이요, 예전에 모두 흙길이던 데를 시멘트로 바르며 시골집과 고샅길 사이에 틈바구니 조그맣게 벌어집니다. 시골에서도 햇볕에 바래고 빗물에 삭으며 틈바구니 생기고, 이곳에서 온갖 풀씨가 날아들어 뿌리를 내립니다.


  가을걷이로 한창 바쁜 요즈음, 집집마다 콩을 털고 깨를 텁니다. 콩알은 제법 굵다 할 테지만 깨알은 아주 작습니다. 깨알을 털면서 바닥에 넓게 자리를 깔지만, 자리를 벗어나 뒹구는 깨알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이 깨알은 바람을 타고 시멘트 시골 고샅길을 돌돌 구르다가 틈바구니 만나 기쁘게 깃들어 뿌리를 내립니다. 빗물이 스미고 햇살 한 조각 스밉니다. 시골마을 고샅 틈바구니에서 어느새 조그맣게 줄기가 오르고 자그맣게 꽃송이 벌어집니다.


  시골 고샅에서는 참깨꽃입니다. 시골 고샅꽃은 참깨꽃입니다. 이 가을 지나고 겨울 지나 봄이 새로 찾아오면, 바로 이 틈에서 유채꽃도 피어나겠지요. 이때에는 유채꽃이 새삼스레 시골 고샅꽃 됩니다. 4346.10.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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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헤아린다 ― 그림책을 누가 읽을까

 


  그림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곧, 그림책은 글을 모르더라도 누구나 읽는 책이 됩니다. 한국사람이 빚은 그림책을 몽골사람이 읽을 수 있습니다. 베트남사람이 빚은 그림책을 일본사람이 읽을 수 있습니다. 러시아사람이 빚은 그림책을 핀란드사람이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책은 ‘나라와 겨레가 달라’도 누구나 읽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림책도 이와 엇비슷합니다. 그림책은 어느 나라 어느 겨레라 하더라도 ‘그림을 읽으’면 되니까, 허울도 울타리도 틀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알알이 아로새기거나 받아들이거나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어린이부터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라 하지만, 막상 어린이가 찬찬히 느끼거나 좋아하거나 맞아들이지 못하기도 합니다.


  문은 누구한테나 활짝 엽니다. 다만, 문이 열렸대서 아무나 들어오지는 않아요. 열린 문에 들어가려면 열린 몸과 마음이어야 해요. 그러니까, 그림책은 누구한테나 열린 생각문이지만, 이 생각문으로 들어오자면 어린이가 되든 어른이 되든 먼저 스스로 생각과 마음과 사랑과 꿈과 믿음부터 활짝 열어야 합니다.


  읽는이부터 열린 생각이 아닐 때에는 그림책 줄거리조차 옳게 살피지 못합니다. 읽는이 스스로 열린 마음이 아닐 때에는 그림책 고갱이를 하나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읽는이가 열린 사랑이 아닐 때에는 그림책 속살을 맛나게 받아먹지 못합니다. 읽는이한테 열린 꿈이 없을 때에는 그림책 하나가 천천히 빚는 아름다운 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읽는이 나름대로 열린 믿음을 품지 못할 때에는 그림책 하나가 첫 끈이 되어 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일굴 좋은 보금자리를 건사하지 못합니다.


  돈이 있으면 누구라도 책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장만한 사람 누구나 책을 읽지는 않아요. 책을 읽은 사람 누구나 책에 서린 넋을 알뜰히 받아먹지 못해요. 돈이 있으니까 장만하는 책이 아닙니다. 틈을 내어 책을 훑었대서 ‘읽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먼저 생각·마음·사랑·꿈·믿음, 이렇게 다섯 가지를 추스를 수 있어야 해요. 이 다섯 가지를 추스른 다음에야 어린이가 되든 어른이 되든, 그림책을 읽는 사람이 됩니다. 이 다섯 가지 모두 알차게 꾸린다면 가장 아름답고, 이 다섯 가지 모두 꾸리지 못하더라도 한 가지라도 꾸린다면, 그림책 한 권으로 나눌 이야기를 조금씩 맛볼 수 있어요.


  삶이란 이야기예요. 삶이란 사람들이 사랑하면서 나누는 이야기예요. 그림책이란 삶이면서 이야기예요. 그림책이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나누는 삶을 담는 이야기예요. 이 그림책 이야기는 지식이나 정보로 삼을 수 없어요. 머리속에 가두는 정보나 지식이 된다면, 그림책을 백 권이나 천 권이나 만 권을 ‘읽었다’고 말하더라도 막상 ‘읽기’가 아닌 ‘지식 쌓기’나 ‘지식 가두기’로 그치고 말아요.


  아이들을 학교에 넣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도록 했으니, ‘아이 가르치기’를 다 해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어서 스스로 숟가락질 하도록 시켰으니, ‘아이 키우기’를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나요?


  학교에 넣어 졸업장을 따는 일은 배움(교육)이 아닙니다.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며 잠을 재우는 일은 돌보기(육아)가 아닙니다. 그림책을 마주하는 어른들은 슬기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림책을 주머니 털어 장만해서 집안 한쪽에 그럴듯하게 꽂았기에 ‘책을 장만했다’고 할 수 없어요. 날마다 한두 시간 즈음 그림책 몇 가지를 ‘입으로 들려주었다’고 해서 ‘책읽기’를 했다 할 수 없어요.

  그림책을 읽었다고 한다면, 그림책마다 다 다르게 감도는 생각·마음·사랑·꿈·믿음이 무엇인가를 찬찬히 그려야 합니다. 내 가슴에 찬찬히 아로새기면서 내 삶을 찬찬히 새롭게 일구어야 합니다. 아이들도 아이들 나름대로 새롭게 꾸리며 거듭나는 하루가 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책을 많이 장만해서 아이한테 선물한다고 ‘책을 잘 읽는 한식구’가 되지 않습니다. 그림책 하나란 삶책 하나인 만큼, ‘그림책 읽기 = 삶책 읽기’입니다. 그러니까, 종이에 앉힌 그림으로 엮은 그림책만 들여다본대서 ‘(책)읽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노릇입니다. 넋을 추스르고 얼을 돌보며 꿈을 빚을 때에 ‘(책)읽기’가 이루어져요.


  한 평짜리 밭이라도 마련해서 아이와 함께 씨앗을 심어 보셔요. 자그마한 꽃그릇 하나에 흙을 담아 아이와 나란히 씨앗을 심어 보셔요. 자그마한 꽃그릇에 나무씨앗을 심었으면 한두 해나 서너 해 집안에서 키운 다음, 너른 들판이나 멧등성이에 올라 옮겨 심을 수 있습니다. 한 평짜리 밭에서 아이랑 같이 심어 거둔 무, 배추, 당근, 토마토, 오이를 아이하고 즐겁게 먹어 보셔요.


  삶을 누리는 나날일 때에는 언제나 ‘(책)읽기’를 해요. 아이와 손을 맞잡고 들길을 거닐어 보셔요. 도시에서라면 골목길을 거닐어 보셔요.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 길을 거닐어 보셔요.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들새 소리에 마음을 가누어 보셔요. 바람결에 나뭇잎과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를 살피셔요. 구름이 흐르는 소리와 별이 움직이는 소리를 헤아리셔요. 빗방울이 지붕이나 땅바닥에 닿기까지 하늘에서 어떻게 날았을까 하고 마음속으로 그리셔요.


  스스로 삶을 그릴 때에 그림책 이야기를 찬찬히 읽습니다. 스스로 삶을 지을 때에 그림책 이야기를 하나하나 아로새깁니다. 스스로 삶을 일굴 때에 그림책 이야기를 흐뭇하게 누립니다. 2012.4.7.

 

(최종규 . 2013 - 그림책 헤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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