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는 글

 


  글을 손으로 쓰지 발로 쓰는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글은 발로 쓴다고도 말한다. 손을 쓸 수 없다면 발을 써서 글을 적바림할 만하리라 느끼는데,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손으로 쓰는 글’이라고 이야기한다.


  발품을 파는 만큼 느끼고 배운다. 몸품을 파는 만큼 겪으며 익힌다. 마음을 쓰고 생각을 기울이며 사랑을 들이는 만큼 헤아리면서 맞아들인다. 곧, 발뿐 아니라 몸으로도 쓰는 글이라 말할 수 있고, 사랑으로 쓰는 글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금 ‘손으로 쓰는 글’이라고 이야기한다.

 

  발품과 몸품, 마음과 생각과 사랑, 이 모두를 아우르고 엮어서 ‘손으로 쓰는’ 글이라고 느낀다. 누군가는 발로도 칼질을 하며 밥을 차릴 수 있으리라. 그래도 나는 ‘손으로 도마질을 하며 밥을 차려 내놓는다’고 이야기한다. 온몸으로 사랑을 들여 차리는 밥은 늘 따사로운 손길로 마무리를 지어 내놓는다.


  또박또박 손으로 글을 쓴다. 빈 종이에 볼펜을 꾹꾹 눌러 손으로 글을 쓴다. 곧 다른 빈 종이 하나를 꺼내 천천히 정갈히 옮겨서 적는다. 셈을 켜서 글판 두들기면 훨씬 빨리 더 많이 쓸 수 있지만, 꼭 종이 크기만큼 손글을 쓴다. 어느덧 글은 ‘글’과 ‘손글’로 나뉜다. 그런데 먼먼 옛날부터 ‘글을 쓴다’고 하면 손으로 쓰는 글이었다. 앞으로도 ‘글을 쓴다’고 할 적에는 손으로 쓰는 글이 되리라. 손으로 짓는 밥, 손으로 비비는 빨래, 손으로 기우는 옷, 손으로 베는 나락, 손으로 뜯는 풀, 손으로 씻기고 안으며 쓰다듬는 아이들, 손으로 일구는 보금자리, 손으로 떠서 마시는 물, 여기에 손으로 쓰는 글. 4346.10.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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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 가면 즐겁다

 


  헌책방이거나 새책방이거나, 책방에 가면 즐겁다. 나를 부르는 책을 만나서 즐겁기도 하지만, 책이 있어서 즐겁다. 어떠한 책이건 내 마음과 눈과 넋과 말을 북돋우는 사랑스러운 책에 둘러싸여 몸을 쉴 수 있어 즐겁다.


  책을 한 권도 못 고른 채 바삐 돌아나와 다른 곳에 볼일을 보러 가야 하더라도, 살짝 책방 문 열고 들어가서 골마루를 빙 한 바퀴 돌면 숨이 놓인다. 어수선하거나 어지럽던 실타래가 풀린다. 책내음을 맡는 동안 내 마음자리가 제자리를 잡는다. 푸르게 우거진 숲속에 깃들면 몸속 깊은 데까지 푸른 숨결이 서려 고운 넋 되는 느낌하고 같다고 할까. 따지고 보면, 책이란 모두 종이이다. 종이란 모두 나무이다. 나무란 모두 숲이다. 숲이 종이로 다시 태어나고, 종이는 책으로 거듭 태어나서 책방에 놓인다. 이 책이건 저 책이건 모두 나무요 숲이다. 이 책도 저 책도 다 함께 나무이면서 숲이다.


  책내음 맡는 사람은 나무내음을 맡는다. 책내음 즐기는 사람은 숲내음을 즐긴다.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데는 숲이라 하잖은가. 숲에서 책을 읽으면 가장 느긋하고 사랑스럽게 이야기에 빨려들 수 있다잖은가.


  숲을 숲에서 읽으니 즐거울밖에 없다. 숲을 숲에서 누리니 웃음이 피어나고, 꿈이 자라며, 사랑이 샘솟을밖에 없다.


  이리하여, 책방에 가면 즐겁다. 나를 부르는 책을 만나며 즐겁다. 나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을 촉촉히 적시거나 보드랍게 어루만지는 책을 마주하며 즐겁다. 나무내음 맡고 숲바람 쐬고 싶어 책방마실을 한다. 4346.10.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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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25. 아침 참새떼 2013.10.9.

 


  마을 참새떼 아침부터 우리 집 마당에 내려앉아 무언가 쪼아먹는다. 무엇이 있기에 부리로 콕콕 쫄까. 나무열매라도 마당에 떨어졌을까. 아이들이 마당에 과자부스러기라도 떨어뜨렸을까. 한참 마당에서 콕콕질 하며 노는 참새떼가 마룻바닥 밟는 소리를 듣더니 화들짝 놀라 파라락 날아 대문 위 전깃줄과 후박나무 가지에 내려앉는다. 너희는 아침마실 다니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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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가을들 옆 달려

 


  다리에 힘이 차츰 단단히 붙는 산들보라는 어디이든 달리면 즐겁다. 웃으면서 달리고, 달리면서 웃는다. 아이들은 웃으면서 자라고, 달리면서 자란다.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는 아이들 웃음을 먹으면서 기운을 얻고, 아이들 달리며 무럭무럭 크는 모습을 느끼며 새 하루를 일군다. 4346.10.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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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23. 가을 들콩넝쿨 사잇길 (2013.10.9.)

 


  여름에는 푸르게 빛나기만 하던 들콩넝쿨인데, 가을이 무르익어 논마다 나락 누렇게 익으니, 들콩도 꼬투리 여물고 들콩잎도 노랗게 물든다. 하루가 다르게 노랗게 물든 잎사귀 늘어난다. 앞으로 하루이틀 더 지나면 더 노랗게 바뀔 테고, 한 주 두 주 지나면 노랗게 물들던 잎사귀는 톡톡 떨어져 바닥을 구르다가 겨우내 흙으로 돌아갈 테지. 얘들아, 봄과 여름하고는 사뭇 다른 가을내음을 맡을 수 있겠니?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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