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48. 2013.12.27.

 


  밥을 볶을 적에 마무리를 지으며 으레 주국으로 반반하게 펼친 뒤 뚜껑을 덮고 따스한 기운 감돌도록 한다. 큰아이는 아버지가 볶음밥을 할 적마다 “왜 그렇게 해요?” 하고 묻는데, 딱히 ‘왜’를 생각한 적은 없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으레 이렇게 하셨으니 나도 똑같이 따라할 뿐인데, 다 볶고 불을 끌 무렵, 골고루 섞어서 반반하게 해 놓고 뚜껑을 덮으면 따스한 기운이 골고루 감돌면서 간도 골고루 밴다고 느낀다. 그러나저러나, 큰아이는 밥을 먹다가 가끔 밥을 숟가락으로 찬찬히 눌러 반반히 펴면서 놀곤 한다. 앞으로 스스로 밥을 지을 적에 무언가를 해 보는 놀이와 같달까. 배고픈 작은아이는 허둥지둥 먹기에 바쁘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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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한 줄기

 


바람 한 줄기
후박나무에 앉았다가
동백나무에서 쉬었다가
초피나무하고 손짓하고는
모과나무와 살그레 웃고
감나무랑 도란도란 얘기하더니
뽕나무 곁에 사뿐 내려앉아
오늘은 재 너머
오리나무한테 가는 길이라
바쁘단다.

 


4346.12.1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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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안고 어르며 하루 내내 돌보는 나날은 아주 짧다. 아이들은 어느새 쑥쑥 자라 어른이 된다. 조그마한 몸으로 살포시 안기며 어버이 품을 따사로이 누리는 나날은 무척 짧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살가이 안지 못한다면, 이 아이들이 큰 뒤에도 살가이 안지 못한다. 아이들을 언제 어떻게 안으면서 하루를 어떻게 누릴 적에 즐거울까.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이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먹으면서 큰 아이들이 사랑을 물려준다. 조금만 더 가까이 아이 곁에 서고, 조금만 더 따스히 아이 눈높이로 지내며, 조금만 더 보드랍게 아이 손을 잡고 하루를 누릴 수 있으면, 다 함께 활짝 웃는 삶 되겠지. 작은 눈빛이 사랑 되고, 작은 손길이 꿈 되며, 작은 마음이 빛줄기 된다. 4346.12..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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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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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267) 공功 1 : 공을 들이다

 

가정의 행복은 가족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맺어지는 하나의 열매이다. 우리는 각각 이 귀중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날마다의 공을 들여야 한다
《엘렌 지 화잇/왕대아 옮김-가정과 건강》(시조사,1950) 머리말

 

  한자말 ‘가정(家庭)’은 한국말 ‘집안’을 가리킵니다. 한자말 ‘행복(幸福)’은 한국말 ‘즐거움’을 가리켜요. 그러니, “가정의 행복”이란 “집안에서 누리는 즐거움”이나 “집안에서 피어나는 즐거움”을 나타내요.


  “가족(家族)들의 끊임없는 노력(努力)으로”는 “식구들이 끊임없이 애써서”나 “식구들이 끊임없이 힘을 쏟아”로 손질합니다. “하나의 열매이다”는 “열매이다”로 고쳐 줍니다. ‘각각(各各)’은 ‘저마다’로 다듬고, “맺기 위(爲)하여”는 “맺으려면”으로 다듬습니다. “날마다의 공을 들여야”에서는 토씨 ‘-의’를 덜어 “날마다 공을 들여야”로 다듬어 줍니다. ‘귀중(貴重)한’은 “귀하고 중한”을 뜻한다 하는데, 이 글월에서는 흐름을 살펴 “고운 열매”나 “좋은 열매”나 “아름다운 열매”로 다듬어 봅니다.


  외마디 한자말 ‘공(功)’ 뜻풀이를 보면 “(1) = 공로(功勞) (2) = 공력(功力)”처럼 나옵니다. ‘공로(功勞)’는 “일을 마치거나 목적을 이루는 데 들인 노력과 수고”라 하고, ‘공력(功力)’은 “애써서 들이는 정성과 힘”이라고 해요.

 

  날마다의 공을 들여야 한다
→ 날마다 힘을 들여야 한다
→ 날마다 힘을 쏟아야 한다
→ 날마다 땀을 들여야 한다
→ 날마다 온힘을 다해야 한다
 …

 

  힘을 들여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땀을 들여서 고운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을 듬뿍 들여서 달콤한 열매를 맺습니다. 저마다 제자리에서 즐겁게 힘을 들이고 땀을 들이면서 즐겁게 삶을 짓습니다.


  조그마한 일을 하든 커다란 일을 하든 즐겁게 ‘힘’을 들입니다. 언제나 기쁘게 ‘땀’을 쏟습니다. 한결같이 ‘온힘’을 다하면서 하루하루 환하게 웃습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온마음’을 바치는 동안 시나브로 예쁜 말빛이 흐드러집니다. 4337.7.4.해/4346.12.2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집안에서 피어나는 즐거움은 식구들이 끊임없이 애써서 맺는 열매이다. 우리는 저마다 이 고운 열매를 맺도록 날마다 힘을 들여야 한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11) 공功 2 : 공을 들였겠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나무를 관리하고 보살피느라 집 주인도 무척 공을 들였겠지만, 그 나무도 따뜻한 자신의 고향을 떠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혹한에 견디며 적응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요
《유상준,박소영-풀꽃 편지》(그물코,2013) 149쪽

 

  ‘자신(自身)이’는 이 글월에서 덜어도 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나무를”이 아닌 “사랑하는 나무를”처럼 쓰면 돼요. ‘관리(管理)하다’는 ‘보살피다’를 뜻합니다. 그러니, 이 글월에서는 겹말입니다. “관리하고 보살피느라”는 “보살피느라”로 바로잡습니다. ‘집 주인(主人)’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집임자’로 손질합니다. “나무도 따뜻한 자신(自身)의 고향(故鄕)을 떠나”는 “나무도 제가 태어난 따뜻한 곳을 떠나”나 “나무도 따뜻한 제 고향을 떠나”로 손보고, ‘이전(以前)에’는 ‘예전에’로 손보며, ‘경험(經驗)하지’는 ‘겪지’로 손봅니다. “혹한(酷寒)에 견디며 적응(適應)하느라”는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느라”나 “모진 추위를 견디며 지내느라”로 다듬어 줍니다.

 

 무척 공을 들였겠지만
→ 무척 땀을 들였겠지만
→ 무척 품을 들였겠지만
→ 무척 사랑을 들였겠지만
→ 무척 힘을 들였겠지만
→ 무척 애를 썼겠지만
 …

 

  보기글 끝쪽을 보면 “애를 썼을까요”라고 나옵니다. 이 대목처럼 앞쪽에도 “무척 애를 들였겠지만”이나 “무척 애를 썼겠지만”처럼 적으면 됩니다. 앞쪽과 뒤쪽을 살짝 다르게 적고 싶다면, 앞쪽에서는 “힘들 들였겠지만”처럼 적으면 돼요. 그런데, 사랑하는 나무를 보살핀다고 하니까, “사랑을 들였겠지만”처럼 적을 수 있고, “품을 들였겠지만”으로 적을 수 있어요. 4346.12.2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사랑하는 나무를 보살피느라 집임자도 무척 땀을 들였겠지만, 그 나무도 제가 태어난 따뜻한 곳을 떠나 예전에 겪지 못한 모진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요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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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글쓰기 (강경옥 님 작품 표절 작가한테)

 


  강경옥 님이 그린 만화책 《설희》를 표절한 연속극이 있다. 이 연속극 대본을 쓴 작가가 얼마나 안타까운 넋으로 글쓰기를 하는가를 놓고 글을 하나 썼는데, 어떤 사람이 내 글에 댓글을 붙여 주었다. 이 댓글에는, “8개가 겹쳐?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럼 콩쥐팥쥐는 신데렐라 표절이냐? 두 작품 사이에 유사성은 8개가 훨씬 넘어 인간들아 잘 나가는 작가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생긴 것도 멋 같이 생긴 돼지 작가 강경옥 정말 노답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더 상처를 받아봐야 또다시 이런 짓 못하겠지 돼지 돼지 강경옥” 하는 이야기가 흐른다.


  곰곰이 이 댓글을 살피니 ‘잘 나가는 작가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이라 말하는데, 그 방송작가라는 분이 얼마나 ‘잘 나가는 작가’인지 모르겠으나, ‘잘 나가는’ 틀을 놓고 따지자면, 만화가 강경옥 님은 1985년에 처음 만화가로 발을 디딜 적부터 만화밭에서 ‘잘 나가는 작가’였다. 이제 만화가로서 서른 해 발자취를 남길 텐데, 서른 해 동안 꾸준하게 새로운 작품을 내놓으면서 언제나 ‘잘 나가는 작가’로 이녁 만화를 우리한테 베푼다.


  표절 글쓰기를 하는 작가들부터 안쓰럽지만, 표절 글쓰기를 하는 작가를 우러르거나 감싸면서, ‘표절을 한 원래 작품을 쓴 작가’를 함부로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안쓰럽다. 어떻게 이 꼴이 되었을까. 어떻게 이 모양이 될까.


  표절 글쓰기를 해서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벌거나 연속극 대본을 내놓거나 책을 펴내는 이들 모두한테 말하고 싶다. 이녁들이 그렇게 표절 글쓰기로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벌거나 책을 팔아 보았자, 그런 빛이 얼마나 가겠는가? 나중에 죽어 무덤으로 들어갈 적에 마음이 가벼울까? 표절 글쓰기를 한 이녁 작품을 다른 누군가 슬그머니 다른 표절 글쓰기로 팔아치우려 한다면 이녁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


  표절 글쓰기를 하는 까닭은, 이렇게 할 때에 돈이 되고 이름값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절 글쓰기를 하면서 글힘(글 권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누리고 싶다면 누릴 노릇이리라. 그리고, 권력을 누리는 동안 참다운 사랑도 꿈도 빛도 이녁한테 깃들지 못하는 줄 느끼리라. 권력과 돈과 이름값이란 그야말로 덧없다. 며칠이나 갈까. 몇 해나 갈까.


  표절 글쓰기를 한 작가한테 아이가 있을까 궁금하다. 아이가 없다면 나중에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을는지 궁금하다. 아이가 자라면서 ‘내 어버이가 표절 글쓰기를 했던 사람’인 줄 나중에 알아챈다면, 어버이로서 아이 앞에서 어떤 얼굴을 들 수 있을까.


  원래 작품에 제대로 글삯(저작권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돈을 아낀다든지 이녁 이름값을 더 높인다든지 하면서 겉보기로 무언가 대단한 것을 거머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아름답게 거둔 돈이나 이름이 아니라면 아름답지 못한 삶으로 이어진다. 아름답게 빚는 사랑이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진다. 늦게 뉘우칠수록 스스로 수렁에 빠져든다. 늦게 고개 숙일수록 스스로 바보스러운 삶을 이을 뿐이다.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작품을 선보이는 우리 모든 ‘글지기’들은 돈이나 이름값이나 힘 때문에 글을 쓰지 않는다. 아름다운 빛을 글 한 자락으로 담아서 곱게 선보여, 우리 삶터를 사랑과 꿈이 가득한 즐거운 보금자리 되도록 일구고 싶기에 글을 쓴다. 표절 글쓰기를 한 작가와 이런 작가를 감싸는 사람들 모두 착하고 참다운 얼굴로 돌아오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4346.12.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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