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또 어디서 왔니

 


  마을을 떠돌던 개가 우리 집에 눌러앉은 지 스무 날이 된다. 아침에 밥을 끓이며 부엌문을 여니, 낯선 개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에서 킁킁거리며 돌아다닌다. “너는 또 어디서 왔니?”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문이 벌컥 열린다. 큰아이가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온다. 부엌문으로 빼꼼히 내다본다. “아이, 멍멍이 예뻐.” 얘, 얘, 예뻐 하는 일은 좋은데 말이야, 엊저녁에 멍멍이 밥을 주니 마을 고양이들이 ‘왜 우리한테는 밥을 안 주고 쟤한테는 밥을 줘?’ 하면서 한참을 울더라. 이 녀석은 아예 목줄이 있는 채 우리 집으로 깃드는데, 참말 이 개들은 다 어디에서 살다가 우리 집으로 올까? 이러다가 온 마을 온 고장 떠돌이들이 죄 우리 집으로 찾아오려나? 들개라면 스스로 먹이를 찾을 테지만 집개는 스스로 먹이를 찾지 못하니 한동안 밥을 챙겨야 할 텐데, 앞으로 살림돈 넉넉하게 잘 벌어야겠구나. 4347.2.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얼결에 물든 미국말
 (679) 힐링(healing)

 

평일이라 기사 포함해서 승객이 예닐곱 명 정도로 한적했어. 그때 남편에게서 문자가 온 거야. “힐링 잘하고 와.”
《하이힐과 고무장갑-행복의 민낯》(샨티,2013) 68쪽

 

 힐링 잘하고 와
→ 잘 쉬고 와
→ 잘 있다 와
→ 잘 지내다 와
→ 마음 잘 다스리고 와
 …

 


  한자말 ‘치유(治癒)’는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함”을 뜻합니다. ‘치료(治療)’라는 한자말은 “병이나 상처 따위를 잘 다스려 낫게 함”을 뜻합니다. 예전에 한동안 ‘치유’라는 한자말이 널리 쓰였는데, 어느 때부터 ‘힐링(healing)’이라는 영어가 나타나서 쓰입니다. 영어 ‘힐링’은 “(몸이나 마음의) 치유”를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한자말 ‘치유·치료’를 쓰든 영어 ‘힐링’을 쓰든, 한국말로는 ‘낫게 하다’나 ‘다스리다’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힐링을 한다’나 ‘치유한다’는 모두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나타냅니다. ‘마음닦기’요 ‘마음씻기’이고 ‘마음 다스리기’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한국말로 쉽게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한자말이 사회에 떠돌 적에는 한자말을 쓰고 영어가 사회에 떠돌 때에는 영어를 써요.


  쉽고 또렷한 한국말로는 생각을 나타내거나 마음을 이야기하기 어려울까 궁금합니다. 외국사람이 한국사람을 보면서 ‘힐링’을 한국말로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대꾸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이런 한자말이나 저런 영어가 떠돌기 앞서, 누구나 “바다에 가서 좀 쉬려고 해.”라든지 “산을 오르면서 마음을 쉰다.”고 흔히 말했습니다. 눈을 쉬고 몸을 쉬며 마음을 쉬면서 살던 우리 겨레입니다. 느긋하게 쉬면서 기운을 차립니다. 조용히 쉬면서 힘을 되찾습니다. 마음을 달래고 다독이며 다스립니다. 4347.2.27.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여느 날이라 기사까지 해서 손님이 예닐곱 사람쯤으로 조용했어. 그때 남편한테서 쪽글이 왔어. “잘 쉬고 와.” 

 

‘평일(平日)’은 ‘여느 날’을 한자말로 옮긴 낱말입니다. “기사 포함(包含)해서”는 “기사까지 해서”로 손보고, ‘승객(乘客)’은 ‘손님’으로 손봅니다. “예닐곱 명(名) 정도(程度)로 한적(閑寂)했어”는 “예닐곱 사람쯤 한갓졌어”나 “예닐곱 사람밖에 안 될 만큼 조용했어”로 손질합니다. ‘문자(文字)’는 그대로 써도 될 테지만 ‘쪽글’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온 거야”는 “왔어”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고흥집 36. 겨울 지나 봄 언저리 2014.2.26.

 


  들이 짙푸를 적에는 온갖 소리로 복닥복닥하다. 들에서 푸른 빛이 사라지고 싯누럴 적에는 바람소리를 빼고는 고요하다. 겨울이 길었을까. 겨울은 짧게 스치듯이 지나갈까. 빈들에 푸릇푸릇 새싹이 돋고, 싯누렇게 시든 풀잎 사이로 파릇파릇 새잎이 자란다. 싯누런 풀잎에 불을 놓아 태울 수 있지만, 따로 태우지 않아도 싯누런 풀잎은 스스로 사라진다. 따스한 볕살이 차츰 길어진다. 봄을 재촉하는 겨울비로 마을이 옴팡 젖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이 끝나는 비 (도서관일기 2014.2.2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겨울이 끝나는 비가 내린다. 다 읽고 갈무리한 책을 옮기려고 서재도서관으로 간다. 이번에 새로 나온 내 책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도 두 권을 들고 간다. 곱게 나온 책을 얻어 책꽂이 한쪽에 꽂는다. 어느새 내 책으로도 책꽂이 한 칸이 다 찬다. 이제부터 가야 할 길이 멀 테지. 겉꾸밈도 속알맹이도 나란히 고운 책이 태어날 수 있도록 즐거우면서 신나게 이 길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봄을 코앞에 둔 들녘은 누런 빛이 아주 눈부시다. 빗물을 머금으면서 더욱 싯누렇다. 이월 끝자락과 삼월 첫무렵에만 만날 수 있는 고운 빛이다. ‘지는 꽃도 아름답다’와 같은 말이 있으나 ‘지는 풀도 아름답다’라든지 ‘시든 풀도 아름답다’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다. 시골에서 풀과 함께 살아가노라면, 새로 돋는 풀뿐 아니라 시들어 쓰러진 누런 풀잎도 얼마나 고운지 모른다.


  내 책을 꽂은 뒤, 몇 가지 책을 챙긴다. 요즈막에 우리 집에 눌어앉은 개 한 마리가 있기에 문득 《떠돌이 개》라는 그림책이 생각났다. 1994년에 처음 한국말로 나오고 2003년에 새롭게 나왔으나 곧 판이 끊어진 그림책이다. 떠돌이라 할는지 나그네라 할는지, 바야흐로 사람 손길에 얽매이지 않고 홀가분한 삶을 되찾았다고 할는지, 개 한 마리 이야기를 곰곰이 돌아본다.


  이원수 님 동화책 《잔디 숲속의 이쁜이》를 챙긴다. 지난날 《보리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어린이 국어사전에 넣을 보기글(용례)을 모으려고 이원수 님 동화책을 모두 새롭게 읽으며 ‘낱말 쓰임새’를 살폈다. 이 동화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내 책들로 서재도서관을 꾸려 놓으니, 언제라도 다시 들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책을 알뜰살뜰 간직할 수 있어 좋다. 이 책들을 이웃한테도 얼마든지 보여주고 책을 함께 나눌 수 있으니 더 좋다.


  아이들과 서재도서관에 왔을 적에 아이들이 놀다가 아무렇게나 둔 장기알을 바라본다. 이제 장기알은 짝이 안 맞는다. 아이들이 커서 장기를 둘 만한 나이가 되면, 그때 장기알을 새로 장만해야겠지. 아이들한테는 장기알이 아직 장기알이 아닌 온갖 놀잇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이들한테 책들도 아직 책이라기보다는 놀잇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머잖아 이 아이들한테도 이 책들이 모두 살가운 마음밥이자 사랑밥이자 노래밥이자 꿈밥이 되리라 생각한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일제 농림 수탈상 (도서관일기 2014.2.1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미승우 님이 쓴 《일제 농림 수탈상》이라는 책이 있다. 1983년에 나온 책인데, 그리 널리 읽히지 못했다고 느낀다. 이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책을 읽었다거나 안다고 하는 사람도 거의 만난 일이 없다. 아니, 이 책을 안다는 사람은 이제껏 딱 한 번 만났다.


  미승우 님은 《일제 농림 수탈상》이라는 책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이 나라 숲과 들을 얼마나 짓밟으면서 무너뜨렸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읽으면 읽을수록 슬픈 이야기가 흐른다. 이 나라에 아름드리나무가 거의 없는 까닭을 알 만하고, 이 나라 정부가 숲을 제대로 건사할 줄 모르는 까닭을 짚을 만하다. 일제강점기가 끝났어도 도시이든 시골이든 아름드리나무가 없다. 일흔 해를 살아낸 굵은 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 숲이 없고 숲을 가꾸지 않는다.


  중국이 티벳에 탱크와 군인을 거느리고 쳐들어간 까닭 가운데 하나는 ‘티벳에 있는 지하자원과 숲’을 가로채려 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티벳을 티벳이라 가리키지 않고 ‘서장(西藏)’이라 가리키는데, 이 이름은 ‘서쪽에 있는 보배 곳간’이라는 뜻이다. 티벳에서는 지하자원을 함부로 파내지 않을 뿐 아니라, 나무도 함부로 베지 않으니, 중국 정부로서는 두 가지를 가로채고 티벳 사람들을 ‘노역 광부와 벌목꾼’으로 부리려는 꿍꿍이를 오늘날까지 잇는다. 이웃나라를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제국주의 권력은 언제나 숲을 망가뜨린다. 지하자원을 개발한다는 허울을 내세워 끝없이 자본주의 물결을 탄다.


  서재도서관 어느 책시렁에 틀림없이 《일제 농림 수탈상》을 꽂았지만 도무지 어디에 꽂았는지 떠오르지 않아 한 해 남짓 찾다가 그만두었다. 그런데, 찾기를 그만두고 얼마 안 되어 뜻밖이다 싶은 자리에서 이 책을 찾는다. 오스카 루이스 님이 쓴 《가난이 낳은 모든 것》이라는 책과 함께 좀 뜬금없다 싶은 책시렁에 덩그러니 꽂았더라. 두 책 모두 어디로 갔는가 한참 찾았는데, 곰곰이 되짚어 보니 한창 책시렁을 새로 짜서 붙이고 책상자를 끌르고 하면서 ‘이 책은 잘 건사해야 하니 다른 곳에 둘 마음으로 살짝 그 자리에 두고’는 그만 깜빡 잊은 듯하다.


  2011년 가을이 아련하다. 2014년 새봄을 코앞에 둔다. 시골자락에 보금자리를 튼 서재도서관은 한 살씩 새로 나이를 먹으며 책꽂이 짜임새가 한결 예쁘게 거듭난다고 느낀다. 퍽 느긋하고 넉넉하게 책을 만질 수 있다고 느끼니 좋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