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탈핵 이야기 (최열, 김익중, 이원영, 한홍구, 우석균, 강양구, 소복이) 철수와영희 펴냄, 2014.3.11.



  어린이가 자라 푸름이가 된다. 푸름이가 자라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어린이와 푸름이는 아이를 낳는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어린이로 자라고 푸름이로 자라며, 새삼스레 다시 어른이 된다. 어린이와 푸름이는 어른이 만든 삶터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어린이와 푸름이는 곧 어른이 되어 삶터를 새롭게 가꾼다. 그러니, 어른은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앞으로 이 삶터를 어떻게 다시 만들고 새롭게 가꾸어야 아름다울는지 가르치거나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10대와 통하는 탈핵 이야기》는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어린이와 푸름이가 자원과 에너지와 전기와 문명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를 찬찬히 들려준다. ‘반핵’이나 ‘찬핵’이 아닌 ‘탈핵’, 곧 핵발전과 핵무기 모두 털어내면서 새 빛을 찾자고 이야기한다. 4347.3.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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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컸어요! 웅진 세계그림책 115
루스 크라우스 지음, 헬린 옥슨버리 그림,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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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5



봄을 먹는 아이들

― 이만큼 컸어요

 루스 크라우스 글

 헬린 옥슨버리 그림

 공경희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7.6.29.



  봄이 되어 풀이 돋습니다. 풀이 돋아 잎이 벌어지고 줄기가 오르면서 꽃이 피어납니다. 꽃이 지면서 열매가 익고 씨앗이 맺습니다. 아이들은 들과 숲을 쏘다니며 들딸기를 찾습니다. 들딸기 곁에서 찔레싹을 꺾어 먹습니다. 찔레꽃 하얀 잎사귀도 들딸기와 함께 훑어서 먹습니다.


  들딸기와 찔레를 먹는 아이들은 들과 숲에서 자라는 풀잎과 풀줄기를 뜯거나 꺾거나 캐어 먹습니다. 풀열매는 아이들 몸으로 빨갛게 스며들고, 풀잎과 풀줄기는 아이들 몸마다 푸르게 젖어듭니다.



.. 곧 여름이에요. 나무에 새싹이 돋고, 땅에 풀도 자라기 시작했어요. 헛간 옆에는 꽃이 피었어요.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모두모두 크고 있어요. 풀도 크고, 꽃도 크고 나무도 크고 있어요.” ..  (4쪽)

 

 



  어버이는 아이한테 밥을 차려 줍니다. 가장 맛있게 먹을 밥을 차립니다. 손수 흙을 일구어 나락을 거두면, 키를 까부르고 방아를 찧으며 돌을 일어서 솥에 안칩니다. 장작을 때어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고, 보글보글 밥 익는 내음이 퍼지는 사이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마련합니다. 아이들은 밥내음과 국내음을 맡으며 꼬르륵 노래를 부릅니다. 침을 꼴깍 삼키고 한결 배고픕니다. 그러나 즐겁게 기다리면서 마당에서 놀고 고샅을 달립니다.


  이윽고 밥을 다 차리면 어버이가 부르는 소리가 마을에 퍼집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네 네 소리를 치면서 집으로 달려갑니다. 신을 휙휙 발에서 털고는 섬돌을 콩콩콩 뛰어서 집으로 들어갑니다. 밥상맡에 앉아서 잘 먹겠습니다 외치면서 밥술을 듭니다. 입으로 밥을 퍼넣느라 바빠 조잘조잘 재잘재잘 떠들지 않습니다. 입안 가득 밥을 우물거리면서 꿀꺽 삼키고 나서, 이야 맛있네 하면서 비로소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를 합니다.



.. 옥수수가 자랐어요, 과수원 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어요. 병아리들도 꽤 자랐어요. 강아지도 많이 자랐지요. 아이가 말했어요. “너희들 많이 컸구나.” ..  (12쪽)

 

 



  봄입니다. 골골샅샅 푸른 빛이 퍼지는 봄입니다. 봄은 들과 숲을 푸르게 물들입니다. 푸르게 물든 들과 숲에는 아름다운 노래가 퍼집니다. 나비가 노래하고 벌이 노래합니다. 개미가 노래하고 딱정벌레가 노래합니다. 개구리와 뱀이 노래하고 멧새와 들새가 노래합니다.


  누군가는 들노래를 들으며 들일을 합니다. 누군가는 숲노래를 들으며 숲마실을 합니다. 누군가는 풀노래를 들으며 풀놀이를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놀이를 물려받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아이한테 놀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언제나 새삼스레 새 놀이를 빚습니다. 어른한테서 연 만들기를 배운다거나 제기나 썰매 만들기를 배우기도 하지만, 돌치기이든 구슬치기이든 자치기이든 금놀이이든, 늘 새 놀이를 재미나게 만들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치지 않고 놉니다.


  노는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 기운을 냅니다. 노는 아이들은 구슬땀을 흘리면서 서로 아끼고 돌보는 동안 사랑을 느낍니다. 노는 아이들은 날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노는 아이들은 언제나 씩씩하게 두 다리로 이 땅을 버티고 섭니다.



.. 덩굴에 꽃이 피었어요. 장미도 활짝 피었어요. 옥수수는 어른 키만 해졌어요. 배도 탐스럽게 익었어요. 병아리들도 더 쑥쑥 자랐어요. 강아지도 더 무럭무럭 자랐지요. 아이는 혼자 나가 헛간 옆에 앉았어요. 풀과 꽃을 보았어요 ..  (16쪽)

 

 



  루스 크라우스 님 글에 헬린 옥슨버리 님 그림을 더한 그림책 《이만큼 컸어요》(웅진주니어,2007)를 읽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아이들 이야기를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시골에서 시골일을 거들고 시골놀이를 즐기는 아이가 날마다 새롭게 이웃과 동무를 느끼면서 스스로 자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는 풀이 자라는 결을 헤아리며 저 또한 자라는 줄 알아차립니다. 아이는 병아리가 자라고 옥수수가 크는 무늬를 바라보며 저 또한 크는 줄 깨닫습니다. 아이는 강아지와 함께 자랍니다. 아이는 배나무 열매와 함께 큽니다. 아이는 하늘숨을 마십니다. 아이는 하늘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는 하늘빛을 먹습니다. 아이는 하늘꿈을 품습니다.


  줄로 키를 재야 아이가 자라는 줄 알지 않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학년이 올라야 아이가 자라는 줄 알아차리지 않습니다. 봄이 찾아오고 여름이 무르익으며 가을이 빛나는 하루를 누리면서 자랍니다. 봄이 피어나고 여름이 환하며 가을이 고운 삶을 누리면서 큽니다. 봄과 함께 봄밥을 먹습니다. 여름과 함께 여름숨을 마십니다. 가을과 함께 가을노래를 부릅니다. 겨울에 겨울놀이를 즐기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아이들은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철철이 즐기는 동안 사랑을 배웁니다. 아이들은 철마다 다른 빛을 느끼면서 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익힙니다.


  봄을 먹는 아이들입니다. 봄을 노래하는 아이들입니다. 봄을 꿈꾸고 봄을 기다리며 봄을 부르는 아이들입니다. 4347.3.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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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길 빨래기계



  아이들과 마실을 나온 지 이틀째 된다. 첫날은 인천 큰아버지네에서 묵으며 손빨래를 한다. 저녁에 빨래한 옷은 이튿날 아침에 바짝바짝 마른다. 둘째 날은 일산 이모네에서 묵으며 빨래기계한테 맡긴다. 아이들을 씻기고 나도 씻은 뒤 빨래기계가 다 돌 때까지 기다린다. 아이들 씻기며 흐르는 물로 비빔질을 하고, 내 몸을 씻으며 나오는 말로 헹굼질을 하곤 하던 빨래인데, 따로 빨래기계를 쓰니 손품은 덜지만, 물은 많이 드는구나 싶다. 빨래가 다 될 때까지 한참 기다린다.


  마실길에는 아이들 옷가지를 여러 벌 챙기지 않는다. 두 벌씩 챙기더라도 가방 한 짐 된다. 저녁마다 아이들 옷을 벗겨서 빨래를 한다. 아이들은 새 옷을 입고 하루를 누린다. 아침마다 옷가지를 털고 갠다. 일산 이모네 집에서 빨랫대에 옷가지를 너는 동안 두 아이가 이부자리로 기어든다. 아침부터 낮 두 시 반까지 쉬잖고 놀던 두 아이가 비로소 졸음이 몰린 듯하다. 제법 나이를 먹은 아이들은 몸이 퍽 고단하면 스스로 이부자리로 기어든다. 척 보기로도 고단해 보여 제발 조금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놀라 하더라도 눕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스스로 더 견딜 수 없을 때에 스스로 드러눕는다.


  옷가지를 다 넌다. 아이들 목소리가 잦아든다. 어느새 두 아이 모두 눈을 감고 꿈나라로 갔다. 이마를 쓸어넘기고 이불깃을 여민다. 조용하다. 일산 대화역 둘레에 있는 이모네 집 창밖으로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어온다. 고흥집에서는 멧새와 나뭇잎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이곳에서는 복닥복닥 소리를 듣는다. 4347.3.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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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그림책 《꼬마 곡예사》를 또 한 권 장만한다. 책방마실을 할 적에 《꼬마 곡예사》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언제나 이 그림책 앞에 서서 한참 들여다보고 찬찬히 넘긴다. ‘꼬마 곡예사’ 이야기는 여러 사람이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로 다루었다. ‘성모의 곡예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여러 사람들이 쓴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를 읽을 적에도 즐겁고 아름답다 느끼지만, 나는 어느 책보다도 바바라 쿠니 님 그림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보고 새로 보면서 늘 새삼스레 눈시울이 젖는다. 가슴 가득 사랑을 길어올려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작은 아이 바나비가 얼마나 애틋하며 살가운가 하고 돌아본다. 바바라 쿠니 님이 이녁 아들을 낳으며 바나비라고 이름을 붙인 까닭을 알 만하다. 참말, 바바라 쿠니 님은 온 사랑으로 ‘꼬마 곡예사’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새로 빚었고, 이녁 아이와 함께 오래오래 아끼고 누린다. 4347.3.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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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곡예사
바바라 쿠니 / 분도출판사 / 198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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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한 산책 - 제2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281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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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50


시와 서울마실
― 자명한 산책
 황인숙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3.12.11.


  서울로 마실을 나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마실을 나옵니다. 우리 집 곁님은 아직 많이 아픈 사람이라 함께 마실을 다니기 어렵습니다.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나오든,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마실을 나가든, 나는 언제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입니다.

  서울마실을 하는 먼길에 두 아이와 함께하며 생각합니다. 곁님이 아이들과 함께 다니지 못하니 늘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곁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수 있으면, 나로서는 두 아이를 혼자 데리고 다니는 즐거움을 못 누립니다.

  아이들 먹을 밥을 챙깁니다. 아이들 입을 옷을 꾸립니다. 큰 가방에는 아이들 짐이 그득합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읍에서 순천시로 갑니다. 순천에서 인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두 아이는 버스역 맞이방에서 한참 뛰놉니다.

  시외버스를 탄 아이들은 버스에서도 놉니다. 노래를 부르고 서로 얼크러집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날 무렵, 큰아이가 먼저 곯아떨어집니다. 이윽고 작은아이도 곯아떨어집니다. 두 아이는 서로서로 기대고, 나는 두 아이를 살며시 토닥이면서 재웁니다. 드디어 인천 버스역에 닿을 무렵 큰아이를 깨웁니다. 가방을 메고 작은아이를 안습니다.

  버스에서 내릴 적에 큰아이가 일어나 주니 고맙습니다. 큰아이는 졸음이 다 가시지 않았어도 씩씩하게 걷습니다. 한손으로는 작은아이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큰아이 손을 잡습니다. 버스역 뒷간으로 가서 두 아이 쉬를 누입니다.


.. 빨간 신호등이 푸르러지도록 / 사람들은 무얼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  (무교동)


  버스역에서 전철역으로 갑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갑니다. 두 아이는 계단을 타니 재미있다고 여깁니다. 시골집에는 계단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거나 내려갈 일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온갖 곳에 계단이 있습니다. 도시는 땅뙈기가 좁다면서 위로 높거나 아래로 깊습니다.

  계단놀이를 하는 아이들 손을 잡고 전철역으로 들어서면서 생각합니다. 참말 도시에서는 어디에서나 계단이로구나, 도시에서는 늘 계단투성이가 되니 사람들이 승강기를 타고 싶겠구나.

  전철을 탑니다. 아이들과 전철을 탄 지 얼마나 되었나 돌아봅니다. 여섯 달쯤 되었던가. 큰아이는 손잡이를 안 잡고 서려 합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손을 잡습니다. 큰아이는 전철이 서고 달릴 적마다 비틀비틀 춤을 춥니다. 춤을 추는 전철이 재미있다고 여깁니다. 두 아이는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너희한테는 어느 곳이나 놀이터가 되는구나.


.. 모진 소리를 들으면 /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더라도 / 내 귀를 겨냥한 소리가 아니더라도 ..  (모진 소리)


  전철을 내립니다. 저녁바람이 셉니다. 삼월을 갓 지난 인천은 아직 쌀쌀합니다. 고흥에서는 따순 바람이 불지만, 인천에 봄바람이 불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고흥집을 나설 적에 덥다면서 겉옷을 안 입으려 하던 아이들입니다. 겉옷을 챙길까 말까 하다가 두고 나왔습니다. 너희가 추위를 한번 겪어야 너희 겉옷을 스스로 챙기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가방에 겉옷을 챙길 수 있으나, 늘 다 챙기지는 말아야겠다고 여겼습니다. 일곱 살 네 살 나이는 아직 많이 어리지만, 마냥 어리기만 한 나이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쌀쌀한 바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이들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씨에 어떻게 지내야 한다고 여길까요. 내가 좀 짓궂게 구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번 마실길에서 큰아이 새 겉옷을 장만하자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두꺼운 겉옷은 있으나 바람막이 같은 겉옷은 없거든요. 시골에서는 아이들 옷을 새로 장만하거나 얻기 힘들거든요. 큰도시로 마실을 나온 김에 아이들 옷을 살펴보자고 생각했어요.


.. 구름이 / 가만히 있다. / 가생이가 하얗게 / 햇빛을 쪼이면서. / 졸리운 돌고래처럼 ..  (르네 마그리트의 하늘)


  인천 지하상가에서 큰아이 웃옷과 바지 한 벌을 새로 장만합니다. 큰아이는 처음에 ‘안 추워. 안 살래.’ 하고 얘기했지만, 토끼 무늬 들어간 웃옷과 고양이 무늬 들어간 바지를 바라보며 ‘토끼 예뻐. 고양이 좋아.’ 하고 말합니다.

  큰아버지 사는 인천에서 하루를 묵습니다. 이튿날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갑니다. 전철길에서 큰아이는 큰아버지 보고 싶다며 다시 돌아가자고 말하며 웁니다. ‘얘야, 너 큰아버지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큰아버지하고는 안 놀았잖아. 있을 때에는 그렇게 하고 나와서 운다고 돌아가지는 않아. 그리고 이제 서울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이모를 만나자고 했잖니. 너, 큰아버지도 보고 싶다 했지만 이모도 보고 싶다 했잖아. 이제는 이모를 보러 가자.’ 하고 말합니다. 큰아이는 눈물을 그치지 않습니다. 전철에서 작은아이는 곯아떨어집니다. 작은아이를 오른어깨에 기대어 잠들도록 하고는 무릎에 큰아이를 앉힙니다. 등을 쓸면서 다독입니다. 큰아이는 품에 안긴 채 시무룩합니다.

  저녁에 어머니를 만납니다. 이레만에 얼굴을 봅니다. 어머니를 본 아이들은 큰아버지를 잊습니다. 밤에 택시를 불러 일산으로 갑니다. 택시에서 곯아떨어진 아이들을 안고 업으며 이모네 집에 가니, 깊이 잠들던 아이들이 이모와 이모부 목소리에 살몃 눈을 뜨더니 얼굴에 웃음빛이 흐릅니다. 녀석들, 좋니? 즐겁니?


.. 바람의 축축한 혀가 / 측백나무와 그 아래 수수꽃다리를 핥으면 / 측백나무와 수수꽃다리는 / 슬며시 눈을 뜯고 / 측백나무와 수수꽃다리로 깨어난다 ..  (젖은 혀, 마른 혀)


  아이들 이모와 이모부는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섭니다. 두 분 모두 회사에 가서 일을 합니다. 아이들은 ‘빨리 와.’, ‘얼른 와.’ 하고 인사합니다.

  이부자리를 갭니다. 커텐을 걷고 창문을 여니 바깥에서 소리가 흘러듭니다. 어떤 소리가 이곳으로 스며드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자동차 달리는 소리, 건물에서 뭔가 복닥이는 소리, 웃집이나 아랫집에서 물을 쓰는 소리,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 웅성거리는 소리 들이 골고루 들어옵니다.

  삼월이 무르익는 일산인데, 멧새나 들새가 노래하는 소리는 없습니다. 개구리가 깨어나는 소리는 없습니다. 풀벌레가 고개를 내미는 소리는 없습니다. 나비가 춤을 추거나 벌이 나는 소리는 없습니다. 봄바람 따라 봄나무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소리는 없습니다. 조그마한 들꽃이 봄맞이를 하는 노래는 없습니다. 천천히 터지는 꽃망울이나 잎망울 속삭임은 없습니다.

  이 도시에는 어떤 소리가 있을까요. 이 도시에서 일하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노래를 나눌까요.


.. 고양이가 운다 / 자기 울음에 스스로 반한 듯 / 부드럽게 / 고양이가 길게 울어서 / 고양이처럼 밤은 / 부드럽고 까실까실한 혀로 / 고양이를 핥고 / 그래서 고양이가 또 운다 ..  (밤과 고양이)


  황인숙 님 시집 《자명한 산책》(문학과지성사,2003)을 읽습니다. 황인숙 님이 누린 나들이를 떠올립니다. 황인숙 님이 눈으로 바라보고 귀로 들으며 살결로 느낀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황인숙 님이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맞이한 삶은 어떤 빛인가 곱씹습니다. 황인숙 님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춤을 추는 하루를 누릴까 하고 생각합니다.


.. 눈을 감고 담쟁이는 / 한껏 사지를 뻗고 담쟁이는 / 온몸으로 모든 걸 음미한다 / 달콤함, 부드러움, 축축함, 서늘함, / 살랑걸림, 쓸쓸함, 따분함, 고요함, / 따사로움, 메마름, 간지러움, 즐거움 ..  (담쟁이)


  콧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사람이 있어요. 콧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달리는 사람이 있어요.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길을 걷는 사람이 있어요. 콧노래와 함께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걸레질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 삶에 노래는 어느 만큼 있을까요. 우리 삶은 어떤 노래가 어떤 빛깔과 무늬로 드리울까요. 우리 삶에서 노래는 얼마나 곱게 빛날까요.

  서울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꽃노래를 부르며 나들이를 즐길 수 있기를 빕니다. 회사원으로 지내든 집에서 살림을 가꾸든 다 함께 꽃춤을 추면서 웃을 수 있기를 빕니다. 시 한 줄은 한 발자국입니다. 시 두 줄은 두 발자국입니다. 시 석 줄은 세 발자국입니다. 천천히 거닐듯이 천천히 시를 씁니다. 즐겁게 걷듯이 즐겁게 시를 씁니다. 바쁜 사람은 바쁜 시를 쓰고, 아픈 사람은 아픈 시를 씁니다. 꿈꾸는 사람은 꿈꾸는 시를 쓰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시를 씁니다.

  서울 낮하늘도 파랗고, 서울 밤하늘도 까맣습니다. 서울 하늘에도 구름이 흐르고, 서울 보도블럭 틈바구니마다 갖가지 봄풀이 돋으며 푸른 숨결 나누어 줍니다. 4347.3.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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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3-07 19:10   좋아요 0 | URL
자연스러운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파란놀 2014-03-08 18:4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읽어 주시는 분들이
언제나 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