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손바느질 - 36.5℃ 손바느질 소품 37
송민혜 지음 / 겨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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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1



사랑하며 살아가는 손빛

― 처음 손바느질

 송민혜 글·사진

 겨리 펴냄, 2014.4.10.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쌀을 씻습니다. 때로는 새벽에 일어나서 쌀을 씻습니다. 네 식구 함께 먹을 밥을 헤아리며 쌀을 씻습니다. 다음 끼니로 어떤 밥을 지어서 먹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즐겁게 누린 한 끼니를 돌아보면서, 다음 끼니에도 다 같이 즐겁게 밥 한 그릇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쌀은 손으로 씻습니다. 냄비에 쌀과 물을 받아 살살 젓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쌀을 씻을 때에는 으레 아이들이 옆에서 지켜봅니다. 큰아이는 키가 웬만큼 자랐으니 손만 쭉 뻗으며 “나도 할래.” 하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받침걸상을 가지고 와서 올라온 뒤 “나도 할래.” 하고 누나 말을 따릅니다.


  끼니로 먹는 밥은 논에서 거둔 벼입니다. 벼에서 겉껍질인 겨를 벗기면 비로소 쌀이고, 이 쌀을 솥이든 냄비이든 담아서 물을 맞추어 지으면 밥입니다. 요즈막에는 볍씨를 내어 모판을 만들고 모를 심는 일 모두 기계로 하지만, 예부터 모내기이든 씨뿌리기이든 모두 손으로 했습니다. 손으로 씨앗을 만져 흙에 두었고, 손으로 흙을 조물조물 만지면서 보살폈습니다. 이렇게 하고는 가을걷이에도 손으로 낫을 쥐고 손으로 볏포기를 움켜쥐면서 석석 베었어요.


  손으로 벤 볏포기는 이 다음에도 손으로 알맹이를 털지요. 손으로 짠 섬에 벼를 담고, 손으로 만든 절구에 벼를 넣어 손으로 깎은 절굿공이를 들고 겨를 벗겼습니다. 그러고는, 또 손으로 만든 키로 석석 날리면서 지푸라기가 날아가도록 했습니다. 지난날에 흔히 쓰던 조리도 손으로 만들었어요. 솥도 손으로 만들고, 부엌과 아궁이도 손으로 지으며, 집도 손으로 지었어요. 수저도 손으로 만들고, 밥상도 밥그릇도 누구나 스스로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 곰곰 제 어릴 때를 돌아보면 집에서 어른들이 바느질하는 모습을 곧잘 볼 수 있었어요. 할머니는 손수 한복을 지어 주셨고, 자투리 천으로 한복에 다는 동전들과 인형 옷을 만들어 주셨어요. 이불 호청을 빨아 풀 먹이고 다듬이질한 뒤에 시침질 하던 모습도 생각나네요. 집에서 쓰는 바구니와 채가 닳아 구멍이 나면 아버지가 바느질해 손을 보셨고 … 아이들에게 엄마 손길 담은 소품을 선물해 보세요. 제 쓰임이 있는 소품들이라면 아이가 늘 곁에 두고 쓰면서 엄마 사랑을 담뿍 받을 수 있어요 ..  (2, 12쪽)



  아이들 손을 잡고 걷습니다. 어디이든 가고 싶은 곳으로 손을 잡고 걷습니다. 숲에 가고 싶으면 숲으로 가지요. 들에 가고 싶으면 들로 가지요. 바다로 가고 싶으면 바다로 갑니다. 도시로 마실을 하려고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갈 수 있어요.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이든 부산이든 인천이든 갑니다. 언제나 아이들 손을 잡습니다. 시골에서는 자동차가 뜸하니 아이들이 저희끼리 이리 달리든 저리 뛰든 그리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읍내에만 나와도 자동차가 복닥거리기에 아이들을 불러 손을 잡습니다.


  여름에도 손을 잡고 겨울에도 손을 잡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손을 잡습니다. 아주 꼬맹이였을 적에는 아이들이 위로 손을 뻗어야 했고, 네 살 일곱 살 천천히 자라니, 이제 아이들도 손잡기가 힘들지 않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인 나 또한 내 어버이와 손을 잡고 컸습니다. 내 어버이도 꼬맹이인 내 손을 바투 잡았습니다. 손만 잡을 뿐 아니라 몸도 가까이 붙어요. 착 달라붙으면서 어버이 발걸음에 내 발걸음을 맞춥니다.


  참말 그래요. 사람이 많거나 자동차가 오가는 곳에서 어떤 어버이라도 이녁 아이 손을 꼬옥 잡기 마련입니다. 놓치지 않으려고,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아끼려고, 보살피려고 어버이는 아이 손을 힘껏 잡습니다.





.. 큰 통에 물을 담고 천을 넣어 서너 시간쯤 담가 두세요. 천을 만들 때 쓴 화학약품과 풀기가 잘 빠질 수 있게 조물락조물락 해 주면 좋아요. 그리고 잘 말립니다. 빳빳이 다 마르기 앞서 살짝 덜 말랐을 때 다림질을 해 주면 구김을 쉽게 펼 수 있어요 … 작은 소품 하나로 아이에게 빛나는 하루를 선물할 수 있어요 … 봄에 조카가 놀러 와서 놀다가 덥다고 바지를 벗었어요. 개구쟁이라서 내복바지에 구멍이 두 개 났네요. 그래서 자투리 천으로 퀼트솜을 덧대 꿰매 주었더니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자랑을 했대요 ..  (6, 24, 30쪽)



  우리 네 식구는 시골에서 두 다리로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며, 버스를 타기도 합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달릴 때에는, 혼자 달릴 때하고 사뭇 다릅니다. 힘이 여러 곱 들기도 하는데, 이보다 두 아이와 함께 달리는 자전거는 한결 느긋하고 차분히 달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굳이 더 빨리 달리려 하지 않습니다. 애써 큰길로만 다녀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조용하며 오붓한 길을 찾아 달립니다. 아이들이 자전거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한갓진 길이 즐겁습니다. 들바람을 마시고 바닷바람을 먹을 만한 길을 달리면 아이도 어버이도 함께 기쁩니다.


  자동차가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자동차는 아무 데에서나 함부로 씽씽 달리면 안 될 뿐입니다. 자동차는 아무 데나 마구 휘젓고 들어서지 말아야 할 뿐입니다. 시골이라면 마을 어귀에 자동차를 대고, 마을 안쪽으로는 걸어서 들어와야지요. 도시에서도 자동차는 동네 바깥에 대고, 동네로는 걸어서 들어서야지요.


  집 앞에는 자동차를 대지 말아야 한다고 느껴요. 자동차는 집 앞까지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집 앞은 아이들 놀이터이거든요. 집 앞은 아이들이 노는 곳인 한편, 어른들이 일할 곳이고, 텃밭이나 꽃밭이 될 곳이며, 이웃과 만나서 어울리는 쉼터가 되어야 하니까요.


  집 앞에는 자동차를 세우지 말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느껴요. 집 앞에는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 고운 그늘을 드리우고 싱그러운 바람을 베풀도록 해야지 싶어요. 우리들은 집 앞에서 자라는 나무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두 손으로 살살 어루만지지요. 나무 둘레에서 자라는 풀도 살살 쓰다듬고, 풀꽃이 피면 풀꽃한테도 인사하지요. 아이는 어버이 손을 잡으면서 즐겁고, 어버이는 아이 손을 잡으면서 기쁩니다. 사람은 나무와 풀을 쓰다듬으면서 즐겁고, 나무와 풀은 사람 손길을 타면서 기쁩니다.





.. 수업 준비하면서 재료 살 때는 되도록이면 무턱대고 비싸거나 폼 잡는 재료들은 사지 않는다. 중요한 재료라기보다 얼마나 할 마음이 있는지(하고 싶은 마음)와 ‘기본’이니까 …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소품을 만들어 보세요 …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아이들 스스로 찾아보면서 계절에 따라 무슨 열매들이 있는지 둘레 모습은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볼 수 있어요 … 책에서 말하는 대로 가로로 꽂든 내가 쓰듯 세로로 꽂든 꼭 어떻게 해야 하는 일이란 없다. 그저 쓰기 편한 대로 ‘나’에 맞춰 쓰면 된다 ..  (32, 50, 53, 63쪽)



  송민혜 님이 쓴 《처음 손바느질》(겨리,2014)을 읽습니다. 손바느질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들한테 길잡이가 되도록 쓴 책입니다. 바느질을 이럭저럭 할 수 있지만, 바느질을 하는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이들한테 길동무가 되도록 엮은 책입니다. 솜씨 좋게 바느질을 하는 이들한테 살가운 이웃이 되자면서 빚은 책입니다.




.. 그림 그린 날이나 아이 이름을 바늘땀으로 넣어 보세요. 누가 그렸는지 언제 그렸는지 남겨둘 수 있어 좋아요 … 아이는 자르고 엄마는 바느질, 사이좋게 뚝딱. 안 입는 옷과 자투리 천으로 만든 장식줄 … 나뭇가지를 엮을 때 쉽게 글루건이나 본드를 쓸 수도 있지만 번거롭더라도 실이나 끈으로 엮어 주세요. 나뭇가지도 숨을 쉬어야 해요 … 필요해서 만들어 쓰는 물건은 만들면서도 만들고 나서도 참 기분이 좋아요 … 유리병 주머니는 작업실 겸 가게 할 때 재활용 수업으로 처음 만들었어요. 사과주스를 담았던 호리호리한 병이라 그냥 쓰기에도 예뻤지만 이야기를 넣고 싶었어요 ..  (66, 70, 77, 84, 107쪽)



  바느질은 언제나 손바느질입니다. 손이 없으면 바느질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바느질이 손바느질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글쓰기가 손글 아닌 기계글이기 일쑤입니다. 오늘날에는 빨래가 손빨래 아닌 기계빨래이기 일쑤입니다. 밥 또한 손으로 짓는 손밥이 아니라 기계로 짓는 기계밥이거나 전화로 시켜서 먹는 바깥밥이기 일쑤입니다. 가게에서 사다 먹는 공장밥까지 있어요.


  우리가 입는 옷은 어떤 옷일까 생각해 봅니다. 손으로 알뜰살뜰 지은 ‘손옷’일까요, 아니면 기계로 지은 ‘기계옷’일까요, 아니면 공장에서 찍은 ‘공장옷’일까요. 우리가 입는 옷은 어떤 사람 손길이 탔을까요. 어떤 사람이 어떤 손빛으로 어루만진 옷을 입으면서 살아가는가요.


  바느질을 하는 까닭은 살림을 가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바느질을 하는 마음은 살림을 사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밥을 지을 적에도, 흙을 보살필 적에도, 아이와 살아갈 적에도, 또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를 적에도, 또 자전거를 타거나 마실을 다닐 적에도, 우리들은 삶을 가꾸고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 느리게 / 한 땀 두 땀 // 빛깔 고르고 / 바늘땀 더하는 재미 // 손꽃 핀다 … 다림질한 가방을 한지에 싼다. / 바늘땀을 넣는다. / 꽃으로 여민다 ..  (17, 97쪽)



  《처음 손바느질》은 바느질을 누구나 집에서 손쉽게 즐기는 길을 보여줍니다. 나 스스로 내 옷가지를 누리고, 내 곁님과 살붙이한테 우리 옷가지를 나누며, 동무랑 이웃하고도 서로 옷가지를 주고받는 웃음을 스스로 짓도록 도와줍니다. 《처음 손바느질》은 서로 오붓하게 나누면 기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느질을 잘 하는 법보다는 바느질을 하는 즐거움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 엄마 시집 오실 때 외할머니께서 주셨다는 실패. 가만가만 가져다가 살몃살몃 담는다. 빨간 실패에는 이제 바로 감은 실, 까만 실패에는 손때 묻은 옛날 시침실.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니 엄마가 옆에서 “너 가져다 쓸래?” 하신다. 잠깐 탐이 났다가 “아니요.” 한다. 그대로 엄마 곁에서 할머니 곁 잇고 엄마 결이 스미기를 바라면서 ..  (167쪽)




  글을 쓰는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작가가 되려고 글을 쓸까요? 책을 내려고 글을 쓰나요? 아마 이런 까닭 때문에 글을 쓰는 분도 있으리라 느껴요. 그렇지만, 나는 즐겁고 싶어 글을 쓰고, 이웃한테 즐거운 빛을 노래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맛있게 먹으려고 밥을 지을 테지요. 그렇지만, 맛 하나로만 밥을 짓지는 않아요.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기운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싶은 꿈을 담아 밥을 짓습니다. 이 밥 한 그릇으로 고운 숨결을 북돋우면 얼마나 예쁠까 하고 생각하며 밥을 짓습니다.


  마실을 다닐 적에도, 이웃을 만날 적에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제비집을 물끄러미 바라볼 적에도, 나비 날갯짓과 잠자리 춤사위를 지켜볼 적에도, 늘 같은 마음입니다. 내 손에서는 손빛이 우러나오기를 바랍니다. 내 눈에서는 눈빛이 해맑기를 바랍니다. 내가 쓰는 글은 글빛이 밝기를 바랍니다. 내가 읽는 책은 책빛이 따스하기를 바랍니다. 이럭저럭 살림을 꾸릴 때에는 살림빛이 넉넉하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사랑빛을 나누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삶은 삶빛이 아리땁게 드리우기를 바라고, 노래 한 가락은 노래빛이 눈부시기를 바라요. 


  바느질을 하는 손마다 손빛이 손꽃과 같이 새롭게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글 한 줄은 글빛이 밝으면서 글꽃이 되고, 이야기 한 타래는 이야기빛이 푸근하면서 이야기꽃이 됩니다. 사랑은 사랑빛이 퍼지면서 사랑꽃으로 피어납니다. 삶은 삶빛이 자라면서 삶꽃으로 피어납니다.


  바느질을 하는 손을 느껴요. 스스로 손을 움직이면서 이 손길로 쓰다듬고 보살피는 이웃을 생각해요. 내 손은 너를 어루만집니다. 네 손은 나를 어루만집니다. 서로서로 어루만지고, 스스로 어루만집니다. 어머니 손도 할매 손도, 아버지 손도 할배 손도, 아이 손도 이웃 손도, 언제나 약손이요 사랑손이며 꿈손입니다. 4347.5.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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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50. 2014.5.9. 작은 책상에 모여 앉아



  책상이 곳곳에 있는데 두 아이가 꼭 작은 책상에 모여 앉는다. 아니, 누나가 앉는 자리에 동생이 꼭 다가와서 달라붙는다. 따로따로 떨어져 앉으면 한결 넉넉할 수 있지만, 서로 달라붙듯이 모여 앉으면 재미나거나 즐거울 수 있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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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봄까지꽃 책읽기


  한국에서 자라는 풀과 일본에서 자라는 풀은 이름이 같을 수 있고, 다를 수 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이름을 붙이고,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이름을 붙인다. 학문을 하는 이들은 ‘먼저 학문이름을 올리’면 이러한 이름을 써야 한다고 밝히는데, 학문이름이 없더라도 나라와 겨레마다 예부터 쓰던 이름이 있다. 학문이름은 학문이름으로 두면서 먼먼 옛날부터 즐겁게 가리키던 이름을 쓰면 된다.

  ‘봄까지꽃’이라는 조그마한 봄풀이자 봄꽃이 있으나, 아직 ‘개풀알풀’이라는 이름이 많이 퍼졌다. 이러다 보니, ‘선개불알풀’이나 ‘큰개불알풀’까지 갈래를 뻗는다. ‘선-’이든 ‘큰-’이든 이름을 알맞게 가다듬어서 ‘선봄까지꽃’과 ‘큰봄까지꽃’으로 가리켜야 올바르리라 느낀다.

  어른부터 이름을 제대로 깨우치고 살펴서, 아이들이 풀이름과 꽃이름을 똑똑히 바르게 헤아리면서 아끼고 사랑도록 이끌 수 있기를 빈다. 4347.5.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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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가운 상말

 623 : 욱일승천


지중해 세계의 제패를 목표로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였던 로마공화국 최대의 위기였다

《이와아키 히토시/오경화 옮김-유레카》(서울문화사,2005) 14쪽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였던

→ 아침 해가 하늘에 떠오르던 기운이었던

→ 하늘로 기운차게 뻗던

→ 기운차게 뻗던

→ 하늘을 찌르던

 …



  ‘욱일승천(旭日昇天)’은 “아침 해가 하늘에 떠오름”을 뜻합니다. 일본에서는 흔히 ‘욱일승천 깃발’을 씁니다. 아침 해가 하늘에 떠오르는 모습을 빗댄 깃발입니다. 일본사람이 쓴 일본책에 나온 글이니, 일본사람으로서는 ‘욱일승천’ 같은 낱말을 쓸 법합니다. 그러면, 한국사람은 어떤 낱말을 쓰면 어울릴까요? “하늘을 찌르는 기세”라든지 “하늘로 뻗는 기세”라 할 만합니다. 전쟁을 일으켜 땅덩이를 넓히는 모습이라면, “기운차게 뻗던 로마공화국”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4347.5.23.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지중해 세계를 거머쥐려고 기운차게 뻗던 로마공화국으로서는 가장 큰 고비였다


‘기세(氣勢)’는 “기운차게 뻗치는 형세”를 뜻하는데, ‘형세(形勢)’는 “(1) 살림살이의 형편 (2) = 정세(情勢) (3) = 기세(氣勢)”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말풀이는 겹칩니다. ‘기세’라는 한자말은 ‘기운찬 흐름’이나 ‘흐름’으로 손질합니다. “지중해 세계의 제패(制?)를 목표(目標)로”는 “지중해 세계를 거머쥐려는 꿈으로”나 “지중해 세계를 거머쥐려는 뜻으로”나 “지중해 세계를 거머쥐려고”로 손보고, “로마공화국 최대(最大)의 위기(危機)였다”는 “로마공화국에 가장 큰 위기였다”나 “로마공화국에 크나큰 고비였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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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함께 이야기하는 하루



  《내가 라면을 먹을 때》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하세가와 요시후미라는 일본사람이 빚은 그림책인데, 일본에 있는 여느 집에서 지내는 아이가 라면을 한 그릇 끓여서 먹을 적에, 이웃집 아이는 무엇을 하고, 또 이웃집 아이는 무엇을 하며, 또 이웃집 아이는 무엇을 한다고 찬찬히 보여줍니다. 이러다가, 일본에서 바다를 건너 한국에 있는 ‘이웃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러고는, 다른 나라 ‘이웃 아이’는 그무렵 무엇을 하는지 보여줘요. 그러고 나서 다른 나라 ‘이웃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이웃과 이웃을 보여주는 그림은 어느새 전쟁난민이 모인 마을에 있는 아이를 보여줍니다. 그러고는 전쟁터에서 어른이 쏜 총에 맞아서 거친 벌판에 자빠져 죽은 아이를 보여주어요.


  라면을 먹는 아이는 전쟁난민마을이 있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비데에 앉은 아이나 바이올린을 켜는 아이나 야구를 하는 아이도 전쟁난민마을을 모를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 자전거를 몰며 신문을 돌리는 아이, 동생을 업은 아이, 학원에 다니는 아이, 집에서 컴퓨터게임을 하는 아이, 이런 아이 저런 아이 모두 전쟁난민마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할 수 있어요. 더더구나 어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어른이 쏜 총에 맞거나 어른이 퍼부은 폭탄에 맞아 죽은 아이가 이웃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할 수 있습니다.


  죽는 사람은 아이뿐 아닙니다. 어른도 죽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죽습니다. 게다가 슬픈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죽기만 하지 않아요. 어른들이 만든 입시지옥 때문에 한국에서는 해마다 수백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거의 안 나오지만, 참 많은 아이들이 입시지옥 때문에 마음앓이를 하다가 죽어요.


  우리 어른들은 왜 입시지옥을 그대로 둘까요? 우리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대학교에 보내려 할까요? 우리 집 아이가 대학교에 붙으면 기뻐해야 할까요? 이웃집 아이가 대학교에 떨어지면 반겨야 할까요? 우리 집 아이가 대학교에 붙으려면 이웃집 아이는 대학교에 떨어져야 합니다. 대학교육을 받아야 한다면 모든 아이가 골고루 받을 수 있어야 올바른 일 아닌가 궁금합니다. 아주 마땅하거든요. 모든 사람은 똑같이 밥을 먹어야지요. 누구는 밥을 두 그릇 먹고, 누구는 굶을 수 없어요. 모든 사람은 똑같이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며 물을 먹어야 합니다. 돈이 많거나 얼굴이 예쁜 사람은 햇볕을 더 쬐어도 되지 않습니다. 모든 어른과 아이가 햇볕과 바람과 물을 똑같이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문구 님은 소설을 쓰다가 동시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개구쟁이 산복이》라는 동시집을 1988년에 선보였고, 2003년에 숨을 거두고 나서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라는 동시집을 새롭게 선보였어요. 이문구 님은 1988년에는 이녁 딸과 아들한테 들려줄 노래로 동시를 썼어요. 2003년에 숨을 거두고 나서 태어난 동시집은 이녁 손자한테 들려줄 노래로 동시를 썼다고 합니다.


  “내가 겨우내 꽁꽁 언 채 / 눈으로 목을 축이며 / 밭에서 견디는 것은 / 내년 봄에 / 노랑 물감 같은 / 장다리꽃을 피우기 위해서지요(씨도리 배추).”와 같이 흐르는 동시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을 기울입니다. 도시에 있는 아이들은 김치를 먹어도, 김치가 배추에서 온 줄, 또는 무나 갓에서 온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또, 배추나 무를 먹더라도 배추꽃이나 무꽃, 그러니까 장다리꽃이 무엇인지 모르기 일쑤요, 배추나 무에도 꽃이 피는 줄 모르기 일쑤예요.


  도시에서 지내는 어른은 얼마나 알까요? 도시에서 가게나 마트에만 다니는 어른은 노랗게 피는 배추꽃을 얼마나 알까요? 아니, 생각을 할까요? 들은 적이 있을까요? 무밭이나 배추밭을 지나가다가 꽃송이를 알아보고 기뻐할 줄 알까요? 장다리꽃은 유채꽃처럼 해사하게 노란 빛물결인 줄 마음속으로 그릴 수 있을까요?


  “들비둘기가 길에서 / 집비둘기를 보고 중얼거렸네 // 쟤들을 보면 안됐어. / 우리는 맑은 공기 깨끗한 물 / 산과 들이 온통 우리 차진데 / 쟤들은 집이 좁아 한뎃잠에 / 이 눈치 저 눈치 눈치꾸러기 / 매연에 찌든 꾀죄죄한 몰골로 / 쓰레기통 수챗구멍까지 뒤져 먹어서 / 비만증으로 어기적어기적 / 자동차 등쌀에 아차 할 때도 많고 / 보면 볼수록 영 안됐어(두 비둘기).”와 같이 흐르는 동시를 읽으며 새삼스레 생각을 기울입니다. 도시에서 지내는 집비둘기는 얼마나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시골마을 숲에서 지내는 들비둘기(멧비둘기)는 얼마나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도시에 있는 비둘기는 왜 도시에서 억척스레 살려 할까요. 도시 비둘기는 왜 시골로 떠나지 않을까요.


  새는 날개가 있으니 얼마든지 도시를 벗어나 갑갑하거나 메마른 터전을 등질 수 있어요. 느긋하고 아름다우며 푸른 숲에서 마음껏 살아갈 만해요.


  그런데 말예요, 다시 생각해 보면, 도시라 해서 처음부터 도시이지 않아요. 오늘날 서울이든 부산이든 대구이든, 처음부터 이렇게 커다랗거나 어마어마하거나 무시무시한 도시가 아니었어요. 쉰 해 앞서를 떠올려 보셔요. 백 해 앞서를 그려 보셔요. 서울이건 부산이건 지난날에는 수수하거나 투박한 시골이었습니다. 서울도 부산도 수수하면서 투박한 마을이었습니다. 제비가 날고 박쥐도 있으며, 잠자리와 나비가 흐드러지던 시골마을이었어요.


  비둘기로서는 서울이 먼먼 옛날부터 이녁 어미 새가 태어나 살던 보금자리였다고 할 만합니다. 참새와 직박구리도 그래요. 도시를 떠나지 않는 새들, 아니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새들을 보면, 아무래도 이 새들은 이녁 어미 새가 먼먼 옛날부터 살던 보금자리를 차마 못 떠나고 그대로 살아가려는 마음은 아닐까 싶곤 합니다.


  도시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골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시에서 너무 고달프거나 괴롭기에 맑으며 푸른 숨결을 먹으려고 시골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돈벌이가 안 되어 숨구멍을 트려고 서울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한테는 어디가 고향일 될는지요. 우리는 어디를 고향으로 삼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지요. 우리 이웃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곁에 어떤 이웃을 두는가요. 우리는 이웃집 살림을 얼마나 읽거나 헤아리는가요. 나는 우리 이웃한테 어떤 사랑이나 꿈으로 깃드는가요.


  함께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사람이 이웃입니다. 함께 웃고 춤추는 사람이 이웃입니다. 함께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이기에 이웃입니다. 함께 꿈꾸고 삶을 짓기에 이웃입니다. 4347.5.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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