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86. 2014.8.19. 밥 먹자



  아이들은 어버이가 차린 밥을 먹는다. 어버이가 맛나게 차리면 아이들도 맛나게 먹고, 어버이가 얼렁뚱땅 차리면 아이들도 얼렁뚱땅 먹는다. 배고픈 아이들은 언제나 어버이 손을 기다린다. 어버이가 무엇을 차려서 줄까 하고 바라면서 기다린다. 아이들은 아직 스스로 밥을 짓지 못하니, 어버이가 차리는 밥에 몸을 맞춘다. 어버이란 어떤 사람일까. 아이들한테 밥을 주는 어버이는 어떤 넋으로 밥을 지어야 할까. 단출하게 밥상을 차리면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카페 일기 2 - 행복이란, 분명 이런 것 다카페 일기 2
모리 유지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찾아 읽는 사진책 186



아이들을 왜 사진으로 찍는가

― 다카페 일기 2

 모리 유지 글·그림

 권남희 옮김

 북스코프 펴냄, 2009.12.15.



  아이들을 사진으로 왜 찍을까요? 귀엽거나 사랑스러우니까 찍을까요? 우리 아이들이니까 찍을까요? 반가운 이웃집 아이들이니까 찍을까요? 사진으로 찍기에 가장 수월하거나 즐겁기 때문에 찍을까요?


  나는 아이들을 낳아서 함께 살아가기 앞서,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지 않았습니다. 내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라기보다, 내 사진감이 아니기도 했고, 아이들이 어떤 숨결인지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아기로 이 땅에 태어나 어린이로 자란 숨결이지만, 어른이라는 몸뚱이로 지내면서 ‘아이로 누리는 삶’을 떠올리거나 되새기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와 시골에서 살면서 사진을 바지런히 찍습니다. 우리 아이들이기 때문에 찍는다고도 할 테지만, 이보다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 아이들 눈빛과 몸짓에서 ‘내가 누린 어린 나날’을 읽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바로 내가 어릴 적에 놀던 모습입니다. 이 아이들이 짓는 웃음은 바로 내가 어릴 적에 짓던 웃음입니다. 무엇보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날마다 누리는 고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찬찬히 담아서 물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진을 선물한다고 할까요.


  그런데 나는 사진만 찍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지내는 이야기를 꾸준히 글로 씁니다. 아이들과 틈틈이 그림놀이를 합니다. 함께 그림을 그려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모두 그러모읍니다. 아이가 깍두기공책에 쓴 글놀이 자국도 고스란히 모읍니다. 이러면서 저절로 ‘동시’를 써요. 왜 동시를 쓰느냐 하면, 누구보다 우리 아이들한테 읽히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저희 삶을 깨닫고 가꾸는 길에 길동무가 될 만한 이야기는 바로 어버이인 내가 스스로 지어서 나눌 때에 가장 즐겁다고 느껴서 동시를 써요.





  사진책 《다카페 일기》(북스코프,2009) 둘째 권을 읽었습니다. 여러 해 앞서 읽었습니다. 《다카페 일기》는 2012년에 셋째 권이 한국말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집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오순도순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웃음빛이나 웃음노래를 담은 사진책입니다.


  모리 유지 님은 《다카페 일기》 둘째 권을 열며 “주로 집 안이나 집 근처에서만 찍었습니다. 하루하루 물 흐르듯이, 내일도 모레도 부디 잔잔히 흐르길 기도하면서(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잔잔히 물처럼 흐르는 삶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진을 찍었다는군요. 그래요, 물을 생각하고 꿈꾸기에 모리 유지 님 사진은 언제나 물과 같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을 닮는 사진이 아니라, 오롯이 물빛이 되는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모리 유지 님은 왜 이녁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을까요?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얼마나 즐거울까요? 사진이 늘 함께 있으니 어버이도 아이도 기쁘게 웃고 노래하면서 하루하루 누릴 만할까요?


  모리 유지 님네 아이들은 유치원을 거쳐 학교에 들어갑니다. 예방주사를 맞고 패밀리레스토랑에 갑니다. 놀이공원에도 가고 동물원에도 가며, 그야말로 ‘도시에서 흔히 보는 여느 집’과 같이 아이들을 돌봅니다. 아마 이 아이들은 차근차근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갈 테며, 대학입시를 치르겠지요. 그러고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몇 해 지내다가 회사에 들어가려 할 테고, 짝꿍을 찾아 시집이나 장가를 가면서 제금을 날 테지요. 머잖아 손자 손녀를 맞이할 테고요.






  그야말로 물과 같이 흐르는 삶입니다. 다만, 냇물이나 골짝물이나 바닷물처럼 흐르는 삶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냇물이나 골짝물이나 바닷물이란 ‘숲’이에요. 사람이 억지로 따로 만든 ‘도시’가 아닙니다. 태어나고 주사 맞히고 학교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고 회사원 되도록 하고 아이 낳도록 해서 늙다가 죽는 삶이란, 숲다운(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닙니다. 도시에 맞는 흐름이요, 댐에 가둔 수돗물과 같은 흐름입니다.


  그러면, 숲다운(자연스러운) 흐름이란 무엇일까요? 숲다운 흐름으로 물처럼 빛난다면, 아이들이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는 길을 익힐 테지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밥·옷·집이라는 살림을 물려줄 테지요. 몸을 다스리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칠 테고, 마음을 가꾸면서 삶을 날마다 새로 짓는 길을 보여줄 테지요.


  사진책 《다카페 일기》는 ‘도시에서 누리는 수돗물 흐름’으로 보자면 무척 보드랍니다. 수돗물도 꽤 맑습니다. 수돗물은 지저분하지 않아요. 다만, 수돗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아요. 수돗물을 쓰려면 시골마을과 숲을 엄청나게 물에 가두는 댐을 크게 지어야 합니다. 수돗물을 쓰려고 땅밑에 물관을 엄청나게 파묻습니다.





  스스로 곱게 흐르는 냇물과 골짝물이 있는데, 왜 우리는 따로 댐을 짓고 물관을 파묻어야 할까요. 스스로 해맑게 흐르는 물줄기가 있는데, 왜 우리는 해맑게 흐르는 물줄기를 아름답게 건사하지 않으면서 자꾸 공장과 찻길과 자동차와 물질문명으로만 치달을까요. 지구별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이런 물질문명과 도시 물결에 그대로 휩쓸리기만 해야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지구별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흐름을 타면서, ‘유아원·유치원·학교·학원·대학교·짝짓기·회사원 되기·아이 낳기·집 장만·자가용 몰기·늙기·여행·여가생활·죽음’과 같은, 그러니까 언제 어디에서나 늘 모두 똑같은 틀에 맞추어서 삶을 보내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다카페 일기》 둘째 권은 “이른 저녁 시간에 목욕을 하고 베란다에서 시원하게 보내는 것, 편의점에서 얼음을 사는 것, 제일 좋아하는 마쓰야의 생과자를 먹는 것, 새 커피콩이 뜨거운 물을 머금고 놀랄 만큼 부푸는 것, 앰프의 진공관을 바꾸고 히죽거리는 것, 바다의 숙제 답을 몰래 가르쳐 줘 일찍 끝내게 하는 것, 하늘이를 간지럼 태워서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것 …… 아내와 둘이 드라마의 다음 편을 기다리는 것, 그런 작은 선물을 많이 준비하면서 앞으로도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가야지 생각합니다(맺음말).” 하고 흐르는 말로 끝맺습니다. 사진책 《다카페 일기》에 흐르는 사진과 이야기는 아주 수수합니다. 수수하면서 예쁘장합니다. 예쁘장하면서 아기자기합니다. 아기자기하면서 애틋합니다. 애틋하면서 살뜰합니다.


  그러나, 이뿐입니다. 따사로우면서 보드라운 빛이 흐르지만, 이렇게 흐르면서 끝납니다. 아니, 이렇게 끝맺어도 넉넉하다고 할 수 있어요. 더 바라야 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한 가지를 물을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이 아이들은 어떤 삶을 스스로 찾아서 누릴 때에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찾고 살피고 누리면서 마음을 살찌울까요. 알록달록 눈부신 하늘빛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귀여운 모습으로만 찍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마냥 지켜보기만 하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 얼거리를 아이들한테 그냥 물려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셔요. 이 정치 얼거리와 경제 얼거리와 교육 얼거리를 아이들한테 그냥 물려주겠습니까? 이 입시지옥과 취업지옥을, 이 끔찍한 공해덩어리 도시 물질문명과 핵발전소와 전쟁무기를 아이들한테 그냥 물려주겠습니까? 폭력이 춤추는 군대를 아이들한테 그냥 물려주겠습니까?


  아이들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하면서 찍는 사진은 아이들이 ‘입시지옥 중학교’에 들어가기 앞서까지 찍을 수 있겠지요. 그러면,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바라보면 될까요?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될까요?


  사진을 찍는 여느 어버이 한 사람이 지구별이나 사회를 몽땅 갈아엎는 길을 보여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손을 놓고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이 이 지구별에서 ‘어른들이 만든 슬프고 바보스러운 것’을 그대로 물려받도록 할 마음을 품는 어버이란 없을 테니까요. 수수하며 부드러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밑바탕은, 이 지구별을 넓게 품으면서 깊이 사랑하는 여느 어버이들 작은 손에 있습니다. 4347.8.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답게 읽는다



  겉으로만 본다면 ‘아름다움’과 ‘그럴듯함’은 거의 똑같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빛을 고스란히 흉내내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아름다움과 그럴듯함은 따로 있지 않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그럴듯한지 헤아려 봅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눈을 감고 바라보는 하늘빛이 아름다울까요. 눈을 감고 마주하는 꽃빛이 아름다울까요. 눈을 감고 들여다보는 얼굴빛이 아름다울까요. 눈을 감은 나한테는 어떠한 빛이 보일까요.


  귀를 닫고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닫고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닫고 물 흐르는 소리와 아이들 놀이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무엇이 아름다울까요. 귀를 닫은 나한테는 어떤 소리가 들릴까요.


  참다운 결이 스며서 드러난다면 아름다움일 테고, 참답지 않다면, 그러니까 거짓스럽다면 그럴듯함이 되겠지요. 그러면, 나는 언제 참과 거짓을 알아볼까요. 나는 어떻게 참과 거짓을 헤아릴까요.


  눈을 감은 사람한테는 높이가 없습니다. 눈을 감은 사람한테는 너비가 없습니다. 눈을 감은 사람한테는 깊이가 없습니다. 귀를 닫은 사람과 코를 막은 사람한테도 높이와 너비와 깊이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우리들은 아름다움과 그럴듯함을 어떻게 가리거나 살필 만할까요.

  겉보기로는 모두 책입니다. 겉보기로는 모두 이야기입니다. 겉보기로는 모두 생각꾸러미요, 슬기로운 열매이고, 재미난 노래입니다.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속에는 무엇을 담을까요.


  ‘빛’으로 둘러친 책과 ‘사랑’으로 여민 책을 알아보는 넋은 어떤 사람한테 있을까 궁금합니다. ‘소리’를 입힌 책과 ‘꿈’으로 가꾼 책을 알아차리는 넋은 어떤 사람한테서 샘솟을까 궁금합니다.


  책 하나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이룬 삶이 될 때까지, 어느 것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저 책 하나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꿈으로 가꾼 삶으로 나아갈 때까지, 어디에도 대수로운 것은 없습니다.


  아름다운 덫에 걸리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덫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그예 맴돌기만 한대서 나쁘지 않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덫에 묶일 적에는 아름다운 빛이 밥을 주고 잠자리를 줄 테니, 언제까지나 그곳에 머물러도 굶을 일은 없습니다.


  손에 책을 한 권 쥡니다. 아름답지도 않고 안 아름답지도 않은 책을 한 권 쥡니다. 사랑으로 엮은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낍니다. 다만, 나 스스로 사랑을 바라고 생각하며 꿈꿀 때에 사랑을 알아채면서 즐겁게 누립니다. 나 스스로 사랑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사랑으로 엮은 책인 줄 알아보지 못합니다.


  둘레에 있는 숱한 책을 쓰다듬습니다. 멋있고 값있으며 놀라운 책을 쓰다듬습니다. 눈부신 책이 많으며, 대단한 책이 많습니다. 이 많은 책들은 도서관에 꽂힐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새책방을 그득 채울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무엇인가 읽고 싶은 사람들한테 넉넉히 도움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돈이 얼마나 많아야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책이 얼마나 많아야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돈을 가져야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돈을 어떻게 쓸 때에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하다가, 읽은 책을 어떻게 삭힐 때에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늘 이곳에 머문 채 ‘새로운 아름다운 책’을 찾아 책더미를 헤맬 만합니다. 나는 늘 새롭게 눈을 뜨며 ‘사랑을 날마다 가꾸는 삶’으로 나아갈 만합니다. 어느 쪽이든 스스로 고르는 길입니다. 옳거나 그른 길은 없습니다. 빛을 보려 하기에 빛을 보고, 삶을 보려 하기에 삶을 보며, 사랑을 보려 하기에 사랑을 봅니다. 4347.8.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겹겹이



  책이 겹겹이 있습니다. 수많은 책이 겹겹이 쌓입니다. 내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책이 있고, 내 손길을 끄는 책이 있으며, 내 마음길이 다가가려는 책이 있습니다. 모든 책을 다 골라도 되지만, 모든 책을 다 고르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책을 다 읽는 일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책만 읽으며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겹겹이 있는 책들 가운데 살피고 가리며 추립니다. 나한테 찾아와서 환하게 빛날 책을 생각하고 헤아리며 돌아봅니다.


  겹겹이 있는 책은 예쁘장합니다. 책등만 보일 수 있고, 책겉이 다 보일 수 있으며, 책등도 책겉도 안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잘 보이기에 그 책을 고르지는 않습니다. 다른 책 밑에 깔려서 잘 안 보이는 책이더라도, 나는 언제나 내 마음에 와닿을 책을 찬찬히 살핍니다.


  어느 책이 나한테 찾아올까요. 나는 어느 책을 맞아들일까요. 나한테 새로운 하루는 어떠한 삶일까요. 나는 어떠한 이야기를 날마다 새롭게 누리고 싶을까요. 겹겹이 쌓인 책 가운데 내 아름다운 나날을 들여 즐겁게 읽을 책 몇 권을 손에 쥡니다. 4347.8.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장 멋진 도움이라면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아버지를 두었기에, 아이들은 아버지하고 놀 겨를이 모자랄 때가 있다. 낱말풀이 하나를 새롭게 붙이고 보기글 쓰임새를 새롭게 달려고 할 적에 그야말로 온힘을 쏟아야 하니까, 한두 시간뿐 아니라 서너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여느 사람이 보기에는 ‘고작 낱말 하나 풀이하는 일’이지만, 낱말 하나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올바로 다루어 슬기롭게 풀이하는 일에 여러 날이 걸리기 일쑤이다. 어느 낱말은 몇 해에 걸쳐 비로소 낱말풀이를 마무리짓기도 하니까, 제대로 잘 갈고닦는 한국말사전을 빚는 일이란 어찌 보면 하염없다고까지 할 수 있다.


  오늘도 아버지는 낱말뜻을 살피면서 풀이말과 보기글을 붙이면서 참 기나긴 하루를 보낸다. 두 아이는 저희끼리 잘 논다. 낱말풀이와 보기글을 새로 지으면서 기운이 쪼옥 빠지니, 오늘은 밥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다. 기운이 너무 빠져서 한참 자리에 드러눕기까지 했다.


  기운을 차려서 함께 놀기를 기다려 주는 아이들이란 언제나 가장 멋진 도움이라고 느낀다. 늘 곁에서 노래를 부르고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어버이를 돕고, 어버이는 꿈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4347.8.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