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도서관에서 (사진책도서관 2014.8.2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전남 고흥으로 삶터를 옮기면서 도서관도 씩씩하게 지키기는 하는데, 우리 건물로 도서관을 지키지는 못하다 보니, 물과 전기를 못 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물과 전기 없이 용케 도서관을 건사한다. 마실물은 집에서 길어오고, 골마루를 닦는 물은 빗물을 썼다. 비가 와서 벽을 타고 빗물이 스미면, 이 빗물로 골마루를 닦았다. 비가 올 적에 밀걸레를 빨았고, 비가 개면 창문을 열고 눅눅한 기운을 뺐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 도서관을 두었으니, 도서관 책손은 도시에 있을 때와 견주면 아주 적다. 그러나, 시골에 깃든 사진책 도서관을 궁금하게 여기거나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은 먼길을 마다 하지 않고 찾아온다. 몇 시간 동안 차를 달려 찾아오는 책손이 있기에, 물과 전기 없는 이 낡은 폐교 건물에 도서관을 건사할 수 있구나 싶다.


  인천에서 사는 형이 지난달에 ‘뮤패드’를 장만해 주었다. 값은 아이패드와 견주면 반토막이면서 유에스비를 꽂을 수 있다. 메모리카드와 자판과 다람쥐를 붙여서 도서관에서 이 녀석으로 글을 써 보기로 한다. 집에서 전기를 채워 도서관에서 두 시간 즈음 써 보는데, 전기는 1/3 남짓 닳는다. 너덧 시간 동안 전깃줄 없이 쓸 수 있을 듯하다.


  전기를 쓰며 밤에도 불을 밝힐 수 있으면, 또 물을 쓸 수 있으면, 이곳 폐교 둘레에 있는 낡은 관사를 고쳐서 살림집이나 손님집으로 삼을 수 있겠지. 폐교에는 농약을 치는 사람이 없으니, 이곳에 깃들면 아늑하면서 조용하다. 포근하면서 즐겁게 숲내음과 풀숨을 먹을 수 있다. 이러면서 책이 함께 있고, 언제나 창문을 알맞게 열어 바람갈이를 한다면 곰팡이를 한결 덜 먹으리라.


  도서관과 살림집이 가까이에 있어서 걸어서 쉽게 오가지만, 둘이 똑 떨어진 대목이 아쉽다. 아니, 둘은 이렇게 떨어지지 말아야 했다. 그래야, 우리 살림집에 ‘일을 한다’는 구실로 책을 여러모로 쌓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살림집에서는 살림만 꾸리고, 책은 모두 도서관에 두어서 이곳에서 건사해야 하리라. 그래야, 집과 도서관을 오가는 동안 아이들도 한결 신나게 풀밭을 맨발로 밟으면서 놀 텐데.


  홀로 도서관에서 세 시간쯤 머물며 이것저것 손질하고 곰팡이를 닦는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꾸 피어나는 곰팡이를 다시 닦고 또 닦는 일’이다. 앞으로는 ‘곰팡이 닦기’가 아닌, 우리 도서관에 건사한 책들을 하나씩 펼쳐서 ‘이 책에 어떤 뜻과 꿈이 서렸는가 하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어 이웃들과 나누는 일’을 하고 싶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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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4-08-2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집안의 책장들 먼지털기요~
오랜만이예요.ㅎㅎ

파란놀 2014-08-27 18:40   좋아요 0 | URL
아, 먼지는... 털기보다 걸레로 닦아야 하더라구요 ^^;;
먼지를 털면... 하늘로 붕 떴다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니까요~~~
 


 우리 말도 익혀야지

 (165) 아래 1


이젠 물어야 한다. 이른바 ‘민족’의 이름 하에 덮어 둔 한국 대중문화 ‘업자’들의 ‘무능’과 ‘배신’에 대해 물어야 한다

《김규항-B급 좌파》(야간비행,2001) 38쪽


 민족의 이름 하에

→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 겨레라는 이름에

→ 겨레라는 허울을 씌워

→ 겨레라는 허울로

 …



  “(무엇) 하의 (무엇)”이라는 말투를 쓰는 이들이 차츰 늘어납니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 썼으나, 여럿으로 늘고, 더 늘더니, 이제는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민족의 이름 하에 (x)

 민족의 이름 아래 (x)

 민족의 이름 밑에 (x)


  한자 ‘下’를 그대로 쓰거나 한글로 ‘하’로 바꾸어서 쓰는 말투는 가장 고리타분합니다. 일본사람이 일본말에 아주 즐겨쓰는 말투입니다. 이런 말투는 일제강점기에 거의 쏟아지듯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일제강점기 지식인과 작가는 이러한 일본 말투를 생각없이 썼고, 퍼뜨렸으며, 가르치거나 읽혔습니다. 해방 뒤에도 이러한 일본 말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투를 올바로 깨달은 지식인과 작가가 드물었습니다. 신문에는 으레 이러한 말투가 쓰였고, 교과서와 여느 문학책에까지 이러한 말투가 나타났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말투가 아주 익숙하다 할 만합니다. 그래서, 뜻있다 싶은 지식인과 작가도 이러한 일본 말투를 스스로 씻지 못합니다.


  잘못되거나 그릇된 말투를 쓰는 사람 하나하나가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본 말투를 쓰는 이들은 어릴 적부터 이러한 말투대로 말을 듣고 책을 읽었어요. 이들이 어른이 되는 동안 한국말을 올바로 알려주거나 가르친 이웃이나 둘레 어른이 없었어요. 가르치는 사람이 없으니 배울 길이 없고, 한국말을 올바로 다룬 책도 드문 탓에 어른이 된 뒤에라도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돌아보면서 새롭게 배울 길마저 없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한자 ‘下’를 찾아보면 뒷가지로 다루어 줍니다. 한국말이 아닌 한자인데 한국말사전에 이 낱말이 올림말로 나옵니다. 보기글로 “식민지하”와 “원칙하”와 “지도하”와 “지배하”가 나옵니다. 이런 보기글은 “식민지에서”와 “원칙에서”와 “지도에서”나 “지배에서”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뒤 흐름과 자리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고쳐써야 합니다. 한국말사전부터 바로잡고, 우리들도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익힐 노릇입니다. 4336.12.30.불/4347.8.25.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젠 물어야 한다. 이른바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덮어 둔 ‘무능’과 ‘배신’을 한국 대중문화 ‘업자’한테 물어야 한다


‘민족(民族)’이나 ‘무능(無能)’이나 ‘배신(背信)’ 같은 낱말은 ‘겨레’나 ‘재주 없음’이나 ‘등돌림·저버림’으로 손볼 만하지만, 보기글에서는 애써 따옴표를 쳐서 이야기를 하는 만큼, 손보지 않고 그대로 둘 수 있습니다. “-에 대(對)해”는 “-을/를”로 손봅니다.



 -하(下) :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것과 관련된 조건이나 환경’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식민지하 / 원칙하 / 지도하 / 지배하


..



 우리 말도 익혀야지

 (490) 아래 2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자유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자유가 억제되고 있습니다

《아룬다티 로이/정병선 옮김-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가이드》(시울,2005) 24쪽


 자유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 자유를 지킨다는 구실로

→ 자유를 지킨다는 허울로

→ 자유를 지킨다는 핑계로

→ 자유를 지킨다고 내걸며

→ 자유를 지킨다는 그럴듯한 말로

 …



  한자말 ‘미명(美名)’은 “그럴듯하게 내세운 이름”을 가리킵니다. 이 한자말과 한자 ‘下’가 만납니다. 이 보기글을 잘못 바로잡으면 “그럴듯한 이름 아래”로 손볼 텐데, ‘下’를 ‘아래’로 손본다고 해서 이 보기글이 바르게 서지 않습니다. 말투가 한국 말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럴듯한 이름으로 자유가 억눌립니다”로 손본 뒤, “그럴듯한 구실로”라든지 “그럴듯하게 붙인 핑계로”라든지 “그럴듯하게 씌운 허울로”처럼 뜻과 느낌을 살리면서 한국 말투다운 모습이 되도록 더 손봅니다.


  “a cup of coffe”를 “한 잔의 커피”로 적는다고 해서 한국 말투가 되지 않습니다. “한 잔의 커피”가 아닌 “커피 한 잔”일 때에 비로소 한국말이요 한국 말투입니다. 껍데기만 한글인 말이 아니라, 알맹이가 알뜰히 한국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과 글에서 참다운 속내·속살·줄거리를 슬기롭게 읽으면서 아름답게 가꾸는 길을 잘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9.1.22.해/4347.8.25.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오늘날 온 나라에 두루, 자유를 지킨다는 구실로 자유가 억눌립니다


“전(全) 세계적(世界的)으로”는 “온 세계에”나 “온누리에”나 “온 나라에”나 “지구별에 두루”로 손봅니다. ‘보호(保護)한다’는 ‘지킨다’나 ‘돌본다’로 손질하고, ‘미명(美名)’은 ‘허울’이나 ‘핑계’나 ‘구실’로 손질하며, “억제(抑制)되고 있습니다”는 “억눌립니다”나 “짓눌립니다”나 “짓밟힙니다”로 손질해 줍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804) 아래 11 : 개발독재 아래


우리 나라는 그동안의 개발독재 아래 문화가 온통 정치·경제 논리에 종속되었다

《최원식-황해에 부는 바람》(다인아트,2000) 112쪽


 개발독재 아래

→ 개발독재 때문에

→ 개발독재에 짓눌리며

→ 개발독재에 시달리며

 …



  개발독재가 문화를 정치나 경제에 얽매이게 했다는 이야기이니, “개발독재 때문에” 그리 된 셈입니다. 무엇 때문에 어느 한 가지가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면 ‘이끌린다’거나 ‘끄달린다’고 나타낼 수 있어요. 이 자리에서는 ‘독재’를 말합니다. 독재는 남을 업신여기거나 괴롭혀요. 이리하여 ‘짓눌리다·짓밟히다·시달리다·들볶이다’ 같은 낱말을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1.2.24.해/4347.8.25.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 나라는 그동안 개발독재 때문에 문화가 온통 정치·경제에 끌려다녔다


‘그동안의’에서는 토씨 ‘-의’를 덜어냅니다. ‘종속(從屬)되었다’는 ‘얽매였다’나 ‘끄달렸다’나 ‘끌려다녔다’로 고쳐 줍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986) 아래 12


박정희 정권 아래서는 여러 정보기관들이 교내에 상주하다시피 해서 교수휴게실의 담화도 자유스럽지 못했다

《강만길-역사가의 시간》(창비,2010) 186쪽


 박정희 정권 아래서는

→ 박정희 정권에서는

→ 박정희 정권 때에는

→ 박정희가 다스릴 때에는

 …



  “정권 下”이든 “정권 하”이든 “정권 아래”이든 모두 똑같은 말투입니다.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한국말 ‘아래’를 이렇게 쓰지는 않습니다. “정권에서는”으로 적거나 “정권 때에는”으로 적거나 “다스릴 때에는”으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4347.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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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에서는 여러 정보기관들이 학교에 늘 머물다시피 해서 교수쉼터에서도 홀가분하게 얘기하지 못했다


“교내(校內)에 상주(常住)하다시피”는 “학교에 늘 머물다시피”나 “학교에 눌러앉다시피”로 손보고, “교수휴게실(-休憩室)의 담화(談話)도 자유(自由)스럽지”는 “교수쉼터에서도 홀가분하게 얘기하지”나 “교수쉼터에서조차 마음껏 말하지”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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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원에 혼자 갈 만한 나이는 몇 살쯤일까 어림해 본다. 다섯 살 아이가 혼자 다닐 수 있을까? 글쎄, 집과 아주 가깝다면 혼자 다닐는지 모른다. 여섯 살이면? 글쎄. 일곱 살이면? 글쎄. 모르겠다. 그림책 《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을 들여다본다. 어린 가시내가 서울에서 유치원에 가는 ‘어느 비 그친 날’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비가 그친 날인데, 길에 흙기운도 물웅덩이도 풀개구리도 없다. 그래, 서울 한복판이니까. 서울 한복판에서는 비가 아무리 와도 흙이 쓸릴 일은 없겠지. 그런데, 이야기 무대는 ‘나무가 있는 공원’ 계단이다. 이런 데에도 비가 그친 뒤에 흙이 하나도 없을까. 개미집도 있는데. 아카시아꽃이 하얗게 핀다고 하니까 늦봄에서 이른여름 사이쯤 되리라 느낀다. 그림책을 보면 ‘하얀 꽃송이’가 아닌 ‘초록 이파리’가 바람에 떨어졌다고 글로 나오는데, 아이가 손에 쥔 것은 ‘이파리’가 아닌 ‘줄기’이다. 무엇보다, 봄이나 여름에 짙푸르게 빛나는 나뭇잎은 바람에 거의 안 떨어진다. 아니, 아예 안 떨어진다고 해야 옳다. 하얀 꽃송이가 바람에 떨어진다고 하면 모를까, 왜 잎이 떨어진다고 했을까? 아마, 아카시아잎이 잔뜩 달린 줄기가 길바닥에 떨어진 모습을, 이 그림책에 글을 쓴 분은 보았을는지 모른다. 다만, 왜 ‘잎줄기’가 떨어졌는지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으니 그림책에 글을 이렇게 썼으리라. 왜 잎줄기가 떨어지는가? 거위벌레가 갉았기 때문이다. 바람 때문에 잎줄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따사로운 빛을 살가이 그리려는 《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로구나 싶으면서도 곳곳에서 보이는 아쉬운 모습 때문에 우리 집 아이들한테는 이 그림책을 안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4347.8.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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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
탁혜정 그림, 이상희 글 / 초방책방 / 2003년 3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3월 2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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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속의 벚꽃 上 - 배심원제도의 빛과 어둠
고우다 마모라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69



누가 누구를 죽였을까

― 미궁 속의 벚꽃 上

 고우다 마모라(고다 마모라) 글·그림

 도영명 옮김

 시리얼 펴냄, 2011.7.25.



  전쟁이 터졌으면, 이쪽에서 저쪽을 죽이든 저쪽에서 이쪽을 죽이든 ‘죽인 짓’이 틀림없지만, 어느 쪽에서나 ‘죽인 잘못을 따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전쟁이기 때문에 서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여겨, 어쩔 수 없이 서로 죽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전쟁이기 때문에 죽여도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전쟁이라는 허울을 쓴 채 서로 죽이기 때문에 자꾸 전쟁이 커지거나 이어집니다. 허울이 전쟁일 뿐, ‘사람 죽인 짓’은 똑같기 때문에,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서로 앙갚음을 할 마음만 가득합니다.



- ‘나, 난 방금 사람을 죽이려고 했어. 이렇게까지 살인자가 될 만큼 망가져 버린 건가. 나란 놈은!’ (13쪽)

- ‘결국 갈 곳 없는 피리터가, 사회의 밑바닥을 떠도는 인간이 남을 처벌하는 자리에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는데.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27쪽)




  죽여도 될 사람이 있을 턱이란 없습니다. 죽어도 될 사람이 있을 까닭이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이라든지, 지구별에서 없애야 할 사람이 있을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있습니다. 눈을 뜨지 않기에 마음을 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눈을 뜨지 않아서 마음을 열지 못한 탓에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헤아리자면, 여러 독재자가 있습니다. 독재자한테 빌붙어 여느 사람을 괴롭히거나 죽인 허수아비나 꼭둑각시가 있습니다. 독재자한테 빌붙은 허수아비나 꼭둑각시한테 잘 보이려고 바보짓을 한 여느 수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재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던 공무원과 교사가 있습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저지르거나 일삼는 사람은 참말 바보스럽기 때문입니다. 바보스러운 사람한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부터 한겨레는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하고 말했습니다. 이 옛말을 곱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지만, 이 옛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예부터 한겨레는 ‘미운 아이’한테 떡을 더 주었을까요?



- ‘정말로, 정말로 내가 맡아도 괜찮은 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내가, 사람을 처벌한다니.’ (29쪽)

- “배심원 여러분은 이 형사사건을 각자의 인생경험에 비춰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53쪽)




  ‘미운 아이’나 ‘고운 아이’란 없습니다. 다만, ‘미운 아이’라 할 적에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해 마음이 다친 아이들을 가리켜 ‘미운 아이’라고 에둘러 말할 뿐입니다. 그러니, 이 아이들한테 사랑(떡 하나)을 자꾸 베푼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누리지 못한 탓에 자꾸 바보스러운 짓을 저지르니, 이 아이들이 아무쪼록 앞으로 제대로 사랑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알도록 이끈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에서 정치권력을 거머쥐었던 이들 가운데 참답게 ‘사랑’을 알거나 누리거나 나눈 사람은 거의 없지 싶어요. 사랑을 모르기에 허튼 짓을 저지릅니다. 사랑을 누리지 못했기에 독재정권 서슬 퍼런 칼을 휘두릅니다. 사랑을 나눈 적이 없기에 우악스러운 토목개발과 새마을운동 따위를 밀어붙입니다.


  미운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몹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고운 아이만 사랑하고픈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라 한다면, 참말로 사랑이라 한다면, 내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얌전하고 착한 아이한테만 나눌 수 없습니다. 참사랑이라 한다면, 다 함께 참삶을 이루도록 어깨동무를 하는 길로 나아가리라 느낍니다. ‘밉다·곱다’라는 틀을 씩씩하게 깨부순 뒤, 서로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길로 나아갈 때에 비로소 사랑이 된다고 느낍니다.



- ‘지금부터 ‘집단의 악’을 말하려고 한다는 건, 이 여자애도 내부고발을 한 나랑 같은 배신자라는 얘긴데! 대체 왜 피고인 측의, 엄마를 죽인 남자의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걸까?’ (116쪽)

- “집단 괴롭힘이 거짓말이라느니 뭐라느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지 마. 이 어린애 같은 인간아! 난 진짜 있었던 일을 말하러 온 것뿐인데. 어째서 너 같은 안경잡이 뚱땡이한테 이런 공격을 받아야 되는 건데!” (128쪽)



  고우다 마모라(고다 마모라) 님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 上》(시리얼,2011)을 읽습니다. 일본에 처음 생긴 배심원 제도가 무엇인가를 찬찬히 그려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배심원 제도가 드리우는 어두움과 빛을 나란히 밝히는 작품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심원이 되고, 어떤 사람이 ‘살인범’으로 몰리며, 판사는 어떻게 법을 다루고, 사회는 어떻게 흐르는가를 조용히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집단 따돌림’으로 기나긴 해에 걸쳐서 괴롭던 이가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 사람’을 죽인다면, 누가 누구를 죽인 셈일까요. ‘살인죄’란 무엇일까요. 집단 따돌림이 없었어도 살인이 있었을까요. 살인죄로 어느 한 사람을 다스린다면 집단 따돌림이 사라질까요.




- ‘자식을 지켜야 할 어머니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식에서 ‘사형’을 선고한 것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미 이 가족에겐 부모 자식 간의 애정 같은 건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170쪽)

- “각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을 제 자식에게 빼앗긴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집단 괴롭힘을 그만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175쪽)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은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 이들이 ‘언젠가 앙갚음을 고스란히 받을는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저마다 조금씩 품는데, 이 두려움이 차츰 커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더 모질게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따돌림받는 이가 앙갚음을 못 하게끔 더 모질게 밟고 괴롭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폭력으로 한 사람을 누르면 ‘새로운 폭력’이 안 터질까요. 폭력으로 사람을 눌러서 ‘폭력이 더 없도록’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자면, 군대를 키우면 전쟁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이웃나라에 있는 전쟁무기를 모조리 빼앗으면 전쟁이 없이 평화가 이루어질까요?


  만화책이 아닌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전쟁·폭력·살인·따돌림’ 따위는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얼거리인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과 살인과 따돌림은 바로, 군대뿐 아니라 학교와 회사와 모든 조직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참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군대가 있으면 되지, 경찰이 있으면 되지, 대통령이 있으면 되지, 뭐가 있으면 되지 …… 하면서, 정작 하나도 될 일은 없는데 스스로 눈을 감습니다.


  군대가 하는 일은 전쟁입니다. 전쟁은 폭력입니다. 폭력은 살인을 낳습니다. 살인으로 나아가는 따돌림입니다. 군대도 경찰도 없어야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없어야 합니다. 문화도 과학도 없어야 합니다.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삶이 있어야지요. 생각이 있어야지요. 사랑이 있어야지요.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가 있어야지요. 우리는 이 땅에 ‘있어야 할 것’이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아름답습니다. 이 땅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데, ‘있지 않아도 될 것’이나 ‘없어야 할 것’만 잔뜩 심은 채 바보짓을 저지르지 않나 돌아보아야 합니다. 4347.8.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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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볏포기한테 말 걸기



  산들보라가 우리 집 앞에서 자라는 볏포기한테 말을 건다. 이 마을논을 돌보는 할매나 할배는 틈틈이 나와서 살피시겠지. 우리 집 아이들이 곧잘 논한테 말을 걸어 주니, 이 논은 다른 논보다 한결 잘 자라리라 믿는다. 비록 이 논임자인 할매는 다른 논처럼 농약을 듬뿍 치지 못한다며 서운해 하지만, 농약으로는 할 수 없는 고운 사랑을 우리 집 아이들이 나누어 주니까, 이런저런 근심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되리라 느낀다. 나무도 꽃도 풀도 곡식도 남새도 모두 사랑을 받을 때에 가장 튼튼하면서 알차게 자란다. 4347.8.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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