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서로



동녘에서 서녘으로

남녘에서 북녘으로

다시

서녘에서 동녘으로

북녘에서 남녘으로


천천히

바람이 불어

싱그러우면서 푸른 숨결이

골골샅샅 퍼지니


나도 너도

기쁘게

만날 수 있습니다.



4347.9.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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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히 읽다 보면



  들뜨거나 바쁘면 어떤 일을 해도 손에 제대로 안 잡힌다. 들뜨거나 바쁜 마음으로 책을 손에 쥐면, 책에 깃든 숨결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마음을 차분히 다스려야 하고, 들뜨거나 바쁜 마음을 조용히 다스려야 한다.


  들떠 움직이는 사람은 생각을 슬기롭게 못 짓기 일쑤이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은 생각을 사랑스레 못 가꾸기 마련이다. 차분한 마음이 되고 차분한 몸가짐이 될 때에, 비로소 생각도 사랑도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보듬을 수 있다.


  천천히 쌀을 씻는다. 천천히 비질을 한다. 천천히 걸레질을 하고, 천천히 빨래를 복복 비벼서 헹군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자전거를 달린다.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들으며, 천천히 웃음을 짓는다.


  어떤 것이든 내 삶자리에서 차근차근 갈무리할 때에는 으레 마음이 천천히 차분해지지 싶다. 이때에는 내 마음에 새로운 힘이 붙어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씩씩하게 맞이할 수 있구나 싶다. 그러니까, 차분히 가라앉힌 마음으로 책 한 권 손에 쥘 때에 빛을 먹고 숨결을 먹으며 이야기를 먹는다. 차분히 다스린 마음자리에 슬기로운 생각과 사랑스러운 꿈을 씨앗 한 톨로 심으면서 빙그레 웃음이 솟으면서 살며시 노래가 흐른다.


  차분히 읽다 보면 모두 이루어진다. 차분히 살다 보면 모두 이룬다. 차분히 걷다 보면 아름다운 바람을 쐰다. 차분히 일하다 보면 시나브로 씩씩하게 한길을 걷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4347.9.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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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몸으로 읽는다



  어떤 책을 읽든, 눈으로 훑고 끝낼 마음은 아니지 싶습니다. 눈을 거쳐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삭혀 몸을 즐겁게 움직일 기운을 얻으려고 책을 읽지 싶습니다. 저마다 ‘내 삶’을 ‘내 자리’에서 슬기롭게 되찾고 싶기에 책을 읽지 싶습니다. 하루를 즐겁게 열어서 누리는 힘을 스스로 길어올리려고 책을 손에 쥐지 싶습니다.


  책으로 배우거나 말로 배우거나 몸을 써서 움직인 삶에서 배우거나, 우리는 늘 내 몸을 이끄는 숨결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삭힐 때에 ‘배운다’고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고 사람을 읽습니다. 나무를 읽고 이웃을 읽습니다. 하늘을 읽고 흙을 읽습니다. 날씨를 읽고 마음을 읽습니다. 사랑을 읽고 노래를 읽습니다. 아이들 눈빛을 읽고, 어른들 생각을 읽습니다. 우리는 틈틈이 종이책을 손에 쥐어 읽을 뿐 아니라, 언제나 ‘넋으로 빚은 삶책’을 읽으며 마음을 살찌우겠지요. 4347.9.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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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63] 글빛



  읽는 사람 스스로

  빛을 만들어서

  누리는 글.



  쓰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랑을 담아 내놓을 때에 아름다운 글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읽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랑을 실어 맞아들일 적에 아름다운 글이 퍼집니다. 쓰는 사람 곁에 읽는 사람이 함께 있어야 아름다움이 이루어집니다. 건네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이 있어야 사랑이 환하게 빛납니다. 4347.9.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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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지 않은 무지개



  시외버스를 아홉 시간 즈음 탔을까. 지칠 만큼 지친 몸으로 고흥읍에서 비로소 마지막 시외버스를 내린다. 그런데 우리 마을로 들어가는 군내버스는 십 분쯤 앞서 떠났다. 이웃마을로 지나가는 버스도 없고, 두 시간을 기다리면 막차 하나는 있다. 한참 망설인 끝에 택시를 타기로 하고, 읍내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하자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으로 가게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나를 부른다. 읍내 택시 아재이다. 우리 식구가 단골로 타는 택시 아재이다. 이따가 타기로 하고 인사를 한 뒤 가게로 다시 걸으려는데, 택시 아재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내 뒤쪽에 드리운 무지개를 알아차린다. 어어. 무지개네. 어마어마하게 큰 무지개네.


  군내버스가 바로 있어서 탔다면 무지개를 못 봤으리라. 다른 쪽으로 갔어도 하늘에 무지개가 걸린 줄 알아채지 못했으리라.


  거의 뒷걸음을 걷다시피 하면서 무지개를 바라본다. 가만히 보니 외무지개 아닌 겹무지개이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만난 무지개인가. 이 얼마나 오랜만에 제대로 만난 무지개인가. 집에 전화를 건다. 아이들이 무지개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전화를 거니, 마당에서 벌써 봤단다. 얼마나 크게 걸린 무지개일까. 내가 선 곳에서 십오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보았다면, 그곳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무지개가 걸렸으나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무지개가 걸렸기에 하던 일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읍내 하나로마트 일꾼들도 무지개를 보고는 일손을 멈추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고등학교 아이도, 아이를 데리고 가게에 온 아주머니도,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무지개를 사진으로 담는다. 무지개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들 얼굴을 보는데, 몹시 맑다.


  일곱 가지 빛깔이란 무엇일까. 일곱 가지 별빛이란 무엇일까. 일곱 가지 삶자리란 무엇일까.


  내가 무지개를 마지막으로 본 날을 어림해 본다. 2008년 무렵 인천에서 꼭 한 번 아주 흐릿한 무지개를 아주 먼 데에서 본 적이 있고, 이에 앞서는 국민학교 다닐 적에 보았지 싶다. 이렇게 또렷한 무지개는 처음 보았으며, 이처럼 무지개를 가까이 두고 보기도 처음이요, 겹무지개는 서른 해만에 보았지 싶다.


  무지개를 잃어버리지 않았구나. 무지개는 늘 우리 곁에 있구나. 내가 마음속에서 늘 그리고 생각하면, 무지개는 조용히 우리한테 찾아오는구나. 4347.9.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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