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기요시코 카르페디엠 11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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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싶었을까?
 - 내 마음에 담긴 《안녕, 기요시코》


 《안녕, 기요시코》란 책을 다 읽은 지 제법 되었습니다. 아마 서너 달 지났지 싶군요. 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난 뒤 무어라 말을 못했습니다. 마음속 깊이 참 많은 이야기가 남았는데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더군요. 책에 나오는 `기요시'라는 아이한테서 제 지난날 모습 가운데 적잖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선뜻 어떤 말을 하기 어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보는 동안 밑줄을 칠 만한 곳은 많지 않았으나 이야기 하나하나가 가슴에 깊이 남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쉬 꺼내기 어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이제야 글 하나 써 봅니다. 책 이야기라기보다는 제 이야기를. 이야기책 《안녕, 기요시코》는 `기요시'란 아이 이야기를 펼쳤다면, 저는 `최종규'란 아이가 세상과 부대끼며 자기 자신을 만나며 `잘 있었니?' 하고 인사를 하게 된 대목까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1〉 싫어하는 말

 인천사람은 인천사람대로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음성사람은 음성사람대로 싫어하는 말이 있겠지요. 남원사람도, 부산사람도, 서울사람도, 제주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서로서로 달가이 여기지 않는 말이 있어요.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가 달가이 여기지 않는 말'이 있는데도, 맞은편 사람한테도 자기처럼 달가이 여기지 않는 말이 있는 줄을 생각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인천을 떠났습니다. 인천이 싫어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있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인천 아닌 곳으로 갔을 뿐입니다. 인천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저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어요' 하고 말하면 `인천은 서울과 똑같은 도시'인 줄 알거나 말하기 일쑤입니다. 인천사람으로서 이 말처럼 듣기 싫고 거북한 말도 없습니다. 인천은 인천이고 서울은 서울이지만, 인천은 서울이 바로 옆에 있다는 까닭 때문에 온갖 차별과 푸대접과 깔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광역시 가운데 지역방송국이 없는 곳은 인천뿐이지만, 인천에 생긴 지역민간방송국은 서울에 본거지를 둔 세 군데 방송사 입김 때문에 끝내 사라지고야 말았습니다. 꼭 그 방송사(iTV)가 인천사람들 꿈은 아니었으나, `인천에도 지역방송국이든 다른 방송국이든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참 깊었습니다.

 인천에는 공장이 대단히 많습니다. 요새는 안산이나 구로 쪽에 더 많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인천에 있는 공장은 공장 가운데 무척 지저분한 배기가스와 오염물질을 내뿜는 공장들입니다. 인천에는 서울사람들이 쓰는 연탄을 찍는 공장부터(요샌 연탄을 많이 안 쓴다지만), 유리공장, 제철소, 화학공장 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살림집 바로 옆에 화학공장과 유리공장이 있는 곳은 인천뿐일 것입니다. 제가 다닌 국민학교 옆에는 연탄공장이, 중고등학교 옆에는 화학공장과 폐수처리장과 목재처리장(수입한 나무를 쌓아 놓는 곳)이 있었습니다. 제 살가운 벗이 사는 만석동과 화수동에는 유리공장과 제철소에서 날아오는 쇠먼지 때문에 빨래를 늘 집에다 널어야 했지만, 바깥에 널 만한 자리도 없었어요. 인천 앞바다가 똥물이라 말하는데, 인천 앞바다가 똥물이 될 수밖에 없도록 온갖 공장을 인천 앞바다에 지었고, 서울사람들이 버리는 온갖 쓰레기더미와 똥오줌이 한강을 따라서 인천 앞바다로 모입니다. 그러니 인천 앞바다가 똥물이 될밖에요. 그 똥오줌이 다 누가 눈 똥오줌일까요?


.. "긴장을 풀고 말을 하면 돼요. 걱정을 하니까 더 말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말을 더듬어도 상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맘 편히 자기 자신을 격려하며 말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번에는 속에서 뭔가 울컥,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좀 막힌다고 해서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어른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남들이 보고 웃는다고 뭐가 어때, 그런 녀석은 그냥 무시해."
 "말 더듬는다고 기죽을 것 없어."
 "말이 서툰 것도 다 개성이야."
 이런 말들을 하는 어른들은 모두 막힘 없이 술술, 아무런 고민도 없이 지껄인다 ..  〈70쪽〉


 인천은 서울 옆에 있어서 `살기 좋지 않느냐'고(서울 옆에 있다고 좋을 것이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하는 사람들, 서울에 쉬 놀러갈 수 있고 문화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참 속없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마음 가붓이, 누릴 것 다 누리며 사는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2〉 나는 어느 길로 가면 좋을까

 바다를 보며 자랐습니다. 바닷가에서 놀며 자랐습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랐고, 바다낚시도 즐기고 먼바다에서 들어오는 커다란 배를 보며 놀았습니다. 비둘기나 참새보다 갈매기를 더 많이 보았고, 밀물과 썰물이 언제 바뀌는지, 해질녘 바다가 얼마나 붉게 물드는지 날마다 보며 자랐습니다. 봄이나 가을마다 뿌옇게 끼는 안개는 코앞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짙었습니다. 예전 살던 집 옆에 있는 제일제당이란 공장에서 흘러보내는 폐수가 얼마나 끔찍한 빛깔이고 냄새가 풍겼는지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제일제당에서 만든 설탕이나 먹을거리는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 Y대학에 합격한다 해도 도쿄에 있는 W대에 가고 싶다. Y대학에도 W대학에도 둘 다 불합격했을 경우엔 재수를 하고, 다음에는 처음부터 지원 대학을 W대학만으로 좁힐 것이다. 왜 그러냐고 누가 묻더라도 똑 부러지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말을 더듬는 데 왜 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거냐?"고 물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갖고 싶은 캔디는 이거다, 이것뿐이다 ..  〈252쪽〉


 살아도 인천에서, 죽어도 인천에서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나날이 더러워지고 나날이 메말라가고 나날이 병들어가는 이 터전에서도 꿈을 간직하며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인천을 떠나서 서울로 왔습니다. 골목골목 모르는 길이 없고, 사람들 마음씀씀이나 살림살이나 훨씬 푸근하고 따뜻한 곳이 인천이었지만(저한테는), 인천은 바닥이 좁아서 좀더 많은 책을 볼 수 없었습니다. 좀더 세상을 알고픈 저한테는 참 좁은 곳이었고, 우리 세상을 이끌어 가는 더 많은 일거리를 만나기 어려웠으며, 늘 한 단계나 몇 단계 아래쯤에 머물러 있는 곳에서 자꾸만 `그냥 이대로'에 묻혀 버릴 듯했습니다.

 손쉽게 살아갈 수 있는 길, 그저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하는 길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안녕, 기요시코》에 나오는 아이처럼 저도 말더듬이였고, 여자 앞에서는 늘 얼굴이 붉어지고 어디에 눈길을 두어야 할는지도 모르는 수줍음쟁이였습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건만 누가 볼세라 걸음도 똑바로 걷지 못하는 반편쟁이처럼 지내면서, 이런 저를 있는 그대로, 글쎄, 있는 그대로였을는지 모르겠지만, 큰 어려움 없이 살도록 마음써 주던 고향에서 죽 지내고 싶었는데.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여자들 앞에서도 말을 하고 싶었고, 큰길에서 떳떳하게 여자친구 손을 잡고 걷고 싶었으며, 누가 보거나 말거나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제 모습 그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참말로 제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면서 그 길만 꿋꿋하게 걷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천에 있는 대학교 원서는 일부러 안 사고 시험도 치지 않았습니다. 딱 두 군데,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만 시험을 쳤고, `안전하게 붙을 수 있는 곳도 치라'는 모든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붙어도 내가 붙고, 재수를 해도 내가 재수를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 대학교에 붙는다고 제가 갈 길이 그 길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너무 손쉽게 살아가는 길에 길들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직 무엇을 가지면 좋을지 모르던 그때,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닌, 아직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가지면 좋을까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내 꿈은 무엇인지, 내가 이룰 수 있는 꿈은 무엇인지, 내가 이룰 수 없어도 죽는 날까지 힘껏 애쓰면서 보람을 얻을 만한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조금씩 이뤄 갈 수 있는 꿈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몸으로 부대끼고 싶었고 겪고 싶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 가운데 한 군데에 가까스로 붙었습니다. 추가합격 2번으로. 다행이면 다행이고 불행이면 불행인데, 저보다 좋은 성적으로 앞에 붙었던 두 사람이 그만두는 바람에 턱걸이로 들어갔어요.


 〈3〉 걸어가고 싶은 길을

 인천에서 서울 한쪽 끝에 있는 대학교로 다녔습니다. 이 학교를 그만두기 앞서까지 알아보니, 인천에서 서울 한쪽 끝에 있는 이곳까지 4년 내내 전철로 다닌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도 꼽기 어려울 만큼 드물다고 하더군요. 거의 두 손을 든답니다. 너무 힘드니까요. 저는 집에서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에서 내린 뒤 주안역에서 동인천역으로 돌아가서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안 그러면 부평도 안 되어 지옥철이 되어서 거의 오징어처럼 되니 책도 못 읽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오로지 사람들한테 덜 밀리면서 책읽을 자리를 마련하려고 전철을 돌아 내려간 셈입니다.) 한 시간 이십 분쯤 달리면 비로소 목적지입니다. 새벽 6시 7분이나 15분 차를 타면 인천-서울 오가는 시간이 4시간 30분 안에 들었고, 6시 30분이나 45분 차를 타면 거의 5시간 가까이 걸리곤 했습니다. 그래,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은 하루 가운데 으레 4시간쯤은 전철이나 버스에서 보내곤 했어요.

 이 삶을 1년 잇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집에서 쓸돈도 넉넉히 못 받는 한편, 집안 형편도 썩 좋지 못하다고 느껴서 신문사지국에 들어갔어요. 먹고잘 수 있는 곳으로요. 덕분에 찻삯을 아낄 수 있었고, 신문 돌려 번 돈으로 책도 더 많이 살 수 있었으며, 신문도 거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 "지나가는 사람 A, 지나가는 사람 B라고 했는데 이 세상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니?"
 등장 인물 모두에게 이름을 붙이라는 말씀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도 좋고, 새로 지어 붙여도 좋다. 연극 중에 이름이 꼭 불리지 않아도 된다. 아무튼 이름이 없는 등장 인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  〈136쪽〉


 작은 과에 들어가기를 참 잘했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뭐, 아무것도 없지만요. 한 과에 서른 사람. 이렇게 작은 과다 보니 이웃한 작은 과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네덜란드말, 포르투갈말, 이탈리아말, 스웨덴말. 한 과에 서른 사람인 이 작은 과들은 `네이포스'란 이름으로 서로 똘똘 뭉쳤습니다. 그래서 기마전을 하건 체육대회를 하건 술마시기 겨루기를 하든, 우리 작은 과 연합이 늘 이기곤 했어요.

 배우는 것은 달라도 품은 꿈은 비슷했는지 모르고, 품었던 꿈이 하루하루 사그라들며 똑같은 취업준비생이나 고시생이 되는 흐름은 비슷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자그마한 모둠에서도 있기 어렵겠구나 느꼈습니다. 그래, 이젠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제 막 스물을 넘기려는 나이, 몸에서 힘은 넘치지만 마음은 붙잡아 둘 곳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1년 365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주 2병 넘게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없어서 석 달을 술을 쉬고 다시 석 달을 마시고, 다시 쉬고. 술을 쉰 마지막 때에 군대에 갔습니다. 스스로 나서서 갔습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낸 뒤 학교로 돌아옵니다. 학교는 많이 밝아졌다는 느낌이고 여학생도 많이 늘어났지만 제가 있을 만한 자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안녕, 기요시코》에서 주인공 아이가 학예회 때 내놓을 연극 대본을 쓸 때 `지나가는 사람 A', `지나가는 사람 B'라고 적었듯, 제 자신이 그 `A-B'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나일 뿐인데. 나는 똑같이 굴러가고 싶지 않은데. 외국말을 배우는 강의요 수업인데도 교재 베껴쓰기 숙제를 해서 내야 하고, 이런 베껴쓰기 숙제를 안 내면 학점이 깎이고, 이 베껴쓰기 숙제에는 골똘하면서 정작 자기가 배우는 말은 힘써서 익히려고 하지 않는 동무들… 혼자서 이 외국말을 배우기에는 너무 벅찹니다. 배울 마음이 사라집니다. `남들이 제대로 안 하는 것을 하는 일'도 좋겠지만, 이곳에는 제가 갈 길이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 갈 길은 무엇일까? 내 꿈은 무엇일까? 내가 무엇하러 날고생 하면서 서울까지 왔을까? 이렇게 살려고 서울에 왔나? 부모님 집하고 인연을 끊을 마음을 먹고 학교는 아예 그만두기로 하고 한 해 동안은 이 학교를 떠나기 앞서 나한테 모자란 것을 채우고 내 나름대로 혼자서 살아갈 길을 깨우쳐 줄 사람들 강의만 골라 듣자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해. 둘레에서 아무리 무어라 떠든들 한 귀로 흘린 채 신문배달 부수를 늘렸고, 새벽에 신문 돌리고 아침잠을 잤다가 신문을 읽고, 낮잠을 잤다가 책방과 도서관을 다니고 저녁나절까지 책에 파묻혔다가 다시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이렇게 해서 그동안 써 왔던 굴레는 내려놓았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한테 손을 벌릴 수도 없지만 벌리고 싶지도 않은 제 자신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아주 자유로운, 어쩌면 아주 외로운 사람이 된 채 세상과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이것이 바로 《안녕, 기요시코》에 나온 기요시가 걸어가고픈 길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4339.1.25.물.ㅎㄲㅅㄱ)


- 책이름 : 안녕, 기요시코
- 글쓴이 : 시게마츠 기요시
- 옮긴이 : 오유리
- 펴낸곳 : 양철북(2003.12.19.)
- 책값 :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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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하는 즐거움
리처드 파인만 지음, 승영조 외 옮김 / 승산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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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발견하는 즐거움
- 글쓴이 : 리처드 파인만
- 옮긴이 : 승영조, 김희봉
- 펴낸곳 : 승산(2001.4.6.)
- 책값 : 9800원

 지난번 대통령 뽑기가 떠오릅니다. 이때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사람 가운데 둘, 이회창 씨와 노무현 씨는 ‘옥탑방’이 무엇인 줄 몰랐습니다. 옥탑방이 무엇인 줄 몰랐으니 ‘지하방-반지하방’이 무엇인 줄도 모르겠지요? 이 나라에서는 사람을 바보 멍청이로 만드는 군대 조직인 터라 군대에는 안 가야 하고, 군대가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돈과 이름과 힘이 없는 사람은 군대에 끌려가기 마련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군대에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돈과 힘과 이름이 있는 이들은 군대에 안 가거나(뒤로 빼돌리지요), 가더라도 아주 아늑한 곳에서 탱자탱자 놀면서 지냅니다. 이들한테 ‘군대’란 무엇이고 ‘병역면제’란 무엇일까요?

 서울시든 다른 곳이든 교통이 참 엉망입니다. 길은 수없이 깔지만 길마다 막히며, 사람들이 다니는 길도 아주 안 좋아요. 길섶은 늘 파여 있기 일쑤고, 사람이 걷는 길이나 자전거가 다니는 길은 곳곳이 끊어져 있는 한편, 길턱이 너무 높아 휠체어나 자전거나 유모차가 다니기 매우 나빠요. 그런데 이게 왜 그럴까요? 바로 공무원이고 건설담당자고 정치꾼이고 누구고 ‘대중교통’을 타는 일이 없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일터를 오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국회의원 가운데 하나라도 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길을 달려서 국회의사당을 오간다면, 그나마 괜찮다고 하는 한강 자전거길은 ‘지금 이 길에 깃든 온갖 문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질는지 몰라요.


.. 아버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름만 가르쳐 주는 법이 없었지요. 아버지는 이름만 아는 것과 진짜로 아는 것의 차이를 알고 계셨어요. 덕분에 나는 그걸 아주 일찍 깨달을 수 있었지요 ..  〈24쪽〉


 어릴 적에 흔히 듣던 말로 “야구의 ‘야’ 자도 모르는 주제에” 같은 말이 있습니다. 야구 규칙이고 야구선수 이름이고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야구’를 있는 그대로 알지는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저는 헌책방을 참 즐겨 다니는데, 저도 아직 헌책방의 ‘헌’ 자도 제대로 모릅니다. 그런데 저뿐 아니라 대단히 많은 분들이 헌책방의 ‘헌’ 자조차 모를 뿐더러, 이렇게 기본도 모르는 자기 자신을 고치거나 가다듬으려 하지 않아요.

 속살까지 지긋이 파헤치거나 살피려 하지 않고, 참다운 모습을 느끼려 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발견하는 즐거움》에서 파인만 님은 ‘새가 어떤 이름인지 안다고 해서 아는 것은 아니라고, 그 새를 어느 나라에서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가만 아는 것뿐이다’고 말합니다. ‘새가 즐겨먹는 먹이가 무엇이고 소리를 내는 까닭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잠을 자고 짝짓기는 언제 어디에서 얼마 동안 하며 새끼는 언제 까고 몇이나 낳으며 어떻게 기르는가…’를 알아야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도 ‘그 새를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는 없고 ‘새의 모습과 삶 가운데 어느 만큼만 안다’고밖에 할 수 없다고 아버지한테 배웠다고 말합니다.

 ‘안다’는 말은 섣불리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일이란 그처럼 쉬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또한 ‘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지 않아요. ‘알았다’면 바로 이때부터 중요합니다. 알았으면 무얼 해야 하나요? 바로 ‘실천’입니다. 아는 것을 ‘펼치는’ 일입니다. 정치꾼들이 ‘옥탑방’이 무엇인지를 지식으로 안다고 해서 옥탑방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 삶을 헤아리는 정책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까요? 점심에 국수를 먹는다고 하루 세 끼니를 라면으로 때워도 가까스로 살림을 버티는 이들 형편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 위대한 종교라 해도 위대한 지도자가 직접 가르친 내용을 잊어버리고 형식만 추구하면 퇴보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형식만 추구하며 그것을 과학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이비 과학입니다. 사이비 과학적 조언자들의 영향 아래에 있는 수많은 단체나 제도 속에서 오늘날 우리는 일종의 학정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  〈70쪽〉


 파인만한테는 ‘과학’, 이 가운데 ‘물리학’이 ‘종교’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좋아하고 믿고 즐기는 것을 ‘종교’란 자리에 넣어서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겉이 아닌 속을,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거짓이 아니라 참을, 그릇된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찾아서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아야지 싶습니다. (4339.3.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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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아이들 - 미세기 다큐멘터리
윌리엄 에이어스 지음, 양희승 옮김 / 미세기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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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책이름 : 법정의 아이들
- 글쓴이 : 윌리엄 에이어스
- 옮긴이 : 양희승
- 펴낸곳 : 미세기(2004.1.15.)
- 책값 : 12000원


 요즘은 조금 나아졌는가 모르겠는데,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또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 퍽 많은 교사들은 우리를 ‘○번’ 하고 불렀습니다. 이름표도 가슴 잘 보이는 곳에 달고 다녔고, 교사들은 출석부도 늘 가지고 다녔지만 우리들 이름보다는 ‘번호’로 부르곤 했습니다. 굳이 이름을 외울 까닭이 없다고 느꼈는지 모르지요.


.. 선정된 관선 변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건 서류를 챙겼다. 그는 자신이 변호를 맡게 된 조단을 쳐다보지 않았다. 다음 공판 일정이 정해졌다. 다음 사건 ..  〈31쪽〉


 우리들을 숫자로 부르고 지나친 교사들은 우리한테 교과서 지식만 건넬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시험을 치를 때마다 점수에 따라서 몽둥이 찜질을 했습니다. 어떤 교사는 지난번 시험보다 1점이라도 떨어지면 1대씩 때리곤 했는데, 이때마다 우리는 아찔할 뿐이었습니다. 지난번에 100점을 받았는데 이번에 97점을 받으면? 지난번에 82점을 받았다가 이번에 81점을 받으면? 처음엔 50점, 다음엔 80점, 다음엔 60점을 받으면?

 학교를 떠나서 살아가는 지금, 우리 사회를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교사가 학생을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부르듯, 우리 사회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은 서로를 이름이 아닌 숫자로, 이웃이 아닌 대상으로, 사람이 아닌 짐짝처럼 다루지 싶어요. 정치꾼들은 늘 ‘국민을 생각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공무원들은 ‘민원인에게 봉사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기업주는 ‘노동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작가나 출판사는 ‘독자를 믿는다’고 말해요. 하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다들 겉발림일 뿐이거나 입에 발린 소리이지 싶어요.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거나 꾸밈없이 다가가려는 마음으로는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 실제적인 의미에서 법원이 자신들의 영역 안에 있는 모든 문제를 처리하지는 못한다. 빈곤과 실업, 경제 공황, 인종 갈등, 계층 갈등, 불평등한 분배 구조, 좌절감과 반목으로 가득한 사회 환경 등은 법원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고유 영역 안에서도 법원은 기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법정에 서는 청소년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법적 권리를 대변해 줄 대상을 갖지 못하며 또 보호나 상담을 해 줄 대상조차 갖지 못한다 ..  〈81쪽〉


 아이들이 여덟 살에, 아홉 살에, 열 살에, 열두 살에, 열세 살에… 범죄를 저지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 어린 나이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아주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왜 어떤 아이는 어릴 적부터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삶터에서 헤매이다가 온갖 차별과 푸대접을 받아야 하고, 또 어떤 아이는 일찌감치 범죄 소굴에 심부름꾼처럼 이끌려 다니다가 법정에까지 서야 할까요? 어른 범죄가 있는 곳에 청소년 범죄가 있고, 어른들도 참답게 살 수 없는 터전이라면 청소년도 참답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4339.3.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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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마단 사람들
오진령 지음 / 호미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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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이름 : 곡마단 사람들
 - 글 / 사진 : 오진령
 - 펴낸곳 : 호미(2004.1.15)
 - 책값 : 12000원


 '곡마단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 동춘서커스단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


 <1> 곡예사와 관객


 어릴 적 제가 살던 인천에도 동춘서커스단이 꽤 오래 머물렀습니다. 한창 지는 별이었던 동춘서커스단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우리 고향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또 제가 사는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고 신나게 보고 동무들하고 얘기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저는 나이가 들고 이것저것 보고 배울 때까지 '동춘서커스단'이 이 모임을 만든 '박동춘' 씨 이름에서 왔다는 걸 몰랐습니다. 인천에 '동춘동'이란 곳이 있는데 거기에서 나온 모임이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동춘서커스단은 지금 나라안에 딱 하나 남은 서커스단입니다. 지금 이 서커스단을 이끄는 박세환 단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 "서커스를 보면서 울고 웃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저 사람들의
 웃음과 감동을 뺏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동춘은
 내 것이 아니고 관객들의 것,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28쪽>


 서커스. 저는 서커스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커스를 보며 받는 감동과 웃음과 눈물이 어떠한지를 잘 몰라요. 다만 "공연을 보고 나서 하루 종일 회상에 젖어 주위를 떠나지 못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철 지난 양복을 빼어 입은 어느 할아버지는 비싸다며 기어코 천 원을 깎아 표를 산다. 서커스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어느 엄마가 아이에게 말해 주는 소리도 들려오고, 대낮부터 술 냄새를 풍기는 중년 남자<22쪽>"도 보는 서커스를 생각해 봅니다. 어떤가요? 동춘서커스단은 "웃지 못했다면, 재미없다면 입장료 반환합니다"란 푯말을 큼직하게 써붙이고 공연을 한다는데 아직까지 입장료를 물어 내라 한 사람이 없었대요.

 누구나 찾아오고, 모두들 공연에 흠뻑 빠지고 즐긴달까요. '불쌍한 사람'이 아닌 '삶을 즐기고 곡예를 즐기는 사람'인 곡예사이나 공연을 즐기는 우리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어느 나라는 곡예를 가르치는 전문학교도 있고 나라에서 뒷배도 하지만 우리 나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배 곯고 불쌍하고 할 짓 없는 년놈들이나 하는 일을 '서커스'라 여기면서도 서커스를 보러 오기 주저하지 않는 우리들이에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누가 곡예사이고 누가 관객일까요?


 <2> 똑같은 사람 삶인 곡예사 삶


 .. 그들이라고 왜 두렵지 않겠는가? 곡예를 하다가 떨어져 몇 번씩
 병원 신세를 진 그들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처럼 아름다운 비행을 하고 있다 .. <54쪽>


 곡예사는 날마다 수없이 하늘을 납니다. 관객은 하늘을 나는 사람을 멀거니 구경합니다. 하늘은 누구나 날 수 있고, 하늘을 날며 느끼는 짜릿함이란 누구에게나 즐거울 텐데 우리들은 그저 구경만 합니다.

 곡예단 사람들 사진을 찍은 오진령 씨는 1998년부터 여섯 해 동안 곡예단 사람들과 함께 다니며 사진을 담았답니다. 어느 날 본 서커스 공연에 꼼짝도 못할 만한 감동을 받아 사로잡힌 그이는 서커스 사람들과 가까이 있고 싶었답니다. 여섯 해 동안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아가 열흘씩 함께 지내며 살았답니다. 처음에는 구경만 하던 오진령 씨였는데, 곡예사들과 함께 지내며 곡예사들에게도 '자기와 똑같이' 소박하고 자유롭고 진정 어린 삶을 살아가지만 순정하고 여린 탓에 생채기를 많이 받는 모습에 함께 가슴 아팠답니다.

 곡예사 가운데에는 자기과 같은 나이 동무가 있었답니다. <곡마단 사람들>에는 그 동무 이야기가 곧잘 나오는데, 어느 날 곡예사 동무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다죠.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이나 88열차도 함께 탔다는데 그렇게 무서워하더랍니다. 줄 타는 곡예사인 그 동무가 말이죠.


 .. 줄 타는 곡예사가 고작 바이킹 따위에서 그렇게 무서워하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스러웠다. 그 공포심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래, 곡예사라고 해서, 줄을 탄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
 다. 그들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느낀다. 다만 날마다
 그 큰 두려움을 견디는 것일 뿐이다 .. <156쪽>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곡마단 사람들' 삶을 사진과 글로 알뜰히 담은 <곡마단 사람들> 머리말을 읽습니다. 오진령 씨는 우리들에게, 그러니까 서커스를 겉으로 구경만 하는 우리들에게 "서커스를 어린 시절의 과거 한때의 추억으로 돌려 버리고 외면"하는 우리들에게 말을 겁니다. 동춘서커스단에 있는 곡예사들은 "팔십 년 가까운 역사를 등에 지고서, 곡예사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며, 오늘도 사람들을 재미와 감동으로 울고 웃게 하면서 한 해 내내 전국을 유랑하고" 있다고. "과거가 아닌 오늘의 것"으로 서커스를 바라보면 좋겠다고요.


 <3> 소중한 이야기가 아닐까


 곡마단 사람들은 열흘 걸려 공연할 천막을 세운답니다. 공연이 끝난 뒤 걷어 내릴 때에도 닷새 남짓 걸린답니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이 전국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형편이기에 제대로 연습할 짬이 없고 새로운 곡예를 갈고 닦을 짬이 없답니다. 한겨울 공연이 없을 때에는 노동판에 나간다는 그이들. 여느 때에 20~30미터 되는 곳도 너끈히 올라가던 사람들이라 건물을 높이 쌓는 노동판에서 인가가 '가장 좋답'니다. 인기 있고 돈 많이 버는 운동선수들은 한겨울에 따뜻한 나라로 가서 '전지훈련'을 하지만 곡마단 사람들은 살림돈을 벌고자 노동판에 갑니다.

 "곡예사로 꼭 성공해서 사람들 기억 속에 남고 싶"은 이들이 곡마단에, 동춘서커스단에 있습니다. 그리고,


 .. 공연장 밖에서 손님을 맞는 원숭이들에게 사람들은 인사 치레인 양
 손가락질을 하거나 무언가를 집어던지곤 한다. 그러나 정작 원숭이들
 은 사람들의 그런 무례한 행동도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아량을 보인다.
 서커스와 동고 동락해 온 오랜 연륜을 그들에게서 느끼게 된다 .. <148쪽>


 는 이야기에서 보듯 곡마단과 함께 다니는 짐승들은 거의 놀림감입니다. 하지만 곡마단 사람들에게 '함께 공연하는 짐승'들은 둘도 없는 벗이요, 아낌없는 동무예요.

 책을 두어 번 되풀이해서 읽고 보다가 이제는 덮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난 뭐하러 <곡마단 사람들>이란 책을 사서 읽었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곡마단 이야기를 뭐하러 보았는지, 보면서 무슨 느낌이 들었는지를요.

 사회에서 푸대접받는 사람들 이야기라서 가슴 아프게 읽었는지?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는 우리들이라, 곡마단 사람들 이야기를 제대로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는지?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호기심인지? 찬찬히 헤아려 보지만 뚜렷한 실마리는 잡히지 않습니다. 그저 곡마단 사람들이라 해서 어디 먼 별나라 사람도 아니고, 뚱딴지 같은 사람도 아니며, 불쌍한 사람도 아니고, 성공만을 좇는 딴따라도 아닌 한편으로, 나와 똑같이, 우리와 똑같이 삶을 즐기는 이웃이라고 봅니다.

 오진령 씨에게 사진 찍힌 어느 곡예사가 한 말을 마지막으로 책소개를 마치겠습니다. 덧붙여 44~45쪽, 74~75쪽, 102~103쪽, 134~135쪽 사진은 두 쪽에 걸쳐 사진을 담았으나 사람 얼굴과 몸이 가운데에 접힌 채 잘려서 보기가 참 안 좋습니다. 사진을 많이 넣어서 엮는 책이라면 좀더 엮음새에 눈길을 두어야지 싶어요. 130쪽에 '대한 민국'이라고 띄어서 썼는데 '대한민국'이라고 붙이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 "사회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커스 하면 불쌍한 놈들,
 몹쓸 놈들이라고 하지. 이런 데에 산다고 해서, 옷도 아무렇게
 나 입는다고 해서 불쌍한 건 아니야...... 그건 그렇고. 우리
 사진은 왜 찍어? 뭐에 쓰려구 그래? 서커스를 찍어간 사람이야
 많지. 그래도 내가 보기엔 제대로 찍은 사람은 드물어. 이왕
 찍는 거, 잘 좀 찍어 봐" ..  <158쪽>

***
곡마단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곡마단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느끼고 보고 겪은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풀어낸 책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낮은 자리에 있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인 곡마단 사람들입니다. 그네들 삶과 목소리와 모습을 느끼며 겉이 아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라고 생각하여 소개하는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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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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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이름 : 천천히 읽기를 권함
 - 지은이 : 야마무라 오사무
 - 옮긴이 : 송태욱
 - 펴낸곳 : 샨티(2003.11.11)
 - 책값 : 8000원


 "천천히 읽기"는 좋은 읽기법
 - 책을 좀더 즐겁게 읽기


 <1> '다치바나 다카시'와 견주는 책


 ..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한 쪽 읽
 는 데 1초, 좀 늦더라도 2,3초'라는 읽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
 은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굳이 심신에 무리를 주면서라도 훈련
 을 거듭하면 나한테도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책을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읽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것을 모르겠
 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 엉터리 책 그리고 나
 의 대량 독서술, 경이의 독서술>은 서평집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예로 들고 있는 책 가운데 5분이나 15분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매력이 있을 것 같은 책이라면 여느 때처럼 느
 릿느릿 읽고,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손에 들지
 않는다 ..   <18쪽>


 어느 일본 작가가 쓴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란 책을 보름에 걸쳐서 다 읽었습니다. 그 뒤로 닷새 동안 이 책에 담은 줄거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빨려들듯 읽던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라 하루 만에 1/3을 읽었고, 이틀 만에 절반을 넘겼는데, 그 뒤로는 어쩐지 지루하고 느슨해진 느낌에 책을 놓았고, 열흘 동안 들춰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책을 잡은 뒤 사흘 동안 나머지를 다 읽었습니다.

 <천천히 읽기를 권함>을 지은 야마무라 오사무는 '다치바나 다카시'를 비판하고자 이 책을 쓰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다만 다치바나처럼 '많이 빨리 읽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뜻과 소중함이 있겠으나, 자기 같은 사람에게는 '적게 천천히 읽는 일'이 더 알맞아 보이며, 책이 지닌 모든 것을 감동으로 받아들이지만 '빠르기'에 너무 매달리거나 얽매이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문을 열어요.

 야마무라 오사무는 책 앞에 이렇게 묻습니다. "그들(다치바나 다카시)이 주장하고 권유하는 독서법은 그들 외에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19쪽)"


 <2> 천천히 읽는 까닭


 에밀 파게, 엔도 류키치, 헨리 밀러를 보기로 들며 "책은 감동을 느끼려고 읽기 때문"에 "빨리 읽어서 많은 지식을 얻는 것도 좋겠으"나 천천히 읽기를 말하는 야마무라 오사무. 저도 이런 생각이 참 옳다고 봅니다. 한 권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야금야금 밥을 먹듯 찬찬히 즐기는 맛이야말로 책 한 권을 알뜰히 즐기는 맛이라고 보아요. 때로는 숨돌릴 틈 없이 읽어제끼기도 합니다. 추리소설이나 긴소설을 읽을 때는 줄거리와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에 빠져서 '작가마다 다른 문장과 글맛'을 건너뛸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 문학도 나중에 차근차근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다시 읽으면 지난날 줄거리에만 푹 빠져서 읽던 때와는 사뭇 다른 감동이 다가와요. 이런 느낌을 야마무라 오사무는 '책과 몸과 마음이 어울리는 일'이라고 말해요.


 .. 눈이 글자를 좇아가다 보면 그에 따라 정경이 나타난다. 눈의
 활동이나 이해력의 활동이 다 갖추어진다. 그때는 아마 호흡도
 심장 박동도 아주 좋을 것이다. 그것이 읽는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읽는 리듬을 타고 있을 때, 그 읽기는 읽는 사람 심신의 리
 듬이나 행복감과 호응한다. 독서란 책과 심신의 조화이다 .. <38쪽>


 그런데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란 책을 보며 한 가지 끊임없이 걸리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천천히'란 말이에요. '천천히'란 말은 "어떤 일을 할 때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느리게'란 말은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이고요. 그렇다면 "천천히 읽기"란 "시간이 오래 걸리도록 책을 읽는 일"이에요.

 자.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아요. 책을 읽는 빠르기는 섣불리 '빠르다-느리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읽는 빠르기는 제가 느끼기에 그저 그렇다고 볼 수 있으나 어떤 이에게는 '너무 빠르다'라 할 수 있고 '너무 느리다'고 할 수 있거든요. 우리 아내나 다른 동무들과 책을 함께 읽다 보면, 제가 아내나 다른 동무보다 책을 느리게 읽음을 느껴요. 한 쪽을 다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제가 더 깁니다. 하지만 저도 꽤나 빠르게 읽는 때도 있어요. '문장과 낱말을 보지 않으려'고요. 말을 만지고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책을 읽을 때에도 번역이 잘못되었거나 엉성하거나 창작이 우리 삶과 문화와는 어긋난 낱말과 문장을 만나면 읽기가 껄끄럽습니다. 그래서 문장이 덜된 글이지만 줄거리가 좋을 때에는 문장은 건너뛰면서 줄거리만 좇으며 읽어요. 이럴 때에는 책이 술술 읽히고 빨리 읽는 편입니다. 하지만 낱말 하나를 알뜰하고 골라 쓴 시나 좋은 문학을 즐길 때에는 참 느릿느릿 읽는 편이에요. 읽은 대목을 두어 번 곱읽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은 이름을 잘못 붙였다고 보아요. 어쩌면 번역을 할 때 좀더 헤아렸어야 옳다고 보는데, '천천히'가 아닌 '찬찬히'라 했어야 맞겠다고 보아요. '천천히'는 그저 "빠르기가 느리다"를 말하지만 '찬찬히'는 "꼼꼼하면서 차분하고 지긋하게"를 말해요. 어느 책을 읽어서 감동을 받고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아무래도 '천천히' 읽을 때보다는 '찬찬히', 그러니까 '차근차근' 읽을 때라고 봅니다. 지은이 야마무라 오사무가 말하는 읽기법도 '천천히'라기보다는 '알맞은 빠르기'인 만큼 "차분하고 꼼꼼하게 지긋하게"를 뜻하는 '찬찬히 읽기'가 더 좋다고 봅니다.


 <3> 책을 왜 읽는가?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 주는 아름다움 가운데 하나는 "책을 왜 읽는가?" 하고 스스로 묻고 스스로 풀이를 찾는 데에도 있습니다.


 .. 필요가 있어서 책을 읽을 때 나는 그것을 독서라고 생각하지 않
 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읽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펴본다'
 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참조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설령 한 권의 책을 읽고 기획서나 리포트를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경
 우가 있어도, 나에게는 그것을 두고 독서라고 말하는 그런 감각이
 없다. 물론 필요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띄엄띄엄 읽기도 하고 건너
 뛰며 읽기도 한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띄엄띄엄 다 읽고 난 뒤,
 나는 그것을 독서한 책의 권수로 세지 않는다. 나만이 아닐 것이다 .. <46쪽>


 이 대목은 참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보아요. 저는 이 대목에 별을 둘 그리고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독후감 쓰기 숙제'를 하고자 읽는 책도 '책읽기'라 말하고자 애를 쓴다면 책읽기에 들어가겠으나 실질로 우리 삶과 마음과 생각에 도움을 주고 감동을 주는 책읽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신문을 '읽는다'기보다 '본다'고 더 흔하게 말을 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도 '본다'가 더 가깝다고 하는 까닭도 이런 테두리에서 말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때그때 보고 사라지는 소식과 정보를 얻는 일이 얼마나 '감동'을 주며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느냐, 바로 이런 테두리에서 책을 읽는 까닭을 밝힌다고 보아요. 쓱쓱 훑으며 어떤 줄거리인지만 지식으로 익히는 게 아니라, 어떤 글 편, 노래 한 소절, 그림이나 사진 한 장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곰삭여서 즐기는 일이 될 때에야 비로소 '책읽기'라고 말할 수 있지 싶어요.

 야마무라 오사무는 언젠가 "건강을 위해서는 하루에 30분이라도 낮잠을 자야 한다고 쓴 신문 기사를 보고 웃고 만 적이 있다. (144쪽)"며 "한 달에 몇 권, 몇십 권 읽으라는 것도 얼빠진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물어요. 사람에 따라 낮잠을 안 자는 게 좋을 수 있고, 한 시간을 자야 알맞을 수 있거든요. 책도 한 해에 한 권 읽는 편이 알맞은 사람이 있고 만 권을 읽어도 모자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니, '책읽은 숫자'를 말하는 일은 우스개밖에 안 된다고 여깁니다.


 <4>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


 영화를 즐길 때 조금 빠르게 돌려서 2시간 30분짜리를 1시간 만에 본다면 어떨까요? 군데군데 가위질을 해서 30분 만에 본다면요? 노래를 들을 때 길어서 지루하다며 조금 빠르게 돌리면 어떨까요? 10분짜리 노래를 간주와 전주를 자르고 후렴도 잘라서 2분 만 돌리면요?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이란 어느 책 한 권을 자기 눈높이와 생각과 몸과 마음 상태에 알맞은 빠르기로 찬찬히 읽고 맛볼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책이 수백만 권, 아니 수억만 권도 넘게 있는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모든 책을 다 읽어낼 수 없어요. 책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알맞으면서 재미있고 즐겁고 살가우면서 아름다울 책을 추리고 골라서 읽을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좋습니다. '좋은 책'이라는 책 가운데 1000권을 빠르게 읽어제끼는 일도 나쁘지는 않지만, 10권이라도 차근차근 읽어서 제것으로 삼는다면, 또 그 작품에 깃든 모든 느낌과 이야기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헤아릴 수 있다면 더 나은 책읽기가 아닐까 모르겠어요.

 <천천히 읽기를 권함>은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차분하게 들려주는 한편, 저마다 가장 알맞은 빠르기로, '책 권수는 신경을 끄면서' 살자는 덕목을 펼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 책은 쪽수가 186쪽인데 빈자리가 무척 많습니다. '천천히 읽으라'고 빈자리를 많이 주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천천히 읽는' 일은 빈자리가 많다고 그리 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독자가 알아서 읽을 일입니다. 지나치게 많이 둔 빈자리를 줄였다면 186쪽밖에 안 되는 이 책은 120~130쪽이면 넉넉한 책이 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책값도 8000원이 아닌 6000원쯤만 해도 넉넉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만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책읽기법을 말하는 책인 만큼, 책을 꾸밀 때에도 이런 대목에서 한 번 더 생각했다면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책일 될 뻔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낯선 일본 작가 이야기가 끝없이 나오는데,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한국에는 낯선 일본 작가 소개와 작품 세계' 해설(각주)이 줄어듭니다. 아직 우리 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일본 작가라 하더라도 생판 낯선 사람들 이야기가 많은 책이라면 좀더 친절을 베풀으셨다면 더 나았으리라 보아요.

***
책읽기가 아직 서툴거나 낯선 분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는 책입니다. 책읽는 맛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느낄 수 있는가를 말하는 한편,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을 듬뿍 안기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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