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쟁이 톨로키
자케스 음다 지음, 윤철희 옮김 / 검둥소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58 ― ‘차별(인종분리)’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만 있지 않다
 : 자케스 음다, 《곡쟁이 톨로키》



- 책이름 : 곡쟁이 톨로키
- 글쓴이 : 자케스 음다
- 옮긴이 : 윤철희
- 펴낸곳 : 검둥소(2008.6.17.)
- 책값 : 1만 원



 (1) 법이란 누가 누구한테


 ‘국립공원’에는 함부로 찻길을 낼 수 없을 뿐더러, 굴도 뚫어서는 안 됩니다. 국립공원 안쪽 자리에 집이 있는 분들은 집고치기도 거의 못하면서 살아갑니다. 법에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도로공사와 개발업자와 산업자원부 공무원 분들께서는 법그물을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특별법을 만들고 어쩌고 하면서 ‘북한산 관통도로’를 뚫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서울시와 정부 정책에 맞서서 환경운동에 뜻을 둔 이들이 막아서려고 했고, 이렇게 막아서려던 이들을 정부는 고발로 맞받아쳤습니다. 법원에서는 정부 손을 들어 주며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리도록 했습니다. 가난한 환경운동 활동가들 몸과 입과 손을 꽁꽁 옥죄려는 짓이었지요.

 2004년으로 떠올립니다. 그때 서울 종로 뒷골목 술집 한 곳에서는 ‘기금 모으는 하루술집’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들, 가난한 환경운동 활동가한테 내려진 벌금을 서로서로 조금씩 보태어 보자는 뜻으로 마련한 하루술집이었습니다. 술값을 아껴서 돈을 모으면 더 좋을 텐데, 그냥 돈을 내는 사람은 없고, 이렇게 술이라는 이음고리를 거쳐서 돈이 모아지게 됩니다. 어쩌면, 어차피 그리 벌금을 물어야 할 판이라면, 식 웃으면서 내주자는 마음으로, 속풀이도 하고 할 말도 다하는 자리로 술잔치를 마련하는 셈 아니냐 싶기도 합니다.


.. 노리아는 앞날이 두려웠다. 아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여유를 도대체 어떻게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수업료도 내야 할 것이고, 선생한테 구박받고 쫓겨나지 않으려면 교복 살 돈도 필요할 것이었다. 책도 사야 하고, 선생들이 항상 학부모에게 요구하는 학교 건축 기금도 내야 한다.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  (112쪽)


 지난 대통령선거 때, 인천에서 애쓰는 시민단체 분들은 ‘대통령 후보자 비방’이라는 죄목에 따라 법원에서 벌금 조치를 받았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BBK와 한미FTA투쟁 집회’를 열고 있었음에도, 다른 어느 곳에서도 ‘명예훼손 고발’이라든지 무어니 없었는데, ‘꼭 한 놈만 잡아서 팬다’는 잣대(?)에 따라서 인천 쪽 시민단체 활동가한테 쇠몽둥이가 내려졌어요. 지난해까지 50만 원 남짓 받으며 일하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올해는 60만 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한테 내려진 ‘후보자 비방 명예훼손 벌금’은 자그마치 1200만 원.

 벌금을 내지 못하면 징역을 살면서 깎아나가야 하는데, 하루에 3만 원씩 쳐 준다고 하니, 400일입니다. 문득, 엊그제 ‘죄없음’ 판결을 받은 큰 재벌 ㅇ 할아버지가 떠오릅니다. 그래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에 벌금이 1100억 원이라던데. 1100억 벌금을 헤아린다면,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집회를 하다가 물게 된 벌금 1200만 원은 껌값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풋.


.. 톨로키와 노리아는 택시 승강장에 다다를 때까지 말없이 걸었다. 그녀의 눈은 젖어드는 눈물 때문에 흐릿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잃어요. 톨로키 오빠, 아이들은 어머니들을 잃고요.” “죽음은 매일 우리랑 같이 살아. 정말이지 우리가 죽어 가는 방법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들이야.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들이 우리가 죽어 가는 방법들이라고 말해야 옳은 걸까?” ..  (131쪽)


 그러고 보면, 저도 ㅈ일보 기자 명예를 더럽혔다는 죄목에 따라서 벌금 200만 원을 문 적이 있습니다. 올 2월에. 그분 이름을 더럽힌 대목에서는 참으로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삶터를 빼앗기고 사람된 권리와 인격을 송두리째 짓밟힌 분들한테는 어느 누가 ‘명예훼손죄’를 받거나 배상이나 보상을 해 주지요?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하는 할머님들한테는 누가 잘못했다고 말을 하거나 뉘우치거나 갚음을 하지요?

 제가 살고 있는 동네를 놓고, 인천시장을 비롯해서 개발업자와 개발부서 공무원, 더욱이 문화 담당 공무원들마저도 ‘낙후된 도심지’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습니다. 하나도 둘도 셋도 아닌 수천 수만 사람이 깃들여 살고 있는 동네인데, 어느 누가 무슨 잣대로 함부로 ‘낙후’라느니 ‘지저분하다’라느니 ‘비위생’이라느니 하는 말을 뇌까릴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 동네가 ‘낙후’되었다 한다면, 우리 동네사람들이 여태껏 내 온 세금이 우리 동네를 북돋우는 데에 제대로 쓰인 일이 없기 때문이 아니온지요? 우리 동네가 ‘지저분하다’면, 우리 동네를 좀더 깨끗이 다스리는 데에 우리 세금이 알맞게 쓰인 일이 없던 탓이 아니온지요? 우리 동네가 ‘비위생’이라 한다면, 우리 동네가 ‘위생’을 찾도록 시설과 문화와 복지에 찬찬히 마음을 기울여 본 적이 없는 정책에 책임이 있지 않은지요?


.. 정착촌에 있는 판잣집 중에 닫혀 있는 판잣집은 하나도 없었다. 훔쳐 갈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샤드락처럼 부유한 사람들만이 둥지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새들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도둑질을 하러 자기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항상 경계를 해야만 했다 ..  (198쪽)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 나라에서 정치권력을 움켜쥔 분들께서는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도심지 달동네를 허물어 변두리로 내쫓았습니다. 1980년대로 접어들고 1990년대까지, 뒤이어 이 나라 정치힘을 휘두르는 분들께서는, ‘新도시’라는 이름으로 도심지 달동네에서 변두리로 내쫓긴 이들을 다시금 더 먼 바깥자리로 내몰았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를 맞이한 오늘날, 엎치락뒤치락 정권을 뺏고 빼앗긴 분들께서는 ‘new town’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사람들 삶터를 까뒤집으면서 돈없는 이들을 갈 곳 없는 떠돌이나 떨꺼둥이가 되도록 닦달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새마을’에서 ‘新도시’를 거쳐 ‘new town’이 되었을 뿐, 하나같이 ‘철거와 재개발’을 가리키는 다른 소리였을 뿐입니다. 또한 이 ‘철거와 재개발’은 돈있는 사람들 집터는 건드리지 않는 가운데, 돈없는 사람들 삶터를 깎아내려서 ‘그나마 낮은 집값’을 더 낮추어 내쫓은 다음 아파트를 세우며 집값을 껑충 올려서 서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정책을 꾸려 갑니다.


 (2) 발붙여 사는 곳은


 자전거를 타고 이웃 동네 마실을 합니다. 저녁 여섯 시로 접어드는 때임에도 햇볕이 뜨겁습니다. 땀이 비오듯 흘러내립니다.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자전거를 몰아 언덕길을 오르다가, 자전거에서 내려 골목 계단을 사진으로 찍다가, 그늘자리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합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말없이 살짝 웃고 “그려 그려” 하면서 인사를 받아 줍니다.

 벌써 방학을 맞이했는지, 아니면 학교 끝난 뒤인지, 동네 아이들은 셋씩 넷씩, 또는 대여섯씩, 또는 둘이 짝을 이루어서 골목을 가득 채웁니다.

 저는 창영동에 살고 아이들은 창영동과 맞닿은 이 송림동과 숭의3동과 금곡동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이웃한 동네임에도 모두들 자기 동네에서만 노닐 뿐 옆동네까지 가지는 않습니다. 어르신도 아이도 낯선 사진쟁이를 구경하면서 빤히 쳐다보고,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 쑥스러워서 사진기를 차마 들지 못하고 우물쭈물 인사만 하며 지나갑니다.


.. 호상은 경찰이 쏜 총알이 벽에 맞고 튀어나오는 바람에 안마당에서 소꿉장난을 하고 있던 아이가 맞았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많이 봐 왔다. 경찰이 쏜 총알은 타운십에 있는 집들 벽에만 맞으면 이상한 궤적을 그리며 튀어나왔고,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총알들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고 아이들을 향했다 … 그래서 (부모는) 경찰서로 갔지만 이런 말을 들었다. “아이들은 날마다 실종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들은 나가서 찾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거라는 말입니까?” “어디를 살피라는 거요? 이 아이들은 테러리스트 집단에 가담하려고 집에서 도망친 건데.” “그 애는 여섯 살밖에 안 됐어요.” “아주머니, 여섯 살짜리들이 우리한테 돌하고 화염병을 던져요.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당신네들이 좀더 규율 있게 자식 키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게 전부요.” 어린 사내아이의 시체는 초원 지대에서 발견됐다. 그 애는 거세되어 있었다 ..  (60쪽)


 옆지기하고 함께 거닐었다면 좀더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걸었을까 생각하다가는, 아직 한두 번 낯익히기를 했을 뿐이니, 더 다니면서 인사를 하고 만나야 자연스레 말문이 트이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어르신이나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걸며 동네 삶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곧 밀어닥칠 재개발 바람을 어떻게 맞이하며 앞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 나가실는지 여쭙고 싶기도 하지만, 공무원이며 통반장이며 개발업자 사람들이며 기자들이며 또 사진 찍는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며 번거롭게들 하기에, 여기에 한몫 거들고 싶지 않습니다.

 건너편으로 재능대학교가 보이고, 이 앞으로 골목집을 싹 쓸어낸 다음 아파트를 올려세우고 있는 공사터를 내다봅니다. 저곳 공사를 채 끝나지 않고 이곳까지 밀어내고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려나. 저렇게 높이 아파트를 올려세우면 아파트 수십만 채가 새로 지어지는 셈인데, 이 동네에 깃들일 수십만 사람이 있을까. 깃들일 사람이 있다손 치고, 그러면 비싼 분양값을 댈 만큼 주머니가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골목골목마다 크고작은 가게를 차리고 저잣거리에서 좌판을 깔고 서로서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온통 아파트숲으로 바뀐 데에서는 무슨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아파트값만큼이나 비싼 상자나 쇼핑센터에 자리를 얻을 돈이 될까. 지금 이 골목에 깃들인 사람들은 돈있는 사람들 가정부나 밥어미로, 또는 운전수나 뒤치다꺼리 하는 사람으로, 골프장 심부름꾼이나 풀뽑는 사람으로, 대형마트 계산원이나 점원으로 일하는 자리에서 ‘봉사’만 해야 하나.


.. 경찰관이 호통을 쳤다. 남자는 도난당한 옥수수 자루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고 했다. 그러자 경찰관이 화를 내면서 그의 불알을 걷어찼다. 그러고는 그를 의자에 묶고, 그의 손가락과 목에 전선을 부착했다. 경찰관은 벽에 있는 콘센트에 이 전선들을 연결했고, 남자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도 모르게 똥을 싸고 말았다. “그 농사꾼은 누구고, 그놈들이 묵고 있는 데는 어디야?” “솔직히, 나리, 저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네가 그놈한테 옥수수를 팔았잖아. 그러고도 그놈을 모른다고?” “저는 옥수수를 판 적이 없습니다, 나리.” ..  (81쪽)


 한참 골목을 거닐고 자전거로 달리면서 대문 안쪽에 퍽 우람하게 자란 대추나무를 봅니다. 대추나무는 가지를 집 바깥 골목 복판까지 드리웁니다. 푸르게 맺힌 열매가 보입니다. 한 달쯤? 두 달쯤? 얼마쯤 있으면 대추가 익으려나. 대추가 익을 무렵, 이 골목 사람들은 한두 알씩 맛을 볼 수 있으려나. 아무렴 나무임자 혼자서 다 따 버리지는 않을 테지.

 뒷날, 이 동네를 죄 개발해야 한다고 하면, 이 대추나무도 베어내 버릴까. 얌전히 파내어 고이 옮겨심어 주려나. 파내어 옮겨심기까지 돈이 많이 든다며, ‘대추야 돈 주고 사먹으면 되지’ 하면서 차갑게 꺾어버리려나.


.. 밤에는 부둣가나 기차역 벤치에서 잠을 잤다. 공중 화장실에서 몸을 씻었다. 그 시절에는 그와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도시 해변에 들어가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때에는 요즘 그가 하는 것처럼 바닷가에서 몸을 씻을 수가 없었다 … 정부는 사람들에게 집을 주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대신 자격이 있음을 입증하는 서류를 갖춘 사람들은 도시에서 팔십 킬로미터도 더 떨어진 타운십으로 이사를 해야만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팔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어떻게 일터에 올 수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의 직장과 가까운 곳에는 사방에 땅이 있었다. 그 땅들은 모두 백인 주민들을 위한 개발 지역으로 계획된 곳이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격을 입증하는 필수 서류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 존재 자체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그들의 고향이라고 정해진 곳들로 그들을 돌려보내는 일에만 열심이었다 ..  (163∼164쪽)


 우각재13길을 지나면서, 얕은 대문간 위로 촘촘히 박아 놓은 ‘깨진 병조각’을 봅니다. 대문간 바로 옆 담벽은 그리 높지 않은데, 여기에는 ‘깨진 병조각’을 심어 놓지 않았습니다. 도둑이 넘어오려 한다면, 대문간 위가 아닌 담벽을 타고 넘을 텐데, 이 동네에 뭘 훔치려고 찾아올 도둑이 있을까, 헤아려 보다가, 도둑은 많건 적건 돈만 볼 뿐, 이웃사람들 삶을 돌아보지 않지, 하는 생각이 뒤따릅니다.

 도둑이 걱정스러워 집집마다 자물쇠를 단단히 채우고, 창문에도 쇠로 된 창살을 붙입니다. 새로 지은 아파트는 단추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고, 첨단경비장비에 경비원까지.


.. 보석으로 몸을 장식하고 있는 여자가 노리아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노리아는 조용히 듣고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멀리 떨어졌다. 그녀는 할 수 있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고 느꼈다. 지도자들은 그녀를 향해 얘기만 했지, 아들의 죽음에 대해 그녀하고 논의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  “당신들, 우리 존경스러운 지도자 분들께 빵하고 양배추를 대접한다는 게 말이나 돼?” “당신들은 우리가 뭘 대접해 주기를 바란 건데요?” “우리 지도자 분들께 어울리는 음식이지. 너무 게을러서 고기랑 감자랑 쌀은 요리를 못하겠던가? 샐러드 만드는 것도 못하겠고?”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먹는 음식들만 그들에게 줄 수 있어요. 그들은 우리가 겪는 가난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만 해요. 저녁으로 팝하고 물만 먹는 처지인 우리가 고기에 쌀을 먹고 사는 사람들인 척 꾸밀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요. 정말이지 우리는 그들에게 잘 대접했어요. 평소에 우리는 빵도 못 먹잖아요.” ..  (237∼238쪽)


 어둑어둑해질 무렵, 자전거머리를 돌려 집으로 달립니다. 가는 길에 정보산업고등학교 뒷문 가에 자라는 해바라기 앞에 멈춰서 손짓으로 인사를 한 다음, 금곡슈퍼 앞에서 자라는 꽃들한테 눈짓으로 인사를 합니다.


 (3) 남아프리카와 《곡쟁이 톨로키》


 집으로 돌아와 후다닥 씻고 빨래 담가 놓은 다음 시민모임 회의에 가려고 서두릅니다. 손가방에 책 하나 챙겨듭니다. 여러 사람이 부지런히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한귀로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는 책을 읽습니다. 이야기는 길어져서 두 시간을 넘깁니다. 뒤풀이 자리가 있어 소주 한 병 들이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비누질을 해서 몸을 씻고 빨래 한 점을 한 다음, 책상맡에서 책 세 권을 집어서 잠자리에 놓습니다. 한 권 한 권 조금씩 펼치자니 졸음이 쏟아지고, 이내 잠듭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읽던 책을 다시 들춥니다. 여러 해 앞서 사두고 읽다가 그만둔 책을 다시 펼치는데, 읽는 내내 물음표를 자꾸 찍습니다. 이런 철없는 책을 낸 출판사 일꾼들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느끼기를 바랄까, 하는 생각이 잇따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사람들을 ‘야만인’처럼 여기는 이야기를 ‘뒤로 가면 글쓴이 스스로 자기가 철이 없었다고 깨달으며 달라지려나’ 하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읽는 저도 참 철이 없습니다.

 내가 참 철없는 책에 돈을 쏟았군, 하고 생각해 보았자 어쩔 수 없는 노릇. 읽던 책을 덮고 다른 책을 집어서 펼칩니다. 삼백 해쯤 앞서 우리 나라 어느 지식인이 적바림한 글입니다. 양반집 사람이라 한문으로 쓴 글을 요샛말로 옮긴 책입니다. 훈민정음이 있던 때에 한문으로 글을 썼으니, 한문을 아는 사람한테 읽히려고, 또는 한문을 아는 뒷사람한테 물려주려고 썼겠지요. 이분은 뒷사람한테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서 이와 같은 글을 남겼나, 생각하면서 읽는데, 지루해서 하품이 나옵니다. 그때로서는 훌륭한 선비였다고 하지만, 그때로서 훌륭했던 분이라 해도 세월이 흐른 뒤까지도 우리가 훌륭함을 느끼기는 어렵기도 하군요.


.. 톨로키는 그들이 방문하는 모든 판잣집에서 여자들이 가만히 있는 경우는 결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들은 항상 손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아이들을 야단치고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빨래를 하고 있었다. 판잣집 바닥과 땅을 쓸고 있었다. 마분지와 플라스틱으로 판잣집에 난 구멍을 막고 있었다. 빨래를 빨랫줄에 걸면서 이웃들과 시끌벅적하게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아니면 자기네 아이를 때린 아이들 때문에 이웃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또는 그들의 일자리인, 주인마님의 주방이 있는 도시행 택시를 잡기 위해 택시 승강장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항상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들은 끊임없이 몸을 놀리고 있었다. 반면 남자들은 시시하고 공허한 자존심으로 자신들의 머리를 흐리멍덩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 그러고 나서 밤이 되면 음식이 저절로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처럼 저녁이 차려져 있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다 잠들었다는 믿음이 생기면, 남자들은 쾌락을 얻고 싶어했다 ..  (239∼240쪽)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으나 고향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더는 발붙이지 못하고 미국으로 망명을 가야 했던 사람이 쓴 《곡쟁이 톨로키》를 읽어냅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글쓴이는 고향나라로 돌아가고 싶을까. 고향나라에서는 자기처럼 떠나간 사람을 다시 불러 줄까. 지금 깃들여 사는 나라에서는 자유나 평화나 평등을 누릴 수 있을까. 고향나라에서 따돌림과 푸대접과 괴롭힘이 사라진다면 글쓴이는 고향나라로 돌아가고자 할까.


.. 캠프에 사는 사람들은 유대 관계가 돈독한 공동체다. 그들은 서로를 알았다. 한편, 그는 사람들이 ‘불법 거주자’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종종 물었다. “우리 땅, 우리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불법 거주자일 수 있는가? 바다를 가로질러 우리 땅을 빼앗은 자들이야말로 불법 거주자다.” ..  (62쪽)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에 따른 차별)’가 있었으나, 이 ‘아파르트헤이트’보다 무서운 것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돈, 힘, 무리.

 돈은 마을사람 사이를 쪼개 놓을 뿐더러 같은 겨레나 식구나 동무를 갈라 놓습니다. 힘은 살갗 하얀 사람과 검은 사람 사이를 나눌 뿐 아니라, 살갗 같은 사람들끼리도 계급을 나누며 푸대접받는 이는 또다른 굴레를 뒤집어쓰게 합니다. 무리는 사랑이 아닌 욕심을, 나눔이 아닌 빼앗음을 불러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떨쳐낸다고 한들, 돈을 떨치지 못하고 힘을 떨치지 못하며, 무리를 떨치지 못한다면, 허울좋은 이름으로 ‘인종분리 차별’은 없다고 외칠 수 있을지 모르나, 사람들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 “나머지는 말이야, 노리아! 네폴로브호드웨가 제안한 대로 팔아 버려야 할까 봐. 마딤브하자의 하치장(고아원)에 돈을 줄 수 있게.” “그냥 여기 놔둬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웃게 해 주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이것들 주위에 커다란 판잣집을 지어서 아이들이 마음에 내킬 때면 언제든 와서 웃을 수 있게 해 주는 거예요.” ..  (289∼290쪽)


 나이든 분들은 으레 ‘한국이 배고픔에서 벗어난 데에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경제개발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만, 경제개발을 했다고 하더라도(참말 했는지 안 했는지 알 노릇은 없습니다만) 우리 스스로 사랑을 버리고 돈을 좇는다면, 나눔을 내팽개치고 힘을 바란다면, 믿음을 깔아뭉개고 무리를 따른다면, 한국 사회는 ‘먹고살기 팍팍하던 때’하고 조금도 달라질 대목이 없습니다.

 옷차림은 번듯해졌는지 모르나 옷값 대느라 쩔쩔매고, 반찬 가짓수가 늘었는지 모르나 밥값 대느라 힘겨우며, 넓고 시설 갖춘 아파트에 살는지 모르나 관리비에 학원비 버느라 등골이 휩니다. ‘좋아졌네 나아졌네’ 하지만, 끝없이 서로 겨루고 다투어 올라서야만 하는 노릇이라면, ‘나빠졌네 죽겠네’ 꼴입니다.

 희망? 꿈? 앞날? 아이들? 글쎄, 좋아서 그리도록 하지 못하고 입시미술만 있는데. 좋아서 글쓰도록 하지 못하고 입시논술만 있는데. 좋아서 가르치지 못하고 입시교육만 있는데. 쓸모가 있어서 배우지 못하고 입시영어만 있는데.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인데. 좋아서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아랫도리 흐뭇하려고 만나는 사람인데. 좋아서 마시는 술이 아니라 그저 퍼넣는 술인데.

 무엇이 사람이고 무엇이 삶이며 무엇이 목숨인지를 잊어버린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사람과 삶과 목숨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믿음이며 무엇이 나눔인지를 내팽개친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물려주지 못합니다. 무엇이 착함이고 무엇이 아름다움이며 무엇이 맑음인지를 팔아치운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착함과 아름다움과 맑음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어른한테 배우고 물려받으며 보는 것이란, 오로지 돈벌기와 돈굴리기와 돈쓰기입니다. 계급과 차별과 겉치레를 낳는 돈만 배우고 물려받고 바라봅니다. (4341.7.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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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55 : 김수정 ④ 1남 4녀 막순이



 어제(7/2) 인천 답동성당에서 ‘시국미사’를 올리고 ‘길거리 걷기’를 했습니다. 6월 30일에 서울 시청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이름으로 시국미사를 올린 뒤 이틀 만입니다. 인천이라는 곳은 온통 서울에서 하는 일에 끄달리기만 하고, 인천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마음이나 힘을 못 쏟기 마련이었습니다. ‘나라에 일어나는 큰일’에는 힘을 보태곤 하면서도, 정작 ‘인천에서 일어나는 큰일’에는 바쁘고 힘들다며 모르는 척하기 일쑤였습니다. 인천사람이면서 인천에서 일하는 사람보다는,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일하고 놀고 사람 만나는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인천은 고유하거나 홀로설 만한 힘이나 뜻도 모자라서, 다른 어느 도시보다 시장 힘이 크고 공무원 콧대가 높습니다. 이런 인천에서 삼백이 조금 넘는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가 중심이 되어 시국미사를 올리고 길거리 걷기를 했습니다. 답동성당부터 동인천역까지 찻길 한쪽을 차지하면서 이만한 사람들이 걸어가며 무언가를 외치기는 스물한 해 만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시국미사를 마칠 즈음, 신부님은 “답동성당 문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사절한다는 쪽지를 내다 붙였습니다. 여러분 댁에도 붙이셨습니까?” 하고 물은 뒤, 당신 본당인 강화섬 마니산성당이 있는 마을에는 신문이 조선일보 한 가지만 들어온다며, 어쩔 수 없이 자기도 이 신문을 보는데, 여섯 달 만에 조선일보 논조와 똑같이 생각하며 살게 되더랍니다. 그래서 그 성당에서 조선일보를 끊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조중동’이라고 하는 그 신문들이 얼마나 나쁘기에 신부님이 이렇게 이야기할까 싶고, 그렇게 나쁘다는 신문인데 여태껏 성당에서는 안 끊고 있었음이 놀랍고, 그렇게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고 하는데에도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그 신문들을 보고 있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설마 기자들이 나쁘겠습니까. 신문들이 나쁘겠습니까. 오랫동안 제도권 교육에 길들면서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매무새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내로라하는 대학교를 마치고 나라밖에서 공부도 하고 머리에는 지식도 많으나, 이 모두를 아름답게 어우러 내지 못하며 이웃과 나누는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 탓 아니겠습니까.


 “자만하지 마시고,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하셔서 존경받는 배우가 되세요.(3권 182쪽)” 책꽂이에서 김수정 님 만화 《1남 4녀 막순이 (1∼3)》(서울문화사,1990)를 꺼냅니다. 그동안 삼백 번도 더 보아서 그림 하나 얼굴빛 하나 대사 하나 환하게 알지만, 다시 넘겨보면서도 눈물이 핑 돌고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김수정 님으로서는 만화쟁이로 더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울던 1980년에, 이 만화를 그려내며 비로소 ‘김수정’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립니다. 그리고 만화 맨 마지막에, 하숙하며 살던 ‘수복’ 씨가 영화배우로 뜻을 이룬 일을 기뻐하는 집임자 아주머니 말 한 마디처럼, 김수정 님 당신도 ‘우러름받는’ 사람이 되고자 부지런히 땀을 흘렸지 싶습니다. 만화를 그려 돈을 벌고 이름을 날리고 힘을 펼치기보다, 사랑받을수록 더 땀흘리고 다리품 파는 사람이 되고자. (4341.7.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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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54 : 김수정 ③ 아리아리 동동



 오르지 않는 물건값이 없습니다. 라면 한 봉지 값은 어느새 800원이 되고, 얼음과자 하나도 700원입니다. 시내버스를 타면 천 원이고, 전철을 타고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자면 적어도 1500원은 찍힙니다. 웬만한 낱권책 하나가 만오천 원이 넘은 지는 벌써 오래된 일. 그나마 곡식과 푸성귀 값은 거의 제자리인데, 곡식값이 제자리인 만큼,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벌이는 훨씬 형편없어진다는 소리입니다.


 물건값 오르는 빠르기에 발맞추어 집값이 오릅니다. 집값이 오르니 세들어 사는 사람들 달삯도 오릅니다. 어느 하나 오르지 않는 값이 없기 때문에,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단합니다. 장사하는 분들은 자기가 파는 값도 올림직하나, 그러다가는 서로서로 고달플 뿐더러, 물건을 한꺼번에 어마어마하게 쌓아 놓고 깎아팔기를 하는 공룡기업 가게에 손님을 빼앗길까 걱정되어 끙끙 앓습니다.


 집은 끊임없이 지어지는데, 집없는 사람이 깃들어 살아갈 집으로 짓지 않고, 집있는 사람이 덤으로 여러 채 더 사들여서 달삯 받아 방구석에서 돈굴리기 할 수 있는 부동산으로 지어집니다. 사람 살 집이 아닌 돈굴리기 부동산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집(아파트)은 오랫동안 간수하지 않습니다. 열 해쯤 지나면 슬슬 재개발 입김을 부추기고, 스무 해쯤 지나면 으레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하는 듯 여깁니다. 또, 이렇게 허물고 다시 지어야 집값을 껑충 올릴 수 있어서 좋다고 법석입니다. 정작 자기가 깃들이며 살 집이거나 동네라 한다면, 함부로 재개발을 밀어붙이지 않을 텐데.


 따지고 보면, 집 한 채 자기 이름으로 올려놓고 살아가는 사람 숫자보다는, 다른 이가 돈굴리기하려고 장만한 집에 깃들어 사는 사람 숫자가 훨씬 많을 터이나, 힘겹거나 어려운 사람들 자리에서 정책이 꾸려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김수정 님이 1985년에 그렸던 만화 《아리아리 동동》(서울문화사,1990)을 펼칩니다. “추운데 왜 나와 있니?” “누나 기다렸어.” “점심밥은 잘 챙겨 먹었니?” “응.” “잘했다.” “오늘은 호떡 안 사 왔어?” “매번 사 올 수 있니? 돈 아껴 써야지.” “에이.” “누나가 김치찌개 맛있게 끓여서 밥해 줄게.” …… “커튼 닫을까?” “아니.” “바람이 찬데.” “엄마도 저 별을 보고 계실까?” “그럼.” “엄마 많이 나았어?” “그래, 희원이 보고 싶다시더라.” “나도 엄마 보고 싶어.” “백 밤만 자면 오실 거야.” “왜 병원에선 우리 같은 꼬마는 못 오게 해?” “병원 규칙 때문이지.” …… (2권 13∼27쪽).


 만화에 나오는 ‘동동’은 나어린 저승사자입니다. 저승에서 뒷간 똥을 똥바가지로 똥장군에 퍼담아 치우는 일을 하는 형이 심부름을 시켜서 ‘죽을 때가 다가온 사람을 데려오라는’ 일을 맡습니다. 그런데 동동은 어느 한 번도 시킨 대로 사람들을 데려오지 못합니다. 일찌감치 이승에 내려가서 ‘데려갈 사람’을 지켜보며 기다리지만, 막상 데려갈 사람은 안 데려가거나 다른 저승사자가 데려가는 사람을 빼돌리기도 합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이 땅을 떠나기 마련이라, 동동과 함께 저승에 가야 할 텐데, 동동 눈에 비친 서민들을 쉬 저승으로 불러들이기에는 가슴이 짠했는지 몰라요. 아직 이승에서 더 땀흘려 빛을 보고 열매 맺을 일이 많다고 느꼈는지 모르고요. (4341.6.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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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행진 - 야누시 코르차크 양철북 인물 이야기 1
강무홍 지음, 최혜영 그림 / 양철북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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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사랑한다면,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셔요
 [그림책이 좋다 49] 강무홍 + 최혜영, 《천사들의 행진》(야누슈 코르착)



- 책이름 : 천사들의 행진
- 글 : 강무홍
- 그림 : 최혜영
- 펴낸곳 : 양철북(2008.6.20.)
- 책값 : 10800원



 (1) 사람


 저는 올 5월 25일, 천주교 인천교구 송림동성당에서 ‘정하상 바오로’라는 덧이
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어느 한 가지 종교에 몸을 맡기지 말고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저로서는 세례를 받았지만, 몸이나 마음은 오롯이 천주교 하느님한테만 가 있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은 한 분입니다. 이 한 분 하느님은 우리 삶 어느 자리에나 함께 있습니다. 기쁜 자리, 슬픈 자리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가 이웃을 우러르는 자리뿐 아니라, 내가 마음속으로 이웃을 깎아내리는 자리에도 있습니다. 내가 몸바쳐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손길 나누는 자리에도 있으나, 내 힘이 닿지 않아 이웃과 식구한테 도움을 받는 자리에도 있습니다. 내가 촛불 하나 들고 길거리에 나간다면 이 자리에 함께 있는 한편, 집구석에서 홀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면,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아서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기도 합니다.


.. 그(야누슈 코르착)는 몸을 수그리고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이의 눈빛은 어두웠습니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간단 말이니? 여기가 내 집인데.” 한순간 아이의 얼굴에 안도의 웃음이 환히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몸을 기댔습니다 ..  (4쪽)


 더 나은 종교, 더 알맞는 종교, 더 열린 종교가 있을까는 모르겠습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느 한 종교에 마음과 몸을 맡기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 종교힘이라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세례를 받고도 성경에 적힌, 또는 성경에 적히지 않은 하느님 삶을 고이 따르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이분은 우리 곁에 함께 살아 있는 하느님이라고 느낍니다. 세례를 받고 더 높은 공부와 마음닦이를 거쳤다고 하나, 하느님 삶과 함께 걸어가지 않는다면, 이분은 우리를 시험에 빠지게 하거나 괴롭히는 못난이가 아니냐 생각합니다.

 저와 옆지기 두 사람은, 세상에서 돈이 된다고 하는 일에 그리 몸을 바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우리로서는 우리 살림살이를 조금이나마 넉넉하게 해 주는 돈을 얻으면서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돈이 우리 삶을 얼마나 채워 주고 있는가도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을 넉넉하게 돌보아 주고 있는 쪽이 아니라면, 아주 적은 돈밖에 얻지 못하더라도 이 길로 걸어가자고 다짐합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기쁨을 찾으면서 먹고사는 돈까지 거둘 수 있으면 가장 나을 텐데, 이런 길은 아직 못 찾기도 했지만, 어쩌면 없을지 모릅니다.

 옆지기는 늘 이야기합니다. 우리들은 산에서 살아야 한다고. 산이 아니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 한다고. 그러나 지금 우리 둘은 산에서 못 삽니다. 들어갈 산이 없는 한국이기 때문입니다. 오두막이 못 되고 굴이 못 되어도 비와 해를 가릴 곳을 얻어서 산나물과 감자로 먹고살아도 너끈하지만, 돈과 땅이 없는 형편으로는 산에 깃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면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 할 텐데, 저마다 제 이웃을 자기 살갗으로 받아들이며 함께하기보다는 ‘자기한테 벌이가 될 대상’으로 여기게 되는 터전이 자꾸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웃에 집이 있지만 서로서로 얼마나 이웃으로 느끼고 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한목소리로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 배부른 소리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먹고살기를 채우기만 하면 우리 삶이 그길로 모두 끝인지, 먹고살기를 채우는 길이 우리가 갈 가장 즐겁고 아름다운 길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달에 천만 원을 벌어서 오백만 원을 사회에 내놓아야 아름다움일는지, 한 달에 오십만 원 벌어서 오천 원 겨우 사회에 내놓으면 아름다움이 아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병원이 끝나면, 그(야누슈 코르착)는 거리의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러고는 약도 쓰지 못하고 앓고 있는 아이들을 정성껏 치료하고 돌봐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유능한 의사도 ‘가난’을 치료할 수는 없었습니다. 거리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굶어죽어 가는데도, 아무도 돌봐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  (10쪽)


 지금 이 나라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가르치는 일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동무를 사귀고, 어버이를 모시는 모든 사람 사이는 무엇을 바라보며 어디로 흐르는가 알쏭달쏭합니다. 아이들을 낳아서 기를 때, 아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는가요. 아이들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어떤 매무새와 넋으로 스스로 제 살 길을 찾아가기를 바라고 있는가요. 우리 어버이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먹이고, 무엇을 보이고, 무엇을 나누며, 누구와 이웃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가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이웃사랑을 물려줄 수 있습니까. 자연 삶터를 아끼지 않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자연사랑을 이어줄 수 있습니까. 돈사랑이 아닌 사람사랑과 마음사랑으로 살아가지 않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돈벌이 말고 무엇을 들려줄 수 있습니까. 두 다리로 걷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우리 사는 터전과 마을과 나라가 어떻게 아름다운가를 이야기할 수 없겠지요. 옷이며 이불이며 손으로 빨아서 고이 아껴서 입고 덮는 기쁨을 맛보지 못한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어떤 땀방울을 건넬 수 있습니까.

 잠자리에 들기 앞서 성경 몇 대목을 읽으며, 기도글을 읊으며, 하느님을 따르며 살다가 떠난 훌륭한 넋들 발자취가 담긴 책을 헤아리면서, 슬픈 마음을 누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읽어서 ‘참 훌륭하다’고 느낀 그분들 걸음걸이며 발자국은, 우리가 지식으로 머리에 집어넣을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몸으로 껴안으면서 살아갈 다짐이자 몸가짐이 아니온지요. 그럴싸할 뿐 아니라, 남들 앞에서 우쭐거리거나 자랑할 수 있는 시커멓고 큰 차가 아니라, 기름 적게 먹고 자원 덜 써서 만든 야무지고 값싼 자동차를 몰면서 ‘아낀 돈으로는, 우리 사회 얼거리에서 가난을 헤어나기 어려운 이웃’을 손수 알아보고 찾아내어 도와주는 손길을 내밀어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골프장에서 휘두를 골프채 성능과 값을 알아보는 책자를 넘길 그 시간에, 골프장 하나 짓는 동안 무너지는 우리 자연 삶터와 시골사람 삶터를 돌아볼 뿐더러, 자기가 참말 운동을 하는지 지랄을 하는지를 곱씹어 볼 ‘홀로 생각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는지요.


.. 2차대전 때 폴란드의 한 교육학자는 그가 데리고 있던 기숙사의 아이들이 나치스의 집단학살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자, “아이들을 1분 간도 방치할 수 없다”면서 자기를 구조해 주려는 손길도 뿌리치고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함께 끌려가 학살당했다. 오늘날 우리 어린이들은 물론 그런 상황과는 다르다. 그러나 어른들에 의해 아이들이 스스로의 영토를 잃고 쫓겨나 짓밟히고 비뚤어져 병든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사실은, 나날이 우리들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폴란드의 그 학자의 백 분의 일의 양심이라도 가지고서 이 글을 썼는지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죄스럽다 ..  《이오덕-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청년사,1977) 머리말


 1977년에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책을 낸 이오덕 님은 ‘폴란드사람 야누슈 코르착’ 이야기를 당신 책 머리말에 적습니다. 이 머리말에 나온 ‘폴란드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 사람은 오래도록 없었습니다. 이 폴란드사람 책은 199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국말로 옮겨졌습니다(그러나 이 첫 책은 거의 알아보는 사람이 없이 사그라들었고,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똑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살아남은 책은 이번에 그림책 《천사들의 행진》을 펴내 준 ‘양철북’에서 2002년에 내놓은 《아이들》 하나뿐입니다.). 1979년을 유네스코에서 ‘세계아동의 해’로 삼아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세계 아동의 해 기념 어린이그림 출품’을 했으면서도, 한국땅 어느 누구도 1979년이 왜 ‘세계 아동의 해’가 되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1979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이해 ‘세계 아동의 해’ 기념우표까지 펴낸 한국이지만, 이 기념우표가 왜 나왔는지를 깨닫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이오덕 님은 ‘전쟁 문학’을 다룬 어느 책 하나를 읽다가 몇 쪽에 걸쳐서 나온 폴란드사람 이야기에 크게 뭉클해서 당신 책 머리말에도 그분 이야기를 적었지만, 1979년 그해에, 한국땅 미술학원에서는 ‘세계 어린이 그림대회에 입상시킬 작품을 보낼’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어쩌면, 야누슈 코르착이라고 하는 이름은 ‘미국과 일본’에는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밖 훌륭한 사람들 이야기나 책을 부지런히 번역해서 팔아먹고(?) 있는 한국 사회와 책마을 흐름을 돌이켜본다면, ‘미국과 일본에는 소개가 잘 안 되고 있는’ 야누슈 코르착이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리 대단하고 놀랍다고 할 만하다는 이야기가 가득하고, 이리하여 1979년이 ‘야누슈 코르착이 태어난 100돌이라고 해서 이해를 기리는 온갖 일을 했음’에도, 미국과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믿고 언제나 함께하면서 웃고 우는 교육자’ 이야기를 한국사람들이 알아보고 배우고 깨닫고 곰삭이기는 힘들었구나 싶기도 합니다.





 (2) 책


 충청남도 홍성에 자리한 〈풀무학교〉에서 일하는 홍순명 선생님은 1987년에 《린하르트와 겔트루트》(광개토)라는 책을 우리 말로 옮겼습니다. 1962년에 《나라 건지는 교육》(정음사)이라는 책을 펴낸 최현배 님은 책 끝에 〈베스달로찌이의 교육 사상〉이라는 논문을 싣습니다. 《나라 건지는 교육》은 1975년에 정음문고로 다시 나오는데, 이 책 끝에 실린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때에 쓴 ‘페스탈로찌를 연구한’ 한국사람이 쓴 첫 글입니다. 그러나 페스탈로찌라는 분 삶과 생각이 담긴 책은 1960년에 이르러 왕학수 님이 낸 《세계교육명저총선 (1)》(세계교육명저발간위원회)에서 처음으로 한국말로 옮겨졌고, 이때 〈숨은이의 저녁놀〉이나 〈게르트루트는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쳤나〉가 소개됩니다. 뒷날 일본사람이 연구한 페스탈로찌 논문이 신구문화사 손바닥책으로 옮겨지기도 했지만, 페스탈로찌가 써낸 수많은 글 가운데 사람들이 널리 읽을 만한 책은 좀처럼 옮겨지지 못했고, 고려대학교 김정환 교수가 옮긴 《은자의 황혼》이 아직까지도 ‘딱 하나 판이 끊어지지 않고 겨우 읽히’고 있을 뿐입니다. 1949년에 박지영이라는 분이 《페스타롯찌》(대한교육연합회)라는 전기를 써냈는데, 일제강점기 때 최현배 님을 비롯해 뜻있는 분들이 페스탈로찌 연구를 하며 이분 교육얼을 한국땅에 이어심어 보고자 무던히 땀을 흘리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러나 고려대 김정환 교수가 애써서 《페스탈로찌의 생애와 사상》(박영사,1974)과 《페스탈로찌의 교육사상》(고려대학교 출판부,1975)을 쓰고, 《페스탈로찌의 교육철학》(고려대학교 출판부,1995)까지 써냈음에도, 대학교에서 교육학을 배우는 이들이 교재로 스쳐 지나가듯 살필 뿐, 삶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로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데도, 김정환 교수는 《페스탈로치가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편지》(서원,1989)를 우리 말로 옮기고, 《페스탈로찌의 실천》(젊은날,1991)을 우리 말로 옮기면서, ‘허울뿐인 이름으로 남는 위인전 주인공’이 아닌, ‘우리 삶을 우리 스스로 돌아보며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이슬떨이’로 페스탈로찌가 훌륭한 사람임을 깨달아, 우리들한테 이분 뜻과 생각을 나누어 주고자 애썼습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페스탈로찌 님이 쓴 손꼽히는 훌륭한 책 가운데 하나인 《린하르트와 겔트루트》가 1987년에 옮겨졌으니 무척 축하하고 기릴 만한 일이었으나, 이 번역책을 눈여겨보거나 알아챈 교육학자나 교육학과 교수나 초중고등학교 교사는 몹시 드물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나라 교육은 ‘아이 넋과 얼과 삶을 키우는’ 교육이 아니라 ‘교과서 진도를 학기에 따라서 제대로 끝마쳐서 시험점수 잘 맞도록 하고 더 높다는 대학교에 보내도록 하는’ 교육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페스탈로찌가 애쓴 끝에 생긴 초등학교’이면서도 초등교육이 이토록 끔찍하게 무너질 수야 없습니다. 더더구나 초등학교 문을 열게 한 어른이 무슨 마음으로 초등학교를 열었는가를 찬찬히 헤아리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없어요.

 초등학교 아이들한테조차 착하고 따뜻한 마음씨가 아닌, 더 많은 영어 지식과 한자 지식을 쑤셔넣는 데다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영어교실 짓는 데에 바치는 모습을 살핀다면, 한국에서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고기짐승 살찌우기’와 다를 바 없다고 느낍니다.


.. 그(야누슈 코르착)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되물었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의 아이가 아프고, 불행하고, 위험에 처해 있다면, 당신은 그 아이를 버리겠습니까? 그럴 수 없겠지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200명이나 되는 우리 아이들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는 담담하게 덧붙였습니다. “군인들에게 아이들을 밀지 말라고 해 주십시오. 줄을 서서 갈 테니까, 아이들이 놀라거나 겁에 질리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  (32쪽)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자 한다면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즐겨 읽는 어린이책을 살펴보지 못할 뿐더러, 어린이 그림책을 헤아리지 못하는 초등학교 교사요 교대 학생입니다.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고자 한다면서,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즐겨 읽는 문학책과 만화책을 거들떠보지 못할 뿐더러, 이 푸름이들이 마음밭을 살찌울 책이 무엇인가를 살피지 못하는 중고등학교 교사요 사범대 학생입니다. 대학교 교수를 꿈꾼다고 하면서 대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이 우리 세상을 어떻게 읽어내도록 이끌까를 굽어살피면서 자기부터 마음자리 다스릴 책을 가까이하지 못하는 시간강사요 조교수입니다.

 그러고 보면, 교사들을 탓하기 앞서, 아이들 어버이 된 우리들 여느 어른들부터도, ‘아이를 낳기는 하지’만 ‘아이가 어떤 책을 언제 어떻게 즐기는가’를 돌아보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 걸맞는 책이 무엇인지, 아이 마음을 가꾸거나 북돋울 책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입니다. 책뿐 아니라 삶에서도, 어떤 놀이와 일로 아이들 몸을 튼튼하게 추슬러 나가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못하는 어른들입니다.


.. 기차 안은 가스실로 끌려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사람들한테 떠밀려 흩어지지 않도록 그의 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습니다. 그의 품에 안긴 가장 어린 아이가 먼 미래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 나 농부가 될 거예요. 그래서 밀을 많이 기를 거예요. 밀이 자라면 언니들이랑 오빠들한테 줄 거예요. 할아버지한테도 줄 거예요, 아주 많이.” ..  (39쪽)


 누구나 입으로는, “나는 우리 아이를 사랑해요.” 하고 말합니다. 말하곤 합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또 몸으로 바라보는 어른들 삶과 매무새를 살피면, 오늘날 그 어떤 한국 어버이들이 “우리 아이를 사랑해요” 하는 말이 절로 나오도록 살아가고 있는가를 모르겠습니다. 입으로 사랑한다고 읊는다고 하여 참말 사랑하고 있겠습니까. 입으로 나라사랑 안 하는 이가 누가 있으며, 글로 겨레사랑 안 한다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미친 소고기도 한국 경제를 사랑해서 들여온다고 하는 판입니다. 지난날 미국쌀을 사들일 때에도 한국 경제와 농촌을 사랑해서 들여온다고 했습니다. 미군범죄가 끊이지 않아도 범죄자 미군을 벌주지 않는 한국정부는 이 나라 사람들을 걱정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밀어넣는 어느 교사가 “우리는 학생을 사랑 안 해” 하고 말하든가요. 유전자를 건드린 곡식으로 먹을거리를 만드는 식품회사 회장님들은 당신 아이들한테 당신 회사 먹을거리를 기꺼이 내놓을까요. 베스킨라빈스 창업주는 자기가 만든 얼음과자를 자기 식구들한테 안 먹인다고 하면서, 자기 식구 아닌 사람한테는 엄청나게 팔아치워 떼돈을 법니다. 아이들 밥상에 오르는 먹을거리가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어버이들조차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으로 실어나르고자 자가용을 몰면서 이 땅을 더럽힙니다. 앞과 뒤가 맞는 일을 우리 어른 스스로 안 하고 있는 가운데, 아이들보고는 ‘공부 잘하라’는 말만 되뇌입니다. 아이들이 해야 할 공부가 무엇이기에, 아이들이 공부 잘하면 아이와 우리 모두한테 무엇이 도움이 되기에.




 (3) 코르착


 그림책 《천사들의 행진》과 함께 나라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야누슈 코르착(야누쉬 코르착/야누스 코르착)’ 님 책은 모두 일곱 가지입니다.


① 새책방에서
《노영희 옮김-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양철북,2002)
② 헌책방에서
《송순재,안미현 옮김-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가》(내일을여는책,2002)
《김신애,송순재 옮김-홀로 하나님과 함께》(내일을여는책,2001)
《송순재,안미현 옮김-아이들을 변호하라》(내일을여는책,2000/1998)
《송순재,손성현 옮김-안톤 카이투스의 모험》(내일을여는책,2000)
《김선애 옮김-아이들이 심판하는 나라 (1)∼(2)》(시공사,1996)



 시공사에서는 ‘야누스 코르착’으로 적고, 내일을여는책에서는 ‘야누쉬 코르착’으로 적었으며, 양철북에서는 ‘야누슈 코르착’으로 적습니다. 《안톤 카이투스의 모험》과 《아이들이 심판하는 나라》는 이야기책이고, 《아이들을 변호하라》와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가》는 교사와 어버이한테 읽히고자 쓴 책이며, 《홀로 하나님과 함께》는 기도책입니다.

 그림책 《천사들의 행진》은 우리들 누구한테나 마음속에 천사가 깃들어 있으나, 천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깨우쳐 주는 작은 천사(어린이)한테 깨우침을 받고는 자기 스스로 작은 천사와 손 잡고 살아가고자 애썼던 늙은 천사가 자기 길을 어떻게 걸어갔는가를 퍽 어둡게 느껴지는 그림결로 보여줍니다.

 나라가 어두웠고 사회가 어두웠으며 아이들 앞날이 어두웠습니다. 허울뿐인 ‘보호’구역에서 ‘보호’가 아닌 ‘감시’와 ‘따돌림’에 들볶이면서 굶주려야 한 사람들 삶이었으니, 이와 같은 그림결이 그때 그 사람 그 모습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데에 어울리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어두웠으니 어두웠지요. 어둡다고 했으니 어두웠어요. 어두운 곳에서 몸둘 곳을 찾으려 했지만 빛줄기를 만나기 힘들었습니다.

 밖에는 없는 빛이었고, 밖에서 빛을 뿌려 주려는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괜히 자그마한 빛이라도 조금 뿌렸다가는 덩달아 붙잡혀 괴로운 굴레에 붙잡힐 수 있었기에 더 몸을 사리기도 했습니다.

 이러는 동안에도 코르착은 아이들 가슴마다 빛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버려진 아이들’을 꾸준히 고아원에 받아들였고, 먹을거리가 모자랐어도 모자란 대로 서로 더 나누면서 살았습니다. 나치가 아이들을 붙잡아 가스실로 보내기 앞서, 틀림없이 코르착과 아이들은 어디론가 내뺄 수 있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러나 코르착도 아이들도 ‘보호’ 아닌 보호구역에 머물렀습니다. 그러고는 다 함께 손 잡고 노래 부르면서 가스실로 갔습니다. 아이들과 코르착과 스테파니아 선생님 모두한테는 가슴에 고이 안고 있는 빛이 있었거든요. 이 빛으로 아이들과 코르착과 스테파니아 모두 웃고 노래하며 어깨동무를 하며 지냈어요. 그리고 이 빛은 코르착네 고아원 둘레에 빛을 선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코르착뿐 아니라 스테파니아 선생님과 이백이 넘는 아이들만 걱정없이 지낼 쉼터가 아닌, 이 모두가 함께 깃든 곳에 이 모두한테 이웃인 다른 사람들까지도 가슴에 빛을 안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꾸면서, 그곳 ‘보호구역’에 남았고, ‘가스실 가는 기차’를 탔고, 마지막 때까지도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들한테 이야기 한 자락 건넸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죽음이 닥친 그때에, 자기들을 총칼로 윽박지르는 그 나치 군인들한테까지도 사랑을 나누어 주려고 한 코르착이요 스테파니아요 아이들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메마른 가슴에 환한 꽃을 피워 주기를 꿈꾸었고, 거친 마음에 살가운 열매를 맺워 주기를 바랐으며, 피눈물도 없이 된 그 몸뚱이에 뜨겁고 붉은 피가 다시 흘러 주기를 비손하면서 기꺼이 ‘나치 가스실’로 걸어간 이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그림책 《천사들의 행진》은 이 ‘빛 이야기 한 자락’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대목을 짚어서 보여주기에는, 좀 이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살짝 섣부르다고 느낍니다. 조금 더 깊이 다가서지 못했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쉽습니다. 코르착이라고 하는 사람 삶, 그리고 코르착을 도와 고아원을 함께 지킨 스테파니아 선생님 삶, 여기에 코르착과 스테파니아 선생님하고 언제까지나 함께하면서 울고 웃던 아이들 삶을 한 번 더 곰삭여 내어 붓끝에 담아내지는 못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움이 크고 싹을 틔우려고 하는 ‘코르착 알아가기’ 첫걸음인데, 이만한 그림책이라도 얼마나 고맙고 반가우랴 싶어요. 별 다섯 만점에서 별 넷을 서슴없이 붙입니다. 그러나 별 하나는 붙이지 못합니다. 기다립니다. 별 하나 더 붙일 그림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코르착 스스로도 하루아침에 ‘아이들을 알아 가지’ 않았듯이, 코르착을 이야기하는 그림책도 아이들 걸음걸이와 삶에 맞추어 한 걸음 두 걸음 느긋하게 내디디면서 다가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1.7.1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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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이에요~
    from 양철북, 영혼을 두드리는 북소리 2008-07-24 09:56 
    와우.
  2. 된장님의 서평!
    from 양철북, 영혼을 두드리는 북소리 2008-07-24 10:08 
    천사들의 행진 - 양철북 인물이야기 ① 야누슈 코르착 아이를 사랑한다면,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셔요[그림책이 좋다 49] 강무홍 + 최혜영, 《천사들의 행진》(야누슈 코르착)- 책이름 : 천사들의 행진- 글 : 강무홍- 그림 : 최혜영- 펴낸곳 : 양철북(2008.6.20.)- 책값 : 10800원(1) 사람저는 올 5월 25일, 천주교




 (5) 살갗 흰 사람


 ‘살갗 누런 사람’들은 ‘살갗 흰 사람’이 모여 사는 나라를 높이 우러러 마지 않을 뿐더러, 가장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살갗 흰 사람’ 나라에서 조그마한 일 하나가 터져도 법석일 뿐더러, 신문과 방송에서 큼직큼직하게, 또 여러 번 다룹니다.

 ‘살갗 누런 사람’들은 ‘살갗 까만 사람’이 모여 사는 나라를 업신여길 뿐더러, 가장 못났다고 여깁니다. ‘살갗 흰 사람’ 나라에서 커다란 일이 수없이 터져도 모르쇠일 뿐더러, 신문과 방송에 한 귀퉁이로나마 실리는 법이 없습니다.




.. (사루도들은 어디에나 다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 무얼 하려는 걸까?) … 이시는 그들이 자기가 소중히 하는 것들을 신기한 듯 만지작거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 사루도는 투시가 만들다 만 바구니를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있었다. (저것이 사루도다. 여자의 집에까지 거침없이 들어가 멋대로 굴잖아. 저 악마들이 약탈한 뒤에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이다. 투시와 큰아버지는 재빨리 달아났고, 저들은 어머니에겐 손대지 않았다 …… 그러나 언제나 돌아갈 것인가?) ..  (182∼187쪽)


 여러 해 앞서 어느 술자리를 떠올립니다. 생각이 있으면서 좋다는 책을 펴낸다고 하는 사람하고 어울린 자리였습니다. 미국에 허리케인이 불고 토네이도가 어쩌고 땅이 갈라지고 눈보라가 치고 하는 이야기가 왜 한국땅 ‘아홉 시 새소식’으로 나오고 신문에서도 떠들썩하게 실어야 하느냐 하고 푸념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웃나라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사고에다가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는 어이하여 한 마디 안 실리느냐고 덧붙였습니다. 그러고는, 미국 대통령 뽑는 소식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자 뽑는다는 이야기가 왜 날마다 특종처럼 다뤄져야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마주앉은 나이 지긋한 분께서 ‘미국은 우리 나라한테 중요한 나라니까 그러지’ 하고 대꾸해 줍니다. ‘무엇이 중요한데요?’ 하고 여쭐까 하다가, ‘그깟 나라가 뭘 중요하다고’ 하는 혼잣말만 하고 술잔을 붙잡았습니다.




.. 바깥쪽 방은 마차를 따라온 사람들로 순식간에 꽉 찼다. 남자들은 창살에 기대어 신기한 듯이 이시를 지켜보았고, 이시가 알 수 없는 말로 뭔가를 자꾸만 물었다. “니제 바 야히(나는 야히 족이다).” 이시가 말하자 모두 한꺼번에 크게 웃어댔다. 보안관 조수가 커피와 수프와 빵을 담은 쟁반을 가져다 이시 앞에 놓았지만 이시는 고개를 저었다 …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점점 더 많은 사루도가 바깥쪽 창에 와서 창살에 얼굴을 대고는 이시에게 말을 하게 하려고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그들은 바보처럼 헤픈 웃음을 연방 웃었고 담뱃내나는 침을 아무 데고 퉤퉤 뱉었다 ..  (221∼222쪽)


 집에서 일하다가 너무 더워서 혼자서 보리술 한 잔 꼴깍꼴깍 하다가 잠깐 인터넷편지를 열어 보려고 인터넷포털에 들어가 보면, 날마다 ‘살갗 흰 사람’ 나라인 미국에서 일어난 소식이 끊임없이 굵직굵직 다루어집니다. 보려고 하지 않으나 보이게 되고,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광고창을 지우다가 잘못 눌러서 억지로 보게 되기도 합니다.

 문득문득, ‘내가 저 미국이라는 나라 소식까지 들을 까닭이 없으니 텔레비전도 보기 싫고 신문도 보기 싫은데, 인터넷을 하면서 이런 소식을 보지 않을 수 없다면 인터넷도 하지 말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만 지나도 쓰레기처럼 쌓이다가 버려지는 미국이라는 나라 소식들인데, 이런 쓰레기 소식이 아니라, 참으로 내 삶을 북돋우고 내가 알아가면서 깨달아야 하는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 텔레비전을 끄고 신문을 찢고 책을 펼치지 않았나’ 하고 돌이켜봅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외워야 했던 세계사와 세계지리 지식쪼가리로는 다뤄지지 않던 이웃 아시아 나라들 발자취와 삶을 알아보고 싶어서, 똑같은 ‘살갗 흰 나라’이지만, 덴마크며 폴란드며 에스파냐며 헝가리며 체코며 오스트리아며 핀란드며 아일랜드를 제대로 알고 싶어서, 새책방과 도서관을 쑤시다가 마땅한 책을 만나지 못해 헌책방을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지 않았는가 하고 헤아립니다.

 어쩌면, 저로서는 그 ‘살갗 흰 사람’이 모여 있는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말든 제 삶하고는 아무런 이어짐이 없습니다. 이음고리가 없습니다. 잇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나라 거의 모든 사람들 삶과 생각과 터전하고, 우리 이웃 아시아 나라 사람들 삶이나 아프리카 나라 사람들 터전이나 남아메리카 나라 사람틀 생각은 조금도 안 이어져 있는지 모르겠어요. 굳이 이어야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꾀죄죄하며 가난뱅이인 나라들하고는 남남이라고 여기지 싶어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우리가 우러러 마지 않는 그 ‘살갗 흰 사람’들마냥 ‘살갗 하얗게’ 되고프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살갗 희다’는 사람들 모인 나라에서 밑바닥에서 일한 사람들, 쟁기와 삽을 들고 논밭을 일구던 사람들은 죄다 우리 ‘살갗 누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낯빛이 흙빛이었지만.





.. 이튿날 아침, 이시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다. 보안관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속옷, 셔츠, 웃저고리와 바지, 넥타이, 양말, 구두. 옷을 다 갈아입자 이시는 자기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쳇, 참! 절반은 사루도고 절반은 야히 족이구나!” 몇 번인가 왔다갔다 하며 방 안을 서성거린 뒤 이시는 결국 구두와 양말을 벗어서 보안관에게 돌려주었다. 마침 그때 마쟈파가 들어왔다. 이시가 말했다. “이제야 알았어요. 사루도의 발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 이상한 것은 당신네들이 구두라고 부르는 바로 이거예요. 발이 직접 땅에 닿지 않았는데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  (232쪽)


 제아무리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서 사무직으로 일한다 하더라도, 며칠 동안 시골 논밭에서 땅을 만지며 흙을 돌보고 풀과 나무를 보듬으면서 일을 하면 어느새 살갗이 구리빛이 됩니다. 조금 더 일하면 까무잡잡해집니다. 느긋하게 여러 달 일하면 조금씩 흙빛에 가까워집니다.

 한국사람이든 필리핀사람이든 벨기에사람이든 캐나다사람이든 멕시코사람이든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몽골사람이라고, 일본사람이라고, 러시아사람이라고, 독일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흙을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 살갗은 흙빛입니다. 도시를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를 이루는 잿빛과 마찬가지로 잿빛입니다.

 다만, 도시는 ‘시멘트 잿빛’과 ‘아스팔트 죽은 빛’을 감추려고 합니다. 겉에 껍데기를 씌웁니다. 풀 한 포기도 없는 주제에 풀빛 페인트를 입힙니다. 이에 따라 도시사람들은 싱그러움을 스스로 내버린 잿빛을 가리고자, 또 죽음만 도사리는 아스팔트빛을 숨기고자, 화학약품으로 화학교배를 한 화장품과 약을 바르고 기계로 살을 뜯어고치며 돈을 들여서 요가와 헬스 따위를 합니다. 그러면서 꿈에도 그리운 ‘살갗 흰 사람’이 되고자 애쓰고, 비로소 ‘허여멀겋게 파리해진 얼굴빛’이 되어 버립니다.


.. “이 바구니는 우리 부족의 바구니예요. 그런데 어떻게 이 박물관 와토구르와에 이 바구니가 있을까요?” … “이 두 개는 내 사촌동생이 만든 거예요. 워누포에서.” 이시는 곁에 있는 걸상에 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슴이 몹시 들먹이고 눈에는 눈물이 흥건히 괴었다. (이것은 그 아이의, 투시의 바구니다. 그러나 이 친절한 사루도, 내 새 친구는 워누포에 왔던 놈들 가운데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고, 목소리도 똑똑이 기억하고 있다. 이 사람은 그들 가운데는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이 바구니가 여기 있단 말인가?) ..  (246쪽)





 흙을 밟지 않는 사람은,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마을 이웃과 어울리며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살갗 흰 사람’이 됩니다.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집에만 머무는 사람 ‘핼쑥한 빛’하고는 다릅니다.

 한국에 살든 일본에 살든 중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영국에 살든 프랑스에 살든 라오스에 살든, 흙을 안 밟고 땀을 안 흘리며 일다운 일을 내동댕이친 사람들 살갗은 한결같이 ‘허옇’습니다. 어디에 살더라도 흙을 밟거나 땀을 흘리거나 일다운 일을 제 손으로 찾아서 애써 살아가는 사람은 흙빛을 닮아서 누렇거나 까무잡잡한 살결이 됩니다.

 흙을 밟지 않으니 ‘흙 밟는 사람이 거둔 열매’를 낼름낼름 받아먹습니다. 땀을 흘리지 않으니 ‘땀흘리는 사람들이 이룬 보람’을 돈푼 치르며 집구석에서 얻어먹습니다. 일다운 일을 하지 않으니 ‘제 손으로 보람차게 일하는 사람들’ 등골이 빠지도록 괴롭히면서 자기 주머니에 돈이 철철 흘러넘쳐도 아직 적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이웃과 나눌 줄을 모릅니다.

 미국땅에 살지 않더라도 ‘살갗 희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웃을 들볶습니다. 미국땅에 살더라도 ‘살갗 안 희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합니다.





 (6) 《마지막 인디언》이라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


 북아메리카 토박이로 살던 수많은 겨레 가운데 하나였던 ‘야히 겨레’는 이제 이 지구에 없습니다. 지구에서 사라진 수많은 목숨붙이마냥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지구에서 사라진 숱한 목숨붙이처럼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남고 다시는 되살아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야히 겨레’였던 ‘이시’는 틀림없이 자기 씨앗을 남겨서 자기가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지구에서 마지막 삶이 되었던 온갖 목숨붙이들도 어렵사리 자기 씨앗을 남겨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들사람’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야히 겨레는 스스로 자연 품에 안기며 조용히 흙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더는 ‘들짐승’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깨달은 목숨붙이들도 ‘동물원 구경거리’나 ‘실험실 연구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이 지구를 떠나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들은 우리를 찾아낼 때까지 끝까지 찾아다닐 거야. 야히 족의 마지막 마을 마지막 한 사람을 없애버릴 때까지 단념하지 않을 거다. 이제까지 다른 마을, 다른 야히 족에게 했듯이.” ..  (27쪽)


 한국이라는 나라에 미친 소고기를 팔려고 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미친 소고기 하나로 끝내지 않습니다. 미친 소고기에 앞서 수많은 물건을 억척스럽게 한국에 팔아 왔습니다. 그동안 적잖은 한국사람들은 이에 맞서며 반대를 했지만, 여태껏 어떤 반대 움직임도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에 뭘 팔아서 돈 좀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이 생각이 죄 이루어집니다. 이런 장삿속이 한국사람과 한국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지만, 이런 장삿속에 따라서 콩고물을 얻는 한국사람 또한 제법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도권 교육이 입시지옥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게 한다고 하지만 조금도 고쳐지지 않는 까닭은, 아무리 입시가 지옥이라고 해도 대학교가 졸업장 따서 대기업 면접 볼 때 적는 훈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나와 이웃이 모두 살아남자면, 아니 모두 오붓하게 살자면 입시지옥을 한칼에 걷어치우고 제도권교육도 한달음에 치워버리면 될 터이나, ‘내 앞가림이 우리 앞가림’보다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콩 한 알 함께 나누어 먹기보다는 혼자 먹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콩 한 알을 심어서 백 알을 거두어 더 즐겁게 나누어 먹자는 생각을 안 하고, 이 콩 한 알을 혼자 냠냠짭짭해서 혼자서 끝내고 싶기 때문이구나 싶습니다.





.. 그들은 망설임 없이 떠났다. 미련을 두고 아쉬워하고 눈물 흘리며, 남겨 두고 가는 모든 것의 슬프고 즐거운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뒤돌아보는 일도 없이 ..  (151쪽)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라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국이든 두국이든 세국이든, 사람 사는 나라입니다. 우리들 사람은 한 번 태어났으니 한 번 죽습니다. 태어나서 사는 동안 1분 동안 숨을 못 쉬어도 꼴까닥 하고 뒈집니다. 며칠 물 안 마시면 말라비틀어 돌아가십니다. 햇볕 안 쬐고 살면 오래지 않아 병들어 몸이 망가집니다. 우리는 돈이 중요한 곳에서 사는 한편, ‘똑같은 자연 목숨붙이’로 살아갑니다. 밥 안 먹고 살 수 있습니까. 물 안 마시고 살 수 있습니까. 말 안 하며 살 수 있습니까. 이웃사람 도움 안 받고 혼자서 땅 파서 기름 뽑고 누에 키워서 실 뽑고 잣고 옷 해서 입을 수 있습니까, 뭐를 할 수 있습니까. 돈도 틀림없이 있어야 할 터이지만, 돈 아닌 다른 중요한 대목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돈만 아는 이 나라에서, 돈 아니면 딸아들한테 아무것도 못 가르치는 이 나라에서, 돈 없으면 개떡도 아닌 똥떡도 아닌 빙신떡으로 여기는 이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사람으로 얻은 고마운 목숨을 잘 간수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스스로 사람임을 깨닫고, 내 이웃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사람임을 깨닫는 이들이, 얼마나 애틋하고 곱게 제 뜻과 마음을 지켜나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사루도의 신들, 사루도의 영웅들은 야히 족으로선 잘 모르겠어요. 사루도의 신들이나 영웅은 주프카 신이나 카르츠나 신이나 야히 족의 영웅보다 똑똑해요. 훨씬 똑똑해요. 사루도의 신들은 사루도에게 수레를,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연장을 만드는 튼튼한 무쇠와 강철을 주었어요. 숱은 좋은 것들을 주었어요. 그렇지만 사루도의 신들은 사루도가 지혜롭게 살도록 바라지는 않았던 듯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사루도가 따라야 할 분명한 ‘생활 방법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  (289쪽)





 ‘살갗 흰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아가는 ‘살갗 누런 사람’인 야히 겨레를 죄다 죽였습니다. 아주 끔찍하게 죽였습니다. 그러고는 그이 ‘살갗 누런 사람’들이 쓰던 물건도 빼앗아서 기념품으로 삼고 유물로 삼고 박물관도 짓습니다.

 살갗이 처음부터 하얗지 않던 그네들이, 어느 때부터 살갗이 희게 되면서 누리는 단맛을 알게 된 뒤부터, 혀가 굳어서 단맛 아니고는 못 느끼는 바보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들, 한국땅에서 살아간다는 ‘살갗 누렇던 사람’들은 하나하나 ‘살갗 흰 사람’으로 바뀌어 갑니다. 세상 모든 힘과 이름과 돈을 ‘살갗 하얗게 된 사람’이 거머쥡니다. 처음부터 살갗이 누러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흙과 같은 살빛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하얗게 안 되려는 놈들은 빨갱이로구만’ 하는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저는 평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살고 싶습니다. 내 땅을 내 맨발로 밟으면서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시며 물로 목을 축이는 가운데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 땅에서 난 곡식과 열매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면서. (4341.7.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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