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 쪽빛문고 5
다케타쓰 미노루 글.사진, 안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온누리와 사람을 살리는 힘
 다케타쓰 미노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


- 책이름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
- 글ㆍ사진 : 다케타쓰 미노루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2007.2.20.)
- 책값 : 8500원


 (1) 4대강 사업에 얽힌 두 사람


 지율 스님은 ‘초록의 공명(http://www.chorok.org)’이라는 누리집 한켠에 당신이 거닐고 있는 삶터 한 자락을 글과 사진으로 띄엄띄엄 올려놓고 있습니다. 지율 스님이 띄엄띄엄 올리는 글과 사진을 ‘초록의 공간’이라는 곳으로 띄엄띄엄 찾아가 하나하나 읽고 살피노라면, 지율 스님이 바라보고 있는 낙동강 줄기란 참 수수하고 정갈하구나 싶습니다.

 돈을 바라보는 개발주의에 따라 나무를 자르고 모래를 파내며 땅을 뒤엎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일지라도 지율 스님 사진은 더없이 차분하면서 정갈합니다. 윽박지르는 사진이 아니라 포근히 감싸는 사진입니다. 꾸짖거나 나무라는 사진이 아니라 슬퍼 울고 있는 사진입니다. 아직 돈바라기 개발주의 삽날이 닿지 않은 곳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볼 때에는 그지없이 따스하면서 웃음이 묻어나는 사진이구나 싶습니다.

 숱한 글과 사진으로 4대강 사업을 아름다운 개발이라고 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또다른 숱한 글과 사진은 4대강 사업이야말로 끔찍한 막개발이라고 까밝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마다 당신들 스스로 가장 옳고 바르다 여기는 대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면서 당신들 생각을 내어놓습니다. 그런데 이들 숱한 목소리와 생각을 글과 사진으로 마주할 때마다 참으로 팍팍하고 메마르구나 싶습니다. 옳고 바른 목소리이기에 따사롭고 맑게 생각을 펼친다든지, 맞고 틀림없는 외침이니까 넉넉하고 밝게 마음을 나누려 하는 글과 사진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멍청한 짓이나 바보스러운 짓을 얄궂게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따끔하게 나무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멍청하거나 바보스러운 사람들은 참을 참으로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착한 일을 모르고 고운 삶을 모릅니다. 알면서 못한다 할 수 있지만, 모르기에 못할 뿐더러, 느끼려 하지 않으니 안 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어떠한 따끔한 꾸지람조차 소 귀에 읽는 불경이 되리라 봅니다. 소 귀에 읽는 경인데 꼼꼼하며 올바른 비판이라 할지라도 먹힐 리 없습니다.

 《신갈나무 투쟁기》를 쓰고 《숲의 생활사》와 《숲 생태학 강의》 같은 책을 쓰면서 숲과 자연을 살리는 길을 살펴 왔다는 차윤정 님은 지난 2010년 5월 17일에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이라고 하는 1급 공무원 자리를 꿰찼습니다. 당신은 ‘생명의숲’이라는 모임에서 문화교육위원으로 일하기까지 했는데, ‘생명의숲’이라는 곳은 4대강 사업이 우리 땅에 좋지 않은 막개발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 왔습니다. 차윤정 님은 당신 스스로 ‘4대강 사업은 옳지 않다’고 밝히는 일을 하고 글을 써 왔으나(한국일보 칼럼), 어떤 까닭에서인지 둘레에서 환경사랑을 이루고자 힘쓰는 사람들을 힘겹게 하면서 내동댕이를 쳤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저런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 집 책꽂이에 꽂힌 차윤정 님 책들을 길바닥에 내팽겨쳐야 할는지, 아니면 헌책방에 갖다 주어야 할는지 망설이다가 그냥 집에 두기로 합니다. 차윤정 님은 어느 신문사하고 만난 자리에서 당신 ‘소신이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자연을 파헤치는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자연은 사람이 살아가기 좋도록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신갈나무 투쟁기》이든 《숲 생태학 강의》이든, 나무와 숲과 풀 모두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목숨이 아닌 사람한테 이바지를 할 때에 아름다울 목숨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는 소리입니다.

 어느 신문에 실린 길디긴 만나보기 글을 읽으며 뒷통수를 쳤습니다. 차윤정 님은 흔히 말하는 변절을 한 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옳고 바른 삶하고는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았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을 때에 줄거리만 읽을 노릇이 아니라, 글줄마다 깊디깊이 실린 속내를 헤아릴 노릇이었는데, 저를 비롯하여 숱한 사람들은 책 하나 똑바로 못 읽었기 때문입니다.

 차윤정 님은 사랑과 믿음으로 글을 쓰거나 숲 해설을 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개발 편의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연 개발’을 하되, 지나치게 편의주의를 내세우거나 개발을 앞세우면 사람한테 도움될 일이 없다는 생각을 당신 책에 알알이 담아 왔던 셈입니다.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삶결에 따라 우리들한테 맑고 밝으며 따스한 손길을 나누려 하지 않았던 셈입니다.

 그렇지만 4대강 사업을 두 팔 벌려 반기며, 1급 공무원이라는 연봉 높은 일자리를 얻은 사람은 나쁜 놈이요, 4대강 사업 참모습을 밝히고자 온몸을 바치는 사람은 좋은 분이라고 금긋기를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자리에 서 있거나 어느 길을 걷든지 부디 사랑을 찾고 믿음을 섬길 수 있기를 비손할 뿐입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가 아닌 ‘사랑으로 어루만지자’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뿐입니다. 넉넉하거나 따스한 마음이 아닌 이들을 몽둥이로 두들겨팬다고 넉넉함이나 따스함을 느끼거나 되찾겠습니까. 아름답거나 훌륭한 넋이 아닌 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않고 찬찬히 타이른다고 아름다움이나 훌륭함을 고맙게 맞아들이겠습니까. 사랑을 모르면서 살아왔으니 명예와 돈과 권력에 끄달립니다. 믿음을 섬기지 못하며 지내왔기에 스스로 참되거나 착하거나 곱게 살아갈 매무새가 안 됩니다.

 지율 스님 글과 사진을 꾸준히 되읽고 곰삭이면서 생각합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노동운동을 하든 문화운동을 하든 어찌 되었든 ‘운동’을 하면서, 이 낱말마따나 ‘움직이기’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목소리 내기’에 앞서 내 삶으로 ‘따순 품과 너른 눈’을 북돋아야겠다고 느낍니다. 지율 스님은 4대강 사업을 두 팔 벌려 반기거나 떠벌이는 사람들을 나무라고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낙동강 마실을 하지 않습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한테까지 함께 이야기를 건네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또다른 4대강 사업’을 깨달으면서, 우리 스스로 참된 길을 찾기를 바라면서 글을 씁니다. 다시금 되풀이하지만, 4대강 사업은 반대하면서 입시지옥과 학벌주의를 깨지 않으면 부질없습니다. 4대강 사업은 나쁜 짓이라 꾸짖으면서 영어만능에 세계화에 한미자유무역협정에 젖어 있으면 덧없습니다. 4대강 사업은 반대한다면서 더 빠른 자가용하고 더 큰 아파트랑 헤어지지 못한다면 쓸모없습니다. 4대강 사업을 착하게 반대하고 싶다면, 우리는 이 일은 이 일대로 제대로 나무라거나 꾸짖을 줄 아는 가운데 우리 삶을 착하게 일구어야 합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고운 몸짓으로 우리 삶을 보듬으며 우리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삶이어야 합니다.


 (2) 사진으로 보여주는 들짐승 삶


 사진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어린이들한테 자연사랑과 사람사랑을 일깨우고자 엮었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골고루 즐길 수 있습니다. 훗카이도라고 하는 일본땅 북쪽 끝에 자리한 동물병원에서 얼마나 많은 들짐승과 멧짐승과 날짐승을 마주하면서 고마운 사랑을 나누어 받는 나날인가를 보여줍니다. 한국땅에서는 씨가 마른 여우인데, 훗카이도 동물병원에서는 들여우를 어렵잖이 만나 보살피고 돌보며 자연에 돌아가 머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동물병원 집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제 어버이와 함께 ‘다친 짐승을 돕는 일꾼’이 되어 여우를 비롯해 토끼와 딱따구리와 오소리와 참새와 솔개하고 다람쥐랑 좋은 놀이동무로 사귑니다.

 마땅한 노릇일 텐데, 동물병원을 꾸리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따로 자연사랑이니 환경사랑이니 동물사랑이니 하는 말을 들려주지 않으리라 봅니다. 따로 자연사랑을 가르칠 일이 없으리라 봅니다. 자연 품에 안겨 자연스레 살아가며 자연을 느끼고 있으니, 무슨무슨 책을 읽힌다거나 어떤어떤 가르침을 베풀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훗카이도 끝에 자리한 동물병원 식구들은 당신들 삶으로 조용히 자연사랑을 맞아들이고 환경사랑을 일구며 동물사랑을 이룹니다.

 그나저나 이토록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를 담은 책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처럼 낯간지러운 이름을 붙이니 머쓱합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다케타쓰 미노루 님은 스스로 이런 낯간지러운 이름을 내세운 적이 없을 텐데요? 다케타쓰 미노루 님이 쓴 일본책에는 으레 ‘북쪽나라’라는 말이 보이는데, 동물병원 의사로 꾸리는 삶이라 더 남다르거나 뛰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동물병원 의사일 뿐입니다. 좀더 가까이에서 아픈 짐승을 돌볼 뿐, 온누리에서 가장 아름답다느니 이 땅에서 가장 거룩하다느니 하는 꾸밈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수수한 벗이고 조촐한 이웃이며 살가운 일꾼입니다.

 무엇보다도 북쪽나라 동물병원 사람들은 돈벌이를 하지 못합니다. 아니, 돈벌이를 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맡는 아픈 짐승이란 ‘어떤 집짐승을 키우는 임자라는 사람’이 돈을 치르며 맡기는 짐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토끼가 돈을 알겠습니까. 노루가 돈을 갖고 있겠습니까. 큰곰한테 은행계좌가 있겠습니까. 고니한테 지갑이 달려 있겠습니까.

 들짐승을 돌보고 건사하고 먹이를 마련하는 동물병원 식구들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책을 써내어 살림돈을 마련하고 들짐승들이 동물병원에서 아픈 곳을 다스리는 동안 먹을 여러 가지를 장만한다고 합니다. 병원장 아저씨는 말 그대로 당신이 동물병원을 꾸리며 만나는 들짐승이랑 당신하고 함께 짐승들을 어루만지는 집식구들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 일이 고스란히 당신들 돈벌이가 됩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동물병원장 아저씨를 비롯해서 동물병원 식구들이 더 많이 벌거나 더 이름이 나거나 하는 데에 마음을 내주었다면, 아마 당신들 삶이 담긴 책은 안 팔렸거나 책으로조차 못 나왔으리라고. 당신들은 무슨 대단한 이름으로 동물사랑이니 자연사랑을 외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훗카이도 들짐승하고 어우러지는 자연 품에 안겨 똑같은 자연붙이 하나로 살아내고 있기에, 이러한 당신들 삶을 담은 책을 사람들이 아끼고 좋아하며 반기고 있다고.

 동물병원 식구들이 꾸리는 삶이란 바로 사랑과 믿음입니다. 이들 동물병원 식구들이 먹고살 뿐 아니라 아픈 짐승들을 돌보는 데에 보탬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보내 주는 손길 또한 사랑과 믿음입니다. 자연을 돌보거나 지키겠다고 한다면 입바른 ‘자연사랑 구호 외치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우리 터전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짐승들을 돌보거나 지키겠다고 한다면 겉치레 ‘동물사랑 선전 활동’을 할 노릇이 아니라, 온몸 그대로 나와 내 이웃과 내 둘레 모든 목숨붙이와 보금자리를 사랑하며 아끼는 숨결을 간직하면 됩니다.

 사진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은 책이름하고는 다르게 ‘온누리에서 가장 어리석은 동물병원’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가장 어리석은 동물병원은 가장 어리석기 때문에 이들 동물병원 식구들한테 늘 웃음꽃이 피고 눈물꽃이 돋는 즐거우며 빛접은 삶을 베풀어 줍니다. 꾸미는 삶이 아니라 즐기는 삶이요, 겉바르는 삶이 아니라 부대끼는 삶입니다. 내세우는 삶이 아니라 내놓는 삶이요, 뽐내는 삶이 아니라 손잡는 삶입니다.

 온누리를 살리는 힘이란 다름아닌 사랑에 있음을 알뜰살뜰 보여줍니다. 온누리를 빛내는 슬기란 다름아닌 믿음에 있음을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3) 살뜰히 되읽는 생각줄기


 글은 적고 사진이 많이 실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입니다. 얼마 안 실린 글이지만 한 줄 두 줄 되읽는 재미가 남다릅니다. 사진 또한 한 번 보고 두 번 보는 기쁨이 꽤 큽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한 장씩 넘기며 글을 읽어 주다가는, 사진에 함께 실린 숱한 짐승들 이름을 부르며 알려주는 즐거움 또한 새삼스럽습니다.

 우리 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거나 자취를 감추기까지 한 짐승들 모습을 참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책 하나인데, 그예 지식덩어리 책이 아닌 사랑하고 눈물과 울음이 고루 섞인 살가운 이야기 하나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3.6.13.해.ㅎㄲㅅㄱ)


[11쪽] 숲속 동물병원은 병원이라기보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재활 훈련소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야생동물에게는 주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진료비나 입원비를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료진은 모두 급여를 받지 않는 저의 가족이 맡았습니다. 저와 아내와 네 명의 아이들이 이 병원의 의료진들이지요. 보통 병언이라면 환자가 많을수록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게 되는데 이곳은 정반대랍니다.

[16쪽] 어느 날 아침, 우리 집 아이가 콩새를 안고 들어왔어요. 그 콩새는 울고 있었어요. 눈에 하나 가득 눈물을 머금고 말이에요. 인간이 아닌 동물은 울거나 웃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눈앞의 콩새는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열심히 환자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쓰게 되었어요. ‘틀림없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거야.’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거지요.

[16∼17쪽] 일본 훗카이도는 풍부한 자연에 에워싸여 있고, 사람들도 그 속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 때문에 인간 생활의 변화가 곧바로 자연에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싼 것이 좋다고 말하면, 농부는 어쩔 수 없이 화학비료를 자주 사용해 작물을 많이 생산하려고 합니다. 농약도 많이 사용하게 되고요. 그렇게 되면 동물 중에 농약 중독 환자가 늘게 됩니다. 훗카이도에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생활이 바빠지자 덩달아 차의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그로 인해 교통사고를 당하는 동물도 늘어났고요.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비 생활이 일상화되어, 여기저기 쓰레기더미가 산을 이루고, 또 버려진 물건에 상처를 입는 동물 환자가 늘고 있습니다.

[82쪽] 새끼 사슴은 우유를 하루에 4리터나 마셔요. 덕분에 병원은 더욱 가난해졌지요.

[85쪽] 여우와 너구리, 참새와 까마귀처럼 사람 곁에서 생활하는 동물에게는, 사람 또한 위협적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장난을 칠 때면 가끔 상대에게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몸짓을 보여주고는 해요. 또한 사람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 등 기계의 위험성도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이런 것들을 습득하면 드디어 자연 속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102쪽] 퇴원은 매우 기쁜 일입니다. 환자는 자유로워지고, 의료진은 일이 줄어 한숨 돌릴 수 있지요. 그렇다고 퇴원이 가까워지면 모두 기쁜 얼굴을 하느냐,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기뻐하는 것은 원장인 나뿐, 모두 서운한 표정들이지요. 자기 자식이나 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일 거예요. 환자 중에서도 그런 기분을 느끼는 동물이 있는 것 같아요. 동물들에게는 자연의 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착각에 불과한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125쪽] 생물들의 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 숲속 동물병원도 하나 둘씩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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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26 : 아이와 놀며 읽는 책

 애 아빠가 글 몇 줄 끄적이고 싶으면 새벽 서너 시쯤에 조용히 일어나 옆방에서 소리를 죽이며 자판을 또닥거려야 합니다. 오늘은 다섯 시에 느즈막히 일어나 살며시 글을 씁니다. 두 식구 고요히 잠든 나절에라야 비로소 마음을 가다듬어 글쪼가리 한둘 가까스로 일굽니다. 새벽에 물 한 모금 마시며 글을 쓰고 있으면 한 시간쯤 뒤 배에서 똥을 내보내야겠다는 꼬르르 하는 소리를 냅니다. 이제 책 하나 들고 뒷간으로 갑니다. 다문 몇 쪽이라도 책을 읽습니다.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청어람미디어,2007)이라는 책을 쥡니다. 글과 사진이 참으로 좋은 책이지만 책이름만큼은 영 어설픕니다. 이 어설픈 책이름 때문에 지난 세 해 동안 이 책을 안 거들떠보고 있었습니다. 글과 사진을 일군 다케타쓰 미노루 님이 일본에서 당신 책을 낼 적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따위 낯부끄러운 꾸밈말을 붙이지 않았을 텐데, 왜 이런 곱고 맑은 책을 우리 말로 옮기는 책마을 일꾼들은 낯부끄러운 꾸밈말을 낯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며 버젓이 달아 놓고 있을까요. 들짐승과 멧짐승과 날짐승을 돌보는 다케타쓰 미노루 님한테는 그저 ‘훗카이도 동물병원’이요 ‘북쪽나라 짐승쉼터’였을 텐데요.

 “훗카이도에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생활이 바빠지자 덩달아 차의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그로 인해 교통사고를 당하는 동물도 늘어났고요(17쪽).”라는 대목을 읽다가, 이 사진이야기를 아이를 내 무릎에 앉히고 읽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 아빠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 책을 읽어 주면서 이런 대목에서는 요모조모 살을 붙일 테지요. “참말 그렇지? 빠방이가 너무 많아 우리는 골목을 느긋하게 걷기 힘들잖아. 사람들 모두 빠방이를 안 타고 걸어다니면 조용하고 깨끗하며 서로서로 좋을 텐데.”

 일본에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유미리 님이 쓴 《생명》(문학사상사,2000)이라는 책을 어제 막 장만해서 조금씩 읽습니다. 깊이 사랑하던 사람이 유미리 님 몸에서 새 목숨이 자라나는 줄 알면서 등을 돌리며 시리디시린 생채기를 남겼다는데, 유미리 님은 당신을 저버린 사람이 남긴 씨앗으로 자란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다. 고이 안고 있다가 모진 아픔을 겪으며 낳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슬픈 집식구한테 둘러싸여 죽음만 생각하던 유미리 님이 죽음이 아닌 삶이라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유미리 님은 조산원에서 배앓이를 하면서 “나는 늘 나를 보호해 줄 누군가를 찾아다녔다. 평생 지켜 주겠다는 그의 말을 나는 믿었다. 하지만 믿었기에 배신당했다. 그에게 배신당한 것이 아니라, 보호받고 싶은 나 자신의 소원에 배신당한 것이었다(218쪽).” 하고 생각합니다. 배앓이가 그지없이 모질어 진통제와 촉진제를 놓아 달라고 빌지만, 조산원 일꾼은 ‘조산원에서는 그런 주사 안 쓴다’고 대꾸합니다. 그러고 보면 일본은 한국과 달리 애 엄마한테 주사를 함부로 안 놓습니다.

 배앓이를 하는 유미리 님은 그동안 당신이 몸속 목숨을 제대로 돌보거나 헤아리지 못했음을 미안해 하며 얼른 새누리를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힘씁니다. 사랑에다가 보금자리까지 잃었으나 유미리 님은 새 목숨을 맞이하며 새 삶을 찾습니다. 그러면, 유미리 님을 등진 남자는 짝꿍과 아이를 버리며 무슨 새 삶을 찾았을까요. 유미리 님만이 아이랑 놀며 책을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4343.6.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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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달래며 살아간다
다이쿠바라 야타로 지음, 박영 옮김 / 북피아(여강)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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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는 책, 살아가는 책, 죽는 책
 [헌책방에서 만난 책 1] 다이쿠바라 야타로, 《티베트 의학의 지혜》



 새로 태어난 목숨은 둘도 없는 기쁨입니다. 어린 나날부터 늙은 나날까지 보내는 삶이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입니다. 더는 몸을 쓸 수 없는 가운데 조용히 거두는 숨결이란 다시 없는 고마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기쁨과 살아가는 즐거움과 죽는 고마움을 누립니다. 어느 한 가지만 맛볼 수 없으며, 어느 한 가지는 맛보지 않겠다며 손사래칠 수 없습니다. 기쁘게 맞이하는 목숨이요 즐겁게 누리는 삶이요 고맙게 멈추는 숨결입니다.

 흔히들 뭍고기이든 물고기이든 꺼리면서 푸성귀만 먹고살아야 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어려운 말로 ‘채식주의’인데, 고기 아닌 풀을 먹는 사람일 때에는 고기 먹는 사람보다 뱃속이 가뜬하다거나 부드럽기 마련입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한테 맛있는 고기란 ‘고기를 먹는 짐승을 잡아 마련한 고기’가 아닌 ‘풀을 먹는 짐승을 잡아 마련한 고기’입니다. 풀 먹은 짐승이 맛이 있지, 고기 먹은 짐승이 맛이 있지 않습니다. 풀 먹는 사람이 튼튼하지, 고기 먹는 짐승이 튼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기를 먹든 풀을 먹든 목숨을 먹는 삶입니다. 풀이라 하여 목숨 아닐 수 없습니다. 풀 또한 고운 목숨입니다. 풀을 뜯거나 데치거나 삶을 때에도 짐승을 잡아서 죽을 때하고 마찬가지로 목숨을 끊는 노릇입니다. 꽃이나 나뭇가지를 꺾을 때에 꽃과 나무 또한 아파하거나 죽는다고 말을 하면서, 푸성귀를 밥거리로 삼아 먹는다고 할 때에는 ‘나한테 바쳐진 목숨’을 느끼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 또한 목숨이고 우리가 들이쉬는 바람 또한 목숨입니다. 우리는 목숨 아닌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른 목숨을 받아들이며 내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수명은 늘어났으나 순수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은 점점 유실되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  (26쪽)


 농사짓는 들판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한테는 무엇보다도 풀과 곡식이 몸에 가장 잘 맞습니다. 고기를 잡는 바다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한테는 무엇보다도 물고기가 몸에 가장 잘 맞습니다. 농사도 짓고 고기잡이도 하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풀이며 곡식이며 물고기이며 골고루 즐길 테지요. 그렇다면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는 도시에서는? 도시라는 곳은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먹고 버리는 터전인 만큼,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배를 채우도록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릴 때가 내 몸에 가장 알맞을까요?

 틀림없이 제 고향마을 터전에서 나는 먹을거리만큼 내 몸에 알맞으며 좋은 먹을거리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네 도시를 떠올려 보면 너무 끔찍합니다. 스스로 농사를 짓는 일이란 없이 돈만 벌고 돈만 써서 쓰레기를 잔뜩 내보내는 데다가 쓰레기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며 쓰레기가 어찌 되는가를 헤아리지 않는 도시 삶자락이란 참으로 끔찍합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이와 같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연이 내려준 선물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내 몸이 바로 자연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그지없이 끔찍합니다. 도시 아이들은 ‘불량식품’이라는 먹을거리에 군침을 흘리며 손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술과 담배에 찌들며 갖가지 스포츠와 쏟아지는 정보덩어리에 파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 자연이 준 것을 빼앗고 새삼스럽게 약으로 치료한다는 것은 이상하기만 하다 … 아무리 모유의 성분을 분석ㆍ연구하여 외부에서 배합하려 해도 똑같은 효과는 얻을 수 없다. 그 아기에게 맞는 성분 배합은 아기와 직접 연결되어 있던 모체만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  (53, 61쪽)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제 삶을 돌아봅니다. 남 얘기에 앞서 나부터 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곱씹습니다. 딸아이를 낳아 스물석 달째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날을 돌이킵니다. 나부터 나 스스로 얼마나 아름다운 목숨으로 살아가는가를 헤아린다면 고개를 떨굴밖에 없습니다. 나부터 나 스스로 우리 아이한테 얼마나 고마운 어버이요 좋은 목숨으로 마주하고 있느냐를 살핀다면 고개를 내저을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스스로 먹을거리 입을거리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는 돈을 마련할 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돈으로 먹을거리 입을거리 보금자리를 빌립니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오로지 돈을 생각하거나 따집니다. 사는 사람이든 파는 사람이든 삶이나 죽음을 느끼거나 깨닫지 않습니다. 사는 사람이든 파는 사람이든 무엇보다 돈을 바라봅니다. 알맞춤한 값인지를 살피고 싸거나 비싼 값인가를 돌아봅니다. 돈이 얼마나 드느냐를 따지고,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우리 삶에 얼마나 이바지를 하느냐를 느끼지 않고, 우리 목숨에 얼마나 어울리느냐를 헤아리지 않으며, 우리 죽음에 얼마나 따스한 손길인가를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 인도 여성들은 산후 1주일 동안은 외출은 물론 산실 안에서도 계속 누워 있었다. 닷새 정도까지는 변기에도 앉지 않았다 … 인도에서는 산후 3주는 산실을 어둡게 만들어 바깥 빛을 쏘이지 않도록 하는데, 이것은 갓 태어나는 아기의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눈을 보호하려는 배려이기도 하다 ..  (71, 75쪽)


 책을 읽으면서 밥을 느끼고 옷을 느끼며 집을 느낍니다. 책이든 밥이든 옷이든 집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한동아리입니다. 나고 살고 죽습니다. 다시 나고 다시 살고 다시 죽습니다.

 제 나이 서른여섯인 오늘에 이르러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나이 열여섯과 스물여섯에도 죽음을 늘 생각했습니다. 여섯 살 적에는 도깨비를 무서워 했으니 이때에도 죽음을 생각한 셈일까요. 저녁에 눈을 감고 잠들 때에는 이대로 아침에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벌써 눈을 감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생각했고, 잠결에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다가, 새벽에 눈을 뜨면서 이야 오늘 하루도 다시금 눈을 뜰 수 있네 하고는 고맙게 느낍니다.

 문득 돌아보니, 새벽마다 고맙게 눈을 뜨기는 하지만, 이러한 고마움을 땅님이나 하느님한테 비손을 올리지는 못해 왔군요. 그래, 고맙기는 고맙다지만 고마움을 제대로 나타내지 않으며 지내온 삶이라 하겠습니다. 마음으로는 고맙다 하지만 몸으로는 고마운 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셈이라 하겠습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고마움을 느끼면서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집식구와 살가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좋은 삶을 즐기지 못하는 꼴이라 하겠습니다.

 누가 알아주건 말건 좋은 책이 태어났으면 좋은 책이 태어난 셈이고, 좋은 책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좋은 책이 빛을 본 셈이며, 이 좋은 책이라 하지만 널리 팔리지 못해 새책방이나 도서관 책시렁에서 자취를 감추면 조용히 숨을 거둔 셈입니다. 좋다는 책이라 하여 한결같이 팔리거나 많이 팔리거나 오래도록 팔려야 하지 않습니다. 좋다는 책이라면 외려 알맞춤하게 팔리고 알맞춤하게 사랑받다가 살그머니 잠들어 사라질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 스스로 꾸리는 제 삶이 좋은 삶이라 할 때에도 내 목숨을 살뜰히 받아들여 알맞게 즐기는 가운데 땅에 보탬이 되도록 숨을 거두어야 참 아름다움이요 기쁨이며 보람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 조금씩 병을 앓으면서 원상태로 북귀하는 과정에서 그 아이의 고유한 관성이 붙어 가는 것이다. 몸은 그런 과정을 거쳐 자기 나름대로의 힘과 거기에 맞는 리듬을 만들어 생명력을 키워 가게 된다 …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우리 문명사회에서 생활하는 인간보다 눈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  (86, 117쪽)


 살아가며 늘 느끼는데, 튼튼한 몸뚱이라고 해서 더 오래 목숨을 잇지 않습니다. 튼튼한 몸뚱이인 까닭에 주먹다짐을 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 수 있고, 튼튼한 몸뚱이라서 싸움터에 붙들리는 바람에 난데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며, 튼튼한 몸이라며 마구 굴리다가 일찍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자동차에 치인다든지 어쩐다든지 하며 벼락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여린 몸뚱이라지만 반드시 일찍 죽지 않습니다. 가늘고 긴 삶이란 소리가 아닙니다. 아프고 여린 몸뚱이인 분들 모두 그러하지는 않으나, 아프고 여린 몸뚱이일 때에는 더 아프거나 더 힘든 일은 하지 않습니다. 하려 해도 못하기 일쑤이지요. 언제라도 아프거나 여린 몸에 걸맞을 일을 찾고, 내 주제에 알맞게 놀이를 즐기며, 내 밥그릇에 들어맞도록 밥을 먹습니다. 넘치거나 모자라게 살지 않습니다. 꼭 알맞춤하게 살아갑니다. 넘쳐서도 안 되고 모자라서도 안 됩니다. 아프거나 여린 사람은 아프거나 여린 몸을 노상 느끼는 터라, 아프거나 여린 몸으로 부대낄 삶을 더 깊디깊이 맞아들이곤 합니다.

 이러는 동안 아프거나 여린 마음밭은 내 마음밭뿐 아니라 이웃 마음밭을 살핍니다. 튼튼한 이웃사람 마음밭을 살피고 아픈 이웃사람 마음밭을 살핍니다. 내가 아프니 남이 아픈 줄 일찌감치 깨닫습니다. 내가 힘드니 남이 힘든 줄 미리 헤아립니다.

 아픈 사람은 싸우지 않습니다. 싸움을 불러들이지 않습니다. 싸우는 사람이나 싸움을 불러들이는 사람은 모두 튼튼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다투지 않습니다. 다툼을 부를 까닭이 없습니다. 다투는 사람이나 다툼을 끌어들이는 사람은 모두 돈있는 사람입니다.


.. 사람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둔감하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둔감한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또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  (122쪽)


 튼튼한 몸이란 하늘이 내린 선물입니다. 여린 몸 또한 하늘이 내린 선물입니다. 넉넉한 돈이란 하늘이 보낸 선물입니다. 가난한 살림 또한 하늘이 보낸 선물입니다. 잘생긴 얼굴과 매끈한 몸매란 하늘이 준 선물입니다. 못생긴 얼굴과 투박한 몸매란 하늘이 준 선물입니다. 어느 것 하나 선물 아닌 것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고마운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몸이든 저런 삶이든 그런 마음이든 우리한테는 둘도 없고 다시 없으며 거듭 있을 수 없는 하나 있는 목숨이거든요. 우리는 고마운 목숨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지 ‘튼튼한 목숨’이라거나 ‘돈있는 목숨’이라거나 ‘잘난 목숨’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서울사람이라 더 잘날 까닭이 없습니다. 서울 강남에 비싼 아파트를 갖춘 사람이라 더 뛰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라건 고마운 목숨입니다. 어떠한 일을 즐기든 고마운 일꾼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대서 더 기쁜 날씨가 아니요, 네 철 따로 없이 따스하거나 시원한 날씨라서 더 반가운 날씨가 아닙니다.


.. 다른 나라에서 혈액을 수입하면서까지 의료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일본인이 생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인도나 티벳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손상을 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한테도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 늙어빠져서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맑을 때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이며 존엄성을 갖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 (죽음을 앞둔 사람) 침대는 보통 큰 나무 밑에 놓아 둔다. 죽음을 밖에서 맞는다는 것은 환자에게도 행복하다. 눈을 들면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이 보이고 새소리도 들려온다. 아침에 하늘이 밝아옴에 따라 자신의 몸도 깨어나고 새들이 날아다니며 여러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고 … 죽음을 지켜보는 경험을 쌓음으로써 자신에게도 닥쳐 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죽음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익한 죽음도 되는 것이다 ..  (204∼209쪽)


 헌책방에서 《티베트 의학의 지혜》라는 묵은 책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우리 식구는 이 책을 2008년 6월에 만났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두 달 앞서 이 책을 알아보았고, 두 달에 걸쳐 바지런히 읽어내며 우리 삶을 다시금 돌아보고 새로 헤아리고자 했습니다.

 새 목숨을 마주하기 앞서 두 달이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날입니다. 애 엄마한테든 애 아빠한테든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짧을 수 있고 길 수 있습니다.

 애 아빠 된 저로서는 길게 껴안지 못하고 짧게 손을 잡았습니다. 더 바투 다가서며 더 가까이 어루만질 수 있었다면 우리 식구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이를 낳아 예방주사를 한 방도 안 맞히면서 튼튼하고 싱그러운 숨결을 우리 아이가 맞아들이도록 해 줄 수 있었습니다. 애 아빠 된 저 스스로 집식구 먹여살린다는 핑계를 내세워 돈버는 일에 더욱 마음을 쏟는 바람에 고마운 책 하나 뒤늦게 만났으면서 이 고마운 책에 깃든 고마운 앎과 삶과 빛을 제대로 삭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애 아빠 된 사람은 지난날뿐 아니라 오늘날과 앞날까지 고마운 앎과 삶과 빛을 제대로 삭이지 못할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애 엄마 속을 썩일 뿐 아니라, “(아이 낳는 자리에서) 남성을 기피하는 이유는 남성은 고압적이고 거칠어 아기한테 자극이 너무 강하기 때문(35쪽)”이라는 말마따나 애 아빠 스스로 부드럽고 따스하며 넉넉한 사람 매무새로는 다가서지 못할는지 모릅니다. 군대에 끌려가기 앞서까지 욕 한 마디 내뱉을 줄 몰랐다지만, 군대에서 아무리 군화발에 짓밟히고 개머리판이나 삽자루로 두들겨맞았다 할지라도 내 마음을 나 스스로 착하고 참되며 곱게 가다듬는 하루하루였다면, 왼뺨을 맞으며 오른뺨을 때려도 좋다고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내 삶이 예수님이나 부처님 삶처럼 될 수는 없다지만, 내 나름대로 착하고 참되며 고운 결을 놓지 않을 수 있다면, 한결 따스하며 넉넉하고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며 집식구하고 어울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들은 부처님의 자비라고 생각하지만 순례생활이라는 것은 아주 적은 양의 야채만을 먹으며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자고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이다. 매일 걸어서 기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체력을 소모한다.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몸이 되어 쓸데없는 일에 쓸 기력도 체력도 남지 않아 암이 증식할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구제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 기도한다는 순례생활을 통해 감정이 제어되어 몸에 기운이 붙게 되는 것이다. 더 살려고 한다거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이치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순수한 기도를 드리며 순례를 달성하려는 마음가짐이 몸에 리듬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려는 힘에서 저항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이 암의 세력을 잠재우게 되는 것이다 ..  (197쪽)


 헌책방이란 참 고마운 곳입니다. 더 잘 나거나 더 못난 책이 아닌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책을 있는 그대로 갖추어 주니 고마운 곳입니다.

 헌책방에서 무슨무슨 문화공연을 하거나 이런저런 문화예술을 펼쳐야 남다르거나 기쁘거나 고맙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제 마음을 살찌우며 제 눈을 가다듬는 가운데 제 손을 어루만질 수 있는 착하고 참되며 고운 책 하나 만날 수 있으면 고맙습니다.

 헌책방은 더 밝거나 크게 넓어야 하지 않습니다. 헌책방은 더욱 많은 책을 좀더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헌책방은 여러 일꾼이 더더욱 많은 손품을 들여 책 목록을 셈틀에 집어넣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는 책을 바로 오늘 만나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바라는 책 하나 찾느라 여러 해를 들여도 좋은 헌책방이고, 바라는 책 하나 끝내 못 찾고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좋은 헌책방입니다.

 헌책방은 책 하나가 있어 좋습니다. 헌책방은 책 하나 만날 겨를이 있어 좋습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이 1950년대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든, 1970년대 자국이 그예 살아 있든, 1990년대 접어들며 여러모로 달라졌다 하든, 2010년대다운 또다른 모습으로 거듭난다 하든, 헌책방은 그저 헌책방입니다. 헌책방은 다원문화공간이 아니고 다원문화공간은 헌책방이 아닙니다. 헌책방은 새책방이 아니고 새책방은 헌책방이 아닙니다. 헌책방에서 새책을 다룰 수 있고, 새책방에서 헌책을 다룰 수 있겠지요. 그러나 헌책방은 헌책방 구실을 하고, 새책방은 새책방 노릇을 해야 합니다. 헌책방은 헌책방으로서 살아내고, 다원문화공간은 다원문화공간대로 살아내면 됩니다.

 헌책방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꼭 한 사람 가슴에 빛이 될 책’이 무엇인지 콕 집어서 알아채거나 잡아챌 수 없는 가운데, 언제 어느 곳에서든 알아보거나 느낄 사람이 있으리라 믿는 책 하나를 갖출 수 있으면 되는 곳입니다. 이러한 헌책방 구실을 하며 새책을 다루든 문화공연을 하든 하면 됩니다.

 새책방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그때그때 새로 나오는 수많은 책을 마진율이 아닌 무르익은 알맹이에 따라 골고루 갖추어 옛책을 바탕으로 새책이 태어난다’는 반가움을 알뜰살뜰 나누어 줄 수 있으면 되는 곳입니다. 이러한 새책방 노릇을 하며 헌책을 팔든 말든 하면 됩니다.


.. 나는 병원에서 분만하는 데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탄생을 거든다’는 사명감보다는 ‘피 보는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출산을 대하기 때문이다 … 지금부터 앞으로 커 갈 아이들한테도 보통의 일상생활 속에서 어머니가 고통하고 여러 사람이 조용하도록 애써 주는 분위기 속에서 태어나는 것은 귀중한 인생의 첫 경험이기도 할 것이다 ..  (42, 45쪽)


 1991년에 우리 나라에 한 번 옮겨진 《티베트 의학의 지혜》라는 책이 다시 새 목숨을 받아서 태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2008년 6월 뒤로 이 책을 또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지만 이 책을 아직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이 책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머잖아 아이를 낳을 분들이나 머잖아 시집장가를 갈 분들이나 아이를 키우는 분들한테 선물해 주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이 책 하나만을 찾아내어 선물해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책으로도 얼마든지 서로한테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책이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착하고 참되며 곱게 살아간다면 제 삶이 서로한테 빛이 되겠지요. 책 하나로 삶에 빛을 나누어 주어도 좋고, 삶 하나로 책에 빛을 되돌려 보아도 좋습니다. 책을 선물하며 살아가도 좋고, 오순도순 도란도란 어깨동무하며 신나게 살아가도 좋습니다. (4343.6.9.물.ㅎㄲㅅㄱ)


― 티베트 의학의 지혜 (다이쿠바라 야타로 씀,박영 옮김/여강,199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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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 앤 뽀또그라피
진동선 지음 / 시공사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소설은 사진을 만나고 싶었을까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21] 진동선, 《노블 앤 뽀또그라피》


- 책이름 : 노블 앤 뽀또그라피
- 글 : 진동선
- 펴낸곳 : 시공아트 (2005.6.29.)
- 책값 : 1만 원


 (1) 배에서 갈매기 사진 찍는 사람


 옆지기와 아이하고 배를 타고 영종섬을 다녀왔습니다. 인천사람한테 영종섬은 고작 10분 거리로 배를 타고 들어가 볼 수 있는 몹시 가까운 섬입니다. 저는 이 배를 1994년에 마지막으로 타고 2010년에 탔으니 열여섯 해 만에 탔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뻔질나게 탔던 배인데,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는 꼭 한 번 타고는 다시 탈 일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저는 이무렵부터 인천을 떠나 살았고 인천으로 돌아올 일이 퍽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배삯 250원으로 오간 영종섬인데, 아버지가 장봉섬에서 분교장으로 일하셨기에 중학생 때에는 어머니와 함께 다달이 아버지를 뵈러 배를 타러 장봉섬에 가고자 먼저 영종섬으로 들어가서 버스를 타고 영종섬 끝까지 간 다음 다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 길을 들어가곤 했습니다.

 지난날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에는 ‘새우깡 같은 과자를 갈매기한테 던지는 일’은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그러나 다시금 곰곰이 떠올리면 몇몇 분들은 갈매기한테 과자나 빵부스러기를 던졌습니다. 다만, 섬사람이라든지 우리 식구처럼 자주 들락거려야 하는 사람들은 과자이든 빵부스러기를 던지지 않습니다. 던질 만큼 과자나 빵을 넉넉히 사먹을 수 있지도 않았지만, 그럴 겨를이나 기운이 없었으니까요. 갈매기한테 과자나 빵부스러기를 던지는 사람은 ‘어쩌다가 배를 탄’ 사람이거나 ‘처음 배를 탄’ 사람이거나 ‘놀러다니고자 배를 탄’ 사람들뿐입니다.

 열여섯 해 만에 영종섬 들어가는 배를 타는데, 배에 탄 사람은 몇 없습니다. 젊은 아가씨 둘이 보입니다. 두 사람은 바지런히 새우깡을 던지고 갈매기 무리는 이들 가까이 붙어서 새우깡을 얻어먹으려고 합니다. 이윽고 중국 관광객이 스무 사람 남짓 탑니다. 이들도 젊은 아가씨를 좇아 과자를 갈매기한테 던집니다.

 갈매기한테 새우깡이나 과자를 던지는 분들은 다들 손에 사진기를 들고 있습니다. 새우깡 던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달라붙는 갈매기를 사진으로 찍으며 달려드는 갈매기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이분들한테 사진이란 무엇일까 살짝 헤아려 보고는 지나칩니다. 이분들한테 갈매기는 어떤 목숨일까 한동안 생각해 보고는 고개를 돌립니다. 갈매기들이 저 새우깡이나 과자부스러기를 먹으며 목구멍이 막히거나 속이 더부룩해지는 줄을 하나도 살피지 않으니까 이렇게 바보스레 새우깡을 던지고 과자부스러기를 던지고 하겠지요. ‘새우깡 받아먹는 갈매기는 소화불량에 걸리거나 목구멍이 막혀서 죽습니다’ 하고 알려준들 알아먹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알아먹을 관광객이었다면 조용히 갈매기를 바라보기만 할 뿐 무얼 던진다고 생각하지 않겠지요. 던져 주려면 싱싱한 날물고기를 던질 노릇입니다.

 아기를 데리고 3층으로 올라가 앉아 밥을 먹이며 곰곰이 돌아봅니다. 어쩌면 사진 찍는 사람들한테는 갈매기 사진을 찍자면 옆에서 새우깡을 던져 주어야 할 노릇입니다. 그래야 새우깡을 받아먹으려는 갈매기가 아주 가까이에서 날갯짓을 멈춘 채 날며 사진으로 그럴싸하게 찍혀 줄 테니까요. 바닷바람을 가르며 멈추어 있는 날갯짓을 사진으로 가까이에서 찍기에는 ‘뱃전에서 새우깡 던져 주기’를 할 때만큼 좋은 때가 없을 테니까요. 아주 적은 돈을 들이고도 멋지다는 사진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새우깡을 던지면서 갈매기가 무리지어 달려드는 모습을 뒤로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이 사진 한 장이 얼마나 즐겁거나 멋진 추억이 될까 궁금합니다. 다른 곳에 놀러가서도 이와 비슷한 얼거리로 사진을 찍고 사진을 남기며 사진으로 추억을 만들고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2) 소설과 만나지 못한 사진말 《노블 앤 뽀또그라피》


 사진평론을 하고 있는 진동선 님은 《현대사진가론》(태학원,1998), 《사진의 메카를 찾아서》(태학원,2000), 《한 장의 사진미학》(사진예술사,2001), 《현대사진의 쟁점》(푸른세상,2002), 《진실의 시뮬라크르》(푸른세상,2002), 《영화보다 재미있는 사진 이야기》(푸른세상,2003), 《사진과 역사적 기억》(눈빛,2003), 《시간의 풍경》(눈빛,2004),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아카이브북스,2005), 《사진, 영화를 캐스팅하다》(효형출판,2007), 《사진가의 여행법》(북스코프,2008), 《쿠바에 가면 쿠바가 된다》(비온후,2009), 《좋은 사진》(북스코프,2009), 《그대와 걷고 싶은 길》(예담,2010)과 같은 책을 꾸준하게 써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사진 이야기를 널리 펼치면서 나누는 몫을 단단히 맡고 있습니다. 《노블 앤 뽀또그라피》는 2005년에 내놓은 책으로, ‘사진을 만난 소설’ 또는 ‘사진을 다루며 이야기를 풀어 가는 소설’을 하나하나 들면서 사진이 우리 문학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흔히 ‘영화가 만난 사진’이라든지 ‘영화와 어우러지는 사진’을 다루는 사람은 있지만, ‘소설이 만난 사진’을 다루는 사람은 진동선 님을 빼고는 거의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무래도 사진쟁이 가운데 문학을 즐겨 읽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더러, 사진쟁이 가운데 ‘책을 가까이하면서 내 이웃 삶을 들여다보거나 헤아리거나 만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 나만의 시선, 나만의 세상보기. 신현림은 사진으로 자신을 말한다. 세상과 나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세상을 통해서 나를 보는 열린 시선을 갖는다 … 기억을 위한 이미지, 삶의 증거로서의 사진. 구효서는 소설 속에서 사진으로 그리움과 상처를 뽑아내고 보듬는다 … 윤대녕이 바라본 사진은 ‘거울’과 ‘창’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에게 사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 이청준은 사진이 어떻게 미래를 찍을 수 있는지를 문학적 행위로 완성한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행위만 있을 뿐 해석은 나중에 행해지기 때문에 사진은 언제나 미래라는 관점을 보여준다 … 작가에게 사진은 눈의 기억과 동등한 무게로 자리한다. 눈이 본 역사를 사진도 보았기를 바란다. 눈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사진이 더욱 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상징적 표현을 담아낸 문학 작품이 바로 김소진의 〈동물원〉이다 ..  (22, 24, 75, 93, 160, 173쪽)


 진동선 님은 《노블 앤 뽀또그라피》에서 신현림, 구효서, 안도현, 김원일, 김인숙, 윤대녕, 최일남, 이청준, 공지영, 조세희, 신경숙, 김주영, 남상순, 하성란, 박일문, 전경린, 김소진, 배수아, 한강, 함정임, 이렇게 스물한 사람 작품을 들춥니다. 소설쟁이 이름을 살피면 하나같이 나라안에 손꼽히는 분들이요, 이분들이 모두 당신들 소설에서 ‘사진을 만났다’고 하면 뜻밖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사진이라고 남다른 문화이거나 예술이지 않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노래를 듣고 춤을 즐기며 영화를 보듯,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쟁이만 사진을 찍으란 법이 없습니다. 쟁이만 그림을 그리고 쟁이만 글을 쓰란 법이 없습니다. 대학교수라야 글을 쓰겠습니까. 중학교만 마친 분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와야만 사진을 찍겠습니까. 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 없다 하더라도 사진기를 쥘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안에 이름난 소설쟁이 스물한 분 작품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나 어렵잖이 만날 수 있는 ‘사진을 만난 소설’이요, ‘사진이 만나려는 소설’인 셈입니다. 우리한테는 사진과 소설이 만난 이야기를 따로 찾으려 애쓰기보다는 사진과 소설이 ‘만나서 이루어 내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짚으면서 우리 삶을 다시금 들여다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뜻이 있고 값이 있으며 사랑과 믿음이 있는 셈입니다.


.. 찰나의 예술인 사진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상처가 되고, 눈물이 되고, 그리움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진의 특성이다 …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슬퍼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되찾을 수 없는 육신, 돌아올 수 없는 시간,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기억이 그것이다 … 사진은 실재할 수 없는 욕망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사진 앞에서 현실이 될 수 없는 욕심에 놀라 미끄러진다 ..  (32, 45, 137쪽)


 진동선 님은 소설을 하나하나 들추면서 이 작품 어느 대목에서 사진이 나타나고, 이 작품을 통틀어 사진이 어떻게 녹아들고 있는가를 밝힙니다. 소설쟁이마다 사진을 당신 삶이나 문학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껴안는지를 읽어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를 놓칩니다. 《노블 앤 뽀또그라피》에 나오는 소설쟁이 스물한 사람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사진을 말하’고자 소설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들 스물한 사람뿐 아니라 소설을 쓰는 어떠한 사람들도 ‘사진을 말하’려는 뜻에서 소설을 쓰지 않습니다. 소재나 주제가 ‘사진’이 될 수 있다 하여도 사진을 말하는 소설이 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소설이든 오로지 하나, ‘삶을 말하기’입니다.

 이리하여, 이 책 《노블 앤 뽀또그라피》에서는 크나크게 아쉽다고 느낄 대목이 자꾸 드러납니다. 진동선 님은 “찰나의 예술인 사진”이라고 틈틈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사진은 조금도 “찰나의 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찍히는 ‘기계 도구’로 바라보기에는 사진기란 아주 잠깐인 모습을 찍는 연장이라 볼는지 모르나, ‘아주 잠깐’을 찍고자 아주 기나긴 나날을 기나긴 생채기와 웃음을 부대껴야 합니다. 삭이고 되뇌고 생각하고 느끼며 어루만지지 않고서는 아무런 사진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진기 단추를 누른다고 모두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종이조각에 끄적인다고 모두 글이 되지 않습니다. 겉보기로는 책이요 영화요 옷이요 집이요 사람이요 밥이요 할는지 모르지만, 속보기로는 책다운 책이 아니거나 영화다운 영화가 아니거나 옷다운 옷이 아니거나 집다운 집이 아니거나 사람다운 사람이 아니거나 밥다운 밥이 아닌 때가 아주 잦습니다. 안타깝게도, 진동선 님 스스로 너무 멋을 부리며 읊는 말마디 때문에 이 책에서는 사진이 사진으로 빛을 못 보곤 합니다. 소설 하나하나로 살폈을 때에 더없이 아름다운 작품이요, 이 더없이 아름다운 작품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사진으로 드러나는 삶자락을 옹글게 잡아채지 않다 보니, “사진은 실재할 수 없는 욕망의 그림자”라느니 “고통과 가난 속에서도 사진의 주인공은 미소 짓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되풀이합니다.


.. 한 장의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이미지라는 것도 알고 보면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보이지 않는 약속과 같다 … 어느 민족의 영정사진도 슬프거나 우는 모습이 없다. 약속이나 한 듯 행복한 모습, 기쁨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다. 고통과 가난 속에서도 사진의 주인공은 미소 짓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 사진을 알아봄으로써 잊혀진 시간을 되찾고 존재를 되찾는다 ..  (41, 81, 120쪽)


 사진은 우리 삶을 담습니다. 만듦사진이라면 ‘실제로는 없는 모습’을 담는다 할 만할 텐데, ‘실제로는 없는 모습’을 만들자면 ‘실제로 있는 모습’을 알아내거나 찾아내어서 뒤틀거나 비틀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찍는 사진이든 없는 모습을 만드는 사진이든 모두 우리 ‘실제로 꾸리는 삶’을 느끼거나 살피거나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진은 “실재할 수 없는 욕망의 그림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진은 바로 “참말 나 스스로 아프거나 기쁘게 부대끼는 삶을 담아내는 발자국”입니다. 이러한 발자국은 욕망이 될 수 있고 꿈이 될 수 있으며 부질없는 몸짓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될 수 있고 미움이 될 수 있습니다. 웃음이 될 수 있으며 눈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떠하게 자리매김하거나 뜻매김을 하든 사진은 우리 삶입니다.

 영정사진은 “고통과 가난 속에서도 사진의 주인공은 미소 짓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은 덧없는 중얼거림과 같습니다. 괴로운 삶이면 괴로운 삶이 영정사진에 고스란히 담깁니다. 가난한 삶이면 가난한 삶이 영정사진에 그예 스밉니다. 다만, 괴롭거나 가난하다고 해서 “나쁜 삶”이 아닙니다. 괴롭거나 가난해야지만 “좋은 삶”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괴롭거나 가난한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괴로우면서도 웃는 삶이 영정사진에 담기고, 부자이면서 잘 먹고 잘 지냈다는 삶이면서도 슬프게 우는 모습이 영정사진에 담깁니다.

 《노블 앤 뽀또그라피》 맨 마지막 쪽 맨 마지막 글월에 이르러, 진동선 님은 “결정적 순간이란 없다”고, 바로 “작고 작은, 흔하디흔한, 하찮은 삶의 순간의 부활”이 소설이요 사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마지막 대목 마지막 글월은 《노블 앤 뽀또그라피》라는 책에서 214쪽에 걸쳐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모두 뒤엎습니다. 215쪽짜리 책에서 214쪽에 걸쳐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한낱 겉멋이었음을 스스로 밝힙니다. 진동선 님 스스로 소설쟁이 스물한 사람 작품을 들여다보며 ‘소설이 만난 사진’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시나브로 ‘따로 소설이 사진을 만나려 한 적이 없’음을 깨달았거든요. 아니, 진작에 깨닫고 있었으나 일부러 숨기고 있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소설이든 사진이든 그저 우리 사람들 삶을 담는 몸짓이나 손길’이라고 밝히고 있는지 모릅니다.


.. 사진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또 다른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사진은 찍은 사람의 감정, 혹은 찍힌 사람의 인생의 부분이다 … 인간의 눈은 카메라의 눈과 다를 게 없다. 사진의 눈도 육신의 눈처럼 현실 한가운데서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본다 … 문학과 사진, 어떤 창에도 결정적 순간이란 없다는 말은 진정한 삶이란 결정적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영원성의 순간도 작고 작은, 흔하디흔한, 하찮은 삶의 순간의 부활이어야 한다 ..  (96, 136, 215쪽)


 책을 꾹 덮으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진동선 님이 처음부터 이 마지막 글월에서 보여주려던 생각을 보여주었다면 《노블 앤 뽀또그라피》라는 책은 아주 다른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진동선 님은 처음부터 바로 이 마지막 글월을 보여주면서 ‘소설이 만난 사진’이든 ‘사진이 만난 소설’이든 하는 허울에서 벗어나 사진은 무엇이요 소설은 무엇이며 우리 삶은 무엇인가 하는 참으로 깊으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나서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처음부터 진동선 님 스스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나섰다면 《노블 앤 뽀또그라피》를 쥐어든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헤아리면서 더 깊고 살가우며 따뜻한 마음밭을 일굴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뿐 아니라, 이 책을 쓴 진동선 님 스스로 당신 마음밭을 더욱 알차고 아름다우며 기쁘게 추스르거나 다스릴 길을 찾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우리는 아름답고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나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며 좋아하기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연극과 영화를 합니다. 우리는 나 스스로 아름다움이 사랑스럽고 멋스러우니까 농사를 짓든 운전대를 쥐든 두 다리로 걷든 하면서 이 땅에서 땀흘리며 부대끼고 살아냅니다.

 사진이란 머나만 남쪽나라에 있지 않습니다. 머나먼 동쪽나라에도 있지 않습니다. 사진이란 바로 우리 집에 있고 우리 이웃한테 있고 우리 아이한테 있으며 우리 동무와 우리 살붙이 누구한테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이란 바로 삶이기 때문입니다. 소설로 빚어내는 이야기란 다름아닌 우리 삶에서 비롯하고, 시이든 연극이든 영화이든 모두 우리 삶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사진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상업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무슨 사진이든 모두 우리 삶에서 이야기를 퍼올립니다. 우리 삶을 우리 스스로 얼마나 진득하게 붙잡거나 마주안을 수 있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집니다.

 사진이 아름답도록 하자면 나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답도록 일구면 됩니다. 사진이 훌륭하도록 하자면 나 스스로 내 삶을 훌륭히 가꾸면 됩니다. 사진이 멋스럽도록 하자면 나 스스로 내 삶을 멋스럽게 돌보면 됩니다. 사진이 사랑스럽도록 하자면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스레 어루만지면 됩니다. 사진이 소설을 만나서 우리 삶으로 뿌리내리는 발자국을 좇으려던 진동선 님 손자취가 여러모로 아쉽고 안쓰럽다고 느끼며 《노블 앤 뽀또그라피》라는 책 하나를 책꽂이에 꽂아 놓습니다. 아무쪼록 2011년 2012년 …… 2020년으로 고이 이어지는 진동선 님 삶자락에서 사진 하나 알뜰히 뿌리내리면서 아름다이 자리잡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사진을 만나고 싶었던 소설들이 아닌, 삶을 만나고 싶고자 사진하고 함께 길을 걸었던 소설들일 뿐입니다. (4343.6.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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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 끊이지 않는 분쟁, 그 현장을 가다
이유경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한국이 ‘평화’로울 때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8] 이유경,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아이 사진을 찍으면서 아이 눈높이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하고 눈을 마주하는 가운데 사진을 찍는 동안 반드시 아이가 제 사진기 눈을 맞대고 바라볼 때에만 찍어야 할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옆지기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일산으로 이틀 마실을 다녀왔습니다. 날이 무척 더워 큰 들통에 물을 담아 아이를 씻겼습니다. 들통 뒤로는 일산 부모님이 돌보는 텃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선 채로 아빠 눈높이에서 아이 씻는 사진을 한 장 찍다가는 쭈그리고 앉아 아이 눈높이에서 아이 씻는 사진을 다시 한 장 찍습니다.

 아이하고 어울리며 놀 때에는 멀거니 선 채로 아이 손을 잡고 놀 수 없습니다. 허리를 구부리든지 쭈그리고 앉든지 땅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아야 합니다. 아이하고 키높이를 맞추어야 하고, 아이와 걸음걸이를 맞추어야 하며, 아이하고 힘을 맞추어야 합니다.

 아이랑 놀다 보면 아이는 틈틈이 안아 달라며 두 팔을 활짝 펼치곤 합니다. 그저 칭얼대느라 이러할 수 있으나 다리가 아프고 힘들어 쉬고 싶기 때문이곤 합니다. 어른이라면 혼자 마땅한 자리를 찾아 털썩 앉거나 드러누울 테지만, 아이로서는 어버이 품에 안겨 쉴 때가 가장 느긋하고 좋습니다. 우리 집식구들은 아이한테 아기수레에 태울 뜻이 없이 스물석 달을 살아냈는데, 아이가 쉴 때라든지 아이가 잠들 때에 품에 안거나 등에 업고 다니자면 제법 고단하지만, 이렇게 고단한 만큼 비로소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보람이 무엇인가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기수레를 안 쓰는 까닭이라면, 우리가 아기수레를 써 온 역사란 얼마 안 되고 언제나 업거나 안고 키워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기수레를 태울 만한 판판한 길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한테는 자가용이 없고, 자가용이 없는 우리들은 늘 걸어다니며, 늘 걷고 몸을 쓰면서 살아가는 아빠랑 엄마이기에 아이 또한 걷기를 좋아해 주며 함께 다니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스물석 달에 걸쳐 아이를 안고 걸리며 다니노라니 아이는 걷기뿐 아니라 뛰기를 몹시 좋아하고, 계단 타고 오르기를 아주 즐깁니다. 그예 스스로 튼튼하고 싱그럽게 자라 주는구나 싶어요.


.. 대학 시절 한국 사회에서 내가 꿈꾸는 기자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기도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 시드니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머니께서는 이것저것 담아 상자 하나를 보내 주셨는데, 그 안에는 이런 편지가 들어 있었다. “유경아, 공부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몸 상한다. 세상 보는 것도 다 공부니라.” … 몇 명이 죽었고, 무엇이 파괴되었고, 어디가 공격을 받았고 등의 나열식 ‘분쟁 르포’엔 정치도, 역사도, 그리고 분쟁도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  (4, 18, 39쪽)


 평화로운 삶이란 평화로운 넋과 평화로운 몸과 평화로운 말로 이루어 간다고 느낍니다. 정치가 평화롭다든지 경제가 평화롭대서 내 삶이 평화롭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정치와 경제와 사회가 평화롭지 않더라도 우리들은 우리 삶을 한결같이 평화롭게 가꾸며 지킬 수 있다고 느껴요. 어수선한 정치일 때라도 봄이 되면 봄꽃이 맑게 피고, 어지러운 경제일 때라도 여름이 되면 여름꽃이 환하게 피며, 어리석은 사회일 때라도 가을이 되면 가을꽃이 곱게 핍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봄꽃을 닮도록 가꾸고 여름꽃을 받아들이도록 일구며 가을꽃을 곰삭이도록 돌볼 때에 참다운 평화이지 않느냐 싶어요.


.. 나는 ‘인생 선배’라는 이름으로 존중을 강요하는 어르신들의 나이 따지기 병을 아주 질색한다. 그 존중이라는 건 나이, 성별, 인종, 국적, 피부색을 불문하고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서로 주고받아야 할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작가 R씨의 인도기행문에 자극받아 인도를 찾았다고 했다. 성지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품고 온 그들에게 나는 카스트와 폭력, 힌두 극우주의와 점령 따위의 아주 낯선 이야기들을 녹음기처럼 풀어대며 초를 쳤다. 의도한 건 정말 아니었다 ..  (21, 100쪽)


 국제분쟁 전문기자라고 일컫는 이유경 님이 쓴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온누리 구석구석 싸움이 일지 않는 곳이 없다 보니까 이유경 님과 같은 ‘국제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가 태어납니다. 국제분쟁만을 다루는 글과 사진이 넘치도록 많으며, 우리들은 수많은 국제분쟁이 얼마나 자주 많이 터지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아파하는가를 알 길이 없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어슷비슷하다고 여길 만’한 국제분쟁이 많아서 웬만큼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 않고서는 이야기거리조차 안 되고 나라안 새소식에 안 실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벌회사 사장님이 돌아가시든 골목동네 가난한 할머니가 돌아가시든 같은 목숨값입니다. 대통령 한 분이 돌아가시든 농사짓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든 매한가지 목숨결입니다. 국제분쟁이라 할 때에도 우리한테 익숙한 나라에서 벌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쳐야 널리 알아줄 만한 다툼이나 싸움이 아닙니다. 왜 온누리 나라들마다 싸움과 다툼이 그치지 않는가를 꿰뚫으면서, 온누리 나라들이 저마다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울 삶을 나누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걸림돌을 찾아야 하는 국제분쟁 기자들입니다.


.. 버마는 내가 알고 있던 대로 ‘민주 대 반민주’같은 단순한 모순만 지닌 게 아니었다. 버마의 소수민족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50여 년 동안 타이-버마 국경이 접한 밀림에서 자치와 독립 무장투쟁을 벌여 왔고 이런 ‘민족해방 진영’은 반독재투쟁을 벌이는 다수 버마 족 중심의 ‘민주주의 진영’과 또다른 갈등과 모순 관계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두 진영 모두 군부독재를 반대하며 싸우고는 있지만, 그들 내부에서 ‘다수인종 대 소수인종’이라는 갈등의 골을 겪고 있는 셈이다 … 인도에서는 달리트와 하층 카스트, 무슬림, 여성 등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폭력, 고문, 그리고 심지어 살해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이 모든 폭력이 대국 인도의 천태만상 속에 도드라지지 않을 뿐이다 … 인도 ‘본토’에서도 하층 카스트와 소외 계층이 민주주의와 정의를 만날 겨를은 별로 없는 판에 점령 지역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점령지 카슈미르에서 민주주의는 세월 좋은 양반네들이나 부리는 멋있는 ‘구라’였고, 일반 주민들이 당하는 일상적 모욕과 위협과 폭력은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  (36∼37, 173, 331쪽)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이라는 책에는 이 나라 신문과 방송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이야기가 새록새록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처음 나온 2007년과 오늘 2010년을 견주어 헤아린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그리 나아지거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치거나 죽는 사람들 숫자하고 이름이 다를 뿐입니다. 권력을 쥔 이들은 총칼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내리누르거나 들볶습니다. 더 큰 권력을 바라고 더 힘센 총칼을 거머쥐려 합니다. 커다란 권력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이 큰 힘으로 더 너른 사랑과 믿음을 나누려 하지 않습니다. 총을 녹여 호미를 만들고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고자 하는 권력자나 군인이란 없습니다. 총을 만들 돈과 품과 땀으로 우리 삶터를 아름다이 일구거나 칼을 만들 돈과 품과 땀으로 우리 이웃을 사랑하며 돌보려 하는 권력자나 군인이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우리 나라에서 군인 1만을 줄이거나 군 간부 1천을 줄이기만 하여도 온 나라 초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 ‘무상급식’을 이룰 수 있지 않겠어요? 군인 1만을 더 줄이거나 군 간부 1천을 더 줄인다면 온 나라 대학교에서 ‘무상교육’을 할 수 있겠지요. 군인 1만을 더 줄이거나 군 간부 1천을 더 줄인다면 온 나라 가난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뒷배할 ‘무상복지’를 이룰 수 있겠지요.


.. 다카도 그랬지만 또다른 일본 여기자 기요코 오구도 내 머리를 쳤다. 《카트만두의 봄 : 1990 저항운동》의 저자인 그녀를 카트만두 기자회견장에서 주의 깊게 바라본 적이 있다. 네팔어로 질문하고 알아듣는 유일한 외신기자였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서건 보통 영어로 큰 어려움 없이 대부분의 취재가 이루어졌지만, 현지어를 그렇게 구사하는 수준이라면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굵고 깊은 취재를 할 수 있는 천상의 조건이다 ..  (273쪽)


 국제분쟁을 전문으로 다루고자 발로 뛰고 눈물과 웃음으로 글을 쓰는 이유경 님은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이라는 책을 빌어 우리들한테 나즈막이 속삭입니다. “나는 또 기대한다. 한국 혹은 한국인이 꼭 연루되지 않은 분쟁이나 재난이라도 그 비명 소리가 절박하다면 귀 기울여 들어 주고 받아 적을 줄 아는 그런 통 큰 언론을. ‘한국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라고 끝나는 뉴스는 늘  ‘그 다음 뉴스는 없는 것으로……’라고 끝내는 그런 언론 말고(391쪽).” 이러한 속삭임은 내 밥그릇과 얽힌 일에서만 내 이웃과 동무를 생각하는 우리 삶이 아니라, 내 밥그릇하고 얽히지 않은 내 이웃과 동무 일에도 온 사랑을 쏟을 수 있기를 꿈꾸는 속삭임입니다.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살고 싶은 마음이라면 내 이웃 누구나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애쓰려는 마음이기를 꿈꾸는 속삭임입니다. 나 스스로 평화를 누리며 살고 싶은 마음이라면 내 동무 누구나 서로 미워하거나 괴롭히지 않으며 어깨동무하고 손을 맞잡으려는 마음이기를 꿈꾸는 속삭임입니다.

 나 스스로 내 눈높이에만 머물지 않고 내 이웃과 동무 눈높이가 되기를 꿈꾸는 속삭임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로서는 아이 눈높이로서 아이하고 부둥켜안기를 꿈꾸는 속삭임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으로서는 아이들 눈높이로서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살가운 배움터를 이루고픈 속삭임입니다.


.. 내가 변했는지 서울이 변했는지 아니면 서울이 원래 그런 녀석인 걸 내가 잠시 까먹었던 건지. 아무튼 서울은 ‘물질이 충만’한 도시의 거드름을 과하게 뽐내며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 거드름에 대한 거부감은 2주 만에 서둘러 서울을 떠나는 나의 발걸음을 위로해 주었다. 교보문고 10대 서적 코너에 깔린 ‘서울대와 하버드대로 가는 길’을 뒤로 하고 다시 방콕으로 갔다 ..  (72쪽)


 희망이란 낯선 생각이 아니나, 오늘 이 땅에서는 더없이 낯선 생각이기 일쑤입니다. 희망이란 찾아볼 길이 없이 돈만이 넘치는 오늘날 우리 터전입니다. 이리하여 더더욱 낯선 희망을 바랄밖에 없고, 희망이야말로 낯설지 않은 우리 삶이 되기를 바랄밖에 없습니다. 끊이지 않는 분쟁이란 서로서로 평화를 찾자는 몸부림일까요? 끊이지 않는 분쟁이란 기득권과 권력자가 더 큰 밥그릇을 움켜쥐려고 일부러 평화를 짓밟거나 짓누르는 소용돌이일까요? (4343.6.7.달.ㅎㄲㅅㄱ)


 ┌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인물과사상사,2007)
 ├ 글ㆍ사진 : 이유경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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