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산토 -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이선혜 옮김 / 이레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숫자는 삶도 사람도 경제도 평화도 아니다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40] 마리-모니크 로뱅,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밭갈이나 논삶이를 하는 젊은이나 푸름이나 어르신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사람은 1/1000이 채 안 된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스스로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꽤나 배불리 먹고 있습니다. 배불리 먹을 뿐 아니라 밥쓰레기 또한 어마어마하게 내놓습니다. 벌써 열 몇 해 앞서부터 ‘남녘사람이 먹다 버린 밥쓰레기 부피만으로도 북녘사람을 모두 먹이고 남는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제 땅을 일구며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사람은 밥쓰레기를 내놓지 않습니다. 다 못 먹었다든지 남기고 썩힌다든지 하는 일이란 없지만, 어쩌다가 남는 밥이 있다면 땅한테 돌려주거나 짐승한테 내어줍니다. 그러니까, 제 땅을 손수 일구는 사람한테는 밥쓰레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개밥이든 돼지밥이든 거름이든 되도록 다시금 손을 놀립니다.

 밭갈이나 논삶이를 하는 사람이라든지 해 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밭에서 돌을 고르고 흙을 뒤엎으며 판판하게 다지는 데에 얼마나 많은 품과 땀과 나날을 보내야 하는지를.

 고기집에서 상추 한 접시 더 달라고 말하는 일은 쉬울 뿐 아니라, 돈조차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흔한 푸성귀 상추 하나를 접시에 올리도록 씨앗을 뿌리고 돌보고 거두고 손질하여 내놓기까지 드는 품과 땀과 나날이란 참으로 많고 깁니다. 그런데 돈으로 치면 ‘스스로 땅을 일구어 얻는 상추’보다 ‘돈 몇 푼 치르는 일’이 아주 적게 치일 뿐 아니라 품이며 나날이며 안 써도 됩니다. 요즈음 도시사람들 ‘한 시간 일삯’이라 하여도 ‘농사꾼이 일구어 거두는 상추’ 부피란 꽤나 많으며, ‘하루 일삯’만 되어도 열흘 내내 배터지게 먹어도 다 못 먹을 만한 부피가 됩니다.

 조금이나마 머리가 구르는 사람이라면 흙을 만지며 땅을 일구는 일은 안 하기 마련입니다. 형편없는 품삯에 몸은 고되며 얼마나 긴 나날을 땀흘리는 일에 바쳐야 하는데요. 책상맡에 앉아 펜대를 굴린다든지 셈틀을 또닥거리며 수백 수천만 원이나 억대 돈을 벌어들여 돈굴리기를 하는 데에 마음과 머리와 몸을 쓸 뿐입니다.


.. PCB는 50년 동안 변압기와 산업용 수력기계의 냉각액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도료, 잉크, 종이 등 다양한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윤활액으로도 사용되었다 … 몬산토케미컬스컴퍼니는 최초의 인공감미료인 사카린을 제조하여 조지아에 위치한 신흥기업인 코카콜라에 전량 판매했으며, 뒤이어 바닐라와 카페인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 우리는 그가 ‘유령도시’라고 부르는 곳으로 들어갔다. “다 버려진 집들이에요.” 데이비드 베커는 심하게 낡았거나 아예 폐허가 되어 버린 허름한 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채를 기르던 텃밭이랑 물이 심하게 오염되었기 때문에 다들 떠날 수밖에 없었죠.” … “우리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산업화된 농업의 팽창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수출에 역점을 두는 이러한 농업 형태는 가족농을 몰아내고 있어요.” ..  (30∼31, 416쪽)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시골집을 사랑하거나 아끼며 시골살림을 신나고 즐겁게 꾸리려는 젊은이나 푸름이나 어르신은 그리 안 많습니다. 모두들 하나같이 도시로 나오며 도시에서 일감과 놀이감을 찾고 도시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동무를 사귑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쓰는 교과서에서 시골살림을 옳고 바르게 다루는 적이란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직업을 알려주거나 보여준다’는 자리에서는 으레 도시에서 하는 일만 나오지, 시골에서 하거나 할 만한 일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과서며 사회며 문화며 예술이며 정치며 경제며 온통 도시에만 쏠려 있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면서도 내 손에는 물을 안 묻히는 데에 쏠려 있습니다. 밥하기, 빨래하기, 쓸고 닦기, 애 키우기, 살림 꾸리기는 아예 다루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떤 어린이나 푸름이나 젊은이도 ‘학교에서 밥하기를 배운’ 적이 없을 뿐더러,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 가운데 손수 ‘빨래하고 집안 쓸고 닦거나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분은 거의 안 보입니다.

 누구나 전문 기능인이 되어 있으며, 누구라도 전문 기능인이 되도록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교사는 교육 전문 기능인이지, 옳거나 바르거나 곱거나 참되거나 착하며 아름다운 한 사람이지 않습니다. 교과서를 잘 다루는 교육 기능인일 뿐인 오늘날 우리 터전 사람들입니다. 법을 잘 다루고 의료 기술을 잘 다루고 자동차를 잘 다루고 기계를 잘 다루고 할 뿐입니다. 그저 공만 잘 차서 나라밖 무슨무슨 대회에 나가면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그예 얼음판을 잘 지쳐서 무슨무슨 기록을 세우면 뛰어난 사람이 됩니다. 피아노만 잘 치면 된다거나 책만 들입다 파면 된다거나 연구실에서 온 하루 파묻히면 된다거나 빵 반죽만 잘 하면 된다거나 할 뿐입니다.

 스스로 제대로 된 삶을 꾸리지 않아도 되는 도시살이입니다. 밥·옷·집에다가 아이를 키우는 몫은 돈을 들여 다른 사람한테 맡기면 된다고 여기는 도시살이입니다. 틀림없이 바깥밥을 사먹을 날이 있고, 손수 누에를 치고 물레를 자으며 베틀을 밟고 바느질을 하여 옷을 기울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쁘고 할 일이 많은데 내 집을 어떻게 손수 지어서 사느냐 할 만합니다.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은 마땅히 있어야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밥·옷·집에다가 아이마저 다른 사람 손에 맡긴 채 돈 하나만 벌면 내 삶이 아름다이 마무리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밥·옷·집에다가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떠맡기는 가운데 내 삶을 즐겁고 알차게 꾸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모든 사실을 뻔히 알면서 오로지 이익을 위해, 환경을 오염시키고 사람들을 유독물질로 오염된 환경에 방치시킬 수 있었을까? … “어떻게 해서든 이윤을 남기려는 생각이 그들의 영혼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어요. 그들에게는 오로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는 거죠.” … 대법원의 놀라운 판결은 아무도 감히 입에 담지 못하는 표현인 ‘생명체의 사유화’를 가능하게 했다. 뮌헨이 위치한 유럽 특허청은 미국의 판례를 근거로 1982년부터 미생물에 대한 특허를 발부했으며 1985년부터는 식물, 1988년부터는 동물 그리고 2000년부터는 인간의 태아에 대해서도 특허를 발급하고 있다 ..  (36∼37, 324쪽)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요즈음 들어 비로소 알려지고 있는 ‘죽음을 만드는 기업’ 가운데 하나인 몬산토를 파헤치는 책입니다. 500쪽을 웃도는 두툼한 책은 몬산토 하나만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은 몬산토가 얼마나 거짓부렁이요 거짓말쟁이요 거짓스레 돈을 벌어들이는가를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나 또다른 ‘죽음을 만드는 기업’ 이야기를 다루자면 고작 500쪽 남짓 한 책으로는 모두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 둘레 모든 ‘죽음을 만드는 기업’ 이야기를 다루자면 500만 쪽이 아닌 500억 쪽으로도 모자라리라 봅니다. 몬산토는 ‘죽음을 만드는 기업’ 가운데 겨우 하나입니다.

 〈록키 호러 픽처 쇼〉라는 영화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름 ‘RKO’를 세운 자본가는 또 다른 곳에서는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팔아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팔아 거둔 돈으로 영화배급을 하고 영화 찍을 돈을 댄다 할 수 있는 노릇입니다. 우리들은 즐겁고 재미나게 보는 영화 하나일 뿐이지만, 정작 어느 영화 하나를 즐겁게 재미나게 보고 있는 동안 지구 맞은편에서는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대준 무기를 갖고 피튀기게 싸우며 죽고 죽이는 아픔이 터지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 삶터 맞은편에서 전쟁무기가 어마어마하게 팔리고 쓰이기 때문에 우리가 안방이나 극장에서 하하호로 깔깔낄낄 웃으면서 영화 하나를 즐길 수 있습니다.


.. “세수할 때나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에이전트 오렌지가 담겨 있던 빈 통을 이용하는 동료들도 있었어요. 제초제에 다이옥신이 들어 있다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정부는 모든 걸 알고 있었죠.” … “누군가 박사님께 rBGH를 투여한 소의 우유를 권한다면 드시겠습니까?” “아마도 사양할 겁니다.” 마가렛 하이든이 대답했다 … 1998년 10월 몬산토 홍보 담당 이사인 필 엔겔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GMO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은 몬산토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가능한 한 제품을 많이 파는 것이다. 안전성 확보는 FDA가 할 일이다.” ..  (79, 211, 281쪽)


 ‘죽음을 만드는 기업’이란 사람들과 사람 삶터와 뭇 짐승과 푸나무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면서 돈 하나만 벌어대는 기업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이들 ‘죽음을 만드는 기업’은 어떻게 죽음을 만들어 팔면서 엄청나게 큰 돈을 벌어댈 수 있을까요? 이 몹쓸 기업은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는 이를 알아채지 못하면서 우리 스스로 죽음이라는 벼랑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을까요?

 ‘우리 몸을 살리고 우리 터전을 살리는 먹을거리’를 지구라는 터전에서 일구어 마련하자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인공감미료이든 화학첨가물이든 유전자조작식품이든 식품첨가물이든 만듭니다. 우리 몸을 살리기 때문에 인공감미료를 만들어서 쓰지 않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서 인공감미료를 씁니다.

 우리들은 ‘아주 값싼’ 인공감미료를 넣은 먹을거리 앞에서 게걸스레 굽니다. 아주 값싼 인공감미료를 넣었으니 ‘우리 몸을 살리고 우리 몸에 좋은 먹을거리’하고 견주어 대단히 값싼 ‘공장에서 만든 먹을거리’를 사들입니다. 참말로 유기농과 무농약이 좋다고 여긴다면, 농사꾼이 땀흘려 땅을 일구어 먹을거리를 얻기까지 얼마나 긴 나날과 많은 품이 드는가를 헤아리면서 ‘옳고 바르며 알맞춤한’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옳고 바르며 알맞춤한’ 값을 치르려 하지 않습니다. 되도록 더 싸게 장만하고 싶어 합니다. ‘죽음을 만드는 기업’은 바로 이 같은 우리들 매무새를 꿰뚫어보고 나서 죽음을 만들면서 떼돈을 법니다. 우리 스스로 더 값싼 것만을 찾으며 우리 삶을 살리려 하지 않으니까, 죽음을 만들어도 돈은 돈대로 벌고 이름은 이름대로 높이며 권력은 권력대로 누립니다. 이러는 동안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죽음 구덩이에 내몹니다. 처음에는 아주 적은 돈으로 온갖 물질과 먹을거리를 누리는 듯 보이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우리 몸이 망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마음과 삶 또한 허물어지고 있는데, 이를 하나도 못 느끼고 못 알아채며 못 보고 맙니다.


.. “사람들은 녹색혁명 덕분에 인도가 식량자급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 오늘날 인도는 매년 7400만 톤의 밀을 생산하는 세계 제2의 밀 생산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아세요? 토양은 황폐해졌고, 수자원은 염려스러울 만큼 감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환경 전반에 걸쳐 오염이 발생했고, 단일경작의 확대로 다양한 식량생산에 차질이 생겼어요. 또,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농업 형태에 적응하지 못한 수만 명의 영세농이 농토를 잃고 빈민굴로 이동했어요.” ..  (491쪽)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때에는, 적어도 집 안쪽에서 스티로폼 농사를 짓거나 꽃그릇 농사를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삶터 얼거리와 내 몸과 마음 틀을 깨달은 사람일 때에는, 더 많은 돈이 아닌 더 아름다울 내 삶을 헤아리며 시골살림으로 돌아설 줄 알아야 합니다.

 한 달에 천만 원을 벌거나 삼백만 원을 번다고 해서 내 삶이 즐거울까 모르겠습니다. 한 달에 천만 원을 번다지만 내 몸을 살리지 못하는 먹을거리만 받아들이는 가운데 나 스스로 내 손을 놀리며 흙을 만지고 싱그러운 물과 바람을 맛보는 기운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내 삶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기쁠까 모르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망가져서 우리 곱고 좋은 나날을 병원에 ‘돈을 갖다 바치며’ 마무리를 해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맨 처음부터 돈바라기 삶이 아닌 사랑바라기 삶으로 나아가고, 학벌바라기 아닌 믿음바라기 삶으로 나아가며, 권위바라기 아닌 꿈바라기 삶으로 나아갈 노릇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는 책을 읽고 몬산토라는 기업이 얼마나 돈에 눈이 멀어 죽음을 만들고 있는가를 알아챘다면, 몬산토 하나로 그치는 ‘죽음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요, 우리 나라에도 숱하게 ‘죽음을 만드는 기업’이 넘치고 있음을 읽어내는 가운데, 나 스스로 죽음이 아닌 삶을 생각하고 찾는 매무새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래, 내가 여태껏 엉터리로 살았네. 이제부터는 참되게 살아야지.’ 하고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을는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시살이를 떨쳐내며 아름다운 삶을 찾아 돈을 손에서 놓을 수 있을는지요.

 숫자는 삶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며 경제도 아닙니다. 숫자는 평화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며 교육도 아닙니다. 숫자는 평등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며 과학도 아닙니다. (4343.7.5.달.ㅎㄲㅅㄱ)


 ┌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이레,2009)
 ├ 글 : 마리-모니크 로뱅
 ├ 옮긴이 : 이선혜
 └ 책값 :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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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끝무렵에 나왔어야 할 책이 

7월을 넘기고도 아직 안 나오고 있다. 

그나마 이번 주에 나오기로 해 놓고 

다시 한 주가 늦추어진다. 

내 책이지만 

내 책 소식을 말하기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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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갈이


 화요일(6/29)에 살림집을 충주 산골마을로 옮겼다. 목요일(7/1) 아침까지 살림살이를 그럭저럭 갈무리하고, 낮나절에 집 곁에 딸린 땅뙈기에서 돌 고르기를 했다. 돌을 고르고 흙을 살짝 판판하게 해 놓으려 했으니 밭갈이를 했다손 칠 수 있다. 틀림없이 시늉으로는 밭갈이를 했다. 그러나 밭갈이를 했다고 선뜻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우리 두 사람은 밭갈이를 했다. 이 손바닥 텃밭에 무엇을 심으면 좋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았으나 밭갈이를 했다. 돌을 고르는 동안 다른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았고, 다른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다. 그저 흙을 뒤엎으며 돌이 나올 때마다 바지런히 골라낼 뿐이었다. 콩이나 깨를 심을 수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심을 콩이나 깨는 어디에서 얼마쯤 얻어야 할까. 오늘 동이 트면 옆지기가 눈을 뜨기 앞서 조용히 괭이를 들고 나와서 돌을 마저 고르고 땅을 다져야지. (4343.7.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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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7-02 08:59   좋아요 0 | URL
이제 인천골목길 사진 대신 충주호의 사진을 보게 되는 걸까요? 새로운 곳이 고향이 되길 기원합니다.

파란놀 2010-07-02 11:24   좋아요 0 | URL
충주호는 너무 멀어서~
저희는 자가용도 안 몰고요~

그냥, 산골마을에서 살아가는
돼지 세 마리 ㅋㅋㅋㅋ
이야기를 드문드문 사진으로 담으리라 봅니다 ^^
 


 새책을 읽으며


 새로운 책은 얼마나 새로운 책일는지 궁금합니다. 새로 나오는 책은 여태껏 나온 책들에 깃든 좋은 열매를 알알이 얻어 누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새옷을 입은 책은 이제까지 쏟아진 책들에 서린 아쉬운 대목을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다듬으면서 거듭났는지 궁금합니다.

 헌책방에 가면 헌책을 만납니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헌책은 거의 모두 ‘다시 널리 팔리기 힘들어 보이는’ 책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헌책방마실을 즐깁니다. 오늘날 새로 나온다고 하는 책들이 예전 책들한테서 좋은 열매를 살뜰히 받아먹었다고는 느끼지 않기 때문이요, 지난날 책들한테서 아쉬운 대목을 곰곰이 살펴 고쳐 세웠다고는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책은 똑같은 책입니다. 모든 사람은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책은 새로 태어나서 읽히다가 스러지고, 모든 사람은 새로 태어나서 자라다가 죽습니다. 다만, 모든 책과 사람은 똑같이 목숨이 있으나, 똑같은 결이나 흐름은 아닙니다. 예전 책은 더 예전에 나온 책한테서 새숨을 물려받으며 제 나름대로 꾸리는 삶을 담다가는 오늘날 책한테 제 숨을 물려주고는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가 앞선 푸나무가 맺은 씨앗으로 태어나며, 앞선 푸나무가 숨을 거두어 온몸으로 삭힌 목숨값으로 새로 살아가듯, 책은 앞선 책들이 있어 새로움이란 옷을 입습니다.

 새책방 책꽂이에는 틀림없이 새책이 꽂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새책들 가운데에는 예전 책한테서 목숨을 나누어 받지 않았거나 목숨을 나누어 받으려 하지 않는 책이 꽤 많구나 싶습니다. 더욱이, 이 새책들은 스스로 제 목숨을 다 바쳐서 ‘뒷날 새로 나올 다른 책’한테 저희 목숨을 기꺼이 내어줄 생각이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껍데기는 틀림없는 새책이나 속살은 하나도 새책이 아니요, 바야흐로 책이라 말할 수조차 없는 녀석, 이를테면 돈나부랭이라든지 권력나부랭이라든지 명예나부랭이로 뒹굴고 있는 종이뭉치이기 일쑤라고 느낍니다.

 새책을 만나며 새마음 새사랑 새힘 새빛이 되기란, 오늘날 우리 누리에서 몹시 힘겹습니다. (4343.6.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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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스타 수도원 2층 창가에서


 자동차를 몰고 있는 분은 자동차가 달리며 내는 소리 때문에 찻길 둘레 동네가 얼마나 시끄러운가를 느끼지 못합니다. 더 좋은 차가 나와서 차를 달리는 사람과 차에 탄 사람이 ‘차 소리를 덜 느낀다’ 할지라도, 자동차에 탄 사람이 느낄 소리는 아주 작습니다. 자동차가 달리는 찻길은 몹시 시끄럽습니다. 100미터 아닌 1킬로미터 바깥까지 자동차 소리는 울려퍼집니다.

 자동차를 몰면 몰수록 우리 삶터는 더욱 시끄럽습니다. 버스와 전철을 타도 시끄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버스가 다니는 길가나 전철이 지나가는 철길 둘레에서 살아 본 분이라면 대중교통이라 해서 시끄러움이 덜하지 않음을 잘 알리라 봅니다. 자동차이든 버스이든 전철이든, 또 기차이든 배이든 비행기이든, 타야 할 때에는 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자동차에 몸을 싣는 일이란 얼마나 뜻이 있거나 값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참말 타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타고 있는가요. 거의 아무 생각 없이 자동차를 장만하거나 차를 몰거나 차에 오르지는 않는가요.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 집식구들이 차분하고 조용히 지내는 가운데 온몸에서 길어내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기계라서 싫다거나 환경을 무너뜨려서 싫지는 않습니다. 참된 소리, 곧 참소리가 아닐 때에는 슬프고 가슴아픕니다. 삶을 밝히고, 삶을 북돋우며, 삶을 즐기는 소리를 나 스스로 내고 싶습니다. 내 둘레 모든 목숨들이 저마다 제 목숨을 빛내고 살리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4343.6.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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