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34 : 독후감과 느낌글과 서평과 책이야기

 제 깜냥껏 즐겁게 읽은 책 하나를 놓고 느낌글을 씁니다. 제가 쓰는 느낌글은 저 스스로 즐겁게 읽은 책 하나가 제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가를 적바림하는 글입니다. 숙제처럼 하는 독후감이 아니요, 어딘가에 내놓아 글삯을 타내려는 서평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책 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야기입니다.

 저는 느낌글이자 책이야기인 글을 제 누리집에 꾸준히 올려놓습니다. 느낌글이자 책이야기를 쓴 지 열예닐곱 해가 지났으니 그동안 글을 꽤 많이 썼다 할 만합니다. 제가 쓴 느낌글이자 책이야기를 읽으며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고, 저와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저는 제 삶으로 받아들인 책 하나를 놓고 글을 씁니다. 책 하나가 징검다리가 되어 오늘 이 자리에서 이듬날은 어느 자리로 옮아 가는가를 곱씹으며 글을 씁니다. 책 하나를 발판 삼아 오늘 이곳에서 이듬날 저곳으로 어떻게 나아가는가를 헤아리며 글을 씁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받아들이는 느낌은 모두 다릅니다. 책을 읽으며 받아들일 느낌은 모두 다를밖에 없기에 책을 읽고 나서 쓸 느낌글이나 책이야기는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제가 쓴 느낌글이나 책이야기를 빌어 ‘독후감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 생깁니다. 책을 읽자니 번거롭거나 귀찮거나 돈이 아깝고, 책을 읽기는 읽었으나 뭔 소리인지 알 길이 없다면서, 제가 쓴 느낌글이나 책이야기를 요모조모 간추려 독후감 숙제를 내는 듯합니다.

 몇몇 아이들은 ‘담아 갑니다’ 같은 한두 마디를 남깁니다. 이런 말마디를 남기는 아이들은 ‘고맙게 정보나 자료를 얻으니’까 인사말을 남긴다고 생각할 텐데, 차라리 이런 인사말이란 남기지 않고 조용히 베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베끼려면 조용히 베끼고, 드러내어 인사말을 남기고자 한다면 독후감 숙제가 아닌 아이들 깜냥껏 느끼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쓸 노릇이라고 봅니다.

 제 느낌글이자 책이야기에 아이들이 남긴 인사말 댓글을 읽다가 울컥 하고 치밀어오릅니다. 그대로 둘 수 없다고 느껴 한 마디 달아 놓습니다. “독후감 숙제를 하려면 책을 읽지 마셔요. 책이 아깝습니다.”

 지난주에 살짝 인천으로 마실을 가며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있는 〈아벨서점〉에 들렀습니다. 아이와 아이 어머니와 저 셋이 다 다른 책시렁에서 책을 살피고 있자니, 키가 어머니보다 큰 중학생 아이가 어머니랑 들어와서는 《삼대》와 《운현궁의 봄》 같은 소설책을 찾습니다. 아니, 찾지 않고 책방 일꾼한테 “이런 책 있나요?” 하고 찾아 달라 말합니다. 스스로 찾지 않고 찾아 달라 이야기합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제대로 말하자면 ‘찾아보기 도움이’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책을 찾으려는 사람은 책방이나 도서관마다 책을 어떻게 갖추고 있는가를 살펴서 몸소 찾아야 합니다. 책은 책을 읽는 사람이 찾아야지 책을 파는 사람이 찾을 일이 아닙니다. 책을 읽을 사람 스스로 내가 바라는 책이 어느 자리에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책을 읽을 사람 스스로 책값을 치르고 책을 가방에 챙겨 책장을 손수 넘겨야 합니다. 책에 깃든 줄거리는 책을 읽는 사람 스스로 삭여서 책을 읽은 사람 스스로 느낌글이자 책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독후감·서평·신간소개·북리뷰’ 따위 말이 붙는 글은 책글이 아니요 느낌글이나 책이야기가 될 수 없을 뿐더러, 글조차 아닙니다. (4343.8.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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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과 글쓰기 2 :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그만두기


 지난 2000년부터 올 2010년까지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가 3204꼭지이다. 열 해에 걸쳐 3204꼭지를 기사로 올리며 받은 글삯은 모두 12249000원이다. 글 한 꼭지에 3000원이 조금 넘고 4000원이 살짝 안 되는 셈이다. 열 해에 걸쳐 1200만 원이라면 한 해에 120만 원인 꼴이요, 다달이 10만 원이 떨어졌다는 소리이다. 글삯을 모두어 놓고 생각하면 큰돈이라 여길 테지만, 낱낱이 파고들면 하나도 큰돈일 수 없다. 열 해에 걸쳐 3204꼭지라면 거의 날마다 한 꼭지씩 기사를 띄웠다는 소리요, 날마다 기사를 하나씩 썼을 때에 다달이 10만 원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니까, 이런 글삯은 이른바 최저생계비는커녕 최저임금에조차 닿지 않는다.

 올 2월, 누리신문 〈오마이뉴스〉 열 돌을 기린다는 자리에서 〈오마이뉴스〉 대표를 맡은 오연호 님이 지나가는 말로 슬며시 “이야, 원고료를 이천만 원이나 받은 사람이 있어요?” 하고 놀라워 한 적이 있는데, 원고료 이천만 원을 받은 분은 기사를 1000 꼭지 넘게 예닐곱 해를 썼다. 이분한테도 글삯을 한꺼번에 모두 더해 놓고 보면 큰돈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글 하나를 써서 띄우느라 들인 품과 땀과 나날을 헤아린다면 그야말로 푼돈일밖에 없다.

 ‘시민기자’라는 이름을 받고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글을 띄운 사람들은 큰돈을 번다거나 높은 이름값을 얻자고 글을 띄우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돈벌 생각이라면 이곳에 글을 띄울 까닭이 없다. 글을 바지런히 많이 띄운다고 돈이 될 턱이 없다. 그렇지만 적잖은 이들이 땀과 품과 나날을 바쳐 글을 띄웠고, 어느새 조용히 사라져 간다. 나 또한 열 해라는 햇수에서 멈춘다. 열한 해라든지 열두 해라든지 스무 해를 곱다시 이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곰곰이 헤아린다면, 한 달 10만 원을 글삯으로 번다 하여도 살림에는 어느 만큼 보탬이 된다. 그런데 한 달 10만 원 보탬을 하자며 들이는 품과 땀과 나날은 지나치게 많다. 한 달 10만 원 보탬을 안 하면서 이만 한 품과 땀과 나날을 우리 살붙이한테 들인다면 ‘돈벌이를 적게 하면서 훨씬 한결 더욱 즐겁고 기쁘며 보람찬 삶’을 영글 수 있다.

 나는 살림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집살림도 하고 바깥살림도 한다. 집살림이란 밥하고 빨래하고 치우고 아이 씻기고 하는 모든 일이요, 바깥살림이란 살림돈이니 찻삯이니 전화삯이니를 버는 온갖 일이다. 다만 아직 다부진 살림꾼은 아니다. 살림 시늉을 하는 사람이다.

 살림이란 살리는 일이다. 돈을 벌든 집안을 가꾸든 살리는 일이 살림이다. 나로서는 다달이 10만 원을 더 버는 일이 참된 살림일까, 아니면 10만 원이라는 돈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손길을 누리는 일이 참된 살림일까.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그동안 올렸던 글에 값하는 글삯이 줄잡아 3000∼4000원이지, 요 몇 해에 걸쳐 내가 글 하나 띄우며 받은 글삯은 글마다 2000원이었다. 그러니까 글 하나 여미는 데에 몇 시간, 글 하나 여미느라 이래저래 살피고 품 파느라 여러 날을 들이며 얻어들인 돈이란 2000원이었던 노릇이다. 이 돈 2000원이란 얼마나 고마운 품값인가. 그러나 이제는 이 고마운 돈에 매이기보다 더 고마운 우리 살붙이 사랑을 아끼고 싶다. 우리 살붙이 보금자리를 튼 산골마을 바람과 물과 하늘과 흙을 어깨동무하고 싶다. (4343.8.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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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Cinemusic 2011-08-03 12:44   좋아요 0 | URL
궁금한 걸 조금 풀 수 있었네요...인기글이든 아니든 그 정도 수입이신가요?

2011-08-04 0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 만들기
이기원 / 눈빛 / 1995년 3월
평점 :
품절



 ‘무엇 또는 누구’를 찍을까 걱정하지 말자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1] 이기원, 《세상 만들기》


 사회사진연구소를 꾸리던 이기원 님은 《그날 이후》(1990), 《노동자, 강철과 눈물의 빛》(1991), 《답하라, 전세계 노동자》(1993) 같은 사진책을 함께 내놓은 다음 새로운 사진책 《세상 만들기》(1995)를 우리 누리에 내놓습니다. 이기원 님이 아니고도 이 나라 공장 일꾼 삶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기원 님 앞으로나 뒤로나 공장 일꾼 삶과 이야기를 사진으로 알뜰히 담은 사람은 퍽 드뭅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사진을 찍는 적잖은 이들은 이 나라에서 무척 많은 사람이 몸담고 있는 공장을 사진감으로 삼지 않습니다. 공장을 비롯해 여느 회사 사무실을 사진감 무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사진찍기를 즐기는 교사가 제법 많습니다만, 당신 일터인 학교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사진감으로 맞아들이는 일이란 퍽 드뭅니다. 어쩌면 아예 없거나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적잖은 이들은 프랑스 파리를 돌아다닌다든지 에스파냐 산티아고를 걷는다든지 일본 도쿄를 거닌다든지 티벳이나 네팔 산기슭을 오르내린다든지 인도나 아프리카 땅을 떠돌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이 나라 적잖은 이들 작품은 으레 이와 같은 곳 삶을 스치거나 부대낀 이야기에 맴돕니다. 스스로 태어나서 자라며 복닥인 우리 누리 우리 터전을 오래도록 스스럼없이 살피거나 받아들이는 일이란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사진책 《세상 만들기》는 그리 잘 찍은 사진을 담지 못합니다. 사진책 《세상 만들기》는 이 나라 중공업 일꾼을 담습니다만, 몇몇 중공업 일꾼을 다룰 뿐, 조금 작은 공장 일꾼이나 더 작은 공장 일꾼을 다루지 못합니다. 중공업 일꾼은 다루지만 경공업 일꾼이라든지 옷 만드는 공장 일꾼이라든지 자전거 만드는 공장 일꾼은 다루지 못합니다. 아니, 다루려고 생각을 해도 다루지 못했거나, 다룬다고 해 보아도 책으로 엮어 줄 출판사를 만나기 힘들지 않으랴 싶습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님은 《Workers》라는 이름으로 온누리 일꾼들 삶을 사진 이야기로 적바림했습니다. 말 그대로 ‘일하는 사람’이니까 ‘일꾼’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기원 님은 《세상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우리 누리 일꾼들 삶을 사진 이야기로 갈무리했습니다. 말 그대로 이 땅 일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만들고 있’으니까 ‘세상 만들기’라는 이름이 걸맞습니다.

 그렇지만 아쉽습니다. 왜 ‘세상 만들기’는 “이기원이 찍은 한국이 중공업 노동자들”에서 첫머리이자 마지막이 되어야 했을까요. 다른 공장 일꾼 삶을 담아내어 ‘세상 만들기’를 잇달아 보여주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날마다 먹는 밥을 일구어 베풀어 주는 농사꾼들 삶을 사진으로 담아 ‘세상 만들기’라는 또다른 이야기를 엮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들이 어른이 되기까지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눈코 뜰 사이 없이 돌보고 어루만져 온 어버이들 삶을 사진으로 보듬어 ‘세상 만들기’란 여느 자리 여느 살림집 여느 아버지와 어머니한테서 언제나 엿볼 수 있음을 나누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진쟁이 이기원 님 한 분한테만 ‘우리 나라 숱한 세상 만들기’를 사진으로 담으라 말할 수 없습니다. 이기원 님은 이기원 님 당신이 할 수 있는 힘을 다 쏟아내어 “중공업 일꾼 삶”을 담았을 테니까요. 이기원 님 둘레에서 사진을 찍는 벗들이 다른 일꾼 삶을 들여다보며 담아내야 하며, 이기원 님 사진책을 즐겁게 마주한 뒷사람이 우리 둘레 숱한 일꾼 삶을 마주보며 실어내야 합니다.

 그나저나 사진책 《세상 만들기》는 “중공업 일꾼”한테조차 좀더 가깝고 살가우며 따스하게 다가서지는 못했다고 느낍니다. 꼭 살가도 님 사진책을 빗대어서 말한다기보다, 일하는 사람을 다루는 작품이라 한다면, ‘일하는 사람 손’과 ‘일하는 사람 몸’과 ‘일하는 사람 옷’과 ‘일하는 사람 터’를 좀더 오롯이 넓고 깊으며 차분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할 텐데요. 중공업 일꾼이 일하는 자리가 어떠하며 중공업 일꾼이 어떤 장비를 쓰며 어떻게 일하는가를 내보이는 사진으로는 퍽 괜찮다 여길 만하지만, 정작 ‘그래, 중공업 일꾼을 보여주어서 뭘 어쩔 텐데?’ 하는 물음을 풀지 못합니다. 본 대로 담는다고 사진이 아니요, 느낀 대로 찍는다고 사진이 아닙니다. 보았으니 본 이야기를 사진으로 되삭여야 하고, 느꼈으니 느낀 삶을 사진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일으켜야 합니다. 이기원 님은 이제까지 어느 사진쟁이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아예 하지 않던 뜻깊은 일을 굵은 땀방울 흘리며 일구어 냈습니다만, 가까스로 뗀 아장걸음에서 하나하나 튼튼하게 나아가는 매무새로 잇지 못했습니다.

 사진쟁이 이기원 님은 당신 사진책 《세상 만들기》 끝자락에 “끝으로 이 사진집이 눈빛 출판사에 손해나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붙입니다. 다른 때도 아닌 1995년에 공장 일꾼 사진책을 내놓는다는 일이란 참 힘들고 팍팍합니다. 자칫 국가보안법이니 뭐니 하는 그물에 걸릴 수 있습니다. 2010년이 된 오늘날까지 국가보안법 쇠사슬과 쇠그물이란 아주 단단하거든요. 이 나라에 공장이 수두룩하게 있을 뿐 아니라 공장에서 물건을 끝없이 만들지 않는다면 서울이고 부산이고 큰도시뿐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버틸 수 없으나, 정작 공장 일꾼 삶을 다루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연극이나 연속극이나 영화는 몇 가지나 있는가요. 아니, 있기나 있습니까. 더욱이 농사꾼 삶을 다루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연극이나 연속극이나 영화는 몇 가지나 나오며, 이런 문화와 예술이 팔리기나 합니까.

 공장 일꾼을 담는 사진은 ‘노동자 권리를 지켜 주려 한다는 정당’ 사람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공장 일꾼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진찍기입니다. 논밭에서 땀흘려 일하는 사람을 담는 사진은 ‘농업 운동’을 하는 사람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텃밭을 일구는 사람이든 논밭을 사랑하는 사람이든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진찍기입니다.

 이리하여,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아이 사진을 담고 애 아빠가 애 엄마 사진을 담으며 애 엄마가 애 아빠 사진을 담으며 ‘(집안에서) 일하는 어버이’ 삶을 알알이 엮을 수 있습니다. 여느 살림집 할매와 할배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담는 가운데 ‘일하는 할매와 할배’ 삶을 알뜰히 엮을 수 있습니다. 즐겨찾는 동네 구멍가게 일꾼 삶을 사진으로 엮을 수 있겠지요. 단골 책방 일꾼 삶을 사진으로 엮을 수 있습니다.

 사진감이란 먼 데에 있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먼 데에도 좋은 사진감이 있는데, 어김없이 가까운 데에도 훌륭한 사진감이 있습니다. 아니, 어김없이 가까운 데에 있을 뿐 아니라 바로 내 곁에, 그러니까 내 삶 한복판에 깃든 아름다운 사진감을 꾸밈없이 느끼며 받아들이어 사진으로 담을 줄 알지 못한다면, 머나먼 데에 있는 좋으며 애틋하고 거룩한 사진감을 이러한 좋음과 애틋함과 거룩함 그대로 담아낼 수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우리 살붙이 우리 아이 우리 이웃 …… 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살며시 이어지면서 우리 동무와 우리 짝꿍을 사랑하는 마음이 됩니다. (4343.8.25.물.ㅎㄲㅅㄱ)


― 세상 만들기 (이기원,눈빛,1995.4.10./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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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기


 〈조선일보〉를 보면서 〈조선일보〉를 나무라거나 꾸짖는 일은 틀림없이 뜻과 값이 있다. 〈조선일보〉를 나무라거나 꾸짖는 글을 쓴다면 꽤나 많은 사람이 읽으며, 꽤나 많은 사람한테 뜻깊고 값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와 달리, 우리 스스로 참되고 착하며 곱게 살아갈 길을 글로 쓴다면 거의 아무런 사람도 알아보지 못할 뿐더러 애써 읽어 준 몇몇 사람조차 속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선일보〉를 나무라거나 꾸짖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하든, 〈조선일보〉를 사랑하면서 즐겨보든 모두 똑같은 굴레 똑같은 물줄기가 되고야 만다. 우리는 〈조선일보〉를 생각하거나 사랑하거나 걱정할 사람이 아닌, 내 삶을 생각하거나 사랑하거나 걱정할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조선일보〉를 끊어야 하는 까닭은 또렷하다.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거나 슬기로운 길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참되거나 착하거나 고운 삶을 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땅에서는 〈조선일보〉라는 신문 한 가지만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거나 슬기로운 길을 안 걷고 있는가. 이 나라에서는 〈조선일보〉라는 신문 하나만 참되거나 착하거나 고운 삶을 저버리고 있는가.

 우리는 옳지 않고 바르지 않으며 알맞지 않은데다가 슬기롭지 않은 모든 신문을 끊어야 한다. 우리는 참되지 않고 착하지 않으며 곱지 않은 모든 책은 내려놓아야 한다.

 더 많이 알 까닭이 없다. 더 많이 읽을 까닭이 없다. 더 아름답게 알아야 한다. 더 아름다이 읽어야 한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스러운 몸과 마음이 되도록 살아야 한다. 〈조선일보〉 한 가지만 끊는다고 우리 누리가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에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를 덤으로 끊는다고 내 삶이 새로워지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신문만을 끊는 사람은 겉발림일 뿐이다. 이 세 가지 신문만 끊는다 하지만, 정작 이 세 가지 신문조차 끊지 못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이다. 우리는 〈한겨레〉와 〈경향신문〉뿐 아니라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레디앙〉 모두 끊을 줄 알아야 한다. (4343.8.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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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겨울 평화 발자국 6
강제숙 글, 이담 그림 / 보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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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 할머니를 짓밟는 겨울나라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 강제숙·이담, 《끝나지 않은 겨울》



 야누슈 코르착 님 삶을 다룬 그림책 《천사들의 행진》(양철북,2008)은 나라안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온누리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며 한삶을 보낸 어른 한 사람 이야기를 차분하고 곱게 보여줍니다. 위인전이든 훌륭하다는 사람 이야기이든 군인과 임금과 부자와 과학자와 운동선수만을 비추는 틀에 얽매인 이 나라임을 헤아린다면, 《천사들의 행진》 같은 그림책이 하나 나온 일이란 몹시 반가우며 대단합니다.

 우리 나라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나라밖 빛나는 어른인 야누슈 코르착 님 삶을 《천사들의 행진》에 담았다면, 사람들한테 제대로 읽히지 못한 나라안 빛나는 어른인 문힉환 님 삶을 그림책으로 담은 《갈 테야 목사님》(웅진주니어,2010)이 있습니다. 이제는 윤이상 님이나 임응식 님이나 최민식 님이나 추송웅 님 같은 분들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 나오기도 하며, 독재자 아닌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 같은 분 삶을 그리는 동화책이 나오기도 합니다. 아직 이 나라는 민주주의 나라라 할 수 없으나, 제법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듯한 모습을 책마을에서 엿볼 만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나라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다니는 배움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나라 제도권 학교는 모두 ‘입시 싸움터’이지 참다운 배움터가 아닙니다. 사람다운 삶을 배우고 사랑스러운 넋을 배우며 참다운 말글을 배우는 터전이 아닌 한국땅 학교입니다. 오로지 대학교바라기에 쏠린 시험문제 풀이터인 한국땅 학교입니다. 대학교라는 곳은 더욱 큰 회사에 들어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장사꾼을 키우는 자리로 탈바꿈했습니다. 참배움이 없는 나라가 민주주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참배움이 없는 대한민국이라면 봉건주의 나라이거나 제국주의 나라이거나 엉터리 나라입니다.

 지난 1998년에 쉰 몇 해 만에 정권이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참말 정권이 처음으로 바뀌며 나라가 크게 꿈틀거렸습니다. 다만, 정권이 바뀌었어도 막개발 정책은 고스란히 이어졌고,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삶을 즐겁고 아름다이 붙잡으며 오순도순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삶터를 지켜 주지 않았습니다. 예전 정권이든 바뀐 정권이든 또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정권이든 또다시 바꾸자고 하는 정권이든, 정치를 하거나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언제나 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할 뿐 아니라, 당신 스스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당신한테 있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이웃하고 나눌 생각이 없이, 당신은 당신대로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한편 돈있는 이들이 돈을 더 크게 불릴 수 있는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삶을 아름다이 가꾼다든지 넋을 따스히 돌본다든지 말을 알차게 빛낸다든지 하는 데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요.

 이 나라 껍데기는 살짝 민주주의 맛을 보았다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천사들의 행진》이나 《갈 테야 목사님》 같은 놀라운 그림책이 태어납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는 민주주의 겉만 살짝 핥을 뿐이기에 《천사들의 행진》 같은 그림책은 알찬 이야기를 담기는 했어도 지나치게 어둡습니다. 이 나라는 민주주의 속살을 사랑하려 하지 못하기에 《갈 테야 목사님》 같은 그림책은 참민주와 참통일을 꿈꾸는 삶이란 따분하지 않고 재미나면서 올바른 일임을 보여주기는 해도 꽤나 어수선합니다. 야누슈 코르착 님이 얼마나 밝고 시원하며 푸른 사람인가를 《천사들의 행진》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문익환 님이 얼마나 정갈하며 단단하고 눈물 많은 사람인가를 《갈 테야 목사님》은 드러내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그림책을 내놓기는 내놓습니다만, 큰어른이라 하는 분들이 걸었던 참길에서 ‘참’과 ‘길’을 살뜰히 읽어내어 곰삭인 뒤 그려 보이는 매무새는 아직 마주하기 힘듭니다.


.. 우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내려 달라고 했지만 그 사람들은 들은 척도 안 했어요. 트럭은 해 질 무렵에야 멈췄어요. 우리는 허름한 여관방에 짐짝처럼 떠밀려 들어갔어요 ..


 2010년 8월 15일에 맞추어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보리,2010)이 나옵니다. ‘정신대’, ‘위안부’, ‘성노예’ 같은 이름이 붙은 이 나라 여느 할머니 삶자락 하나를 들여다보는 그림책 하나 나옵니다.

 경상도 시골이든 강원도 시골이든 함경도 시골이든 전라도 시골이든, 여느 시골마을에서 땅을 부치고 땅처럼 엎드려 살아가던 사람들은 땅을 섬기지 않을 뿐더러 땅을 짓밟는 권력자한테 등허리와 팔다리 모두 짓이겨진 채 식민지살이를 했습니다. 식민지살이라면 으레 일본 제국주의만 떠올리는데, 제국주의는 일본에만 있지 않습니다. 중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으며 한국에도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든 제국주의 권력자가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모두들 제 나라 여느 자리 수수한 농사꾼을 군화발로 짓누른 채 돈과 이름과 힘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은 당신 뜻하고는 동떨어진 채 일본군한테 붙잡혀 ‘종군 위안부 삶’을 보내야 했던 할머니가 얼마나 아팠고 얼마나 괴로웠으며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그려냅니다.


.. 나는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지만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다시는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요 ..


 흔히 ‘정신대 할머니’라는 이름을 듣는 할머님이 조곤조곤 말문을 엽니다. 참으로 당신은 배우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는데, 당신은 제도권 학교를 배우지 못했을 뿐이지, 이 나라 산과 들과 바다와 냇물과 갯벌과 나무와 풀과 벌레와 짐승을 당신 어버이한테서 골고루 잘 배웠습니다. 당신은 큰 도시는커녕 작은 도시로 나와서 살아가지 않았을 뿐이요, 게다가 권력이든 재산이든 이름값이든 누려 보지 않았을 뿐더러 누릴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 나라에서 당신과 매한가지로 수수하고 나즈막하게 살아가는 모든 땅붙이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웃음과 눈물을 주고받는 삶을 보냈습니다. 시골에서는 논밭하고 사귀는 한삶이었고, 도시에서는 골목길하고 어깨를 겯는 한삶이었습니다.

 봄이면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김을 매며 가을이면 열매를 거두어 겨울이면 길쌈을 하지요. 살림을 하고 되살림을 하며 살림살이를 해 왔지요. 큰 돈벌이이든 높은 이름벌이이든 대단한 힘벌이(권력놀음)이든 해 보지 않았고, 할 생각이 없는데다가, 할 까닭이 없습니다. 봉숭아를 잘게 빻아 손가락에 물들이는 멋으로도 곱고 어여쁜걸요.


.. 나에게 남은 것은 옷 보따리 하나였어요. 나는 기차를 타고, 걷고 또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고향집 담 밑에는 여전히 봉숭아가 곱게 피어 있었어요. 나는 차마 들어서지 못하고 집 밖에서 서성거렸어요. 엄마가 나를 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 나왔어요 ..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은 책이름 그대로 이 나라에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나라 숱한 할머님들이 겪은 아픔과 슬픔을 그림과 글로 낱낱이 차분하게 보여주면서 ‘어떤 겨울이 버젓이 남아 있는가’를 알려줍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를 들이대면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보라고 말문을 엽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이야기인데다가, 학원이며 영어이며 게임이며 어지럽고 바빠맞은 나날에 고단해 아예 멀리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를 제발 숨 좀 돌리며 들어 보라며 손길을 내밉니다.

 ‘스펙’을 알거나 ‘아이템’을 아는 일이란 앎다운 앎이 아님을 들려주는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입니다. 돈에 사로잡히거나 가방끈에 얽매인 삶은 삶다운 삶이 못 됨을 보여주는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입니다. 이 나라는 일본 제국주의한테서 풀려났지만, 우리 스스로 ‘한국 제국주의’로 지내고 있다면, 예나 이제나 똑같이 서슬퍼런 겨울나라에서 꽁꽁 얼어붙을밖에 없음을 일깨우는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입니다.

 제국주의란 군대힘으로 이웃나라뿐 아니라 제 나라까지 못살게 들볶습니다. 사람들이 옳게 못 느껴서 그렇지, 우리 나라는 이웃나라로 마구 쳐들어간 적이 없다 하지만, 온누리에 손꼽힐 만큼 군대가 크며 무기가 많은데다가 큰돈을 군사힘을 불리는 데에 바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또한 제국주의임을 알아채야 합니다. 우리 나라 또한 교육이 교육답지 못하고 문화가 문화답지 않은 가운데 사회가 사회다움을 잃고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외치는 참교육이 아니더라도, 참말로 이 나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배우는 터전이 아닌 대학입시만을 바라보는 싸움터이잖습니까. 우리 나라에 무슨 문화가 있습니까. 우리 나라에는 장사만 판을 치고 유행과 사대주의만 감돌잖습니까. 우리 사회가 무슨 민주주의입니까. 평화와 평등하고는 동떨어진 채 푸대접과 따돌림과 괴롭히기가 넘실대잖습니까. 학교에서는 왕따요, 일터에서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차별인데, 집에서는 아주 단단한 남녀차별이 꿈쩍도 안 하며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예나 이제나 차디찬 겨울입니다. 우리 나라는 사랑스럽고 따스한 나라가 아니라 차디차고 매몰찬 겨울나라입니다.


.. 그때마다 나랑 순이는 눈물을 머금은 채 우리 꼭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자고 두 손을 맞잡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순이가 사라졌어요. 몰래 산에 올라가 바다에 몸을 던진 거예요 ..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을 다시금 넘깁니다. 이 그림책에는 슬프고 아린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슬프고 아린 이야기만 소록소록 담지지 않습니다. 겨울을 이야기하기 앞서 할머님은 봄을 이야기합니다. 할머님이 아리따운 색시였을 무렵 당신 어머님하고 봄나물을 뜯고 캐던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나날을 이야기합니다. 할머님은 당신 한삶을 이야기하며 끝자락으로 갈수록 눈물을 짓고 아파하셨을 테지만, 앞자락 이야기, 그러니까 봄날 당신 어머님하고 봄나물을 마주하며 땅에 몸을 붙이고 두 손에 흙물이 들던 이야기를 할 적에는 웃음을 짓고 좋아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할머님은 이 그림책 맨 마지막 대목에서 말하듯 “다시는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요.” 하고 이야기하며 살아가시겠지요. 그런데 할머님이 날마다 이 이야기만 꺼내고 살아가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할머님은 이날 이때까지 당신 한삶을 버티거나 이을 수 있던 뿌리는 무엇이겠어요. 할머님은 바로 흙과 같이 살아오며 당신 몸에 곱디고운 꽃송이 하나 피워올리는 분입니다. 당신 몸을 바쳐 꽃송이 하나 피도록 해 온 분입니다. 흙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스스로 흙이 되고 스스로 흙으로 돌아가는 분입니다.

 그림책 《끝나지 않은 겨울》 첫머리를 보면 할머님 얼굴과 모습을 아주 어둡게 담습니다. 쭈글쭈글 굵고 큰 당신 손만 밝게 그렸습니다. 아무래도 “끝나지 않은 겨울”을 보여주려 하다 보니까, 할머님을 괴롭혔던 어두운 그늘을 알리려 하다 보니까, 이렇게밖에 못 그리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렇지만, 글쓴이와 그린이가 좀더 할머님하고 오래오래 살가이 사귀었다면, 또한 ‘정신대 할머니’가 어디 먼 나라 사람이 아닌 당신 친할머니요 외할머니처럼 수수한 할머니 한 분임을 깨닫는다면, 첫머리부터 끝머리 그림까지 사뭇 새롭게 거듭나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위안부’ 할머니가 아닌 그냥 할머니입니다. ‘정신대’ 할머니가 아닌 그예 할머니입니다. ‘성노예’ 할머니가 아닌 그저 그대로 할머니입니다.

 우리는 할머니한테서 당신 삶을 귀담아들을 뿐입니다. 우리는 할머니한테서 당신 삶을 배울 뿐입니다. 우리는 할머니한테서 당신 삶을 얻을 뿐입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은 예나 이제나 어슷비슷하게 차디찬 겨울나라입니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할머니 가슴은 예나 이제나 한결같이 따스한 봄흙 봄나물 봄꽃입니다. 누군가 군화발로 당신을 짓이겼어도 옆으로 줄기를 누인 채 꽃을 피우는 할머니입니다. 누군가 총부리로 당신을 겨누었어도 스스럼없이 밥 한 그릇 소담스레 퍼서 “배고플 텐데 밥이나 좀 자쇼.” 하고 말을 건네는 할머니입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노상 봄이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늘 봄이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바로 봄입니다. 사내들만, 돈에 굶주린 사내들만, 돈에 미친 사내들만, 돈 때문에 제국주의에 몸과 마음 모두 팔아치운 사내들만 언제나 겨울입니다. (4343.8.24.불.ㅎㄲㅅㄱ)


― 끝나지 않은 겨울 (강제숙 글·이담 그림,보리,2010.8.1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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