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서는


 시골집에서는 일고여덟 시면 잘 무렵인데, 도시에서는 너무 시끄럽고 환하다. (4343.8.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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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의 힐링 포토 - 마음을 치유하는 사진
조선희 지음 / 민음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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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 좋아 삶을 빛내고픈 사진찍기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25] 조선희, 《조선희의 힐링 포토》



- 책이름 : 조선희의 힐링 포토, 마음을 치유하는 사진
- 글·사진 : 조선희
- 펴낸곳 : 황금가지 (2005.10.14.)
- 책값 : 17000원 → 23000원



 (1) 빛이 좋아 찍는 사진


 빛이 좋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이야기가 좋지 않으면 그림이나 만화를 그릴 수 없습니다.

 느낌과 생각이 좋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도 저도 좋지 않은 얄궂음투성이일지라도 삶이 좋으면 사진을 찍고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며 글을 씁니다.

 팔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골목마실을 합니다. 두 시간쯤 걷자니 살짝 비가 뿌릴 듯하다가 갭니다. 세 시간쯤 걸을 무렵 매지구름이 몰려들며 비가 퍼붓습니다. 지난날에는 소낙비라 했으나 오늘날에는 소낙비가 아닙니다. 지식인과 전문가들은 으레 ‘국지성 폭우’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골목을 걷다가 마주치던 퍼붓는 비이든 시골집이나 골목집에 살면서 마주하던 퍼붓는 비이든 어느 때이고 이 비를 놓고 ‘국지성 폭우’로 느낀 적은 없습니다. 오늘날 갑작스레 퍼붓는 비는 말 그대로 ‘갑작비’ 또는 ‘깜짝비’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름으로도 그닥 어울린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막비’쯤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요. 참말 마구 퍼붓다가, 참으로 마구마구 쏟아지다 그치다를 되풀이하고 있으니 ‘막비’라는 이름 말고는 달리 무어라 가리키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오늘 하루 막비를 숱하게 겪거나 느끼는 가운데 뜨거운 햇살을 함께 겪거나 느낍니다. 비가 올 때에는 비 느낌을 곱다시 실으며 사진을 찍으면 퍽 즐겁습니다. 눈이 올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이든 눈이 오는 날이든, 요즈음은 예전처럼 즐겁게 사진찍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반가운 비나 눈이 아닌 궂은 비나 눈이기 일쑤이며, 오래 가물다가 내리는 비마저 여느 비가 아닌 막비이기 일쑤인 탓입니다. 날씨가 미친 채 돌아간다면, 이 미친 채 돌아가는 날씨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이 고스란히 담아낼 사진에는 미친 기운이 스밀밖에 없습니다.

 골목동네에서 사진을 찍든 시골마을에서 사진을 찍든 집안에서 사진을 찍든 늘 같은 마음입니다. 언제나 빛을 받아들이거나 느끼는 가운데 사진을 찍습니다. 빛과 그림자를 아울러 담는 사진입니다.

 두어 해쯤 앞서 인천 골목동네 한복판에서 살아가던 나날, 깊은 밤에 곧잘 밤마실을 나오며 골목 사진을 흑백으로 담곤 했습니다. 깊은 밤 조용한 때에 벽에 기대거나 골목길 바닥에 퍼질러 앉아 1초나 2초나 3초쯤 셔터를 열고 사진을 찍을 때면 퍽 느낌이 좋았습니다. 아니, 참 느낌이 괜찮았습니다. 누가 알아주느냐 마느냐를 살피지 않으며 더없이 기쁘게 즐기는 사진찍기였습니다. 이 느낌을 즐기려고 따로 세발이를 안 쓰고 내 몸뚱이를 세발이로 삼아 밤골목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제 밤마실 사진은 따로 안 찍습니다. 밤마실 사진에는 밤마실대로 느낌과 멋이 있어, 이러한 느낌과 멋을 살리는 아름다운 사진 이야기를 엮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느낌과 멋을 나눌 만한 우리 나라가 아니로구나 싶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느낌과 멋을 나눌 만한 이 나라 삶과 문화와 사람이 되기는 힘들겠구나 싶어 더는 밤마실 사진을 안 찍습니다.

 그렇다고 낮마실 사진을 이 나라에서 제대로 나눌 수 있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낮마실 사진부터 제대로 삭일 수 있은 다음에 밤마실 사진을 삭인다고 생각합니다. 낮마실 사진조차 차분히 들여다보면서 낱낱이 새기는 맛과 멋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곱거나 착하거나 참된 밤마실 사진을 보여준다 한들 바위한테 책을 읽어 주는 꼴입니다.

 헤아려 보면, 바위한테 책을 읽어 준다고 쓸데없는 짓이 아닙니다. 바위한테 책을 읽어 주면 바위는 우리가 바위한테 바치거나 들이는 고운 넋을 찬찬히 받아들인다고 느낍니다. 참 그렇습니다. 텃밭에 일구는 무나 배추한테 곱다시 말을 걸어 보셔요. 봉숭아하고 채송화한테 예쁘게 이야기를 들려주어 보셔요.

 사진관에서는 빛을 만들고, 길에서는 빛을 봅니다. 사진관에서는 빛을 고르고, 길에서는 모든 빛을 껴안습니다. 사진관에서는 빛을 다루고, 길에서는 빛을 어루만집니다. 사진관에서는 빛을 알맞춤하게 움직이고, 길에서는 빛이 알맞춤할 때까지 움직이거나 기다립니다.

 사진관 사진이든 길 사진이든 빛을 담는 사진입니다. 빛을 만든다고 더 나쁜 사진일 수 없고, 빛을 본다고 더 나은 사진일 수 없습니다. 맨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삶이 좋다면 빛을 만들거나 빛을 보거나 좋은 사진을 일굽니다. 삶이 나쁘다면 빛을 만들든 빛을 보든 나쁜 사진만 쏟아냅니다. 삶이 곱다면 고운 사진을 일구며, 삶이 메마르다면 메마른 사진을 일굽니다.

 날씨가 궂을 때에는 되도록 사진을 안 찍으려고 합니다. 날씨가 미쳤을 때에도 웬만해서는 사진기를 감추려고 합니다. 미친 날씨가 걷히며 자연스러운 날씨로 우리 삶터가 예쁘며 맑고 맑은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무렵에 비로소 사진기를 쥐어들어 신나게 사진찍기를 즐기려 합니다. 저로서는 미친 날씨 미친 터전 미친 나라 미친 사람 미친 돈벼락 미친 이름값 미친 힘자랑 따위에 놀아나는 삶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러우며 따스한 가운데 넉넉하고 보드라운 사진을 즐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어서 둘레에 나눈다는 생각조차 안 합니다. 나 스스로 좋아하며 즐기는 사진이라면 내 둘레에서 내가 즐기는 사진을 곱게 받아들여 줍니다. 내가 나누기 앞서 둘레에서 받아들여 주는 사진입니다. 나로서는 내가 먼저 건네기 앞서 내 둘레에서 내 몸(사진)에서 우러나오는 빛깔이나 냄새나 느낌을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살아내며 사진을 즐기는 하루하루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찍기란 빛을 담는 즐거운 삶입니다.


 (2) 사진쟁이 조선희? 사진교수 조선희?


 사진을 찍으며 밥벌이를 하는 조선희 님 책 《조선희의 힐링 포토, 마음을 치유하는 사진》을 장만하여 읽고 볼 무렵, 조선희 님이 ‘사진쟁이’라는 이름에서 ‘사진교수’라는 이름으로 갈아탔다(그러나 사진찍기 일을 그만두지 않게 함께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나라에는 사진학과를 둔 대학교가 제법 있으니 사진을 가르치는 분이 꼭 있어야 합니다. 조선희 님 같은 분이라면 사진교수가 될 만한 그릇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이 책을 본 누군가가 내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이나 한 줄의 글 때문에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거나, 혹은 눈을 감고 깊은 마음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난 행복할 것이다. 누군가가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마음이 따뜻해졌다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다면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진가가 될 것이다 ..  (9쪽)


 그렇지만 어딘가 아쉽고 슬픕니다. 왜 조선희 님은 사진쟁이 길을 젖혀 놓고 사진교수 길을 가야 할는지요. 조선희 님 삶은 사진‘쟁이’가 아닌 사진‘교수’가 꿈이었을는지요.

 남들이 즐거웁기(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해서 남들이 즐거울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즐거웁게 살아가면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한다면 내 즐거움이 저절로 내 이웃한테 스며듭니다. 남들이 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즐거웁기를 바라거나 꾀하거나 꿈꿀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내가 일군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즐거웁다면, 굳이 내가 바라거나 꾀하거나 꿈꾸지 않아도 내 이웃은 내 사진을 들여다보며 나와 함께 즐겁습니다. 나 스스로 사진을 즐겁게 찍지 못한다거나 나 스스로 내가 사진을 찍는 가운데 내 마음을 따뜻하게 추스르지 않는다면, 내 사진이 제아무리 그럴싸하고 내가 내 사진에 붙인 말이 여러모로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겉껍데기가 따뜻해 보인다 해서 속알맹이가 따뜻할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람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스스로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사진을 가르치는 사람은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사진을 가르치는 사람은 사진을 가르칠 뿐입니다.

 사진찍기에 온몸을 바치는 길은 하루아침에 닦거나 세우지 못합니다. 사진가르침에 온마음 쏟는 길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거나 만들지 못합니다. 오래오래 차근차근 걸어가는 가운데 나 스스로 느끼지 못하며 문득 내 길을 갈 뿐입니다. 조선희 님이 사진교수라는 이름을 얻고자 했다면, 스스로 오래도록 사진교수가 되는 배움을 얻거나 다스리거나 키우거나 북돋우고 있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저 같은 쥐대기는 잘 모르는 배움길을 무척 다부지게 걸어가고 있으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배움길을 걷는 사람은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배움길을 걷느라 바빠 죽겠는데, 아니 배움길을 걸으며 살피고 곱씹으며 익힐 이야기가 한 가득인데 사진찍기에 틈을 내어줄 수 없습니다.

 사진찍기를 하는 사람 또한 같습니다. 사진찍기를 하느라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라거나 빠듯해 고단한데, 아니 사진찍기 한길을 걸어가며 돌아보고 되씹으며 곰삭일 이야기가 흘러넘치는데 사진가르침에 겨를을 낼 수 없습니다.


.. 길들여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남편을 따라 나들이를 온 일군의 여인들은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남편의 눈치를 보며 황급히 얼굴을 가린다. 그리고 남편들은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며 마치 자신의 소유물을 자랑하듯 거만한 표정을 짓는다. 수백 년 수천 년 이어진 그들의 문화이지만 그 순간 난 부아가 치민다. 그러나 그녀들은 나를 더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마냥 어린아이들처럼 웃어댄다 ..  (26쪽)


 부질없는 소리일는지 모르나, 사진찍기는 대학교를 다니며 배우지 못합니다. 사진찍기는 사진기를 장만해서 스스로 찍어야 배웁니다. 사진찍기를 가르치는 가장 뛰어나며 가장 놀라운 스승이란 사진기입니다. 사진찍기를 가르쳐 줄 사람이란 바로 ‘내가 사진으로 담고자 하는 사진감이 되어 줄 사람(모델)’입니다.

 덧없는 말일는지 모르나, 사진찍기를 하기 앞서 마음닦기를 해야 합니다. 마음닦기를 하지 않고 사진기만 쥐어든다면 ‘사진다운 사진’ 한 장 얻지 못합니다. 사진이란 내 눈에 들어오는 ‘퍽 그럴싸한 모습’을 찍어서 남기는 종이 한 장이 아닙니다. 사진은 삶입니다. 내 삶이요 내 이웃 삶입니다. 내 삶을 나부터 잘 모르고 내 이웃 삶을 나 스스로 더 깊숙하게 껴안거나 어루만지며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는다면, 예쁘장해 보이거나 멋있어 보인다는 ‘잘 찍은 사진’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이런 사진으로 사람들 마음을 따뜻하게 덥힐 수 있을는지요.


.. 하늘에도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하늘에 수많은 다른 모양, 다른 색깔의 구름 떼가 함께 존재한다 … 갑자기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난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나의 뇌리를 파고든다. 한살박이는 됐을까? 어린 동생을 머리에 이고 있는 네 살쯤 된 아이를 찍었다. 그리고 쑥스러워하며 간절하게 나를 바라보는 눈을 저버리지 못하고 돈을 건넨다. 그들에게 사진을 찍히는 행위는 생존의 수단이다 ..  (83, 90쪽)


 조선희 님이 어떠한 사진길을 걸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아니, 굳이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조선희 님은 그예 ‘사진을 찍는 사람’이니까,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느끼며 껴안을 노릇입니다. 당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몇인지 어디에서 태어나 자랐는지 무슨 사진기를 쓰는지 필름인지 디지털인지 마음에 아픔이 있는지 없는지 외팔이인지 외다리인지 애꾸눈인지 알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바지를 입는지 치마를 입는지 머리가 긴지 짧은지 얼굴이 갸름한지 네모진지 알아 보았자 쓸모가 없습니다. 당신이 무슨 대학교를 다녔는지, 또는 대학교를 안 나왔는지 나왔는지, 그냥 고등학교나 중학교만 마쳤는지, 아예 아무 학교도 안 다녔는지, 학교를 다녔다면 어떤 사람한테서 배웠는지, 어떤 사람한테서 어떤 삶을 배웠는지조차 소담스럽지 않습니다. 오로지 한 가지, ‘조선희 님은 사진을 찍는다’ 한 가지만 알아야 합니다. 이 한 가지만 아는 가운데 조선희 님 사진을 들여다볼 노릇입니다. 중학교 1학년 푸름이가 찍은 사진이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찍은 사진보다 훌륭해야 할 까닭이 없고, 고등학교 2학년 푸름이가 찍은 사진이 대학교 4학년 젊은이가 찍은 사진보다 덜 떨어질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입니다.

 자꾸 되풀이해야 하는 말인데, 조선희 님은 ‘사진을 찍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사진을 찍다가 한두 번, 또는 여러 번, 때로는 한동안 사진가르침이라는 길을 거닐며 사진찍기라는 길을 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인지라 지치거나 고될 때가 있거든요. 어느 때에는 뒷걸음도 쳐 보고 제자리걸음도 할 수 있어요. 반드시 앞으로만 나아가야 할 우리 삶이 아닙니다. 그런데 참말 조선희 님은 왜 강단에 서서 사진가르침을 베풀어야 할는지요. 조선희 님이 강단에 서서 젊은이한테 베풀 만한 사진찍기란 무엇일는지요. 조선희 님이 베풀 사진가르침이란 당신이 하고 있는 사진찍기에 다 담겨 있지 않은가요. 당신이 내놓은 사진과 사진책이 바로 당신이 하려고 하는 모든 말과 앎과 삶에 깃든 열매가 아닌지요. 사진찍기를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라면 조선희 님 사진과 사진책을 보면서 얼마든지 배우고 가다듬으며 갈고닦을 노릇 아닌가요. 구태여 이 말 저 말 덧붙이면서 젊은이 앞에서 지식을 떠벌이고 경험을 늘어놓아야 하는지요. 그렇게 한갓진 삶인 조선희 님이온지요. 사진찍기에 품과 땀과 삶을 온통 바치지 않고 사진가르침이라는 곁길에 접어들면서 당신 삶을 흘려보내고 있어도 괜찮은지요.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사진가르침이 어줍잖거나 모자란 길일 수 없습니다. 사진찍기를 하는 사람한테는 사진가르침이란 어줍잖거나 모자라다는 소리입니다. 사진가르침을 하는 이들한테도 사진찍기라는 샛길로 빠진다면 어줍잖거나 모자랄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한길을 걸어갈 사람이지 두길 세길 네길 닷길을 걸을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 집식구 밥벌이 때문에, 우리 살붙이와 동무와 이웃이 몹시 쪼들리고 괴로운 나머지 돈을 더 벌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길 세길 네길을 걷습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은 창작을 비롯해 번역 편집 강사 노릇까지 참 숱한 일을 하셨습니다. 어린이문학 창작으로는 당신 식구를 먹여살릴 수 없었거든요.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이원수 님조차.


.. 뭘 먹든 뭘 마시든 꼭 남길 만큼 주문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다. 이곳(인도)에 와서도 처음엔 그랬다. 밥이며 짜빠띠며 카레며 마구 시키곤 남겼다. 그 남긴 음식만큼 어느 순간 부끄럼이 생겨났다. 어린 시절 그릇에 붙어 있던 밥 한 알 때문에 할아버지께 듣던 설교가 생각난다. 잊고 있었다. 자연이니 환경이니 웰빙이니 떠들어대는 사이 우린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소한(?) 것들을 너무 사소하게 생각해 왔다. 물을 아껴 본 적이 언제였더라. 어린 시절 한겨울 양동이에 데워 놓은 뜨거운 물을 아껴 써 본 기억밖에 없다 ..  (132쪽)


 궁금합니다. 조선희 님은 배가 고픈가요? 어떤 배가 고픈가요? 배가 얼마나 고픈가요? 돈이 없어 배가 고픈가요? 돈은 있는데 마음배가 고픈가요? 돈은 있고 마음배도 고프지 않으나 어딘가 허전한가요?

 거듭 얘기하지만, 사진은 삶이고, 삶이 고스란히 사진입니다. 이제까지 걸어온 조선희 님 삶이란 ‘물을 아껴 써 본 기억’이 없는 삶이며, 이러한 삶이 고스란히 조선희 님 사진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면, 《조선희의 힐링 포토》라는 책을 내놓은 2005년부터는 조선희 님이 다른 사람 마음을 다스려 준다는 거룩한 뜻을 펼치기 앞서, 누구보다 조선희 님 마음을 다스리는 가운데 당신 삶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이끌어 당신 사진이 지난날과는 사뭇 다른 ‘이제부터는 물을 헤프게 쓰지 않으며 조금이나마 아낄 줄 아는 삶’이 되었는지요. ‘없어서는 안 될 사소한(?)’ 아름다움과 빛과 넋과 말과 몸짓과 이야기를 당신 사진에 오롯이 갈무리하는 사진쟁이 길을 튼튼하게 다지고 있으온지요.


.. 이 사진을 밖에 내걸고 어디에서 찍은 사진인 것 같으냐고 물으면 몇이나 답할 수 있을까? 여긴 뉴욕이다. 그것도 뉴욕 5번가다. 그 유명한 뉴욕 5번가에서 어떤 거지가 고양이 두 마리를 볼모로 동냥을 하고 있다. 물론 사람들은 돈을 준다. 고양이가 귀엽고 측은하므로 ..  (141쪽)


 사진찍기는 빛을 즐기는 삶입니다. 사진가르침은 빛을 나누는 삶입니다. 아무쪼록 어느 길을 걸어가시든 사진이란 빛을 바탕으로 일구는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에는 우리 삶을 짙고 고루 담아야 비로소 맑고 밝으며 고울 수 있음을 아로새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삶을 빛내는 사진찍기요, 삶을 비추는 사진가르침입니다.

 뉴욕이든 뉴욕 5번가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서울이든 서울 종로이든 사람이 사는 마을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이든 마이애미이든 사람과 자연이 부대끼고 있습니다. 춘천이든 전주이든 사람만 있지 않고 자연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비록 오늘날 큰도시이든 작은도시이든 자연은 찌그러지거나 짓눌려 있겠지만. (4343.8.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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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손


 책짐을 여러 시간에 걸쳐 쉬잖고 묶어 날라 쌓고 있다 보면 두 손은 빨개진다. 그러나 책을 묶고 나르고 쌓는 동안 두 손이 빨개지는 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새책이라 하는 책을 묶고 나르고 쌓아도 두 손은 책먼지와 책때를 타면서 새까맣게 바뀌니까. 나중에 손을 씻고 보면 두 손이 바알갛게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처음 하루이틀은 바알갛게 바뀐 손이 밤나절 잠자리에서 따갑다고 느낀다. 사흘나흘이 되면 바알갛게 바뀌던 손이 누런 빛으로 다시 달라진다.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아픔이 사라진다. 손바닥과 손가락이 이어진 마디 끝자락뿐 아니라 손가락과 손바닥에 통째로 두툼하게 꾸덕살이 박인다. 누런 빛이 지나면 예전 살빛으로 돌아오는데 예전보다는 조금 거무튀튀하거나 짙어진 살빛으로 자리잡는다. 다만, 책 묶기를 더 하지 않는다면 다시 노란 빛으로 살짝 바뀌다가는 금세 하얀 손이 되어 버린다. (4343.8.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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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땀


 인천 배다리에서 지난 2007년 4월부터 꾸리던 ‘사진책 도서관’을 충주 산골마을로 옮긴다. 책짐은 진작부터 쌌는데, 이 가운데 사진책을 맨 나중에 싸려고 남겨 놓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인천을 떠나기 앞서까지 사진책만큼은 마지막으로 찾아올 사람한테 보여주고 쌀 생각이었다. 이제 끝물 책짐인 사진책을 싼다. 어제 새벽 두 시 사십 분까지 쌌고, 오늘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서 싸고 있다.  어느덧 아침 여덟 시 이십오 분인데, 책을 싸는 내 등줄기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땀방울은 똑똑 방울져 떨어진다. (4343.8.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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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쏙 봄이 와요 (보드북) - 봄 편 똥강아지 봄여름가을겨울
심조원 지음, 김시영 그림 / 호박꽃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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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나비!” 하고 외치며 웃는 딸아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 심조원·김시영, 《쏙쏙 봄이 와요》



 인천에서 살던 때, 동네 골목 마실을 하노라면 으레 나비를 만났습니다. 동네 골목 곳곳에는 크고작은 꽃그릇에 갖가지 풀과 꽃과 나무가 자랐으며, 골목 골골샅샅에는 크고작은 텃밭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와 흙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나비가 날고 벌이 윙윙거립니다. 그렇지만 모든 골목동네에서 나비를 만날 수 있지 않습니다. 퍽 많은 골목사람이 당신 살림집 둘레에 꽃잔치를 벌여 놓고 있을 때에 비로소 나비를 만납니다.

 산골마을에서 살고 있는 요즈음, 집에 들어온 나비를 내보내느라 날마다 바쁩니다. 며칠 앞서는 사마귀가 ‘뜯어진 모기장 틈바구니’로 들어왔습니다. 귀뚜라미나 방아깨비나 쇠파리까지 우리 살림집으로 자꾸자꾸 들어옵니다. 미처 모기장을 달지 못한 창문으로 들어오고, 밥을 하며 살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옵니다.

 아이가 《쏙쏙 봄이 와요》라는 그림책을 집어듭니다. 인천 골목집에 깃들던 때에는 《까먹자 빠작》이라든지 《옹기종기 냠냠》을 퍽 자주 집어들며 엄마나 아빠보고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어 달라 했는데, 두 돌을 지난 아이는 시골집에서 거의 《쏙쏙 봄이 와요》만 집어들며 혼자서 펼쳐 봅니다. 그러고는 나비가 나올 때마다 책을 한손으로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나비를 가리키며, “아빠, 나비!” 또는 “엄마, 나비!” 하고 외칩니다. 개미는 ‘기미’라 말하고, 콩은 ‘꽁’이라 말합니다. 바퀴벌레를 보고는 아직 ‘파리’라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세 사람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기 때문에 아이가 더는 《옹기종기 냠냠》을 안 좋아한다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도시에서는 떡볶이나 튀김이나 만두를 곧잘 사 먹을 수 있는 한편, 한 주에 한 번이나 두 번은 사 먹었기에 더 낯익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만. 시골로 살림집을 옮긴 뒤로는 두 달 남짓에 걸쳐 꼭 두 번만 떡볶이와 튀김을 사 왔거든요. 시골집에서는 읍내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사 와야 하니 힘들기도 하지만, 굳이 군것질거리를 사 와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꼭 그러하지는 않으나, 도시에서 마시는 물과 바람하고 시골에서 마시는 물과 바람이 다르기에 따로 주전부리가 없어도 넉넉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오늘날처럼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에는 아무래도 《옹기종기 냠냠》 같은 책이 재미나다고 여길 만합니다. 《쏙쏙 봄이 와요》에서도 군데군데 자연 내음이 깃들어 있습니다만(더구나 이 그림책은 그림결이 몹시 예쁘며 곱습니다. 티가 나도록 잘못 그렸다든지 엉뚱하게 그린 그림 또한 없습니다), 큰 틀에서는 도시에서 마주하는 아주 자그마한 자연입니다. 시멘트와 쇠붙이에 둘러싸이거나 가로막혀 숨이 가쁜 자연이에요. 자칫 자연을 아예 잊거나 모를까 걱정스러운 도시 살림이기에, 이런 도시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 나라 어버이들이 아이들한테 자연을 잊지 않도록 하고자 《쏙쏙 봄이 와요》 같은 그림책을 그렸다 할 텐데요, 곰곰이 들여다보면 우리 도시 터전에서는 이만 한 자연조차 쉽사리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도시에서 학교나 일터를 오가는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이나 자가용을 타고 있을 때에 나비를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 나비를 생각하기나 하나요. 파리와 모기와 바퀴벌레는 보거나 생각하겠으나, 나비나 벌이나 잠자리나 쓰르라미를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그나마, 도시 길거리에 심은 나무에서 매미가 울기는 하지요. 그런데 이 매미소리마저 자동차 소리에 파묻힙니다. 가게마다 크게 틀어 놓는 노래소리에 스러집니다.

 시골집에 있는 동안 따로 노래를 틀어서 들을 일이 없습니다. 밥을 하는 동안에도 집구석 어디엔가 들어와 있는 귀뚜라미가 노래를 하지만, 산속 수풀 어딘가에서 크고작은 새가 우짖습니다. 집 둘레 텃밭과 논밭에서 온갖 풀벌레가 지저귑니다. 바람소리를 듣고 빗소리를 듣습니다. 맑은 날에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깊은 밤에는 까만 하늘에 매달린 별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듯합니다. 보름달빛이 환한 밤에는 보름달이 속삭인다는 느낌이고, 바람에 나뭇잎 부딪는 소리라든지 빗물이 나뭇잎에 튕기는 소리라든지 닭이 똥을 누는 소리라든지 처마에서 빗물이 마당으로 똑똑 떨어지는 소리라든지, 모든 소리가 노래결과 매한가지입니다.

 가끔 도시로 볼일을 보러 가서 하루밤을 묵을 때에는 참 후덥지근합니다. 선풍기를 안 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여느 도시사람이라면 에어컨을 찾겠지만요. 우리는 도시에서 살던 때에도 선풍기를 들이지 않았으나, 시골에서는 더더욱 선풍기를 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날 그대로 날씨를 느낍니다. 달력이 아닌 낮밤 날씨를 살갗으로 느끼며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를 헤아립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날씨와 철을 받아들입니다. 우리 아이 어머니와 저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 또한 차츰차츰 몸으로 자연과 삶터를 맞아들입니다.

 아이가 《쏙쏙 봄이 와요》에서 나비만 찾는 모습이 알쏭달쏭하다가도, 아이가 이 그림책을 펼칠 때에 아이 삶터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란 오직 나비 하나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직 우리 세 사람은 시골집에서 감자를 심고 캔다든지 고구마를 심고 캔다든지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고작 두어 달째 살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한 해 두 해 살림을 이어가는 동안 감자를 심어 캐고, 고구마를 심어서 캐노라면 《쏙쏙 봄이 와요》를 들출 때에 “아빠, 감자!”라든지 “엄마, 고구마!” 하고 외치겠지요.

 그런데 아이가 “아빠, 감자!” 하고 외칠 무렵이면, 이제 우리 아이는 《쏙쏙 봄이 와요》는 이웃집 어린 동생한테 물려주고 다른 그림책을 들춰볼 나이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4343.8.26.나무.ㅎㄲㅅㄱ)


― 쏙쏙 봄이 와요 (심조원 글,김시영 그림,호박꽃,2010.3.16./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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