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우리 집 깃든 멧기슭이 며칠째 구름에 폭 싸인다. 방앗간에 가려고 읍내로 자전거를 타고 나올 무렵 비로소 햇볕을 구경한다. 아침 열 시가 넘고 열한 시가 되도록 우리 집 둘레 구름이 걷히지 않는다. 빨래 말리기는 젬병이다. 참말 우리 살림집은 멧집이구나. 그런데 읍내에 나와 보니 읍내사람조차 우리 멧집을 잘 헤아릴 수 없겠다고 느낀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더더욱 시골 멧집을 헤아릴 길이 없을 테지만, 읍내사람 또한 읍내에 구름이 내려앉아 폭 감싸일 일이 없으니까 한낮이 가깝도록 구름을 품으며 지내는 나날을 알 수 없겠지. 우리 딸아이가 며칠 앞서까지만 해도 품에 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으로 가리킨 뒤 “구·름!” 하고 말하면 “기·윰!”이나 “기·륨!” 하고 따라했는데 오늘은 “구·륨!” 하고 말한다. 아이가 커서 나중에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는지 모른다만, 이렇게 품에 안고 흰구름을 가리키며 함께 올려다볼 수 있어 좋다. (4343.10.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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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톱과 글쓰기


 엊저녁에 아이 손발톱을 깎다. 아이 오른엄지발톱이 또 부러졌다. 자주 깎아서 부러지지 않게끔 해야 하는데 늘 갖은 일에 치이니까 손발톱 깎기를 자꾸 잊거나 놓친다. 하기는, 내 손발톱조차 못 깎으니까. 아이 손발톱을 깎았으니 내 손발톱도 깎아야 할 텐데 언제쯤 틈을 내어 깎을 수 있을까. 문득 내 손톱을 들여다보니 오른쪽 넷째와 닷째 손톱이 한쪽으로 갈려 있다. 넷째 손톱은 갈린 끄트머리가 꽤 쓰라리다. 날마다 손에 물이 마를 새 없이 집일을 하고 손빨래를 하니까 내 손발톱은 남아날 수 없다. (4343.10.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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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신문


 광벌로 가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며 음성읍사무소에서 충북 신문들을 훑다. 운동경기 소식을 아예 안 싣는 신문이 여럿 된다. 운동경기 소식을 싣더라도 방송편성표하고 주식시세표를 안 싣는 신문이 꽤 많다. 어쩌면 충북 쪽 신문들은 이 세 가지를 거의 안 다루거나 다루더라도 아주 작게 다룬다고 할 만하다. 생각해 보면, 시골사람한테는 박지성이나 추신수나 김연아나 추성훈이나 …… 여자축구나 …… 거의 부질없는 얘기이다. 이런 얘기까지 시골신문이나 지역신문이 다룰 까닭이 없다. 시골신문이나 지역신문이라면, 시골사람 삶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와 지역 살림살이와 자연 터전을 보듬는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을 노릇이다. 그러나 충북 신문들은 시골사람 삶이나 지역 살림살이 이야기보다는 지역 정치꾼과 지역 공무원 이야기로 가득하다. (4343.10.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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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8 : 숨을 거둔 교육잡지와 에누리 책잔치

 다달이 나오던 교육잡지 《우리교육》은 첫 책이 나온 지 스무 해가 된 올 2010년에 그예 문을 닫습니다. 돈벌이가 잘 안 된다면서 출판사와 전교조 간부들은 ‘교육 월간지’를 ‘전교조 기관지’로 바꾸었습니다. 잡지 《우리교육》을 만들던 일꾼들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쫓겨났습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교사 권리를 지키거나 북돋우자며 일어선 전교조에서 ‘정리해고’를 했습니다.

 1990년 10월에 나온 통권 8호 《우리교육》을 펼칩니다. 지난 2003년에 숨을 거둔 이오덕 님이 쓴 글 하나 실려 있습니다. 이오덕 님은 문학 교육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시를 머리로 만들지 않고 어떻게 쓰나? 시는 머리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쓰는 것이다. 아니 손과 발로, 온몸으로 쓴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도 그렇다. 아무것도 겪은 것이 없이 머리로만 재주로만 만들어 낼 수는 결코 없는 것이 시다(95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시쓰기뿐 아니라 소설쓰기도 마찬가지이고, 동화나 신문글을 쓸 때에도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아니 글쓰기를 비롯해 집살림을 꾸린다든지 정치를 한다든지 교육운동을 한다든지 환경운동을 한다든지 똑같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든 머리로 할 수 없습니다. 머리로 생각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할 때에는 몸으로 합니다. 손을 쓰고 발을 씁니다. 온몸을 움직여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합니다.

 같은 책에 실린 어린이 글을 읽습니다. 1990년에 경기 금광국 5년인 황미소 어린이는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고 우리 입장은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는 어른이 싫어요. 우리들에게 학원을 몇 개씩이나 보내고, 조금만 잘못해도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잖아요(128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한테 공부만 시키는 어른들 삶은 1990년이나 2010년이나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1980년에도 1970년에도 엇비슷했습니다. 2020년이 다가온대서 나아질 성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온갖 학원에 집어넣는 매무새도 그렇고, 아이들을 두들겨패거나 윽박지르는 모습 또한 그렇습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우리 어른들 삶은 그리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1990년에 스물이었다면 올해에는 마흔이요, 이무렵에 서른이었다면 올해에는 쉰입니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며 예순이 된 2010년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얼마나 씩씩하며 튼튼하고 슬기로운 삶을 일구고 있는지요. 우리 어른들 스스로 씩씩하며 튼튼하고 슬기롭기에 돈벌이 하나 때문에 교육잡지 목숨줄을 끊어도 괜찮은지요.

 교육잡지 목숨줄을 끊은 우리교육 출판사는 “여름방학 어린이책 파격! 균일가전!!”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우리교육에서 펴낸 낱권책을 모조리 2000원씩에 팔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리가 아니더라도 서울 홍대 앞에서 벌어지는 와우북페스티벌이라든지 서울 삼성동에서 이루어지는 서울국제도서전이라든지 경기 파주에서 마련하는 북페스티벌 같은 자리는 으레 ‘에누리 책잔치’에서 헤어나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싸게 사고판다’고 하지만 좋은 책이라면 알맞춤한 값을 붙여 올바로 사고팔아야 할 텐데, 몸집이 커지는 출판사들은 자꾸 ‘책 팔아 더 많은 돈 벌기’로 쏠립니다. (4343.10.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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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차와 글쓰기


 자전거는 ‘잔차’라고도 일컫는다. 두 글자로 줄여 일컫는 이름인데, ‘잔차’라는 이름을 듣거나 말해야 할 때에는 살짝 소름이 돋는다. 이때에는 자전거 또한 여느 자동차와 매한가지로 ‘차’라는 느낌이 짙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내 두 다리와 마찬가지인 자전거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싶다. 이제 두 돌이 지난 딸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둘이서 신나게 읍내마실을 다니는 꿈을 꾼다. 자전거수레를 산 지 일곱 해 만에 드디어 우리 아이를 여기에 태우고 다닐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혼자 들뜨고 기쁘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놓고 오늘날처럼 자연 터전을 무너뜨리는 흐름을 뒤바꾸거나 거스를 수 있는 환경사랑 탈거리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자전거길을 마련한다며 수백 수천 억이라는 돈을 퍼붓는단다. 그러나 자전거 삶이란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전거를 북돋우는 정책은 돈으로 펼칠 수 없다. 자전거 정책은 사람이 할 정책이고, 자전거 즐기는 삶이란 사람들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삶이다.

 아이가 없을 때부터 나랑 한몸이 되어 주던 ‘허머(hummer)’라는 자전거가 한 대 있다. 아마 나하고 십만 킬로미터 넘게 달렸을 텐데, 처음 이 자전거를 헌 것으로 살 때 부속이 아직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자전거를 처음 산 뒤로 여러모로 삐걱거렸기에 여러 자전거집에 들러 꽤 자주 퍽 많이 손질했는데, 들르는 자전거집마다 ‘어, 이 자전거에 왜 이리 싸구려 부속이 붙어 있지요?’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예나 이제나 자전거 부속 급수에는 눈길을 두지 않는다. 튼튼하고 신나며 즐겁게 탈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자전거집 일꾼들은 내가 2004년 즈음에 헌것으로 산 이 자전거에 치른 돈이 너무 많다고 입을 모은다. 아마 자전거집 일꾼들 말이 모두 옳으리라. 난 틀림없이 바가지를 썼으리라. 그러나 나로서는 지난 예닐곱 해에 걸쳐 ‘자전거값을 뽑고 남을 만큼 즐겁게 이 자전거와 함께 살았’다. 나로서는 이뿐이다. 내 삶을 즐기고 내 몸을 놀릴 수 있으면 고맙다.

 나로서는 내 삶을 즐기며 내 넋을 담을 수 있는 글쓰기이면 고맙다. 글 한 줄을 써서 돈을 번다든지 이름을 높인다든지 할 수 있겠지. 나는 자원봉사로 여러 매체에 글을 써 주는데, 어제 이들 가운데 한 곳에서 글삯을 보내 주겠다며 전화를 두 차례 걸었다. 손사래치다가 안 되어 글삯을 받기로 했다. 아직 은행계좌를 살피지 못해 얼마나 넣으셨는지 모를 노릇인데, 나한테 넣은 글삯만큼 이 매체에 도움돈으로 돌려주려고 생각한다.

 시골길을 달리며 길가에서 쉬는 나비와 메뚜기와 잠자리를 다치지 않게 하며 서로 오붓한 벗이 될 수 있는 자전거 타기를 오래오래 즐기고 싶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내 터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대로 아이와 어깨동무할 수 있는 글쓰기를 두고두고 즐기고 싶다. (4343.10.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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