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글쓰기


 몇 시에 잠들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튼 한참 자다가 아이가 오줌을 기저귀에 누었다며 칭얼대는 소리에 퍼뜩 깬다. 아이 기저귀를 간다. 오줌 기저귀는 씻는방 대야에 담가 놓는다. 새 기저귀를 채운 다음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자리에 눕는다. 밤이라 시계를 볼 수 없으니 때가 어떠한지 알 길이 없다. 바깥은 그예 깜깜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이 시골집에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할 수 없는 일 또한 많다. 무엇보다 도시에서 살듯 이것저것 사들이거나 여기저기 누비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없다. 마음속으로만 오늘은 어느 골목부터 걸어 어느 골목을 지나 어느 골목에서 마무리를 하는구나 하고 헤아린다. 11월 25일 오늘 같은 때에는 골목빛이 어떠하겠다고 곰곰이 떠올린다. 어디에서는 어떤 사진을 찍고 어느 길에서는 어떠한 사람을 마주하겠는지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부질없는 생각이 아니겠느냐 싶다. 나는 도시사람이 아닌 시골사람인데, 마치 도시에서 살아가듯 생각하면 어떡하나. 오늘 낮에 텃밭 무를 뽑은 일을 생각해 볼까. 그래, 무를 그때그때 한 뿌리씩 뽑아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 무를 그대로 두면 다 얼어서 못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지만, 토요일쯤 옆지기네 어머님과 아버님이 찾아오시기로 해서, 어쩌면 그때에 무로 김치를 담글는지 모르기에 그날 다 뽑으면 훨씬 나은 줄 뻔히 알면서 오늘 무를 모두 뽑는다. 마침 아이가 아빠 곁에서 함께 놀고 싶어 하며 텃밭에 함께 서 있기에, 아이한테도 무를 뽑도록 한다. 아이는 처음에는 무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아빠가 먼저 이렇게 손으로 잡아서 살살 잡아올리면 돼, 하며 보여준다. 그래도 무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아빠가 힘이 모자라서 무를 못 뽑는 척해 본다. 벼리야 도와줘, 아빠 힘으로는 무를 못 뽑겠어, 얼른 네가 손으로 잡아서 함께 뽑아 주렴. 이제 아이가 아빠 손을 잡는다. 이때에 영차영차 하면서 뽑는다. 이리하여 이제부터는 아이가 모든 무를 다 뽑는다. 무 뽑는 맛에 쉴새없이 뽑아댄다. 거름 한 번 제대로 못 낸 엉터리 텃밭인데 알이 제법 굵은 무가 여럿 있다. 거름을 제대로 냈다면 무가 얼마나 굵었을까. 이듬해에는 거름을 제대로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올망졸망한 무를 고랑 한켠에 주욱 늘어놓는다. 참 예쁘다고 느끼어 사진을 여러 장 찍는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사진을 찍는 분 가운데 무를 사진으로 담은 사람이 있던가 하고 곱씹어 본다. 글쎄, 잘 모르겠다. 벼나 논을 사진으로 담는 사람은 곧잘 보지만, 무라든지 배추라든지 파라든지 갓이라든지 콩이라든지 우리가 흔하게 먹거나 마주하는 푸성귀나 곡식을 사진감으로 삼는 사람은 아직 못 보았다. 어쩌면, 이런 흔한 푸성귀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 일군 작품을 알아보거나 대접하는 사람이나 모임이나 출판사 따위가 없어 구경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 더욱이, 도시에서 살아가면서도 얼마든지 무이든 배추이든 파이든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저잣거리 마실을 하면서 푸성귀장수 아지매나 할매가 늘어놓은 녀석들을 찍으면 되니까. 이 푸성귀를 사들여 집에서 밥을 하거나 나물을 할 때에 틈틈이 찍어도 된다.

 무를 거의 다 뽑은 아이는 마지막에 그만 앞으로 고꾸라진다. 꽤 굵은 무가 한 뿌리 있었는지, 이 무를 잡아당기다가 힘이 딸려 앞으로 고꾸라진다. 온몸에 풀씨가 가득 묻었다. 아빠보고 털어 달라며 운다. 하나하나 털고 뗀다. 아이는 이내 “언니!” 하면서 운다. 우리 멧기슭 집보다 위쪽에 자리한 이오덕자유학교를 다니는 언니하고 놀고 싶다는 소리이다. 아이 눈을 보면 졸음이 가득한데 낮잠은 도무지 잘 낌새가 없으며, 곧 밥 먹을 때인데 밥조차 안 먹을 낌새이다. 참 갑갑하다. 놀 때는 놀더라도 밥은 먹으면서 놀고 잠은 자면서 놀아야 하지 않나.

 어찌하는 수 없이 아이를 안고 멧길을 따라 걷는다. 아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언니 있는 쪽’으로 걷는다. 차츰 위로 올라갈수록 언니랑 오빠가 놀면서 나는 소리가 크다. 아이는 ‘어? 어?’ 하다가는 아빠한테 안긴 다리를 세차게 흔들며 내려가겠단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며 오르막 멧길을 달린다. 금세 언니를 찾았고, 언니하고 함께 놀자며 달라붙는다. 그런데 아이는 잠을 실컷 잔 몸이 아니라 졸음이 가득한 몸이기도 한 탓에 언니한테 투정만 잔뜩 부리면서 함께 놀아 주는 언니가 골이 나게 하고야 만다. 아이보고 언니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하고 이르지만, 아이는 미안하다는 말은 않고 자꾸자꾸 언니한테 달라붙기만 한다. 언니는 심통이 난다고 말하면서도 아이하고 즐겁게 놀아 준다.

 밥때가 슬슬 지나는데 아이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그저 하염없이 기다린다. 비로소 아이가 엉엉 운다. 몸집 큰 오빠가 공놀이를 하며 찬 공에 가슴께를 쾅 하고 맞아 아프다며 서럽다며 운다. 그러게, 녀석아, 넌 아직 공놀이를 할 수 없는데, 오빠들 틈바구니에 끼어 멀뚱멀뚱 서 있으니 한 대 얻어맞지.

 아이를 안는다. 아이를 달랜다. 토닥토닥 달래며 안 아프니 괜찮다고 말하며 어여 울음을 그치도록 어른다.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까만염소 무리를 보고 닭 무리를 본다. 울던 아이가 염소랑 닭을 보더니 뚝 그친다. “꼬꼬다!” 하고 외치면서 또 다리를 세차게 흔들며 아빠 품에서 내린다. 닭한테 달려간다. 그러나 닭은 화들짝 놀라 꼬꼬꼬 하면서 꽁무니를 뺀다. 이제 드디어 집에 닿는다. 아이를 먼저 집으로 들이고 아빠가 뒤따른다. 저녁때에도 어김없이 밥을 제대로 안 먹으려는 아이랑 고단하게 실랑이를 하면서 웬만큼 밥을 먹인다. 방 한켠에 쌓인 그림책을 걸레로 닦는다. 아이 이를 닦인다. 아빠가 먼저 힘이 들어 자리에 눕는다. 아이는 뜨개질 하는 엄마 곁에서 곯아떨어진다. 엄마가 아이를 안아 잠자는 방에 눕혀 기저귀를 채운다. 아빠랑 아이가 새근새근 잠든다. 이러다가 아이가 첫 오줌을 누어 일어나 보니 한밤이나 새벽인 줄 알았더니, 고작 저녁 열 시를 조금 넘은 때이다.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 생각할 기운이 없다.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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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이 지났다고 아이가 왜 이렇게 서럽게 울다가 잠들었는지 까맣게 잊었다. 아이가 사탕 노래를 부르다가 사탕을 안 주니 울다가 잠들었던가. 아이야, 부디 울지 말고 잘 놀아 주렴... 

 - 2010.11.21.

  

덤 : 아빠는 아이가 왼손 숟가락질을 하기를 바랐으나 아이는 꼭 오른손 숟가락질을 했는데, 요사이는 왼손 숟가락질만 한다.

 

 덤 2 : 고양이 책이라면 다 좋아하는 아이. 고양이 책을 안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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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44 : 사진책 읽기

 2010년이 막바지에 이른 요즈음 디지털사진기 하나 안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2009년에도 이러했고 2008년이나 2007년에도 비슷했으며, 2011년이나 2012년이 되면 디지털사진기 갖춘 사람은 훨씬 늘리라 생각합니다. 따로 사진기를 안 갖고 있더라도, 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쯤 가진 손전화 기계로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기계를 잘 못 다룬다 하던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조차 손전화 사진기로 손자나 손녀 모습을 찍어 바탕화면에 깔아 놓곤 합니다.

 온 나라 사람이 사진쟁이와 같다 말할 만한데, 정작 온 나라 사람이 손쉽게 사진찍기를 즐기면서 사진이란 무엇이고 사진찍기란 어떠하며 사진삶이나 사진책은 어떠한 결인지 살피지 않습니다. 사진이나 사진찍기란 따로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기는 하지만, 사진을 깊이 살피거나 사진찍기에 온마음 쏟으려는 사람들한테만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지는 않아요. 사진을 찍는 누구나 사진을 알고 사진찍기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드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고 싶다면, 나한테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 마음을 알아야 하고, 사진기를 쥔 사람으로서 고우며 착하고 참다운 매무새를 익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이나 사진찍기는 한 가지조차 배울 수 없습니다만, 사진을 하는 몸가짐이라든지 사진찍기를 하는 매무새는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배울 만하며, 배울 노릇입니다. 사람들이 살림을 꾸리거나 밥을 하거나 집을 장만한다고 할 때에 ‘살림이 무엇’이고 ‘밥이 무엇’이며 ‘집이 무엇’인가는 따로 배워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림하는 매무새라든지 밥을 하는 매무새라든지 집을 장만하여 건사하는 매무새는 얼마든지 배우고, 배울 만하며, 배워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다 할 때에도 ‘책이란 도무지 무엇이라 할 만한가’를 남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마주하는 매무새는 얼마든지 배울 만하고 배울 노릇입니다.

 사진 하나 찍어 얻는 매무새를 헤아려 봅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기를 쥔 사람 마음에 와닿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마음껏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내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로서는 아주 마음에 들어 사진 한 장 찍는다지만, 나한테 사진 한 장 찍히는 사람은 퍽 못마땅할 수 있어요. 나는 사진 하나로 오래도록 떠올리고 싶은데, 나한테 찍힐 사람은 하루 빨리 잊거나 지나고픈 모습일 수 있습니다.

 사진책 읽기란 사진쟁이들이 작품을 빚어내어 엮은 책을 읽는 일이 아닙니다. 예부터 사진하는 사람은 많았어도 정작 사진책이 제대로 팔리거나 읽히지 못했고, 이제는 누구나 사진을 찍지만 사진책다운 사진책을 알아보며 장만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나 스스로 내 삶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읽지 못하며, 내 하루가 어떤 모양새로 이루어지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나부터 내 삶을 찬찬히 읽는다면 내가 즐기는 사진에 담을 모습이 내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한테까지 즐거울 모습이 되고, 이렇게 사진찍기를 즐기는 여느 사람은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빛깔 고운 사진책 몇 권을 기쁘게 장만할 수 있습니다.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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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5] 글읽기

 이오덕 선생님은 ‘글쓰기’라는 낱말 하나 새로 일구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이 낱말을 일구기 앞서까지는 모두들 ‘글짓기’만 했습니다. 글을 짓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억지로 쥐어짜거나 독재정권 입맛에 맞추는 틀에 박힌 글을 반공이니 효도니 충성이니 하며 쏟아낼 때에는 참으로 슬픕니다. 밥을 짓듯이 글을 지을 수 있고, 집이나 옷을 짓듯이 글을 지을 수 있다는 테두리에서 똑 떨어져 나간 ‘글짓기’라는 낱말은 그예 죽은 낱말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 죽은 말에서 아이들이 홀가분할 수 있도록 ‘글쓰기’라는 낱말을 예쁘게 일구었습니다. 밥짓기 집짓기 옷짓기 삶짓기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에 비로소 ‘글짓기’ 또한 제자리를 찾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는 앞으로도 까마득한 일이 될는지 모르는데, 그래도 밤하늘 보름달과 나란히 반짝거리는 밝은 별을 헤아리면서 ‘글쓰기’하고 ‘글짓기’가 곱게 어울릴 앞날을 손꼽아 봅니다. 글을 쓰듯 삶을 쓰기 마련이기에 ‘삶쓰기’를 함께 곱씹고, 삶을 쓰듯이 삶을 읽기에 ‘삶읽기’를 바라다가는, 아하, 책도 삶도 글도 사람도 다 참답게 읽으며 껴안아야 아름다운 길이기에 ‘글읽기’부터 옳게 가누도록 내 매무새 다스려야겠구나 싶습니다. (4343.11.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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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보고 싶어서, 이런 사진을 찾아본다...

 - 2010.7.26. 인천 남구 도화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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